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5.03.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안식으로 부르시는 주님(마 11:28-30)

본문 : 마태복음 11장 28-30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안식으로 부르시는 주님"이라고 잡아봤는데, 원래 생각했던 제목은 "염려해독제 투"입니다. 목사님과 교제를 나누고 나서, 같은 주제로 반복하여 여러 말씀들을 살펴보면 좀 더 분명하게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지기 때문에 지난 주일날과 동일한 주제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본 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자주 언급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잃어버린 혼들에게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안식과 쉼에 대해서 설명하고 초청할 때 자주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 보기 원합니다.

** 시작하는 말

저는 지난 목, 금요일에 트레이닝을 잘 받고 월요일부터 정식으로 석기시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낮에는 이사를 잘 마치고 처음으로 새벽 1시까지 식당에 있었습니다. 12시가 넘으니 손님이 딱 2테이블에만 있었습니다. 한 테이블에는 저 또래의 젊은 청년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저는 옆 테이블을 청소하면서 우연히 그 청년들이 대화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젊은 청년들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누구는 어떻게 몇 억을 벌었다더라, 이렇게 하면 돈이 잘 벌리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많이 보다가 이렇게 나름대로 진지하게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벌까를 생각하는 청년들을 만나니 생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돈을 벌면서 살아가든 설령 돈을 많이 벌다 할지라도 그 길에는 참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 청년들은 옆에서 남이 먹다 남긴 음식 쓰레기를 치우고 있는 제가 더 불쌍해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 더 불쌍한 사람일까요?

하나님께서 사탄 앞에서 자랑하시기를 온 땅에 그와 같이 완전한 사람이 없다고 하신 욥은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욥 5:7)라고 말했습니다.

한때 이집트의 모든 영화를 누리고, 광야에서 한 평생을 보낸 하나님의 사람 모세, 120세가 되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기력이 쇠하거나 눈이 흐리지 않았던 모세는 “우리의 햇수의 날들이 칠십 년이요, 강건하면 팔십 년이라도 그 햇수의 위력은 수고와 슬픔뿐이니 그 위력이 곧 끊어지매 우리가 날아가 버리나이다.”(시 90:10)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 온 땅에서 지극히 지혜롭고 영광스러워서 저 멀리 동방의 시바 여왕이 찾아와 직접 대면해보기를 원했던 솔로몬 왕은 “1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 너희가 일찍 일어나고 늦도록 앉아 있으며 고통의 빵을 먹음이 헛되도다. 이처럼 그분께서 자신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1,2)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도다.”(전 1:8)

그의 모든 날은 슬픔이며 그의 해산의 고통은 괴로움이니라. 참으로 그의 마음이 밤에 안식을 얻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 2:23)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영감을 받은 성경의 기록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우리의 인생이 고생과 수고로 가득 찼으며 모든 것이 헛되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인생의 의미를 모르고 헤매며 사람들 속에서 허덕이고 또 죄의 짐에 눌려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잃어버린 혼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이란 거센 풍랑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이리저리 밀려다니며 수고와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힌 수많은 영혼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 우리의 문제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구원받은 이후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참 안식과 쉼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다지 큰 영향력을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한가득 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죄인들을 가리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여러분 예수님께로 나아와 쉼을 얻으십시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우리에게 "당신이야말로 쉼이 필요한 것 같군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바로 우리에게 참 안식과 쉼을 주시는 주님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오늘의 본문인 28절의 말씀대로 다 주님의 초청에 임하여 영원한 안식과 쉼을 보장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제는 28절까지만 읽고는 "아멘!"하고 성경을 덮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곧 이어지는 29절과 30절까지도 "아멘!"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29절에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그 결과로 우리가 우리 혼에 쉼을 발견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주님의 짐은 가볍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멍에와 짐을 지고 주님을 따르며 주님께로부터 배운다면 우리는 우리 혼에 쉼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멍에와 우리 자신의 짐을 지고 수고하며 지치고 걱정과 염려 속에 메말라가면서도 너무나 쉽고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지고자 하지 않는데서 발생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모르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겉에 있지 않고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외적으로 돈이 없거나 무엇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우리가 믿음의 기초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복음을 충분히 누리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다만 지옥에서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티켓 한 장이 아닙니다. 다만 죄가 있었는데 용서해줬다는 사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물건을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장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각 개인에게 구원자요, 구세주로 주셨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이 본문의 중심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안식과 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한 면에서는 맞지만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심적인 메시지는 바로 안식을 주시는 주님 자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 자신, 내게로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내 짐을 메며 나를 따르고 내게서 배우고 내게서 쉼을 찾으라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걱정과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지치고 눌려있고 고통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염려와 무거운 짐들 속에서 지치고 수고한 우리에게 참 안식을 가르쳐 주시려고 오늘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영접한 우리의 구원자 주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주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으로부터 배울 수만 있다면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남기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것과 달리 내가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 온유와 겸손

오늘 우리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묵상해보기 원합니다.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나사렛이란 마을은 구약이나 요세푸스의 역사기록에도 언급되지 않은 아주 작고 주목받지 못한 도시였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할 만큼 아주 볼품 없는 빈민촌에 불과했습니다. 나사렛의 목수들은 자기 목공소를 가질 만큼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고, 나사렛 주민들도 가구를 구입할 만큼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의 목수들은 망치하나와 못 통을 들고 "문짝 고치세요. 식탁 고치세요."하고 외치며 갈릴리 주변을 돌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말씀하실 때 “이에 유대인들이 그분께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요 8:57)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지만 겉으로 보이기에는 오십 세가 조금 안된 것으로 보일 만큼 태양에 그을리고 볼품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날 성화같은데 나오는 금발머리의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예수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 53:2)

가족들에게는 배척받고 고향에서는 거부당하고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고심을 하거나 염려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이가 삼십 대 초반인데 오십 대로 보인 것 때문에 충격을 받고 외모에 대해 걱정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직 머리 둘 곳조차 마련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근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이유로 완전히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또한 주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셨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외부의 여러 가지 환경으로 보자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걱정이 많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평안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가리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알아갈수록, 그리고 이러한 주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는 예수님이 가진 화평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온유는 무엇입니까? 보통 우리는 성격이 부드럽고 잘 참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유라는 성품은 사람의 성품이 아닌 성령님의 열매입니다. 사람이 천성적으로 아무리 온유해 보여도 그것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나온 열매가 아니라면 결코 참된 온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는 모세를 가리켜 지면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나온 배경은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가 이방 여인과 혼인한 것을 정죄하고, 또 모세만이 선지자가 아니라 아론과 미리암 자신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고 하면서 모세를 시기하고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는 이들에게 대항하지 않고 잠잠하였습니다. 자신을 변호하거나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모습이 얼마나 온유한지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속으로는 화가 나고 불타는데 겉으로만 참은 것일까요?

온유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아는 인식입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이 되시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겸손과도 연결됩니다. 온유와 겸손은 다른 사람의 평가와 눈치를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만을 주목하게 해줍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근심과 걱정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합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온유하지 못하며 겸손하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근심하며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되면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해방을 받고 자유를 누리며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사람들과의 관계도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며 우리를 먹이시고 입하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 걱정과 근심의 무거운 짐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여러 가지 시험과 걱정거리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항해 중에 자꾸만 파도가 달려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의 초청에 더 잘 응답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주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해서 더 무겁게 짓누르시거나 화를 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걱정과 염려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강하신 주님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치고 수고한 만큼, 걱정하고 염려하는 만큼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울 왕으로부터 늘 도망 다녀야 했던 다윗, 자기 아들로부터 배반을 당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목자가 되셨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근심하고 걱정하는 이유는 바로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과 친밀하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화평이란 외부의 걱정거리를 해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배우고 알게 될 때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성경이 나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펼 때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예수님을 더욱 닮아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근심과 걱정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서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는 놀라운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로빈박스 http://robinbox.net/nt/gospels/40matthew/40matthew112830_callingtorest_20060503_rob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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