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손(시 138:6-8)

2005.12.21.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3세)
제목 : 주의 손
본문 : 시편 138편 6-8절

오늘 함께 살펴볼 주님의 말씀은 시편 138편 6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시편 138편은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더욱 크게 하셨다”하는 말씀을 담고 있는 시편입니다. 시편 138편 6절에서 8절까지,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도록 하겠습니다.
6 주께서는 높이 계실지라도 겸손한 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며 교만한 자는 멀리서도 아시는도다.
7 내가 고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생시키시고 주의 손을 내미사 내 원수들의 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8 주께서 나에 관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리이다. 오 주여, 주의 긍휼은 영원토록 지속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버리지 마옵소서.


오늘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주의 손”이라고 잡아봤습니다. 제가 오른손을 다치고 약 6주가 지나고 있는데 이렇게 다친 것을 계기로 손이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주의 손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오늘 저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시면서 우리들이 얼마나 주의 손을 가까이 대하면서도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는지 또 그것에 얼마나 감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성경에 나타난 주의 손
우리는 성경에서 “주의 손”이라든지 “주의 오른손”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의 손”이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는 대부분 하나님의 권능과 위대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심판을 의미하기도 하며, 구원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 우리를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지만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을 붙잡는 것은 너무나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실 때 “주의 손”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손을 내밀어 이집트 한가운데서 행할 나의 모든 이적들로 그 나라를 치리니 그 뒤에야 그가 너희를 가게 하리라.”(출 3:20).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모든 이적들이 하나님의 손을 내밀어 권능을 행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을 통해 이러한 일들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적을 주실 때에도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시고 모세의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하신 후에 “네 손을 내밀어 꼬리를 붙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네 손을 네 품에 넣으라.” 하셨을 때 모세의 손에 나병이 생겼고 다시 한번 손을 품에 넣었다가 꺼내니 그것이 처음의 손과 같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전쟁을 할 때 모세가 손을 올리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배했던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손이라는 단어만 주목해 보아도 성경에서 매우 놀랍고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손에 붙들린 막대기는 죽어버린 마른 막대기에 불과했지만 하나님의 권능이 임한 모세의 손을 통해 살아있는 뱀이 되기도 하고, 이집트의 모든 풍요를 관장하는 여신이라 불리던 나일강을 피로 물든 죽음의 강으로 만들기도 하고, 거대한 홍해바다를 가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늙고 기운이 빠진 모세, 마른 막대기와 같은 모세도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권능의 손에 붙들린다면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많은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의 손이 임하였을 때 사무엘의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없었고, 주의 손이 임하였을 때 엘리야는 아합의 수레를 앞질러 달려갔으며, 주의 손이 임하였을 때 욥은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아 정금과 같이 연단되었고, 하나님의 손이 임하였을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타국의 통치자들로부터 긍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의 손으로 지으신 모든 창조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구약의 모든 역사들과 사도들 위에 임하신 주의 손의 권능과 오늘 우리들의 삶 가운데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너무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진리들로 인하여 전율할 것입니다.


** 구원의 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28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29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능히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3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
(요 10:28-30).

우리의 구원이 영원히 안전한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주님의 손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의 팔로 붙잡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 예수님의 손을 떠올릴 때 우리는 못 자국 난 손을 기억합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고 내 두 손을 보며 또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님의 권능의 손은 우리를 위해 못 박히신 영광과 사랑의 상처를 지닌 손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께 우리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주 예수님 자신을 주의 팔이요, 주의 손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 1절에서는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이는 그가 주 앞에서...”라는 말씀으로 이어지는데 여기는 “그가”라고 부른 주인공은 바로 “주의 팔”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기록하고 있는 “주의 팔”은 누구입니까? 권능과 능력의 주의 팔이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하여 고운 모양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도 없는 모습으로 이 땅이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의 손과 주의 팔을 언급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과 구원의 역사를 의미할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 자신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주의 권능의 오른손이신 주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기 원합니다.


** 오른손을 다치고
5절에서는 원수들의 면전에서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시고, 내 머리에 기름으로 부으시는 목자를 기록하고 있고, 6절에서는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나의 모든 생애 동안 나와 함께 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의 전에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내가 승리하고, 주님 앞에서 잘 살 때만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생애 동안", "내 생애의 모든 날 동안" 나를 따르며 함께 한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더욱 알아가며 참되게 따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식탁을 마련하시는 목자
이처럼 우리는 성경의 곳곳에서 주의 손을 굉장히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생활에서는 어떻습니까? 성경에서는 주의 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주의 손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오른손을 다치고 약 6주가 되어가고 있는데 지금은 왼손을 사용하는 것이 이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젓가락질도 하루 3번씩 꼬박꼬박 연습을 하니 지금은 밥풀도 집고 라면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능수능란해졌습니다.

전에는 몰랐습니다. 오른손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손을 다치고 나서 집에 돌아온 뒤 처음 저녁식사를 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숟가락질도 젓가락질도 모두가 생소한 왼손으로 해야만 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단추하나를 풀고 끼워 넣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세수할 때, 양치할 때... 기본적으로 생활하는 모든 것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던 열쇠와 핸드폰이 모두 왼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물건을 사기 위하여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에도, 흔들리는 버스에서 손잡이를 붙잡을 때에도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차라리 왼손이 다쳤더라면 조금 덜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때 저는 문득 마태복음 6장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의 오른손은 저 자신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우 크고 작은 일들에 수고를 해왔습니다. 왼손으로 그 동안 오른손이 해왔던 많은 일을 해나가면서 오른손이 어떤 힘든 일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조금 하다가 손에 쥐가 나려고 한 적도 있었고, 단추 하나를 끼지 못해 몇 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 왼손으로서는 오른손의 수고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체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역사
성경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하여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실제로 못 자국 난 주님의 손을 볼 수는 없지만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손의 역할을 감당하는 지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지체들을 곧 그것들 각각을 몸 안에 두셨느니라”(고전 12:18).
우리 중 누구는 눈의 역할을 감당하고 우리 중 누구는 발의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 중 누구는 손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지체들을 섬기고 있든지 우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는 주님의 손길은 바로 교회 안에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책망하시며 징계하시는 주님의 손, 때로는 우리를 안아주시며 품어주시는 주님의 손, 때로는 우리를 도우시며 위로하시는 주님의 손,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주님의 손은 오늘날 우리 지체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주의 손을 발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나에게는 전혀 없는 것처럼 오해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멀리멀리 떠나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처럼 많은 지체들을 통하여 우리를 돌보시며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의 손길이 교회와 상관없이 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며 주님께 긍휼을 얻고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손길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부르셔서 몸을 이루는 한 지체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떠나 주님의 손길을 발견하려는 모순 가운데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간과하며 쉽게 지나치는 형제자매들의 미소와 관심이 곧 우리와 상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만 왼손과 같이 그저 섬김을 받는 생활만 하고 있다면 우리는 오른손이 얼마나 큰 수고를 감당하고 있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손이 다친 이후로도 어떤 상황이 벌어지거나 해야 할 일을 발견할 때마다 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오른손에 발동이 걸리는 바람에 의지적으로 그것을 멈추는 일을 하면서 오른손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을 해왔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왼손은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진 오른손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오른손이고 왼손도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그대로이지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는 왼손과 같이 알게 모르게 섬김을 받기만 하던 지체가 이제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지체들을 위해 주님의 일들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오른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왼손인 사람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지체들이 각자의 기능을 가지고 오른손과 같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손에 붙들린 사람의 시
오늘의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붙들린 한 사람이 지은 시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힘입어 골리앗을 쓰러트린 이 소년, 죄를 범하고는 자신에게 제시된 세 가지 형벌 가운데 사람들의 손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손에 떨어져 벌을 받고자 했던 이 사람은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손을 많이 체험한 사람이었습니다.

6 주께서는 높이 계실지라도 겸손한 자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며 교만한 자는 멀리서도 아시는도다.
7 내가 고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생시키시고 주의 손을 내미사 내 원수들의 진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
8 주께서 나에 관한 것을 완전하게 하시리이다. 오 주여, 주의 긍휼은 영원토록 지속되오니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을 버리지 마옵소서.


주의 손에 붙들린 다윗은 겸손하게 주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여전히 주의 손을 붙들었으며, 주의 손이 자신을 완전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은 위풍당당하고 자신만만한 사람이 아닌 겸손하게 긍휼을 구하며 주의 오른손을 힘입는 사람입니다. 모세의 손에 붙들린 마른 막대기가 놀라운 기적들을 행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우리의 가련한 인생은 영광스럽고 찬란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 마무리하는 말
여러분 옆에 형제자매들을 보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손길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주님의 손을 발견하지 못하여 낙담하거나 불평하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오른손과 같이 묵묵히 수고하는 지체들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왼손인 내가 알지 못하는 동안에 나를 위해 오른손의 역할을 끊임없이 해온 지체들을 발견할 때 우리는 주님의 손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러한 지체들로 인하여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또 내가 오른손으로서 섬겨야할 지체들을 발견한다면 그것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그 지체들이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을 하나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훗날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것들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왼손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낙담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오른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임했던 인자하고 긍휼히 풍성한 주의 손을 기억하며 묵상하며 되새기며 오늘 내가 교회 안에서 주님의 손으로서 어떻게 섬겨야하는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기쁨 가운데 지체들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4-40절까지 보시겠습니다.
34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 이후로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리니
37 그때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손으로 인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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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3세)

제목 : 가장 크신 주의 이름
본문 : 시편 138편 2절


오늘 저와 함께 살펴볼 주님의 말씀은 시편 138편 2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의 거룩한 전을 향해 경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진리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니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로 크게 하셨나이다.

저는 오늘 이 본문으로 "가장 크신 주의 이름"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이 이 시간을 사용해 주시도록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의 본문은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크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시면 "above"라는 단어가 들어가서 주님의 모든 이름들보다 위에 있다고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많은 호칭들, 닉네임, 또는 별명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저만해도 많은 이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름은 아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은 저를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고, 교회 안에서는 다만 “형제”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아들아”하고 불리기도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다만 “친구야”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많은 이름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매우 재미있는 사실은 그러한 많은 호칭들이 저 한사람을 가리키면서도 각각 한 가지 특징들을 부각하여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칭의 문제는 성경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리켜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요 15:15). 그리고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제자들을 가리켜 “내 형제들”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셨습니다(요 20:17). 이러한 말씀들은 우리의 신분과 위치가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알려주는 너무나 중요한 표현들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의 호칭이 어떻게 죄인에서 의인으로, 불순종의 자녀들에서 순종의 자녀들로, 마귀의 자식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들로 바뀌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성경에 나타난 많은 주의 이름들
그러나 성경에서 더욱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이름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들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님 자신의 이름들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이름들은 각각 주님의 어떠하신 특징들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린양, 반석, 방패, 망대, 요새, 전사, 주, 여호와, 그리스도, 메시아, 예수, 전능자, 위로자, 상담자, 영원하신 아버지, 부활의 첫 열매,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 목자, 참 포도나무, 부활, 생명, 길, 진리, 사랑, 생명의 빵, 임마누엘...

이러한 많은 이름들은 주님 한 분을 가리키면서도 각각의 단어가 서로 다른 면에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줍니다. 이러한 주님의 이름들은 다만 미사여구나 장식을 위한 표현들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잘 묘사해 주고 알려주는 귀한 단어들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라는 주님의 이름은 처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기 전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로 받은 사람의 아들이 되신 주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신약에서 잃어버린 자를 위해 찾아오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지옥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모든 수치와 멸시를 감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도록 하셨습니다.

다 같이 빌립보서 2장 6-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7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있는 이름을 그분에게 주사
10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의 모든 무릎이 예수라는 이름에 굴복하게 하시고
11 또 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의 이름을 회복시키시고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피조물들이 그토록 낮아지셨던, 그토록 비참하게 멸시를 받으셨던 그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주시라 시인하여 영광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목을 곧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그 날에 예수님의 이름 앞에 완전히 굴복을 당하고 꺾임을 당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땅 아래, 곧 지옥에 있던 모든 예수님을 무시하고 거부하였던 자들도 그 날에는 수치 가운데 그분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시라 시인하며 찬양한 우리들은 그 날에 수치를 당하거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기쁨과 영광 가운데 그분을 높이며 찬양할 것입니다.

 

** 주의 모든 이름보다 더욱 크게 하신 이름 - 주의 말씀
그런데 오늘 함께 살펴본 시편 말씀에서는 주의 모든 이름들 위에 “주의 말씀”을 크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다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 또는 기록되어 글로 적혀있는 말씀이라고 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바로 “말씀”이라는 주의 이름에 대하여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들 중에서 가장 큰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가지셨던 이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가지실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심판의 보좌에 앉으실 때 나타내실 이름이 있다면 그것도 역시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잠시 사도 요한이 기록한 서신들 중에서 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요한일서 5장 6,7절을 보시겠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6 이분은 물과 피로 오신 분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오지 아니하시고 물과 피로 오셨느니라. 증언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는 성령께서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7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물과 피로 오신 주님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로, 육체를 입고 오신 주님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바로 그 주님께서 하늘에서 증언하실 때에는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계심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역시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한복음은 "말씀"이신 주님을 기록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절부터 보시면 계속해서 "그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2절에 “그분께서”, 3절에 “그분에 의해”, “그분 없이”, 4절에 “그분 안에”, 10절에 “그분께서”, “그분에 의해”, 11절에 “그분께서”, “그분을”, 12절에 “그분을”, “그분의 이름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흐름에 따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씀이신 주님께서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2절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이라고 했을 때 우리는 말씀이신 주님이 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신 그 이름, “예수님”을 떠올리며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깊이 본문을 살펴본다면 “그분의 이름”은 문맥에 따라 일차적으로 바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있고 영원히 거하는 썩지 아니할 씨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영접함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 1:23).

이제 요한계시록 19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타신 분은 신실하신 이, 참되신 이라 불리더라. 그분은 의로 심판하며 전쟁을 하시느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그분은 심판하시며 전쟁을 하러 오실 것입니다. 그때에 그분의 이름은 신실하신 이요 참되신 이라 불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16절에 보시면 “그분의 옷과 넓적다리에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고 기록된 한 이름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그분의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입니다.

12,13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2 그분의 눈은 불꽃 같고 그분의 머리 위에는 많은 관이 있었으며 또 그분께 기록된 한 이름이 있었으나 그분 밖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더라.
13 또 그분께서 피에 담근 옷을 입으셨는데 그분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불리느니라.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여전히 가지고 계실 한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 결론 -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않는다거나, 하나님은 틀린 것이 없는 완전하신 분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있다고 말한다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알려고 하지 않거나,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는 이상한 믿음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다만 지침서나 설명서가 아닙니다.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참고서가 결코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잘 믿는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액세서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만나고 누리고 사랑하며 순종하고 배움과 위로를 얻고 책망을 받고 바로잡히고 이끌림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통로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들 중에서 주께서 가장 높고 크게 하신 이름이 바로 “주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깊이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다윗은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바로 “주의 말씀”을 높이고 찬양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곧 주님을 대하는 태도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24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순간 동안 말씀을 가까이 하고 떠올리며 생각하며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많이 주님을 만나며 생각하며 사랑하는지가 판가름 될 것입니다.

생명을 얻은 우리들이 생명을 더 풍성히 얻기 위하여 날마다 영접하고 마음에 품어야할 주님의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입니다. 오늘날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묻고 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씀을 읽고 탐구하며 연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이신 주님을 더 사랑하며 찬양하며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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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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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시 51:10)

 

이승선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51편 10절입니다.

오 하나님이여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오늘 말씀의 제목은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다윗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어떤 전자제품을 사더라도 새로 나온 최신판신제품을 구입하기를 원합니다어떤 만화나 영화를 보더라도 새로 나온 신작을 보기를 원합니다겨울에 붕어빵을 사먹더라도 지금 막 구운새로운 붕어빵을 사고 싶어 합니다누군가 나에게 신발을 선물로 준다면자기가 신던 헌 신발을 주는 것보다새로 나온 최신 디자인의 신발새 것을 사주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이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새로운 물건들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서도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어른들은 우리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니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정말 열심히 공부할 텐데.” 또는 이렇게 합니다. “내가 인생을 새롭게 살 수만 있다면그렇게 살지 않을 텐데.” 여러분도 이번 주에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결심들을 한 학생들이 있을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설교의 제목처럼성경 속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을 몇 명 살펴볼 것입니다.

 

먼저 우리 함께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시편 51편 10절 말씀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오 하나님이여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말씀은 바로 다윗이 간음과 살인이라는 무서운 범죄 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내용이었습니다다윗은 그의 삶이 새롭게 되기를 원했고그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했습니다다윗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소년이었습니다그는 온 이스라엘이 두려워 벌벌 떨던 거인 골리앗 앞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섰던 주님의 용사였습니다그는 사울 왕이 부당하게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수많은 생명의 위험과 고난 가운데서도사울 왕을 대적하여 싸우지 않고여전히 사울 왕을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으로 인정하고 존경하였던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 그는 어느덧 왕이 되었고모두가 치열한 전쟁에 나갔던 때에한가하게 왕궁을 거닐다가간음을 하게 되고 살인까지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다윗의 인생은 완전히 망쳐진 것 같았습니다그의 명성과 그의 인기와 그의 평판은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다윗에게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었습니다그는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되기를 원했습니다그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했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정말 새롭게 되었습니다그는 솔로몬을 다음 왕으로 세우기까지 다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길을 걸었습니다.

 

여러분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혀 범죄하지 않거나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넘어진 뒤에실패한 뒤에그 뒤에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성경의 이야기들 속에서그리고 역사 가운데서 실패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사람은 누구나 실패하고 넘어지고 범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실패하고 넘어진 뒤에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아브라함

여러분잘 아시는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십시오아브라함은 믿음의 삶을 언제 시작했습니까그는 75세 때에 주님의 부르심을 처음 받았지만자기 마음대로 이스마엘을 낳으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이제 그는 다시 100세에 이삭을 낳으면서 믿음의 길을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그리고 그의 새롭게 된 믿음의 여정은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까지 이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100세에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오늘 여러분은 나이가 몇 세입니까여러분이 오늘 아무리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한들아브라함보다는 빠르지 않겠습니까?

 

 

새롭게 시작한 모세

또 여러분이 잘 아시는 모세도 생각해 보십시오그는 이집트의 왕자 신분으로 자라났습니다그가 40세가 되었을 때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는 실패하였고이집트 사람을 살인하였다는 누명을 입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그러나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모세의 인생은 80세 때 새롭게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양의 털을 깎고양의 젖을 짜던 시골 목자 할아버지가, 3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대군을 이끄는 출애굽의 영웅 지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의 인생은 40세 때에 망했다가, 80세 때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우리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은모세가 망했던 40세의 절반조차도 아직 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마음이우리의 삶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게 시작한 베드로

우리 이제 신약의 인물 중에서도 생각해 보겠습니다바로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가장 열성이 있었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베드로는 정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던 제자였습니다그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신하더라도자기는 죽을지언정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베드로가 결국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그는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내가 저 사람을 안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맹세하면서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고세 번씩이나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누가복음 22장 59-62절을 보시겠습니다.

59 한 시간쯤 시간이 지나서 또 다른 사람이 자신 있게 단언하여 이르되이자는 갈릴리 사람이므로 진실로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하매

60 베드로가 이르되사람아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하더라그가 아직 말할 때에 즉시 수탉이 울더라.

61 께서 돌이키사 베드로를 바라보시니 베드로가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62 밖에 나가 몹시 슬프게 우니라.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하는 순간예수님께서는 재판을 받으시던 대제사장의 관저 안에 뒤를 돌아 베드로를 바라보셨습니다예수님의 그 눈빛은 원망하거나 째려보는 눈빛이 아니었을 것입니다그 눈빛은 그가 다시 새롭게 회복하기를 원하시는 긍휼의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을 따라 감옥에도 가고죽을 각오도 되어있다고 큰 소리를 쳤었는데이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그는 자기가 주님과 함께 왕국의 왕좌에 앉을 것이고큰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이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그는 아마도 이제 모든 것이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이제 자기는 정말 반역자 중의 반역자요배신자 중의 배신자라고 생각되었을 것입니다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망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베드로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습니다베드로는 새롭게 되었습니다베드로는 완전히 새롭게 되었습니다그는 이제 사도행전에 와서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목숨을 위협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증거하지 말라고 위협할 때에도전혀 두려워하지 않고담대하게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한 마가 요한

이제 우리 한 사람만 더 살펴보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도행전 12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자기들의 사역을 마치고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바나바와 사울그리고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이렇게 세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여기서 사울은 바로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그리고 마가 요한은 바로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입니다여기서 바나바와 바울은 선교팀을 구성해서 사역을 진행하였는데바로 마가 요한이 합류하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우리 함께 사도행전 1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살라미에 이르러 유대인들의 회당들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또한 요한을 자기들을 섬기는 자로 두었더라.

이 말씀을 보게 되면마가 요한이 바로 바나바와 바울을 섬기는 자로 선교팀에 합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바나바와 바울을 섬겼다는 것은 바로 선교사역의 보조자로서참여하였다는 것입니다이제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바울과 그의 일행이 바보에서 배 타고 떠나 밤빌리아의 버가에 이르렀을 때에 요한은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

이 말씀을 보게 되면바울과 그의 일행이밤빌리아의 버가라는 장소에 이르렀을 때에마가 요한이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다시 말하면 선교팀에서 무단이탈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도행전 15장 36-41절을 보시겠습니다.

36 며칠 뒤에 바울이 바나바에게 이르되우리가 전에 의 말씀을 선포한 모든 도시로 다시 가서 우리 형제들을 방문하고 그들이 어떻게 행하는지 알아보자하니

37 바나바는 마가라는 이름의 요한을 데리고 가고자 결심하였으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자기들과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라.

39 그들 사이에 다툼이 격렬하여 그들이 서로 갈라져 떠나니 이처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키프러스로 가고

40 형제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매 그는 실라를 택한 뒤에 떠나서

41 시리아와 길리기아를 지나가며 교회들을 굳건하게 하니라.

이제 바나바와 바울이 다시 선교여행을 시작하려고 하였습니다바나바는 마가 요한을 다시 데려가려고 결심하였습니다그러나 바울은 단호한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이미 한 번 선교여행에서 무단이탈을 한 자를 다시 선교팀에 합류시키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일에 대한 다툼이 얼마나 결렬하였든지바나바와 바울의 선교팀 자체가 갈라지고 말았습니다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고바울은 실라라는 새로운 형제를 택하여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디모데후서 말씀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디모데후서 4장 6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

지금 바울은 자신이 떠날 때가즉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바로 이 디모데후서 말씀은 사도 바울의 유언장과도 같은 마지막 말씀인 것입니다이제 우리 함께 11절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마가를 데리고 함께 오라그가 사역을 위해 내게 유익하니라.

우리는 바울의 유언장과도 같은 마지막 편지에서 마가를 필요로 하는 내용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마가는 바울이 보기에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 바울의 마지막 날들에 마가는 필요한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나의 삶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오늘 당장은 우리의 모습이 누군가가 보기에 자격이 없고마땅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나 자신이 보기에도 한심하고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여러분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우리가 앞서 생각해 보았던 사람들은 다 자기 능력으로가 아니라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100세 새롭게 하신 하나님모세를 80세에 새롭게 부르신 하나님다윗을 무서운 죄에서부터 새롭게 회복시키신 하나님배신자 베드로를 다시 주님을 위한 충성된 일꾼으로 세우신 하나님그리고 마가 요한을 회복시키셔서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바로 그 하나님께서 오늘 여러분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새롭게 시작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여러분은 새롭게 되기를 원하십니까그렇다면 다윗처럼 기도하기 원합니다우리 다시 시편 51편 10절로 돌아오셔서 함께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 하나님이여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기도하겠습니다

2013.01.25.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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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시 119:97-100)

 

이승선

 

오늘은 2013학년도 첫 번째 채플입니다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편 97-100절 말씀입니다다 같이 일어나셔서 시편 119편 97-10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97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98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99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100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개요

오늘 우리는 2013학년도의 첫 번째 채플로 모였습니다선생님인 저도 마찬가지이지만학생인 여러분들은 더욱 간절하게 지혜를 원할 것입니다나에게 솔로몬 같은 지혜가 있다면나에게 감추어진 것들도 알고 깨닫는 다니엘과 같은 지혜가 있다면얼마나 좋을까하는 바램이 여러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지혜는 꼭 학생이 아니다 할지라도이미 어른이 된 사람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오늘 저는 우리 학생들과 함께 지혜를 얻는 비결비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지혜는 과연 어디서 올까요너무나 이상하게도그리고 놀랍게도 지혜는 공부와 관련이 있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무엇이죠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입니다지혜는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정답이 오늘의 설교 제목에서그리고 시편 말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다 같이 해볼까요?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 시작~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과연 얼마나 어디까지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요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 그렇게 될 것입니다저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오늘 여러분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신다면내가 주의 법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로구나라고 생각을 하면 정확할 것입니다.

 

 

원수들보다

우리 오늘의 본문인 시편 119편 97-10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97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98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99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100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

 

먼저 우리 98절에 나오는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삼국지에 보면어떤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그 사람의 친구가 어떠한지 보고그 사람의 원수가 어떠한지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왜냐하면 친구도 그 사람의 수준에 걸 맞는 사람일 것이고원수도 그 사람의 수준에 걸 맞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라는 것은 라이벌이나 대적이 되는 인물을 말하는데다 큰 어른이유치원생이 자신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해서,마음에 담아두고 원수로 삼지 않는 것처럼원수 관계도 서로 수준이 비슷한 사람과 맺어지기 마련입니다그런데 98절 말씀에서는 주의 명령들이 나와 항상 함께할 때에주께서 그것들을 통해바로 주의 명령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들을 통해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원수를 여러분의 경쟁자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앞으로 여러분이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가거나어떠한 기술을 익혀서 직장을 얻기 위해 면접을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그러면 여러분 옆에는 언제나 경쟁자들이 있을 것입니다.대학이든회사든 뽑고자 하는 사람은 한 두 명이라고 할 때바로 그 자리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그런 자리에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지혜입니다면접관이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을지,많은 고민이 될 것입니다우리는 그러한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까요남들처럼 면접학원에 가서 면접관들이 묻는 질문의 공통적인 목록에 대해서 배우고면접관들이 좋아하는 답변을 줄줄 외웠다가마침 그런 질문이 나오면 앵무새같이 외웠던 말을 대답해야 할까요?

 

앞으로 우리는 인생에서 수많은 종류의 경쟁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정말 원수같이 나를 견제하고시기하고대적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여러분이 대학을 가게 된다면대학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고직장을 가지게 된다면 직장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며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그러할 때 우리에게는 그러한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는 것이 좋을지지혜가 필요합니다무조건 싸울 수만은 없는 수많은 상황들이 생겨나고우리에게는 반드시 지혜가 필요합니다우리는 바로 그러한 지혜를 어떻게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9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모든 스승보다

그렇습니다주의 명령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얼마나 주의 법과 함께 동행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얼마나 지혜로워지는가가 달려있습니다.

우리 이제 9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이번에는 스승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시편 기록자는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내가 모르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주는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것은 교만하고 건방지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주의 증언들을바로 주의 말씀을 찬양하고 높이는 간증의 고백인 것을 우리가 정확히 구분하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지식으로 말하자면세상의 많은 사람들보다 어리석을 수 있고지식에서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철이라는 것은 지식이 많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특별히 여기서 명철이라는 단어는 영어로understanding이라고 되어 있는데이것은 이해하다라는 말도 되지만말 자체를 뜯어보면, under 아래에, standing, 서 있다위치하다라는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명철이란 무엇입니까바로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 아래에 서서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교만하게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주의 말씀이라면 아멘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며 나의 뜻을 내려놓는 그 자세가 바로 명철, understanding인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도 그렇게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지식에 대한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배고픔이 많이 있어서새로운 것이라면 열정을 가지고 알아보고한 군데 꽂히면 만족이 될 때까지 집중하여 파고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실제로 지식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다시 말하면 무식한 사람입니다그러나 저는 최소한스스로 지혜롭다고 말하면서하나님을 믿지 않고지옥에 가기를 선택하는 많은 똑똑한 박사들보다 더 명철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멍청하고 어리석지만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명철한 사람들을 뽑아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그 사람들은 무식한 어부 출신인 베드로야고보요한안드레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사람들이 더러운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세리 마태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의심 많고 따지기 좋아하는 도마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생각할지 모릅니다나는 이렇게 무식하고 어리석은 사람인데주님은 과연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나를 이렇게 부르셨을까이런 보잘 것 없는 모습의 나를 어떻게 사용하시려고 나를 교회 중심에크리스천 학교에성경 가까이에 이렇게 살게 하셨을까여러분주님은 똑똑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주님은 겸손하게 말씀 아래에 위치하는 명철을 가진 사람, understanding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또한 너무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데십자가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서 감격할 줄 알고눈물을 흘릴 줄 아는그래서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랑받은 자들을 찾으십니다여러분오늘 우리가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어도사랑받은 것을 아는 자들이라고는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나를 대신하여십자가에서 찢기시고고통당하시고모욕과 수치를 기꺼이 담당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우리는 최소한 그것 한 가지는 남들보다 더 이해하고더 공감하며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노인들보다

우리 함께 100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

 

시편 기록자는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기 때문에노인들보다 잘 깨닫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것 역시 자신을 자랑하고 높이는 교만함의 고백이 아니라주의 훈계즉 주님의 말씀을 높이는 간증임을 우리는 정확히 구분해 보아야 합니다우리가 주의 훈계들을 지킬 때에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우리는 수많은 인생의 경험을 가진 노인들보다 더 잘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인이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온 시간이 많은 사람을 의미합니다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들도 많이 있겠지만노인들은 자신의 부모님이나형제들이나친구들이나친구들의 가족들이나자녀들이나자녀들의 친구들이나자녀들의 친구들의 부모님에 이르기까지수많은 사람들의 일들과 사건들과 경험들을 옆에서 보고 듣고 겪어온 시간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그러한 노인들은 비록 이제 힘이 없고기력이 없다할지라도젊은 사람들보다 많은 것들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에도후보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 제한을 40세 이상으로 두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40세 미만의 사람은 나라를 운영할 만한 삶의 경험이 없는 것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노인들, 60, 70, 80이상의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들었기에얼마나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겠습니까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성경은주의 훈계들을 지키고 순종하는 자가 노인들보다 잘 깨닫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들보다모든 스승보다노인들보다 명철하고 지혜로운 것이 있는데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켜온 이 말씀수많은 민족들과 나라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이 권능 있는 말씀이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을 지혜롭고 명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정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입니다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얼마든지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얼 만큼 그렇게 될 수 있는가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입니다책을 읽은 만큼도 아니고공부를 많이 한 만큼도 아닙니다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입니다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로 주의 법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97절에 나온 것처럼주의 법을 종일토록 묵상하는 것생각하고 떠올리고 되새기고 기억하는 것이 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98절에 나온 것처럼주의 명령들과 항상 함께 동행하는 것이 바로 주의 법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주의 법을 사랑하는 것은 99절에 나온 것처럼주의 증언들을 묵상하는 것이며, 100절에 나온 것처럼 주의 훈계들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의 법을 사랑하십니까얼 만큼 사랑하십니까여러분은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시편 기록자처럼주의 법을 너무나 사랑하여 원수들보다모든 스승보다노인들보다 지혜롭고 명철한 주의 말씀을 통하여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반드시 주의 법을 사랑하는 만큼” 그렇게 될 것입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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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설교 / 로빈30세

http://robinbox.net

 

주를 찬양하라(시 117: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주님의 말씀은 시편 117편입니다시편 117편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 모든 민족들아너희는 를 찬양하라모든 백성들아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우리에게 베푸시는바 긍휼이 풍성하신 그분의 친절이 크고 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는도다너희는 를 찬양하라.

 

 

오늘 저는 주를 찬양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한 해를 돌아보며

오늘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12년의 마지막 수요일 저녁입니다여러분올 한해를 지내시면서 작년보다 더욱 주님을 찬양할 찬양의 제목들이 늘어나셨습니까혹시 그렇지 못하다면그것은 주님의 긍휼과 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한 번 더 읽어보겠습니다.

오 모든 민족들아너희는 를 찬양하라모든 백성들아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우리에게 베푸시는바 긍휼이 풍성하신 그분의 친절이 크고 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는도다너희는 를 찬양하라.

우리가 지금까지특별히 올 한해를 무사히 잘 살아올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했기 때문이 아니라오직 주님의 긍휼과 친절 때문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전에 한 번 말씀드렸던 예화인 것 같지만한 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한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늘 주님의 기적을 체험했어요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오늘 교통사고가 나서 차가 두 바퀴를 굴렀거든요그런데 저 이렇게 멀쩡한 것 보세요주님이 저를 얼마나 놀랍게 지켜주셨는지 몰라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보다 더 큰 기적을 체험했다.”

한 일곱 바퀴 구르셨어요?”

아니난 오늘 운전했지만 한 바퀴도 안 굴렀어.”

 

이와 같은 이야기처럼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우리의 매일 매순간 속에 주님의 친절과 긍휼이 늘 함께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읽은 시편 말씀과 같이 주님의 풍성하신 긍휼과 주님의 크신 친절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여호수아 이야기

오늘 저는 특별히 여호수아의 한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의 긍휼과 친절이 얼마나 큰지그리고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인가를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들어간 지도자입니다여호수아의 첫 번째 전쟁은 너무나 유명한 여리고성 전투입니다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여리고는 하나님의 백성의 침묵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그리고 여호수아의 두 번째 전투는 바로 아간의 범죄에 이은 아이 성 전투였습니다아간이 여리고의 물건을 탐내어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 때문에이스라엘은 처음에 비록 패배하였지만아간을 처단한 이후에 다시 아이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야기는 바로 여리고 성과 아이 성 전투에 이은 세 번째 가나안 땅에서의 전투입니다세 번째 전투가 매우 특이한 점은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한 민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싸운 전투라는 점입니다가나안의 민족을 모두 멸하고 쫓아내어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지만이번 전투는 그들을 위하여 싸운 것이었습니다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우리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다함께 여호수아기 9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여호수아 9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르단 이편의 산지와 계곡과 레바논 맞은편 대해의 지경에 있던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모든 왕이 그 일을 듣고

함께 모여 한마음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더라.

 

여호수아기 9장의 내용은 바로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의 함락에 대한 소식을 들은 가나안 땅의 모든 족속들이 연합군이 되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대적하기 위해 모인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그들은 이제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부터 나온 것과과거 모세의 시대에요르단 저편바산 왕 옥과 헤스본 왕 시혼을 쓰러뜨리고 그 지역의 땅을 점령한 것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이제 요르단을 건너와서 여리고와 아이 성을 함락하였을 뿐만 아니라온 가나안 땅을 다 차지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함께 힘을 모아 이스라엘을 몰아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나안 족속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일에 함께 연합하지 않은 한 족속이 있었습니다그 족속은 바로 기브온이라고 하는 지역의 거주민들이었습니다그들은 이스라엘을 이끌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들었고,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과 화평하기를 원했습니다그리고 이제 그들은 다음과 같이 행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여호수아 9장 3-6절을 보시겠습니다.

기브온 거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는

교묘히 행하되 가서 마치 자기들이 사신인 것처럼 꾸미고 낡은 자루와 낡고 찢어져 꿰맨 포도즙 부대들을 나귀에 싣고

발에는 낡아서 기운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마르고 곰팡이 난 빵을 모든 양식으로 예비하니라.

그들이 길갈에 있던 진영으로 나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러 그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르되우리는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으소서하매

 

기브온의 거주민들은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기 위하여가나안 땅에 거하지 않는 아주 먼 나라에서 온 것 같은그러한 모양새를 한 사신들을 보내었습니다낡은 자루와 낡고 찢어진 포도즙 부대와 낡아서 꿰맨 신발과 낡은 옷과 마르고 곰팡이 난 빵을 증거물로 예비하였습니다계속해서 7-1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족속에게 이르되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하는 듯하니 어찌 우리가 너희와 동맹을 맺을 수 있으랴하거늘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하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너희는 누구냐너희는 어디에서 왔느냐하니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당신의 종들은 주 당신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매우 먼 나라에서 왔나이다우리가 그분의 명성과 그분께서 이집트에서 행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들었으며

10 또 그분께서 요르단 건너편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두 왕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던 바산 왕 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관하여 들었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군가와 동맹을 맺는 가장 큰 조건은 바로 그들이 가나안 땅에 거하는가아닌가 하는 사실이었습니다기브온의 사신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다만 매우 먼 나라에서 왔다고만 말하면서최근의 소식을 제외한 옛날 소식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바로 얼마 전 이야기인 여리고 성과 아이 성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이집트와 요르단 건너편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에게 승리하였던 오래 전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이 들을 때정말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생각하도록 교묘하게 행하는 것이었습니다계속해서 11-13절을 보시겠습니다.

 

11 그러므로 우리 장로들과 우리 나라의 모든 거주민들이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여행을 위해 양식을 취하고 가서 그들을 만나 그들에게 말하기를우리는 당신들의 종들이오니 그런즉 이제 우리와 동맹을 맺으소서하라하였나이다.

12 우리의 이 빵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의 집에서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취한 것인데보소서이제 그것이 마르고 곰팡이가 났으며

13 또 우리가 포도즙을 담은 이 부대들도 새 것이었는데보소서그것들이 찢어졌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매우 먼 여행으로 인해 낡아졌나이다하니라.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매우 먼 나라에서 왔음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낡은 양식과 낡은 물건들을 보여주었습니다집에서 출발하면서 뜨끈뜨끈하게 굽자마자 가져온 빵이 이렇게 곰팡이가 나고포도즙을 담은 부대들도 새것으로 챙겨왔는데이렇게 낡아졌다고 주장하면서낡은 물건들을 보여주었습니다뿐만 아니라 그들의 태도는 매우 겸손하였습니다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종이라고 말하면서그저 동맹을 맺어달라고 구걸을 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인도하였던 이집트에서부터 현재 여호수아와 함께 두 번의 전쟁을 치른 이 시점까지이렇게 이스라엘을 향하여 겸손하고 또 따듯한 마음으로 다가온 민족이 없었습니다이러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 있는 일이고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습니다모두가 그들을 공격하고 배척하였지이렇게 호의적으로 다가온 족속이 없었습니다그 결과 그들은 기브온 거민과 동맹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우리 함께 14-15절을 보시겠습니다.

 

14 그 사람들이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의 입에서 조언을 구하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그들과 화친하며 그들과 동맹을 맺어 그들을 살게 하였고 회중의 통치자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일에서 주님께 묻지 아니하고덜컥 기브온 주민과 동맹을 맺어버렸습니다그들이 서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서로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나누었던 것입니다우리 함께 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16 그들이 그들과 동맹을 맺은 뒤 사흘이 지났을 때에 그들이 자기들의 이웃이요자기들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라 함을 그들이 들었더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이동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도시들에 이르렀는데 이제 그들의 도시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더라.

 

기브온의 사신들과 동맹을 맺은 후 3일이 지났을 때이스라엘은 그들이 매우 먼 나라에서 온 것이 아니라바로 옆 동네에서 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바로 여리고 성과 아이 성 다음에 그들이 전쟁을 치러야 하는 다음 목표지역이었던 것입니다이스라엘은 기브온과 동맹을 맺을 때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기 때문에그 동맹을 깰 수가 없었습니다이제 여호수아는 그 일로 인해 기브온 주민들에게 분노하였지만그들을 멸할 수가 없었고다만 그들이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기로 약속하였습니다우리 함께 22-25절을 보시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하거늘 어찌 너희가 말하기를우리는 당신들에게서 매우 멀리 있나이다하여 우리를 속였느냐?

23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저주를 받았나니 너희 중 아무도 노예가 되는 것과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 패는 자와 물 긷는 자가 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지 못하리라하매

24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온 땅을 당신들에게 주시고 그 땅의 모든 거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게 하신 것을 당신의 종들이 분명히 들었으므로 그런 까닭에 우리가 당신들로 인해 우리의 생명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 일을 행하였나이다.

25 보소서이제 우리가 당신의 손에 있으니 당신이 보기에 좋고 옳은 대로 우리에게 행하고 행하소서하므로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에 이스라엘과 어떻게 해서든 동맹을 맺고자 하였던 것이었습니다그들도 비록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며이교도의 방식에 따라 살아왔던 자들이었지만그들이 이스라엘과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그들은 하나님을 믿게 되고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걷던 길을 완전히 바꿔이스라엘의 노예가 되는 편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기브온의 이러한 선택은 주변의 가나안 족속들을 크게 자극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여호수아 10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여호수아가 아이를 점령하여 진멸하되 여리고와 그것의 왕에게 행한 것 같이 아이와 그것의 왕에게 행하였다는 것과 또 기브온 거주민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하여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 들으니라.

그때에 그들이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이 왕가의 도시 중 하나같이 큰 도시요또 그것이 아이보다 크고 그것의 사람들이 다 강하였기 때문이더라.

그러므로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내게로 올라와 나를 도우라기브온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하였으니 우리가 기브온을 치자하니라.

그러므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이 함께 모여 자기들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올라가 기브온 앞에 진을 치고 기브온을 대적하여 싸우니라.

 

이제 기브온 족속은 가나안 땅에서 배신자가 되었습니다그들은 아이 성보다 크고또 강한 용사들을 가진나름대로 존재감이 큰 왕가의 도시와 같은 큰 도시였는데그들이 가나안의 편에 서서 함께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은 것을 볼 때우선 제거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이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이 연합군을 결성하여함께 기브온을 멸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제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위험을 피하려다가나안 연합군의 위험을 맞이한 신세가 되었습니다다함께 6절을 보시겠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길갈의 진영에 있던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당신의 손을 늦추어 당신의 종들을 버려두지 마시고 속히 우리에게 올라와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도우소서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의 왕들이 우리를 치려고 함께 모였나이다하매

 

기브온은 다급하게 여호수아에게 사람을 보내어 구조요청을 하게 되었습니다여기서여호수아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정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이스라엘은 기브온 주민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직접 기브온을 칠 수는 없지만가나안의 왕들이 그 일을 해준다면이스라엘은 직접 맹세를 깨지 않으면서도 기브온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그들이 속임을 당해 맺었던 언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또 한꺼번에 가나안의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도 큰 위험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만약 여호수아가 여유 있게 진군하여가나안의 연합군이 기브온과 충분히 싸운 뒤에 습격을 하게 된다면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서 전쟁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어쩌면 기브온도 잡고가나안의 다섯 왕도 잡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브온 거주민도 마땅히 멸망을 당했어야 할우상 숭배하는 민족이요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이교도들이었습니다.또한 그들은 교묘히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을 속였던 괘씸한 민족이었습니다과연 여호수아는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요우리 함께 7-14절 말씀을 교독하여 보시겠습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싸움을 할 수 있는 온 백성과 강한 용사들과 함께 길갈에서 올라가니라.

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나니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길갈에서 밤새도록 올라가 그들에게 갑자기 임하니

10 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무찌르시고 그들을 기브온에서 큰 살육으로 죽이시며 벧호론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추격하사 아세가와 막게다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치시니라.

11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여 벧호론으로 내려갈 때에 께서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하늘에서 큰 돌들을 그들 위에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칼로 죽인 자보다 우박으로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

12 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아모리 족속을 넘겨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께 아뢰고 또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이르되해야너는 기브온 위에 멈추어 서라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하매

13 해가 멈추어 서고 달이 멈추어서 마침내 백성이 자기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니라이것이 야셀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아니하냐이와 같이 해가 하늘 한가운데 머물러 서고 거의 하루 동안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더라.

14 께서 이와 같이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신 날은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으니 이는 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이더라.

 

너무나 놀랍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여호수아는 9절 말씀에서 읽으신 것처럼기브온을 구원하기 위해 밤새도록 달려갔습니다주께서는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셔서 이스라엘이 칼로 쓰러뜨린 자보다 더 많은 자들을 쓰러뜨리셨습니다그들이 밤새도록 달려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싸웠는데해가 져서 어두워지려고 하자주께서는 여호수아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태양조차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이 누구 때문에누구를 위하여 일어난 것입니까우상수배자였고이교도였으며속임수를 사용하였던 교묘한 기브온 족속을 위하여 일어난 것입니다그들은 무슨 자격으로 이러한 놀라운 보호를 받으며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목격할 수 있었을까요그들에게는 아무런 자격이 없었습니다다만 그들에게 자격이 있었다면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겸손한 마음 하나였을 것입니다우리가 만약 기브온 거주민 중 하나였다면이러한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였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요?

 

 

정리

기브온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던 더럽고거짓되며죄 많은 우상숭배자요죄인들이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듣게 되었을 때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며하나님의 이름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절하거나내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밤새도록 달려온 여호수아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 주님께서는 아무런 자격이 없이다만 멸망당하기에 합당하였던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어둡고 어두운 이 세상에 오시고또한 밤에 탄생하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보다 더 큰 구원과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기브온 사람들은 전쟁의 위험에서 구출된 것이지만우리는 영원한 지옥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주님의 은혜이며친절이며긍휼입니다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집에서 따듯하게 이불을 덮고 잘 수 있고사람들과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다 주님의 은혜이며친절이며긍휼입니다우리는 다만 멸망당하기에 합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다시 처음 읽었던 시편 117편 말씀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

오 모든 민족들아너희는 를 찬양하라모든 백성들아너희는 그분을 찬양할지어다.

우리에게 베푸시는바 긍휼이 풍성하신 그분의 친절이 크고 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는도다너희는 를 찬양하라.

 

이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으시겠습니다우리의 평생토록 우리를 이끌어 주신 주님또 올 한해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긍휼과 친절을 베풀어 주신 주님을 우리가 찬양합니다무엇보다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또 다시 부활하셔서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사랑의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우리의 깊은 마음 속에서 그리고 입에서 주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이 끊임없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2.01.1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 /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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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책(시 119:97-100)

이승선

 

여러분안녕하세요정말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하루를 은혜로 허락하여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하루하루 매순간 우리가 숨을 쉬며 살아가는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이며 긍휼임을 고백합니다오늘 오후 시간에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19편 97절부터 10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97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98 주의 명령들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주께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내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하셨나이다.

99 주의 증언들이 나의 묵상이 되므로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내게 더 많은 명철이 있으며

100 내가 주의 훈계들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잘 깨닫나이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성경이란

오늘 저는 우리 손에 들려있는 바로 이 성경책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우리는 성경책을 얼마나 알고 또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오늘은 성경책에 대한 여러 말씀들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 중의 베스트셀러는 과연 무엇일까요오늘날 우리는 새로운 책이 하루에도 수십만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그러나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현재까지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입니다성경은 매우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수십 번수백 번씩 반복하여 읽을 정도로 사랑을 받는 책입니다여기 계신 여러분께서도 성경을 많이 읽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내일 개학하는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도 중고등학생들은 1년에 3초등학생들은 구약 1신약 2독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전 세계의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이며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가져온 엄청난 책입니다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켜왔습니다현대서양문학의 70% 이상이 성경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논문이 있을 정도로 성경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미술가인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아담의 창조최후의 심판과 같은 그림을 그렸고다비드상과 같은 작품을 남겼습니다또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그렸습니다또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작곡가인 헨델 역시도 메시아라는 작품을 만들었고할렐루야라든지죽임 당하신 어린양과 같은 장엄한 클래식 곡을 작곡하였습니다벤허라는 소설과 영화그리고 오늘날 유명한 나니아 연대기와 같은 소설과 영화 역시 성경을 기반으로 한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의 산업혁명과 르네상스 시대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개혁의 역사도 성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로마 카톨릭의 온갖 횡포와 만행으로 너무나 어둡고 암울했던 중세암흑시대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번역과 때마침 발명된 활판인쇄를 통해 성경이 대량으로 인쇄되고 보급되면서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로마 카톨릭은 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또는 구 시리아어로 기록된 성경만을 고집하면서아무도 번역하지 못하게 금지하였고오로지 자신들이 가르치는 방식으로만 해석하고 설교하는 카톨릭 사제들만 읽고 공부하는 것을 허가하였습니다마틴 루터는 카톨릭 사제로서 성경을 공부하다가 참된 복음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고독일의 농부들도 성경을 읽고 복음을 깨닫게 하려는 의지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루터를 가리켜 종교개혁의 태양이라 부르고 있습니다그러나 종교개혁의 중심에는 루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이 있었습니다로마 카톨릭천주교의 속임수에 미혹되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성경을 읽음으로써 무엇이 진리인지를 분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미국의 대통령은 전통적으로취임식을 할 때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며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또한 미국의 법령은 대부분 성경에 기초하였습니다오늘날은 성경에서 많이 떠나가고 있는 추세이지만여전히 오늘날도 법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성경을 교양과 상식으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과거의 한 예로, 1800년대 미국에 복음의 대부흥을 이끌었던 찰스 피니라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찰스 피니는 29세 때 변호사가 되기 위해 법률을 공부하던 중 자연스럽게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는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되었고괴로워하던 중에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자신의 죄 값을 완전히 지불하시고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정당한 죄 값이 지불되었기 때문에자신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복음과 또 구원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후에 그는 변호사가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변호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송 의뢰를 맡은 변호인으로서그분의 탄원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데 나의 일생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변화시킨 능력의 책이며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놀라운 책입니다또한 국제연합 유엔의 본부 건물에 있는 이사야의 벽이라는 곳에는 이사야 2장 4절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새겨놓기도 하였습니다이사야 2장 4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가 민족들 가운데서 심판하며 많은 백성들을 꾸짖으리니 그들이 자기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자기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민족이 민족을 치려고 칼을 들지 아니하고 그들이 다시는 전쟁을 배우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우실 왕국에 완전한 평화가 올 것임을 예언한 말씀인데유엔에서는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내용은 빼고세상의 평화에 대한 말씀만을 이렇게 본부의 한 벽에 큼직하게 성경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 있는 이 성경은 수많은 성도들이 목숨을 바치며 지켜온 말씀입니다. 1384년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다는 죄목으로 불에 타 죽는 화형을 당했던 존 위클리프는 화형대에서 마지막 말로 주여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고 기도하며 눈을 감았습니다그리고 그 이후 1588년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면서 전 유럽을 호령하게 되었고, 1603년까지 이어졌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에 영국은 정치적문화적으로 큰 부흥을 이루게 되었으며영국의 언어인 영어 역시 문학적으로 크게 발전하였습니다그리고 이어진 제임스 왕의 시대에 성경 번역이 명령되었고, 1611년 공식적인 영어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되었던 것입니다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영어라는 세계 공통 언어를 통하여 성경이 전파되게 하시고또 수많은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렇게 역사적이거나 사회적인 주제만을 가지고도 성경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할 수 있을 만큼 성경은 실로 놀라운 책입니다성경을 중심으로 세계역사를 설명하여도 큰 흐름과 맥락이 잡힐 만큼 성경은 인류 역사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책입니다그 이유는 성경이 사람들이 지혜를 짜내어 만들어 놓은 창작물이 아니라영원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책을 오늘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수천만의 성도들이 피를 뿌리며목숨을 걸고 읽고 믿고사랑하고 순종하며묵상하고 암송하며공부하고 가르치던 이 귀한 성경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본문 설명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19편 97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내가 주의 법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요그 법이 종일토록 나의 묵상이 되나이다.” 시편 기록자는 자신이 주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종일토록 생각이 나고 묵상이 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우리에게도 이러한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주님의 말씀이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고 힘이 되어서 또 생각이 나고 또 듣고 싶었던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오늘 우리에게 그러한 마음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세상에 우리를 즐겁게 하고 재밌게 해주는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그러한 모든 것보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더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98절부터 100절까지의 말씀은 주님의 말씀에 어떠한 권능이 있는지를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시편 기록자는 자신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걸어갈 때에자신의 원수들보다모든 스승들보다많은 경험을 가진 노인들보다 더 명철하고 지혜로울 수가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찬양과 간증인 것입니다사람이 자기 꾀와 계략으로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주님의 말씀을 단순히 믿고 순종할 때 가장 지혜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교육할 때 반드시 최우선으로 가르쳐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단순히 성경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성경을 믿는 믿음과 성경을 대하는 태도그리고 순종하는 삶의 습관까지도 철저하게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예언의 책

오늘날 우리 손에 들려진 이 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어진 것일까요성경은 주전 1500년경 모세가 기록하기 시작하여 주후 100년경 예수님의 제자였던 요한이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약 1600년 동안 약 40여명의 기록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총 66권의 책을 엮은 것입니다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시대다른 환경 가운데 살았습니다농부목자,어부의사제사장총리대언자포로 등과 같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평화로운 때나 전쟁의 때포로가 되었을 때에 각기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의 주인공처럼 보여 지는 이스라엘은 성경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또 메시아 예수님의 정통 탄생 계보를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의 혈통으로 정확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담당하도록 선택된 민족입니다.

과거에 성경을 손으로 옮겨 적는 역할을 하였던 서기관들은 매우 엄중하게 이 작업을 하였습니다먼저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고다시 한 글자씩 읽어가면서 한 글자씩 옮겨 적었습니다당시에는 동물의 가죽에 말씀을 기록하였는데,말씀을 다 옮겨 적은 후에는 옮겨 적은 원본과 사본의 글자 알파벳 수를 세어보아서 하나라도 차이가 나면 해당 두루마리 전체를 폐기하였습니다유대인들은 이렇게 철저하고 엄중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신명기 18장을 보시겠습니다신명기 18장 20절부터 22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0 그러나 만일 어떤 대언자가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자기 뜻대로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혹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대언자는 죽으리라하셨느니라.

21 네가 혹시 마음속으로 이르기를께서 이르시지 않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하리니

22 만일 대언자가 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 말씀은 오늘날처럼 완성된 성경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대언자들의 말을 어떻게 들었어야 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오늘날은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면 성경과 비교를 해보면 될텐데요당시에는 비교해 볼 기준이 되는 완성된 성경말씀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분별하는 것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이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면 그 일이 정확히 성취되는가를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씀을 오늘날로 적용해 본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성경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우리는 성경대로 정말 성취가 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다함께 성경말씀 요한복음 5장 39절을 보시겠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예수님께서는 당시 구약성경만을 들고 있던 제자들을 향해서성경 말씀을 탐구하면 나에 대하여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과연 그것이 사실인지우리가 오늘 모든 것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신약성경도 인정하지 않으며오직 구약성경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의도적으로 구약의 말씀이 예수님을 가리키도록 조작을 할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구약성경에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구약성경은 정확히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수많은 말씀들 중에 한 구절만 함께 찾아보겠습니다미가서 5장 2절입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네가 유다의 수천 중에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이 말씀은 영원 전부터 계시고옛적부터 예고되어왔던 이스라엘의 치리자가 유다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을 정확하게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미가서는 약 기원전 700년 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이 말씀 외에도 우리가 다 찾지는 않지만 성경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여자의 씨로서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또 다윗의 자손으로 왕의 혈통으로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또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는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실 것까지도 예언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을 보게 되면 요셉과 마리아 둘 모두가 정확하게 다윗의 계보를 이어받은 후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함께 누가복음 2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절부터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무렵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가 칙령을 내려 온 세상이 조세 등록을 하게 하였는데

2 (이 조세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었을 때 처음 한 것이더라.)

모든 사람이 조세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의 도시로 가매

요셉도 (다윗의 집과 혈통에 속하였으므로갈릴리의 나사렛 시에서 나와 유대로 올라가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도시에 이르러

자기의 정혼한 아내 마리아와 함께 조세 등록을 하려 하였는데 그녀가 아이를 배어 배가 불렀더라.

그들이 거기 있을 때에 그녀가 해산할 날들이 다 차매

그녀가 자기의 맏아들을 낳아 포대기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그들을 위한 방이 없었기 때문이더라.

 

갈릴리의 나사렛에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는 원래 베들레헴에 갈 이유가 없었습니다또 마리아는 이미 만삭의 상태였기 때문에 어디론가 여행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움직이셨고갑자기 조세 등록을 하라는 황제의 명에 따가 모두 자기 혈통에 속한 고향으로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대략 110km 정도 떨어져있습니다낙타를 타고 직선으로 이동을 하였다고 생각해 볼 때낙타의 달리기 속도는 시속 30km에서 최대 60km까지도 낼 수 있지만 만삭의 임산부를 태우고는 불가능한 속도입니다낙타의 걷는 속도로 평균 시속 4km 정도를 잡고하루에 8시간씩 이동하였다고 할 때, 3-4일 정도의 일정으로 가야만 했던 길이었고 중간에 쉬면서 이동을 하였다면 적어도 일주일에서 이주일 가량 걸리는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힘들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지만벌써 조세 등록을 하러 온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여관에는 방이 없었습니다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마굿간에라도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바로 그날 밤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유에서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이러한 모습은 이사야 대언자가 예언한대로 우아함도 아름다움도 없는 볼품없고 천한 모습 그대로입니다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정확하게 성경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만약 마리아가 베들레헴이 도착하기 전날 다른 여관에서 아기를 낳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율법을 어긴 사람을 사형하는 방식은 돌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예수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으실지 수많은 말씀을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한 예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모세가 광야에서 놋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께서도 나무에 매달려 죽으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또한 시편 22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시편 22편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개들이 나를 에워싸며 사악한 자들의 무리가 나를 둘러싸고 내 손과 발을 찔렀나이다.

 

시편 22편은 메시아닉 시편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편입니다특별히 우리가 지금 읽은16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손과 발이 찔릴 것임을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고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나이다.” 이 말씀은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옷을 나누고 겉옷을 놓고는 제비를 뽑는 미래의 모습을 과거형으로 정확히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1절을 보시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나의 하나님이여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외치실 그 말씀을 미리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6절부터 8절까지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

나를 보는 모든 자들이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내밀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그가 를 신뢰하여 그분께서 자기를 건지실 줄로 믿었도다그분께서 그를 기뻐하셨으니 그를 건지시리로다하나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조롱과 멸시를 당하시는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이 말씀들 외에도 예수님께서 털 깎는 자들 앞의 어린양처럼 잠잠하실 것이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또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을 것이라는 예언대로 강도들 사이에서 죽으셨고죽어서는 부자와 함께 하겠다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해 놓은 새 무덤에 묻히셨습니다또한 사랑하는 내 빵을 먹은 자가 발꿈치를 들어 나를 대적할 것이라는 시편 41편 9절의 예언대로 가룟 유다가 정확히 예수님의 빵을 먹고이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발꿈치를 들어 입맞춤으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 대한 예언이 어떻게 정확히 성취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리

성경에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과 성취에 대한 말씀이 가득 들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시간상 다 살펴볼 수가 없고,이제는 말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말씀을 정리하면서 사도 베드로가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 두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먼저 베드로전서 1장 10과 11절입니다.

10 이 혼의 구원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에 대하여 대언한 대언자들이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되

11 자기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께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그 뒤에 있을 영광을 미리 증언해 주실 때에 그 영께서 무엇을 혹은 어느 때를 표적으로 보여 주셨는지 탐구하였느니라.

 

성경은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대하여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우리가 지금 살펴본 예수님의 탄생과 죽으심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해당하는 예언들입니다이 부분의 예언들은 이미 과거에 성취된 것들이므로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예언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미래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그러나 우리는 또한 성경의 여러 말씀을 통해 주님이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그 날이 너무나 가까웠음을 볼 수 있습니다다음에 또 준비가 된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예언도 함께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말씀을 기록하였던 대언자들이 비록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하기는 하였지만자신들도 잘 모르고 궁금해서 부지런히 조사하고 탐구하였다는 사실입니다대언자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내용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불러주시는 말씀을 각 단어와 문장과 표현 그대로를 기록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베드로후서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베드로후서 1장 16절부터 18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6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

17 뛰어난 영광으로부터 이러한 음성이 그분께 나서 이르기를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하실 때에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하늘로부터 나온 이 음성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들은 것이니라.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의 다시 오시는 권능과 영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베드로가 설교하고 전파하는 이러한 내용들은 눈으로 직접 보고또 귀로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입니다베드로는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선택을 받아 예수님과 함께 올리브 산에 올랐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떠한 권능의 모습으로 오실 것인지를 미리 예고편으로 보았고또 모세와 엘리야도 직접 보았던 사람입니다그랬던 베드로가 19절 말씀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대언의 말씀도 있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속에 떠오를 때까지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비치는 빛을 대하듯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니라.

 

베드로는 자기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것은 오늘 우리 손에 들려져 있는 바로 이 성경 말씀입니다예수님을 직접 보고 들은 것보다 더 확실한 이 대언의 말씀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이 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사도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입니다베드로는 우리에게 어둠이 가득한 이 마지막 시대에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세상에 유혹하는 자들과 속이는 자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어떠한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말씀의 빛을 주의하여 바라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말을 외치고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벌써 새해도 보름이나 지나가고 있습니다새로운 한 해 동안에는 작년보다지난주보다어제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03.05.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화요일 채플설교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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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라(시 27:14)

이승선

 

오늘 함께 보실 말씀은 시편 27편 14입니다.

를 바라며 크게 용기를 낼지어다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내가 말하노니 를 바랄지어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용기를 내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다윗의 용기

여러분오늘 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여러분자신의 마음속에 한 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과연 용감한 사람인가나는 용기 있는 사람인가?” 만약 여러분이 나는 용감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면 나의 용기의 기초는 무엇인가?”라고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또 만약 여러분이 나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면역시 나는 무엇을 기초로 용기를 가지는가?”라고 질문해 보시기 바랍니다이 질문을 계속해서 떠올리면서 오늘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다윗이 기록한 시편입니다다윗은 많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 가운데서 용기를 잃지 않았던 믿음의 용사였습니다시편 27편에서 우리는 다윗의 놀라운 용기와 믿음의 고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다윗은 과연 어떤 종류의 용기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먼저 3절을 보시겠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전쟁이 나를 대적하여 일어날지라도 내가 이것을 확신하리로다.

 

다윗의 용기는 주변 상황이나 사건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다윗의 생애는 포위를 당하고추격을 당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다윗은 심지어 군대가 자신을 대적하여 진을 친다할지라도전쟁이 자신을 대적하여 일어난다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믿음의 확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를 버릴 때에 께서는 나를 들어 올리시리이다.

다윗은 심지어 부모님이 자기를 버린다할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다윗의 용기는 오직 주님을 기초로 하였습니다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자신의 지혜나자신의 힘이나친구들이나심지어 부모님을 기초로 하지 않습니다그리스도인의 용기는 오직 주님을 기초로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 섰을 때에나사울의 군대로부터 추격을 받을 때에나블레셋 민족들과의 치열한 전투 가운데 있을 때에나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이 자기를 향해 돌을 들어 던지려 할 때에도심지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성 밖으로 피신을 떠나던 때에도 오직 주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처음 읽었던 14절 말씀에서 다윗의 당찬 믿음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

를 바라며 크게 용기를 낼지어다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마음을 강하게 하시리라내가 말하노니 를 바랄지어다.

 

다윗의 용기는 자기 자신의 강함이나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고오직 주님을 기초로 한 것이었습니다주님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이시기 때문에다윗의 용기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나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까나는 무엇을 용기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까?

 

 

모세의 용기

우리는 성경에서 모세가 40세 때에는 젊은이의 자신감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일하려고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자기 자신의 젊음과 지혜와 힘을 기초로 한 용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가 80세 되었을 때 다시 나타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80세가 된 모세는 자신감도 없고 용기도 없었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다함께 출애굽기 4장을 보시겠습니다출애굽기4장 10절에서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0 모세가 께 아뢰되오 내 나는 말에 능하지 못하나이다지금까지도 그러하였고 주께서 주의 종에게 말씀하신 이후에도 그러하오니 나는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하나이다하매

11 께서 그에게 이르시되누가 사람의 입을 만들었느냐누가 말 못하는 자나 귀먹은 자나 보는 자나 눈먼 자를 만들었느냐나 가 아니냐?

12 그런즉 이제 가라내가 네 입과 함께하여 네가 할 말을 네게 가르치리라.

 

자신감도 없고 용기도 없었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최고의 용기의 말씀이 바로 12절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제 가라내가 네 입과 함께하여 네가 할 말을 네게 가르치리라.” 과거에 모세의 용기는 자신의 능력과 외모에 기초를 두었지만이제 모세의 용기는 오직 하나님만을 기초로 하게 되었습니다이 때에야 비로소 모세는 이집트에 무서운 10가지 재앙도 내리고 홍해를 가르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고서도 여전히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까나는 무엇을 용기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까?

 

 

여호수아의 용기

여러분모세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아시죠바로 여호수아입니다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도 이러한 용기를 주셨습니다여호수아 1장을 보시겠습니다여호수아 1장 5절에서 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평생 동안 능히 아무도 네 앞에 서지 못하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하던 것 같이 너와 함께하리라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내가 이 백성에게 주리라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네가 그들에게 상속 재산으로 나누어 주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심히 용감한 자가 되어 내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모든 율법대로 지켜 행하고 그것을 떠나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말라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하시니라.

 

여호수아의 용기는 자신의 외모나 젊음이나 힘이나 지혜가 아니었습니다여호수아의 용기는 오직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여호수아는 치열한 전쟁 가운데 있으면서 밤낮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용기를 내었습니다.나는 용기를 가진 사람입니까나는 무엇을 용기의 기초로 삼고 있습니까?

 

 

기드온의 용기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사람들의 용기를 볼 수 있습니다우리는 사사기에서 기드온을 발견할 수 있는데기드온은 미디안 족속으로부터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농부였습니다기드온이 숨어서 밀을 타작하였던 이유는 미디안 족속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몰래 숨어서 식량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그러한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사기 6장 12절입니다.

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되너 강한 용사여께서 너와 함께 계시는도다하매

 

기드온은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겁쟁이 농부에 불과하였지만주께서 그와 함께 계실 때 그는 강한 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기드온이 칼싸움을 배우거나체력 단련을 하여서 강한 용사가 된 것이 아니라 주께서 함께 계실 때 강한 용사라 불리게 된 것입니다.

 

 

나의 용기

여러분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쓰셨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십시오하나님께서는 80세 할아버지인 모세를 불러 사용하셨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작은 양치기 소년인 다윗을 사용하셨습니다또 지금 살펴본 것처럼 겁쟁이 농부였던 기드온을 사용하셨습니다그리고 무식한 어부 출신의 제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여러분하나님께서는 대단하고 뛰어난 사람들을 사용하시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그 이유는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용기의 기초로 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이사야 46장을 보시겠습니다이사야 46장 9절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나는 하나님이요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또한 3절과 4절을 보시겠습니다.

오 야곱의 집이여이스라엘의 집의 남은 모든 자여내게 귀를 기울일지어다너희는 배에서부터 내게 안겼고 모태에서부터 내게 업혔나니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라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업으리라내가 만들었은즉 내가 안을 것이요,내가 너희를 업고 건져 내리라.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를 안으시고 업으셨던 분입니다그리고 오늘도 우리를 품으시고 이끄시는 분이십니다그리고 우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머리가 하얗게 백발이 되기까지 우리를 안으시고 업으시고 건져 내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9절처럼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옛적의 이전 일들을 기억하라나는 하나님이요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나니 나는 하나님이니라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우리에게 용기가 되시는 다른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우리의 용기는 돈이나지식이나능력이나외모가 될 수 없습니다그러한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 사라져버릴 것들입니다우리의 용기는 오직 뱃속에서부터 늙어서 백발이 되기까지 우리를 업으시고 안으시고 이끄시는 하나님뿐이십니다.

 

다함께 히브리서 13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13장 5-6절입니다.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그분께서 이르시되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께서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하노라.

 

사람들은 우리에게 실망하고 우리를 떠나갈지라도심지어 나 스스로도 나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낙담할지라도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쁨과 용기의 기초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여러분마음이 낙담될 때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지 마시고오직 나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고 오늘 나와 함께 계십니다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다른 곳에서 도움을 찾기 전에 나를 돕는 분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1.12.28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설교 /로빈29세

 

나를 아시는 하나님(시 139:1-4)

이승선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수요일 저녁입니다올 한해도 우리를 선하게 대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감사합니다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온통 죄와 실패와 허물로 가득하지만그보다 더 큰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우리의 발걸음마다 가득 넘쳤음을 고백합니다오늘도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더 가까이 믿음으로 다가설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39편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오 주여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보소서오 주여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말씀은 다윗이 지은 많은 시들 중에 하나입니다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확실히 아신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내가 앉거나 눕거나 일어서거나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걸어가는 모든 길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알고 계십니다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오랜 경험을 통해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까과연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생각과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요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더 가까이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무엇을 아시는지에 대하여 성경 말씀을 함께 찾아보면서 나를 아시는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먼저 오늘의 본문 말씀인 시편 139편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 주여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보소서오 주여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하여 무엇을얼마나어떻게 알고 있습니까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기도 하였고어떤 사람은 내가 나를 알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떻게 알고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하나님께서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나의 모든 말과 행동나의 모든 생각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머리털까지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아시는지 먼저 마태복음 10장 말씀에서부터 찾아보겠습니다마태복음 1029절에서 31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그러나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그 중의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31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참새들을 아십니다그 중의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는데심지어 우리의 머리털이 몇 개나 되는지를 아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매일 잠을 자고 일어날 때그리고 머리를 감을 때 매순간 빠지고 또 새로 자라는 머리털을 늘 최신의 실시간 데이터로 아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를 너무나 잘 아는 누군가가 우리를 대적하고 우리의 원수가 된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강력한 적을 만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손자병법의 지피지기면 백전불퇴라는 말처럼 우리를 잘 아는 누군가가 우리와 싸운다면 우리는 패배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반대로 우리를 너무나 잘 아는 누군가가 우리의 주인이 되고우리의 인도자가 되고우리의 친구가 되고우리의 보호자가 된다면 우리는 아주 평안하고 즐거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읽은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즐겁고 감사한 말씀입니다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늘 죄를 짓고 실패하는 연약하고 볼품없는 우리를 향해 귀중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관심이 없는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그러나 아무리 정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우리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시는지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31절과 32절을 보시겠습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우리가 무엇을 먹을까우리가 무엇을 마실까우리가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한 줄 아십니다공중의 새들을 먹이시고들의 풀도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수고를 아시는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이것도 알고 계십니다다함께 마태복음 6장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6장 1절부터 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거나 인정해 주거나 칭찬해 주지 않는 우리의 수고와 봉사와 섬김을 모두 아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 친히 드러나게 갚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을 약속해 주고 계십니다.

 

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가 잘 행하고 나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아도 됩니다왜냐하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수고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이와 관련해서 한 구절 더 살펴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2절입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찬 물 한 잔이라도 주어 마시게 하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가 결코 자기 보상을 잃지 아니하리라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찬 물 한 잔이라도 결코 잊지 않고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수고와 섬김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빠짐없이 크게 드러나게 갚아주실 것입니다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했고 얼마나 수고하고 잘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찬 물 한 잔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이번에는 히브리서 4장 말씀으로 가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4장 15절과 16절입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의 머리털 수를 아시고또 우리의 감추어진 수고와 섬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대제사장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대표가 되셔서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모든 심판과 형벌을 감당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목표로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태어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이 느끼는 모든 배고픔과 피곤함과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셔서 아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잘 아시는가 하면 친히 경험해 보셔서 몸소 느끼실 정도로 아신다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시고 시험을 받으셨지만동시에 죄가 없으시고 실패하지 않으신 전능자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완전하게 도우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6절 말씀을 다 같이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긍휼이 필요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용감하게 나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하나님은 우리를 귀찮아하시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도움을 구하기를 원하십니다그래서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기도회로 나와 모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고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기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주님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완전히 승리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완전히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오늘도 우리가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구조를 아시는 하나님

이번에는 시편 103편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십니다이 말씀은 아등바등 치열하게 살아가는 많은 인생의 모습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헛된 것인지를 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그래서 시편입니다이어지는 15절과 1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5 사람으로 말하건대 그의 날들은 풀과 같으며 그가 번영하는 것은 들의 꽃과 같도다.

16 바람이 그것의 위를 지나가면 그것이 없어지나니 그것이 있던 자리도 다시는 그것을 알지 못하려니와

 

이스라엘은 뜨거운 중동 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갈릴리 지방의 여러 산지에서는 봄이 되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핀다고 합니다그러나 뜨거운 열풍이 불어보면 언제 꽃이 피었냐는 듯이 금새 타들어가고 시들어버린다고 합니다아마도 다윗은 이러한 모습을 보며 인생을 표현하였던 것 같습니다사람의 번영사람의 영광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뜨거운 바람이 지나가면 그것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금새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

 

8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읽어보시겠습니다.

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그분은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불쌍한지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우리가 지금까지 올 한 해도 무사히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우리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우리의 불법대로 우리에게 갚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긍휼히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더럽고 추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아주시며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도 살아가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만약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능력이 뛰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난을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우리의 모든 감춰진 수고를 아시며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아시고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십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받는 것을 아십니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성경에 나타난 많은 고난 받은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 다음으로 억울하고 부당하게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도 욥이라고 하는 사람일 것입니다욥은 남들과 비교해 볼 때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너무도 극심한 고난과 고통을 받았습니다하루 아침에 자녀들이 모두 죽고온 재산이 사라졌습니다또 온 몸에 종기가 나서 질그릇으로 몸을 긁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하였고그의 친구들은 와서 죄를 회개하라고 꾸짖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 탄식하고 따져보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도 응답을 주지 않으셨고 침묵하고 계셨습니다결론적으로는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욥이 잘 인내한 뒤에는 자녀들을 다시 돌려받고재산도 처음 있었던 것의 두 배로 크게 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욥기 23장의 말씀은 전체 42장의 말씀에 중간쯤에 등장하는 욥의 고백입니다욥은 과연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의 기간을 어떻게 잘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욥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분께서 아시나니 그분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이 한 가지 사실을 믿었습니다나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가는 길을 알고 계신다하나님께서 나를 단련하신 뒤에는 내가 금 같은 보석이 되어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혹시 우리가 오늘 고난 중에 있고 고통 중에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단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나를 아시는 하나님나의 머리털가지 세신 하나님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나의 감추어진 수고와 봉사를 찬 물 한 잔까지도 기억하시는 하나님나의 연약함을 몸소 느껴 아시고 나의 구조를 아시는 하나님나의 모든 고난과 시련을 다 아시는 하나님.

이러한 하나님을 기억할 때이러한 하나님을 바라볼 때이러한 하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평안 속에 안식하고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를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하나님을 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가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 수만 있다면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 기쁘고 평안할 것입니다.

 

내가 계획하고 내가 구상하고 내가 진행하고 내가 책임지는 인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나의 부족함을 아시고나의 수고를 아시고나의 어려움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이러한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나를 불쌍히 여기시며나를 돌보시고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나를 아시는 하나님이십니까아니면 나를 모르시는 하나님이십니까나를 아시는 하나님이라면우리는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면서 평안하고 기쁘게 하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아니면 믿지 못하고 나의 방법으로 불안하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이 시간 나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올 한해도 우리를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대해주신 것처럼새해에도 우리를 선하게 대하실 주님을 더 믿고 따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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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1.04.17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나의 만족이신 하나님(시 107:8-9)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107편입니다시편 107편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오 사람들이 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을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는도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의 만족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나의 만족이신 하나님입니다여러분참으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만족이 되고 계십니까? (아멘!) 저는 하나님 외에 하나님께서 주신 다른 것들로 인해서 만족을 얻으려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만족이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돈이나명예나권력이나쾌락이나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만족을 얻어보려고 합니다또 하나님을 알고 있는 믿는 사람들도 많은 경우 하나님 외의 다른 세상의 것들을 통해 만족으로 얻어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가지게 될 때 만족하고그 돈으로 가지고 싶었던 것을 살 때 만족하고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 인정을 받을 때 만족하고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만족하고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때 만족하고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만족하고내가 목표로 했던 어떤 일을 달성할 때 만족합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잘 아시는 것처럼 올해 3월부터 대안학교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습니다우리 학생들은 목요일을 가장 좋아합니다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영어단어 시험을 보고 있는데목요일만큼은 전날이 수요일 기도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에 시험이 없는 날입니다그래서 우리 학생들의 행복지수만족도가 가장 높은 날은 아마 목요일인 것 같습니다우리 학생들의 만족은 시험을 안보거나 보충학습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또는 부모님이 공부하느라 수고했다고 용돈을 주실 때 아주 만족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다양한 만족거리들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그렇지만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의 참된 만족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국어사전을 보면 만족이라는 것은 마음에 흡족함” 또는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흡족함을 주시고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하게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만족이 되실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하늘 아버지이시며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이 공급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고오직 심판과 멸망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 보혈을 통한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생명의 호흡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오늘 우리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만나면서 마음에 기쁨을 얻고 흡족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만족이십니다.

 

 

참된 만족이 될 수 없는 것 1 - 보고 듣는 것

오늘의 본문 말씀인 시편 107편 8절과 9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오 사람들이 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

그분께서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혼을 선하심으로 채워 주시는도다.

 

시편 기록자는 우리들의 주의 선하심과 우리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혼에게 만족을 주시고 주린 혼을 선하심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우리의 만족이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먼저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될 수 없는 것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첫 번째로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다함께 성경 몇 부분을 찾아보시겠습니다먼저 잠언 27장 20절입니다. “지옥과 멸망이 결코 가득차지 아니하는 것 같이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하지 아니하느니라.”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그 동안 지구상에 살았던 사람의 수를 계산해 볼 때 지옥은 아마 가득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지옥과 멸망이 결코 가득 차지 아니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그와 같이 사람의 눈도 결코 만족하지 아니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날마다 새로운 것을 보고더 자극적이고 더 신비한 것들을 눈으로 본다할지라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잠언 뒤에 있는 전도서도 보시겠습니다전도서 1장 8절입니다.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도 동일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는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재미있는 것을 보고 듣는다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은 만족되지 않습니다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사람의 마음은 외적인 즐거움으로 채워질 수 없습니다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오직 하나님 자신으로만 가득 채워 질 수 있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참된 만족이 될 수 없는 것 2 - 

첫 번째로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두 번째로 사람은 돈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다함께 디모데전서 6장을 보시겠습니다디모데전서 6장 5절부터 10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니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 되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느니라.

10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성경은 이득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돈이 되고 이득이 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고손해가 되고 이익이 안된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지금 우리에게 주신 것들로 만족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돈을 더 벌고재산을 더 모아서더 부유하게 되어서 재산으로 만족하려고 하지 말고지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돈과 이득을 따르는 사람입니까아니면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까돈은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만족이십니다.

 

우리는 돈에 대해서 성경의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또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성경의 가치관바른 물질관을 우리 자녀들에게 심어주어야 합니다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물질 만능주의의 세상적 가치관을 가르치지 말고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합니다오히려 가난하게 되는 길이라 할지라도손해를 당하는 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우리의 재산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우리의 보물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사람은 돈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사람은 외적인 무엇으로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사람은 오직 하나님과 만나고 교제하며 동행할 때 가장 행복하며 만족할 수 있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으로만 만족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다함께 빌립보서 4장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4장 11절부터 13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지 아니하노라내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대로 만족하는 것을 내가 배웠노니

12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당하는 것을 배웠노라.

13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비천할 때도 있었고 풍부할 때도 있었습니다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풍부하거나 궁핍한 때도 있었습니다사도 바울은 이러한 삶의 순간들을 통해서 오늘 나의 만족이 되시며 나의 강함이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고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나의 강함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원하십니다오늘 우리에게 닥친 배고픔과 비천함과 궁핍함의 환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만족이 되신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무 생각이나계획이나목적이 없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에게 궁핍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목자가 돈이 아닌 하늘 아버지이심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하나님께서 때로 우리의 건강을 약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겸손히 낮추시고 우리의 강함이 되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환경을 가져가시고 어려움과 고난과 시험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모드 환경과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과 만족을 맛보게 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오늘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은 우리의 강함이 되시고우리의 지혜가 되시며우리의 요새가 되시고우리의 방패가 되시며우리의 모든 것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풍성히 주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인 것입니다.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오늘의 본문인 시편 107편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시편 107편 우리는 반복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그 중에 한 가지는 우리가 고나 중에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1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또 19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또 28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고난 중에 주께 부르짖으매

 

이렇게 우리는 인생길이 즐겁고 축복이 넘칠 때는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다가 먹구름이 몰려오고 고난이 오게 되면 두려워 떨면서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 사람들입니다오늘 우리에게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우리를 주님께 가까이 이끌어 참된 만족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심 손길입니다우리가 어려운 환경에만 얽매어 있지 말고 우리에게 참된 만족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17절을 한 번 보시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자기 범죄와 불법들로 인하여 고난을 받나니

우리가 오해라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우리들을 괴롭히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오늘 우리가 당하는 많은대부분의 어려움들은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범죄와 불법으로 인해 당하는 것들입니다때로는 우리가 의로운 자로서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당하는 것입니다.

 

대안학교를 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학생들이 벌을 받고 혼날 때분명히 자기가 잘못해서 벌을 받으면서도 억울해 한다는 사실입니다이것을 재미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그 동안 잘못한 것들을 오래 참아주고 말로 가르쳐주고 경고하다가이제는 벌을 주어서라도 바로 잡고 고쳐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벌점을 주고 벌을 주게 되면,자기가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뉘우치기보다는 먼저 억울해 하는 모습을 볼 때저는 학생들의 모습 속에서 아주 똑같은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우리를 도와주셔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습니다심지어 우리가 죄 대문에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 할 의무도 없으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죄로 인해 당하는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도와주시며 구원해 주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모릅니다하나님께서 죄가 많고 더러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고난과 문제가 가득하다는 것은우리의 죄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그리고 또 한편에서는 그만큼 주님의 긍휼이 가득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빈다시편 107편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오 께 감사하라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긍휼은 영원하도다.

 

우리에게 약함이 있고어려움이 있고고난이 있을 때 주님께 감사하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선하시며 하나님의 긍휼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선하신 하나님강하신 하나님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주시는 것으로 인해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기 원합니다심지어 우리가 부르짖기도 전에 미리 먼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세심하게 예비해 주시는 여호와이레 하나님께 감사하기 원합니다.

 

 

선하심과 긍휼

저는 오늘 우리의 만족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특별히 저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인해 가득 채워지고 충만해지는 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에 대해 묵상할 때입니다제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생각할 때그리고 이러한 저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이 어떠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 제 마음은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고 기쁨과 감격으로 인해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다함께 시편 23편을 보시겠습니다시편 23편은 선한 목자이신 주님으로 인해 만족하는 어린양의 노래와 같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의 말씀 중에서 저는 오늘 특별히 6절을 주목해 보기 원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내 평생에 우리를 따라오는 것이 주님의 정의와 심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처럼우리는 이미 죽어서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이 걸러온 발자취를 되돌아 볼 때 죄와 교만과 거짓과 어리석음으로 가득하지만그 뒤에는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이 신실하게 우리를 따라오며 우리를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오전 야곱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다음과 같은 야곱의 고백이 감동으로 마음에 남았습니다창세기32장 10절인데같이 찾지는 않겠지만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보여 주신 모든 긍휼과 모든 진리 중 가장 작은 것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르단을 건넜으나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을 빼앗은 자였습니다형의 복수를 피해 도망을 가던 야곱은 자기의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야곱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같이 죄와 고생으로 가득한 우리의 인생에도 먼저 찾아와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는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날마다 신실하게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또한 오늘의 본문인 시편 107편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자신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며 멸망들에서 그들을 건지셨도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고난과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자신의 말씀으로 우리를 고치시며 위로하시고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시편 107편 8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오 사람들이 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 이 구절과 똑같은 말씀이 시편 107편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15, 21, 31절에서도 계속해서 오 사람들이 의 선하심과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행하신 그분의 놀라운 일들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노라!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곤고하고 메마를 때주님의 선하심과 나에게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나에게 배풀어 주신 모든 감당할 수 없는 긍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해 보시기 바랍니다이내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정리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그분께서 이르시되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우리의 만족은 무엇인가를 보고 듣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만족은 돈도 아닙니다우리의 만족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고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의 만족은 언제가 우리에게 선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의 만족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동행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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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0.07.25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http://robinbox.net

 

내가 사모할 자(시 73:25-26)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73편입니다시편 73편 25절과 26절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내 마음이 쇠약하오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영원토록 내 몫이니이다.

 

오늘 저는 내가 사모할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아삽

오늘 우리가 침례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에 대한 귀한 간증을 듣고 주님을 함께 찬양했는데요주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시편 73편을 통해서 아삽이라는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고자 합니다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볼 때, “시편 73편처럼 성경의 한 챕터 전체에 걸쳐서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기록해 놓은 간증문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은 매우 흥미진진한 간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그러면 먼저 간증을 살펴보기 전에 이렇게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간증문을 기록해 준 아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도대체 이 아삽이 누구길래 이렇게 시편도 기록했을까요?

 

다함께 역대기상 16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역대기상 16장의 상황은 다윗 왕 시대에 석 달 동안 오벳에돔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주의 언약궤를 다시 다윗의 도시로 옮겨오고 나서 큰 축제를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이제 4절을 보시면, “또 그가(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을 임명하여 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는데 그 우두머리는 아삽이요...”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레위 지파의 찬양 대장이 바로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입니다.

 

또한 역대기상 16장 37절을 보시면 이처럼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거기에 의 언약 궤 앞에 남겨 두어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필요한 일에 따라 그리하게 하였고

또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역대기상 25장에 보면 그 장 전체가 다윗 시대의 음악가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요아삽의 네 명의 아들들까지도 왕궁의 찬양대에서 심벌즈와 비파와 하프를 연주하기도하고노래를 부르기도 하고또 대언을 하기도 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아삽이라는 사람은 왕이 직접 임명한 왕궁의 찬양 대장이기도 했고주의 궤 앞에서 섬기는 직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그의 아들들까지도 찬양대를 함께 구성할 만큼매우 신실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과연 이런 사람에게 어떤 고민거리나 간증거리가 있을까요직업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고그 월급은 왕이 보장해주고또 자녀들도 함께 그 일을 하면서 가정도 아주 화평할 것으로 보이는 아삽인데요... 아삽이 그냥 특송 한곡을 부르고 내려갔을지아니면 과연 무슨 간증을 했을지한번 시편 73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실족할 뻔

시편 73편 1절부터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곧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도다.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내 발은 거의 지나갈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이로다.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섬겼던 아삽이 지금 매우 뜻밖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조금 쉽게 풀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게 맞습니다맞는데그런데내가 보니까 꼭 사악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 같고어리석은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얼마나 부러운지... 하나님은 오히려 나같이 마음이 깨끗한 자는 너무 신경도 안 쓰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거의 실족할 뻔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있으시죠저도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주님께 나의 온 일생을 전폭적으로 드린답시고 이렇게 걸어온 길이 정말 잘된 것인가그런데 현재 나의 모습은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없지 않은가나는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모아놓은 돈도 없고... 도대체 나는 뭔가?”

때때로 세상 사람들을 보면 정말 사악하게 행하면서도 번영하고 또 어리석게 행하는데도 잘 나가는게 신기하고 부럽게 보이기도 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4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조이는 끈이 없고 오히려 힘이 강건하며

다른 사람들같이 고난 중에 있지도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같이 재앙을 당하지도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사슬처럼 그들을 두르고 폭력이 옷처럼 그들을 감쌌도다.

그들의 눈은 기름져서 솟아오르고 그들이 가진 것은 마음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으며

그들의 부패한 자로서 학대하는 것에 관하여 악하게 말하고 거만하게 말하며

 

아삽이 살던 시대의 세상이나 오늘날의 세상이나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하나님과 동행하던 다윗이 통치하던 세상에도 이랬는데오늘날의 세상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오늘날 우리는 성실하면 손해를 보고정직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사납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고공격적이지 않으면 피해를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억누르고 일어서야만 하는 삭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선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고난과 시련이 닥쳐오고악하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번영과 재물이 넘치는 같은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남을 불쌍히 여기고 자기 것을 베푸는 사람은 점점 가난해지고오히려 남을 괴롭히고 빼앗는 사람은 점점 번영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아삽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속이 상하고 믿음이 실족할 뻔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보라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 이렇게 이 세상은 뭔가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므로 수많은 불신자들이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드셨는가?” 또 많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번에 기도도 열심히 하고교회도 잘 나왔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을 주시지 않고 고난만 계속 주실까?” 저도 최근에 그런 생각을 좀 했었는데요. “왜 다른 집들은 다 집이 잘 빠져서 이사를 가는데 왜 우리 집만 안 빼주시나지금 얼마나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은데지금 다음 달이 결혼인데 왜 그걸 안해주실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있습니다.

 

우선 계속해서 13절부터 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무죄함 속에서 씻은 것이 참으로 헛되니

14 내가 종일토록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계를 당하였도다.

15 내가 만일 이르기를내가 이렇게 말하리라하면보소서내가 주의 자녀들의 세대를 향하여 죄를 지으리이다.

 

제 생각에는 왕궁에서 임명한 찬양 대장이라면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 같은데 무슨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나하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요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말 솔직하고 또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진짜 인생 헛살았다매순간 주님만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하는게 다 무슨 소용이야?저기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다 잘나가는데나는 무슨 아침마다 종일토록 고생이고... 차라리 나도 죄짓고 즐길거 다 즐기고 사는게 낫겠네.”

 

이제 아삽이 아주 그냥 갈 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우리도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부당한 일을 당할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사악한 자들이 잘되고 번영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믿음을 저버리고 내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살고자 할지라도 이내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공허하고 어둡고 답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지고 만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외에 다른 세상의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습니다.

 

다함께 시편을 손가락으로 끼시고예레미야 애가 3장 22절과 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의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하였나니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은 끝이 없도다.

23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은 크시나이다.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며 부러워했던 아삽에게는 하루하루가 재앙과 같았고 아침마다 징계를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던 예레미야에게는 하루하루가 주의 긍휼과 불쌍히 여기심이며 아침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소멸되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긍휼이며 불쌍히 여기심입니다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인 것입니다이렇게 아삽이 분을 내며 차라리 죄를 맘대로 지으며 사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아삽을 불쌍히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얼마나 긍휼로 대하셨습니까자기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내어주시기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셨기에 우리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종말

다시 시편 73편으로 돌아오셔서 16절부터 20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6 내가 이것을 알려고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너무 심한 아픔이 되었는데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분명히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그들을 던지사 파멸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19 그들이 어찌 그리 순식간에 황폐하게 되었나이까그들이 두려움으로 완전히 소멸되었나이다.

20 오 사람이 깬 뒤에 꿈을 멸시하는 것같이 주께서 깨시면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아삽은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마음에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 비교하자니 나의 삶이 너무나 비참한 것 같고그렇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믿음을 저버리자니 그것도 마음이 힘들고양쪽에 끼어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마음의 큰 답답함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비로소 자신이 부러워했던 사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성경에 경고되어있던 그대로 심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지난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저는 어쩌다가 꿈속에서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깨워서 못 먹은 적이 있습니다또 한 번은 제가 꿈에서 카레이서가 되어서 경주를 시작하고 있는데계속 시작만하고 차가 출발을 안하는 겁니다그때 깨고 보니 울렸던 알람시계가 자동차 모양으로 계속 경주 시작하는 소리만 나는 알람이었습니다아무튼 꿈은 그냥 깨면 사라져 버립니다.

지금 아삽은 사악한 자들의 번영이 바로 그렇게 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번영과 재물과 형통함이 마치 허상과 같아서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삽의 돌이킴

이제 21절부터 2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1 이와 같이 내 마음이 괴로우며 내가 내 속 중심에서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어리석고 무지하므로 주 앞에 짐승 같았사오나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권고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받아주시리니

 

아삽은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면서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재물을 불리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실족할 뻔하였습니다아삽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다시 주님을 찬양하고기도하며하나님의 말씀을 듣고형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먼저 그는 꿈처럼 사라져버릴 이 세상의 헛된 영광과 재물을 갈망했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 괴로움과 찔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아삽은 자기 자신을 어리석고 무지한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이것은 짐승들이 먼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특별히 양 같은 경우는 풀을 먹을 때 뿌리까지 다 씹어 먹는다고 합니다뿌리를 남겨둬야 그 윗부분이 다시 자라서 다음번에 올 때 또 다시 풀을 먹을 수가 있는데이 어리석고 무지한 양들은 현재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뿌리까지 다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주고 계시는데어리석은 우리는 현재의 안락한 삶과 행복과 재물과 영광을 위해 시간을 다 허비하여영원한 영광을 거두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던 아삽은 24절에 나온 것처럼 주님께서 현재 자신을 주의 권고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하나님께서 마치 사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번영하도록 인도하시고자신은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생각했었는데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의 권고로 인도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우리도 때로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가정말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불같은 시련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주의하여 보고 계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드는 과정 중에 가장 질그릇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바로 질그릇을 불에 구울 때라고 합니다가장 정확한 시간에 불 가운데서 꺼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 보고 있다고 합니다오늘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시고자 하는 토기장이의 부드러운 손길임을 이해해야 합니다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좋은 것을 주시며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기 원합니다.

 

또한 24절 뒷부분에서는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받아주시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바로 이 영광이 우리가 도착하게 될 종착점입니다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참된 안식과 영광입니다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번영과 성공은 잠시 잠깐 뿐이지만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비록 현재는 고난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결국 우리가 가게 될 종착점은 안식과 영광인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내기 원합니다우리가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할 때하나님은 불공평한 것 같고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하시는 것 같지만우리가 영원을 생각할 때 오늘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영원한 그림을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처럼우리도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오늘의 고난 속에서 용기를 내고 힘을 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가 사모할 자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의 말씀, 25절과 26절에 이르렀습니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내 마음이 쇠약하오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영원토록 내 몫이니이다.

 

만약 아삽이 항상 번영하고 형통하고 성공했다면 이런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만약 아삽의 마음에 너무 심한 아픔이나 괴로움이나 찔림이 없었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아마도 아삽은 이 세상에 사모할 만한 수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었을 것입니다처음에는 아삽도 세상의 재물과 번영을 사모했을 것입니다세상에서의 성공과 형통함을 갈망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는 주 외에 사모할 자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삽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셔서 아삽으로 하여금 오직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주님만 사모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비록 육체와 마음이 쇠약할지라도 하나님을 마음의 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세상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영원한 자신의 몫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도 이러한 고백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가 있습니다오늘 주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키실 수가 있습니다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이나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오늘 아삽이 시편을 통해 고백한 간증과 같이 우리도 오직 주님만 사모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73편의 마지막 구절을 한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내게 좋사오니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밝히 보이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기 원합니다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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