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일시 : 2010.08.04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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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신 예수님(계 5:9-14)

 

안녕하세요제가 돌발질문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혹시 예수님을 떠올리면 어떤 동물이 생각나십니까어떤 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왕이신 예수님을 생각하실 수도 있고또 어떤 분은 소처럼 일하시는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고또 어떤 분은 독수리처럼 하늘에 속한 권능의 하나님을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저 개인적으로는 어린양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그래서 오늘 저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5장입니다오늘 저는 특별히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전진하고 있는 어린양의 발걸음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서 나누기 원하는데요특별히 대표적인 구절로 요한계시록 5장 말씀을 먼저 읽어보려고 합니다요한계시록 5장 9절부터 14절까지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시며

10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하더라.

11 또 내가 보고 왕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으니 그들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더라.

12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하더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바다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르되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하니

14 네 짐승이 이르되아멘하고 스물 네 장로가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께 경배하더라.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영원히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나의 어린양우리 각자의 어린양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고영원히 멸망받기에 합당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해 주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오늘 불결한 입술을 가진 부정하고 자격이 없는 자가 주님의 말씀을 들고 섰습니다오직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성경의 주인공 예수님

여러분성경 속의 주인공을 딱 한 명 뽑아본다면 누구를 뽑게 될까요성경에 뛰어난 여러 믿음의 영웅들이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께서도 친히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우리가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때에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성경 기록들이란 신약을 말할까요구약을 말할까요너무 쉽고 당연한 질문을 계속 드리는 것 같은데요바로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구약성경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이란 글자도 없는데요?” 비록 구약성경에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너무나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옛날 만화 주인공이 등장할 때처음부터 주인공의 모든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꼭 위기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등장할 때 먼저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있습니다그리고 주인공의 등장을 암시하는 다양한 힌트가 등장합니다말이 힘차게 달려와서 멈추는 소리라든지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표창이나 화살이라든지또는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아니면 주인공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을 보면서 반가워하거나 겁에 질리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기도 합니다그리고 나서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모습들을 미리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어린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모습들을 함께 발견해 보기 원합니다오늘 우리가 구약과 신약을 통과해 가면서 어린양의 행진과 같은 힘찬 발걸음과 흐름을 발견하게 될 때우리가 정말 성경이 살아있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또한 우리를 위하여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님을 향해 더욱 뜨겁고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가죽옷

그러면 가장 먼저 어린양이 등장하는 에덴동산으로 가보겠습니다창세기 3장입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고사람과 교제를 주고받기 위하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그리고 아담과 이브에게 그들이 먹고 마시고 누릴 수 있는 모든 풍성한 것을 값없이 제공하여 주셨습니다또한 아담과 이브에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지만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보여주고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보여주는 선악과를 동산의 중앙에 두셨습니다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이 세상에 가져오게 되었습니다그 결과 아담과 이브는 영적으로 죽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또한 아담과 이브의 영뿐만 아니라사실은 육체적으로도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아담과 이브의 생명을 구출하여 살려내시고 다만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창세기 3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또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이라는 단어를 잘 주목하시면서 제가 읽어드리는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첫째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그 사망이 최초로 임하였던 대상은 누구일까요바로 아담도 이브도 아닌 어린양이었습니다.아담과 이브에게 입혀졌던 어린양의 가죽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아담과 이브가 입었던 어린양의 가죽옷은 바로 죄악된 우리를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전에 발생된 문자라고 알려져 있는 한자도 이러한 진리를 잘 담고 있습니다여러분 의로울 의()”자 아십니까한자 의로울 의자를 보시면 양을 의미하는 양양()”자 아래에 나 자신을 의미하는 나아()”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 아래 내가 있는 것이 바로 의이다.” 또한 나아자를 잘 보시면손을 의미하는 손수()”자에 전쟁할 때 사용하는 찌르는 창을 의미하는 창과()”자가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의로울 의라는 한자를 보면 손에 창을 잡고 어린양을 찌른 내가 바로 어린양 아래에 위치해 있는 그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지금이 비록 한자 시간은 아니지만이렇게 창세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자의 한 글자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누가 의인입니까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 사람이 바로 의인입니다.

 

 

아벨의 헌물

이제 우리는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헌물을 보게 됩니다아벨은 양을 치는 자로서양 떼의 첫 새끼들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렸고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상징하는 어린양의 피는 받으셨지만종교를 상징하는 땀과 노력의 곡식과 열매는 받지 않으셨습니다구원이 사람의 노력에 달려있지 않고오직 어린양의 피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어떤 분들은 아벨은 정성이 지극했고 가인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는 인정하시고 받으시지만,사람의 종교적 행위는 인정하지 않으시고 받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이 모든 말씀들은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삭을 대신한 어린양

이제 창세기 2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번제 헌물로 드리기 위해 갈보리 산에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갈보리 산은 모리아 땅의 산들 중 하나인데바로 여기서 이삭이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신약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님을 화해 헌물로 드리시기 위하여 갈보리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함께 창세기 22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내 아버지여하니 그가 이르되내 아들아내가 여기 있노라하매 이삭이 이르되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내 아들아번제 헌물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여기서 아브라함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다 함께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보라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하더라.” “여호와이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예비하신다는 의미입니다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삭을 대신하여 양을 헌물로 예비하신 것처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할 화해 헌물이 되실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죽옷으로부터 시작된 어린양의 발걸음이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이제 함께 출애굽기 1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우리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발견하게 됩니다익히 아시는 것처럼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있었던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입니다바로 모든 생명의 첫 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의 한 밤이 있었던 것입니다이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피를 자신의 집 문과 양 옆 기둥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오직 어린양의 피를 뿌린 자만이 살 수가 있었고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다함께 출애굽기 12장 21절부터 23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1 그때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에 따라 어린양을 취하여 그 유월절 어린양을 죽이고

22 우슬초 한 묶음을 가져다가 대야에 담은 피에 그것을 적셔서 대야에 있는 피를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에 뿌리고 아침까지 너희 중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지니라.

23 께서 두루 지나가시며 이집트 사람들을 치실 때에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의 피를 보시면 께서 그 문을 넘어 가시고 파멸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시리라.

 

바로 이 유월절 어린양은 우리 주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한 어린양의 피는 바로 우리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또한 유월절 어린양은 결코 뼈가 꺾이지 않는데 이것 역시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보여주는 한 그림이 됩니다그러므로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우리가 처음 살펴본 어린양은 의를 상징하는 가죽옷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그림을 보여주었고아벨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어린양의 피를 받으신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이삭을 대신하여 죽임당한 어린양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여주었고유월절 어린양은 피를 통하여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마치 퍼즐의 조각들처럼 각각의 어린양의 모습들이 나타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잠한 어린양

이제 이사야 53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이사야 53장에 나타난 어린양의 모습을 3가지로 표현해 보자면못난 어린양,억울한 어린양그리고 잠잠한 어린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먼서 이사야 53장 2절과 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고통을 잘 아는 자라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여기서 못난 어린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양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어리석고 볼품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반드시 멸종되었어야 하는 생물 중 하나가 양일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양을 창조하셨습니다.

전에 양을 치는 농장에 살았던 한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요어릴 적에 양을 장난으로 뒤집어 놓고 밥을 먹으러 갔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양은 발라당 누워서 발만 움직일 뿐 몸을 옆으로 틀어서 일어나질 못했다고 합니다나중에 밥을 다 먹고 왔는데도계속 누워서 발만 움직이고 있었다고 합니다또 양고기는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른 멋있고 뛰어난 동물들을 다 제쳐두고 어린양의 모습을 취하신 것은 겸손하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억울한 어린양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고통과 담당하신 슬픔은 바로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맞으신 매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바로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이 받으신 징벌과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도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억울한 어린양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 슬픔에는 정당한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모든 것이 부당하고 모욕적이며 옳지 않은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오직 영광과 존귀 가운데 계셔야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친히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어린양이 되셔서 이 땅에 내려오시고,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슬픔과 수치와 모욕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잠잠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끌려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저는 조금만 불합리한 상황이 오면 바로 입이 열어지고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들을 쏟아내게 됩니다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잠잠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고도살장의 어린양같이 도살하려고 하는 자들조차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대항하거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더럽고 비천한 우리를 사랑하신 놀랍고 신기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날마다매순간 가득 넘쳐나길 원하고우리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린양을 보라

이제 신약으로 와보겠습니다다함께 요한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 1장 2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이 분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피로 우리를 덮으셔서하나님의 심판을 넘어가게 하시고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신성경 속의 주인공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들로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바로 이 어린양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며소망이며사랑이 되십니다우리가 늘 예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외쳤습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는아무런 담대함도 없고소망도 없지만예수님을 볼 때 사랑을 얻고은혜를 얻고긍휼을 얻고,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답답한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문제는 감사와 평안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오늘 이 시간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눈을 돌이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기 원합니다.

 

 

계시록의 어린양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요한계시록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이름이 무엇일까요바로 어린양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만 어린양이 아니시고하늘에서도 여전히 어린양이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요한계시록 5장 13절에서도 왕좌에 앉으신 어린양께 장엄한 찬양이 드려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 19장 7절에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혼인 잔치가 보여지고 있습니다이 혼인 잔치의 이름은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또한 계시록 21장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계시록 21장 22절과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2 또 내가 그 안에서 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전능자와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전이시기 때문이라.

23 그 도시는 해와 달이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더라.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의 성전은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또 새 예루살렘에는 해도 달도 없지만 너무나 영광스럽게 빛이 나게 될 것인데그 빛은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계시록 22장 1절에서는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우리가 영원히 찬송할 제목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공로일 것입니다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우리의 몸은 다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더 이상 질병이나 고통이나 늙음이 없는 하늘에 속한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가 다 입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영원히 상한 몸을 가지고 계신 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그분의 손과 발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을 것이고그분의 옆구리에는 여전히 창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고통과 수치의 자국을 여전히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표시들이 어린양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영원히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짧게나마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펼쳐져 있는 어린양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습니다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헌신과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더럽고 죄 많은 우리를 부르셔서 자신의 피로 씻으시고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들을 섬길 수 있는 놀라운 긍휼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장차 고생과 수고로 가득한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갈 것입니다우리가 하늘을 소망하는 이유는 단순히 천국에 황금길이 있고더 이상 고통이 없고 안식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어린양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사모하며 사랑하며 찬양할 유일한 대상이 되십니다우리의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한 걸음씩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복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사람과 교제하시려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사람의 배신과 죄악을 친히 자신의 몸을 담당하셔서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시고비참하고 가련한 죄 가운데 뒹굴던 우리를 먼저 찾아주셔서 구원하여 주신 한이 없고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합니다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주신 어린양의 발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우리를 위해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을 잠잠히 담당하시고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다이기적이고 사악한 우리들일지라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시고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환경이나 상황을 보지 않고오직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장차 우리를 하늘로 불러주실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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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목적(계 4:11)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4장 11절 말씀입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계시록 4장 11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창조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를 기쁘게 하려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4장 11절의 말씀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는 말씀입니다사람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고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우리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성경은 분명하게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이곳에 모인 어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청년장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였습니다오늘날 마귀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속임수는 바로 교육과 과학입니다참 과학이란 관찰하고 분석하여 정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어야 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원숭이가 종류대로 번식하고 있고사람이 종류대로 번식하고 있음을 눈으로 관찰하면서도 진화론에 세뇌되어 있습니다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단계를 가진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면서도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확인할 수도 없고관찰할 수 없는 수억만 년 전의 과거의 일이라고 세뇌되어지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사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잊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저 우연히 탄생된 생명체일 뿐이다갑자기 나타난 단세포 생물에서 수억만 년이 지나 이렇게 고등생명체로 진화된 것이다이제 인간은 계속 진화하고 있고 결국 신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마치 옛 뱀이 이브를 속였던 것과 같은 결론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이 곧 하나님이며 신이며 목적이다.”라고 속이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우리가 생활 중에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도 만들어진 목적과 기능이 있습니다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볼펜으로 젓가락질을 하거나 주걱으로 탁구를 칠 수는 없습니다모든 물건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되어질 때 가장 합당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합당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어떤 물건을 제 기능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핸드폰을 가지고 망치질을 하거나 양복으로 걸레질을 할 수는 없습니다우리의 인생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 질 때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우리의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하나님이 앉으셔야 합니다우리의 가정에서교회에서직장에서 주님이 가장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어야 합니다인생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인생은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것임을 누누이 알려주어야 합니다.

잠언 16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원수와 화목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처세를 잘 배워야 합니까신경전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까주변 인물들과 상황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까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의 삶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그것이 우리의 기능이요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뒷전에 놓은 사람의 인생은 불행합니다무엇인가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추구하고 갈망하고 치열하게 달려가지만 남는 것은 공허와 절망뿐입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쾌락은 잠시 있다 사라질 뿐입니다.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이 우리의 갈 길이며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주님이 기뻐하시는 세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주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주를 기쁘게 하려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아들로서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또 그 동안 선생님으로서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접하면서 간접적으로도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면 기쁘고못하면 속상한 마음이야 다 있으시겠지만그러나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그렇게 절절하게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때로 어떤 아이가 무엇을 잘하지 못해서 쟤는 저런게 문제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부모님은 너무나 안타깝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또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 부끄러운 적이 많았습니다. “바로 저것이 부모의 마음이구나.” 변함없이 신실하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책임지는 마음...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시원한 한 컵의 물이라면하나님의 사랑은 거대한 바다와 같다.” 아이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듯이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우리가 죄 많고이기적이며한심하고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때에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따듯한 부모님의 눈과 같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5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보라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느니라.”

또한 시편 103편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유리창을 깬 아들을 대신해서 값을 물어주고 대신 사과하는 아버지같이친구를 때리고 들어온 아들을 대신해서 치료비를 물어주고 대신 사과하는 어머니같이자기 잘못으로 다친 것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며 치료해주는 부모와 같이하나님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의 피로써 대신 갚으시고 용서를 이루셨습니다주님께 감사합니다주님께만 영광과 존귀과 권능이 돌려지기 원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이러한 사랑의 주님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도 사랑하기 원하고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주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두 번째로주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가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잘 아시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지만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믿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영원한 천국과 지옥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나는 그 순간에 한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매순간 필요합니다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이며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우리가 정말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질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주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지옥이 존재하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믿는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땅에 보물을 쌓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처럼 살아갈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할 것입니다믿음은 마음에서만 머무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믿음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믿음으로 노아는 온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120년 동안 꿋꿋이 방주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의와 심판을 선포했습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채 길을 떠났으며믿음으로 모세는 이집트의 보화들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하였습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믿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된 믿음은 반드시 살아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이 세상이 거대한 홍해바다와 같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믿음은 그 홍해바다 한 가운데에 길을 뚫고 전진하게 만들 것입니다.

 

잘 아시는 로마서 10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날 수 있습니까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은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자주 읽고 묵상하며자주 듣는 사람일수록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 믿음이 자라날 수는 없습니다말씀을 떠나 믿음이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마치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우리가 잠시 있을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계속해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늘 말씀의 공급이 필요합니다늘 보이는 것들에 영향을 받는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의 모든 집회 가운데 참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말씀하시지만특별히 교회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자녀에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부모가 자녀에게 100억을 물려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70, 80년이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물려준다면 자녀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자녀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식과 기술과 처세를 가르치는 것보다주를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우리가 정말 이 세상의 잠시 있을 부귀영화보다 하늘에서의 영원한 영광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면우리 자녀들에게 더 소중한 것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자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물려줄 수 있습니까먼저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려줌으로써 믿음을 자라게 해주어야 합니다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의 법과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고 양육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주일오전 주일학교중고등부성경공부 시간만이 아니라주일오전예배오후예배수요기도회까지 모든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그냥 집회만 참석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그 말씀에 대해 자연스럽게 나누고 교제하여 소화할 수 있게 도와야합니다. “아이들이 뭘 알기나 할까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아이들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아이에게 꼭 맞게 깨닫게 하시고 적용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눠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물려주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내가 믿지 않는 것을 아이에게 믿으라 할 수 없습니다내가 이 땅의 보물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아이에게 하늘에 마음을 두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내가 세상의 안락한 삶을 더 사랑하면서 아이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너무나 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삶은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자녀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실제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올 때 가장 단정하고 멋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교회에 오면서 머리도 감지 않고 슬리퍼를 끌고 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토요일 밤부터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내일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이다.”라고 알려주고 마음에 준비를 시켜주어야 합니다그리고 일찍 자야 합니다주일 아침에 분주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주일에는 아이들이 결혼식이나 중요한 파티에 가는 것 이상으로 단정한 복장을 해야 합니다결혼식 갈 때는 멋있는 옷을 입혀주면서교회에 갈 때는 대충 입힌다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보다 결혼식이 더 크고 중요하구나.”라고 새겨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들이 교회에 있어야 할 시간에 다른 장소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영어도 중요하고수학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중요합니다우리는 자녀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최우선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가르치겠습니까실제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절대 허용하지 않으면서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크게 혼내면서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당연하게 허용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이에게 하나님보다 썩어질 이 세상이 더 중요하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이 시대는 교육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우상숭배자로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저는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최선을 다해 공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이 최우선이 되셔야 합니다이 세상 그 무엇도 결코 하나님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내가 공부를 잘하고기술을 잘 배우고좋은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알려줘야 합니다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이 세상의 삶은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며우리의 정체는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소망 없고 헛된 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지 말고,성경에서 제시하는 영원한 영광을 삶의 가치관으로 비전으로 제시하며함께 걸어가야 합니다우리 교회 자녀들 가운데 많은 선교사와 목회자가 배출되어야 합니다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모두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로 자라나기 원합니다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잘했다착하고 신실한 종아.”라고 칭찬받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두 번째로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세 번째로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기뻐하십니다로마서 8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또한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육신이란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나기 전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나는 원래 이래나는 그런거 못 참아이게 내 방식이야.”라고 생각되어지는 과거의 모든 것입니다온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모든 것이 육신입니다겉으로는 선하고 의롭게 영적으로 포장될지라도 육신에게서는 교만과 이기심과 더러운 욕심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만이 뿜어져 나올 뿐입니다우리 자신의 천연적인 옛 생명을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때우리의 육신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함께 무덤에 묻으셨습니다또한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잘 아시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우리가 과거 아담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옛 창조에 속한 옛 사람이었으나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질 때에 우리는 새 창조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날마다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가 육신 안에 거할 때에는 우리의 옛 본성에 따라 살게 되지만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게 될 때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새 본성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우리의 육신 안에는 아무 소망이 없지만그리스도 안에는성령 안에는 소망이 있습니다내 안에는 사랑이 없지만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내 안에는 온유가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나의 온유가 되십니다내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으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하려면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겉모양을 바꾸려 하기 전에 속을 바꿔야 합니다조급하게 무엇을 계획하고 진행하기 전에 주님께서 하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주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 말씀하실 때 그 한 가지를 순종하고 나서 그 다음 단계의 일을 추진하지 말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주님의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와 교제할 때에 그들의 육신을 보면 답이 없고 사랑하고 싶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지체들을 대할 때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내가 겸손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면 아멘하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또한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할 때에도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그들이 정말 구원을 받았고그들 안에 정말 생명이 있다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이야기하게 될 때에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분명 육신으로 분주한 것과는 다르지만역동적이고도 활동적인 삶인 것은 분명합니다.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중에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끊임없이 다니시면서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사도 바울도 많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했습니다감옥에 갇혀서도 끊임없이 서신을 기록하며 교회들을 돌보고 기도했습니다과거의 수많은 성도들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겼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늘 적극적이고 열정적일 것입니다.

 

 

마무리

마무리 하겠습니다오늘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모든 물건이 제 기능과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질 때 아름답고 합당하듯이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 때에 가장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자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어머니가 젖 먹이는 아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손바닥에 새겨두셨습니다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 노래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의 믿음을 볼 때에 기뻐하십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생겨나고 자라납니다하나님의 말씀과 단단히 결합된 믿음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킵니다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을 사모하지 않고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금보다 귀한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70, 80년이면 사라져버릴 헛된 것들을 물려주지 말고영원히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그리스도 안에서 걸을 때에 만이 주님의 성품을 살아낼 수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내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구원받고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삶입니다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아이였을 때에 아마 에봇을 입고 주 앞에서 섬겼습니다(삼상 2:18).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에 하나님을 모독하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다니엘도 소년이었을 때에 우상숭배에 바쳐진 왕의 음식들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모세는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였고갈렙은 팔십오 세가 되었을 때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 산을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전쟁에 앞장섰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이리이다.”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고이방 여인이며 창녀였던 라합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룻의 남편인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어린이들은 나서지 말아야 하고나이든 자는 뒷짐 지고 구경해야 하며여자들은 가만히 있어야한다는 동양적이고유교적이며한국적이고사탄적인 사상을 우리는 배격해야 합니다성경은 우리 모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모해야 합니다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살아 숨 쉬며 존재하는 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이 주실 보상을 위해 끝까지 힘내어 달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합니까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합니까오늘 우리는 우리를 군사로 뽑으신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복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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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10.21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갚으시는 하나님(계 2:26)

 

요즘 저는 신학교에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이번에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는데마침 중간고사와 함께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한 설교 한 편을 제출하는 것이 숙제입니다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요한계시록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26절 말씀입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계시록 2장 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계 2:26)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저는 갚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비록 이 한 구절 말씀을 읽었지만 계시록 1-3장까지의 말씀들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갚으시는 분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갚으시는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갚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빌린 것을 되돌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빌린 것이 없으시고 따라서 아무것도 갚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로우심과 긍휼하심을 따라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갚아주십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2장 26절 말씀에서도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 2장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로마서 2장 6절부터 8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갚으시는 분이십니다갚으신다는 말을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그것은 바로 심판과 보상입니다.진리에 순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생명의 보상으로 갚으시고불의에 순종한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의 심판으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갚으심

갚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은 바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입니다다같이 계시록 1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하반절에 보시면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18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전에 죽었으나보라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아멘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용서하실 수가 없었습니다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며 반드시 그 대가가 지불되고 갚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신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갚아주신 것입니다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죄 값이 다 지불되고 갚아졌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죄 값을 완전히 갚을 수 없지만 온 우주에서 의로우신 유일한 한 분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그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 할지라도 다 갚을 수 없는 우리의 더러운 죄의 대가들을 십자가를 통하여 단 한 번에 영원히 깨끗하게 하신 주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이 갚아주신 우리의 죄 값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우리도 이러한 좋으신 주님 긍휼의 주님을 더 알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는 계시록 1-3장에서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그 중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내가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다같이 계시록 2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분별한 점과 낙심하지 아니한 부분들을 언급하시면서 그것들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가 우리가 좋고 훌륭한 일들을 하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우리의 육신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헛된 영광을 사랑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랍니다나의 이름을 알리고 나의 사역과 나의 업적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애써서 우리의 잘한 것을 사람들 앞에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왜냐하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한 것을 모두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우리의 잘한 것을 사람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우리의 보상이 클 것입니다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갈 것입니다누가 봐도 많은 보상을 받을 것 같았던 사람이 적게 받을 수도 있고아무도 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주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를 주의해야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십니다.

 

또한 9절에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알며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주님은 우리의 수고와 인내를 아실뿐만 아니라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궁핍을 아시며또한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거짓과 악함을 아십니다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궁핍을 당할 때 우리가 평안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주님은 오히려 궁핍한 서머나 교회를 향해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그 이유는 서머나 교회에게 외적으로 환난과 궁핍이 닥칠수록 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어떤 말과 행동에 크게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기 원합니다.

 

또한 13절에서도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 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가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순교자가 된 것을 기억하시며버가모 성도들의 믿음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19절에서도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네 행위를 아노니 마지막 것이 처음 것보다 많도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아실뿐만 아니라 많고 적음을 또한 공정하게 판단하는 분이십니다내가 다른 형제보다 더 많이 섬겼고예전보다 지금 더 많이 섬긴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시록 3장 15절에서도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우리 하나님은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 주님의 심판과 보상은 너무나 정확하고 공정합니다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법적에서는 증거가 없고 목격자가 없어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 발생할 수 있고충분하지 못한 보상이 있을 수 있지만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누구도 주님 앞에 변명할 수도 없고 보상이 부족하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임을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한 면으로는 두려운 마음이또 한 면으로는 기대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잠언에서는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우리가 갚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를 두려워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우리의 수고와 인내와 환난과 궁핍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갚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에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깊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행위와 마음의 동기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갚아주실까요성경은 명백하게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앞에서 하나님께서 아신다라고 말씀하신 표현들을 살펴볼 때에도 내가 너의 행위를 아노라.”라고 말씀하신 많은 부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특별히 계시록 2장 23절의 마지막 문장에서도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고어떤 감정을 가졌고어떤 지식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뜨겁게 불타올랐다 할지라도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일들에 관한 원대한 계획들이 있다 할지라도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그것을 실제로 살아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또 반대로 주님의 어떤 뜻에 순종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할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고 돌이켜서 그 일을 순종하고 섬겼는가를 보시고 주님은 보상해주실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26장 16절에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이유를 댈 수 있는 일곱 사람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자의 특징은 실제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교회 생활 가운데 앉아서 판단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어떤 일들을 부지런히 섬기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게 일을 처리하느냐고어떻게 그런 일을 빠뜨릴 수 있느냐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지혜로운 자처럼 판단하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직접 일어나서 섬겨야 합니다주님은 말과 혀로 사랑하는 것 말고손과 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계시록 2장 23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두 번째 줄부터 다시 읽어보면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우리 주님은 분명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분이시지만또한 사람의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실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도 살인으로 보시지만또한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하실 때에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실 것입니다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왜 전하였는가도 중요합니다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교제하고권면하며섬기는 일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왜 하였는가도 중요합니다주님은 우리의 섬김이 순수하고 겸손하며 사랑으로 하였는가를 반드시 살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주님은 마음과 속 중심을 시험하시고각 사람의 길들과 행위의 열매대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뿐만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를 주의해야 합니다. “난 비록 저 형제가 마음에 안 들지만저 형제를 위해 기도했고 밝게 인사해줬으니까 됐어난 비록 영혼들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복음 전하는데 참여했으니깐 된거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물론 형제를 위해 기도한 것은 잘한 일이고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도 잘한 일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마음을 살피십니다마음 없이 하는 것은 위선이며 주님은 그것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2장 4절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뛰어난 교회였습니다갈라디아나 골로새 교회 같은 경우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큰 혼란을 겪었고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정리하는 서신을 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에베소 교회에게는 그러한 필요가 없었습니다에베소 성도들은 진리에 굳게 서있었고누가 거짓 사도인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분별할 만큼 뛰어난 진리의 지식과 영적 분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낙심하지 않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처음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들의 행위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의 사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마음만 있어서도 안 되며힘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으로 풍성하고또한 우리의 삶이 주님의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부지런한 섬김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다같이 히브리서 4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4장 12절과 13절을 뵈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13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벌거벗은 것처럼 낱낱이 아시고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선한 뜻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 그가 매인 자든지 자유로운 자든지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 가운에서 일하고 행동할 때에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겉으로눈에 보이게만 잘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는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만 주의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일상 가운데 어떻게 사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삶에 따라 보상하실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섬기는 것만 보상하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어떤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며 섬길 때에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할 때에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고 주님께서 주신 환경 가운데 자신의 일에 마음으로부터 충실할 때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우리가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듯이 눈가림을 일하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않을 때 주님은 그대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4장으로 돌아와서 15절과 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의 갚으심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소망하는 마음을 가진다 할지라도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얄미운 형제 자매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어렵고나에게 상처주는 말을 한 지체를 용서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나는 피곤하고 쉬고 싶은데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러 모임에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나는 설렁설렁 대충 일하고 싶은데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충성되게 일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말씀에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기록한 이후에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을 때에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다 느끼셨습니다주님도 배가 고프셨고목마르셨고피곤하여 주무셨고슬퍼하여 우셨습니다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양날 선 검처럼 분명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의 의도들을 분별하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신 만큼 잘 알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계시록 4장 10절에서는 스물네 장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왕관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근거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필요한 때에 시기적절하게 넘치도록 도와주신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그 누구도 내가 열심히 공부했더니 진리를 깨달았고내가 굳게 결심을 하고 주님을 섬겼더니 온전하게 섬길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오늘 우리가 숨 쉬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긍휼이며 은혜입니다내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모든 환경과 여건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적게 갚으시고넘치게 갚으시는 하나님

우리는 오늘 갚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적게 갚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넘치게 갚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죄보다 훨씬 더 적게 갚으시는 분이십니다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은 분명한 주님의 원칙입니다이러한 주님의 원칙을 따라서라면 우리는 이미 다 멸망했어야 합니다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살려주신 것은 우리가 악하게 심은 것보다 훨씬 더 적게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편 10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3절에서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우리의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심지어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그 순간에 조차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의 긍휼이 크게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 근거는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심판하실까봐 두려워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김이 아닙니다만약 하나님께서 그러한 섬김을 원하셨다면 이미 이 세상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굴복되었을 것입니다죄를 생각하는 그 순간에 벼락이 치고범죄하는 순간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신의 사랑과 긍휼을 먼저 보여주시고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오는 섬김을 참된 섬김으로 받으십니다오늘 우리가 갚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나의 더럽고 수치스러운 모든 죄들보다 훨씬 더 적게 갚으시고 다루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떠올리기 원합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긍휼로 가득하여 그것을 동기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보다 적게 갚으시는 분이시며또한 우리의 섬긴 것보다 훨씬 넘치게 갚으시는 분이십니다주님은 열 달란트를 번 종에게 열 도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주님은 평생 섬겨도 길어봐야 70년을 섬길 수 있는 우리의 짧은 인생을 가지고 영원한 통치로 계산하여 보상하는 분이십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되우리의 죄에 대하여는 하늘보다 높은 긍휼로 인하여 적게 갚으시고우리가 순종한 아주 미약하고 작은 일에 대하여는 넘치고 감당할 수 없는 영광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고난을 받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23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또한 고린도전서 4장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11 바로 현재 이 시각까지도 우리가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일정한 거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참으며

13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니 우리가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이러한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영원하니라.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그렇다면 영광은 어떠합니까?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갚으십니까?가벼운 고난에 무거운 영광입니다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의 영광을 보고 온 사도 바울이 고백할 때에죽도록 고생하고 세상의 오물같고 모든 것의 찌꺼기 같은 자신의 삶이 가벼운 고난이라고 했다면천국의 영광은 얼마나 놀랍고 뛰어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우리는 치열하게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누리면서 살고자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우리의 수고와 인내와 환난과 궁핍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고 아시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니라넘치는 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주님께서 보상하실 그날에 우리는 영문을 몰라 주님을 다시 쳐다볼 것입니다. “주님다른 사람 주실 거저한테 잘못 주신 거 같은데요저는 이렇게 많이 받을 만큼 주님을 섬기지 못했는데요.” 내가 왜 더 마음을 다해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지 못했을까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아직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긍휼입니다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2장 26절을 다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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