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11.08.28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미 6:8)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미가서 6장입니다. 미가서 6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읽는다.)
오 사람아, 그분께서 선한 것을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세상 사람들은 인생에서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줄을 잘 서야한다는 말은 인맥을 잘 형성해서 필요한 사람들, 또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아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네... 여러분은 줄을 잘 서고 계십니까?
제가 지금부터 4명의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볼 텐데요, 이 사람들 중에 여러분이 한 명을 선택해서 평생을 함께할 수 있다면,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번 빌게이츠, 네 세계 최고의 부자입니다. 2번 김연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스포츠 스타죠? 3번 오바마, 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권력자입니다. 4번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예수님. 여러분은 이 넷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네, 오후에 아무래도 피곤하시기 때문에 잠을 좀 깨시라고 드린 말씀이구요. 오늘 오후시간에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가 읽은 미가서 6장 8절 말씀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바로 우리가 의롭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지셨던 4글자의 별명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1장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장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예수님의 별명이 무엇이죠? 네, 바로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또 죄로 인해 타락했던 사람을 다시 십자가의 피를 통해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광야로 이끄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출애굽기 29장 46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온 주 그들의 하나님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나는 주 그들의 하나님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려고 그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계시록 21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 최종적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시겠습니다. 계시록 21장3절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바로 우리와 교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신 이유도 그들 가운데 함께 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신 이유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 역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다면, 그것은 가장 행복하고 값진 인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 원수 같았던 형제들을 사랑하고 또 수많은 생명을 기근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과 살아계심을 온 세상에 보일 수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도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 거대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고, 기드온도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 300명의 용사로 바닷가의 모래 같은 미디안 백성을 대항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그러한 인생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에 가장 잘 맞는 행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저는 잠시 동안 우리가 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요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며, 또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야말로 가장 행복하며 형통하며 승리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 성령 충만한 삶,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어떠한 삶인지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이렇게 3가지 분류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정에서
먼저 가정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베드로전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절부터 6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여도 그들 또한 말 없이 아내의 행실을 통해 얻고자 함이니
2 두려움이 동반된 너희의 정숙한 행실을 그들이 눈여겨보느니라.
3 너희가 단장하는 것은 머리를 땋고 금으로 치장하며 옷을 차려입는 그런 외적 단장으로 하지 말고
4 오직 마음에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즉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그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5 옛적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主)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너희가 잘 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사라의 딸들이 되느니라.
영적인 아내는 육신적인 남편에게 책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고, 말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정숙한 행실을 가지는 아내입니다. 영적인 아내는 외적으로 단장하기보다 마음에 감추어진 속사람을 온유하고 조용한 영으로 장식하는 아내입니다.
아내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따라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아내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다시 돌이켜지고 얻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들이대는 아내보다 말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내의 삶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내는 가정에 신실한 아내입니다. 때로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고 교제하는 일이 바쁠 수 있지만, 가정에서 남편과 자녀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이 더 우선적이고 영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을 버려두고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삶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7절을 보시겠습니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아내와 동거하고 그녀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편은 기도하는 남편입니다. 영적인 남편은 아내를 더 약한 그릇으로 여기고 존중하는 남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남편은 아내의 약함을 기꺼이 담당하고 책임지는 남편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된다고 해서 마치 독재자처럼 군림하고 명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편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의 모습을 예수님과 교회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고 돌보며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이 남편은 더 약한 그릇인 아내를 돌보고 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편은 가정에 신실한 남편입니다. 남편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또 가정에서부터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는 가정예배를 가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집사나 목사의 자격에 대하여 기록할 때에도 아내와 자녀들을 신실하게 다스리고 양육하는 자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남편은 가정의 식탁에 빵을 가져오도록 신실하게 일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제 에베소서 6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3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는 자녀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는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녀는 단순히 부모님이 시키시는 것만 지키는 자녀가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자녀입니다.
우리의 자녀가 정말 자녀다운 자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바로 다음 구절인 4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너희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성경은 자녀교육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모님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할까요? 하나님과 함께 걷는 부모님은 자녀에게 자신의 기준이나 요구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영적인 부모는 자녀를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다만 자녀를 맡은 청지기로서 우리의 자녀가 주님께서 기쁘게 사용하실 수 있는 귀한 그릇이 되도록 양육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의 미래나 진로를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묻고 찾아야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자녀를 주님의 일꾼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리에 나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의 새로운 지체들과 교제를 하며 섬기는 일도 매우 중요한 주님의 사명이지만,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자녀들이야말로 우리가 섬겨야 할 가장 귀한 영혼입니다.
또한 부모는 자녀가 잘못할 때마다 신실하게 회초리를 때려야 합니다. 다함께 잠언 13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회초리를 아끼는 부모는 자녀를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가 아직 어릴 때에 징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뿐 아니라 적절할 때에 회초리를 들어 징계해야 합니다. 절대 손으로 때리거나 인격적인 모욕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내가 가장 귀하게 섬기고 돌보아야 할 영혼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잘못하였을 때, 피곤하거나 귀찮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그 잘못에 대해 분명하게 경고하고 매를 때려야 합니다. 또한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들고 징계하는 것 이상으로, 다정하고 부드럽고 따스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부모는 반드시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신명기 6장 말씀은 부모가 집에 앉았을 때나, 일어날 때나, 길을 걸을 때나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예배의 시간이 얼마나 엄중한 시간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내가 듣기 좋은 말씀을 듣는 시간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엎드리며 경배하는 시간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시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숨을 쉬고 살아 있다면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 하는 시간인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예배의 소중함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의 태도를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하고 있지만, 주일학교는 부모님을 도울 수 있을 뿐이지, 결코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믿음을 전수하고 가르쳐야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지금 저희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가정 안에서의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교회 안에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사는 사람은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눈으로 지체들을 바라봅니다. 자기의 기준과 자기의 선호도로 지체들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지체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나와 자주 교제하는 사람만 편애를 하고 분파를 짓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닙니다. 나와 잘 맞는 지체에게 잘해주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친절한 지체에게 따듯하게 대하는 것은 육신 안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목자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제부터 목사님께서 직접 하시기 힘든 말씀을 제가 조금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사님을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교회의 감독자로서 교회 안에 모든 섬김을 감독하고 지시하며 인도하는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이 권위는 목사님이 스스로 가진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목자장이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목자로서 양들을 먹이고 돌보며 인도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교회 안에서 목사님과 친밀히 연결되어 교제하며 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목사님의 가르침이나 지시가 성경과 반대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대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가족들 간의 문제나, 직장의 문제나, 사업의 문제나 또는 진로의 문제까지 목사님과 함께 교제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게 될 때 그 길은 정말 안전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 안에 있는 양들을 돌보고 섬기라고 세우신 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나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목사님의 권면이나 교제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로운 직장을 구하실 때나, 새로운 일을 하실 때나, 새로운 길을 결정하려고 할 때 먼저 반드시 목사님과 투명하게 교제하시고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나서 복주시라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시지 말고, 결정하시기 전에 꼭 교제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과 섬김은 감독의 통제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기 돌보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일학교, 중고등부, 찬양대, 애찬, 교회청소, 교제모임, 성경공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섬김은 목사님의 감독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섬김은 그것이 아무리 유익했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일을 섬기기 원한다면 반드시 감독의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네, 또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교회의 모든 집회에 신실하게 참석하는 삶입니다. 교회의 집회는 내가 드리고 싶고 내가 유익한 말씀을 들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고 주님을 섬기러 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교회의 모든 모임에 신실하게 참석해야 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목적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오후까지 남으셔서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합니다.
일터에서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일터에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터는 직장인들에게는 직장이 될 수 있고, 또 학생들에게는 학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함께 디도서 2장을 보시겠습니다. 디도서 2장 9절과 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종들에게 권면하여 자기 주인들에게 순종하게 하며 모든 일에서 그들을 매우 기쁘게 하고 말대꾸 하지 말게 하며
10 훔치지 말고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서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의 교리를 빛내게 하려 함이니라.
직장인은 업무를 통해서, 또 학생은 공부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리를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자기의 맡은 일을 충성스럽고 신실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돈을 받고 일하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것은 주인의 돈과 시간을 훔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의무적인 최소한의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고용한 사람을 매우 기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학생들은 선생님을 기쁘게 하는 학생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복음을 전하기에 반드시 필요한 간증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리를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세상일이나 세상의 공부를 다 멈추고, 성경만 읽고 복음만 전하는 그러한 삶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무엇인가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상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정리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일터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은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하는 삶이 아닙니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직장인으로서, 학생으로서, 교회의 형제자매로서, 어떠한 교회의 섬김을 맡은 자로서, 각자 맡은 위치 안에서 일상적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모습이 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걷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아내로서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남편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부모로서 하나님과 걷고 있습니까? 또 우리는 자녀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가족은 너무나 화목하고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양무리 안에서 목자의 돌봄을 받고 있는 양입니까? 또한 우리는 교회의 모임에 신실하며 모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 모든 지체가 이러한 교회 생활을 한다면 우리 교회는 너무나 행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일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교리를 빛내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여태까지 우리의 삶이 어떠했다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다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