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24.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삼손이 만난 하나님(삿 13:5)

본문 : 사사기 13장 5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3장입니다. 사사기 13장 5절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저는 “삼손이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삼손은

우리는 이번 주 주일설교 시간에 "자기 눈에 옳게 보이는 길로 가지 말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고, 특별히 사사기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아갔던 시대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사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암울한 책 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전체적으로 타락하였는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또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바로잡으라고 재판관으로서 세우신 믿음의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함부로 걸어간 기록들을 보게됩니다. 이 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삼손"을 뽑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아니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 그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입니다. 많은 재판관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시점부터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그의 부모님이 그를 낳게 되었는지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재판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되지 않고 다만 몇 년 동안을 재판하였는지만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죽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손은 총 21장으로 구성된 사사기 가운데 무려 4장을 차지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재판관들은 다만 한 두 구절의 언급밖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 삼손이라는 인물을 조명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삼손을 통하여 참으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의 눈에 좋은 대로 살아간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삼손이 만난 하나님"인데, 만약 누군가가 삼손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삼손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긴 있나요?" 매우 애매한 것 같지만, 성경의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3장에서는 삼손을 분명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자신이 살았을 때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수보다 그가 죽으면서 죽인 원수들의 수가 더 많다는 기록을 읽을 때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처럼 삼손은 분명 뭔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삼손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삼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만큼 하나님을 더 참되게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삼손의 탄생

먼저 삼손의 탄생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삼손의 탄생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 앞에서 범죄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십 년 동안 압제를 받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 마노아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셨고 우리가 읽은 사사기 13장 5절의 말씀과 같이 그 아이가 어떠한 사람이 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모태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삼손으로 보자면 모태신앙 중의 모태신앙 아니겠습니까? 삼손은 단순히 모태에서 신앙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사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손의 탄생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우연히 저절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과 계획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삼손의 탄생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된 것같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 모두를 향해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실 때에는 선한 행위를 위하여, 곧 홀로 선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하도록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입니다.

삼손의 아버지였던 마노아라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처음에 주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만 나타나서 삼손이 태어날 것과 그가 나사르 사람으로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을 때, 마노아는 하나님께서 그 천사가 다시 한번 더 나타나서 자기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확실히 듣기 원하는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주의 천사가 하나님인지 모른채 잘못된 대상에게 경배하려 하였지만 이 시대의 영적 수준이 낮은 것을 감안해서 본다면 이 마노아라는 사람은 너무나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마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잘 주의하여 삼손을 양육하였을 것입니다.

** 나사르 사람

이제 잠시 나사르 사람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마 "나실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사르 사람에 대한 명령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민수기 6장을 보시겠습니다. 민수기 6장 1절에서 8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자기를 구별하여 나사르 사람의 서원을 하고 자기를 구별하여 주께 드리거든

3 그는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포도즙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

4 그는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지 말며

5 자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서원하는 모든 날 동안 자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할 것이요, 자기 머리털을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에는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 것이요,

7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들로 인하여 자기를 부정한 자로 만들지 말지니 이는 그의 하나님의 거룩히 구분하심이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라.

8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주께 거룩한 자니라.

이 여덟 구절에서 나타난 나사르 사람의 특징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사르 사람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머리털을 자르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어떤 시체에도, 심지어 자기 가족들의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포도, 두 번째 머리털, 세 번째 시체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또 특징을 찾는다면 이 나사르 사람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번 구분했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5절에 나온 것처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의 기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8장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에 관한 율법과 삼손을 비교해 보면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그 기간을 정했던 반면, 삼손은 날 때부터, 아니 이미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사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 것과 같습니다. 다른 나사르 사람들은 큰 결심을 하고 자신을 구별했다면, 삼손을 날 때부터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러한 삼손의 인생이 너무나 불행하고 불쌍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다 계획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선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삼손에게 가장 좋고 선하며 삼손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 블레셋을 칠 기회

이제 사사기 14장에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가 된 삼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삼손이 딤낫에 내려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았사온즉 이제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와 아내로 주소서, 하니

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을 딸들 중에나 혹은 내 온 백성 중에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여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 여자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4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주님을 위하여 구별되어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할 원조 나사르인, 모태 나사르인인 삼손은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4절은 매우 주목할 만한데, 어찌보면 오해하기가 매우 쉬운 성경구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삼손의 이러한 행동이 주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억지로 블레셋 사람과 결혼하도록 시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고 또한 삼손을 통하여 그렇게 하기로 예비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삼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삼손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안중에 없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도 안중에 없고, 원수 블레셋에 대항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나를 위하여" 살아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러한 삼손을 이용하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29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일으켜 블레셋을 치기로 계획하셨으나, 삼손은 자기를 위하여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주관하셔서 삼손이 블레셋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하나님께 드려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고집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그분의 예비하신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협조적인 삼손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삼손 자신에게는 어떠한 기쁨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포도원으로 간 삼손

이제 14장 5절,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 그때에 삼손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딤낫에 내려가 딤낫의 포도원에 이른즉, 보라, 젋은 사자가 그를 향하여 소리 지르더니

6 주의 영께서 그에게 강하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처럼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설득했다기 보다는 억지를 부려서 부모님을 이겼을 것입니다. 삼손은 부모님을 모시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그 여인이 있는 딤낫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혼자서 딤낫의 포도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나사르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 세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포도나무에서 난 어떤 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사사기에서는 삼손이 왜 딤낫의 포도원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젊은 사자가 나타난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이 아직 어렸을 때에는 독실한 부모님의 주관 하에 포도를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님을 이기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된 이 삼손은 어쩌면 이제는 또한 자기를 위하여 포도를 먹기 위해 포도원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경고로서 젊은 사자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 것은 삼손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손이 잘못 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삼손이 나사르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구별된 자임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포도열매를 먹으려고 시도한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삼손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새끼 염소를 찢듯이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삼손이 얼마나 멋있는 근육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근육과 상관없이 주의 영으로 그에게 임하셔서 큰 힘을 발휘하게 해주셨습니다. 삼손은 이때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태에서부터 주님을 위하여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 삼손은 여전히 나를 위하여 자기에게 옳게 보이는 길, 자기 스스로 행복하게 보이는 길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 시체와 꿀

이제 8절과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8 얼마 뒤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되돌아 가다가 돌이켜서 그 사자의 사체를 본즉, 보라, 사자의 사체에 벌떼와 꿀이 있으므로

9 그가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가면서 먹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주어 그들이 먹게 하였으나 자기가 그 꿀을 사자의 사체에서 취하였다고 그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나사르 사람의 금지사항 또 한 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죽은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의 시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까이 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으라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에게 경고로 주어졌던 그 사자를 보면서도, 오히려 담대하게 사자의 시체로 다가가서 꿀을 가지고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몰래 먹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부모님에게도 줄만큼 이 삼손은 아주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는 제멋대로의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이 일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포도원에 갔던 일이나, 사자의 시체를 만진 일에 대해서 오히려 수수께끼로 장난을 칠 만큼 삼손은 아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삼손은 신혼부부가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서 친구들 서른 명을 불러서 일주일 간 잔치를 벌였습니다. 삼손은 그의 친구들에게 얇은 옷과 겉옷 서른 벌씩을 내기로 걸고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14절에 보시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함부로 행한 일들에 대해서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자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의 아내는 삼손 앞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기쁘게 잔치를 해야할 때 계속해서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너무나 괴로웠던 삼손은 아내에게 답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기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18절에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그 도시의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하므로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을 갈지 아니하였다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화가 난 삼손은 다른 동네로 가서 서른 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그 옷을 빼앗아다가 친구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을 치는 삼손에게 임하여 힘을 더해주셨고, 블레셋 사람들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집불통인 삼손을 어떻게든 인도하셔서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이끌고 계시지만 삼손의 관점은 여전히 자기를 위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지만 결코 삼손 자신에게는 아무런 행복도 유익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잔치에서 삼손은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자신이 범죄한 것을 가지고 수수께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아내는 잔치하는 내내 그의 앞에서 울었고, 삼손은 괴로웠습니다. 친구들이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즐거워할 작정이었던 삼손의 기대는 깨어지고 말았고 화가 난 삼손은 원래 살던 자기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손이 자기 딸을 버렸다고 생각한 삼손의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지만, 삼손은 여전히 스스로 옳게 보이는 길,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로 고집스럽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 라맛레히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서 삼손은 다시 아내를 만나려고 딤낫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장인은 아내의 동생과 결혼하라고 말하며 삼손을 달래었습니다. 삼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삼손은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을 다 태워버렸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그 원인을 제공한 장인어른과 삼손의 아내를 불태워 죽이게 됩니다. 삼손은 또 그 일로 인해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잡히는 대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유다로 내려가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하기 위하여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 나사르 사람 삼손을 한번 보십시오. 그의 인생을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너무나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로 내려간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 올라왔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삼손을 밧줄로 묶은 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때 주의 영이 임하시고 삼손은 자신을 결박한 밧줄을 불탄 실과 같이 툭툭 끊어냅니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셨던 대로 삼손을 통하여 자신의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시지만, 삼손은 너무나 비참한 가운데 자신의 분노를 내뿜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된 이 삼손, 너무나 행복할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은 그의 고집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가엾게 망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삼손은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삼손의 입에서 주님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다같이 15장 18절과 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주를 부르며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에 이 큰 구출을 주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손에 떨어져야 하리이까? 하니라.

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므로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으니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더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삼손은 너무나 못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거 맘대로 다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 내가 너 진짜 멋있게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그냥 여기서 죽어라."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에게 물을 주셨고 삼손의 생명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큰 인내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 더 많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 삼손의 죽음

이제 정신을 좀 차릴 줄 알았던 삼손은 아직도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6장 4절에 보시면 "그 뒤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해야할 나사르 사람이 계속해서 잘못된 대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첫 번째로 사랑해야할 삼손은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영주들은 이 들릴라를 매수하여서 어떻게 하면 삼손의 큰 힘을 제거하고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알아내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6절에 보시면 들릴라가 이렇게 묻습니다. "원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고하고 또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 아예 대놓고 삼손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이 삼손의 마음은 너무나 어둡고 어리석기만 합니다.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너무나 즐겁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어리석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사인을 주시는데도, 우리는 어리석게 자기 뜻을 고집하며 걸어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삼손은 거짓말로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말린 적이 없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 일곱 개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줄로 나를 단단히 결박하면 된다.", "짜서 만든 천으로 내 머리털 일곱 타래를 엮으면 된다." 삼손은 계속해서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잘못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삼손의 눈은 완전히 가려졌으며 계속해서 어리석은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1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같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자기의 말들로 그를 짓누르매 삼손의 혼이 괴롭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더라.

17 이에 삼손이 자기의 온 마음을 털어놓고 그녀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만일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매

삼손의 힘은 삼손이 말한 것처럼 머리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삼손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바로 하나님께서 삼손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손은 자기의 온 마음을 이방 여인에게 주어버렸고,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머리털을 잃었고, 주님의 임재를 잃었고, 눈을 잃었고 원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21절에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그를 가자로 데리고 내려가 놋 족쇄로 결박하니 그가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리니라."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할 수 있었던 삼손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기를 배신하였고 이제 삼손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삼손은 이때서야 참으로 하나님께 돌이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그러나 나는 참되게 나 스스로를 하나님께 바쳐본 적이 없었노라. 하나님은 나에게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하셨으나 나는 블레셋 여인들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도다."

그러나 자신의 선물들과 부르심에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삼손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참을 만큼 참았다. 너도 인정하지? 넌 정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쓰레기같은 존재야!" 우리가 하나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나사르 사람이 해야하는 세 가지를 전부 어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격이 없는 우리들도 여전히 사랑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삼손을 붙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큰 축제 열었습니다. 자신들의 신 다곤이 자신들의 원수인 삼손을 드디어 넘겨주셨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그들 가운데 끌고 나와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2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삼손을 세우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내가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더듬어 찾아서 그것들에게 기대도록 허락하라, 하니라.

27 이제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며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영주들도 거기 있고 지붕에도 삼천 명가량의 남녀가 있더니 그들이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그 집을 지탱하며 받쳐 주는 두 개의 중간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30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며 힘을 다하며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던 영주들과 온 백성을 덮으니 이처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많았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삼손의 생애에 있어서 아마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기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손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 정리

우리는 오늘 이번 주일설교의 흐름과 맞추어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길로 걸어간 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해 지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는 것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향한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삼손은 고집스럽게 자기 뜻대로 걸어갔고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삼손이 만약 스스로 행복하려는 길 말고,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 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에 원하시는 길을 찾고 걸어갔다면 그의 인생은 사사기에 나오는 어떠한 재판관보다도 영광스럽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우리의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참되게 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물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일을 시킬 것 같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선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좋은 분인지 알려주시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주님 나에게 주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더 많이 보여주셔서 내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은 참되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뜻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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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0.11.14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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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삿 7:2,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7장입니다사사기 7장 2절과 7절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으므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족속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이 나를 대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며 말하기를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염려하노라.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내가 물을 핥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족속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다른 백성은 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시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여러분 혹시 지난 주일오전설교말씀을 기억하십니까지난 주 오전에 저희가 기드온에 대해서 들었는데요기드온이 주님과 교제를 하고 또 순종한 결과로 그 자신이개인이 부흥이 되고그의 가정이 부흥이 되고또 더 나아가서는 온 이스라엘에 큰 회복의 역사가 있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오늘 저는 지난 주일오전에 들었던 기드온의 이야기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고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 익히 잘 아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오늘 저와 함께 다시 이 말씀을 살펴보시면서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을 조금 현대적으로 바꿔본다면주님께서 일하시는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주님의 스타일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내 스타일이 아니라하나님의 스타일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쳐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 날이 안식일이든그냥 평일이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늘 말씀을 선포하시고 또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바리새인들은 왜 안식일에 자꾸 노동을 하고사람들을 고쳐주느냐고 논쟁을 걸어오고또 그 일로 인해서 예수님을 위협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그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요한복음 5장 17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성실하신 분이 누구실까요바로 우리의 주님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또한 우리가 성경을 보면 정말 우리의 주님께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 분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주님께서 어떠한 약속을 주시면서 만군의 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리라”(사 9:7)라고 하신 곳도 종종 볼 수 있구요또 우리 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주의 집에 대한 열심이 나를 삼켰나이다”(요 2:17)라고 기록한 말씀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열심히끊임없이부지런히 일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가 있는데요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신데과연 어떠한 방식으로어떠한 스타일로 일하시는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사람과 함께 일하신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 한 번 살펴보기 위하여 성경구절을 몇 구절 보시겠습니다지금 사사기 말씀에 볼펜이나 끈으로 끼워두시고다함께 고린도전서 3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고린도전서 3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하나님의 건물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께서 일하시는 한 가지 방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분인데결코 혼자 일하지 않으시고누군가와 함께 일하십니다다시 말하면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또한 몇 장 뒤로 넘기셔서 빌립보서 2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2장 13절입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뜻을 사람에게도 원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또 하나님께서 일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우리가 일하도록 이끄시는 분인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몇 장 뒤로 넘기셔서 골로새서 1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골로새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이 일을 위해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 이 구절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으로서 수고했던 사도 바울이 고백한 간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하나님께서 바울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셔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을 따라서 싸우며 수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또한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시기 위하여 자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사람에게 원하는 마음도 주시고또 행하게도 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면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따라 싸우며 수고하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생각해 볼 필요성

우리는 지금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는데요먼저우리는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구요또한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요그냥 아무하고나 함께 일하실까요?

 

오늘날 세상에는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또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정말 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일까요우리도 많은 경우 나는 지금 주님의 일을 섬기고 있어.”,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데요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정말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을까요다함께 마태복음 7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7장 22절과 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23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너희는 내게서 떠나라하리라.

 

우리 주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든 사람을 다 아시는 분이신데여기서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은그들이 주의 이름으로 행한 많은 일들이 주님과는 상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대언도 하고마귀들도 내쫓고많은 놀라운 일들을 행하지만 그 모든 일들이 주님과는 상관이 없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이 사람들은 모두 정말 자신이 주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오히려 우리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 보고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또한 우리가 늘 깨어서 정말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섬기고 있는지를 늘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주님과의 교제순종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요우리가 오늘 기드온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는데요지난 주 말씀에서도 들었듯이하나님께서는 주님 자신과 교제하는 사람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기드온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서기드온과 함께 일하실 수 있었습니다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된다면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다면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자신의 일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는데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뜻인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고 하는데,자신의 유익과 인기를 위한 일일 때도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고 하면서자기 스타일과 자기주장대로 길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요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지 않고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과 같이 기드온을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함께 하고자 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부족한 사람들

이제 우리가 다시 사사기 7장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하나님께서 오늘 기드온과 또 삼백 명의 용사를 직접 선택하셔서 함께 일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한번 사사기 7장의 말씀을 살펴보시겠습니다. 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너와 함께한 백성이 너무 많으므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족속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이 나를 대적하고 자기를 치켜세우며 말하기를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할까 염려하노라.

지금 여기서 기드온과 함께한 이스라엘 군사의 수는 모두 3만 2천명이었습니다그리고 3만 2천명이 대항해서 싸워야 하는 미디안 족속의 수는 12절에 나온 것처럼메뚜기같이 많고해변의 모래같이 수없이 많았습니다우리가 3만 2천명이라는 이스라엘의 수와 해변의 모래같이 수없이 많았다는 미디안의 수를 잠시만 떠올려 봐도 해변의 모래가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이 전쟁은 이길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왜냐하면 이 전쟁을 이기고 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내가 해냈다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결코 잘 갖추어진 자신 만만한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왜냐하면 그 일을 잘하고 나서 내가 해냈다라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니까 이런 걸 순종하지.”, “나니까 이런 일도 섬기지.”, “우리 정도 되니깐 이런 일이 가능하지.” 이렇게 자기를 치켜세우면서 하나님을 대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요하나님께서는 결코 지혜가 너무 많고능력이 너무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실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모든 일들을 온전히 잘 섬기고 나서, “주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주님은 부족한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자원하는 사람들

또한 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가서 백성의 귀에 선포하여 말하기를누구든지 두렵고 무서운 자는 길르앗 산에서 일찍 떠나 돌아가라하라하시니 백성 중에서 돌아간 자가 이만 이천 명이요남은 자가 만 명이더라.

이제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선택하기 시작하십니다먼저 기드온을 그들의 리더로지도자로 세우셨구요이제 3만 2천명 중에서 그들이 전쟁을 이기고 나서도 우리가 해냈다.”가 아니라 주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도록 그들의 숫자를 약화시키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일을 맡기시기 전에 우리를 약화시키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지 않고서는 우리와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우리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할 때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계속 치시고 무너뜨리셔서 우리 자신이 정말 어리석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십니다우리가 스스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때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지런히 다듬으셔서 우리가 정말 약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십니다이렇게 우리가 약해지고 약해져서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능력이며 소망이라고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고백하고 인정하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님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에서 누구든지 두렵고 무서운 자를 돌려보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말하자면전쟁에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다 돌아가라고 한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결코 억지로 일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주님께 자신의 시간과 힘과 물질을 드리고자 하는 자와 함께 일하십니다하나님은 뭔가 부족하셔서 부디 나와 함께 일해다오.”하면서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일을 시키시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자원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자원함이 부족할 수도 있고적을 수도 있지만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원하는 만큼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주님께 나아오고주님께 드리고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억지로 힘겹게 많이 섬기고 나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보다자원함과 기쁨으로 조금이라도 섬기고 나서 감사하는 것이 훨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앞에서 살펴본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처럼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일하시면서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가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우리가 조금씩 주님을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우리의 주님을 향한 자원하는 마음도 더 커지고깊어질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깨어있는 사람들

이제 3만 2천명에서 2만 2천명이 돌아가고이제 딱 만 명이 남았습니다지금 남은 만 명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싸우러갈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아직도 백성이 많으니 더 줄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4절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아직도 백성이 많으니 그들을 데리고 물로 내려가라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내가 누구를 가리키며 네게 말하기를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못하리라하면 그는 가지 못할 것이니라하시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을 선택하시기 위하여 한 시험문제를 주십니다. 5절과 6절도 읽어보겠습니다.

이에 그가 백성을 데리고 물로 내려가매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너는 개가 핥는 것 같이 자기 혀로 물을 핥는 모든 자를 따로 세우고 또 무릎을 꿇고 마시는 모든 자도 그와 같이 하라하시더라.

손을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나머지 모든 백성을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은 칼싸움 대결이나 달리기 시합이 아니었습니다또는 팔씨름이나 레슬링도 아니었습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은 바로 물을 마시는 시험이었습니다물 마시는게 전쟁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엉뚱하게 물 마시는 것으로 시험을 하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어쨌든지 이 시험을 통해서 300명과 9700명이 구분이 지어졌습니다그렇다면 이 300명과 9700명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전에 어떤 제품의 광고 문구 중에 이런 유명한 문구가 있었는데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 이런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명품과 일반 제품의 차이는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다매우 맞는 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여기에 물을 마시러 온 만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이제 전쟁을 하려고 모인 만 명의 군인들을 떠올려 보십시오집 떠나면 고생이라고벌써 몇날며칠을 무거운 무기와 짐을 들고 행군하면서 지치고 힘든 이스라엘 군사들입니다.밤에는 잠자리도 불편하고 산에 모기들도 많았겠죠또 언제 전투가 시작될지 모르기 때문에 늘 긴장했을 것입니다뜨거운 태양 아래 산과 골짜기를 오가면서 배도 고프고 갈증도 많이 났을 것이구요이제 기드온이 군사들을 이끌고 물이 있는 곳으로 내려와서 물을 마시라고 합니다약수터처럼 바가지도 없고개인 물통이나 컵도 없는 상황입니다.

 

매우 갈증이 심했던 군사들은 신나서 물을 마시기 시작합니다그런데 여기서 보시면 9700명의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 자세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물은 땅보다 낮은 곳에 있습니다이제 군사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었습니다이제 양손은 앞으로 엎어지지 않도록 물가에 받쳤을 것이고요얼굴은 땅보다 더 낮은 물에 입을 대기 위해 쑥 낮아졌을 것입니다엉덩이는 다소 올라가고 얼굴은 내려가서 물가에 입을 댄 이런 자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300명은 손에 입을 대고 개가 핥는 것 같이 자기 혀로 물을 핥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말하자면무릎을 꿇지 않고얼굴을 물가로 내리지 않고손만 물에 담갔다가손으로 물을 퍼서 입에 가져오는 방식으로 물을 마신 것입니다.

혹시 제가 이렇게 설명한 것을 들으시고 나서도 물 마시는 모습이 잘 와 닿지 않으시는 분들은 제가 뒤에 게시판에 붙여놓은 그림을 한 번 보시면 참조가 되실 것입니다.

 

여기서 과연 하나님께서는 보신 것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뽑으실 때 전투 경험이나얼마나 칼을 잘 다루는지얼마나 잘 싸우는지를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신 것은 그들이 얼마나 깨어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던 사람들은 온 마음이 자신의 갈증과 물에 가 있었습니다그들의 무릎은 갈증 앞에 꿇려 있었고그들의 시선은 물에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먹은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습니다얼굴을 물가에 박고 물을 마신 사람들은 빨리 물을 많이 마셨겠지만손으로 물을 떠서 핥은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마시지는 못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았던 300명의 용사들은 자신들이 전쟁 가운데 있으며언제든지 적들이 습격할 수 있고특별히 긴장이 풀어진 물가에서 더 그럴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깨어있는 300명의 용사들을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들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7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내가 물을 핥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족속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다른 백성은 다 각각 자기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시니라.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실까일상생활의 중요성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우리의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또한 하나님은 사람과 함께 일하는 분이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능력이 많고 지혜가 많아서 하나님 없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결코 일을 맡기시지 않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약하고 부족해서 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우리가 너무 강하며 약화시키시고 우리를 낮추셔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택하실 때 마치 칼싸움 실력을 보지 않으신 것처럼사람의 지식이나 기능을 보지 않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선택하실 때 마치 물 마시는 모습을 보신 것처럼어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모습을 보십니다.

우리가 갈증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십니다우리의 삶에서 갈증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건강 문제돈 문제직장 문제사람들과의 관계 문제진로 문제 등등 여러 가지 갈증의 모습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그럴 때 우리는 무릎을 꿇고 갈증을 해갈하기 위해 온 시선과 자세를 집중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깨어있다면 갈증을 해결하면서도 우리의 정체가 무엇인지우리가 진정 가야할 길은 무엇인지내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어 일하신다.

마지막으로 20절부터 2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 세 무리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등불을오른손에 나팔을 들고 불면서 외치되의 칼이라기드온의 칼이라하고는

21 각 사람이 진영의 사방에서 자기 자리에 서매 그 온 군대가 달려가고 부르짖으며 도망하더라.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께서 그 온 군대에서 두루 각 사람의 칼이 그의 동료를 치게 하시므로 군대가 도망하여 스레랏의 벧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과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제 우리는 삼백 명의 용사가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하였는지 보게 됩니다삼백 명의 이스라엘 군사와 해변의 모래같이 수없이 많은 미디안 군사가 전쟁을 합니다이스라엘의 무기는 나팔과 항아리와 등불과 외침이었고단순히 자기 자리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도 안 되는 무식한 방법으로 전쟁에 임하였던 것입니다.그랬더니 그 결과는 대 승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상식 수준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이루시고, “주께서 하셨다라는 찬양과 감사의 기쁨을 주시기 원하십니다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단순히 주님께 순종하였을 뿐입니다자신의 판단이나자신의 주장이나자신의 지혜를 전혀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정리

하나님은 만군의 주의 열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너무 강하고 지혜로울 때에는 우리를 다듬으시고 약화시키시고 겸손하게 낮추셔서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갈증을 해결하는 일에만 빠지지 않고늘 우리의 사명을 깨어서 기억하며 수행하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순종할 때에 사람의 모든 판단과 가능성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삼백 명의 용사가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전쟁한 것처럼우리 교회 모두가 사랑함으로 하나 되어 똘똘 뭉치기를 원하십니다우리 교회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아름답게 주님을 따르게 될 때에 주님께서 사람의 상식을 거뜬히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을 우리 안에 주시리라 믿습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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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시 : 2007.01.24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로빈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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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만난 하나님(사사기 13:5) 

5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3장입니다. 사사기 13장 5절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삼손이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삼손은
우리는 이번 주 주일설교 시간에 "자기 눈에 옳게 보이는 길로 가지 말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고, 특별히 사사기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아갔던 시대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사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암울한 책 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전체적으로 타락하였는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또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바로잡으라고 재판관으로서 세우신 믿음의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함부로 걸어간 기록들을 보게됩니다. 이 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삼손"을 뽑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아니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 그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입니다. 많은 재판관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시점부터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그의 부모님이 그를 낳게 되었는지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재판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되지 않고 다만 몇 년 동안을 재판하였는지만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죽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손은 총 21장으로 구성된 사사기 가운데 무려 4장을 차지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재판관들은 다만 한 두 구절의 언급밖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 삼손이라는 인물을 조명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삼손을 통하여 참으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의 눈에 좋은 대로 살아간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삼손이 만난 하나님"인데, 만약 누군가가 삼손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삼손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긴 있나요?" 매우 애매한 것 같지만, 성경의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3장에서는 삼손을 분명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자신이 살았을 때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수보다 그가 죽으면서 죽인 원수들의 수가 더 많다는 기록을 읽을 때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처럼 삼손은 분명 뭔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삼손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삼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만큼 하나님을 더 참되게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삼손의 탄생
먼저 삼손의 탄생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삼손의 탄생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 앞에서 범죄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십 년 동안 압제를 받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 마노아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셨고 우리가 읽은 사사기 13장 5절의 말씀과 같이 그 아이가 어떠한 사람이 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모태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삼손으로 보자면 모태신앙 중의 모태신앙 아니겠습니까? 삼손은 단순히 모태에서 신앙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사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손의 탄생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우연히 저절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과 계획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삼손의 탄생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된 것같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 모두를 향해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실 때에는 선한 행위를 위하여, 곧 홀로 선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하도록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입니다. 

삼손의 아버지였던 마노아라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처음에 주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만 나타나서 삼손이 태어날 것과 그가 나사르 사람으로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을 때, 마노아는 하나님께서 그 천사가 다시 한번 더 나타나서 자기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확실히 듣기 원하는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주의 천사가 하나님인지 모른채 잘못된 대상에게 경배하려 하였지만 이 시대의 영적 수준이 낮은 것을 감안해서 본다면 이 마노아라는 사람은 너무나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마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잘 주의하여 삼손을 양육하였을 것입니다. 

나사르 사람
이제 잠시 나사르 사람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마 "나실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사르 사람에 대한 명령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민수기 6장을 보시겠습니다. 민수기 6장 1절에서 8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자기를 구별하여 나사르 사람의 서원을 하고 자기를 구별하여 주께 드리거든 
3 그는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포도즙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
4 그는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지 말며
5 자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서원하는 모든 날 동안 자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할 것이요, 자기 머리털을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에는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 것이요,
7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들로 인하여 자기를 부정한 자로 만들지 말지니 이는 그의 하나님의 거룩히 구분하심이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라.
8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주께 거룩한 자니라.

이 여덟 구절에서 나타난 나사르 사람의 특징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사르 사람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머리털을 자르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어떤 시체에도, 심지어 자기 가족들의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포도, 두 번째 머리털, 세 번째 시체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또 특징을 찾는다면 이 나사르 사람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번 구분했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5절에 나온 것처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의 기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8장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에 관한 율법과 삼손을 비교해 보면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그 기간을 정했던 반면, 삼손은 날 때부터, 아니 이미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사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 것과 같습니다. 다른 나사르 사람들은 큰 결심을 하고 자신을 구별했다면, 삼손을 날 때부터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러한 삼손의 인생이 너무나 불행하고 불쌍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다 계획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선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삼손에게 가장 좋고 선하며 삼손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블레셋을 칠 기회
이제 사사기 14장에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가 된 삼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삼손이 딤낫에 내려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았사온즉 이제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와 아내로 주소서, 하니
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을 딸들 중에나 혹은 내 온 백성 중에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여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 여자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4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주님을 위하여 구별되어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할 원조 나사르인, 모태 나사르인인 삼손은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4절은 매우 주목할 만한데, 어찌보면 오해하기가 매우 쉬운 성경구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삼손의 이러한 행동이 주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억지로 블레셋 사람과 결혼하도록 시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고 또한 삼손을 통하여 그렇게 하기로 예비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삼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삼손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안중에 없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도 안중에 없고, 원수 블레셋에 대항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나를 위하여" 살아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러한 삼손을 이용하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29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일으켜 블레셋을 치기로 계획하셨으나, 삼손은 자기를 위하여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주관하셔서 삼손이 블레셋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하나님께 드려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고집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그분의 예비하신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협조적인 삼손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삼손 자신에게는 어떠한 기쁨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포도원으로 간 삼손
이제 14장 5절,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 그때에 삼손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딤낫에 내려가 딤낫의 포도원에 이른즉, 보라, 젋은 사자가 그를 향하여 소리 지르더니
6 주의 영께서 그에게 강하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처럼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설득했다기 보다는 억지를 부려서 부모님을 이겼을 것입니다. 삼손은 부모님을 모시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그 여인이 있는 딤낫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혼자서 딤낫의 포도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나사르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 세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포도나무에서 난 어떤 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사사기에서는 삼손이 왜 딤낫의 포도원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젊은 사자가 나타난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이 아직 어렸을 때에는 독실한 부모님의 주관 하에 포도를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님을 이기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된 이 삼손은 어쩌면 이제는 또한 자기를 위하여 포도를 먹기 위해 포도원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경고로서 젊은 사자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 것은 삼손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손이 잘못 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삼손이 나사르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구별된 자임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포도열매를 먹으려고 시도한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삼손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새끼 염소를 찢듯이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삼손이 얼마나 멋있는 근육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근육과 상관없이 주의 영으로 그에게 임하셔서 큰 힘을 발휘하게 해주셨습니다. 삼손은 이때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태에서부터 주님을 위하여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 삼손은 여전히 나를 위하여 자기에게 옳게 보이는 길, 자기 스스로 행복하게 보이는 길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체와 꿀
이제 8절과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8 얼마 뒤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되돌아 가다가 돌이켜서 그 사자의 사체를 본즉, 보라, 사자의 사체에 벌떼와 꿀이 있으므로
9 그가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가면서 먹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주어 그들이 먹게 하였으나 자기가 그 꿀을 사자의 사체에서 취하였다고 그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나사르 사람의 금지사항 또 한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죽은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의 시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까이 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으라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에게 경고로 주어졌던 그 사자를 보면서도, 오히려 담대하게 사자의 시체로 다가가서 꿀을 가지고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몰래 먹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부모님에게도 줄만큼 이 삼손은 아주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는 제멋대로의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이 일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포도원에 갔던 일이나, 사자의 시체를 만진 일에 대해서 오히려 수수께끼로 장난을 칠 만큼 삼손은 아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삼손은 신혼부부가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서 친구들 서른 명을 불러서 일주일 간 잔치를 벌였습니다. 삼손은 그의 친구들에게 얇은 옷과 겉옷 서른 벌씩을 내기로 걸고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14절에 보시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함부로 행한 일들에 대해서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자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의 아내는 삼손 앞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기쁘게 잔치를 해야할 때 계속해서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너무나 괴로웠던 삼손은 아내에게 답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기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18절에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그 도시의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하므로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을 갈지 아니하였다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화가 난 삼손은 다른 동네로 가서 서른 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그 옷을 빼앗아다가 친구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을 치는 삼손에게 임하여 힘을 더해주셨고, 블레셋 사람들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집불통인 삼손을 어떻게든 인도하셔서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이끌고 계시지만 삼손의 관점은 여전히 자기를 위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지만 결코 삼손 자신에게는 아무런 행복도 유익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잔치에서 삼손은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자신이 범죄한 것을 가지고 수수께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아내는 잔치하는 내내 그의 앞에서 울었고, 삼손은 괴로웠습니다. 친구들이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즐거워할 작정이었던 삼손의 기대는 깨어지고 말았고 화가 난 삼손은 원래 살던 자기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손이 자기 딸을 버렸다고 생각한 삼손의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지만, 삼손은 여전히 스스로 옳게 보이는 길,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로 고집스럽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라맛레히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서 삼손은 다시 아내를 만나려고 딤낫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장인은 아내의 동생과 결혼하라고 말하며 삼손을 달래었습니다. 삼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삼손은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을 다 태워버렸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그 원인을 제공한 장인어른과 삼손의 아내를 불태워 죽이게 됩니다. 삼손은 또 그 일로 인해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잡히는 대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유다로 내려가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하기 위하여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 나사르 사람 삼손을 한번 보십시오. 그의 인생을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너무나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로 내려간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 올라왔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삼손을 밧줄로 묶은 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때 주의 영이 임하시고 삼손은 자신을 결박한 밧줄을 불탄 실과 같이 툭툭 끊어냅니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셨던 대로 삼손을 통하여 자신의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시지만, 삼손은 너무나 비참한 가운데 자신의 분노를 내뿜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된 이 삼손, 너무나 행복할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은 그의 고집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가엾게 망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삼손은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삼손의 입에서 주님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다같이 15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주를 부르며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에 이 큰 구출을 주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손에 떨어져야 하리이까? 하니라.
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므로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으니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더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삼손은 너무나 못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거 맘대로 다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 내가 너 진짜 멋있게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그냥 여기서 죽어라."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에게 물을 주셨고 삼손의 생명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큰 인내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 더 많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삼손의 죽음
이제 정신을 좀 차릴 줄 알았던 삼손은 아직도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6장 4절에 보시면 "그 뒤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해야할 나사르 사람이 계속해서 잘못된 대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첫 번째로 사랑해야할 삼손은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영주들은 이 들릴라를 매수하여서 어떻게 하면 삼손의 큰 힘을 제거하고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알아내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6절에 보시면 들릴라가 이렇게 묻습니다. "원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고하고 또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 아예 대놓고 삼손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이 삼손의 마음은 너무나 어둡고 어리석기만 합니다.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너무나 즐겁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어리석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사인을 주시는데도, 우리는 어리석게 자기 뜻을 고집하며 걸어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삼손은 거짓말로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말린 적이 없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 일곱 개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줄로 나를 단단히 결박하면 된다.", "짜서 만든 천으로 내 머리털 일곱 타래를 엮으면 된다." 삼손은 계속해서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잘못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삼손의 눈은 완전히 가려졌으며 계속해서 어리석은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1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같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자기의 말들로 그를 짓누르매 삼손의 혼이 괴롭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더라.
17 이에 삼손이 자기의 온 마음을 털어놓고 그녀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만일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매

삼손의 힘은 삼손이 말한 것처럼 머리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삼손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바로 하나님께서 삼손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손은 자기의 온 마음을 이방 여인에게 주어버렸고,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머리털을 잃었고, 주님의 임재를 잃었고, 눈을 잃었고 원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21절에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그를 가자로 데리고 내려가 놋 족쇄로 결박하니 그가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리니라."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할 수 있었던 삼손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기를 배신하였고 이제 삼손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삼손은 이때서야 참으로 하나님께 돌이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그러나 나는 참되게 나 스스로를 하나님께 바쳐본 적이 없었노라. 하나님은 나에게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하셨으나 나는 블레셋 여인들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도다." 

그러나 자신의 선물들과 부르심에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삼손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참을 만큼 참았다. 너도 인정하지? 넌 정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쓰레기같은 존재야!" 우리가 하나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나사르 사람이 해야하는 세 가지를 전부 어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격이 없는 우리들도 여전히 사랑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삼손을 붙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큰 축제 열었습니다. 자신들의 신 다곤이 자신들의 원수인 삼손을 드디어 넘겨주셨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그들 가운데 끌고 나와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2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삼손을 세우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내가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더듬어 찾아서 그것들에게 기대도록 허락하라, 하니라.
27 이제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며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영주들도 거기 있고 지붕에도 삼천 명가량의 남녀가 있더니 그들이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그 집을 지탱하며 받쳐 주는 두 개의 중간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30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며 힘을 다하며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던 영주들과 온 백성을 덮으니 이처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많았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삼손의 생애에 있어서 아마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기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손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정리
우리는 오늘 이번 주일설교의 흐름과 맞추어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길로 걸어간 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해 지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는 것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향한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삼손은 고집스럽게 자기 뜻대로 걸어갔고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삼손이 만약 스스로 행복하려는 길말고,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에 원하시는 길을 찾고 걸어갔다면 그의 인생은 사사기에 나오는 어떠한 재판관보다도 영광스럽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우리의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참되게 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물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일을 시킬 것 같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선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좋은 분인지 알려주시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주님 나에게 주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더 많이 보여주셔서 내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은 참되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뜻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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