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13.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영광의 하나님(엡 1:17-19)

본문 : 에베소서 1장 17-19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1장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늘 저는 이 말씀으로 "영광의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부제목을 달아보자면 우리가 지난 3주간 설교말씀을 들은 것과 같은 주제로써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달아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옛날 옛날에 어떤 농부와 나무꾼과 어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신이 있다면 그분은 어떤 분일까 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나무꾼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들 신은 분명히 산에 계셔. 자네들 이른 새벽에 나무하러 산에 올라가 봤나? 아침에 자욱하게 안개 낀 숲 속에서 나무를 하고 있으면 그 공기만으로 신을 느낄 수가 있어. 어쩔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단 말야. 나도 모르게 내가 저지른 죄들이 막 떠올려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거든. 그리고 산신령이라고 들어봤지? 아무튼 신이 있다면 산에 있을 거야."

그러나 어부가 대응합니다. "어허,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바다의 신이지. 용왕님이라고 들어봤지? 그리고 서양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부른다구. 산신령은 우리나라에만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바다의 신이 그야말로 진짜 신이지. 신이 있다면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파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다의 신이 분명해.

그러자 잠잠히 듣고 있던 농부가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눈을 들어서 하늘을 좀 보게나.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있겠어? 신이 있다면 바로 태양신이지. 아니 빛이 없으면 곡식도 자랄 수가 없고, 산에 나무는 물론이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갈 수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자네들 공부 좀 해보면 알겠지만 이 바다에 바람이 불고하는 것도 다 태양신이 이 땅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지. 비오는 것도 결국 다 태양신이 하는거야.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아라고 부르잖아. 하여간 무식하면 안된다니까."

이렇게 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해봤지만 결국 정답 없이 서로의 생각만을 주고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늘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경험과 관념에 빠져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알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지각의 눈을 밝히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권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게 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기도와 같이 "주님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 영광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친절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많은 특징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광이란 하나님께서 태초에서부터 영원까지 계획하신 시작이요 결말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의 소원은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었으며, 사무엘상 4장에서 비느하스의 아내는 주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의 궤를 빼앗겼을 때 주의 영광이 떠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구구절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으며, 이사야 6장에서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사람의 죄가 창조주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고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린 것에서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면 이 세상 왕국들을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다가올 영광을 보시고 십자가의 수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시며 견디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우리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아주 짧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 이곳저곳을 살펴볼 때 "영광"이라는 주제는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에 힘이 없고 잠든 것 같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구원 - 영광을 향한 경주로의 초대

사람들에게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이요, 지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관점에서 죄의 대가가 형벌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영광의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인용하는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을 조금 더 풀어서 써보자면,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의 멸망에 처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화살이 표적을 벗어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영광이라는 표적을 향해 활을 당겼는데 인간의 죄로 인하여 표적에서 빗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다만 멸망할 죄인을 지옥에서 건져낸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실격처리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달릴 수 없게 된 우리들의 위치를 회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끝이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요 출발인 것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계획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을 가리켜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벧전 5:10).

또한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위치는 예정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부르심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의롭게 된 것이며, 다만 의롭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목적은 바로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게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에 성공하여 재벌이 되어서 그 영광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어 국민의 영웅이 되고 모든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영광을 누리고 싶어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수나 영화배우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환호를 한 몸에 받는 영광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 뿐 아니라 때론 매우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와, 당신은 매우 성실하군요.", "당신은 정말 깔끔하군요.", "당신은 정말 책임감이 강하군요.", "당신은 아주 순수하시군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영광스러워하고 때로는 그러한 영광, 칭찬, 평가를 얻기 위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악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결승전을 치르지 않은 어떤 우승후보가 벌써부터 금메달을 딴 것처럼 미리 기뻐하는 것같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것은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시상해 주실 것이지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경주하는 동안에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경주를 다 달린 후에 주어지는 것이지 경기 중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경기를 달리는 중간 중간 관중들을 바라보고 멈칫하고 주춤한다면 그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일들을 섬기려고 한다면 이렇게 주변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

저는 오늘 말씀의 부제목을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정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지옥과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인식한 사람만이, 예수님이 필요한 것을 알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 얼마나 절실한지를 분명히 알 때만이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한 젊고 유능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주 똘똘하고 계산이 빠른 형제였습니다. 또한 이 형제는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한 일주일 하다가 그만두는 일도 이 형제는 일 년이 지나도록 지속하고, 남들이 대충대충 넘어가는 일도 꼼꼼하게 따지고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는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무슨 훈련을 받아서 이렇게 된게 아니라 그냥 천연적으로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훌륭한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스스로 느끼기에 십자가가 별로 필요 없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무엇을 할 수 없는 육신이어야 십자가가 필요하지, 성경공부면 성경공부, 구령이면 구령, 설교면 설교, 교회봉사면 교회봉사, 아주 다방면으로 교회의 지체들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못하는 게 없으니까 육신이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이 상당히 멀리 느껴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이 형제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갈망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의 기도에 "아멘!" 응답하시고 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영원한 목적이 바로 영광스러운 교회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그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가죽옷이라든지, 아벨의 피의 제물이라든지, 유월절 어린양이라든지 하는 많은 예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예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것들이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해 죽임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아담이 자신의 아내인 이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의 잠을 통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남편이신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을 통과하는 모습을 미리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리가 유의하여 볼 것은 이 때 아담이 이브의 죄를 씻기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브가 존재하지도 않을 때에, 이브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죽음의 잠을 통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만약에 사람에게 죄의 문제가 없었다할지라도 이미 영원 전부터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계획하고 계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치료책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계획하고 계셨던 영원한 목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지혜와 영광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타낼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 10절과 11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그 목적은 그분께서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11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또한 21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또한 에베소서 5장에서는 25-2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2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다만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목적하신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신부인 교회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기를 목적하셨습니다.

이제 이 형제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형제의 목적은 다만 "내가 주님이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섬겨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지"하는 개인적인 이유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형제는 이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지체들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기도하고 책보고 성경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던 이 형제는 이제 교회의 지체들과 어울리고 함께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왜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알려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의 영적인 성장만을 생각하던 이 형제가, 교회의 전체적인 하나됨과 성장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섬겨야할 일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한 섬김의 빈자리들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섬기는 힘의 근원은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던 이 형제는 어느 날 이상하게도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주님을 섬기고 나서 은혜로 가득 차야할 그의 마음은 오히려 그와 같이 섬기지 않는 지체들에 대한 못마땅함과 정죄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과 같이 주님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지체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지고 딱딱하며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지체들이 이 형제를 칭찬하면서 하나님께서 귀한 형제를 우리교회에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되찾아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형제는 자신이 지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을 발견하였고, 또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사람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더욱 뜨겁게 지체들을 사랑해야할 판에 교회를 섬긴다고 많은 열심을 부리고 나서 오히려 지체들을 향하여 차갑고 비판적이며 못마땅한 마음이 가득한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더욱더 겸손히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모든 일들을 잘 섬기고 나서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훔쳐오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열심을 부리는데 왜 지체들을 더 미워하게 될까요? 하나님, 제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데 왜 주님을 섬길수록 주님의 영광을 훔치는 자가 될까요?"라고 기도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너가 육신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너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오히려 교회를 더욱 미워하게 된다. 너가 육신으로 주의 영광을 위할 때, 너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때, 오히려 자신의 영광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 자신 안에는, 너의 육신 안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며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선한 육신이든, 성경지식이 가득찬 육신이든, 성실한 육신이든,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계십니다.

또한 로마서 8장 8절에서는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지혜로운 육신이든지 상관없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할 수 없는 육신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또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과 경배를 탈취하는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무리 좋고 선할지라도 우리가 이 육신을 십자가로 넘겨서 처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양육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꿀꺽꿀꺽 집어삼키며, 이기적이고 교만한 왕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에베소서 1장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7-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고 처음 위치를 회복한 우리들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선발되어 경기장에 들어온 선수들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로서, 모든 지체가 주님의 몸으로서 다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경기하는 한 팀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 받으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장차 하늘에서 영광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광을 받을 장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철저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의 영광을 구한다면 장차 하늘에서 받을 보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보상을 받았느니라"(마 6:2).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잠깐의 칭송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게 되면 내가 의도하지 않게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져야할 영광을 탈취하여 나 자신을 드러내고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주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섬길 때에만이 우리는 모든 일을 섬기고 나서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침례자 요한이 고백한 것과 같이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육신이 처리된 사람만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에 넘겨진 사람만이 오직 100%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을 다시 보시면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에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지극히 크고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시며 자신의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길 때에만이 온전하며 모든 일을 다 섬기고 난 뒤에 내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십자가 아래에서 이루어진 섬김과 수고들을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인 적도, 사람의 귀에 들려본 적도, 사람의 생각과 마음속에 상상되어본 적도 없는 너무나 과분하고 황송하며 뛰어난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영광을 계획하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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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0.01.24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http://robinbox.net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 5:1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5장 17절 말씀입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오늘 저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서론

이제 새해가 밝은지도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새해가 되면서 몇몇의 우리 유치부 아이들 새롭게 초등부로 올라왔고또 중고등부에도 새롭게 올라온 학생들이 있고또 졸업해서 대학에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또 청년부에도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있습니다이렇게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고 우리 마음도 새롭게 됩니다새해가 되면서 기대가 되는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나를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올 해에는 나에게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시며 어떻게 인도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또 내가 보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아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가장 귀한 것입니다비록 한 달이 지나가고 있지만올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주님의 뜻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세 가지 요점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가나다 순서로 요점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첫 번째 요점은 ”,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이 사실에 모두 아멘하십니까?아멘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다소 중요하거나매우 중요하거나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합니다우리는 모든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나의 계획과 일치하는지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계산하기에 앞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면서 최신형 비행기에 탑승하였습니다기존 비행기보다 2배나 빠르면서도 훨씬 안정적이고 쾌적한 비행기라고 해보겠습니다좌석도 훨씬 넓고 편안해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좋고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식사와 간식이 너무나 맛있고화장실도 깨끗하고 넓어서 비행기 안에서 살고 싶을 정도입니다가격도 일반 비행기와 별 차이 없는 최고급 최신형 비행기입니다그런데 만약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타게 되었다면 어떨까요비행기가 최고급이고 최신형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목적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지 못할 때 이와 같습니다아무리 좋고 편안한 삶이라 할지라도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지 못하다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가는 것과 같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우리의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입니까아니면 아버지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묻고 구하는 것입니까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아버지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언 19장 21절을 다 함께 보실까요?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 그것만이 서리라.”우리 아이들은 자기 성경에 주의 뜻에 동그라미 해주세요우리의 마음에 수 만 가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다함께 이사야 55장을 보시겠습니다이사야 55장 8절과 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반드시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은 다르며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자신의 길과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게 됩니다주님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내가 생각할 때는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데하나님께는 수많은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내가 생각할 때는 이 한 가지 길밖에 없는데하나님의 생각에는 또 다른 길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 내 아버지여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그러나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오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크리스챤입니다우리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철저히 아버지의 뜻대로 걸어가셨습니다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이제 두 번째 요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두 번째 요점은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입니다. “는 뭐였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그렇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우리는 먼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에베소서 5장 17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주님은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이해시켜주기 원하십니다자신의 뜻을 감춰놓고 메롱 약 오르지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다음의 4가지를 뽑고 있습니다.첫 번째는 성경 말씀두 번째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세 번째는 환경의 인도하심네 번째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반복)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으로 꿈과 환상을 말하기도 합니다전에 어떤 중고등부 학생이 저에게 예수님이 꿈에 나와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그게 무슨 의미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너 꿈에 선생님 나온 적 있니?” 그랬더니 너무 감사하게도 이 학생이 평소에 선생님을 생각하기는 했는지제가 꿈속에 나온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꿈에서 너에게 뭐라고 말하면 그건 무슨 의미지?”

아무 의미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특별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무당들도 환상을 보고힌두교 사제들도 계시를 받습니다그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마귀도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충분히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으며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습니다다함께 히브리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요셉이나 다니엘 같이 꿈과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 받은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에 나온 것처럼 지나간 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환상음성... 다양한 방식으로그러나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신약성경 계시록을 마감으로 완성되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첫 번째 방법은 성경 말씀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다른 사람이 말씀을 풀이한 것을 묵상하기 전에말씀 자체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성경만이 우리의 생각과 실행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인도받는데 있어서 두 번째 방법으로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이것은 우리가 교만에 빠지거나독단적이거나감정적인 상태로 어떤 일을 잘못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4장 1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가 보기에는 옳고 좋은데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잠언 24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고 결정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듣기에 좋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뿐만 아니라듣기에 거슬리는 쓴 소리도 조언으로 받을 때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데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한 흐름 가운데 기도하며 생각하여 각 형제 자매들의 일들을 조언할 때 그러한 길이 너무나 안전하고 좋은 길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 세 번째 방법으로 환경의 인도하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모든 상황과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많은 경우 우리가 조급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그르칩니다밥이 뜸이 들어야 하는데 배고프다고 뚜껑을 열어버리면 밥맛이 이상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 네 번째 방법으로 마음의 평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염려될 때 우리는 결정을 보류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의 인도를 구하면서 성경 말씀의 기준에 어긋남이 없는지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조언을 통해 검증이 되었는지또한 환경의 인도를 볼 때 주님의 축복이 있는지를 살필 때에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마음의 평안은 내가 주장하고내가 목적하는나의 뜻이 없을 때온전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을 때 가질 수 있습니다나의 뜻이 있을 때에는 항상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걱정되지만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지금 저희는 계속해서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그 중에 우리는 먼저 일반적으로 성경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4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 “환경의 인도하심”,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 말씀 에베소서 5장 17절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한 번 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바로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이 나오고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입니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첫 번째는 성령 충만입니다.

 

또한 22절을 보시겠습니다우리 자매님들께서 읽어주실까요? (시작)

아내들아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것이 바로 자매님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25절 말씀을 형제님들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

남편들아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이것이 바로 남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과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1 자녀들아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이것이 바로 자녀들을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격하지 말고 공경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들께서 4절 말씀을 읽어주실까요? (시작)

또 너희 아버지들아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면서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 부모님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5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종들아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된 자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단일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오늘날 우리가 직장에서나 일터에서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일이 마음에 들거나고용주가 잘해주기 때문이 아니라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주인들아너희도 그들에게 같은 일들을 행하고 협박하는 일을 삼가라너희 주인도 하늘에 계시나니 그분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지금 우리가 읽은 말씀들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라고 말씀하신 에베소서 5장 17절로부터 연결된 한 문맥 안에 있는 말씀들입니다하나님의 뜻은 뭔가 심오하고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쉽고 단순하며 분명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오늘 나에게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그러할 때 나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님의 뜻도 인도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

이제 마지막 요점으로 가나다” 중에 입니다. “는 다윗의 이야기입니다다윗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고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다 함께 사무엘상 16장을 보시겠습니다이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 사울왕을 세우셨지만사울왕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자신의 뜻대로 행하였기 때문에하나님께서는 사울왕 대신 다윗을 세우기로 결정하시고대언자 사무엘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신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정확하게 누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지는 알지 못한 채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그리고 사무엘상 16장 5절에 나온 것처럼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가 이르되평화롭게 오느니라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하고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그래서 이제 이새가 자신의 아들 일곱을 데리고 사무엘 앞으로 왔습니다사무엘이 주님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누구인지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11절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새에게 이르되네 자식들이 다 여기 있느냐하니 이새가 이르되아직 막내가 남았는데보소서그가 양을 지키나이다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하니

 

이 당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인도자였습니다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모았을 때 그 아들들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막내였던 다윗도 몹시 오고 싶었겠지만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형들하고 중요한 모임 다녀올테니까 양 좀 지키고 있어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히 밝혀놓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비록 다윗이 여기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의 생활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습니다. “아 이제 내가 왕이다라고 들고 일어서지 않았고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상 17장에 등장하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오고이스라엘의 사울왕도 군사를 모아 진을 칩니다서로 양쪽 산에 진을 쳤고 그들 사이에는 골짜기가 펼쳐져 있습니다이 골짜기는 마치 거대한 경기장처럼 넓게 파인 말 그대로 전쟁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서로 언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긴장하며 대치하는 가운데거인 골리앗이 등장합니다골리앗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크게 전쟁할 것 없이 대표 장수끼리 싸워서 끝내자고 제안합니다일명 일기토라고 하죠대표끼리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는 쪽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입니다.

사무엘상 17장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그 블레셋 사람의 그 말들을 듣고는 놀라고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골리앗의 제안을 거절하고 전원이 공격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이것은 아무도 골리앗과 싸울 만한 사람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측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1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2 이제 다윗은 베들레헴유다의 그 에브랏 사람 곧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더니 그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으며 그 사람은 사울 시대에 사람들 가운데 늙은 사람으로 통하였더라.

13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세 아들이 가서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더니 싸움에 나간 그의 세 아들의 이름은 맏아들이 엘리압이요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셋째는 삼마이며

14 다윗은 막내더라가장 나이 많은 세 명은 사울을 따라갔으나

15 다윗은 갔다가 사울에게서 돌아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

 

우리 아이들은 15절에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에 밑줄을 쳐주세요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뭔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나에게 기름을 부었어요그게 무슨 의미인줄 아세요?” 그날부터 짐 싸들고 나가서 사무엘만 따라다니면서 이스라엘의 고위 장로들을 만나고 다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아마도 다윗은 사울에게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어찌됐든 다윗은 다시 조용히 돌아와서 아버지의 양을 먹이는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사십 일을 가까이 와서 자기를 보이더라.” 골리앗은 사십 일 동안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있었습니다전쟁의 긴장감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점점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17절과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7 이새가 자기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이제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일 에바와 이 빵 열 개를 가지고 진영으로 달려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인 대장에게 주며 네 형들이 어떻게 지내는가 살펴보고 그들의 증거물을 가져오라하니라.”

 

다윗은 전쟁터에 나간 형들이 무사한지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심부름을 떠나게 됩니다다윗과 골리앗의 운명적인 만남은 아버지의 심부름에서 시작됩니다.

15절의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는 말씀과, 16절의 그 블레셋 사람”, 그리고 17절의 이새가 자기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이 세 구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블레셋 사람골리앗의 위아래에 샌드위치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아들 다윗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인도하심은 너무나 쉽고 단순하며 이미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보편적인 뜻에 순종하는 한 가운데 나타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번개가 치듯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이미 나에게 드러나고 분명히 밝혀진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인도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지혜 없는 자는 매일의 삶을 무시하면서한순간에 등장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만을 구합니다평소에는 하나님과 뜻과 상관없이 살다가 위급한 순간에만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므로 이러한 순간에 도와주시기도 하지만이러한 삶은 지혜 없는 어리석은 삶입니다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나에게 드러나고 알려진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크게 세 가지 요점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기억하기 좋으시라고 가나다로 만들었는데요, “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하늘과 땅 차이이므로 우리는 늘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또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고또한 겟세마네에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을 통해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을 통해환경의 인도하심을 통해마음의 평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또한 에베소서 말씀과 같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아내로서남편으로서자녀로서부모로서종으로서주인으로서 이미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에 하루하루 순종할 때에나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특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다윗이 한 일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한 주님의 말씀에 계속해서 순종했을 뿐인데하나님께서는 그를 골리앗과 만나게 하시고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길을 여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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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8.19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교회 안에서(엡 3:19-21)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3장입니다에베소서 3장 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에베소서 3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20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오늘 저는 교회 안에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교회의 신비

오늘 저는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교회는 무엇입니까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신약시대라고 부르기도 하고은혜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또한 교회시대라고 부를 만큼 교회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큰 특징입니다.교회는 성경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오늘의 본문 21절 말씀에서도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하나님께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에베소서 3장 11절에서는 교회를 설명하시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는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또한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 속에 들어있던 너무나 귀하고 놀라운 교회에 대해서 저의 짧은 말로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교회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에베소서 3장 5절과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성경에서 신비란 다른 시대들에서는 알려지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밝히 드러난 진리를 말합니다교회의 신비란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개처럼 여겨지는 더러운 우리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에 속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신비인 것입니다.

 

교회의 신비는 구약에서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에서 드러난 놀라운 진리입니다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주 예수님께서 세우신 이 교회는 로마 왕국을 뒤흔들었고이스라엘 백성을 당혹케 하였습니다교회가 비록 구약시대에서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시대에 계시되고 나타내어진 것이지만교회는 결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교회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이브

다함께 에베소서 5장을 보시겠습니다에베소서 5장 30절부터 32절을 보시겠습니다.

30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

31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것은 큰 신비라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제가 창세기 2장 23절과 24절을 읽어드릴 때에 잘 들으시면서 지금 읽은 에베소서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3 아담이 이르되이것은 내 뼈 중의 뼈요내 살 중의 살이라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하니라.

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여기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입니다또한 이브는 교회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아담이 죽음의 잠에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드신 것처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과 피를 통해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아담이 이브를 가리켜서 내 뼈 중의 뼈요내 살 중의 살이라라고 말한 것처럼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뼈의 지체가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처음 창조하시는 그 순간부터 교회를 계획하고 계셨고성경 말씀 속에 교회의 그림을 그려놓으셨습니다여기서 아담은 이브의 죄 때문에 죽음의 잠을 잔 것이 아니고이브를 얻기 위해서 죽음의 잠을 통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피 흘림을 통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새언약즉 상속 유언의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육신이 함께 못 박혔고 완전히 처리되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우리 주님은 한 번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너무나 크고 놀라운 많은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요셉의 아내 아스낫

성경에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나무를 등에 지고 산에 오르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보리 산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줍니다또한 요셉의 인생은 예수님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수 천년 전에 예수님의 일생을 예고편처럼 미리 보여주는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거부당하신 것처럼요셉은 형제들에게 거부당하고 미움을 받았습니다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요셉은 노예가 되어 이 세상의 예표인 이집트로 팔려갔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만왕의 왕만주의 주로 오시는 것처럼요셉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요셉이 형제들과 다시 만날 때 형제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화평할 수 있었습니다요셉의 일생은 예수님의 일정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과도 같습니다그 중에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그림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1장 44절과 45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4 파라오가 요셉에게 이르되나는 파라오라온 이집트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손발을 들 자가 없으리라하고

45 또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며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니라요셉이 나가서 온 이집트 땅을 돌아보니라.

 

요셉의 새 이름 사브낫바네아는 세상의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요셉은 정확하게 세상의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세상의 구원자가 된 요셉에게는 이집트에서 얻은 이방인 아내 아스낫이 있었습니다아스낫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얻으신 신부인 교회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모세의 아내 십보라

또한 우리는 모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모세의 일생도 예수님을 보여주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죄의 종이 된 우리를 구원코자 더럽고 비천한 이 땅에 달려 내려오신 것처럼모세는 이집트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달려 내려왔습니다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거부당하신 것처럼모세도 처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을 때 거부당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모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모세가 다시 왔을 때 이스라엘은 모세를 받아들였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처럼모세는 구약의 언약을 세웠습니다이 많은 예표들 중에서 우리는 또한 교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바로 모세가 이방인 아내인 십보라를 얻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유대 민족신이 아니냐고 묻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맡기시고또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예언되고 성취되는 확실한 정통 계보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속해서 그림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과 모세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교회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저 유대인으로서 요셉과 모세라는 위대한 통치자들이 이방인 여인과 결혼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유대인들은 이방인과는 서로 인사하거나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성경은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이라든지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 같이 교회에 대한 예표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러한 모든 말씀은 신비로써 구약시대에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밝히 드러난 교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영광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속에 있는 교회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 3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20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한 분이십니다자녀가 마치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그러므로 시편148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우박과 눈과 수증기와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는 폭풍과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열매 맺는 나무와 모든 백향목과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들과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11 땅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통치자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과

12 청년들과 처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

13 곧 그들은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그분의 이름은 홀로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또한 시편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150편 6절에서는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이 주를 찬양할지어다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물들 가운데 대표이며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그런데 특별히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 각자가 각자 처한 곳에서 드리는 찬양도 너무나 귀하지만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올려지는 영광을 더욱 기뻐하십니다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올려지는 영광은 무엇이겠습니까온 성도가 다 같이 찬송가를 펴서 찬양을 부르는 것도 물론 하나님께 귀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찬송을 부를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가능한 것입니다우리가 교회 안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며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도움도 주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이러한 세상의 흐름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믿는 이들이 혼자서 영적인 도서를 읽고인터넷에서 설교 말씀을 찾아서 듣고혼자 성경을 펴서 묵상하고혼자 기도하고 찬양하고선교단체를 개인적으로 후원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절대 아닙니다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구원하시고 양무리에 넣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주님의 살과 뼈의 지체가 된 우리를 주님은 한 몸 안에 두셨음을 알아야 합니다교회 안에서 주님을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믿음을 올바르게 배울 수 없습니다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거듭난 생명을 가진 형제 자매들의 모임입니다하나같이 죄 많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주님의 한없는 사랑과 긍휼을 받아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예전에 어떤 형제님이 있었는데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완벽한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한 자매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완벽한 교회를 찾게 되시거든 절대 그 교회에 회원이 되지는 마십시오.” 그러자 그 형제님은 왜 그렇습니까나는 완벽한 교회에 가서 상처도 받지 않고온전히 주님께 영광돌리고 싶은데요?” 그러자 그 자매님이 대답했습니다.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들어가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완벽한 교회가 있을 수 있을까요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요우리는 성경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찾을 수 없지만주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문제를 초월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신 것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나이 들고 혀가 둔했지만 마른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랐고기드온은 겁 많은 타작꾼이었지만 오로지 300명의 용사로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을 하루 밤사이에 물리쳤고다윗은 작고 어린 양치기에 불과했지만 거인 골리앗을 단 한 번의 돌팔매로 무너뜨렸으며베드로는 허풍 많고 무식한 어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또한 필라델피아 교회는 능력이 적은 문제가 있었지만 형제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켜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교회들로부터 시작하여모든 교회의 역사 가운데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많은 교회들을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싸매시고 품으셔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먼저 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 3장 19절 말씀처럼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이해와 지식을 뛰어넘는 사랑이었습니다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생활이 힘겹고 메마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직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 밖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말과 행동들,모든 더럽고 역겨운 죄악들을 다 뛰어넘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얻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주님은 그토록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에베소서 5장 25절에서는 남편들아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오늘날 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까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교회는 무엇입니까우리 옆에 있는 나와 같이 부족하고 답답하고 문제가 많은 형제 자매들이 바로 교회입니다우리가 서로 긍휼히 여기며 모든 이해와 지식을 뛰어넘어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며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다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19절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주님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저를 충만하게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다같이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우리의 마음이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식하게 될 때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고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가득가득 넘치게 될 때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넘치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나는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닌데나는 이럴 때 쉽게 분노하는 사람인데나는 이런 것은 정말 못 참는 사람인데이러한 나는 완전히 주님 안에 잠겨있고 한없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교회 안에서 풍성하게 될 때에 주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을 우리는 언제 필요로 하게 됩니까만약 우리가 개인의 영적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에게는 사실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스스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모르는 것을 발견하면 책을 찾아보고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또 혼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그냥 혼자 계획하고 준비해서 일을 차근차근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그러나 교회 안에서 함께 형제 자매들과 부딪히면서 조정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십자가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우리에게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 것이고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권능이 어떤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우리에게 교회가 있음으로 해서 성경의 기록된 말씀들이 실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광의 영

마지막으로 다 같이 베드로전서 4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느니라그분께서는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이 편지를 처음 받은 수신자들은 당시 큰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교회 생활 가운데서도 적용해보기 원합니다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서로 오해하거나다툼이 있거나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그때에 누가 더 옳고누구의 말이 더 논리적이고누구의 상황이 더 적절한가를 다 내려놓고이 말씀을 묵상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지식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억하며나에게 상처주는 형제 자매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자 할 때 우리 안에는 영광의 영이 충만할 것입니다나 자신의 자존심을 잃으면 잃을수록 주님의 영광이 풍성할 것이고나의 유익과 정당함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주님의 위로는 충만할 것입니다주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것처럼나의 생명을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게 될 때 우리는 충만한 영광의 영을 누리며 영광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정리

오늘 저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주님은 교회를 정말 사랑하십니다자신의 생명을 교회를 위해 주실 만큼 사랑하십니다교회는 바로 우리들입니다오늘 우리는 모두 죄가 많고 문제가 많아서 주님을 필요로 한 사람들입니다우리 옆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그러합니다우리는 모두 긍휼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우리 모두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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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일시 : 2007.06.13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5세

http://robinbox.net


영광의 하나님(엡 1:17-19)


에베소서 1장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1장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9절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으로 "영광의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부제목을 달아보자면 우리가 지난 3주간 설교말씀을 들은 것과 같은 주제로써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달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옛날 옛날에 어떤 농부와 나무꾼과 어부가 한 자리에 모여서 신이 있다면 그분은 어떤 분일까 하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먼저 나무꾼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들 신은 분명히 산에 계셔. 자네들 이른 새벽에 나무하러 산에 올라가 봤나? 아침에 자욱하게 안개 낀 숲 속에서 나무를 하고 있으면 그 공기만으로 신을 느낄 수가 있어. 어쩔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섭단 말야. 나도 모르게 내가 저지른 죄들이 막 떠올려지면서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거든. 그리고 산신령이라고 들어봤지? 아무튼 신이 있다면 산에 있을 거야."

그러나 어부가 대응합니다. "어허, 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바다의 신이지. 용왕님이라고 들어봤지? 그리고 서양에서는 포세이돈이라고 부른다구. 산신령은 우리나라에만 있는거잖아? 그러니까 바다의 신이 그야말로 진짜 신이지. 신이 있다면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파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다의 신이 분명해. 

그러자 잠잠히 듣고 있던 농부가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눈을 들어서 하늘을 좀 보게나.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있겠어? 신이 있다면 바로 태양신이지. 아니 빛이 없으면 곡식도 자랄 수가 없고, 산에 나무는 물론이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갈 수도 없단 말이야. 그리고 자네들 공부 좀 해보면 알겠지만 이 바다에 바람이 불고하는 것도 다 태양신이 이 땅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지. 비오는 것도 결국 다 태양신이 하는거야. 그래서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아라고 부르잖아. 하여간 무식하면 안된다니까."

이렇게 세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해봤지만 결국 정답 없이 서로의 생각만을 주고받았을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오늘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우리 스스로의 경험과 관념에 빠져서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1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은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우리가 그분이 어떠한 분인지 알게 하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지각의 눈을 밝히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권능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알게 해주시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기도와 같이 "주님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광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사랑이 풍성하시고 은혜로우시며 친절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저는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많은 특징들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부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영광이란 하나님께서 태초에서부터 영원까지 계획하신 시작이요 결말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의 소원은 주의 영광을 보는 것이었으며, 사무엘상 4장에서 비느하스의 아내는 주의 임재를 상징하는 주의 궤를 빼앗겼을 때 주의 영광이 떠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시편에서 다윗은 구구절절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외치고 있으며, 이사야 6장에서 스랍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43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창조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장에서는 사람의 죄가 창조주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고 피조물에게 영광을 돌린 것에서 시작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면 이 세상 왕국들을 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다가올 영광을 보시고 십자가의 수치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시며 견디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는 우리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을 생각할 때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아주 짧고 가벼운 것이라고 말하며 우리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성경 이곳저곳을 살펴볼 때 "영광"이라는 주제는 계속해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에 힘이 없고 잠든 것 같은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 영광을 향한 경주로의 초대
사람들에게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멸망이요, 지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의 관점에서 죄의 대가가 형벌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영광의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지은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알고 인용하는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말씀을 조금 더 풀어서 써보자면, "인간은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조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의 멸망에 처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했다."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화살이 표적을 벗어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영광이라는 표적을 향해 활을 당겼는데 인간의 죄로 인하여 표적에서 빗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다만 멸망할 죄인을 지옥에서 건져낸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실격처리가 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달릴 수 없게 된 우리들의 위치를 회복하여 다시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출발선에 세워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구원은 끝이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요 출발인 것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가지고 계셨던 계획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도 하나님을 가리켜서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부르사 자신의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 하신 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벧전 5:10). 

또한 로마서에서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의 위치는 예정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부르심을 받은 것이고, 부르심을 받은 것만이 아니요 의롭게 된 것이며, 다만 의롭게 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같이 영광스럽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목적은 바로 장차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크고 작게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업에 성공하여 재벌이 되어서 그 영광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인 운동선수가 되어 국민의 영웅이 되고 모든 언론의 찬사를 받으며 영광을 누리고 싶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수나 영화배우가 되어 많은 젊은이들의 열정적인 환호를 한 몸에 받는 영광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이러한 사람들 뿐 아니라 때론 매우 소박하고 평범하게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와, 당신은 매우 성실하군요.", "당신은 정말 깔끔하군요.", "당신은 정말 책임감이 강하군요.", "당신은 아주 순수하시군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영광스러워하고 때로는 그러한 영광, 칭찬, 평가를 얻기 위하여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렇게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악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결승전을 치르지 않은 어떤 우승후보가 벌써부터 금메달을 딴 것처럼 미리 기뻐하는 것같이 아주 우스꽝스럽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것은 장차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시상해 주실 것이지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경주하는 동안에 누려야 할 것이 아닙니다. 영광은 경주를 다 달린 후에 주어지는 것이지 경기 중간에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경기를 달리는 중간중간 관중들을 바라보고 멈칫하고 주춤한다면 그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일들을 섬기려고 한다면 이렇게 주변사람들로부터의 영광을 구하는 마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
저는 오늘 말씀의 부제목을 "십자가가 필요한 이유"라고 정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치 자신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지옥과 멸망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분명히 인식한 사람만이, 예수님이 필요한 것을 알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가 왜 필요한지, 얼마나 절실한지를 분명히 알 때만이 십자가를 붙잡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한 젊고 유능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주 똘똘하고 계산이 빠른 형제였습니다. 또한 이 형제는 아주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한 일주일 하다가 그만두는 일도 이 형제는 일 년이 지나도록 지속하고, 남들이 대충대충 넘어가는 일도 꼼꼼하게 따지고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는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무슨 훈련을 받아서 이렇게 된게 아니라 그냥 천연적으로 원래부터 그랬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아주 훌륭한 형제였습니다. 
이 형제는 스스로 느끼기에 십자가가 별로 필요 없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무엇을 할 수 없는 육신이어야 십자가가 필요하지, 성경공부면 성경공부, 구령이면 구령, 설교면 설교, 교회봉사면 교회봉사, 아주 다방면으로 교회의 지체들과 비교해 볼 때 그다지 못하는 게 없으니까 육신이 십자가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말이 상당히 멀리 느껴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했던 이 형제는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갈망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의 기도에 "아멘!" 응답하시고 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속에 있는, 영원한 목적이 바로 영광스러운 교회였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그림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가죽옷이라든지, 아벨의 피의 제물이라든지, 유월절 어린양이라든지 하는 많은 예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예표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그것들이 사람의 죄를 씻기 위해 죽임을 당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바로 아담이 자신의 아내인 이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의 잠을 통과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남편이신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죽음을 통과하는 모습을 미리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유의하여 볼 것은 이 때 아담이 이브의 죄를 씻기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브가 존재하지도 않을 때에, 이브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죽음의 잠을 통과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만약에 사람에게 죄의 문제가 없었다할지라도 이미 영원 전부터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계획하고 계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람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치료책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얻기 위하여 계획하고 계셨던 영원한 목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광스러운 교회를 통하여 자신의 지혜와 영광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나타낼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3장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그 목적은 이제 교회를 사용하사 하늘의 처소들에 있는 정사들과 권능들에게 하나님의 갖가지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이것은 곧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또 5장에서는 "25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16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만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오게 하시려고 목적하신 것이 아니라, 단체적으로, 주님의 몸이요, 주님의 신부인 교회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시기를 목적하셨습니다. 
이제 이 형제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 형제의 목적은 다만 "내가 주님이 칭찬하시는 사람이 되어야지"라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섬겨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주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어야지"하는 개인적인 이유에서 성경을 공부하던 형제는 이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지체들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야지"하는 것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기도하고 책보고 성경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던 이 형제는 이제 교회의 지체들과 어울리고 함께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형제에게 왜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알려주기 시작하셨습니다. 

이제 자기 자신의 영적인 성장만을 생각하던 이 형제가, 교회의 전체적인 하나됨과 성장을 고려하기 시작할 때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섬겨야할 일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한 섬김의 빈자리들을 알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섬기는 힘의 근원은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많은 일들을 감당하던 이 형제는 어느 날 이상하게도 자신의 영적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 주님을 섬기고 나서 은혜로 가득 차야할 그의 마음은 오히려 그와 같이 섬기지 않는 지체들에 대한 못마땅함과 정죄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자신과 같이 주님의 일에 적극적이지 않은 지체들을 보면서 판단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지고 딱딱하며 차가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지체들이 이 형제를 칭찬하면서 하나님께서 귀한 형제를 우리교회에 주셨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되찾아 자기에게로 가져오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형제는 자신이 지체들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을 발견하였고, 또 많은 일들을 잘 처리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는 사람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얻으시도록 더욱 뜨겁게 지체들을 사랑해야할 판에 교회를 섬긴다고 많은 열심을 부리고 나서 오히려 지체들을 향하여 차갑고 비판적이며 못마땅한 마음이 가득한 것이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더욱더 겸손히 섬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지만 모든 일들을 잘 섬기고 나서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으로부터 훔쳐오는 모습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교회를 사랑해서 열심을 부리는데 왜 지체들을 더 미워하게 될까요? 하나님, 제가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기를 원하는데 왜 주님을 섬길수록 주님의 영광을 훔치는 자가 될까요?"라고 기도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제시해 주셨습니다. 
"너가 육신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너 자신에게서 우러나온 사랑으로 교회를 사랑하려 할 때, 오히려 교회를 더욱 미워하게 된다. 너가 육신으로 주의 영광을 위할 때, 너의 타고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때, 오히려 자신의 영광을 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너 자신 안에는, 너의 육신 안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 그것이 선한 육신이든, 성경지식이 가득찬 육신이든, 성실한 육신이든, 육신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할 수 없다."라고 못박고 계십니다. 
또한 로마서 8장 8절에서는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지혜로운 육신이든지 상관없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일들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할 수 없는 육신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또 한 면에서는 우리의 육신이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과 경배를 탈취하는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처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아무리 좋고 선할지라도 우리가 이 육신을 십자가로 넘겨서 처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양육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꿀꺽꿀꺽 집어삼키며, 이기적이고 교만한 왕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정리
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에베소서 1장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17절에,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입니다. 이제 구원을 받고 처음 위치를 회복한 우리들은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달릴 수 있도록 선발되어 경기장에 들어온 선수들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광스러운 교회로서, 모든 지체가 주님의 몸으로서 다 함께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하여 경기하는 한 팀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달려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고난 받으시고 하늘에서 영광을 얻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고 장차 하늘에서 영광을 얻도록 달려야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광을 받을 장소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철저히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땅에서의 영광을 구한다면 장차 하늘에서 받을 보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마 6:2).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잠깐의 칭송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사모하기 원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부단히 노력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게 되면 내가 의도하지 않게 우리는 하나님께 돌려져야할 영광을 탈취하여 나 자신을 드러내고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처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시키시는 일을 주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섬길 때에만이 우리는 모든 일을 섬기고 나서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침례자 요한이 고백한 것과 같이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 고백해야 합니다. 누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바로 십자가에서 육신이 처리된 사람만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에 넘겨진 사람만이 오직 100% 주님께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을 다시 보시면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지극히 크고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우리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죽은 자로 여기고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강력한 권능으로 활동하시며 자신의 일들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섬길 때에만이 온전하며 모든 일을 다 섬기고 난 뒤에 내 마음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십자가 아래에서 이루어진 섬김과 수고들을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인 적도, 사람의 귀에 들려본 적도, 사람의 생각과 마음 속에 상상되어본 적도 없는 너무나 과분하고 황송하며 뛰어난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영광을 계획하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신 모든 은혜의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 더 깊이 알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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