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7.01.24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로빈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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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이 만난 하나님(사사기 13:5) 

5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하시니라.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사기 13장입니다. 사사기 13장 5절 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삼손이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삼손은
우리는 이번 주 주일설교 시간에 "자기 눈에 옳게 보이는 길로 가지 말아야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고, 특별히 사사기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 자기 눈에 옳은 대로 살아갔던 시대였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사사기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암울한 책 중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세대가 얼마나 전체적으로 타락하였는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또 백성들을 바르게 재판하고 바로잡으라고 재판관으로서 세우신 믿음의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함부로 걸어간 기록들을 보게됩니다. 이 재판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삼손"을 뽑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삼손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아니 성경 전체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 가운데 그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기록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입니다. 많은 재판관들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시점부터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그의 부모님이 그를 낳게 되었는지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재판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록되지 않고 다만 몇 년 동안을 재판하였는지만 기록되고 있는 반면, 삼손은 어떻게 죽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삼손은 총 21장으로 구성된 사사기 가운데 무려 4장을 차지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어떤 재판관들은 다만 한 두 구절의 언급밖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이 삼손이라는 인물을 조명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것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는 삼손을 통하여 참으로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자기 스스로의 눈에 좋은 대로 살아간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불행한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제목은 "삼손이 만난 하나님"인데, 만약 누군가가 삼손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삼손이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긴 있나요?" 매우 애매한 것 같지만, 성경의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3장에서는 삼손을 분명하게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삼손이 자신이 살았을 때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수보다 그가 죽으면서 죽인 원수들의 수가 더 많다는 기록을 읽을 때에는, 자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정복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이처럼 삼손은 분명 뭔가 심상치 않은 인물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삼손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 말미암아 삼손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알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 만큼 하나님을 더 참되게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삼손의 탄생
먼저 삼손의 탄생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삼손의 탄생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 앞에서 범죄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사십 년 동안 압제를 받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단 지파 마노아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지 못하던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셨고 우리가 읽은 사사기 13장 5절의 말씀과 같이 그 아이가 어떠한 사람이 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 되리라. 그가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기 시작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모태신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삼손으로 보자면 모태신앙 중의 모태신앙 아니겠습니까? 삼손은 단순히 모태에서 신앙을 가진 정도가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사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삼손의 탄생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과 예비하심 가운데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인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우연히 저절로 존재하지 않고,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목적과 계획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삼손의 탄생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삼손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된 것같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께 속한 나사르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우리 모두를 향해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실 때에는 선한 행위를 위하여, 곧 홀로 선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하도록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입니다. 

삼손의 아버지였던 마노아라는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처음에 주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만 나타나서 삼손이 태어날 것과 그가 나사르 사람으로서 어떤 것들을 주의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을 때, 마노아는 하나님께서 그 천사가 다시 한번 더 나타나서 자기에게 직접 말씀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확실히 듣기 원하는 좋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주의 천사가 하나님인지 모른채 잘못된 대상에게 경배하려 하였지만 이 시대의 영적 수준이 낮은 것을 감안해서 본다면 이 마노아라는 사람은 너무나 훌륭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 마노아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잘 주의하여 삼손을 양육하였을 것입니다. 

나사르 사람
이제 잠시 나사르 사람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마 "나실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나사르 사람에 대한 명령은 이미 모세의 율법에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다같이 민수기 6장을 보시겠습니다. 민수기 6장 1절에서 8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자기를 구별하여 나사르 사람의 서원을 하고 자기를 구별하여 주께 드리거든 
3 그는 포도즙과 독주로부터 자기를 구별하고 포도즙의 식초나 독주의 식초를 마시지 말며 어떤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
4 그는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지 말며
5 자기를 구별하기 위하여 서원하는 모든 날 동안 자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지니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할 것이요, 자기 머리털을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에는 어떤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 것이요,
7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들로 인하여 자기를 부정한 자로 만들지 말지니 이는 그의 하나님의 거룩히 구분하심이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라.
8 자기를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주께 거룩한 자니라.

이 여덟 구절에서 나타난 나사르 사람의 특징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나사르 사람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일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씨에서부터 껍질에 이르기까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머리털을 자르지 말라는 것이고, 세 번째는 어떤 시체에도, 심지어 자기 가족들의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포도, 두 번째 머리털, 세 번째 시체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또 특징을 찾는다면 이 나사르 사람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번 구분했다고 해서 영원히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5절에 나온 것처럼 자신을 구별하여 주께 드리는 날들의 기간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8장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에 관한 율법과 삼손을 비교해 보면 한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나사르 사람은 자기가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그 기간을 정했던 반면, 삼손은 날 때부터, 아니 이미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 구별된 나사르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듭나는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완전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된 것과 같습니다. 다른 나사르 사람들은 큰 결심을 하고 자신을 구별했다면, 삼손을 날 때부터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눈에는 이러한 삼손의 인생이 너무나 불행하고 불쌍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결정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미리 다 계획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 선하시며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삼손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삼손에게 가장 좋고 선하며 삼손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블레셋을 칠 기회
이제 사사기 14장에서는 어느덧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할 때가 된 삼손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삼손이 딤낫에 내려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가 딤낫에서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 가운데 한 여자를 보았사온즉 이제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와 아내로 주소서, 하니
3 그때에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을 딸들 중에나 혹은 내 온 백성 중에 여자가 없어서 네가 가서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에게서 아내를 취하여 하느냐? 하매 삼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르되, 그 여자가 나를 매우 기쁘게 하니 나를 위하여 그녀를 데려오소서, 하였더라.
4 그러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것이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알지 못하였고 또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분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칠 기회를 찾고 있음을 알지 못하였더라. 

주님을 위하여 구별되어서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할 원조 나사르인, 모태 나사르인인 삼손은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4절은 매우 주목할 만한데, 어찌보면 오해하기가 매우 쉬운 성경구절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삼손의 이러한 행동이 주님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삼손에게 억지로 블레셋 사람과 결혼하도록 시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결정하셨고 또한 삼손을 통하여 그렇게 하기로 예비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삼손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블레셋과 전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삼손의 마음에는 하나님도 안중에 없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도 안중에 없고, 원수 블레셋에 대항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나를 위하여" 살아가는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러한 삼손을 이용하여서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29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삼손을 일으켜 블레셋을 치기로 계획하셨으나, 삼손은 자기를 위하여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기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상황을 주관하셔서 삼손이 블레셋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하나님께 드려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의지와 원함을 고집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 나를 그분의 예비하신 길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비협조적인 삼손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삼손 자신에게는 어떠한 기쁨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포도원으로 간 삼손
이제 14장 5절,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5 그때에 삼손이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딤낫에 내려가 딤낫의 포도원에 이른즉, 보라, 젋은 사자가 그를 향하여 소리 지르더니
6 주의 영께서 그에게 강하게 임하시매 그가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염소 새끼를 찢는 것처럼 그 사자를 찢었으나 자기가 행한 일을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고하지 아니하였더라.

삼손은 드디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설득했다기 보다는 억지를 부려서 부모님을 이겼을 것입니다. 삼손은 부모님을 모시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그 여인이 있는 딤낫에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삼손은 혼자서 딤낫의 포도원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나사르 사람이 해서는 안되는 일 세 가지를 살펴보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포도나무에서 난 어떤 것도 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사사기에서는 삼손이 왜 딤낫의 포도원에 이르렀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젊은 사자가 나타난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삼손이 아직 어렸을 때에는 독실한 부모님의 주관 하에 포도를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결혼 문제에 있어서도 부모님을 이기고 자기를 위하여,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된 이 삼손은 어쩌면 이제는 또한 자기를 위하여 포도를 먹기 위해 포도원에 이르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 대한 경고로서 젊은 사자를 보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신 것은 삼손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삼손이 잘못 가고 있음을 경고하고, 삼손이 나사르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구별된 자임을 기억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삼손이 이방여인과 결혼하고 포도열매를 먹으려고 시도한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는 것을 삼손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새끼 염소를 찢듯이 사자를 찢어 죽였습니다. 삼손이 얼마나 멋있는 근육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근육과 상관없이 주의 영으로 그에게 임하셔서 큰 힘을 발휘하게 해주셨습니다. 삼손은 이때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태에서부터 주님을 위하여 구별된 원조 나사르 사람 삼손은 여전히 나를 위하여 자기에게 옳게 보이는 길, 자기 스스로 행복하게 보이는 길로 열심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체와 꿀
이제 8절과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8 얼마 뒤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되돌아 가다가 돌이켜서 그 사자의 사체를 본즉, 보라, 사자의 사체에 벌떼와 꿀이 있으므로
9 그가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가면서 먹고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주어 그들이 먹게 하였으나 자기가 그 꿀을 사자의 사체에서 취하였다고 그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나사르 사람의 금지사항 또 한가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떠한 죽은 시체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지어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나 자매의 시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가까이 하지 말고 하나님께 구별되어 있으라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손은 자신에게 경고로 주어졌던 그 사자를 보면서도, 오히려 담대하게 사자의 시체로 다가가서 꿀을 가지고 나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몰래 먹었던 것이 아니라 자기 부모님에게도 줄만큼 이 삼손은 아주 하나님 앞에 두려움이 없는 제멋대로의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 이 일에 대하여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포도원에 갔던 일이나, 사자의 시체를 만진 일에 대해서 오히려 수수께끼로 장난을 칠 만큼 삼손은 아주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삼손은 신혼부부가 되었고 블레셋 사람들의 풍습에 따라서 친구들 서른 명을 불러서 일주일 간 잔치를 벌였습니다. 삼손은 그의 친구들에게 얇은 옷과 겉옷 서른 벌씩을 내기로 걸고 수수께끼를 냈습니다. 14절에 보시면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지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함부로 행한 일들에 대해서 농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자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답을 알아내지 못하면 집을 불태우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자 삼손의 아내는 삼손 앞에서 울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를 미워할 뿐이요, 사랑하지 아니하는도다." 기쁘게 잔치를 해야할 때 계속해서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너무나 괴로웠던 삼손은 아내에게 답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삼손의 친구들은 수수께기를 맞출 수 있었습니다. 18절에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그 도시의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하므로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을 갈지 아니하였다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화가 난 삼손은 다른 동네로 가서 서른 명의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그 옷을 빼앗아다가 친구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블레셋 사람들을 치는 삼손에게 임하여 힘을 더해주셨고, 블레셋 사람들을 심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집불통인 삼손을 어떻게든 인도하셔서 원래 계획하셨던 대로 이끌고 계시지만 삼손의 관점은 여전히 자기를 위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도 했지만 결코 삼손 자신에게는 아무런 행복도 유익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해야 할 잔치에서 삼손은 기쁨을 더하기 위하여 자신이 범죄한 것을 가지고 수수께끼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아내는 잔치하는 내내 그의 앞에서 울었고, 삼손은 괴로웠습니다. 친구들이 수수께끼를 맞추지 못하는 것을 즐거워할 작정이었던 삼손의 기대는 깨어지고 말았고 화가 난 삼손은 원래 살던 자기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삼손이 자기 딸을 버렸다고 생각한 삼손의 장인은 삼손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분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지만, 삼손은 여전히 스스로 옳게 보이는 길,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로 고집스럽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라맛레히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나서 삼손은 다시 아내를 만나려고 딤낫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장인은 아내의 동생과 결혼하라고 말하며 삼손을 달래었습니다. 삼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삼손은 여우 꼬리에 불을 붙여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밭을 다 태워버렸고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게 그 원인을 제공한 장인어른과 삼손의 아내를 불태워 죽이게 됩니다. 삼손은 또 그 일로 인해서 더욱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잡히는 대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유다로 내려가게 됩니다. 
스스로 행복하기 위하여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살아가고 있는 이 나사르 사람 삼손을 한번 보십시오. 그의 인생을 결코 행복하지 못하고 너무나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다로 내려간 삼손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 올라왔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삼손을 밧줄로 묶은 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이때 주의 영이 임하시고 삼손은 자신을 결박한 밧줄을 불탄 실과 같이 툭툭 끊어냅니다.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가지고 그 자리에서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삼손을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셨던 대로 삼손을 통하여 자신의 일들을 이루어가고 계시지만, 삼손은 너무나 비참한 가운데 자신의 분노를 내뿜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된 이 삼손, 너무나 행복할 수 있었던 그의 인생은 그의 고집으로 말미암아 너무나 가엾게 망쳐지고 있었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삼손은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서야 우리는 처음으로 삼손의 입에서 주님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다같이 15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8 삼손이 심히 목마르므로 주를 부르며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에 이 큰 구출을 주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손에 떨어져야 하리이까? 하니라.
19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턱의 우묵한 곳을 쪼개시니 거기서 물이 나오므로 삼손이 그 물을 마시매 그의 정신이 돌아와 그가 회복되었으므로 그곳의 이름을 엔학고레라 하였으니 그것이 이 날까지 레히에 있더라.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삼손은 너무나 못되지 않았습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거 맘대로 다하더니 이제 와서 자기가 죽게 생겼으니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 내가 너 진짜 멋있게 사용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되겠다. 그냥 여기서 죽어라." 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에게 물을 주셨고 삼손의 생명을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큰 인내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 더 많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삼손의 죽음
이제 정신을 좀 차릴 줄 알았던 삼손은 아직도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6장 4절에 보시면 "그 뒤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해야할 나사르 사람이 계속해서 잘못된 대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첫 번째로 사랑해야할 삼손은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블레셋의 영주들은 이 들릴라를 매수하여서 어떻게 하면 삼손의 큰 힘을 제거하고 그를 죽일 수 있을지 알아내라고 시킵니다. 그리고 6절에 보시면 들릴라가 이렇게 묻습니다. "원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내게 고하고 또 무엇으로 당신을 결박하여 괴롭게 할 수 있는지 내게 말하라." 아예 대놓고 삼손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이 삼손의 마음은 너무나 어둡고 어리석기만 합니다. 자신을 도살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도 너무나 즐겁게 따라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우리의 마음도 이처럼 어리석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사인을 주시는데도, 우리는 어리석게 자기 뜻을 고집하며 걸어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삼손은 거짓말로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말린 적이 없는 푸른 버드나무 가지 일곱 개로 나를 결박하면 된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줄로 나를 단단히 결박하면 된다.", "짜서 만든 천으로 내 머리털 일곱 타래를 엮으면 된다." 삼손은 계속해서 자신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잘못된 것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삼손의 눈은 완전히 가려졌으며 계속해서 어리석은 길로 향하고 있습니다. 
1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이 내게 있지 아니하면서 어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 하느냐? 당신이 이같이 세 번 나를 희롱하고 당신의 큰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말하지 아니하였도다, 하며
16 날마다 자기의 말들로 그를 짓누르매 삼손의 혼이 괴롭게 되어 죽을 지경이 되었더라.
17 이에 삼손이 자기의 온 마음을 털어놓고 그녀에게 이르되, 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나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만일 내 머리를 밀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내가 약하게 되어 다른 사람과 같게 되리라, 하매

삼손의 힘은 삼손이 말한 것처럼 머리털에 있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삼손과 함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바로 하나님께서 삼손의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삼손은 자기의 온 마음을 이방 여인에게 주어버렸고, 스스로 나사르 사람이 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머리털을 잃었고, 주님의 임재를 잃었고, 눈을 잃었고 원수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21절에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그를 가자로 데리고 내려가 놋 족쇄로 결박하니 그가 감옥 집에서 맷돌을 돌리니라."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할 수 있었던 삼손의 인생은 그 누구보다 비참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자기를 배신하였고 이제 삼손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버림받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삼손은 이때서야 참으로 하나님께 돌이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를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친 나사르 사람이었노라. 그러나 나는 참되게 나 스스로를 하나님께 바쳐본 적이 없었노라. 하나님은 나에게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하셨으나 나는 블레셋 여인들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도다." 

그러나 자신의 선물들과 부르심에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삼손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참을 만큼 참았다. 너도 인정하지? 넌 정말 은혜를 원수로 갚는 쓰레기같은 존재야!" 우리가 하나님이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손은 나사르 사람이 해야하는 세 가지를 전부 어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격이 없는 우리들도 여전히 사랑하시며 포기하지 않으시고 항상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삼손을 붙잡은 블레셋 사람들은 큰 축제 열었습니다. 자신들의 신 다곤이 자신들의 원수인 삼손을 드디어 넘겨주셨다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을 그들 가운데 끌고 나와 모두의 웃음거리로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25절부터 보시겠습니다.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삼손을 세우니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내가 이 집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더듬어 찾아서 그것들에게 기대도록 허락하라, 하니라.
27 이제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며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영주들도 거기 있고 지붕에도 삼천 명가량의 남녀가 있더니 그들이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오 주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나를 기억하옵소서. 오 하나님이여 간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들이 내 두 눈을 뺀 것을 단번에 원수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그 집을 지탱하며 받쳐 주는 두 개의 중간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붙잡고
30 이르되, 나를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게 하소서, 하며 힘을 다하며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던 영주들과 온 백성을 덮으니 이처럼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많았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삼손의 마지막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삼손의 생애에 있어서 아마도 처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는 기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손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서야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삼손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정리
우리는 오늘 이번 주일설교의 흐름과 맞추어 자기 눈에 좋게 보이는 길로 걸어간 한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해 지기 위하여 스스로 원하는 것을 다 해보았지만 결국 비참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향한 자신의 계획을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길을 걷고 있습니까? 삼손은 고집스럽게 자기 뜻대로 걸어갔고 그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삼손이 만약 스스로 행복하려는 길말고, 스스로 좋게 보이는 길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에 원하시는 길을 찾고 걸어갔다면 그의 인생은 사사기에 나오는 어떠한 재판관보다도 영광스럽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선택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관점과 우리의 고집을 내려놓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참되게 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분의 뜻을 물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일을 시킬 것 같다는 마귀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온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시는 유일한 분이시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 선한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게 좋은 분인지 알려주시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주님 나에게 주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 더 많이 보여주셔서 내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하나님의 뜻은 참되게 나를 행복하게 하는 뜻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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