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8.03.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0
하나님의 시간까지(삼하 2:10-1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2장입니다. 사무엘기하 2장 10-11절을 보시겠습니다.
10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사십 세였으며 이 년 동안 통치하니라. 그러나유다의 집은 다윗을 따르더라.
11 다윗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유다의 집을 다스린 기간은 칠 년 육 개월이더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 시간까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사울 왕만 사라지면 즉시라도 왕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여전히 왕이 되지 못하고 있는 다윗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물론 600명을 다스리는 대장에서, 유다의 집을 다스리는 왕으로 매우 발전하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은 분명히,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직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아직도 왕이 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많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에 오면서 많은 신호등을 기다렸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렸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미국의 시간관리 전문가인 마이클 포티노라는 사람이 수년 간 수백 명의 사람들의 삶을 조사하고 연구해 보았을 때, 사람이 평균 70년을 사는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간만 5년이고,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시간만 6개월이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생일을 기다리기도 하고, 소풍날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방학을 기다리고, 직장인들은 명절이나 휴가를 기다리기도 합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는 결혼식 날을 기다리고, 군대에서 병역 의무를 하고 있는 군인들은 전역 날짜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주님의 다시 오심, 주님과 만날 그날을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까지”라는 제목으로 다윗에게 또 다시 한 번 주어진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또한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시간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 주님께 길을 묻는 다윗
우리 함께 1-3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 일 후에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하시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하시니라.
2 이에 다윗이 자기의 두 아내 예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데리고 거기로 올라갈 때에
3 자기와 함께한 사람들 곧 각 사람과 그의 집안을 데리고 올라가서 그들을 헤브론의 도시들에 거하게 하니라.
다윗은 사울 왕의 죽음에 대하여 들은 이후에 주님께 새롭게 길을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은,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주님께 여쭙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제 사울 왕도 죽었으니 당연히 내가 왕이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서신을 보내어 그들을 소집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은 누가 봐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행로를 선택하지 않았고, 주님께 무릎 꿇고 여쭙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내 생각대로 옳은 길, 좋은 길을 알아서 걸어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철저히 주님께 묻고, 응답을 받아, 순종하는 길로 가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절호의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을 때, 당장 그것을 성급히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 먼저 여쭙고, 응답을 받아, 주님께 순종하는 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유다의 헤브론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헤브론은 “연합”이라는 의미를 가진 도시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어김없이 우리가 주님께 길을 물을 때, 먼저 헤브론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바로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되고 연합되어 동행하는 그 길로 가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어떤 나아갈 길을 찾는다면, “내가 곧 길이요”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붙들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지, 비록 가드 왕 아기스 아래에서, 이방 왕에게 신하가 되었던 다윗과 같은 상태였다 할지라도, 오늘 다시 일어나서 헤브론으로, 주님과의 연합,주님과의 교제 가운데로 나아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 총 3번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우리 함께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의 집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으며 또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을 묻었나이다, 하였더라.
다윗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다의 헤브론으로 올라가서 거하게 되었을 때,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먼저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유다의 집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특별히 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다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헤브론에, 즉 주님과의 연합 가운데 머물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바로 그때 유다 사람들이 먼저 찾아왔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할 때,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님과 완전한 연합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많은 활동을 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고, 또 무조건 가만히만 있는 것이 방법이 아니라, 주님과 연합한 가운데, 오직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경우를 통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시는 과정에 대해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가장 처음에 다윗에게 기름을 붓고 그에게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은 바로 대언자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다윗이 유다 사람들에게 또 다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어째서 또 기름을 붓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미 기름을 부으셨고, 왕으로 삼으셨는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자기들이 무슨 자격으로 또 기름을 붓고 있는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처음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사무엘을 보내셔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이 유다 집의 왕이 된 것은 유다의 집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이후였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5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1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2 또한 지나간 때 곧 사울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고 들어오게 하신 이는 왕이었고 주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이스라엘의 대장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주 앞에서 그들과 동맹을 맺으니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니라.
4 다윗이 삼십 세에 통치하기 시작하여 사십 년 동안 통치하되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였더라.
다윗이 실제로 이스라엘 온 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이후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용을 받을 수가 있는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총 3번에 걸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께, 두 번째는 유다 지파에게, 그리고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비로소 그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세우심에 따라 온 이스라엘 앞에 설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실 때, 그 목적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바로 이 땅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들, 형제자매들, 영혼들을 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주님 앞에서 어떤 일에 대해 부담을 가졌고,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 즉시로 언제든지 어떤 일들을 섬길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나님이 부르신 자를 몰라본다고 정죄를 하거나 상처를 받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분명하게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즉시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격으로 따진다면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 사무엘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처음 부르시고 세우신 이후에, 많은 훈련과 검증의 시간을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전서5장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것들을 묵상하고 전적으로 그것들에 몰두하여 네가 유익을 얻은 것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젊은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너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을 섬기는 데에, 즉 형제자매들과 영혼들을 섬기는 데에 필요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인기를 얻고, 영광을 얻고, 칭찬을 받으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 앞에서 디모데 자신이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여 나타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한 군데 더 보시겠습니다. 로마서 14장 18절입니다.
이것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느니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겨야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 의외인 것 같지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여기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말씀을 기록해 놓으셨을까요?
우리는 갈라디아서 1장의 말씀처럼,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보이기 위한 말과 행동을 하여서, 실제가 아닌, 가면과 같은, 나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면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해석하면, 바로 사람들을 섬긴다는 말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형제자매들을 섬긴다는 말이고, 영혼들을 섬긴다는 말이고, 바로 사람들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 방식대로의 섬김은 섬김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만족이고, 자기 성취이지, 결코 섬김이 아닙니다. 로마서의 문맥처럼, 양심의 문제로 고기를 먹을 수가 없고, 채소만 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고기를 들이밀면서, 왜 고기가 좋은 아무리 설명해 봐야, 그것은 형제를 실족시킬 뿐이고,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어떻게 세우셨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다윗을 찾아오게 하셨고, 하나님의 백성이 스스로 다윗을 인정하게 만드셨습니다. 다윗의 생애 가운데 다윗 자신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주장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사울이 왕이었을 때에도, 우리들을 이끌어 나가고 들어오게 한 사람은 다윗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오히려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며 대장이 되라고 하셨다고 증언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특별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젊고 어린 우리 학생들이 이 부분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이 부모님 앞에서 얼마나 기쁨을 드리는 자녀인가, 아니면 근심과 걱정을 끼치는 자녀인가 하는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내가 친구들 가운데 얼마나 유익한 친구인가, 아니면 별로 영양가가 없는 친구인가 하는 것이 주님 앞에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내가 선생님들 앞에서, 교회의 어른들 앞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어떤 부모인가, 어떤 남편인가, 어떤 아내인가 평가를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내가 교회 안에서 어떤 형제인가, 어떤 자매인가, 내가 직장 안에서 어떤 사람인가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내가 만나고 대하고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 내가 섬겨야 할 영혼들이며, 바로 주님 자신이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못나고, 때로는 자격이 없는 바로 그 사람들이 “당신은 나를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주었습니다”라고 인정하고 평가하고 고백할 때,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자가 될 때,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시간까지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육신을 따라 행할 때도 있었고, 육신의 선택으로 인해 쓴 열매를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닥을 치는 그 순간에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또 다시 주님을 붙들면서, 주님께 길을 물으면서,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가운데, 주님과 연합하고,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 유다의 왕이 된 이후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로 돌아오셔서, 사무엘기하 2장 5-7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다윗이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 주 곧 사울에게 이 같은 친절을 베풀어 그를 묻었으니 주께 복을 받을지어다.
6 너희가 이 일을 행하였은즉 이제 주께서 너희에게 친절과 진리를 베푸시기 원하며 나도 이 친절을 너희에게 갚으리니
7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손을 강하게 하고 용맹스럽게 할지어다. 너희 주인 사울이 죽었고 또 유다의 집이 내게 기름을 부어 자기들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이 되고나서 공식적으로 행한 첫 번째 일은 사울 왕을 장사지낸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다윗이 앞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데 있어서,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이 가장 껄끄러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울 왕의 출신이 되는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정말 왕이 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면,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잘못을 찾아내서 싸움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진심으로 그들을 칭찬하고 축복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유다의 집이 먼저 자기를 찾아온 것처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그리고 야베스길르앗 사람들까지도 자신을 찾아와서 왕으로 삼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다윗은 조급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렸습니다.그리고 다윗은 그러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단지 기다리면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8-9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8 그러나 사울의 군대 대장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건너가서
9 그를 길르앗과 아술 족속과 예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더라.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기까지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사울 왕만 죽으면 다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아브넬은 사울의 삼촌이었던 넬의 아들로, 사울의 조카였습니다. 또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이스보셋은 사울의 넷째 아들로 역대기상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에스바알이라고 불렸습니다. 에스바알이라는 것은 바알의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나중에 에스보셋, 또는 이스보셋 즉, 수치의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스보셋은 40세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을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2년간 평화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약 5년간 다윗과 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했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도망을 다니지도 않았지만, 또한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시간은 어찌 보면 정말 다윗에게 매우 힘든 시간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시간만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함께 갈라디아서 6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지니 우리가 기진하지 아니하면 정하신 때에 거두리라.
성경은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시간에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어쩌면 사울 왕이 죽은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낙심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사울 왕만 죽으면 다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고, 지치지 않았고, 주님을 계속해서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의 시간에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가 잘 행하는 가운데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하고 동행하는 가운데,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믿음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진하지 않으면,반드시 하나님의 시간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에베소서 6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내고 모든 일을 행한 뒤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성경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마귀를 대적하고 치열한 영적 전쟁을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군사로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목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기 위한 것입니다. 악한 날에 능히 버티어 낼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다 행할 뿐만 아니라, 그 뒤에 낙심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기진하지 않고, 여전히 서있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시간까지”라는 주제로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어렵고 험난한 길을 달려왔습니다.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위험한 길들, 바닥까지 낮아진 비참한 길들, 자신의 가족들을 다 잃고,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 번 한 위기의 순간들을 다 달려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에게는 아직도 갈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지 않았고, 주저앉지 않았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주님을 붙들었습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로마서 5장 3-5절을 보시겠습니다.
3 그리할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도 기뻐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체험을, 체험은 소망을 이루는 줄 우리가 아노라.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졌기 때문이니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환난을 주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인내를 배우게 하려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내의 시간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님과 동행하는 체험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경험하면 할수록, 세상의 것들과 멀어지고 하늘의 것들, 영원한 것들을 소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믿음의 길을 걸으면서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넓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실 때까지,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렸던 다윗과 같이, 지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주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며, 주님의 사랑과 연합을 더 풍성히 누리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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