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5.16.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5세)

 

제목 : 사랑의 하나님(요일 4:7-11)

본문 : 요한일서 4장 7-11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11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서로 사랑하라

우리교회는 지난주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믿음의 여러 방면들 중에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들까지도 모두 가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들을 때 너무나 큰 감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는 고치실 수 있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표시는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이 마음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새롭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각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믿음의 전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또 시간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는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위한 좋은 시도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저는 특별히 제가 소홀히 하고 있던 "사랑"이라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올바른 지식은 자신을 차갑게 만들고, 사랑이 없는 굳건한 믿음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바로 주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4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교회에 왔을 때 우리가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는 분명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17살가량 되었을 때 20여명의 형제자매님들과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10인 승 차량 2대를 가지고 다녔는데, 때로는 지방에 가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20여명의 형제자매님들이 같이 다니면서 평소에는 서로 친절하고 상냥하고 천사 같던 지체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깨워도 안 일어나고, 누구는 지저분하고, 누구는 눈치도 없이 많이 먹고, 누구는 텐트 정리하는 걸 그렇게 싫어하고, 누구는 더운데 차 창문도 못 열게 하고, 누구는 모이는 시간도 안 지킵니다. 누구는 말투가 기분 나쁘고, 누구는 고집이 세고, 누구는 혼자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 괜히 재촉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형제자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나로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들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또 한 구석에서는 "절대로 저런 모습은 사랑할 수 없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작게 든 크게 든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지체를 만나면 쉽게 교제가 되고 금새 친밀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편중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46,47절 말씀입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바로 그 일을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저는 제 안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영화와 노래가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온 세상이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이 세상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계산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손해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때론 멋지게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포장을 풀어버리고 나면 상처를 받지 않으려 하고 결코 낮아지려 하지 않으며 딱딱하고 차갑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결코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수준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린 아이로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 저를 더욱 이끌어 주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지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저 사람이 이렇게 바뀌면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사 같이 바뀐다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형제자매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셨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일서 4장 7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7절과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사랑은 사람에게 속하지 않았으므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만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 지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9-1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우리의 사랑의 원천은 바로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이해했는지에 따라 우리의 사랑의 깊이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모른 채 방황하며 헛되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물의 염려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귀를 닫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습니다.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입장에서 죄의 용서와 구원이란 값없는 선물이요, 공짜로 주어진 은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구원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선물을 주고자 이 천년을 고민하신 하나님께서 갈보리 백화점으로 올라가시고 십자가라는 상점 앞에서 자신의 독생자의 피를 지불하고 넘치는 용서와 은혜라는 선물을 마련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었습니까? 조건을 걸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먼저 하신 사랑이었습니다.

 

다같이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처럼"이란 표현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이처럼"이란 단어를 볼 때, 우리 각자가 느끼는 사랑의 깊이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만큼 다른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아직 요구가 많고, 조건이 많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실한 형제는 게으른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꼼꼼한 형제는 덜렁대는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덜렁대는 사람인지 알려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하시고 격려하신 하나님,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섬세한 사랑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게으르고 덜렁대는 형제를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형제들을 "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꾸려할 때는 참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형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조건 없이 참되게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그 형제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많은 우리들을 변화시킨 것이 나의 결단과 굳은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었던 것처럼, 다른 지체들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 우리의 기도

오늘 우리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우리 안에 흘러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문제가 많은 우리를 조건 없이 한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옆의 지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에 푹 잠기게 하시고 나의 요구와 조건이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지체들을 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빛을 주셔서 주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이처럼" 사랑하신 것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더 알려주셔서 우리의 사랑이 더 온전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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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먼저 사랑하신 분(요일 4:19)

 

이승선

 

우리 다함께 일어나서 하나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입니다요한일서 4장 19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날 먼저 사랑하신 분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은 너무나 간단합니다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이고그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오늘 선생님은 우리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과 이 단순하고도 뜻 깊은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오늘의 말씀은 전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이고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과연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그리고 우리도 과연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것입니다먼저 우리 함께 요한일서 4장 1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아멘성경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사람은 정말 자기중심적이고이기적인 존재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사람조차도 사랑을 할 때가 있는데그것은 상대방에 나를 먼저 사랑해 줄 때입니다우리 함께 누가복음 6장 32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느니라.

성경은 너무나 단순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우리가 얼마나 훌륭한가우리가 얼마나 의로운가의 문제가 아닙니다우리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냐 하는 문제는 바로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사랑을ㄹ 받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면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한다면무엇인가 결심을 하기 이전에과연 내가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는가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받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십자가의 사랑

우리 함께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성경은 바로 여기에 사랑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지만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지만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전 세계에 단 9대 밖에 없는 람보르기니 베네노 로드스터라고 합니다최고 속력354km/h까지 낼 수 있는 이 차는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여러분우리가 만약 장난을 치다가 이 자동차에 흠집을 내거나사고를 내서 심하게 손상을 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우리가 평생 일해서 갚아보려고 할지라도아마 문짝 하나조차 교환해 줄 수도 없을 것입니다그런데 만약 그 차의 주인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었다면,그리고 수십억 원이나 되는 수리비를 스스로 지불하였다면우리는 아마 평생을 고마워하면서 살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생각해 보십시오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한 화해 헌물을 내어주셨습니다우리가 평생을 일해서 갚아야 하는 정도가 아니라영원히 지옥에서 죄 값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갚을 수가 없는 그 죄의 값을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 값으로 스스로 지불하시고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창세기 22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에게 이르시되, 아브라함하시니 그가 이르되보소서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주는 산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하시니라.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성경에서 가장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 때그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나친구 간의 사랑을 언급하지 않고바로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아브라함의 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하나님도 너무하시지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 헌물로 드리라고 하실까등등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마태복음 3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하시니라.

우리는 바로 이 구절에서 신약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볼 수가 있습니다여기서도 또한 우리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제 헌물로 드려야 했던,아브라함의 아프고 찢어지는 마음은 다름 아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던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음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너무나 놀라운 사랑을 받았습니다하늘을 두루마리 삼고바다를 잉크 삼고나무들을 붓으로 삼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찬송가 가사처럼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사랑을 받았고오늘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래하시는 하나님

이제 우리 함께 구약성경 스바냐 3:17절을 보시겠습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하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가운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하리라.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또 우리 각자 각자로 인하여 기뻐하시고즐거워하시고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심지어 바로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여러분하나님께서 기뻐서 노래를 부르시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아마도 선생님이 승연이나호윤이를 앉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비슷할 것입니다하루의 일과가 아무리 바쁘고 힘들었다 할지라도선생님이 승연이호윤이를 보는 순간 기뻐하고 노래가 나옵니다왜 그렇습니까사랑하기 때문입니다그런데 하나님은 얼마나 더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름 아닌 바로 나를 사랑하셔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며 사랑하시는 중에 노래를 부르십니다더럽고 죄 많고 자격 없는 바로 나를이러한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여러분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무덤덤하게 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의 다양한 예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시기 위하여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고느낄 수 있는 아주 다양한 예를 들어주시고 계십니다우리 한 번 그것을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이사야 49장 15-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보라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데갓난아기를 낳은 엄마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북한에서 자기 딸을 백 원에 팔아서그 백 원으로 마지막으로 자기 딸에게 밀가루 빵을 사주면서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손바닥에 못 자국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크게 새기셨습니다우리가 다 나중에 천국에 가서 완전한 몸을 입게 될 때우리 주님께서는 여전히 손에 못 자국을 간직하고 계실 것입니다모두가 완전한 몸을 입을 때에우리 주님께서는 영원히 상처 난 몸을 입고 계실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어떻게 다 말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 함께 이사야 62장 5절도 보시겠습니다.

청년이 처녀와 결혼하는 것 같이 네 아들들이 너와 결혼하며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는 것같이 우리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여러분결혼식장에 가보셨을 것입니다저는 결혼식에서 주로 신부가 그 동안 키워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신랑은 눈물을 흘리기보다 매우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신부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너무나 많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설명해 주십니다또 친구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어놓는 친구의 깊은 우정과 사랑의 관계로 말씀해 주십니다양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시는 선한 목자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산과 골짜기를 다니는 목자의 모습으로 설명해 주십니다탕자를 기다리다가 저 멀리 그림자가 겨우 보였을 때,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달려가서 목을 끌어 앉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어리석고 아무런 자격도 없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살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3장 18-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모든 성도들과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뛰어난 것인지 알게 되고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인 줄 알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세상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하나도 없고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우리는 하나님보다세상을 사랑할 때가 더 많이 있습니다그 원인과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우리가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3.06.21.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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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요일 1:3-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장 3-4절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핵심적이고가장 중심적인 주제를 다루게 될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주제입니다여러분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까요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과 교제하며 동행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왜 생명까지 주시면서 구원하여 주셨을까요성경은 그 이유를 또한 우리와 교제하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 1장 3-4절 말씀에서는특별히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사도 요한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이것에 기록하여서 밝히 드러내는 목적을 말해주고 있는데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교제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또한 4절에서는 교제의 결과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면 그 결과는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사도 요한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요한일서의 말씀을 기록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정리해 보면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셔서 말씀을 기록해 주셨다.

두 번째로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면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인생이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삶 속에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까전에 사랑하는 한 학생이 선생님의 집에 와서선생님 가족이 지내는 모습을 보더니집에 가는 길에 울면서 선생님 가족은 참 행복해보여서 부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그런데 또 하나의 보조 제목을 달아보자면그것은 바로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선생님은 여러분이 오직 한 번뿐인 짧은 인생을 정말 기쁘게기쁨이 충만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그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생각된다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그러나 선생님은 서른한 살이 되기까지정말 기쁘고 행복한 일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여러분이 만약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면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찬송가에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라는 가사가 있는데바로 이런 노래처럼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은 정말 기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1. 시간을 따로 떼어라.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빠르게 살펴보겠습니다첫 번째 방법은 바로시간을 따로 떼어라,입니다학교에 오지 않는 토요일에는 여러분 반드시 아침 시간에 주님과 교제하시기 바랍니다늦잠을 자도 좋습니다.그러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장 처음의 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떼어놓으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나오는 평일에는아침 예배의 시간도 좋지만특별히 잠자기 직전의 시간을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떼어놓으시기 바랍니다아침이나 밤의 시간으로 정하는 이유는 가장 조용한 시간이고사람들로부터 방해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시간이기 때문입니다낮에는 언제든지 전화나 연락이 올 수 있고해야 할 일도 많을 수 있기 때문에이른 아침의 시간이 가장 좋습니다.

 

우리 함께 마가복음 1장 35절을 보시겠습니다.

새벽에 아직 날이 밝기 훨씬 전에 그분께서 일어나 나가서 외진 곳으로 떠나 거기서 기도하시더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샘플을 볼 수 있습니다누구보다 바쁘고 피곤한 예수님이셨지만새벽에 날이 밝기도 훨씬 전에 제자들도 없는 외진 곳으로 떠나가셔서 기도하시면서아버지와 교제를 나누시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여러분이 처음에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짧아도 상관없습니다. 10-15분도 좋고, 20-30분도 좋습니다여러분이 좋아하는 핸드폰 게임을 1-2판 할 시간만 줄여도 충분한 시간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기도 정해 놓은 시간에는 핸드폰을 꺼놓으시고가족들에게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시간표를 미리 말씀하셔서방해를 받지 않도록 하십시오정말 하나님과 나만의 조용하고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모든 방해의 요소를 제거하십시오첫 단계는 바로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조용한 시간을 영어로 하면, Quiet Time, 이라고 해서 이것을 줄이면 QT가 되는 것입니다. QT, 조용한 시간을 확보하십시오.

 

 

2. 기도하라.

첫 단계로시간을 확보하였다면두 번째 단계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특별히 이 시간에 하는 기도는 주님께 나아가는 기도입니다무엇을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지 고백하면서 기도하십시오감사하고 찬양하는 고백으로 기도하십시오.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주님은 나의 왕이시며목자이십니다주님은 선하시고나의 모든 생활을 돌봐주시는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저와 같고 낮고 천한 자를 귀하게 여겨주시고친구가 되어주신 분이십니다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저를 구원하시고 사랑하신 주님이십니다이 아침에 저의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원합니다.”

 

말을 빨리 쏟아내지 말고한 마디 한 마디의 고백을 진지하게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또한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고백으로 나아가십시오.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주님제가 지금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저의 생각을 맑게 하여주시고저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주셔서지금 이 시간이 오직 주님과 만나는 시간이 되도록 이끌어 주시기 원합니다저 마음속에 주님 외의 것들을 모두 치워주시고오직 주님만으로 가득 채워주시기 원합니다.”

 

정말 진지하고엄숙하게 하나님께 고백하십시오형식적으로 기도하지 말고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다가서시기 바랍니다.

 

 

3. 성경말씀 먹기

그리고 나서 성경을 펴십시오성경은 주말 묵상숙제로 주어진 장을 펴도 되고이번 주 암송구절이 있는 장을 펴도 됩니다성경말씀은 우리의 속사람의 양식입니다우리의 겉 사람이 매일 밥을 먹듯이우리의 속사람도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말씀을 먹는 방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요한일서 1장 3-4절로 돌아와 보겠습니다이 말씀을 먹는 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이 말씀에 들어 있는 영양분과 힘과 지혜와 능력을 나의 속사람이 흡수하여마음이 새롭게 되고 힘이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렇게 마음속에 흡수하는 작업을 하십시오.

 

먼저 3-4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주님주님께서 저와 교제하시려고 이 말씀을 기록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또한 이 아침에 제가 이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주님 제가 이 말씀과 같이아버지 하나님과 또 아들이신 주 예수님과 교제하기를 원합니다저의 마음에 주님과 교제함으로 기쁨이 충만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제가 정말 친한 친구들과 만나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주님 저의 마음이 너무나 둔하고어둡고무디고어리석은 것을 주님이 아시오니저의 마음을 순수하게 하여주시고또 주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저도 빛 가운데 걷게 하여주셔서주님과의 맑고 시원한 교제의 삶으로 이끌어 주시기 원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의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우리가 밥을 매일 먹는데어떤 때는 정말 맛있게 먹기도 하고또 어떤 때는 그냥 배가 고파서 먹기도 합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어떤 때는 정말 감동이 충만하기도 하고또 어떤 때는 큰 감동이 없기도 합니다그러나 이러한 시간이 우리에게 늘 필요합니다그래야 우리가 건강한 영적 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마무리기도

이렇게 말씀을 먹는 기도가 끝났다면이제는 중보의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먼저여러분이 가장 미워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여러분과 사이가 좋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서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서 먼저 기도하십시오그들을 주님이 복주시고 선하게 대해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부모님과 가족들과 친구들그리고 선생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교회의 목사님여러 가지 책임을 지는 형제자매님들을 위해서또 선교사님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십시오마지막으로는 여러분 자신의 필요에 대해서 기도하십시오물질적인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만 하지 말고여러분 자신의 영적인 삶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믿음이 자라나게 해주시고성숙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 이 모든 시간을 마친 뒤에생활을 하면서는 시시때때로 주님과 마음속으로 교제하시기 바랍니다굳이 눈을 감고 손을 모으지 않더라도순간순간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대화하십시오도움이 필요할 때즉시 도와주시는 주님을 경험해 보시고죄를 지었을 때 즉시 돌이키고 또 너그러이 받아주시는 주님을 체험해 보십시오여러분이 이렇게 생활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여러분의 삶을 정말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하루하루가 다르게 생각이 깊어지고행동이 신중해지고성숙한 모습의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사무엘은 어렸지만온 이스라엘 앞에 서서 주님의 뜻과 말씀을 보여주었으며,다니엘도 어렸지만 이방인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을 고백하였습니다여러분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신다면여러분도 이처럼 멋있고 당당하며또 즐겁고 기쁨이 충만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루 30분의 시간이매일매일 모여지게 되었을 때여러분의 십년 뒤 미래가 변화될 것이고더 나아가 영원한 세상에서 받을 영광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 땅에서는 행복이요영원한 세상에서는 찬란한 영광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10.1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 로빈30세

http://robinbox.net

 

빛이신 하나님(요일 1:5)

이승선

 

안녕하세요?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장 5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밝히 드러내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는 것이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빛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입니다성령 하나님께서 한 단어한 단어 영감을 불어넣으셔서 기록하신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면서도그 말씀을 기록한 사람의 특징까지도 온전하게 사용하셔서 조화롭게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사도바울이 기록한 성경 기록들을 보게 되면바울의 특징이 잘 베어져있어서 굉장히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구조를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어떠한 성경의 진리를 기록하면서구약성경의 예들을 제시하기도 하고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변하는 방식으로 설명을 하기도 하고모든 설명이 충분히 이루어진 뒤에는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해서 기록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지금 읽은 요한일서의 경우는 어부 출신으로서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던 사도 요한이 기록한 말씀입니다모든 제자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순교를 당하였지만사도 요한은 늙어서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계시록을 기록하고 나서 자연사한 것으로 역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사도 요한의 기록은 논리적으로 복잡하지도 않고단순하고 간단명료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요한은 모든 사도들 가운데 가장 길게 주님과 알고 교제해온 장로답게깊은 진리를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에는 주님을 믿은 자가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아서는 안 된다는 진리를 설명할 때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는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것이다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음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또한 주님의 새 생명으로 부활한 것을 의미한다이제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다죽은 자는 바로 죄로부터 해방된 것이다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서죄에 대하여는 자유로운 자이고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이다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고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

이렇게 바울은 대단히 논리적이고 단계적인 방식으로영적 진리를 로마서 6장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일서 본문에서 요한은 동일한 진리를 매우 단순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고그분 안에는 전혀 어둠이 없다우리가 만일 그분과 교제한다고 말하면서 어둠 가운데 걸으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요한은 매우 단순한 방식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께서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그런데 너무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기록한 사람들의 특징까지도 완전하게 사용하시고 조화를 이루셨다는 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눌 것입니다사도 요한이 기록한 단순한 표현의 하나님은 빛이시다라는 말씀을사도 바울의 방식처럼 조금 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서깊고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빛은 보여 준다

먼저 빛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바로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어떤 설교자는 우리가 눈이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라빛이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라는 말을 하였는데요이처럼 빛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 줍니다하나님께서 빛이시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밤바다의 배를 위해서 등대의 불빛이 필요하고밤하늘의 비행기가 착륙하기 위해 활주로의 빛이 필요하고또 우리가 어두운 길을 걸을 때 가로등이나 손전등이 필요한 것처럼빛은 보기 위해 필요합니다.

 

빛은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해주고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분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우리는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을 정확히 볼 수 있고우리가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130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빛을 주십니다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 되시고내 길에 빛이 되십니다(시 119:10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 빛을 주시고 우리에게 명철을 주십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을 때무엇을 거절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좋은 것을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붙잡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주의 말씀을 통해 빛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또한 빛과 보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한 가지 특별한 점은 우리가 빛 자체를 정면으로 쳐다볼 때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운전을 할 때나와 마주보는 차가 하이빔을 키고 운전을 한다면우리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또 우리가 태양 빛을 통해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우리가 직접 태양을 쳐다볼 수는 없습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찬란하고 밝은 빛이시기에우리가 그분의 빛을 통해 다른 것들을 볼 수는 있지만아무도 그 분을 직접 쳐다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디모데전서 6장 16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분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그분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빛에 거하시며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나니 그분께 존귀와 영존하는 권능이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여러분혹시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한다면결코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성경은 분명하게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나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바로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빛은 생명을 준다

빛은 우리가 볼 수 있게 해줍니다또한 빛은 바로 생명을 줍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빛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햇빛은 식물과 곡식을 자라게 해주고또한 동물들은 식물과 곡물을 먹고 살아갑니다.

햇빛은 식물을 자라나게 할 뿐만 아니라직접 사람에게도 영양분을 주는데 그것은 바로 햇빛 비타민이라고 불리는 비타민 D라고 합니다자외선이 피부에 자극을 주면피부에서 스스로 비타민 D를 합성합니다비타민 D는 음식으로부터 칼슘을 흡수하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직접 뼈와 치아를 형성하고근육을 구성하고혈당 조절고혈압 저하 등의 역할을 합니다건강하기 원하시면 햇빛을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만약 햇빛이 아예 없다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빛은 있어도 그만없어도 그만인 선택의 사항이 아니라생명을 위해 필수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이와 관련해서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함께 펴지 않고그냥 들어주시면 됩니다.

먼저 시편 36편 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보리이다.

 

또 요한복음 1장 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리고 요한복음 8장 12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하시니라.

 

햇빛이 우리의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듯이빛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으로서 반드시 필요하십니다하나님은 우리의 빛이시고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빛과 생명에 대해 생각할 때한 가지 특별한 점은 빛이 반드시 생명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때로는 죽이는 역할도 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그것을 살균 소독이라고 부릅니다햇빛의 자외선은 살균 소독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인체에 해로운 세균들과 불순물을 제거해 줍니다사막에서 웅덩이에 고인 물을 발견했을 때투명한 물병에 담아 6시간 정도 햇빛을 받으면 60% 정도의 불순물을 정제할 수 있다고 합니다햇빛이 60% 정도의 불순물을 제거한다면우리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빛으로서우리의 삶 속에 있는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시고우리가 깨끗하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이끄실 것입니다.

 

 

빛은 어둠()을 제거한다

빛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빛은 어둠을 제거한다는 것입니다햇빛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뿐만 아니라바로 어둠을 제거합니다어둡고 캄캄한 방에서 어둠을 몰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커튼을 활짝 열고 햇빛이 들어오게 하든지불을 켜서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빛이 나타나는 그 자체로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임재하심 그 자체로 모든 어둠을 몰아내십니다이처럼우리가 삶 속에서 죄를 끊으려고 노력해서 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되면 죄는 자연히 끊어지고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듯이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으로 충만히 채워진다면어둠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큰 방에서 촛불 하나와 같은 작은 빛은 어둠을 조금 몰아낼 수 있지만형광등과 같이 큰 빛은 어둠을 많이 몰아낼 수 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마음 안에 빛을 가져다주는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달라질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오직 빛이신 하나님으로 가득하기 원합니다.

 

믿음의 부모님은 자녀들이 빛 가운데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오늘날 자녀들의 방에 있는 컴퓨터그리고 스마트폰에 연결된 인터넷은 부모님 모르게 세상을 마음대로 접할 수 있는 어둠의 통로입니다자녀들이 방문을 닫고 인터넷을 쓸 수 있는 환경은자녀들의 방안에 성범죄자나 잔인한 살인자나 노숙자를 합숙시키는 것과 같습니다.우리는 자녀들이 인터넷을 사용하더라도어둠 가운데서가 아니라 빛 가운데서 사용할 수 있도록공개적인 장소인 거실에 컴퓨터를 놓아야 합니다스마트폰 역시 사주실 때부모님이 언제나 열어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조건으로 사주시든지아니면 정말 전화기로만 사용하도록 인터넷 기능을 차단시켜놓아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둠의 환경을 다 제공해놓고서는자녀들이 왜 이럴까 걱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빛이 어둠을 몰아냅니다우리의 자녀들이 빛 가운데 생활하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3장 19-2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9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자녀들이 방문을 닫고 폐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사춘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는 것입니다그것은 빛이신 하나님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저는 심지어 자녀들의 방문을 닫거나 잠글 수 없도록 아예 문까지 떼어버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부모님이 자녀의 모든 것을 다 감시하고 간섭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자녀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인터넷은 정말 우리의 자녀들의 믿음과 인격을 파괴시킬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기 원합니다빛은 그 자체로 어둠을 몰아낸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빛은 따듯하다

빛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포근하고 따듯하다는 것입니다우리나라 말에서는 빛을 불이라고도 하는데그것은 바로 빛이 열을 주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햇빛을 받으면 몸이 따듯해지듯이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뜨겁다는 표현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먼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께서 성경 기록들을 열어 설명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웠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눅 24:32). 또한 에바브라 디도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항상 기도로 뜨겁게” 수고한다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골 4:12).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한 것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벧전 1:22, 4:8).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특징은 차갑지 않고따듯하고 뜨겁다는 것입니다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뜨겁고기도할 때 뜨겁고또 형제자매들과 교제하고 섬길 때에 뜨겁다는 것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차갑고 미지근하다면 우리에게 오늘 주님이 필요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충만히 거하실 때우리는 뜨거울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이 한 없이 차갑다 할지라도우리가 말씀을 대할 때기도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갈 때그리고 형제자매들과 만나 교제할 때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따듯하고 포근하고 뜨거운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빛은 신사적이다

빛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빛이 신사적이라는 것입니다빛은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커튼 하나로 완전히 차단할 수 있습니다심지어 우리가 눈꺼풀을 닫아눈을 감아버리기만 하면금새 캄캄하게 되어버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빛은 결코 무엇인가를 부수고 강제로 들어오지 않습니다햇빛이 온 땅을 비추고 있다할지라도 커튼으로 창문을 다 막고 눈까지 감아버린다면 완전히 어두울 수 있는 것처럼빛은 어떠한 곳이라도 결코 억지로 들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처럼 빛이신 하나님은 신사적인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완전한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믿음이란 바로 각자의 자유를 가지고 선택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지옥에 가느냐 천국에 가느냐 하는 너무나 중요한 구원의 문제를 자유로운 선택에 맡겨두셨습니다바로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나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나의 죄 값을 다 지불하셨다는이 복음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두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으로돈이 많은 부자들만 구원받을 수 있도록헌금 얼마를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으로젊고 힘세고 건강한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어렵고 힘든 일을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으로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어려운 문제를 풀도록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햇빛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피로써 모든 사람의 모든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고다만 마음으로 주님을 믿느냐 하는 선택의 문제로 제시하셨습니다.

 

구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믿음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지만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든 일을 결코 강제적으로 진행하시지 않고우리의 선택에 맡기셨습니다.

 

한 서커스장에서 묘기를 부리던 코끼리가 갑자기 폭주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코끼리는 조련사를 공격하고는 관람객들을 향해 달려들다가서커스장 밖으로 탈출하여 자동차와 사람들을 공격하였습니다한 순간에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폭주한 코끼리 한 마리가 그 주변 지역을 두려움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코끼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폭주한 코끼리 한 마리도 그렇게 공포스러운데하나님은 과연 얼마나 두려우신 분이겠습니까?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빛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는그렇게 공포스럽게 강제적으로 우리를 이끌지 않으시고신사적으로 이끄십니다마음의 커튼을 활짝 열면 들어오시고커튼을 닫으면 들어오지 않으시는 것입니다우리가 이 시간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하며 따르기 원합니다.

 

 

빛은 신호를 준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볼 빛이 가진 특징은 바로빛이 신호를 준다는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교회 예배당에 오면서신호등을 하나이상 마주치게 되었을 것입니다빨간불은 정지초록불은 통행을 의미하는 것처럼빛은 의미와 신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씀의 빛에도 신호가 있습니다때로는 우리에게 정지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때로는 우리에게 계속 전진하라고 말씀하시기도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신호를 위반하게 되면 벌금을 물거나위험한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처럼우리가 말씀의 빛을 벗어나게 될 때 위험을 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의 신호를 위반하게 될 때말씀의 빛은 먼저 우리의 깊은 양심 속에서 신호를 보냅니다다른 사람들은 무엇이 문제인지 눈치 채지 못할 때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개인적으로 빛을 비추시고 신호를 주십니다만약 그때 우리가 그 신호를 위반하게 되면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신호를 주십니다그때에도 우리가 위반하게 되면점점 많은 사람들을 통해 신호를 주실 것입니다그래도 우리가 끝까지 위반하게 된다면 우리는 정말 큰 어려움과 위험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빨간불이 들어왔다면 반드시 멈춰야 합니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걸을 때신호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안전한 것처럼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걸을 때 가장 안전할 수 있습니다때로는 고난이 올 수 있고시련이 올 수도 있지만우리가 말씀 안에 있다면 그것은 안전한 것입니다때로 다니엘의 세 친구들에게 왔던 용광로 같은 시련이 올 수 있고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것 같은 위험이 올 수도 있지만말씀 안에 있다면그것은 무엇보다 안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보아야 할 신호가 있다면그곳이 이제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신호입니다마치 기차역에서 노란불이 들어오고기차가 온다는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너무나 가깝다는 신호를 우리는 세상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지구의 생태계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하고양심적인 세상 사람들도 사회의 범죄들을 보면서 말세즉 세상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성경 말씀에서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의 입에서까지 주님이 곧 오실 것이라는 신호를 매일 매순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신호는 주님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게사모하는 신랑이 오고 있으니 자신을 예비하고 단장하라는 신호입니다이 신호는 주님의 군대인 교회에게 총사령관이 오고 있으니 군기를 잡고 있으라는 신호입니다이 신호는 주님의 종인 우리들에게 주인이 오고 있으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신호입니다이 신호는 주님과 멀리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순간만큼은 주님께 가까이 오라고 준비를 재촉하는 신호입니다.

 

 

정리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빛이신 하나님이십니다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볼 수 있게 하여주시고우리가 살아가는 생명이 되어주시고모든 어둠을 제거하여 주시고또한 따듯함과 뜨거움을 주시고신사적으로 우리를 방문하시며우리의 삶 속에 신호를 주시는 분이십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빛이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빛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충만히 거하시기 원합니다우리가 악하고 어두운 이 세상에 살지만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찬란하게 빛나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가리켜 땅에 소금이며 또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 자신에게는 빛이 없지만우리가 빛이신 하나님과 동행함을 통해주님의 빛을 찬란히 비추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함께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2.08.19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 /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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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요일 4:18-21)

이승선

 

지난 수련회 기간 동안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특별히 저는 너무 더운 날씨 때문에 기도를 했었는데요우리 중고등부 학생들이 운동장에 나가서 놀기로 계획했던 날 아침에 비가 오고낮에는 또 비가 그치고 구름만 낀 상태가 되어서 최상의 날씨로 모든 일정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선하게 또 세심하게 대해 주시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입니다요한일서 4장 18-21절입니다.

18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20 어떤 사람이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가 그분께 받았느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성경에 나타난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바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성경의 가장 첫째 되는 큰 계명은 바로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혼을 다하고힘을 다하고생각을 다하여온 존재를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모든 율법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한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모든 일의 동기가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우리는 어떤 일을 옳고 정당하기 때문에또는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하기도 하지만가장 바람직한 것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자기 자신에게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별로 없는지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에 고민을 하고 있는 한 학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저는 그 학생이 그러한 고민을 한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을 정말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만약 우리에게 그러한 어떤 충만한 마음이 아직 없다할지라도왜 나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을까를 고민하고 또 그러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반하였던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다시 확인하신 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는 사실이었습니다구약성경에서도 누누이 하나님께서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남편과 아내가 다른 사람들이 누구를 사랑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서로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가지고 또 질투하는 것처럼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누구를무엇을 사랑하는지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우리는 창조된 목적그리고 구원을 받은 목적을 잃어버린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대상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또 행복해 하듯이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우리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생활을 살아갈 것입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입니다주님께서는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가 이 말씀처럼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나?

그렇다면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겠습니까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와 비결을 19절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함께 읽으시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한 성도는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바다를 잉크로 삼고온 세상의 나무를 다 붓으로 삼아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한다 할지라도 다 기록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정도는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우리가 아는 만큼 자라나고 깊어질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떠나 사람이 되신 것이 어떠한 사랑인지나를 대신해 고통과 수치와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하신 것이 어떠한 사랑인지오늘도 더럽고 비좁은 나의 마음속에 사시며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으시는 그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이제 장차 다시 오셔서 나를이 죄 많고 고생 많은 세상에서 건지고 주님의 왕국으로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그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우리가 그 깊이를 알면 알수록 우리는 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에베소서 3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에베소서 3장 18-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을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했던 내용은 바로 성도들이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높고 큰 것인지를 알게 되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사도 바울의 기도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가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지식을 뛰어넘는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넘어짐과 죄악됨에 상관없이 우리를 선하게따듯하게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날마다 깊이 알아가기를 원합니다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도 날마다 자라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다시 요한일서로 돌아오셔서요한일서 4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가 그분께 받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우리가 삶 속에서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판단하려면내가 과연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보이는 사람을 동일한 대상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가장 작은 형제에게 찬 물 한 잔을 대접하고병든 형제를 방문하고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며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모든 일은 성경에서 바로 주님께 한 것으로 계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는 목회자에게 순종하며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하나님께 순종하는 학생은 선생님께 순종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형제자매와 교제하며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형제자매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 속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형제자매와 불편한 가운데 있으면서하나님과는 바른 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오해하는 것입니다그것은 성경적으로 불가능합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마태복음 5장 24절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에 형제와 불편한 일이 있거든 먼저 가서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주제로 수련회를 가졌는데요저는 개인적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첫걸음은 불편했던 형제자매서먹했던 형제자매와 새로운 마음으로 교제를 시작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왜냐하면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형제자매를 사랑한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읽은 요한일서 4장 20절에서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믿음의 고백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대하는 마음과 실제의 삶 속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 함께 누가복음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6장 32-3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32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죄인들도 그와 같이 하느니라.

34 너희가 어떤 자들에게 받기를 바라며 빌려 주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죄인들도 준 만큼 받으려고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이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친절하시니라.

 

성경은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는 것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끼리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의 지체들을 사랑하되모든 형제자매모든 지체들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살펴보고 생각해 볼 때도그다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말내가 하나님이래두 나 같은 놈은 좀 많이 심한 것 같다.”라고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우리는 별로 사랑을 받은 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미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이지만조목조목 따져보면 그다지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죄 많고자주 넘어지고실패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형제자매들에게서 사랑스러운 모습들만 보이기 때문이 아닙니다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형제자매들에게 허물이 없고 완벽하기 때문이 아닙니다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그리스도께서 먼저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우리가 먼저 그 뜨거운 사랑을 값없이 받은 자들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랑을 방해하는 지식

그렇다면우리 형제자매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일까요여러분은 사랑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미움도 될 수 있고무관심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형제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로 다음의 한 가지를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다함께 고린도전서 8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 주느니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의 반대말은 지식으로 인한 교만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잘 아시는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은 우쭐대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랑의 반대말은 높아진 마음입니다.

 

어떠한 정보나 지식 자체는 우리에게 필요하고또 알고 있으면 유익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우리가 정말 무식해서 손발이 고생하는 경우도 있고정말 간단한 것인데 그것을 몰라서 포기하는 일들도 있습니다우리에게 다양한 지식과 정보는 매우 필요하고또 성경적인영적인 지식이라면 바른 분별과 판단을 위해서영적 성장과 강건함을 위해서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식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왜냐하면 지식은 우쭐대게 하고높아진 마음을 가져오기가 쉽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형제자매들과 대립하거나 충돌하는 많은 경우는 내가 옳고저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 때문인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읽은 고린도전서 8장의 말씀에 언급된 지식의 내용도 성경적으로는 너무나 옳고 합당한 내용인 것을 보게 됩니다당시 고린도라는 도시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도시였습니다시장에서 팔리는 거의 모든 고기들이 신전에서 한 번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일 만큼 실제적인 우상숭배가 생활화된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주님을 처음 믿은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은 시장에서 고기를 사먹을 때 양심에 걸리는 문제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우상 신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우상숭배에 동참하고 참여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적으로 보게 되면 우상들은 실제로 신이 아니고그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형상들에 불과하기 때문에어떤 고기가 우상 신에게 제물로 바쳐졌다 할지라도 그 고기는 우상 신에게 속한 고기가 아니라 그냥 맛있는 고기인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발생하였습니다성경적인 정확한 지식을 가졌던 형제자매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시장에서 고기를 사서 맛있게 먹었습니다그 고기가 우상숭배에 사용되었던 고기든지 아니든지 아무 상관없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믿음이 약한 형제자매들은 양심에 죄책감을 가진 채로다른 형제자매들이 먹기 때문에 그냥 따라서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먹는 문제에서는 우상숭배를 해도 되는가보다라고 나름대로 생각을 하든지또는 다 저렇게 죄를 짓는데 나도 그냥 대충 살자라고 생각을 하든지믿음의 생활에 여러 가지 양심의 순수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8장의 몇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먼저 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들을 먹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한 분 외에는 다른 이 없는 줄 아노라.

성경은 정확히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7-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그 지식이 있지는 아니하니 어떤 사람들은 이 시각까지도 우상을 의식하며 우상에게 바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먹으므로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졌느니라.

그러나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어도 더 낫지 아니하고 먹지 않아도 더 못하지 아니하니라.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고 안 먹고 하는 문제 자체는 하나님 앞에서 더 낫거나 못한 문제가 아니지만성경적인 지식이 부족한 가운데양심을 거슬러 그 음식을 먹는 형제자매들에게는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약한 형제가 멸망하리니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느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이와 같이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느니라.

내가 아무리 옳고 정당하다 할지라도 내가 형제자매들을 고려하지 않고행동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지식적인 원칙에서는 죄가 아닐지라도형제사랑의 원칙에서는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면 나는 세상이 서 있는 한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가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여기서 바울은 놀라운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바울은 고기를 먹는 것이 결코 죄가 아니고성경적으로 오히려 합당한 일이지만그것이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아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바울은 여기서 옳고 그름의 원칙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원칙으로 걷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 형제자매들과 갈등하는 이유는 내가 옳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바울은 옳고 그름보다 형제자매를 사랑하고 배려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그래서 성경은 주님의 사랑이지식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우리가 주님을 부인한다든지진리를 타협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그러한 중대한 사안이 아니라면내가 옳다 할지라도나의 정당한 먹을 권리가 있다할지라도형제사랑으로 인하여 기꺼이 손해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식을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사랑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사랑은 옳고 그름지식판단을 우선 내려놓는 것입니다사랑은 형제자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가 감수하는 것입니다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대하셨고오늘도 그렇게 대하고 계십니다.

 

흠이 많고 문제가 많은 우리가 서로 보기에도 문제가 많은데우리보다 더 높은 기준을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자신은 얼마나 흠이 많겠습니까주님께서 우리를 옳고 그름으로 대하셨다면우리가 잘못하는 것마다 일일이 지적하고 책망하셨다면우리는 너무나 괴로울 뿐만 아니라아마 지금 살아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주님 자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우리가 그렇게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내가 옳다는 생각을 가지는 한우리는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밖에 할 수 없고사랑할 수는 없게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옳고 그름의 길지식과 판단의 길이 아니라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을 가기 원합니다우리가 오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가운데 포기하고 손해를 감당하는 모든 것들은 주님께서 계산해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힘입어 사랑

먼저 우리의 마음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깨닫고 감동하는 마음이 있기를 원합니다.그리고 주님의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힘입어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사랑인 것처럼우리가 우리 자신의 노력과 결심으로는 사랑할 수 없지만주님의 영을 힘입어서 우리가 사랑하기 원합니다사랑할 수 없는 나는 온전히 십자가에 매달리고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셔서우리가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고 하나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형제자매님들 사랑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10.11.2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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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요일 5:14-15)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5장입니다요한일서 5장 14절과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날의 문제점

오늘 우리는 수요기도회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그래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그런데 특별히 오늘 저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한 번 세어보십시오기도라는 것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가 정말 중요합니다제가 14절과 15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라는 말이 몇 번이나 있는지 한 번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기도하면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우리가 안다...라고 계속해서 우리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데요그래서 오늘 저는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조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을 정말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성경을 대단히 많이 아는 사람도 많고성경말씀을 너무나 훌륭하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많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어제도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요우리나라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모여서 수조원에 이르는 헌금을 자본으로 기독교 은행을 만들자고 결의한 소식을 보았습니다분명히 성경에서는 이자놀음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오히려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는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주라는 말씀까지도 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들의 헌금을 가지고말하자면 돈놀이를 해보자고 공개적으로 결의하는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타락하고 세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데요그 이유는 무엇일까요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성경을 모르고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그것도 정말 정확한 지적일 수 있고 또 정답일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를 알고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과연 성경을 많이 알게 된 만큼,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게 된 만큼 정말 참되게정말 겸손하게 주님만을 섬기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아들에게 주는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오늘날 우리는 거룩하고 영적인 모양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부드럽고 온유하고 거룩한 겉모양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지금 막 구원받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성도라 할지라도중고등부 학생들이나 심지어 초등학생 어린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말의 표현과 모양은 금새 흉내낼 수가 있습니다심지어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도 다 따라할 수가 있습니다성경은 심지어 사탄도 빛의 천사로 자신을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이 아닌진정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려면 우리에게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주님과 참되게 만나고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기도 자체를 하느냐 안하느냐몇 분,몇 시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참되게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느냐 입니다.

 

 

겸손

저는 오늘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두 가지 좋은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데요먼저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4절과 15에서 모두 동일하게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알고 확신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응답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우리의 기도는 왜 잘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4절 말씀을 다시 보니 우리가 무엇이든 구하긴 구하는데 누구의 뜻대로 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바로 그분의 뜻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뜻을 주장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정한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지극정성으로 나의 뜻과 나의 원함을 끊임없이 고집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기도는 나의 뜻과 나의 원함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만이 나에게 가장 선하고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나의 눈에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은 오히려 위험하거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아이들의 눈에는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가장 선하고 좋은 것으로 보이겠지만부모님의 눈에는 해롭게 보여서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눈은 정확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이 부당하고 나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하고 좋은 것임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언제든지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따라갈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교만하고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면 위선적이고 종교적인 기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성경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감사를 하면서도 여전히 위선적이고 교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온 마음을 쏟아놓고 참되게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닙니다우리의 기도가 참되고 정말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라면우리는 반드시 겸손해지고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만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겸손하신 한 분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다함께 빌립보서 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2장 먼저 3절을 보시겠습니다.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라고 말씀합니다여기서 오직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5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읽어보겠습니다제가 먼저 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우리 주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고종의 형체를 취하셨고자기를 낮추셔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온 우주에서 하나님 자신보다 나은 분이 없지만겸손하신 주님께서는 자신보다 우리를 더 낫게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이러한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러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마태복음 26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볼 수가 있는데요이렇게 기도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 내 아버지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39). “오 내 아버지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42).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기도는 나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우리가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나의 뜻은 문제가 많지만하나님의 뜻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알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평강

이처럼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먼저 겸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바로 이것을 가질 수가 있는데요다함께 빌립보서 4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는 종종 버스를 기다리면서 기도원 셔틀버스를 보게 됩니다기도원에 가려고 버스를 타시는 분도 있고이제 집에 가려고 내리는 분도 계십니다그런데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하나같이 어둡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기도하러 가는 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기도를 마치고 와서는 표정이 밝고 평강을 누리는 모습이 느껴져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이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왜 기도를 했는데도 그럴까요?

 

우리가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에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평강입니다이 평강은 앞서 말씀드린 겸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내가 원하고 주장하는 나의 뜻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겸손히 바라고 인정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이나 목적이 따로 있는 사람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염려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읽은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는 무엇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또 우리는 어떤 일들을 기도해야 합니까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요청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빌립보서 4장 7절을 보시면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데요.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요성경은 결코 모두 들어주시리라.”라든지, “웬만큼 상황이 해결되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오히려 아직도 문제는 거대하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을지라도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임하여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래서 바로 평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외적으로 보았을 때 기도를 하는 사람이든하지 않는 사람이든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기도를 하든 안하든 날씨가 요즘같이 갑자기 추워질 때는 감기에 들 수가 있구요기도를 하든 안하든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기도를 한다고 해서 만사가 형통하고기도를 안한다고 해서 만사가 꼬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겉모습에 있지 않습니다.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흉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상황과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만 누릴 수가 있습니다.나의 모든 계획과 주장과 뜻을 다 내려놓고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모든 것을 맡길 때에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 다윗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을 한 명만 생각해 보겠습니다기도의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던 모세를 생각할 수도 있구요또 기도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졌던 다니엘도 생각할 수 있겠구요삼년 반 동안의 기근을 위해서그리고 또 다시 비를 주시도록 기도했던 엘리야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성경에는 많은 기도의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저는 특별히 다윗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라고?”하면서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겠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딱히 다윗이 기도를 통해 무슨 일을 하였다든지무슨 응답을 받았다든지 하는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다윗이란 이름을 들으면 주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가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다윗처럼 자세하게 여러 상황들 속에서 그가 어떻게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인도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다윗도 처음부터 기도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시골에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던 소년이었는데요가족의 큰 행사가 있어서 형들이 다 참석하는 날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양을 돌보며 일을 했던 막내아들이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대언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기름부음을 받은 뒤에도 그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또 다시 아버지의 양을 치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전쟁에 나간 형들이 잘 있는지 소식을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갔다가,하나님을 조롱하는 골리앗의 외침을 듣게 되고골리앗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얼떨결에 왕의 신하가 되고최고의 장군이 되고온 민족적인 영웅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와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았던 다윗은 이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돌볼 때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더 깊은 믿음으로더 진정한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끄시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다윗은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국왕이었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다윗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큰 시련 앞에 매우 당황했던 다윗은 먼저 놉이라는 지역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내가 지금 사울왕의 임무를 비밀리에 또 급하게 진행하느라 먹을 것도 없고 무기도 없는데 좀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그때 다윗은 제사장들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거룩한 빵을 먹게 되구요또한 자신이 쓰러뜨렸던 골리앗의 칼을 받아서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과 당당하게 동행하며 사용했던 돌팔매는 어디로 가고 골리앗의 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다윗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계속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이내 이스라엘의 국경을 벗어나 가드 지역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그때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인 다윗을 알아보고는 자신들의 왕에게로 데려가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또 다시 원수의 땅에서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을 하여서 아기스를 속이고 무사히 쫓겨나게 됩니다.

 

이처럼 다윗이 처음 인생의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매우 당황하고 상황이 닥치는 대로 조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골리앗과 일대일로 붙어서 한 방에 쓰러뜨렸던 믿음의 용사는 어디로 갔는지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하는 굴욕적인 다윗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사무엘상 22장을 보시겠습니다지금 제가 말씀드린 다윗의 이야기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고 또 아기스 왕과 만났던 이야기는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일들을 겪었던 다윗은 사무엘상 22장에서 아둘람 굴로 피한 것을 보게 됩니다사무엘상 22장 1절과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거기서 떠나 아둘람 굴로 피하매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이 그 일을 듣고는 그들이 거기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더라.

고난 중에 있던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불만이 있던 모든 자가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을 다스리는 대장이 되었더라거기에는 그와 함께한 사백 명가량의 사람이 있더라.

 

자신을 사랑하고 잘 대해주었던 사울 왕이 어느 날 급변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일이 처음 발생하였을 때 너무나 당황했던 다윗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아둘람 굴에서 가족들도 만나고자신을 지지하며 따르는 자들도 만나면서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험한 다윗은 이제 본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바로 이 시점부터 다윗이 주님께 여쭙고 그 응답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바로 다음 장인 사무엘상 23장 2절에 보시면 우리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인 그러므로 다윗이 께 여쭈어 이르되라는 말씀이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 함께 시편 142편으로 가보시겠습니다시편 142편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드린 기도라고 보여지는데요시편142편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제가 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내 목소리로 께 부르짖으며 내 목소리로 께 간구하였도다.

내가 나의 원통함을 그분 앞에 쏟아 놓으며 나의 고난을 그분 앞에 보였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짓눌릴 그때에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내가 다니는 길에 몰래 올무를 놓았나이다.

내가 나의 오른쪽을 바라보고 살펴보았으나 나를 알려 하는 자가 없었나이다내게는 피난처가 없으며 내 혼을 돌보는 자도 없었나이다.

오 내가 주께 부르짖으며 말하기를주는 나의 피난처시요산 자들의 땅에서 나의 몫이니이다하였나이다.

내가 심히 비천하게 되었사오니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를 기울이소서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나보다 강하오니 그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혼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사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로운 자들이 나를 에워싸리이다.

 

또한 시편 57편도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지은 시편이라고 보이는데요시간 관계상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신다면 시편 57편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갔던 다윗은 이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며 순종하고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이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기도하는 사람이었던 다윗은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살아갔고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았고,또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사울 왕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거나 힘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리

오늘 저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기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진 사람입니다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았기 때문에상황에 따라 요동하지 않고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강을 허락하셔서여전히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의 예로 다윗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다윗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고난이 올 때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면서 거짓말도 하고골리앗의 무기도 의지하고또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다윗이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여전히 고난 중에 있었고사울에게 쫓기는 가운데서도모든 상황과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 속에서 안식하는 사람이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망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만족하며 기뻐하는 목자의 양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겸손과 안식과 평강을 다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또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이 아니라 참된 십자가의 권능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09.03.18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요일 1:1-4)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장입니다요한일서 1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일서 1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2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저는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도 요한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사도 요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사도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다른 사도들은 모두 순교를 당해서 삶을 마감했지만사도 요한은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나서 자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풍성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여러 사도들이 성경 기록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당시에는 거의 동시대적으로 기록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서신들을 공유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이제 사도 요한은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사도들의 모든 서신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의 삶을 걸어왔기 때문에 더욱 많은 연륜과 깊은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람의 체험이나 생각으로부터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록자들의 인간적인 어떠한 특징들을 사용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일서를 읽으면서 글의 표현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함께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시면서젊은 시절에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직접 보았고들었고자세히 살펴보았으며손으로 예수님을 직접 만졌고한 평생을 주님을 따라 걸어온 노 사도의 진국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처음부터

요한일서 1장 1절의 말씀을 보시면,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한복음 1장 1절도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에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태초부터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사도 요한은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를 거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많이 묵상하였던 것 같습니다성경의 주인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구약의 많은 말씀들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어떻게 메시야가 오시는가어떻게 주인공이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계보요 역사이며 예언의 말씀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7장 24절과 25절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잘 들어보십시오.

24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만물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어떠한 섬김이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분이십니다모든 면에서 스스로 만족하시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사람을 만드셨고또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을까요?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말씀에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교제하기 위하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하나님께 무언가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받아내시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또 부어주고 교제하려고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다른 서신인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사람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창조되었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선하신 분임을 찬양합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기뻐하셨다면 사람의 운명은 정말 비참했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으면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일서 1장 4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게 될 때 하나님께도 기쁨이 있고 사람에게도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오늘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지치고힘이 들고고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환경이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까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지 못했고 교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과 만남으로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생명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표현하면서 생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2절에서는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그리고 뒷부분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라고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지옥에 갈 우리의 운명이 천국으로 옮겨진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80, 100년의 짧은 인생이 끝도 없이 길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 동산을 걸으면서 아무런 막힘이 없는 교제를 누렸습니다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불러오셨고아담이 이름 짓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선과 악의 분별이 없었던 아담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통치하면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의논하고 교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고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에서 사망이란 단어는 교제의 분리를 의미합니다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데그 이유는 그 사람과 분리되어서 더 이상 교제하거나 함께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망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지 못하도록 분리시키고함께 소풍도 가지 못하도록 분리시킵니다이러한 교제의 분리가 슬픔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둘째 사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혼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에서 고통을 받으며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망이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생명은 무엇이겠습니까생명은 바로 교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더라”(눅 15:24).

 

성경에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예수님은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시고자 친히 화해 헌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담당하셨습니다요한일서 2장 2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죄로 인해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구원받을 때 단 한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매일 매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또 누리며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다 쏟으신 것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다 같이 요한복음 17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은 무엇입니까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교제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여기서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자들도 많은 공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지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만큼우리가 주님과 동행한 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

우리가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친해지고 좋아하게 되듯이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교제하게 되면 예수님을 좋아하게 됩니다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분께 부담 없이 나아갈 수 있고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요즘 그 동안 아무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 말씀이 자꾸 떠오르고 묵상이 되고 있는데그 말씀은 바로 요한복음 16장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상처주거나 부담스럽게 하거나 괴롭히려고 말하지는 않지만많은 경우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하게 됩니다그것이 성경의 진리일 수도 있고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너무나 정당하고 옳은 주장일 수도 있고대화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주로 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듣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내가 말을 어떻게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생각하지듣는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유익이 되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 우주에서 말할 것이 가장 많은 한 사람을 뽑으라면 우리 주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우리 주님은 말에 아무런 실수도 없으시고그분이 진리 자체이시므로 말씀하시는 것마다 진리이지만여기서 예수님은 말하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고 계십니다그 이유는 잘 깨닫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이었습니다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으면 탈이 납니다사랑과 배려가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가 감당하고 따라 올 수 있는 만큼 한 가지씩한 가지씩 자상하게 알려주십니다.

 

또한 누가복음 4장 40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제 해질 무렵에 그들이 다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자들을 그분께 데려오니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안수하사 그들을 고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시고 하루 종일 사람들을 방문하시고 말씀을 외치셨습니다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하고 지치는 해질 무렵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어나셔서 그들 모두에게 한 명한 명 일일이 안수하셔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예수님은 한 번의 말씀선포로 여기에 모인 모두 나음을 입을지어다!” 하실 수도 있지만한 명한 명 안수하시면서 대화하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루 일과로 지친 가운데 수요기도회로 모인 우리들 한 명한 명과 교제하시고 우리를 고쳐주기 원하십니다우리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너무나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

이제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다 같이 요한일서로 돌아와서 요한일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요한일서 3장 14절과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향해 오래 참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향해 오래 참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급하게 바꾸고 변화시키려하지 않으시고 아기에게 이유식을 한 숟갈 한 숟갈 떠 넣어주는 엄마처럼 우리를 자상하게 한 걸음씩 이끌어주셨듯이우리도 형제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인내하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괘씸하게 여기셨다면주님이 우리에게 조건을 요구하셨더라면 우리는 너무나 괴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생명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아무리 답답하고 이상하고 어려운 형제일지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나의 어린 자녀들아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교만하고 더럽고 추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온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이로써 마음이 둔하고 어리석은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우리가 말과 혀로는 사랑한다 말할 수 있지만형제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십자가가 없이는 형제들이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사랑은 아픔 없이 할 수 없고손해를 입지 않고는 할 수 없고버리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고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생명을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며생명 안에 거하고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주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풍성할 때우리는 우리의 시간재물재능,자존심생명까지도 형제들을 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받았고날마다 받고 있기 때문에이러한 참된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그러나 너무나 절망적이게도 저의 눈물과 노력과 결심으로는 결코 어떠한 사랑도 나오지 않습니다그래서 저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주님이 내 안에 풍성하시고내가 주님 안에 거할 때만이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고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와 교제

다시 요한일서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사도 요한은 너희가 먼저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개인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형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아울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사람과 교제하면 우리는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겉으로는 형제와 교제하고 있지만그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 부어진 주님의 빛과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할 때 무엇인가를 주장하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무엇인가를 고쳐주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무엇이 옳은가무슨 말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많은 일과 의무와 사역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자신과의 교제로 부르십니다주님은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와 만나기 원하시고 매순간 동행하기 원하십니다오늘 이 시간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일시 : 2007.05.16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로빈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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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요일 4:7-11)

요한일서 4장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나니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11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랑의 하나님" 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우리교회는 지난주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믿음의 여러 방면들 중에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들까지도 모두 가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들을 때 너무나 큰 감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는 고치실 수 있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표시는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이 마음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새롭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각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믿음의 전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또 시간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는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위한 좋은 시도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저는 특별히 제가 소홀히 하고 있던 "사랑"이라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올바른 지식은 자신을 차갑게 만들고, 사랑이 없는 굳건한 믿음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바로 주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34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 

우리가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교회에 왔을 때 우리가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는 분명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17살 가량 되었을 때 20여명의 형제 자매님들과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10인 승 차량 2대를 가지고 다녔는데, 때로는 지방에 가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20여명의 형제 자매님들이 같이 다니면서 평소에는 서로 친절하고 상냥하고 천사 같던 지체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깨워도 안 일어나고, 누구는 지저분하고, 누구는 눈치도 없이 많이 먹고, 누구는 텐트 정리하는 걸 그렇게 싫어하고, 누구는 더운데 차 창문도 못 열게 하고, 누구는 모이는 시간도 안 지킵니다. 누구는 말투가 기분 나쁘고, 누구는 고집이 세고, 누구는 혼자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 괜히 재촉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형제 자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나로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들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또 한 구석에서는 "절대로 저런 모습은 사랑할 수 없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작게든 크게든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지체를 만나면 쉽게 교제가 되고 금새 친밀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편중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마 5).

저는 제 안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영화와 노래가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온 세상이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이 세상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계산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손해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때론 멋지게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포장을 풀어버리고 나면 상처를 받지 않으려 하고 결코 낮아지려 하지 않으며 딱딱하고 차갑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결코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수준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린 아이로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 저를 더욱 이끌어 주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지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저 사람이 이렇게 바뀌면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사 같이 바뀐다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형제 자매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셨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일서 4장 7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요일 4).

사랑은 사람에게 속하지 않았으므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만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 지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9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나니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우리의 사랑의 원천은 바로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이해했는지에 따라 우리의 사랑의 깊이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모른채 방황하며 헛되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물의 염려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귀를 닫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습니다.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입장에서 죄의 용서와 구원이란 값없는 선물이요, 공짜로 주어진 은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구원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선물을 주고자 이 천년을 고민하신 하나님께서 갈보리 백화점으로 올라가시고 십자가라는 상점 앞에서 자신의 독생자의 피를 지불하고 넘치는 용서와 은혜라는 선물을 마련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었습니까? 조건을 걸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먼저 하신 사랑이었습니다. 
다같이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처럼"이란 표현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이처럼"이란 단어를 볼 때, 우리 각자가 느끼는 사랑의 깊이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만큼 다른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아직 요구가 많고, 조건이 많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실한 형제는 게으른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꼼꼼한 형제는 덜렁대는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덜렁대는 사람인지 알려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하시고 격려하신 하나님,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섬세한 사랑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게으르고 덜렁대는 형제를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형제들을 "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꾸려할 때는 참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형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조건 없이 참되게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그 형제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많은 우리들을 변화시킨 것이 나의 결단과 굳은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었던 것처럼, 다른 지체들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기도
오늘 우리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우리 안에 흘러 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문제가 많은 우리를 조건 없이 한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옆의 지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에 푹 잠기게 하시고 나의 요구와 조건이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지체들을 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빛을 주셔서 주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이처럼" 사랑하신 것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더 알려주셔서 우리의 사랑이 더 온전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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