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7.05.16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로빈2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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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요일 4:7-11)

요한일서 4장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나니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4장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부터 11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사랑의 하나님" 이란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우리교회는 지난주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믿음의 여러 방면들 중에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들까지도 모두 가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들을 때 너무나 큰 감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고칠 수 없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서는 고치실 수 있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랑에 대해서 들을 때 어떤 사람이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는 표시는 바로 사랑이라는 말씀이 마음이 많이 남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었지만 새롭게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각자 여러 가지 모양으로 믿음의 전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또 시간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는 여러 가지 일들은 우리의 믿음이 더욱 자라나고 하나님을 더 많이 알기 위한 좋은 시도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저는 특별히 제가 소홀히 하고 있던 "사랑"이라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라는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우리의 사랑이 어떠한가를 살펴봄으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올바른 지식은 자신을 차갑게 만들고, 사랑이 없는 굳건한 믿음은 다른 사람의 양심을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바로 주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34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 

우리가 참된 예수님의 제자들임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교회에 왔을 때 우리가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는 분명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할 것입니다. 

저는 17살 가량 되었을 때 20여명의 형제 자매님들과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10인 승 차량 2대를 가지고 다녔는데, 때로는 지방에 가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20여명의 형제 자매님들이 같이 다니면서 평소에는 서로 친절하고 상냥하고 천사 같던 지체들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는 깨워도 안 일어나고, 누구는 지저분하고, 누구는 눈치도 없이 많이 먹고, 누구는 텐트 정리하는 걸 그렇게 싫어하고, 누구는 더운데 차 창문도 못 열게 하고, 누구는 모이는 시간도 안 지킵니다. 누구는 말투가 기분 나쁘고, 누구는 고집이 세고, 누구는 혼자 서두르면서 다른 사람 괜히 재촉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형제 자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나로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들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또 한 구석에서는 "절대로 저런 모습은 사랑할 수 없다!"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작게든 크게든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쉽게 친해질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지체를 만나면 쉽게 교제가 되고 금새 친밀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이 말씀하신 형제 사랑을 잘 하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편중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 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마 5).

저는 제 안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 많은 영화와 노래가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온 세상이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이 세상의 사랑은 이기적이며 계산적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서 우러나오는 사랑은 손해를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피해를 입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때론 멋지게 포장되어 있을지 모르지만 포장을 풀어버리고 나면 상처를 받지 않으려 하고 결코 낮아지려 하지 않으며 딱딱하고 차갑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사랑을 결코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수준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저는 아직 어린 아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린 아이로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주님 저를 더욱 이끌어 주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지체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저 사람이 이렇게 바뀌면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사 같이 바뀐다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형제 자매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어떤 사랑으로 사랑하셨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요한일서 4장 7절 말씀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요일 4).

사랑은 사람에게 속하지 않았으므로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만이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올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며,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이 더 풍성해 지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더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9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9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나니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 10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우리의 사랑의 원천은 바로 복음에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얼마나 깊이 묵상하고 이해했는지에 따라 우리의 사랑의 깊이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로 죽어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삶의 의미를 모른채 방황하며 헛되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재물의 염려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귀를 닫아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습니다. 사망과 지옥의 형벌을 받아 마땅한 우리들을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들의 입장에서 죄의 용서와 구원이란 값없는 선물이요, 공짜로 주어진 은혜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막대한 대가를 치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 구원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사랑하셔서 선물을 주고자 이 천년을 고민하신 하나님께서 갈보리 백화점으로 올라가시고 십자가라는 상점 앞에서 자신의 독생자의 피를 지불하고 넘치는 용서와 은혜라는 선물을 마련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이었습니까? 조건을 걸지 않은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먼저 하신 사랑이었습니다. 
다같이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이처럼"이란 표현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이처럼"이란 단어를 볼 때, 우리 각자가 느끼는 사랑의 깊이가 각자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만큼 다른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사랑에 아직 요구가 많고, 조건이 많다면 우리는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실한 형제는 게으른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꼼꼼한 형제는 덜렁대는 형제를 사랑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빛이 임하여 내가 얼마나 게으른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덜렁대는 사람인지 알려주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전히 나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위로하시고 격려하신 하나님,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섬세한 사랑으로 이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게으르고 덜렁대는 형제를 조건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형제들을 "그처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바꾸려할 때는 참되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형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조건 없이 참되게 사랑하기 시작한다면 그 형제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많은 우리들을 변화시킨 것이 나의 결단과 굳은 의지와 피나는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이었던 것처럼, 다른 지체들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기도
오늘 우리가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우리 안에 흘러 넘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문제가 많은 우리를 조건 없이 한 없이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내 옆의 지체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먼저 주님의 사랑에 푹 잠기게 하시고 나의 요구와 조건이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지체들을 대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빛을 주셔서 주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이처럼" 사랑하신 것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더 알려주셔서 우리의 사랑이 더 온전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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