2014.12.1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3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낸다(삼하 16:10-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6장입니다. 사무엘기하 16장 10-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0 왕이 이르되, 너희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주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으니 그가 저주하게 하라. 그런즉 누가 이르기를,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보라, 내 배 속에서 난 내 아들이 내 생명을 찾거늘 이제 이베냐민 족속은 얼마나 더 그리하랴? 주께서 그에게 명하셨으니 그를 내버려두고 그가 저주하게 하라.
12 혹시 주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주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 하니라.
저는 오늘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낸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다
오늘 우리는 극심한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 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고 있는 신세입니다. 그 와중에 사울의 집에 속하였던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다윗을 따라오면서 흙먼지를 뿌리고, 저주를 퍼붓는 수모까지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고난을 주십니다. 그 고난이 우리의 죄 때문에 온 것이든, 죄와 상관없이 우리의 믿음의 단련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것이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 그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시편 119편 6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나이다.
시편의 기록자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길을 잃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길을 찾았으며, 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며, 세상의 무겁고 복잡한 것들을 가볍게 만들어 주며,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방향과 목표는 물질적 번영이나, 외적인 행복이 아니라, 고난을 통한 성숙이며, 영원한 왕국을 위한 준비입니다.
때로 우리는 파라오 왕과 같이 극심한 고난 중에 더욱 힘을 내어 주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책망의 목적은 바로잡는 것인데, 바로잡히기를 거절하고 더욱 완고하게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고난을 당하더라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따라 고난의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고난으로 인해서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그 고난으로 인해서 주님을 더욱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련의 과정입니다.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면, 우리가 붙잡고 있는 주님 외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며, 주님만 붙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고집하던 생각들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만 온전히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성숙할 때, 믿음이 자라나며, 장차 주님의 왕국에서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면,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내며, 무엇을 버려야할지, 무엇을 갖춰야할지,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자녀 교육의 목표를 자녀의 행복으로 잡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그다지 성경적인 교육 방향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향과 같이, 자녀의 행복이 아니라, 자녀의 성숙을 교육 목표로 잡아야 합니다. 자녀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때, 고난이 오고, 자녀가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볼 때, 마냥 함께 속상해 하거나, 분노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을 발견하고, 자녀가 성숙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 책망하고, 격려하고, 이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 오히려 자신의 자녀에게 더 많은 고난을 주십니다. 야곱의 열 한 아들보다, 유독 요셉에게 더 극심한 고난을 주셨고, 욥의 친구들이 아니라 욥에게 더 견디기 힘든 고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랑하고 아끼는 자녀일수록, 더욱 성숙하게 단련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불같은 시련은 어떤 이상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 감사하기 원합니다. 비록 고난 자체는 기쁘지 아니하지만, 그래도 감사하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성숙케 하시며, 나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실 것이 있으시기에, 가장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음을 믿으면서, 감사하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고난 중에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었던 고난이 다윗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진실을 밝히 드러낸 것을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동행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 다윗에게 임한 고난의 목적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3,14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사자가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을 따르나이다, 하므로
14 다윗이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에게 이르되, 일어나 우리가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떠나가자. 그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에게 해를 가져오며 칼날로 도시를 칠까 염려하노라, 하니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다윗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 상황은 다윗이 젊은 시절에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녔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난이었습니다. 그때는 신체적으로도 훨씬 더 젊고 건강했으며, 위치적으로도 왕에게 쫓기는 신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훨씬 더 나이가 들었으며,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져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고난이 임한 이유는 바로 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간음하며 살인했기 때문이고, 또한 자신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간음과 살인의 문제를 정의롭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고난은 다윗의 마음 속 진실이 어떠한가를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주변에 있던 많은 신하들과 동료들이 다윗을 향해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냅니다.
** 잇대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8-23절을 보시겠습니다.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옆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족속과 모든 블렛 족속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의가드 사람들이 왕 앞으로 지나가니라.
19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타국인이요, 추방당한 자니 네 처소로 돌아가서 왕과 함께 머무르라.
20 너는 단지 어제 왔거늘 어찌 내가 이 날 너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올라가고 내려가게 하리요? 내가 정처 없이 가나니 그러므로 돌아가고 또 네 형제들도 데려가라. 긍휼과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매
21 잇대가 왕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과 또 내 주 왕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참으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죽으나 사나 왕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 하매
22 다윗이 잇대에게 이르되, 가서 건너가라, 하니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사람들과 그와 함께한 어린것들이 다 건너가니라.
23 온 땅이 큰 소리로 울며 온 백성이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고 온 백성이 건너서 광야 길로 향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잇대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육백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다윗 왕의 피난길에 합류하였습니다. 그는 가드 사람으로 타국인이었으며, 이방인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19절에서, 추방자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다윗을 따랐다는 이유로 가드 땅에서, 바로 자신의 고향 땅에서 추방당하였음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20절에서, 다윗이 단지 어제라고 표현한 것처럼, 잇대는 다윗과 아주 오랜 친분을 가진 신하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정처 없이 가므로, 고생길이 훤하고, 또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으니, 형제들을 데리고 새로운 왕인 압살롬에게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긍휼과 진리로 잇대를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잇대는 주께서 살아계심과 다윗의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면서, 죽으나, 사나 언제 어디나 왕과 함께 있겠다고 말하면서, 단호한 충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잇대를 허락하고 그와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 중에 나타난, 두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 다윗으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압살롬의 추격을 받게 되거나, 전투가 벌어질 경우, 자신을 경호해 줄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따라 나서는 잇대를 위하고 있습니다. 그의 처지가 어떠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잇대가 자신을 떠나 압살롬과 함께한다 할지라도, 긍휼과 진리로 축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은 처음에 주님만 붙들었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기던 바로 그 시절,주님만 온전히 바라던 그 때의 그 믿음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다윗의 마음 속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었습니다. 고난은 다윗 안에서 그 동안 잠들어 있던 믿음을 다시 불러 일으켰습니다. 고난은 다윗 안에서 꺼져가던 믿음의 불꽃을 되살려 놓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잇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고, 다윗 왕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자기 민족을 한 번 버린 경험이 있으며, 고향 땅인 가드에서도 추방당한 자였고, 이제 예루살렘 도성이 그의 새로운 고향이었습니다. 그가 계산적으로 생각했다면, 다윗을 한 번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압살롬에게 가담하고, 자신의 새로운 고향인 예루살렘 도성에 머무는 편이 훨씬 더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다윗 왕이 축복하면서까지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못이기는 척 하면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죽으나, 사나, 다윗을 따르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피할 길도 없이 고난을 당한다고 하나, 잇대는 고난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기꺼이 다윗과 함께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23절 말씀에서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마치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을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요한복음 18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셔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있던 동산으로 들어가시니라.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시던 바로 그 날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마치 다윗 왕이 자신의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하여 기드론 시내를 건넌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넜던 다윗처럼, 또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셨던 예수님처럼, 오늘날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시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어쩌면 잇대처럼 선택적으로 고난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윗을 따랐던 잇대와 같이 죽으나, 사나 주님과 동행하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로 이 로마서 14장 7절 말씀처럼, 그리고 잇대의 고백처럼, 죽으나, 사나 주님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사독과 아비아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24-29절을 보시겠습니다.
24 보라, 또한 사독과 그와 함께하며 하나님의 언약 궤를 멘 모든 레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았더라. 아비아달이 올라오고 마침내 온 백성이 도시에서 나와 지나가더라.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궤를 도시로 도로 가지고 가라. 만일 내가 주의 눈에 호의를 입으면 그분께서 다시 나를 데려오사 내게 그 궤와 자신의 처소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분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보라, 내가 여기 있으니 그분께서 보시기에 선한 대로 내게 행하실지로다.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희와 함께한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도시로 돌아가라.
28 보라, 너희로부터 내게 알리는 말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의 평야에서 머무르리라, 하니
29 그러므로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거기에 머무니라.
가드 사람 잇대에 이어서, 두 번째로 다윗을 따라나선 사람들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멘 레위 사람들과 함께 다윗 왕을 따라나섰습니다.
어쩌면 다윗은 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궤를 차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다윗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그것을 붙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 또한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나에게 호의를 베푸신다면, 내가 돌아와서 하나님의 궤를 다시 볼 수가 있을 것이고, 주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주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날 처분하실 터이니,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가지 않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자기에 대한 자기 뜻이 하나도 없었고, 주의 뜻만 있었습니다.
사독은 자신의 아들 아히마아스를, 아비아달은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을 데리고, 하나님의 궤를 도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의 광야에 머무는 다윗에게 소식을 전달할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30,31절을 보시겠습니다.
30 다윗이 올리벳 산의 오르막길로 올라갈 때에 올라가면서 울고 머리를 덮고 맨발로 가며 그와 함께한 온 백성도 각각 자기 머리를 덮고 올라가되 울며 올라가니라.
31 어떤 이가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압살롬과 함께한 음모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 하니 다윗이 이르되,오 주여, 원하건대 아히도벨의 조언이 어리석음이 되게 하옵소서, 하니라.
이제 다윗은 주님 앞에 철저히 통회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맨발로 올리벳 산을 올랐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이 고난의 기간을 부디 잘 통과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과 함께한 아히도벨에 대하여 들었을 때, 그 또한 주님께 맡겨드렸습니다. 다윗은 어떠한 상황들에 대해서 일일이 반응하거나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였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 후새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32-37절을 보시겠습니다.
32 다윗이 산의 꼭대기 곧 그가 하나님께 경배하던 곳에 이를 때에, 보라, 아렉 사람 후새가 자기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오므로
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짐이 되리라.
34 그러나 네가 만일 도시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이르기를, 오 왕이여, 내가 왕의 종이 되리이다. 지금까지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이제는 또한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조언을 꺾으리라.
35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네가 왕의 집에서 무슨 일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그것을 고할지니라.
36 보라, 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는 너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 편으로 내게 보낼지니라, 하매
37 이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도시로 들어가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여기서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를 볼 수가 있습니다. 후새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그는 어느 편에도 설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지만, 기꺼이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뜻과 방식대로 다윗과 함께할 수도 있었으나, 다윗이 요청하는 그대로 행하여, 다윗을 위한 스파이 첩자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후새가 어떻게 다윗을 섬겼는가를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자기 방법대로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보기에 옳은 것을 말하고, 자기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합니다. 정말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지 않고, 단지 자기 생각에 올바른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렉 사람 후새는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다윗을 위하여 왔고, 다윗을 위하여 갔으며, 다윗이 지정한 바로 그 방식대로 다윗을 도왔습니다. “아니, 나는 다윗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 나도 저 가드 사람 잇대처럼, 죽으나,사나, 언제나 당신 옆에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의 신하이면서, 친구였고, 자기 방식이 아닌, 왕의 방식대로 왕을 섬겼습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의 종이며,또한 주님의 친구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먼저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종류의 하나님의 일이 있는데, 그 중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고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섬기게 될 때, 그것이 진정으로 형제자매들을 위하는 섬김이 될 것이며, 진정으로 교회를 세우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섬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받으시는 그러한 섬김을 하기 원합니다.
** 시므이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6장 7,8절을 보시겠습니다.
7 시므이가 저주하며 이같이 말하니라. 너 피를 흘리는 자여, 너 벨리알의 사람이여, 가거라, 가거라.
8 주께서 사울의 집의 모든 피를 네게로 되돌리셨도다. 그를 대신하여 네가 통치하였으나 주께서 왕국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리는 자이므로 네 재난 속에 네가 빠졌느니라, 하니라.
다윗을 따라나선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을 벨리알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사탄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저주하고 있는 시므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고 있던 기간 동안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윗 왕을 감히 대적할 엄두도 못 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담대하게 다윗 왕을 저주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집을 대적한 적이 없었지만, 시므이는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다윗을 비난하였고,일방적으로 저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장군이었던 아비새가 분노에 차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다윗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함께 12절을 보시겠습니다.
혹시 주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주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 하니라.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것은 다윗의 눈이 오직 주님께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관심은 결코 시끄럽게 떠들며 저주를 퍼붓고 있는 시므이에게로 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주님께서 내 고통을 보시고, 주님께서 그 모든 근거 없는 비난의 말들을 들으시고, 주님께서 오히려 나의 억울함을 보시고, 오히려 긍휼로, 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고난당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범답안처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에게 사실이 무엇인지 해명하거나, 잘잘못을 따지거나, 그 무엇으로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나중에 다윗의 기대대로 그에게 선을 베푸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여인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15-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조언하였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조언하였으니
16 그러므로 이제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이 밤에 광야의 평원에서 머무르지 마시고 빨리 건너가소서, 하라. 왕과 그분과 함께 있는 온 백성이 삼켜질까 염려하노라, 하니라.
17 이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엔로겔 옆에 머물렀으므로 어떤 하녀가 가서 그들에게 고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고하니라.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가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고하였으나 그 두 사람이 빨리 도망하여 바후림에 있던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뜰에 있던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여인이 뚜껑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펴 놓으매 그 일이 알려지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을 도왔던 어떤 하녀와 바후림에 있던 어떤 여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명성도 없이, 빛도 없이 다윗을 도왔던 숨은 손길들이었습니다. 어떤 하녀가 없었더라면, 다윗은 큰 위기에 처했을 것이며, 어떤 여인이 없었더라면,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들을 알 수 없지만, 장차 하늘에서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그러나 주님 앞에 신실했던, 주님의 일꾼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주님께서 영광 중에 오실 그날 모든 것을 드러나게 갚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 외부 사람들
이제 우리 함께 오늘의 마지막 주인공들을 사무엘기하 17장 27-29절을 보시겠습니다.
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자손에게 속한 랍바 출신의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드발 출신의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28 침상들과 대야들과 질그릇들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콩과
29 꿀과 버터와 양과 암소의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및 그와 함께한 백성이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백성이 광야에서 배고프고 피곤하고 목마르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세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암몬 자손에 속한 랍바 출신의 나하스의 아들 소비가 첫 번째 이고, 로드발 출신의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두 번째이고, 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세 번째입니다. 소비, 마길, 바르실래, 이 세 사람은 암몬 자손에게 속한 지역, 요르단 저편의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로드발 출신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므비보셋을 다윗이 예루살렘 성으로 데려가기까지 모시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 세 사람은 다윗 왕의 무리에게 필요한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은 미래를 전망하며 투자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절망적인 가운데, 다윗 왕과 함께 죽고, 함께 살겠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계산해서 이익이라는 결론으로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손해이지만, 심지어 압살롬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베풀어진 호의였고, 섬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길 때, 이 땅에서 결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보상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이 땅에서 수익을 거두는 투자가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어버리는 일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말할 수 있고, 차라리 다른 쪽으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드리는 헌신과 섬김은 결코 그런 세상적인 방식으로 계산되거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오늘 우리가 하늘에서 결산하고, 하늘에서 보상 받을, 오직 그 날을 바라보며, 주님을 섬기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 결론
오늘 우리는 다윗에게 임한 고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진실이 드러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윗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는지,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누가 다윗의 진정한 친구였는지,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고난은 마음속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다가오는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은 우리가 결국 무엇을 바라보는지, 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왜 고난이 오는 것입니까? 먼저는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잘못한 것에 대하여 돌이키며 바로잡히는 징계와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더욱 성숙하여지고, 주님 앞에 불분명한 믿음의 태도가 더욱 분명하고 철저하게 단련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단지 고난을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통과하고, 어떻게 끝내느냐가 중요합니다.경제적인 문제로 고난이 임할 때, 우리가 돈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붙드는지, 아니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붙드는지, 우리의 마음 속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자녀의 문제로 고난이 임할 때, 우리가 자녀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를 온전히 드릴 것인지, 마음 속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실제를 원하십니다. 고난은 우리의 마음 속 원함을 실제 믿음으로 삶 속에서 입증하도록 단련시켜주는 하나님의 회초리이며, 용광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었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믿음의 큰 기회입니다. 우리가 오늘 고난 중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반드시 배우기 원합니다. 다윗이 처음 믿음으로 돌아가 주님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새롭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따르게 되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