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3.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안식으로 부르시는 주님(마 11:28-30)

본문 : 마태복음 11장 28-30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안식으로 부르시는 주님"이라고 잡아봤는데,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염려해독제 투"입니다.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고 나서, 같은 주제로 반복하여 여러 말씀들을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하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기 때문에 지난 주일날과 동일한 주제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언급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잃어버린 혼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안식과 쉼에 대해서 설명하고 초청할 때 자주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 시작하는 말

저는 지난 목, 금요일에 트레이닝을 잘 받고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석기시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낮에는 이사를 잘 마치고 처음으로 새벽 1시까지 식당에 있었습니다. 12시가 넘으니 손님이 딱 2테이블에만 있었습니다. 한 테이블에는 저 또래의 젊은 청년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옆 테이블을 청소하면서 우연히 그 청년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어떻게 몇 억을 벌었다더라, 이렇게 하면 돈이 잘 벌리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많이 보다가 이렇게 나름대로 진지하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까를 생각하는 청년들을 만나니 생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돈을 벌면서 살아가든 설령 돈을 많이 벌다 할지라도 그 길에는 참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청년들은 옆에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제가 더 불쌍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일까요?

하나님께서 사탄 앞에서 자랑하시기를 온 땅에 그와 같이 완전한 사람이 없다고 하신 욥은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7)라고 말했습니다.

한때 이집트의 모든 영화를 누리고, 광야에서 한 평생을 보낸 하나님의 사람 모세, 120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기력이 쇠하거나 눈이 흐리지 않았던 모세는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 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시 90:10)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온 땅에서 지극히 지혜롭고 영광스러워서 저 멀리 동방의 시바 여왕이 찾아와 직접 대면해보기를 원했던 솔로몬 왕은 “1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도록 앉아 있으며 고통의 빵을 먹음이 헛되도다. 이처럼 그분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도다.”(전 1:8)

그의 모든 날은 슬픔이며 그의 해산의 고통은 괴로움이니라. 참으로 그의 마음이 밤에 안식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3)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의 기록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의 인생이 고생과 수고로 가득 찼으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헤매며 사람들 속에서 허덕이고 또 죄의 짐에 눌려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잃어버린 혼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이란 거센 풍랑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수고와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힌 수많은 영혼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 우리의 문제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이후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참 안식과 쉼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다지 큰 영향력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죄인들을 가리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여러분 예수님께로 나아와 쉼을 얻으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당신이야말로 쉼이 필요한 것 같군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참 안식과 쉼을 주시는 주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오늘의 본문인 28절의 말씀대로 다 주님의 초청에 임하여 영원한 안식과 쉼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28절까지만 읽고는 "아멘!"하고 성경을 덮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곧 이어지는 29절과 30절까지도 "아멘!"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29절에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결과로 우리가 우리 혼에 쉼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멍에와 짐을 지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께로부터 배운다면 우리는 우리 혼에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멍에와 우리 자신의 짐을 지고 수고하며 지치고 걱정과 염려 속에 메말라가면서도 너무나 쉽고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지고자 하지 않는데서 발생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모르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겉에 있지 않고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외적으로 돈이 없거나 무엇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가 믿음의 기초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복음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다만 지옥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티켓 한 장이 아닙니다. 다만 죄가 있었는데 용서해줬다는 사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물건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각 개인에게 구원자요, 구세주로 주셨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이 본문의 중심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안식과 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 면에서는 맞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안식을 주시는 주님 자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 자신, 내게로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내 짐을 메며 나를 따르고 내게서 배우고 내게서 쉼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걱정과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지치고 눌려있고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염려와 무거운 짐들 속에서 지치고 수고한 우리에게 참 안식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늘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영접한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주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으로부터 배울 수만 있다면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 온유와 겸손

오늘 우리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묵상해보기 원합니다.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렛이란 마을은 구약이나 요세푸스의 역사기록에도 언급되지 않은 아주 작고 주목받지 못한 도시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할 만큼 아주 볼품 없는 빈민촌에 불과했습니다. 나사렛의 목수들은 자기 목공소를 가질 만큼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고, 나사렛 주민들도 가구를 구입할 만큼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의 목수들은 망치하나와 못 통을 들고 "문짝 고치세요. 식탁 고치세요."하고 외치며 갈릴리 주변을 돌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에 유대인들이 그분께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오십 세가 조금 안된 것으로 보일 만큼 태양에 그을리고 볼품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날 성화같은데 나오는 금발머리의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예수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 53:2)

가족들에게는 배척받고 고향에서는 거부당하고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고심을 하거나 염려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이가 삼십 대 초반인데 오십 대로 보인 것 때문에 충격을 받고 외모에 대해 걱정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머리 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유로 완전히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또한 주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셨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외부의 여러 가지 환경으로 보자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평안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알아갈수록, 그리고 이러한 주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예수님이 가진 화평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온유는 무엇입니까? 보통 우리는 성격이 부드럽고 잘 참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유라는 성품은 사람의 성품이 아닌 성령님의 열매입니다. 사람이 천성적으로 아무리 온유해 보여도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온 열매가 아니라면 결코 참된 온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를 가리켜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이방 여인과 혼인한 것을 정죄하고, 또 모세만이 선지자가 아니라 아론과 미리암 자신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하면서 모세를 시기하고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이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잠잠하였습니다. 자신을 변호하거나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온유한지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속으로는 화가 나고 불타는데 겉으로만 참은 것일까요?

온유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는 인식입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겸손과도 연결됩니다. 온유와 겸손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눈치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만을 주목하게 해줍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근심과 걱정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온유하지 못하며 겸손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근심하며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되면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해방을 받고 자유를 누리며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먹이시고 입하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걱정과 근심의 무거운 짐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시험과 걱정거리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항해 중에 자꾸만 파도가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의 초청에 더 잘 응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해서 더 무겁게 짓누르시거나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걱정과 염려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강하신 주님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치고 수고한 만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만큼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울 왕으로부터 늘 도망 다녀야 했던 다윗, 자기 아들로부터 배반을 당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셨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과 친밀하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화평이란 외부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배우고 알게 될 때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경이 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 때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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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부르시는 주님(마 18:1-6)

2006.03.01.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아이들을 부르시는 주님
본문 : 마 18:1-6,10,14

오늘 함께 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8장 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하늘의 왕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니이까? 하매
2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니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것이 그에게 더 나으리라.


또한 10절과 1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0 너희가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오늘은 아마도 제가 캐나다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가 될 것입니다. 언제나 말씀을 준비할 때마다 기대가 되고 또 큰 복이 있었는데 이번에 하는 설교가 형제, 자매님들을 오랫동안 떠나기 전에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래서 어떤 말씀으로 은혜를 나눌까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3.1절입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주님에 대해 설교할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요즘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는 단어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에 대해 말씀을 준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도 귀에도 마음에도 들어와 본 적이 없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은 어떤 것일까, 모세가 간절히 보기를 사모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어떤 것일까, 바울이 세상의 쓰레기와 같이 되면서도 그러한 모든 고난이 가벼운 것은 그 영광이 너무나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 영광이 어떠한 것일까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제 마음에 지난 5년 동안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작은 부담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리 다같이 마태복음 18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어떤 말씀을 나눌지 다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에 기름 부어주시라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
우리나라는 요즘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처럼 결혼을 하고 자녀들을 낳아서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라는 마음보다는 자기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경향이 더 커졌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과 교육비의 부담 때문에 점점 아이들을 낳지 않는 추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주님께서는 우리교회를 넘치게 축복하셔서 시끌벅적하고 바글바글한 아이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할 말이 많다고 생각하니 무엇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할지 참 막막했습니다. 설교원고도 새로 써보고 성경본문도 바꿔보고... 나름대로 끙끙대다가 우선 가볍게 우리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일학교의 주제가인 “갈보리 어린이”라는 찬송을 보면 3절 마지막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나의 한가지 소원 주님의 사람되는 것 더 많이많이 자라나서 섬기고 싶어요.” 이제 6학년이 된 창원이가 있습니다. 작년에 있었던 일인데, 하루는 창원이가 학교를 다녀오더니 집에 들어오자마자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창원이 어머니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창원이가 대답하기를 “성경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저는 학교에 원수 같은 친구를 사랑할 수가 없어요.”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우선 창원이가 찬송을 부를 때 그 가사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에, 또 창원이가 주님의 사람이 되는 것을 작게나마 소원으로 가지게 되었다는 것에, 또 그 문제로 나름대로 깊이 생각을 하고 고민을 했다는 사실로 인해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로마서 5장 10절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원수였을 때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하셨는지를 더 깊이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작년 여름, 가을 즈음에 아이들에게 카드 붐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올 때마다 카드를 한 뭉치씩 가져오곤 했습니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용과 괴물과 악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빼앗기도 하고 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이제 4학년에 올라간 재선이가 있습니다. 한번은 재선이의 어머니께서 재선이에게 사도행전 19장에 예수님을 믿은 에베소 사람들이 마술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내용을 가진 은 오만 개 어치나 되는 책들을 모두 불태운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그 카드를 버려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선이는 그 당시 울면서 그 카드를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재선이의 생일이 되었을 때 한 친구가 다시 그 카드를 한 뭉치 선물한 것입니다. 그 때 재선이는 조금 가지고 놀다가 스스로 그 카드를 버렸습니다. 재선이 어머니는 재선이에게 왜 좋아하는 그 카드를 버렸는지 이유를 물었습니다. 재선이는 대답하기를 “카드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빼앗아가잖아요.” 하였습니다.

재선이의 친구인 건주가 있습니다. 건주는 작년 여름부터 지금까지 매일 성경을 한 장씩 읽고 있습니다.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하였는데, 마태복음 6장 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이 말씀을 읽은 건주는 정말 이 말씀이 진짜인지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건주에게는 한 친척형이 있는데 명절마다 그 형과 함께 노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 형은 평소에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주는 은밀히 하나님께만 기도하기를 “하나님 제가 그 형과 만나서 놀게 해주세요.” 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은 어느 날 건주가 어머니와 함께 가까운 할머니 댁에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척형이 마침 그 집에 와있었던 것입니다. 명절도 아니었고 서로 시간을 맞춘 것도 아닌데 놀랍게도 멀리 사는 그 친척형이 와있었던 것입니다. 건주의 어머니는 건주가 그렇게 기도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건주는 너무나 기쁘게 “제가 엄마한테도 말 안하고 정말 은밀히 하나님께만 기도했는데 드러나게 응답해 주셨어요!”하면서 자랑하였습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주영이가 있습니다. 주영이는 불교를 믿는 외할머니에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매우 답답해하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영이는 손에 돌멩이 하나를 들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 내밀면서 “할머니, 할머니는 이런 돌한테 절을 한다는 말이에요?”하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1800년대 놀라운 부흥의 통로가 되었던 설교자 디엘 무디는 자신의 설교 이후에 한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아이가 헌신초청에 응답하여 앞에 나온 것을 보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오늘 한 사람 반의 인생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사람들은 그 기도의 의미를 물었고, 디엘 무디는 대답하기를 “이 어른은 이미 자신의 인생을 많이 허비하여서 반밖에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온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매주보고 또 쉽게 지나치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는 우리가 짐작도 하지 못했던 깊고 진지한 생각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람이 되고자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한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 어떻게 주님의 사람이 될까하는 고민이 있고, 카드가 너무나 좋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단호하게 버리려는 결심이 있고,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만 은밀히 기도하여 응답 받는 간증이 있고, 불타는 복음의 열정이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표현이 우리 눈에 유치해 보이고 우습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과 교제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가장 큰 자인지를 논쟁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들을 잘 양육해서 주님이 보시기에 너무나 기뻐하시는 사람들로 세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실족시키고 길을 잃게 만드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하실 정도로 주님은 우리 아이들을 앞길을 귀하게 생각하십니다.



** 오늘날의 우상, 교육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다니엘서에 예언된 것과 같이 지식이 증가한 시대입니다(단 12:4).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많은 우상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바로 물질과 쾌락 그리고 교육입니다. 이 세상의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교육의 대열에서 뒤쳐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돈과 시간과 모든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세상의 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바로 사탄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 시스템에 정복당하여 휘둘리고 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한 초등학생이 자살하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학원을 조금만 다니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교육이라는 우상은 아이들을 바쁘고 지치고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세상의 흐름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 안에도 들어왔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러한 교육이 전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영어를 잘 못하고, 수학을 못하고, 과학을 못하면 걱정하고 염려하고 그것을 위해 돈을 쓰고 학원에도 보내지만, 자신의 자녀가 주님을 모르고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아이의 성적이 떨어지면 혼내기도 하고 답답해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무지한 것에 대하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우리교회의 초등부 아이들 중에 거의 대부분이 자기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한 달 동안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하거나 상식과 흥미를 위해 구입하는 책들의 가격을 생각한다면 성경은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엄마 성경을 가져다 읽으라고 하는 것과 자기 소유의 성경,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기록된 내 성경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주님을 알아 가는 것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상식과 교양을 위하여 읽으라고 강요하는 책들은 너무나 많지만 성경을 읽으라고 말하는 소리는 너무나 작습니다.



**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오늘의 본문 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 누구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특별히 주님은 어린아이를 제자들 앞에 세워놓고 이 작은 자들 중의 하나라도 멸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바램일 것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특징 가운데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랑이 식어지리라”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심이 험악해졌다.”, “세상 살기 무서워졌다.”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랑이 식어졌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대명사는 바로 부모님의 사랑일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자기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마지막 날들의 특징이 바로 사랑이 식어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바로 “구원”이며 “영원한 생명”입니다.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구주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하여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지난 5년 간 아이들을 대하고 또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복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 라는 사실은 아이들이 대부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지옥이 있다는 것도 알뿐 아니라 무서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것인지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뭔가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아이 자신이 철저하게 죄인이며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죄인이라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면 아이들의 순수하고 열려있는 마음 속에도 복음이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나이를 먹는다고 자라나지도 않고, 몇 번의 성경공부로는 심어주기가 굉장히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아들을 미워하거니와 그를 사랑하는 자는 어릴 때에 그를 징계하느니라.”(잠 13:24).
“바로잡는 것을 아이에게 금하지 말라. 네가 그를 회초리로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너는 그를 회초리로 때려서 그의 혼을 지옥에서 건질지니라”(잠 23:13,14).

사랑이 식어진 오늘날은 자기 아이를 때리지 않습니다. 제 때에 징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욕심을 부리고, 미워하고, 권위를 거슬러 마음대로 행동하고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얼마나 크게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자신이 어떻게 죄인인지 인식할 수조차 없습니다.
남을 속이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철저하게 맞으면서 배운 아이들은 거짓말을 지적할 때 자신이 큰 죄인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러나 다만 말로만 경고를 받고 타이르고 구슬리는 방식으로 자라난 아이들은 그런 것을 별로 죄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가 예수님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어떤 아이가 구원자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알맞은 때에, 아이들의 혼을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죄가 무엇인지 깊이 인식할 수 있도록, 뜨거운 사랑으로 아이들을 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초리가 아이들을 죽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지옥에서 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회초리를 아낀다면 그것은 아이들을 미워하는 것이며 멸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현재 잘못된 것들을 고치게 하는 효과도 있지만 더 멀리 본다면 그를 지옥에서 건지는데 필수적인 것입니다. 제 때에, 알맞은 때에 아이들의 잘못을 알려주고 징계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구주 예수님을 찾도록 인도해 줄 것입니다.



** 아이들의 미래
우리 아이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아이들이 하늘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구원만 달랑 받고 자기 정욕대로 살다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께 온전히 드려져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영원한 영광으로 기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모두의 목적이며 소망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이끌어 줄 수 있습니까?

저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저의 말을 듣고 배우기보다 저의 행동을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고는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는 이론을 따로 배우고, 실제로는 어느 선까지만 적당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말을 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짓과 표정과 어조와 행동을 관찰하며 실제가 무엇인지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흡수하고 그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고자 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참되게 이끌 수가 없습니다.
“예수 세상 계실 때 많은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
어머님이 읽으며 눈물 많이 흘린 것 지금까지 내가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저는 어릴 적에 어른들은 눈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른이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 어머니께서 예배당에서 통성기도를 하시면서 아주 큰소리로 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보았는데, 그 때 저는 “엄마 왜 울어, 엄마 왜 울어, 울지마.” 하면서 마구 흔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씩 앞에 나와서 기도할 때 잘 우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들! 아이들 앞에서 성경을 펼쳐놓고 많이 우십시오. 아이들에게 예수님을 이야기를 해주면서 많이 우십시오. 또 아이들에게 자기 전에 기도해주면서 많이 우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진지하게 믿고 따르는지 삶에서 보여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주일에 한번 습관적으로 만나는 악세사리 같은 분이 아니라 삶의 중심에서 나를 인도하는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기도요청
원래 저는 다니엘, 사무엘 그리고 사무엘의 자녀들, 소년 다윗, 디모데 이런 성경 인물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뚱딴지같은 소리를 할 때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또 아이들이 유치한 것을 가지고 웃고 좋아할 때 어떻게 같이 웃어줘야 하는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대하면서 쉽게 업신여기고 간과하는 부분 등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은 수요기도회입니다. 저는 기도요청을 하러 올라왔습니다. 부족하고 아무것도 아닌 한 어린 형제가 그 동안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섬기면서 힘들고 지치고 실패하고 부끄러웠던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대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주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이없어하고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하다가도 이 아이들보다 더 심한 나를 오래 참아주시고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신 주님의 은혜 앞에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도저히 섬길 수 없는 어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도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의지하여 아이들에게 오직 주님의 사랑과 진리만을 전달하고자 했을 때 나의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나의 마음상태와 관계없이 언제라도 아이들을 기쁘게 대해야하는 섬김의 위치는 때로 부담스럽고 힘든 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사실은 누구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넘치는 축복과 은혜를 누리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잠시 다른 위치로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언제라도 주님이 다시 부르시면 아이들을 가르치고 아이들과 함께 주님을 알아 가는 이 귀한 자리를 사모하며 돌아오기 원합니다. 아이들에게 더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여러 가지 핑계로 해주지 못하고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많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교회를 축복하셔서 많은 아이들을 주셨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을 사랑하고 돌보며 섬길 지체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섬김의 자리를 사모하여 헌신하며 감당할 지체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인생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또 아이들을 이끌어주며 함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는 선생님들이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19장 13,14절을 다 같이 읽고 마치겠습니다.
13 ¶ 그때에 사람들이 그분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실 것을 바라며 어린아이들을 그분께 데려오매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거늘
14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그들을 막지 말라. 하늘의 왕국은 그런 자들의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2005.01.26.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3세)

제목 : 시험을 이기는 힘
본문 : 마태복음 4장 4절


오늘 함께 살펴볼 주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4장 4절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마태복음 4장 1절부터 11절까지의 말씀을 모두 살펴볼 것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4절 한 구절만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오늘 저는 “시험을 이기는 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을 사용해 주시도록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의 본문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실 때, 세 번 모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말에는 “삼세판”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것은 완전한 승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험과 정욕을 세 가지로 요약하였는데, 그것은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인생의 자랑”입니다(요일 2:16).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이브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볼 때에 사용된 표현인 “먹음직도 하고 눈으로 보기에도 좋으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라는 것과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귀의 세 번의 시험을 모두 통과하심으로 말미암아 능히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완전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승리하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을 더 많이 알고 만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 본문 전반적인 설명
본문 1절은 “그때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3장의 끝 부분과 이어지는 시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3장의 마지막에는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7절에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친히 음성을 내시기를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셨습니다.

마치 욥기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시고 자랑하시는 말씀을 하신 직후에 마귀의 시험이 시작된 것과 같이, 마태복음 3장에서 이러한 아버지의 말씀이 끝난 직후에 마귀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에 낙담하거나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하늘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보시고 사랑하신 결과로 말미암아 시험이 임하였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시험을 당할 때에 기뻐하며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금보다 귀한 단련된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시험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직전에 통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통과하시고 앞으로 사역하는 모든 일의 원칙이 무엇인지를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들어가사
2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금식하시고 그 뒤에 주리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광야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또 스스로 마귀와 겨루어 볼 뜻을 품으신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싸움이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영적인 전쟁임을 명확히 보여주시고자 사십 일간의 금식을 통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힘을 약하게 하셨습니다.

 

** 첫 번째 시험
3,4을 읽어보겠습니다.
3 그 시험하는 자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령하여 이 돌들이 빵이 되게 하라, 하거늘
4 그분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시험하는 자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너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이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불과 사십여 일 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포하신 바 있습니다. 지금 마귀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빗대어 시험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너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배도 고픈 이때에 너의 능력을 좀 사용하여 이 돌들에게 명령하여 빵이 되게 해보라.”하고 충동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침례 요한은 하나님께서는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일으켜 세우실 수 있다고 선포한바 있습니다(마 3:9).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은 이 돌들로 빵을 만들 수 없겠습니까?

마귀의 요구는 어떤 사악한 죄를 저지르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돌들에게 명령하여 빵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입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돌을 빵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는 빵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움직인다.”하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배고픔을 면하기 위하여, 또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하여 임의로 행동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살고 계심을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 두 번째 시험
5절에서 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5 이에 마귀가 그분을 데리고 거룩한 도시로 올라가 성전 꼭대기에 그분을 세우고
6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기록된바,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한 책무를 주시리니 그들이 자기 손으로 너를 받들어 언제라도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하매
7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또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이제 마귀는 예수님을 거룩한 도시의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시험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시험이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시험은 하나님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위험에 처하여서 하나님으로 하여금 움직여서 예수님을 구하도록 만드는 것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해보라는 시험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예수님을 충동한 것이었습니다.

이번 시험에는 한 가지 위력이 더해졌는데 그것은 마귀가 시편 91편의 말씀을 인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는 “모든 길에서”라는 단어를 “언제라도”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은 답변은 “또 기록된바”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시험에서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특정 부분의 말씀만이 아닌 모든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에게 편하고 좋은 말씀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또 기록된바”라는 표현을 주목하여 보아야 합니다. “또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 세 번째 시험
8절부터 1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8 마귀가 다시 그분을 데리고 심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그분께 보여 주며
9 그분께 이르되, 네가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내가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매
10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11 이에 마귀가 그분을 떠나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기니라.


성경의 대 주제는 왕국이며, 주인공은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이신 주 예수님은 모든 만물의 머리이시며 왕이십니다. 주 예수님은 이 땅에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자기 백성을 죄들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담의 실패로 인하여 사탄에게 넘어간 이 세상의 왕국들을 되찾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죽음을 통과하여 영광으로 들어가셔야만 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영광의 보좌에 앉아 이 세상의 왕국들을 모두 통치하시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이전에 십자가를 견디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귀의 세 번째 시험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사악한 것이었습니다. 이 악한 현 세상을 다스리는 마귀는 세상의 모든 왕국들과 그것들의 영광을 예수님께 보여주고 그것을 순순히 넘겨주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음과 십자가를 통과할 필요 없이 쉽게 얻으라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다만 딱 한번 자신에게 엎드려 경배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얻으려했던 그 영광을 단 한 번의 타협으로 쉽게 가지라고 충동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사탄아, 너는 여기서 물러가라. 기록된바, 너는 주 네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길지니라, 하였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고 진행하시고 다 이루실 때까지 가지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기록된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주 예수님은 친히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므로 직접 무엇인가를 말씀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철저하게 기록된 말씀을 근거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 기록된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절대적으로 기록된 말씀을 따르셨습니다. 아무것도 임의로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시고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움직이셨습니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이것은 대언자 누구를 통해 기록된 것을 성취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는 칼로 말고의 귀를 쳐서 베어버린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지금 내 아버지께 기도하여 당장이라도 그분께서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게 주시도록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하느냐? 그러나 그리되면, 반드시 이렇게 되리라, 한 성경 기록들이 어떻게 성취되겠느냐?”(마 26:53,5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눅 24:44,45)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신 주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경의 기록들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철저하고도 절대적으로 길을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 결론
오늘 우리가 다 같이 읽은 마태복음 4장 4절에서는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내 산 위에 강림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들을 직접 듣고 너무나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고 모세가 대언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시내 산은 너무나 멀고 오늘날 그분은 직접 음성을 발하여 말씀하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선포하고 계십니다. “기록된바”, “또 기록된바”, “이는 기록된바”. 주님께서는 과거에 기록된 성경의 말씀들이 바로 현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입에서 나왔던 말씀이 아니라 지금 나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자주 넘어지고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결심이 부족하고 의지가 약해서입니까? 사십 일을 밤낮으로 굶어서 배가 고프고 피곤해서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대할 때에 지금 하나님께서 직접 입을 열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엄중하게 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험을 이기는 힘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소생시키고 오늘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입니다.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주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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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 설교 /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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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마 4:18-19)

 

이승선

 

안녕하세요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4장입니다마태복음 4장 18-19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4장 18-19절 말씀입니다.

18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더라.

19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나를 따르라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니

 

오늘 저는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시작

오늘 저는 주님께서 부르시고 사용하신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면서우리가 어떻게 주님 앞에 준비되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사람이 어떠한 모양어떠한 직업의 인생을 살든지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주님을 섬기는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이며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기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주님께서는 과연 어떠한 사람을 사용하시는가 우리가 오늘 어부라는 직업과 관련해서 한 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18절 말씀에서는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물고기를 낚던 어부인 그들에게 이제는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사람들을 낚는다는 것은 오늘날 사람들이 농담으로 주고받는 말처럼사람을 속이고골탕을 먹인다는 의미가 아니라바로 영혼들을 지옥에서부터 건져내어 구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과연 어부가 몇 명이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지금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는 세리라는 직업을 가졌었고다른 제자들에 대해서는 어부 외에는 특별한 직업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힘듭니다우리 함께 요한복음의 말씀을 통해 과연 어부들이 몇 명이나 되었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요한복음21장 2-3절을 보시겠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있더라.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나는 고기 잡으러 가노라하매 그들이 그에게우리도 함께 가노라하고 그들이 나가서 즉시 배에 올랐으나 그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에 마음이 매우 상심한 상태에 있었습니다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도망갔다는 마음에 매우 실망하였고다시 자기들의 본래 직업을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특별히 베드로는 다시 고기를 잡는 어부의 생활로 돌아가려 한 것을 볼 수가 있는데그때에 함께 한 제자들의 이름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베드로도마나다나엘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그리고 또 다른 두 사람이었습니다여기에 언급된 사람들만 해도 7명이었습니다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많은 어부들을 제자로 삼으셨을까요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을 부르셔서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을까요오늘 우리가 어부라는 직업과 관련해서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특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신실함

어부의 직업이 가지는 첫 번째 특징은 바로 신실함이라는 것입니다어부들은 게으르지 않습니다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제자들은 결코 게으른 어부들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은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면 밤새도록 포기하지 않고 그물을 던질 정도로 집요하고고집스러운 모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고기를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신실하게 고기를 잡았습니다그들은 비록 지식적으로는 무식했지만성격적으로도 거칠고 모가 난 부분이 많이 있었지만그들은 주님께서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의 성품인 신실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마가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마가복음 1장 16-20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이제 그분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더라.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너희는 나를 따라오라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시니

18 그들이 곧 자기들의 그물들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르니라.

19 그분께서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보시고 그들도 배에서 자기들의 그물들을 고치고 있으므로

20 곧 그들을 부르시니 그들이 자기들의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그분을 따라가니라.

 

예수님게서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그들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면서 신실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또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그들은 그물을 고치고 있었습니다어부들은 고기를 잡고 돌아오면반드시 배를 관리했습니다왜냐하면 배는 그들의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들은 그물을 관리했습니다그물이 찢어지고 구멍난 곳이 있으면다시 꿰매고 묶어서 그물을 손질하였습니다그들은 언제나 바다에 다시 나갈 수 있도록 신실하게 준비하고 관리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신실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주님은 신실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신실한 삶입니다토끼와 거북이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은 무엇입니까신실한 경주입니다아무리 재능이 없어도신실하게 훈련하는 선수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지만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게으른 선수는 결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주님을 섬기는 일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할 능력도 없고아무도 자기를 써주지 않기 때문에교회에서 봉사하고 일해야겠다고 말합니다주님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주님께서는 게으른 종을 악하다고 평가하셨습니다그리고 부지런하고 신실한 종을 착하다선하다라고 평가하셨습니다오늘 여러분의 삶을 선합니까아니면 악합니까우리의 삶을 신실합니까게으릅니까주님은 신실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믿음의 용기

두 번째로 어부의 특징은 믿음의 용기를 가졌다는 점입니다어부는 바다에 나가면서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합니다폭풍이 다가오는지파도가 얼마나 높은지 알지 못합니다그리고 또한 그들은 바다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그들은 그물을 던질 때물속에 물고기가 있는 것을 보고 던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들은 늘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바다에 나갔을 것입니다.

 

주님 오늘도 우리가 바다에 나갑니다우리는 드넓은 바다에 작은 배 한 척을 띄어 놓고이 나무 조각을 의지해서 바다에 나갑니다아버지께서 붙들어 주지 않으시면우리는 다 바다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오늘도 우리를 지켜주옵소서주님 우리는 물고기가 바다 속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고알 수 없습니다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인도하셔서우리가 고기를 잡게 하시고일용할 양식을 얻게 하옵소서.”

 

어부였던 주님의 제자들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삶에 익숙했습니다이러한 특성은 주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기에 매우 유용한 것이었습니다왜냐하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따라 걷는 삶이기 때문입니다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또한 히브리서 11장 27절도 보시겠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를 버렸으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느니라.

 

믿음은 보는 것으로 걷지 않는 것입니다믿음은 나의 환경을 보지 않는 것입니다믿음은 내 주변의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믿음은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믿음은 오직 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주만 바라보는 것입니다믿음은 불뱀에 물린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놋뱀을 바라보는 것이며죄인인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나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며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믿음은 바라보는 것인데보이지 않는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주님은 이러한 믿음의 용기를 가진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협력

세 번째로마지막으로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형제들과 함께하며 협력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베드로안드레야고보와 요한은 서로 다른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어부였지만그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자였습니다우리 함께 예수님께서 이 어부들로 제자로 삼으시기 전에 어떠한 만남을 가졌었는지한 사건을 살펴보겠습니다.누가복음 5장 4-1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그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깊은 데로 가서 너희 그물들을 내려 한 번 끌어당기라하시매

시몬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선생님이여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들이 이 일을 행하니 심히 많은 물고기가 잡혀 그들의 그물이 찢어지니라.

그들이 다른 배에 있던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그들이 와서 자기들을 도와주기를 바라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배들이 가라앉으려 하더라.

시몬 베드로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이르되오 내게서 떠나소서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하니

이는 그와 또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이 잡은 물고기들을 끌어당김으로 말미암아 놀랐기 때문이더라.

10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더라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두려워하지 말라이제부터는 네가 사람들을 낚으리라하시니

11 그들이 자기들의 배들을 뭍에 대고 모든 것을 버린 채 그분을 따르니라.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에게는 동료가 필요합니다형제자매가 필요합니다형제자매와 협력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주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민족과 싸울 때,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내고두 사람이 만 명을 쫓아낸다고 말씀하셨습니다한 사람과 두 사람의 차이는 2배가 될 것 같은데하나님께서는 10배의 효과를 기록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학교생활을 하시면서친구들과 부딪치고싸우고다투고갈등하고시기하고질투하고하면서 더욱 사랑하고 겸손하고 협력하는 믿음의 삶을 배우시기 바랍니다축구 경기도 한 팀의 모든 선수가 한 마음이 될 때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믿음의 삶도우리가 한 마음이 되어 협력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정리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부들을 부르셔서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특징을 살펴보았습니다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신실한 성품을 가진 사림이며믿음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며협력할 줄 아는 겸손과 형제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주님께서 우리 학생들을 복 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시는 일꾼들로 삼아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3.03.08.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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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것을 허비하는 인생(마 26:6-13)

 

이승선

 

오늘도 우리가 함께 귀한 채플 예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우리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시겠습니다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마태복음 2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26장 6-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그분께 와서 그분께서 음식 앞에 앉으실 때에 그분의 머리에 그것을 부으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무슨 의도로 이같이 허비하느냐?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거늘

10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너희가 어찌하여 그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그 여자는 내게 선한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

12 그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나를 장사지내기 위함이니라.

13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이 일 곧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하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귀한 것을 허비하는 인생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야기 설명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있었던 한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마태복음이 총28장으로 되어있는데우리가 지금 읽은 말씀이 26장이니얼마나 뒷부분의 이야기인지 감이 오실 것입니다.

오늘의 사건은 베다니의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것입니다베다니라는 장소는 가난한 자들의 집이라는 뜻인데바로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난 곳이고나사로의 자매들인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던 곳이었습니다오늘 그들이 함께 모인 장소는 베다니에 있는 한 나병 환자 시몬의 집이었습니다이제 이곳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방문하였고,베다니의 시몬뿐만 아니라베다니 지역모임의 식구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던 나사로도 함께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매우 화기애애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요한복음에서도 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예수님 개인적으로는 이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이는 작별 인사와 같은 것이었지만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을 것이고제자들에게는 매우 자랑스러운 모임이었을 것이고베다니 식구들에게는 매우 반갑고 즐거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한 여자라고 기록된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매우 귀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다 부어버린 것입니다다른 복음서에서는 이 향유 옥합의 가치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당시 장정 한 사람이 노동을 하여 하루 동안 벌 수 있는 일당이 일 데나리온이었습니다오늘날 일당으로 약 7만원정도를 잡는다면삼백 데나리온의 돈은 약 2,100만원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이러한 돈은 당시 여자들이 벌기에는아니 남자들이라 할지라도 벌어서 모으기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아주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마리아는 이 귀한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주님의 머리에 붓고그분의 발에 깨뜨렸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일은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반응

여러분이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과연 어떻게 반응하였을까요이 여인을 보면서, “도대체 뭐하는 거야?” 또는아멘할렐루야!” 하시겠습니까우리는 8-9절에서 제자들의 반응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무슨 의도로 이같이 허비하느냐?

이 향유를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하거늘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드린 그 장면을 보고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성경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것을 보고 분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면서 그들은 무슨 의도로 이같이 허비하느냐고 마리아를 나무라고 책망하였습니다이 향유를 이렇게 쏟아 부을 것이 아니라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을 도왔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후에 살펴보겠지만제자들의 이런 반응과 달리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이러한 드림과 헌신과 섬김을 기쁘게 받아주셨고오히려 제자들 앞에서 그녀를 칭찬하여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에서는 마리아가 이제 곧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가실 예수님을 장사지내기 위해 향유 옥합을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제자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모임으로 당당하게 앉아있었는지 모르지만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보고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여러분우리가 주님을 섬기고자 할 때우리가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드리고자 할 때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다음과 같이 반응할 것입니다먼저사람들은 우리를 향해 분개할 것입니다또한 우리에게 무슨 의도로 그렇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허비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그리고 그런 식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다른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할 것입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게 분개하며 말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이나사두개인이 아니라,로마의 군사들이 아니라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바로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겠다고 말하면서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 마리아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실을 오늘 마음속에 반드시 새겨두시기 바랍니다여러분이 언젠가 주님을 섬기고 싶어서주님께 여러분의 일생을 드리고 싶어서어떠한 믿음의 선택들을 하게 될 때에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분개하고 그것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주님의 제자들이 바로 여러분을 가장 가까이서 크게 공격하는 사람들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이다그것은 효과적이지 않고너무나 소모적이다그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그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 뻔하다.”

 

여러분그러한 평가나 판단의 소리를 듣게 될 때에마음에 낙심하거나 상처를 받지 마시고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바로 그러한 일은 2천년 전에 마리아에게 똑같이 있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이 쟁쟁한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마리아가 더 주님을 참되게 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나 자신을 소비하고허비하고낭비한다는 느낌이 없다면그것은 어딘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우리가 주님을 섬기면서손해를 감당하고대가를 지불하고희생을 하는 것이 없다면주님께서 무엇인가를 보상해 주실 만한 일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반응

이제 우리 함께 예수님의 반응을 살펴보시겠습니다. 10-13절을 보시겠습니다.

10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너희가 어찌하여 그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그 여자는 내게 선한 일을 하였느니라.

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니라.

12 그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나를 장사지내기 위함이니라.

13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이 일 곧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리라하시니라.

 

제자들이 분개하며 마리아를 나무라는 상황에서예수님께서는 마리아를 변호해 주시고칭찬해 주셨습니다심지어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서 마리아가 행한 이 일도 기념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예수님의 복음의 선포되는 곳에서바로 이 향유 옥합의 이야기도 함께 선포될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길은 쉽지 않은 길입니다그것은 고난의 길입니다그것은 나 자신의 귀한 것을 허비하는 길입니다그것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주님께 드리는 길입니다나의 손과 발과 눈과 귀와 입나의 온 몸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오해와 비방이 따를 것입니다세상의 비방뿐만 아니라때로는 제자들의 비난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닙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아닙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나중에 주님만을 섬기고 모든 것을 드리고자 할 때선생님이 나서서 그것을 막을 수도 있습니다.여러분의 부모님이 여러분을 막을 수 있고또 여기에 모여 있는 친구들선배후배들이 여러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막아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너의 값지고 귀한 인생을 그렇게 허비하지 말아라좀 더 가치 있고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길을 선택하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귀담아 들을 수 있을 만큼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그러나 때로는 마리아처럼 외롭고 힘든 길주님을 위해 값진 것을 드리고 나서도 사람들로부터 칭찬은커녕 비난을 받게 되는 길을 가게 될 각오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우리가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분은 주님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정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귀한 것을 허비하는 인생입니다여러분우리가 오늘 우리의 작은 것을 주님께 드려보지 않는다면우리는 결코 커서 주님께 큰 것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오늘 우리가 작은 손해작은 불편함을 주님을 위해 기꺼이 감수하지 않는다면우리는 결코 커서 주님께 큰 것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오늘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향유 옥합은 무엇입니까향유 옥합이 깨질 때그 향기가 베다니 작은 집에 진동을 하였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오늘 우리가 귀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그것이 나의 자존심이든,나의 자랑이든나의 소중한 어떤 물건이든그러한 것들이 깨어지지 않는다면아름다운 향기는 단단한 자아육신이라는 옥합에 갇혀 아무런 향기도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우리의 인생은 귀한 것을 허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의미 없이 허비하는 인생이 아니라더럽고 추한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사랑의 주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허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사람들의 눈에 볼 때는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그 같은 낭비가 어디 있을까하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할지라도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주님을 위한 것이라면계산 없이조건 없이 드릴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중에 갚아주실 그 날을 바라며우리가 오늘 주님께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리기 원합니다우리 함께 마라나타 찬송 252장 내게 있는 향유 옥합을 부르시면서나의 귀한 것나의 향유 옥합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3.04.1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 /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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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라(마 5:1-12)

 

이승선

 

안녕하세요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입니다마태복음 5장 1-12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5장 1-12절까지의 말씀을 번갈아서 읽으시겠습니다.

그분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나아오매

그분께서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쳐 이르시되,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요,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요,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요,

10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11 나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하늘에서 너희 보상이 크니라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오늘 저는 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시작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에서 설교하신 말씀이라고 해서 산상수훈이라는 말로 잘 알려진 본문입니다또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왕국의 법을 선언하셨기 때문에, “왕국의 법황금율이라는 말로도 잘 알려진 본문입니다또는 여덟 가지의 복이 등장한다고 해서 팔복이라는 말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그러나 뒤에서 다시 보겠지만본문에서는 복이라는 단어가 총 9번 등장하고, 7번은 성품과 관련되며, 2번은 핍박을 받는 것과 관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바로과거에 성경을 시대별로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신 경륜별로나누어서 공부하기 시작하였던 초기의 세대주의자들이나오늘날의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도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나천년왕국의 백성에게만 해당한다고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3절에 나타난,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라는 표현을 구원이라 보기 때문에이것이 행위 구원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또한 9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요라는 말씀도 구원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며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를 통틀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더군다나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이 말씀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보다 훨씬 더 높고 철저한 법을 제시하고 있는데,이것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원하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오늘의 본문은 구원의 조건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사람의 성품과 품격을 제시하여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특징은 무엇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권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단 한 번, 12절에서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라는 말씀밖에 없습니다나머지 말씀들에서는 영이 가난한 자가 되라거나애통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다만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지를 제시해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5장의 말씀에서 등장하고 있는 복이 있는 사람의 특징은 모두 부정적인 것들입니다우리가 듣기에 별로 복스러워 보이지 않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또한 우리가 받은 복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들은 여러 가지 다른 말로 표현되고 있지만모두 영원한 하늘의 왕국에 속한미래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에 당장 좋아 보이지도 않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우리는 이 땅이 곧 불타 없어져버릴 것임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합당하지 못하다 할지라도최소한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저는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라는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우리가 이 세상에 투자하는 삶이 아니라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일으켜지기 원합니다우리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한 구절 한 구절 마음에 새기면서이 말씀 자체를 우리의 마음에 담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영이 가난한 자

먼저 우리 함께 3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 복 주시는 사람은 영이 가난한 사람입니다영이 가난한 자는 하늘의 왕국을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이것은 왕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소유권과 통치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영원한 왕국에서 소유권과 통치권을 가지는 사람은 영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예수님께서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는데그 베들레헴의 집과 말구유는 모두 빌린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 묻히신 무덤도 역시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을 빌리신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소유하신 하나님이셨지만이 땅에 계실 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습니다그분은 오천 명을 먹이실 때에도 작은 소년의 오병이어를 빌리셨고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다른 사람의 나귀를 빌리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아무 재산도 가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그들은 모든 것을 다 버렸습니다베드로와 안드레는 배와 그물을 버렸고바나바는 자기 온 땅을 팔아 다른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님을 따랐습니다주님을 따르는 삶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는 삶은 가난함을 추구하는 삶입니다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예수님을 믿으면 사업도 성공하고이 땅에서 물질의 복을 받는다고 말합니다그러나 성경은 정반대로 말하고 있습니다.영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의 왕국을 소유하기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에 있어서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부유합니다물질적으로 가난한 것만 가지고는 영이 가난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가난한 사람들도 마음에서는 재물을 모으려는 욕심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사람은 영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며결국 부유한 사람입니다많은 사람이 가난하게 살면서도 영 안에서는 이처럼 욕심으로 부유한 사람이기에하늘의 왕국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영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늘의 왕국을 소유하기를 원하십니다.

 

 

애통하는 자

이제 우리 함께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는 또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애통하는 것은 마음이 너무나 상심되어 우는 것을 말합니다애통하는 것은 세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했을 때의 마음을 말합니다애통하는 것은 대언자 예레미야가 눈물이 강물처럼 되었다고 표현한 것처럼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기도하며 울었던 마음을 말합니다애통하는 것은 다윗이 대언자 나단이 죄를 지적하였을 때하나님 앞에 그것을 인정하고 철저히 돌이키던 바로 그러한 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애통하는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나 자신의 죄악이나형제자매의 허물을 볼 때 애통하게 됩니다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형제자매의 어려움을 볼 때 애통하게 됩니다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릴 계획을 가지고 계셨지만마리아와 마르다와 함께 우셨습니다이것이 바로 사랑이며우리가 추구해야 할 애통함입니다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애통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온유한 자

이제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온유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상속받을 것이기 때문이요,

또한 주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온유하다는 것은 요구가 없다는 것입니다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나 요구가 없습니다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모든 상황에 만족하며 감사합니다온유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믿습니다온유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분투하거나논쟁하거나변호하거나주장하지 않습니다온유한 사람의 특징은 모든 일에서 다만 잠잠히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십니다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그리고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통해 안식을 얻기를 원하셨습니다그러므로 주님과 동행하는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평강과 안식 가운데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서나를 자극하는 사람이 없어서수고하고 무거운 짐 없어서가 아니라그러한 것들이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있지만주님과 함께 온유함 가운데 걷게 될 때에우리는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영원한 왕국에 투자하게 될 때에 땅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정말 필요한 것이 땅장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대안학교를 해도 그렇고교회를 해도 그렇고우리에게는 땅이 필요합니다우리 학생들은 마음대로 운동을 할 수 있는 운동장을 달라고 늘 기도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는 땅을 차지하지 못한다 할지라도주님께서는 우리가 십자가와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통해온유한 자가 되어 살아가게 될 때에영원한 왕국에서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이제 우리 함께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는 의를 향해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주님께서는 의로운 일을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의인이 복이 있다거나의를 얻은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과거에 얼마나 의롭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현재 얼마나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사모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돈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우리는 명예와 권력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16강에 올려놓았는데그때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지금은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 연설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 바로 배고프고 무식한 상태에 머물러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이처럼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대해 늘 불만족하면서끊임없이 그것을 얻으려고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많은 큰일들을 이룬 사람일수록 만족하기보다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향해 달리고도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를 원하십니다주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배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의에 목마른 사람은 반드시 배부르게 될 것이며만족하게 될 것입니다의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내려는 것이 아니라반대로 나로부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들

이제 우리 함께 7절을 보시겠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은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긍휼이라는 것은 관대하고 불쌍히 여기는 성품을 말합니다.긍휼은 계산을 너무 정확히 따지지 않는 것이며트집을 잡지 않고다른 사람의 결점에 대해 눈감아 주는 것이고용서하기를 좋아하며인내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입니다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긍휼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의 특징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바로 긍휼의 성품에 있습니다믿음 생활을 오래 했다고 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성경 지식을 많이 알았다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긍휼히 여기는 삶을 꾸준히 살아갈 때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긍휼이란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주는 것이며마땅히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긍휼은 판단하지 않는 것이며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긍휼은 문제가 많은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 죄 많은 우리를 손가락질하시거나비난하지 않으시고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셔서 십자가에 오르신 것처럼우리도 그렇게 십자가를 지는 긍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모든 손해를 감당하고긍휼의 삶에 우리 자신을 투자한 결과는 영원한 긍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가 긍휼을 베풀 때에반드시 긍휼을 다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우리가 과거에 이미 십자가에서 주님의 긍휼을 얻었기 때문이며현재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긍휼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고또 미래에 영원한 왕국에서 다시 한 번 그 긍휼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긍휼을 베푸는 것은 사실손해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영원한 왕국에 투자하는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의 생명을 힘입어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들

이제 우리가 8절을 보시겠습니다.

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이요,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기를 원하십니다마음이 순수한 자들은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는 것이며속마음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순수한 마음은 나의 유익을 계산하지 않고정직하며꾸밈이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장차 영원한 왕국에서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얻게 될 큰 보상과 영광을 의미하는 것이며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마음이 순수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마음이 순수하지 않은 사람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마음이 순수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고눈 먼 소경과 같이 헤매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믿음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니고성경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며하나님의 일들을 많이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순결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가진정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계산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지 않고나의 생각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마음이 순수한 사람이 세상에서는 어리석은 멍청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주님 앞에서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주님은 우리 모두가 순수한 마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

또한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이것은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리는 표시가 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자기 자신이 사랑을 받기 위해서자신이 유익을 취하기 위해서자신이 높아지기 위해서다른 사람의 문제를 들추고약점을 잡아 헐뜯는 사람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화목과 화평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자와 죄인 사이에 완전한 화평을 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이처럼 우리가 화평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우리는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기꺼이 손해 보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없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잘못을 따져서 화평을 주시지 않았고십자가에 대신 달리셔서 화평을 주셨습니다오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우리는 이처럼 십자가를 지고화평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핍박받는 자

이제 우리가 함께 10-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0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

11 나로 인해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너희를 대적하여 거짓으로 온갖 악한 것을 말할 때에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하늘에서 너희 보상이 크니라그들이 너희 전에 있던 대언자들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 10절은 의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고, 11절은 직접적으로 나로 인하여” 즉 주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리고 12절은 바로 나로 인하여즉 주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은 결과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기록된 복 가운데 가장 큰 복음 주님으로 인하여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는 일입니다우리가 욕먹을 짓을 해서 욕을 먹는 것이 아니라주님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될 때우리는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해야 합니다왜냐하면 하늘에서 보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면서 이 땅에서 손해를 당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만약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으로 인한 어려움이 없다면그것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나의 죄 때문에나의 실수나 부주의함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 말고정말 주님으로 인한 고난이 우리의 삶에 더 많아지기 원합니다우리가 주님 때문에 욕먹는 일도 많아지고주님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대적을 당하는 일들도 더 많아지기 원합니다그것이 비록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그것은 영원한 왕국을 위한 과감한 투자이기에 큰 보상으로 갚아질 것입니다.

 

우리는 3절부터 12절까지 복이 있는 사람에 대한 많은 말씀들을 간단하게 훑으면서 살펴보았습니다이러한 모든 성품들은 우리가 결국 이 세상에서는 손해를 봐야한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영적인 모양새를 잘 가지면서 세상을 추구할 수도 있지만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의 삶을 살게 되면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습니다우리가 오늘 가는 길은 영 안에서 가난한 길애통하는 길온유한 길의에 주리고 목마른 길긍휼을 베푸는 길순수한 마음의 길화평케 하는 길의로 인하여주님으로 인하여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하는 길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가 이러한 어떤 행동을 하거나모양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이러한 성품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존심과 욕심과 야망과 미래를 십자가에 넘겨주지 않으면우리는 결코 이러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자하고 있습니까우리는 오늘 십년 뒤의 풍족한 삶이나든든한 노후생활을 위해 오늘을 투자하고 있습니까아니면 영원한 왕국을 위해 투자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마음에 빛을 주시고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채워주시기 원합니다우리 모두가 하늘의 왕국에서 큰 보상과 영광을 받고 기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09.30 갈보리침례교회 오후예배 / 로빈30세

http://robinbox.net

 

안식을 주시는 주님(마 11:28-30)

이승선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입니다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하시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안식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안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안식을 주시는 주님입니다.

 

오늘은 추석입니다추석은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에게는 매우 좋은 휴식의 기간입니다운전을 하시는 형제님들이나음식을 하시는 우리 자매님들께서는 아마 더 힘들게 일하시는 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우리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학생들은 10월 2일 화요일은 재량휴일로 쉬고그 다음 날은 개천절이라 수요일까지 긴 휴식기간을 가지게 되어서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그렇지만 학생의 본분을 잊지 않도록 여전히 숙제들이 주어졌습니다.

 

오늘날 바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쉬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하루 종일 잠만 잤으면 좋겠다고 대답을 하거나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거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대답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실 것입니다우리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을 기다리고우리 어머니들은 빨리 방학이 끝나서 자녀들이 학교에 가기를 기다리십니다.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와 실제적인 휴식을 갖기 원하지만인생은 우리를 바쁘게 몰아갑니다일상적인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게 되는 추석을 맞이해서 우리가 오늘 한 번 안식이라는 주제로 성경말씀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안식

처음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안식 가운데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려먹고 일을 시키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7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는데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하셨습니다그리고 일곱째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사람이 창조되자마자 맞이한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지만그것은 어떠한 수고나 노동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아담은 선악과를 제외한에덴동산에서 나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본래 창조하신 목적은 수고나 노동이 아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안식 가운데 자신과 교제하고 동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수고하게 된 것은 바로 죄 때문이었습니다우리 함께 창세기 말씀을 한 번 찾아보시겠습니다창세기3장 17-19절 말씀입니다.

17 아담에게 이르시되네가 네 아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평생토록 고통 중에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

18 또한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네가 들의 채소를 먹으며

19 땅으로 돌아가기까지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빵을 먹으리니 이는 네가 땅에서 취하여졌기 때문이라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시니라.

 

이전까지 모든 채소와 곡식과 과일을 아무 노동 없이 먹었던 아담이이 시간 이후부터는 땀을 흘리고 농사를 지어야만 먹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고생과 수고는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주신 벌이었습니다또한 일하는 시간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죄를 짓지 않도록 마련해 주신 시간이기도 합니다먹고 살기에 바빠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최소한 그렇게 바쁘게 열심히 일한 시간만큼은그리고 피곤해서 잠을 자는 시간만큼은죄를 지을만한 시간적인 여유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사람은 쉬는 시간이 생기면 죄를 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욥기 5장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생의 노동과 수고와 고생은 이제 사람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욥기에 기록된 엘리바스라는 사람은심지어 사람이 태어나는 목적이 고생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처럼 우리의 인생은 수고와 고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안식을 주시는 주님 – (1) 과거 죄의 짐

이제 다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마태복음 11장 말씀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28-3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하시니라.

 

우리에게는 항상 주님이 필요합니다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무거운 짐이 있고주님께는 언제나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주님께서는 지금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데그 자격은 바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입니다우리가 오늘 주님께 나아올 수 있는 자격은 바로 이것입니다우리가 무엇인가를 잘 했다거나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우리에게 수고와 무거운 짐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바로 안식을 주시는 주님인데주님께서 주시는 안식이 어떠한 것인지 세 가지로 나누어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첫 번째는 과거에 이미 주신 안식그리고 두 번째는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주시고 계시는 안식,그리고 세 번째는 미래에 앞으로 주실 안식입니다.

 

먼저 주님께서 과거에 이미 주신 안식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우리는 모두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히브리서 12장 1절에서는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데이처럼 죄는 우리의 등에 무거운 짐처럼 지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우리의 온 몸에 얽혀있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이 무겁고 더러운 죄의 짐을 지고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죄의 짐을 우리 대신 지시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우리 함께 이사야 53장을 보시겠습니다이사야 53장 4-5절입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의 더럽고 무거운 죄를 예수님께서 대신 짊어지시고 담당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바로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흘려 죽으셔서우리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우리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우리는 5절 말씀에서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에게는 화평이 아니라 심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우리가 용서를 받고화평과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의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담당하셨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안식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와 보혈 때문입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의 느낌이나 삶을 바라보면우리는 안식을 누릴 수 없지만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바라볼 때 우리는 구원을 확신할 수 있고완전한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지옥으로부터의 구원과 안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안식을 주시는 주님 – (2) 현재 삶 가운데 마음에 안식을 주심

이제두 번째로 현재 우리의 삶 속에 안식을 주시는 주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주님께서는 분명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주님께 오면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수고하고 노동하고 고생하고 있습니다주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은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마음의 안식과 평안입니다.

 

먼저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수고와 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찾아보겠습니다먼저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성경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매우 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이것은 우리가 앞서 창세기에서 살펴본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수고하고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먹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안식을 주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일하지 않아도 된다거나게으르게 살아도 된다는 말씀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11장 말씀도 보시겠습니다고린도후서 11장 23-2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역자냐? (내가 어리석은 자처럼 말하거니와나는 더욱 그러하도다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28 이렇게 밖에 있는 그 일들 외에도 날마다 내게 닥치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우리는 여기에서 그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았던 사도 바울의 삶이 어떠했는지 읽어볼 수 있습니다그의 삶은 말 그대로 수고와 고생이었고고난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마음에는 언제나 주님의 안식과 평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지만여전히 주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이송되는 배에서 폭풍을 만나고 배가 좌초되는 일을 겪었으나함께하던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바울 안에서 안식이 되시고 평강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은 바로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화평입니다모든 상황과 이해를 초월하는 안식인 것입니다도저히 기뻐할 수 없고평안할 수 없는 상황에서이해할 수 없는 평강과 안식을 부어주시는 것이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인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에 평안과 안식이 없고불안하거나 지치게 되는 이유는우리에게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라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에서 평화라는 주제로 미술 작품 공모전이 있었다고 합니다많은 다양한 작품들이 출품되었고 전시가 되었습니다그곳에서 2등을 한 작품은 누가 봐도 평화롭게 느껴지는 넓은 초원이 그려진 풍경이었습니다따스한 햇살과 맑은 구름그리고 날아다니는 새들이 그려진 평화로운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1등을 한 작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벼락이 치고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습니다높은 절벽과 그 아래에는 거센 강물이 흐르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그런데 그 그림의 한 중앙에는바로 절벽의 한 틈새에 오리들이 그려져 있었습니다바로 새끼 오리들이 어미의 품에 안겨서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로 잠을 자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안식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주님께서 주시는 안식과 평안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상황을 초월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붙어있다면우리는 언제어디서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안식할 수 있고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주님이 주시는상황과 이해를 초월하는 놀라운 안식을 받아 누리기를 원합니다.

 

 

안식을 주시는 주님 – (3) 미래 천국

오늘 우리는 안식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첫 번째로는 과거에 죄의 무거운 짐으로부터 안식을 주신 주님에 대해 생각하였고두 번째로는 현재 우리의 삶 속에서 주시는 안식과 평강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이제마지막으로 미래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안식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 함께 계시록 2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계시록 21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나 요한이 보매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보라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하더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한 왕국한 도시를 예비하셨습니다그것은 바로 새 예루살렘입니다이 도시의 특징은 바로 3절에 나온 것처럼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 딸이승연이가 밤에 잠들 때 엄마를 찾습니다낮에는 아빠가 안고 노래를 불러주면 아주 잘 자는데밤에는 엄마만 찾습니다장난감이나 인형이나 책도 필요 없고 엄마만 있으면 됩니다승연이에게는 엄마만 있으면 평안하고 행복하고 마음에 안식이 되는 것입니다그것처럼 사람도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그것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것이 없습니다바로 그날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는 그 날에 이러한 삶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다시는 사망도이별도슬픔도아픔도 없을 것입니다더 이상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고오해나 스트레스도 없을 것입니다완전하고도 영원한 안식과 평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8-21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8 그 도시의 성벽 건조물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그 도시는 순금이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도시의 성벽 기초석들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었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둘째는 사파이어요셋째는 옥수요넷째는 에메랄드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여섯째는 홍보석이요일곱째는 귀감람석이요여덟째는 녹주석이요아홉째는 황옥이요열째는 녹옥수요열한째는 청옥이요열두째는 자수정이더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였으며 문마다 각각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그 도시의 거리는 순금이며 마치 투명한 유리 같더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한 도시는 그 자체가 보석 덩어리입니다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거대한 대문이 진주 하나로 되어 있고그러한 문이 12개가 있습니다도시의 길바닥은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며칠 전 일산 킨텍스에서 “2012 국제철강 및 비철금속 산업전” 행사가 열렸습니다그때 한 업체에서 아파트 한 채를 들어보라며 12.5kg의 금괴를 전시하였습니다현재 금값으로 12.5kg이면 약 9억원이라고 합니다. 12.5kg이면 남자가 한 손으로 조금 힘들게 들 수 있는 아령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런데우리가 가게 될 새 예루살렘의 길바닥은 순금으로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더 이상 금 따위가 아무 가치가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그때에 누가 금반지를 한다면아마도 오늘날 흙이나 돌로 만든 반지처럼 아무 가치가 없는 싸구려 쓰레기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에게 금이 없어도 아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결국에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우리의 가치관이 영원한 세상에 맞춰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함께 계시록 22장 1-5절까지 보시겠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그 도시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그것이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민족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왕좌가 그것 안에 있으리니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

 

어린양의 왕좌에서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입니다수질 오염도 없을 것이고가뭄도 없을 것입니다. 2절에서 보시는 것처럼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는데열두 종류의 열매를 매달 맺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과일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있지만그 날에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그곳에는 밤이 없을 것이고어둠이 없을 것입니다. 5절의 마지막에서는 우리가 영원무궁토록 주님과 함께 통치할 것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영원한 안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보라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이제 우리 주님께서 속히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선물과 보상을 주실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육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내어드린 대로 주님께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우리가 이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들을 바라볼 때뉴스에서 나오는 소식들을 볼 때정말 이 세상이 끝이 가까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이 삶이 너무나 치열하고 지치고 힘이 든다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따라가기 원합니다우리가 이 땅에서는 수고하고 고생하지만주님께서 우리에게 완전한 보상과 또 안식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정리

우리를 지옥의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구원하셔서 안식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우리를 붙드시고모든 어려움을 초월하는 완전한 평강과 안식을 허락하여 주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또한 우리를 위해 너무나 과분하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예비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위로가 되시며보상이 되시고모든 것이 되시는 주님을 붙잡고 동행하며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끝까지 신실하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01.29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 / 로빈30세

http://robinbox.net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마 6:19-21)

이승선

 

안녕하세요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하루하루의 시간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오직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오늘 얻고자 노력하고 달리는 목표는 무엇입니까우리의 목표가 썩어지고 사라져 버릴 이 땅의 허망한 것들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것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6장입니다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2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20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우리는 외출을 한 어떤 사람이 자꾸 집에 서둘러 가려고 할 때, “집에 꿀 발라 놨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사람은 무엇인가 소중한 것이 있을 때 그곳으로 마음이 향하게 됩니다새 자동차를 산 사람은 마음이 그쪽으로 갈 것이고,새 집을 마련하고 인테리어를 하면서 이사 갈 준비를 하는 사람은 새 집으로 마음이 향할 것입니다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계획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그쪽으로 향할 것이고결혼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결혼에 마음이 향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있습니까우리는 어디에 꿀을 발라 놓았습니까영원한 하늘입니까아니면 잠시 뿐인 이 땅입니까오늘 저는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는가하는 물음에 대해서 다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 원합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먼저 다 함께 마태복음 6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성경은 아무도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기서 맘몬이라는 것은 아람어로 재물이나나 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특별히 여기서 맘몬이라는 아람어를 돈이나 재물로 번역하지 않고그대로 사용한 것은 이 당시에 맘몬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우상의 이름처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그렇기 때문에 맘몬이라는 소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맘몬을 번역한다면 돈의 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성경은 아무도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사랑하거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 자동차나새 집이나사업이나결혼 자체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얽매여서 살아가게 될 때에그것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우리의 보물이 영원한 하늘에 있든지아니면 썩어지고 사라져 버릴 잠시 뿐인 이 땅에 있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고 있을 때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온 우주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피 흘려 죽으시면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우리에게 이러한 구원의 감사와 감격이 넘쳤을 때우리는 하나님 외에 이 땅의 모든 헛된 것들을 가볍게 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눈을 돌려 다시 허망한 이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어리석어서 다시 썩어지고 사라져 버릴 먼지와도 같은 것들을 움켜쥐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생활하였든지 상관없이다시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있게 되고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주님이 다시 오시는 시간이 점점 가까워오는 이 때에우리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오늘밤 주님이 오신다면 단 하루라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돈을 사랑함

다 함께 디모데전서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디모데전서 6장 7-10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느니라.

10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셨습니다하나님은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우리가 부유하게 되고자 하면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돈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악의 뿌리를 우리 마음속에 심게 된다는 것입니다부유하게 되고자 욕심을 내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의 결말은 무엇입니까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때문에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친한 친구들과 대적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족들에게 소홀해 지거나 심지어 원수가 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돈을 사랑하는 악한 뿌리로부터 미움과 살인과 온갖 더러운 죄악이 나오며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결국에는 많은 고통으로 자기 자신을 찔러 꿰뚫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우리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도끼를 꺼내어 돈을 사랑하는 모든 악의 뿌리를 완전히 찍어내기를 원합니다우리의 마음속에서 커다란 곡괭이와 삽을 꺼내어 돈을 사랑하는 모든 악의 뿌리를 완전히 뿌리째 뽑아버리기를 원합니다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마음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반드시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돈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기 전에우리가 믿음을 통해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뽑아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땅을 소유하고모든 돈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오늘밤 우리가 죽는다면 죽음과 함께 모두 다 사라져버릴 것입니다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일시적으로 필요한 돈이 아니라,영원히 필요한 금보다 귀한 살아있는 믿음인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확실치 않은 재물

디모데전서 6장 17-19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7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마음을 높이지 말고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도 말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고

18 또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

19 또 다가올 때를 대비하여 자기를 위해 좋은 기초를 쌓게 할지니 이것은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붙들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돈은 우리를 배신할 것입니다돈은 우리를 떠나갈 것입니다돈은 우리가 움켜쥔다할지라도 우리를 벗어나 멀리멀리 달아날 것입니다우리는 돈을 신뢰하지 말고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또 우리는 이 땅에서 부유하게 되고자 하지 말고 영원한 세상에서 누릴 하늘의 보물을 위해 좋은 기초를 쌓아야 합니다.

 

잠언 23장 말씀도 보시겠습니다잠언 23장 4-5절입니다.

부자가 되려고 수고하지 말고 네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라.

네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네 눈을 두려 하느냐재물은 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독수리같이 하늘을 향해 날아가느니라.

 

오늘 우리의 수고는 이 땅에 쌓여지고 있습니까아니면 하늘에 쌓여지고 있습니까성경은 재물을 향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를 먹이고 인도하는 목자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오늘 우리의 생활을 지시하고 이끄시는 분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우리는 돈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입니다우리는 돈을 믿고 돈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재물은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파멸시킨 뒤에반드시반드시 스스로 날개를 내어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재물의 속임수

다 함께 마태복음 13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13장 3-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비유로 많은 것을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보라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때에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날짐승들이 와서 그것들을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을 내나

해가 돋은 뒤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시들어 버렸고

더러는 가시나무 사이에 떨어지매 가시나무가 돋아나 그것들을 숨 막히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다른 것은 좋은 땅 속에 떨어지매 얼마는 백 배얼마는 육십 배얼마는 삼십 배의 열매를 내었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시니라.

 

이 말씀은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씨 뿌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길가돌밭가시밭좋은 땅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줍니다이렇게 동일한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 밭에 뿌려지지만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저는 오늘 특별히 7절에 나온 가시밭에 주목해 보기를 원합니다.

가시밭에 대한 설명인 22절을 보시겠습니다.

가시나무 사이에 씨를 받은 자 또한 말씀을 듣되 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가 말씀을 숨 막히게 하므로 열매 맺지 못하는 자니라.

 

가시밭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그러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속임수라는 가시나무에 눌려 말씀이 믿음의 성장으로열매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여기서 특별히 재물의 속임수라는 표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돈은 참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속인다는 것입니다이 세상의 염려도 허상이며재물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우리가 이러한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며 그것을 붙잡으려고 할 때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은 다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음에 거대한 도끼를 들고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가시나무바로 돈을 사랑하는 마음세상의 염려재물의 속임수를 완전히 찍어 내어버리기를 원합니다재물을 추구하는 마음을 깨끗하게 제거하고좋은 밭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 열매 맺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삶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받고 이러한 가시밭을 완전히 갈아 엎어버린온전히 회개한 사람의 열매는 무엇일까요믿음의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다 함께 누가복음 19장에서 확인해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19장 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께 이르되보소서내가 내 재물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내가 거짓 고소하여 어떤 사람에게서 무엇이든지 빼앗았으면 그에게 네 배로 갚겠나이다하매

 

이 고백은 키가 작아 뽕나무 위에 올라갔던 세리장이요 죄인이었던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 고백한 내용입니다주님을 만난 삭개오의 열매는 무엇입니까단순히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자신의 인생의 전부였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며자신이 부당하게 얻었던 이득에 대해서는 네 배로 보상하는 것이었습니다자신이 섬기던 맘몬신을 완전히 버리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아섰던 것입니다우리는 주님을 만나고 나서 돈에 대한 자세가 어떻게 변하였습니까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삭개오 외에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삶은 어떠했는지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먼저 창세기 14장을 보시겠습니다창세기 14장 21-23절입니다.

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사람들은 내게 주고 재물은 네가 취하라하매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께 내 손을 드노니

23 네가 이르기를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할까 염려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전쟁에서 패하여 모든 백성을 빼앗긴 소돔 왕을 대신하여 자신의 조카인 롯을 구출하기 위해 전쟁에 나가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과 소돔왕의 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소돔 왕은 전쟁에서 패하여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는모두다 빼앗겨버린 처지이면서어떻게 보면 염치도 없게아브라함에게 모든 전리품을 가지는 대신 백성들은 돌려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다 차지하고 소유할 자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심지어 그 자리에서 소돔 왕을 죽이거나 쫓아내고 왕의 자리에 앉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재물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모든 재물을 다 돌려주었습니다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확신하는 것만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자신이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해서 다 가지지 않았고가질 여건이 된다고 해서 다 가지지 않았습니다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을 받았습니다그리고 사람들 앞에서도 그러한 간증을 나타내기를 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또 다른 일화를 살펴보시겠습니다창세기 23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라는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가나안 땅에 있는 헤브론이니라아브라함이 와서 사라로 인해 애곡하며 그녀로 인해 울었더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아내인 사라가 죽은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이제 아브라함은 사라를 묻어줄 무덤이 필요했습니다우리나라는 시체를 관에 넣고 흙을 파서 묻는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지만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시체를 세마포에 싸서 동굴에 눕히고 돌로 막는 방식으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그래서 아브라함은 당시 거하던 땅에 있던 헷의 자손들에게 동굴을 구입하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6절 말씀에서는 헷의 자손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주여우리 말을 들으소서당신은 우리 가운데 강력한 통치자시니 우리의 돌무덤 중에서 좋은 것에 당신의 죽은 자를 묻으소서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기의 돌무덤을 당신에게 주지 아니하여 당신이 당신의 죽은 자를 묻지 못하게 하지 아니하리이다하매

 

아브라함이 무덤을 구입하기 원하였을 때 감사하게도 헷의 자손들이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습니다.우리의 돌무덤 중에서 좋은 것을 마음대로 골라서 무료로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아마 저 같았으면 오 땡큐라고 말하면서 그냥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8절과 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에게 이야기하여 이르되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눈앞에서 옮겨 묻게 하는 것이 너희 생각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해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간청하여

그가 그의 밭 끝에 있는 그의 소유 즉 막벨라의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값나가는 대로 돈을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너희 가운데서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하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장사지내는 일에서 반드시 정확한 값을 지불하고 동굴을 구입하기를 원하였습니다이제,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니니이다내 주여내 말을 들으소서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백성의 아들들 앞에서 당신께 드리고 그 안에 있는 굴도 드리니 당신의 죽은 자를 묻으소서하매

동굴의 주인인 에브론은 동굴뿐만 아니라 밭까지도 그냥 드릴테니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드릴테니그 땅을 마음대로 사용하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아브라함은 16절 기록된 것처럼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시 시세대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정확한 값을 지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 아들들이 듣는 데서 에브론이 말한 대로 상인들이 널리 쓰는 돈으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단지 이삭을 드렸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아브라함은 돈 문제에 있어서 정확한 사람이었습니다아브라함은 재물을 신뢰하지 않았고재물을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따르는 믿음의 삶을 산다면 우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단순히 이삭을 바치는 것 같은 커다란 문제에서 순종했다고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사람들의 눈에 크게 드러나는 믿음 있는 행동을 한다고 믿음의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오늘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을 따른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를 정리했습니다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라는 부와 명예를 버렸고베드로안드레,야고보와 요한은 그물과 배를 버렸습니다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고바나바는 자신이 가진 모든 땅을 팔아 사도들 앞에 놓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니고데모는 백성들의 스승이라는 명예와 관직을 버렸고누가는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부와 명예와 평안한 삶을 버렸습니다에릭 리들은 400미터 달리기 올림식 세계신기록 보유자로서의 명예를 버리고 중국 선교사가 되었고유명한 야구 선수였던 빌리 선데이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이러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우리가 많은 것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재물을 신뢰하고 재물을 추구한다면 그 마음은 잘못된 것입니다우리는 잠시 뒤에 사라져버릴 먼지를 움켜쥐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시면 다 버려두고 하늘에 올라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리

말씀을 정리하면서 마태복음 6장 말씀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19-2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9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20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무엇이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까도둑이 훔쳐갈 수도 있고하루아침에 다 까먹을 수도 있는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 정말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까우리가 영원한 하늘에 우리의 보물을 쌓아두기를 원합니다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입니다.

 

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닙니다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습니다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우리는 이 땅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아무것도 가지고 갈 것이 없습니다오늘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존재의 목적은 더 많은 돈을 벌고더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더 많은 것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선하신 하나님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국에서 영원한 영광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우리가 오늘 이러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삭개오처럼아브라함처럼 돈 문제에 있어서 확실한 변화와 삶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재물이 속임수를 쓰며 우리에게 다가올 때우리가 도끼를 들고 모든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찍어 내버리기 원합니다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우리를 파멸시키고 반드시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할 것입니다식물이 자라날수록 뿌리가 깊이 박히는 것처럼 재물의 가시나무도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마음을 강력하게 다스릴 것입니다오늘지금 이 시간 우리가 도끼를 들기 원합니다.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입을 것과 먹을 것과 누릴 수 있는 모든 풍성한 것을 은혜로 허락하여 주신 살아계신 하나님선하신 목자하늘의 아버지만을 믿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지금 나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기도하겠습니다.

2012.11.02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 /로빈 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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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저축하라(마 6:19-21)

이승선

 

다함께 일어나셔서 하나님 말씀 함께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6장 19-21절 말씀입니다.

19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20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오늘 저는 하늘에 저축하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저축이란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늘에 저축하라.”입니다말씀을 나누기 전에 먼저 학생 여러분에게 질문을 좀 해보겠습니다.일주일이나 한 달에 얼마씩 규칙적으로 용돈을 받으시는 분이 있으면 한 번 손을 들어 보십시오내려 주십시오또 혹시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이 있는 분이 있으면 한 번 손을 들어 보십시오내려 주십시오선생님도 어릴 때 용돈을 받기도 하고또 명절날 친척 어른들로부터 용돈을 받기도 했었는데그때 저금통에 저축을 하거나통장에 저축을 하기도 했습니다저축을 하고 돈을 모으면서 나중에 어떤 것을 사겠다고 계획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저축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해 보자면바로 미래에 필요한 어떤 것을 위해서준비를 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지금 사먹고 싶은 것이나지금 살 수 있는 것을 포기하거나꾹 참고미래에 더 좋고 더 가치 있는 것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이 바로 저축입니다저축이라는 단어에는포기한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또 참고 인내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또 미래를 소망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또 미래를 계획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인 하늘에 저축하라.”라는 말에는 그 제목 자체로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하늘에 저축한다는 말은 바로 땅의 것들을 포기한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또 땅의 것들에 대해 참고 인내한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또한 하늘을 소망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고하늘의 왕국에 대해 계획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하늘에 저축하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우리 먼저 함께 마태복음 6장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땅에 쌓아둔 보물은 좀이 먹고 녹이 슬고 또 도둑이 훔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하나님의 자녀의 집에 도둑이 들 수 있을까요있습니다하나님의 자녀의 재산이 화재나 홍수로 사라질 수 있을까요있습니다하나님의 자녀가 사기를 당해 큰돈을 잃게 될 수 있을까요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 돈을 많이 벌고 저축을 많이 해서 부자가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왜냐하면 그것은 한마디로 헛수고이기 때문입니다결국에는 없어져버릴 것들이기 때문입니다이 땅에서는 우리가 쌓아두고 모아봤자결국에는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아 두라.

우리 함께 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십니다왜냐하면 하늘에서는 우리의 보물이 썩거나 녹슬지 않고도둑이 훔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은 도둑이 훔칠 수 없습니다하늘에는 화재나 홍수가 없습니다하늘에 쌓인 우리의 보물은 영원한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왜냐하면 그것이 영원히 남는 수고이기 때문입니다세상의 모든 것은 다 사라지지만하늘에 쌓인 것은 영원히 남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수고를 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우리의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고 있는데그 시간들이 버려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그 모든 시간과 우리의 모든 수고가 하늘에 보물로 쌓여지기를 원하십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보물과 마음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보물이 있는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오늘 우리의 마음은 축구를 하기 위해 중산공원에 가 있습니까아니면 우리가 좋아하는 웹툰이나 만화에 있습니까또는 집에 냉장고에 넣어둔 맛있는 간식이나오늘 급식이 무엇일까 하는 마음입니까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딘가에 가 있다면우리의 마음이 가 있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보물입니다우리의 보물은 무엇입니까우리의 보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보물이 하늘에 있기를 원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기를 원하십니다.왜 그렇습니까이 땅의 것들은 전부 사라져버릴 것들이지만하늘에 있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이 땅의 것들은 우리를 잠시만 기쁘게 해 줄 수 있지만하늘에 있는 것들은 우리를 영원히 기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보물이 이 땅에 있다면오늘지금 이 순간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 원합니다우리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 것이 마땅한지 우리가 생각해 보고우리의 마음과 삶을 돌이키기 원합니다.

 

 

너희 자신을 위해

우리가 오늘 읽은 마태복음 6장 19절과 20절에서 우리는 똑같은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19절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는 말씀이고, 20절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인데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말씀인데도 불구하고똑같은 표현이 한 가지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이죠바로 너희 자신을 위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즉 하늘에 저축하라.”는 말씀은 결코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예수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때로 이 땅에 보물을 쌓으면서그것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고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인지 우리보다 더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오직 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십니까여러분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 말씀너희 자신을 위해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하늘에 쌓아야 한다고 하신 이 말씀이 옳은 말씀진리의 말씀이라고 믿으십니까혹시 이 자리에언젠가는 사라져버릴또 언제라도 도둑이 들어와 훔쳐갈 수 있는이 땅의 보물과 재산을 쌓아 두는 것이 진정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우시고또 우리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시며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이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저축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저축하나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저축할 수 있는지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먼저 마태복음 61-4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여기서 구제를 한다는 것은 바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어떤 사람들은 구제를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면서사람들이 쳐다보게 만들고는 구제를 하였습니다사람들이 보고 칭찬할 수 있도록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그렇게 자랑스럽게 사람들 앞에서 구제를 하였습니다도움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부끄러울지는 생각하지 않고그 사람들 돕는다고 하면서 그렇게 보란 듯이 구제를 하였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미 보상을 받은 것으로 여기시고하늘에서 보상을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치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는 것처럼은밀한 중에 구제하고 섬기는 것을 갚아 주실 것입니다우리는 어떻게 하늘에 보물을 저축할 수 있습니까바로 어려운 친구형제자매들을 도울 때 하늘에 저축할 수 있습니다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웃을 돕고 섬길 때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조용히 돕고 섬길 때우리는 하늘에 큰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5-6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하늘의 보물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우리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친구들형제자매들을 위해서 하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하늘의 보물로 계산해 주실 것입니다다만 우리는 그러한 기도를 할 때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내가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지금 고등학생이 되어 있는 한 학생이 있는데그 학생이 초등학생 때이 말씀을 보고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않고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만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바로 아주 멀리 사는 좋아하는 친척 형과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아주 소박하고 작은 소망의 기도였습니다그런데 바로 그 주 토요일부모님도친척들도아무도 계획하지 않았는데갑작스럽게 우연한 일이 생기면서 바로 그 친척 형과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이 일기를 썼는데바로 그 친척 형과 놀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도 너무 기쁘고 감사했지만정말 하나님께서 은밀한 중에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셨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기쁘고 감사했다고 쓴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중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그 뿐만 아니라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것에 대해 하늘의 보물을 쌓은 것으로 계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하늘에 보물을 저축하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여러분기도하십시오하늘에 10분씩, 30분씩 꾸준히 기도하셔서 하늘에 보물을 많이 저축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생활 중에 가장 첫 번째 우선순위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필요한 모든 것과하늘의 보물 두 가지를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우리가 땅에서 쌓아 올릴 만큼의 보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32절에 나온 것처럼우리가 먹고 입고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필요한 것에 대해서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물은 어떻게 저축할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려운 친구들형제자매들을 돕고 구제하면서 하늘의 보물을 저축할 수 있습니다또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늘의 보물을 저축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다른 모든 세상의 일들보다 하나님을 먼저 첫째로 여기면서 하늘의 보물을 저축할 수 있습니다하늘의 보물은 무슨 대단하고 위대한 일을 해야지만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보물을 쌓으려고 우리가 모두 아프리카나 캄보디아에 가서 살면서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하늘의 보물을 쌓으려고 여기 계신 남학생들이 모두 목사님들이 되고여학생들은 사모님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늘의 보물을 쌓는 일은 어찌 보면 매우 쉽고 간단합니다.

 

내 옆에 부족하고 연약한 친구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돕는 작은 손길어려운 형제자매들을 위해 진지하게 드리는 5, 10분의 기도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세상의 것들보다 먼저 하나님을 구하는 작은 선택들이 바로 하늘의 보물을 저축하는 방법입니다여러분 모두 부자되십시오이 땅에서 말고하늘에서 영원한 천국에서 부자되십시오.

 

도둑이 들고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이 땅에서의 재산이 아니라영원한 하늘의 보물을 소망하고 저축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08.31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금요일 채플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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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마 9:12)

이승선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2학기의 첫 번째 채플입니다시간도 70분으로 늘어나서 상당히 여유로운 채플이 되는 것 같습니다설교도 지루하지는 않지만조금 더 알차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우리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마태복음 9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우리학교만 보더라도더 많은 교실이 필요하고또 더 많은 좋은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더 많은 학생들도 필요하고운동장식당기숙사도서관 등의 큰 건물들과 시설들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족도 필요하고돈도 필요하고친구도 필요하고건강도 필요합니다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기도 필요하고물도 필요합니다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필요하고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고또 많은 일로 피곤한 사람에게는 휴식과 잠이 필요하기도 합니다우리가 배고플 때는 음식이 필요하고또 추울 때는 따듯한 옷과 집이 필요합니다또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병든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바로 주 하나님이십니다주님은 우리가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또 우리가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분이십니다.

 

여러분 혹시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십니까저는 승연이에게 예방주사를 맞히려고 병원에 데려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요승연이가 어떤 장소나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병원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울기도 하고,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서부터 울기도 하였습니다아기병원에는 온갖 아기들이 우는 소리로 가득합니다제가 볼 때는 병원을 좋아하는 아기나 어린이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어른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다른 사람이 아픈 것을 보면 빨리 병원에 가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정작 자기의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냥 쉬면 낫는다고 말하면서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하고자기는 건강하다고 말하고또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말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객관적인 사실을 따져보자면그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만정작 그 자신은 의사가 필요 없다고 주장을 하고또 진심으로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와 같습니다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주 하나님께서 정말 절실히 필요한 분이시지만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그다지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자기는 건강하다고 주장을 했던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아파도~~무 아플 때비로소 마음을 바꿔서 병원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이처럼 우리 사람들도 정말 큰 시련과 고통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우리가 그렇게 절실히 느끼고 있든지그렇지 못하든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왜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한지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우리에게 구원과 구원의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구원을 다른 말로 하면 구조한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물에 휩쓸려가게 되었을 때우리가 스스로 헤엄쳐서 나올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해양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우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해양구조대원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무사히 걸어서 내려올 수 있다면산악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우리가 부상을 당하여 스스로 내려올 수 없는 어떤 위급한 상태가 된다면 우리에게는 산악구조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갑작스런 사고에서 스스로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119긴급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119긴급구조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죄에 따른 지옥의 심판이라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우리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스스로의 힘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자구조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다에서든산에서든또 긴급한 상황에서든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구조대원과 만나는 것입니다구조대원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때부터는 구조대원이 알아서 모든 일들을 처리해 줄 것이기 때문에그 뒤부터는 모든 것을 구조대원에게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문제도 이와 똑같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대원,바로 구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이제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조대원우리의 구원자는 바로 다음과 같이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완전히 구조하셨습니다다함께 히브리서 10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세우셨고바로 그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구조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죄로 인한 속죄의 헌물로제물로 드리셔서 죄 값을 치르시고바로 그 단 한 번의 십자가로 우리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17절도 보시겠습니다다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하셨느니라.

온 우주의 재판장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재판 앞에 섰을 때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고우리를 죄 없다고,무죄라고선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얼마 전에 태풍이 지나갔는데만약 여러분이 어떤 태풍의 강한 바람에 휩쓸려서 되고또 어느 숲속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여러분은 산의 가장 높은 부분으로 올라가서누군가가 멀리서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그래서 여러분을 구조할 수 있도록소리도 질러보고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합니다여러분은 며칠 동안 지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굶주리고또 무서움에 떨면서 밤을 지세우기도 하였습니다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구조대원을 만나서 구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구조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자다가 악몽을 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꿈을 꾸다가 내가 아직도 숲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무서웠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괴롭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나의 두려움이나 안 좋은 기억들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구조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와 똑같습니다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고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우리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불안한 느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느낌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십자가의 헌물로 나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고나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아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느끼는 어떠한 느낌이 아닙니다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구원의 기초와 근거는 내가 아니라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혹시 우리 학생들 중에 구원의 확신에 대해 불안한 분들이 계시다면구원의 근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기분이나 느낌이 아니라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왜 필요하십니까첫 번째로바로 나의 구원과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필요합니다병든 자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이제 구원을 받고또 구원을 확신하는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할까요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고정답들이 있겠지만저는 오늘 이것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우리 다 함께 히브리서 4장 15-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바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는 힘이 없고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어제 밤에 저는 조금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바로 우리 승연이가 똥을 못 눠서 괴로워했기 때문입니다. 15개월 밖에 안 된 조그만 아이가 똥을 못 눠서 괴로운 가운데바닥에 앉지도 못하고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 자체도 아파서계속 울었습니다승연이는 소화가 잘 안되서 똥을 누고 싶어도 누지 못하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였습니다.결국에서 약국에서 관장약을 사서 저와 연지 선생님이 잡고 승연이에게 약을 넣었습니다승연이는 소리를 지르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면서 울었는데저는 승연이에게 약을 넣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꼭 앉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울고 있는 승연이의 얼굴을 볼 때 저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습니다그때 저의 감정은 슬픔과 안타까움의 감정이기도 했지만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로 연약함의 감정이었습니다내 딸이 고통스러워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는 무력감연약함의 감정이었습니다.

 

또 저는 학생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면서도 이러한 감정을 많이 느낍니다정말 새벽 늦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며 준비하고진심을 담아서 사랑하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잔소리도 하고 하면서 학생 여러분이 정말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이끌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당장 선생님의 눈앞에서는 잘하였는데어떤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모습들을 우연히 보거나 또는 듣게 될 때내가 마음을 쏟아서 말한 것에 비해서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가 되지 않을 때여러 가지 경우에 저는 연약함의 감정을 느낍니다서글프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내 자신이 정말 아무런 영향력도설득력도 없고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학생 여러분들도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나도 변화되고 싶고나도 주님을 닮은지금과는 다른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또 다시 실패하고또 다시 넘어질 때또 다시 내 입에서는 말이 함부로 나오고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행동들이 나오게 될 때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하면서이러한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구나나 자신조차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여러분그래서우리가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우리 학생 여러분은 단순히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보다는나를 잘 이해해주고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아십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모든 것들을 친히 경험하셨기 때문에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픔이 무엇인지피곤함이 무엇인지가족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기분이 무엇인지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무고하게 억울한 재판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며 멸시를 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아무도 나의 편에 서서 변호해 주지 않고 모두에게 비난을 받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몸소 겪으시고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가장 잘 아십니다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한 이유는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다 아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시고 위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16절을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너무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또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은혜의 왕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입니다왕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왕으로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 때문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은혜의 왕좌로 담대하게용감하게 나아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내가 좀 못났어도또 죄를 지었어도또 실패하고 넘어졌어도내가 좀 문제가 많아도담대하게 은혜와 왕좌로 나와서 필요를 말하고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정리

저는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첫 번째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고,두 번째로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바르게 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내가 기도를 조금 진지하게 하게 되고찬송을 부를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하나님의 말씀을 재밌게 읽고 또 깨닫게 되었을 때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구원의 기초와 근거는 나의 생활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십자가에만 세워지는 것입니다바로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나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나를 구조하셨다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필요합니다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연약한 우리들에게는 강하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면서도완전한 승리의 삶을 사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주님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의 강함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어리석을 때 우리의 지혜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죄 많고 더러울 때 우리의 의가 되어주시고,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쓰러질 때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십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만남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우리는 연약한데 왜 힘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어리석은데 왜 지혜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교만한데 왜 겸손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차가운데 왜 따듯하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그것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나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바로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지금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끝까지 붙잡으십시오.

결코 놓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이 필요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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