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1.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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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안의 보배(고후 4:7)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 질그릇 안의 보배입니다.

 

 

사람은 질그릇이다

성경은 사람에 대해 기록할 때 질그릇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질그릇이란 진흙을 빚어서 만든 토기를 의미합니다사람이 바로 흙으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성경은 질그릇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질그릇이라는 것은 쉽게 깨지는 약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요즘 유명한 아이언맨과 같이 강철 그릇으로 만들지 않으셨고질그릇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창조세계의 으뜸가는 존재라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의 신체는 모든 창조물들 중에 가장 약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파리나 모기 같은 벌레도 가지고 있는 날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늘을 날 수가 없습니다.사람은 미꾸라지나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도 가지고 있는 아가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물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사람은 하마나 악어 같은 두꺼운 가죽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곰이나 사자 같은 강력한 이빨이나 발톱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태양을 정면으로 쳐다보거나 또 높은 하늘에서 작은 토끼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는 독수리의 눈이나야간에도 뚜렷이 볼 수 있는 부엉이의 눈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사람은 박쥐같이 미세한 소리의 진동을 포착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냄새를 잘 맡는 개와 같이 발달된 코를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사람은 카멜레온 같이 보호색을 취할 수도 없고도마뱀같이 자신의 꼬리를 마음대로 잘랐다가 다시 재생시키는 능력도 없습니다말이나 치타같이 빨리 달릴 수 있는 능력도 없고낙타같이 등에다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무슨 동물의 왕국 시간은 아니지만우리가 여러 창조세계의 신비를 볼 때 사람이 얼마나 약하고 작은 존재인지를 알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을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쉽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존재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보배를 가지고 있나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목적에 맞게 창조하셨습니다그렇다면 사람은 과연 어떠한 목적으로 질그릇처럼 창조된 것일까요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질그릇으로서 보배를 담는 것입니다사람은 바로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교회에서 우리의 재능과 특성에 딱 알맞은 역할을 찾게 되었을 때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책상 앞에 앉아서 업무만 보라고 한다면 그것은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또는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훑어보고 정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데 사람들을 만나서 대접하고 상대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괴로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요리를 잘하고 또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요리를 부탁하고 또 그 앞에서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면 요리를 한 사람은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면 그것은 매우 즐거운 일일 것입니다이처럼 우리는 나의 특성에 알맞은 역할을 찾아서 살아가게 될 때 기쁘고 행복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은 질그릇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이 말의 의미는 바로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게 될 때에 가장 기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사람이 창조된 목적과 역할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걸을 때 가장 만족하고 즐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면서 보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우리 안에 살아계신 주님은 바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보물이시며 또 보배이십니다여러분 모두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우리들의 마음 안에 가지고 계십니까아멘!

 

정말 우리들의 마음 안에서 세상의 돈이나 명예나 성공이나 쾌락이 보배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세상에서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는 헛된 것들이 우리의 질그릇 안에 담겨있지 않기를 원합니다우리는 돈을 담기 위해 창조된 그릇이 아닙니다우리는 세상의 성공과 명예를 담기 위해 창조된 그릇이 아닙니다우리는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담기 위해 창조된 그릇이 아닙니다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신 분가장 영광스러우신 분온 우주의 보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담기 위해 창조된 그릇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마음에 담게 될 때 고통을 당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살아계신 주님을 담게 될 때 우리는 참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뛰어난 권능

우리는 질그릇과 같이 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입니다그러나 우리 안에 거하시는 보배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뛰어난 권능이십니다다함께 고린도후서 4장 8-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질그릇 안에 거하시는 뛰어난 권능이시며 귀한 보배이신 주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동서남북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주님으로 인해 괴롭지가 않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난처한 일을 당하고 있지만 절망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핍박을 받지만 버림을 받지 않고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 사실을 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질그릇 안에 보배가 거하시는 이유는 질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목적은 뛰어난 권능을 통해 우리가 고난을 당하지 않게 지키시거나 난처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주님의 뛰어난 권능은 우리가 결코 핍박을 당하지 않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질그릇은 깨져야 제 맛입니다마리아의 향유옥합이 주님의 발 앞에 깨졌을 때에 베다니의 온 집에 향기가 가득하였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기드온의 항아리가 산산조각 났을 때에 밝은 횃불의 빛이 드러나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우리의 질그릇우리의 육신우리의 자존심우리의 자아는 완전히 깨져야 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바로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내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주님의 향기를 드러날 수가 없고내가 부서지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생명이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십자가 없이 왕관이 없고죽음이 없이 부활이 없는 것처럼십자가의 삶이 없이는 뛰어난 권능도 없는 것입니다나의 향유옥합이 깨어지지 않으면 주님의 향기가 있을 수 없고나의 항아리가 깨어지지 않으면 밝은 빛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한 영광

우리 다함께 고린도후서 4장 16-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은 영원하니라.

 

오늘 우리에게는 날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다가옵니다바다를 항해하는 배를 향해 크고 작은 파도가 늘 오고 가는 것처럼우리의 삶 속에는 힘들고 지치고 무거운 짐과 같은 일들이 끊임없이 다가옵니다한 가지 파도를 지나고 나면 또 다른 파도가 오고한 가지 문제를 넘기고 다면 다음 문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난들은 우리의 질그릇 안에 있는 하나님 외의 것들을 모두 비우는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가다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만나게 될 때하나님의 이외의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붙잡게 되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 모두 믿음의 생활 중에 이러한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정말 주님이 아니고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렸던 일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그릇에 오직 하나님만 담겨 있기를 원하십니다세상의 즐거움이나 육신의 뜻이 함께 담겨있지 않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우리를 통해서 온전히 주님의 향기만이 드러나주님의 영광만이 찬란하게 빛 비추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부서지고 깨어지고 낮아지고 약해질 때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환경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순종한 만큼 영원한 영광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아니우리가 받은 극심하고 죽을 것 같았던 고난의 순간들이 너무나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계산될 만큼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무거운 영광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 안에 가지고 있나니 이것은 뛰어난 권능이 하나님에게서 나며 우리에게서 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성경은 우리를 가리켜서 질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약한 존재인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주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질그릇이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담기 위해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사람이 자기의 특성에 가장 알맞은 일을 하게 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때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보배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온 우주에서 가장 귀하신 분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너무나 비좁고 더러운 우리의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시며 영원히 함께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 예수님은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영광의 보배이십니다.

 

혹시 우리 안에 보배가 주님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과감히 내버리기 원합니다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천국을 떠나시고생명을 버리셨던 것처럼우리도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의 헛된 것들을 내버리기 원합니다하나님도 적당히 사랑하고 세상도 적당히 사랑하는 미지근하고 부적절한 사랑이 아니라,하나님만을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혼을 다해 뜨겁게 사랑하는 참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뛰어난 권능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려고 우리 안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질그릇은 깨져야 제 맛입니다우리의 자존심과 자아와 육신이 완전히 부서질 때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할 수 있고주님의 빛이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할지라도 괴로워하지 않고난처한 일을 당할지라도 절망하지 않으며핍박을 당할지라도 버림받지 않고거꾸러뜨림을 당할지라도 망하지 않도록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붙드시고 도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보배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면서도 뛰어난 권능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질그릇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고또 우리의 질그릇이 깨지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마음 안에 주님 외에 다른 것들이 담겨 있다면 작은 것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워버리기 원합니다또 우리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임을 믿음으로 기억하며 깨어지고 부서지기 원합니다그래서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강력한 활동이시며뛰어난 권능이신 주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잠시의 가벼운 고난 뒤에 있는 영원하고 무거운 영광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않기를 원합니다.주님만을 바라봄으로 오늘 힘을 내기 원합니다이전까지 어떠했든지 지금 이 순간부터 다시 우리의 삶이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향기로운 삶찬란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62편 말씀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시편 62편 5-1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 혼아너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나의 구원이시요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나니 곧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가 하나님 안에 있도다.

백성들아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셀라.

참으로 지위가 낮은 자들은 헛되며 지위가 높은 자들은 거짓되니 저울에 달면 그들을 다 더해도 허무보다 가볍도다.

10 학대하는 것을 신뢰하지 말며 강탈하는 것으로 허망하게 되지 말고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너희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께서 한 번 말씀하셨고 내가 두 번 들은 것이 이것이니 곧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이라.

12 오 주여긍휼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나이다.

 

우리 안에 살아계신 뛰어난 권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만을 바라며 신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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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0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 /로빈29세

 

믿음으로 걷자2 (고후 5:7)

이승선

 

여러분 혹시 제가 지난번에 전했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사실 지난 주 설교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지난달 설교라면 기억하시기가 더욱 힘드실 텐데요지난번에 저는 믿음으로 걷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내용을 잠시 말씀드리면시리아의 벤하닷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사마리아의 물가는 엄청나게 치솟았습니다백성들은 굶주렸고 심지어 자기 자식까지도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그때 하나님께서 대언자 엘리사를 통하여 내일 이맘때에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을 통하여 시리아 온 군대를 물러가게 하시고 사마리아에 풍요로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던 높은 귀족은 백성들에게 밟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기억이 좀 나실 것 같은데요하나님은 전능자이시고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무한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또 하나님께서는 무한가지의 방법 중에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방법을 즐겨 사용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같은 주제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다함께 고린도후서 5장을 보시겠습니다고린도후서 5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걷자2”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믿음의 중요성

성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너무나 쉽고 단순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돈이나행운이나우연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감정이나우리 자신의 생각이나판단이나느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우리의 모든 생각과 판단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믿음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헛되고 무가치하며 비참한 인생입니다우리가 오직 한번 뿐인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입니다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반드시 심어주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원망할 것입니다나에게 세상의 지식과 기술은 그렇게 억지로 강요하였으면서 왜 믿음은 그렇게 억지로라도 강조하고 훈련해 주지 않으셨냐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시는 기준

다함께 고린도전서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절부터 29절을 보시겠습니다.

26 형제들아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이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혼자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지만사람과 함께 일하시며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없고 부족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기를 기뻐하십니다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을 통해 골리앗을 무너뜨리시고겁쟁이 농부였던 기드온을 통해 바다의 모래 같은 미디안 민족을 물리치시고무식한 어부였던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통해 위대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지금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1장 26절에서 29절 말씀도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고주님을 따르는 길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인가 뛰어나고 대단해서가 결코 아닙니다우리가 선하고 의롭고 무엇인가를 잘 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가 어리석고 약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쓸모없고 천하고 멸시받기에 합당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을 부르시고우리 같은 사람과 함께 일하시는 이유는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때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대기업에서 사람을 뽑는 것처럼실력 있고 참신한 인재를 뽑으셨다면 아마 우리 중 몇몇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은 저를 포함해서 외면당하고 거절당했을지도 모릅니다하나님께서는 세상이 보는 것과는 반대로 사람을 뽑으십니다세상의 관점세상의 판단기준과는 반대로 사람을 부르십니다우리가 보는 것으로 걷지 말고 믿음으로 걸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세상이 보는 것과 다르게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겉에 보이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고 믿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지혜롭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를 사용하시지 않습니다오히려 우리가 약하고 어리석기 때문에우리를 통해 세상의 강하고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기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다함께 신명기 7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너희를 친히 사랑하시고 너희를 택하신 것은 너희가 다른 백성보다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너희는 모든 백성들 중에서 수가 가장 적으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이스라엘이 수가 많고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세상은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만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기준으로 이스라엘을 부르거나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수가 적고 약하기 때문에 선택하셨습니다.

 

또 신명기 9장 4절부터 6절까지 보시겠습니다.

 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뒤에 너는 마음속으로 말하여 이르기를내가 의로우므로 께서 나를 이 땅으로 데려오시고 이 땅을 소유하게 하셨다하지 말라오히려 이 민족들이 사악하므로 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셨느니라.

네가 가서 그들의 땅을 소유하는 것은 네가 의롭거나 네 마음이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요오직 이 민족들이 사악하므로  네 하나님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기 때문이니 이것은 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로 하신 말씀을 친히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을지니 곧  네 하나님께서 네게 이 좋은 땅을 소유로 주시는 것은 네가 의롭기 때문이 아니니라너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의롭거나 마음이 올바르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민족들의 사악함 때문에,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한 맹세와 약속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선하게 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의롭고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실하시며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난공불락의 여리고

이제부터 제가 지난번에 살펴보고자 했던 두 번째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다함께 여호수아 6장을 보시겠습니다여호수아 6장 1절부터 3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자손으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히고 아무도 나가지 아니하며 아무도 들어오지 아니하더라.

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보라내가 여리고와 그것의 왕과 강한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나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도시를 에워싸고 도시 주위를 한 번씩 돌되 너는 엿새 동안을 그리할지니라.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이야기는 여리고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이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나왔던 모세는 죽었고여호수아가 새로운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상황입니다이스라엘 백성은 요르단 강을 넘어 첫 번째 관문인 여리고성 앞에 대치하고 있습니다여리고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알려져 있습니다.

 

1908년 오스트리아의 셀린 박사로부터 시작된 여리고성 발굴 작업은 100여년의 세월에 걸쳐 1만 여명의 고고학자들과 탐사팀에 의해 진행되었고, 1999년 Creation Ex Nihilo Journal에 실린 성서고고학의 대가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박사의 논문에서는 여리고성의 모습을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여리고성은 두 겹의 이중 성벽으로 지어진 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습니다여리고성은 지상으로부터 약 14미터 높이의 경사진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였습니다안쪽의 벽은 두께가 4미터나 되는 두꺼운 벽돌로 지어졌습니다그리고 5미터 정도 길이의 급경사 아래에 다시 바깥벽이 세워져있는데바깥벽의 두께는 2미터 정도높이는 약 12미터에 달했습니다. 12미터라면 보통 3층 건물 정도의 높이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경사가 진 언덕 위에 요새라는 것 만해도 공격하기가 어려운데 성벽이 이중으로 지어져있어서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모두 화살을 맞고 죽을 수밖에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여리고성은 곡식만 풍부하다면 몇 년이라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요새였습니다.

 

여호수아 3장 15절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 앞에 이르기 전에 요르단 강을 건널 때가 곡식을 수확하는 때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르단이 수확할 때에 항상 그것의 모든 둑에서 넘치므로궤를 멘 자들이 요르단에 이르매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서 잠기니라.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을 충분히 저장하고 있는 여리고성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이스라엘의 군대는 약 60여자들어린아이들노인들까지 한다면 대략 200만의 인구가 여리고성 앞에 장막을 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우리가 방금 읽었던 여호수아 6장 1절의 말씀처럼 여리고성의 백성들은 수가 많은 이스라엘에게 먼저 나가서 공격하기보다는 성문을 굳게 닫고 버티기를 시작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함락할 수 없는무너뜨리기가 불가능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무한가지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 사람이 보기에 가장 말도 안 되고 절대 불가능한 이상한 방법으로 무너뜨리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여리고성 함락

이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작전은 이러했습니다. 3절부터 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도시를 에워싸고 도시 주위를 한 번씩 돌되 너는 엿새 동안을 그리할지니라.

일곱 명의 제사장은 일곱 개의 양 뿔 나팔을 들고 궤 앞에서 갈 것이요일곱째 날에는 너희가 도시를 일곱 번 에워싸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 뿔 나팔을 길게 불어 너희가 나팔 소리를 들을 때에 온 백성은 큰 소리로 외칠지니라그리하면 그 도시의 성벽이 납작하게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각 곧장 자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하시니라.

 

하나님의 작전은 사람이 보기에 정말 말도 안 되고 터무니없고 현실성이 없는 것이었습니다투석기를 제작해서 거대한 바위를 던지는 것도 아니었고사다리를 만들어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다만 나팔을 들고 엿새 동안 여리고성 주위를 한 바퀴씩 돌고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고 고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그렇게 하면 여리고성이 무너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서고고학자인 브라이언트 우드 박사의 논문에서는 성벽의 무너진 방향이 안쪽에서부터 바깥으로 무너진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무너진 성벽을 계단처럼 밟고 14미터의 경사진 언덕을 올라가 여리고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또한 여리고성의 건물에서 불탄 곡식 항아리를 발견하였는데이것은 여리고성이 식량이 다 떨어져 항복한 것도 아니며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은과 금놋과 쇠 기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웠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도시와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불로 태웠으나 은과 금 그리고 놋과 쇠 기구들은 의 집의 보고에 두었더라.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이 보기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 일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그 결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여리고성은 완전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믿음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습니다먼저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믿음은 분석하고 따지고 현실적인지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내리는 것이 아닙니다믿음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만을 분별하며,그것이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할 때무엇인가를 선택할 때그것이 전망이 좋은지가능성이 있는지유익한지를 판단하지 말고 무엇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인지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무엇이 믿음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우리는 환경이나 상황을 보지 말고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사람들이 보기에 터무니없고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라면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왜냐하면 그 길이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이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단 일주일 만에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믿음으로 순종하는 길이 가장 좋고 가장 빠른 길입니다.

 

 

믿음은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믿음은 기다리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단 한 시간 만에도 여리고를 무너뜨리실 수 있으셨지만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주일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을 주셨습니다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기간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신 것이 아니고이스라엘의 믿음을 보시는 기간이었습니다다함께 여호수아 6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으로 소리를 내지도 말고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마침내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고 하는 날이 오면 그때에 외칠지니라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일주일의 기간 동안 침묵하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믿음의 길을 걸었습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때하나님의 타이밍하나님의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사울 왕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했지만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주일의 기간을 믿음으로 잘 통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침내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고 하는 날이 오면 그때에 외칠지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마침내 행동하라고 말씀하시는 그 때까지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내 방법대로 함부로 나서서 일을 진행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의 좋은 생각은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릴 뿐입니다우리의 좋은 열심은 하나님께 방해가 될 뿐입니다하나님께서는 좋은 생각과 좋은 열심을 바라지 않으시고 기다리고 순종하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전에 우리 중고등부에서 이산영 선생님이 기다림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개를 훈련할 때 보통 앉아일어나엎드려 등과 같은 것을 생각하시는데요가장 훈련이 잘된 개를 가릴 때는 기다리라는 명령에 얼마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를 본다고 합니다한 아이가 훈련을 잘 받은 개를 키우게 되었는데개 앞에 가장 좋아하는 먹이를 놓고 재미로 기다려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그런데 친구들이 놀러 와서 밖에 나가 신나게 놀았다고 합니다그 아이는 다 놀고 집에 돌아왔는데그 개는 음식 앞에서 끙끙대면서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먹이를 바라만 볼뿐 먹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만약 이 개처럼 믿음으로 잘 훈련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면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은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면서 두 구절의 말씀을 빠르게 볼텐데요먼저 로마서 10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

 

우리도 믿음으로 살고 싶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고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기다릴 수 있기를 원하고또 나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싶은데우리는 어떻게 해야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우리가 성경을 읽고묵상하며또 교회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유는 우리가 가장 귀하고 보배로운 믿음의 삶을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1장을 보시겠습니다여호수아는 어떻게 목숨을 건 여리고성 전투에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 하나님의 작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전하게 순종하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그 비결이 여기에 등장하고 있습니다여호수아 1장 8절과 9절입니다다함께 읽으시겠습니다시작~

너는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밤낮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그리하면 네가 네 길을 형통하게 하며 또한 크게 성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마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용기를 내라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느니라하시니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우리의 성공우리의 용기는 어디로부터 나옵니까오직 믿음으로부터 나옵니다우리의 믿음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기다리고 순종하는 참된 믿음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 어디로 가든지 주님과 동행함으로 형통하고 크게 성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의 밤낮으로 우리의 묵상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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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9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 /로빈29세

 

믿음으로 걷자(고후 5:7)

이승선

 

여러분 혹시 지난 주일 오후에 어떤 설교를 들었는지 기억하십니까우리는 주님의 일 믿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또 이번 주 수요일에는 주님을 믿으라는 제목으로 한 귀족의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최근 두 분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연속적인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에 대하여 묵상하게 되었고저도 오늘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입니다고린도후서 5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믿음으로 걷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믿음의 중요성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성경은 사람이 왜 살아가는지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성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매우 쉽고 단순하며 명쾌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성경은 우리가 인생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성경은 하박국 2장 4로마서 1장 17갈라디아서 3장 11그리고 히브리서 10장 38절에서 4번이나 똑같이 반복하여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인생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믿음이 얼마나 중요할까요함께 찾지 않겠지만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영어로는 특별히 임파서블(Impossible)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아무리 뛰어나고 놀랍고 중요하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전혀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라는 구원의 문제까지도 오직 믿음에 의해 결정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천국과 지옥의 차이입니다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함께 찾지 않겠지만 잘 아시는 계시록 4장 11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창조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이며또 창조의 목적대로 바르게 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고우리의 창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헛되고 가치 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찾아보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에서도 이제 우리가 사는 삶은 나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인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감정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고정관념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내 판단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내 지혜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내 힘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돈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내 방법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을 창조하신 목적대로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살도록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우리가 자녀들에게 믿음보다 세상의 지식과 지혜를 우선적으로 가르친다면 그것은 자녀들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우리가 자녀들에게 세상의 좋은 것들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최우선으로 가르쳐야 합니다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믿음으로 사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

 

 

하룻밤의 기적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는 믿음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에 따르면 믿음은 보는 것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들이 보는 것과 반대됩니다믿음은 사람들의 판단이나 평가와 반대됩니다믿음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논리와 반대됩니다믿음은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반대됩니다믿음은 눈에 보이는 환경이나 상황을 초월합니다우리는 오늘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아니면 눈에 보이는 대로 살고 있습니까?

 

저는 오늘 성경의 한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믿음으로 걷는 삶과 보는 것으로 걷는 삶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원래는 두 가지 이야기였는데준비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초과되어서 결국 한 가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두 번째 이야기도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열왕기하 6장을 보시겠습니다먼저 열왕기하 6장 24절과 25절을 보시겠습니다지금부터 저희가 열왕기하 말씀을 읽어나갈 때 2구절 이상이면 자동으로 교독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그러면제가 24절을 먼저 읽겠습니다.

24 이 일 뒤에 시리아 왕 벤하닷이 자기의 온 군대를 모으고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사마리아에 큰 기근이 있더라보라시리아 사람들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으므로 마침내 나귀 머리 하나가 은 여든 개에 팔리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이 은 다섯 개에 팔리더라.

 

이 말씀은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대언자로 있었던 당시에 시리아의 벤하닷 왕이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사마리아는 포위를 당해서 모든 문을 굳게 닫은 상태였고큰 기근까지 들어 식량이 점점 떨어지는 아주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래 나귀를 먹지 않았습니다나귀는 되새김질도 하지 않고굽도 갈라지지 않은레위기 11장에 의하면 부정한 짐승이기 때문에 절대 식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짐승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나귀의 머리 하나가 은 여든 개에 팔리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나귀의 등심이나 갈비나 목심이 아니라 먹을 것이 별로 없는 머리가 하나에 은 여든 개였습니다.

여기서 은 여든 개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세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1세겔은 노동자가 4일 동안 일해서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80세겔이라는 것은 320일치 급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오늘날 물가로 노동자 하루 일당을 8만원이라고 친다면 1세겔은 약 32만원그렇다면 80세겔은 약 2,560만원 정도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나귀 머리 하나에 2,560만원입니다.

또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이 은 다섯 세겔에 팔렸다고 하였는데요여기서 1갑이라는 것은 약 1.27리터의 용량 단위입니다비둘기 똥 4분의 1갑이라고 하면 약 300ml 정도 되는 용량인데요이것은 은 5세겔즉 일반적인 노동자의 20일치 급여로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는 것입니다비둘기 똥 한 주먹에 약 160만원입니다전쟁으로 인해서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26절부터 29절까지 교독하여 읽어보겠습니다.

26 이스라엘 왕이 성벽 위로 지나갈 때에 한 여인이 그에게 외쳐 이르되오 내 주 왕이여 도우소서하매

27 왕이 이르되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어디에서 나는 것으로 너를 도우랴창고 마당에서 나는 것으로 하랴아니면 포도즙 틀에서 나는 것으로 하랴하고

28 또 그녀에게 이르되너를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하니 그녀가 응답하되이 여인이 내게 말하기를네 아들을 내라우리가 오늘 그를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으리라하매

29 이에 우리가 내 아들을 삶아 먹었나이다다음 날 내가 그녀에게 이르되네 아들을 내라우리가 그를 먹으리라하였으나 그녀가 자기 아들을 숨겼나이다하니라.

 

부자들은 나귀 머리라도 사서 배고픔을 달랬다면서민들은 방법이 없어 굶어 죽거나 자기 자식을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왕 조차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제 열왕기하 7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이에 엘리사가 이르되너희는 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가 이같이 말하노라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리라하니

 

대언자 엘리사는 단 하루 만에 하나님께서 어떤 기적을 이루실지 선포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세아라는 것은 약 7.3리터의 용량 단위를 말합니다내일 이맘때에는 고운 밀가루 7.3리터에 1세겔그리고 보리 14.6리터에 1세겔이라는 가격으로 팔리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비둘기 똥 300밀리리터에 5세겔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파격적인 물가 안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여러분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그때에 한 귀족 곧 손으로 왕을 부축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보라 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들 이런 일이 있으리요하매 엘리사가 이르되보라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하니라.”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였을 때왕을 부축하는 역할을 하던 한 귀족이 엘리사에게 믿지 않는 마음으로 응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문을 열어 음식물을 쏟아내려 주신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 아니냐상식적으로논리적으로 말해서 하루 만에 그런 구체적인 가격을 제시한다는게 가능한 일이냐?” 그 귀족은 왕을 부축하는 역할을 하는 높은 위치의 사람이었습니다왕이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신하였습니다또 하나님의 사람이 왕 앞에서 말하는데 왕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가 직접 나서서 응답을 할 만큼 지위가 높고 존경받는 귀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그는 매우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제, 3절과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성문 어귀에 나병 환자 네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이르되우리가 어찌하여 죽기까지 여기 앉아 있겠느냐?

우리가 말하기를도시에 들어가리라해도 도시 안에 기근이 있으므로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여기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죽으리로다그런즉 이제 오라우리가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에게 항복하자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우리가 살려니와 그들이 우리를 죽이면 우리가 죽을 따름이라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은 언제나 사람의 상상을 초월합니다하나님께서는 나병 환자 네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모두가 굶주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나병 환자들은 음식물만 축내는 쓸모없고 꼴 보기 싫은 존재들이었을 것입니다그들은 성문 어귀에서 노숙하는 거지들이었습니다가족으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모두에게 외면을 받는 불쌍한 인생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어차피 굶어죽을 바에는 시리아 군대에게 항복이라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성문의 군사들은 노숙자 네 사람이 어딜 가든 말든 굶어 죽든 말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이제 그들은 해가 지고 선선해지는 저녁에 일어나 시리아 군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아무도 생각하거나기대하거나,가보지 않았던 길을 나병 환자 네 명이 걷기 시작했습니다.

 

5절부터 7절까지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시리아 사람들의 진영으로 가려고 황혼에 일어나서 시리아 진영의 맨 끝 부분에 이르렀더니보라그곳에 한 사람도 없더라.

께서 시리아 사람들의 군대로 하여금 병거 소리와 말 소리 곧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서로 말하기를보라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고  족속의 왕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왕들을 고용하여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하고

그러므로 일어나서 황혼에 도망하되 자기들의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또 진영을 그대로 두고 자기들의 생명을 건지려고 도망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네 사람의 걸음 소리를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로 만드셨습니다시리아 군대는 거지 네 사람의 걸음 소리를 헷 족속의 왕들과 이집트 사람들의 왕들을 거대한 군대가 몰려오는 소리로 들었습니다얼마나 다급했던지 그들은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영을 그대로 두고 도망하였습니다심지어 도망을 가면서 자기들이 입었던 무거운 옷과 무기들까지 벗어던지고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시리아 사람들의 뒤를 따라 요르단에 이른즉보라시리아 사람들이 급한 김에 내버린 의복과 기구가 온 길에 가득하였더라...”

 

거지같은 네 사람의 나병 환자가 걷는 초라한 걸음 소리가 막강한 시리아 군대를 두려움에 떨게 하며 완전히 내몰았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똑똑하고 지위 높은 귀족이나 잘 훈련된 군사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하지 않으십니다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사마리아의 기근과 굶주림을 해결하실 수 있는 무한가지의 방법이 있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 중에 가장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방법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제 17절부터 20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7 왕이 손으로 자기를 부축하던 그 귀족을 임명하여 성문의 책무를 맡게 하였는데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밞으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내려 왔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그가 죽었더라.

18 전에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기를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보리 이 세아가 일 세겔에 팔리고 고운 밀가루 일 세아가 일 겔에 팔리리라한즉

19 그때에 그 귀족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이제보라께서 하늘에 창들을 내신들 이런 일이 있으리요하매 그가 말하기를보라네가 네 눈으로 그것을 볼 터이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하였더라.

20 그 일이 그에게 그대로 임하였으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밞으매 그가 죽었더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주님을 믿지 않은 자의 최후를 볼 수 있습니다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리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던 그 귀족은 굶주렸던 백성이 시리아의 진영이 있던 곳으로 몰려나가는 그 발걸음에 밟혀 압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이라면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믿지 않는 마음입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히브리서 3장 1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형제들아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 있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 생기지 아니하도록 조심하라.”

 

성경은 믿지 아니하는 마음을 가리켜 악한 마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성경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가리켜 악한 세상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1:4). 그 이유는 세상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시 오실 때에 땅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눅 18:8), 정말 이 세상에서는 갈수록 믿음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믿음이 있는 척하는 사람들믿음의 겉모양을 가진 사람들은 많이 있는 것 같으나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아니면 보는 것으로 살고 있습니까?

 

 

믿음의 삶

믿음으로 걷는 것은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모든 것을 하시는 하나님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입니다믿음으로 걷는 것은 나의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최고의 것을 주실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믿음으로 걷는 것은 보는 것으로 걷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세상의 방식세상의 생각세상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입니다믿음의 삶은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을 완전히 내려놓는 삶입니다믿음의 삶은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걷는 것은 나를 돌보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신뢰하는 것입니다믿음의 삶은 돈이 나의 주인이 아니고돈이 나의 목자가 아니라오직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이며목자이며아버지이신 것을 인정하는 삶입니다믿음의 삶은 내가 머리를 굴리면서 계획하거나 계산하는 삶이 아닙니다믿음의 삶은 모든 것을 아버지 뜻에 맡기고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다함께 빌립보서 4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믿음으로 주님을 따라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노숙자이며거지였던 나병 환자 네 사람을 사용하셔서 시리아 온 군대를 쫓으시고 이스라엘의 굶주림을 하루 만에 해결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작은 소년에 불과한 다윗을 사용하셔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리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어부들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복음 선포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겁쟁이 농부였던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를 사용하셔서 바닷가의 모래 같은 미디안 족속을 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구두수선공이었던 윌리암 캐리를 통하여 세계선교의 장을 열고 근대선교의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윌리암 캐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계획하고하나님을 향해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그는 믿음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는 꿈과 비젼을 이렇게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의 삶은 남들이 생각하거나 기대하거나 가보지 않은 길을 주님과 함께 개척하는 삶입니다누구나 할 수 있고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은 믿음이 없어도 갈 수 있습니다사람들이 계산하고 계획해서 갈 수 있는 길이라면 굳이 주님이 인도하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마무리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찾기 원하십니다오늘날 똑똑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사람은 많은지 몰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무엇인가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잘 판단하는 사람은 많은지 몰라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이 행복하지 못하고 어렵고 메마르고 답답하다면 그 이유는 우리에게 돈이 부족하고문제가 많아서가 아닙니다우리가 믿음으로 걷지 않고 보는 것으로 걷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고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실 무한가지 방법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원합니다.

 

믿음 없이 사는 삶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삶입니다주님을 믿지 않고다른 사람이나 다른 방법이나 다른 단체가 기관을 믿고 의지하는 인생은 가장 허무하고 허탈한 인생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걸어왔든지 상관없이지금 이 순간부터 믿음으로 걷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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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1.01.26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http://robinbox.net

 

인생의 의미(고후 5:15-1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입니다고린도후서 5장 15-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니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분을 더 이상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인생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의 말씀은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을 때 본문으로 삼았던 말씀입니다그 동안 잊고 지내다가 요즘 다시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되면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6월이 되면 아빠가 됩니다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잘 모르지만아빠가 되면 제 개인적인 좌우명이자 제 아이의 좌우명그리고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바로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제 아이가 아빠 저는 왜 태어났어요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여지없이 이 말씀을 보여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이분은 바로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주인이시며생명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죽음이 들어온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로마서 5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다함께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죄를 알지 못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을 당할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죄가 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목적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인 생명을 지불하시면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셔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습니다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또 다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다시 한 번 이 귀한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를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면서 자신의 온 일생을 죄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다시 창조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우리가 오늘 살아 있는 이유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위하는 인생을 살 때에그것이 당장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잠언 16장 25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 때에는 사망의 길들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 때에는 생명과 화평과 기쁨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 살아 있는 자들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하여 제한되게 죽으신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의 대속과 용서와 구원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육신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내가 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내어드릴 때에 우리의 삶에는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이러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오늘날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일을 진행하고책임지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으시고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만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며 감사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위하여 고생하고 근심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 자격은 무엇일까요바로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결코 신학교를 졸업한 자들”, “특별히 믿음이 좋은 자들”, “성경을 많이 아는 자들”, “구원 받은 지 10년 이상 된 자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자들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성경은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지금 숨을 쉬고 계십니까같이 한 번 숨을 크게 쉬어 보실까요모두 살아 계시군요그렇다면 오늘의 이 말씀을 함께 읽을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저 같은 경우는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이렇게 되겠죠그럼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시작.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우리는 다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고 이미 죽었어야 하는 목숨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죽으면 사라져버릴 돈과 명예를 이 땅에 더 쌓기 위한 것일까요죽기 전까지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한 것일까요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그 이상 그 이하의 모든 인생의 목표는 다 부질없고 허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어떤 사람들은 50살부터라고 말합니다어떤 사람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라고 말합니다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부터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에서는 이제부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제부터지금부터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5분 뒤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아직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교육할 때 장차 커서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지금부터오늘부터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10살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11살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대학교 때부터 주님을 위해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우리는 언제나 지금오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그렇다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교회 청소를 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며외국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 함께 골로새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먼저 골로새서 3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내들아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 남편이라는 호칭이 남편이 내 편은 안 들어주고 남편만 든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아내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무엇인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이전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또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남편들아너희 아내를 사랑하며 모질게 대하지 말라.” 남편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남의 편만 들지 말고 아내 편도 좀 들어주면서 아내를 사랑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입니다주님이 우리 교회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듯이 남편은 아내의 약함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20절을 보시겠습니다저와 우리 어린이들이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시작. “자녀들아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 아직 어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살고어떻게 주를 매우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성경은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게 될 때에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버지들아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그들이 낙담할까 염려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계시지만동시에 부모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잘 사용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 자녀들을 향한 특별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우리는 자녀들을 향한 우리 자신의 모든 뜻과 계획과 욕심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우리 자녀들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부모는 자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얻도록 훈련하는 부모이지세상의 돈과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훈련하는 부모가 결코 아닙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제부터지금부터오늘부터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가르치며 훈련해야 합니다.

 

이제, 22절부터 2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2 종들아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것이 세상일이라고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가림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님께 하듯이 그렇게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하는 모든 일들이 곧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일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나의 위치에 따라 주님께 신실한 것입니다또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교회 중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삶의 중심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모이는 일에 힘쓰는 삶입니다혼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교회로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은 더욱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교회 중심의 삶으로 훈련하여야 합니다교회의 모임에 임하는 준비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교육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는 절대 지각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모임 시간에는 지각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보다 학교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결혼식에는 가장 깔끔하고 멋진 옷을 입고 가면서 주일날 교회에는 아무렇게나 입고 온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모임보다 결혼식이 더 크고 중요한 행사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돈입니까아니면 스포츠입니까우리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시라면우리는 교회 중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내가 인도한 사람나랑 잘 맞는 사람나랑 가까운 사람나랑 잘 통하는 사람나와 함께 섬기는 사람나와 같은 소속의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우리는 나 중심적인 사랑분파적인 사랑편을 가르는 사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반갑게 맞아주고인사하고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형제자매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고형제자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또 때로는 형제자매를 기다려주며 침묵 가운데 기도해 주는 것도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나와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먼저 다가서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다함께 마태복음 25장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25장 34-4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4 그때에 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오라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하니

37 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하리라.

40 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하고

성경은 형제자매들을 먹이고 입히고 받아주고 찾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물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부터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성경은 누구든지 구원받은 성도라면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나의 선호도나의 스타일나의 장단점나의 원래 모습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 만한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어서가 결코 아닙니다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지만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주님을 섬기는 조건은 오직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던 일들은 무엇입니까이제부터 그만두기를 원합니다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 내려놓고다 버리고다 포기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이제부터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없지만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힘입어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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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제사장(고후 5:15)/로빈


2001.10.17.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19세)

제목 : 만인제사장

본문 :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오늘 저는 ‘만인제사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그분께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입니까?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은 또한 심판자이십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의를 사랑하고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선한 자에게 보상하고 악한 자에게 징벌하시는 하나님! 그분은 바로 온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주관자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만물을 친히 만드셨고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계시며 운행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와 같이 기쁨과 슬픔, 가엾음과 분노를 느끼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어떤 사람이 금붕어를 기르기 위하여 어항에 돌과 흙, 물풀과 물레방아 그리고 물을 준비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기 위하여 지구를 만드시고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들, 산과 들, 풀과 나무들, 모든 동식물들을 준비하셨습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드시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교제하기 원하셨고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고 그분의 사랑과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미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우리와 같이 기쁨과 슬픔, 가엾음과 분노를 느끼시는 인격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다 제거해 버리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만드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분의 선택을 한번 주목해 보십시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누구입니까?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십니다. 스스로 자족하시며 홀로 지혜로우시며 영광가운데 거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러분과 저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내게서 빼앗지 아니하며 내가 스스로 그것을 버리노라... (요 10:18)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나...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분명히 그분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는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사람이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을 만드실 때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자유로운 선택의 의지를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토록 중요한 구원의 문제조차 강제로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시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으셨나 모든 사람을 강제로, 억지로 구원받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 주님을 위하여 사는 문제도 동일함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문제와도 동일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거나 생명이 많이 성장한 특정 그리스도인들만 섬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아니, 섬겨야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처음 주님을 영접한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여태까지 나에게 아무도 이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겠다.”


여러분 중에도 처음 구원받았을 때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믿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내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전달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마땅히 그분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기지는 않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이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구원받기 원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 역시 누구든지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섬길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문제를 강제로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강제로 이끌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기 때문입니다. 


** 삶의 목적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위하여 살고,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출세하기 위하여 살며 어떤 사람들은 남에게 인정받기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왜 사는 지도 모르고 살고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이 땅에 살고 있습니까? 지금 바로 하늘나라에 간다면 죄도 더 이상 안 짓고 실패하거나 넘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다시는 내 옆의 형제자매를 미워하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모든 성경 지식들을 깨닫게 될 것이며 주님을 대면하여 알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눈물과 고통과 슬픔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이 땅에 살고 있습니까?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우리들은 왜 지금 바로 하늘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 목적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유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이끌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단지 실패하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죄를 안 짓고 세상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남아 있는 것입니다.


단지 성경을 공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갔을 땐 주님의 모든 뜻을 헤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특별히 공부하지 않아도 주님의 말씀들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성경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공부하라고 말씀한 구절에서도 우리가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섬기기 위하여 말씀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은 단지 교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에 가면 더욱더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온전한 사랑으로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제하기 위하여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먼 길을 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함께 연합하고 교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누리기 위해서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욱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이끌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통해 공급받고 깨달은 것으로 주님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준비를 잘 갖춘 자들”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능력이 많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살아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살아있다면 더 이상 자신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의 믿음 생활의 필수요소 - 섬김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기지 않을 때 그의 믿음은 흔들리게 됩니다. 목적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기는 것을 멈출 때 그의 성장은 멈추게 됩니다. 그의 믿음의 진보는 멈추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가 더 분발해야할 이유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길 때 배움이 있고 공급이 있으며 믿음이 견고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견고하기 원하십니까?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고린도전서 15장 5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형제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굳게 서라! 흔들리지 말라!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이것은 단지 사도바울의 권면일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굳게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굳게 서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바로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넘치게 하고 있는 그때 우리는 굳게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그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견고하기 원하십니까? 주님의 일을 넘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말씀과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섬김’ 또한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읽고 알고 누렸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참으로 깊은 기도로 나아가서 주님과 교제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난다면 그것 또한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주님 앞에 판단 받는 것은 무엇입니까? 단지 얼마나 많은 말씀을 깨달았나 입니까? 단지 얼마나 기도로 주님과 교제했는가 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우리가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을 주님께 드려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가를 판단 받을 것입니다. 우리의 말씀과 기도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는 데에 원동력과 같은 것입니다. 힘을 공급받고 나서 그 힘을 주님 섬기는 데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섬기기 위해 일어나기 원합니다. 


** 만인제사장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영적인 제물을 드리고 주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는 제사장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사역자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주님의 종이요 일꾼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다 같이 베드로전서 2장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도 살아 있는 돌들로서 영적 집으로 건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도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돌들이며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건물을 짓는 데는 돌 하나하나가 중요합니다. 벽돌 한두 개 가지고는 건물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는 돌들입니다. 어떤 돌도 죽어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지체가 주님 앞에서 받은 생명을 가지고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앞에서 섬기는 한 두 명의 형제자매들로는 교회가 온전히 건축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일어나서 섬겨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살아 있는 돌들이며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주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 그분을 위하여 살 수 있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 주저함이 있으신 형제자매님들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시간 용기를 갖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 각자 각자가 섬기기 원하십니다! 여러분 각자 각자에게 섬길 수 있는 은혜와 기회와 자격을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날 일을 잘 처리하는 그리스도인보다 주님 섬기고자하는 갈망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오늘날 재능이 많은 그리스도인보다 주님 섬기고자하는 갈망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찾으십니다. 서투르고 잘 못할지라도 주님 섬기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찾고 계십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누가 주의 편에 속하느냐?”고 물었을 때 레위의 아들들이 나아왔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이 “누가 주의 편에 속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응답하시겠습니까? 

“주여, 참으로 부족하고 어리석은 자이오나 주의 편에 서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주님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기 원합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어나기 원합니다.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주님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 마무리

지금 이슬람 국가들에는 자살테러범들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그들이 믿는 알라신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헌신은 어떠합니까? 오늘날 우리의 자세는 어떠합니까? 주님을 위해 목숨은커녕 1시간도 내어드리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주님의 일이 넘쳐나는 데도 인식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은 일꾼을 찾으시는데 나태하게 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먼저 우리 모두가 일어나야 합니다. 먼저 우리 교회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일어나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일어나서 주님을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워야합니다. 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일깨워야 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의 섬김이 없었다면 여러분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의 섬김을 필요로 하는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주님의 일은 넘쳐나고 일꾼은 부족합니다. 여러분 이 시간 눈을 들어 주님의 갈망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부담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시간도 일꾼을 찾으십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제로 섬기게 하지 않으십니다. 자원하는 사람의 섬김을 기뻐 받으십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저 또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위해 저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우리 자신을 조용히 드리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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