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일시 : 2009.03.18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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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요일 1:1-4)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장입니다요한일서 1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일서 1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2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저는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도 요한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사도 요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사도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다른 사도들은 모두 순교를 당해서 삶을 마감했지만사도 요한은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나서 자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풍성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여러 사도들이 성경 기록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당시에는 거의 동시대적으로 기록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서신들을 공유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이제 사도 요한은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사도들의 모든 서신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의 삶을 걸어왔기 때문에 더욱 많은 연륜과 깊은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람의 체험이나 생각으로부터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록자들의 인간적인 어떠한 특징들을 사용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일서를 읽으면서 글의 표현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함께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시면서젊은 시절에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직접 보았고들었고자세히 살펴보았으며손으로 예수님을 직접 만졌고한 평생을 주님을 따라 걸어온 노 사도의 진국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처음부터

요한일서 1장 1절의 말씀을 보시면,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한복음 1장 1절도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에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태초부터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사도 요한은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를 거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많이 묵상하였던 것 같습니다성경의 주인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구약의 많은 말씀들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어떻게 메시야가 오시는가어떻게 주인공이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계보요 역사이며 예언의 말씀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7장 24절과 25절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잘 들어보십시오.

24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만물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어떠한 섬김이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분이십니다모든 면에서 스스로 만족하시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사람을 만드셨고또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을까요?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말씀에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교제하기 위하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하나님께 무언가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받아내시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또 부어주고 교제하려고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다른 서신인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사람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창조되었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선하신 분임을 찬양합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기뻐하셨다면 사람의 운명은 정말 비참했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으면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일서 1장 4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게 될 때 하나님께도 기쁨이 있고 사람에게도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오늘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지치고힘이 들고고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환경이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까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지 못했고 교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과 만남으로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생명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표현하면서 생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2절에서는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그리고 뒷부분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라고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지옥에 갈 우리의 운명이 천국으로 옮겨진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80, 100년의 짧은 인생이 끝도 없이 길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 동산을 걸으면서 아무런 막힘이 없는 교제를 누렸습니다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불러오셨고아담이 이름 짓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선과 악의 분별이 없었던 아담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통치하면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의논하고 교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고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에서 사망이란 단어는 교제의 분리를 의미합니다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데그 이유는 그 사람과 분리되어서 더 이상 교제하거나 함께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망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지 못하도록 분리시키고함께 소풍도 가지 못하도록 분리시킵니다이러한 교제의 분리가 슬픔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둘째 사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혼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에서 고통을 받으며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망이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생명은 무엇이겠습니까생명은 바로 교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더라”(눅 15:24).

 

성경에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예수님은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시고자 친히 화해 헌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담당하셨습니다요한일서 2장 2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죄로 인해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구원받을 때 단 한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매일 매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또 누리며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다 쏟으신 것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다 같이 요한복음 17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은 무엇입니까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교제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여기서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자들도 많은 공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지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만큼우리가 주님과 동행한 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

우리가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친해지고 좋아하게 되듯이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교제하게 되면 예수님을 좋아하게 됩니다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분께 부담 없이 나아갈 수 있고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요즘 그 동안 아무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 말씀이 자꾸 떠오르고 묵상이 되고 있는데그 말씀은 바로 요한복음 16장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상처주거나 부담스럽게 하거나 괴롭히려고 말하지는 않지만많은 경우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하게 됩니다그것이 성경의 진리일 수도 있고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너무나 정당하고 옳은 주장일 수도 있고대화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주로 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듣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내가 말을 어떻게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생각하지듣는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유익이 되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 우주에서 말할 것이 가장 많은 한 사람을 뽑으라면 우리 주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우리 주님은 말에 아무런 실수도 없으시고그분이 진리 자체이시므로 말씀하시는 것마다 진리이지만여기서 예수님은 말하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고 계십니다그 이유는 잘 깨닫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이었습니다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으면 탈이 납니다사랑과 배려가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가 감당하고 따라 올 수 있는 만큼 한 가지씩한 가지씩 자상하게 알려주십니다.

 

또한 누가복음 4장 40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제 해질 무렵에 그들이 다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자들을 그분께 데려오니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안수하사 그들을 고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시고 하루 종일 사람들을 방문하시고 말씀을 외치셨습니다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하고 지치는 해질 무렵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어나셔서 그들 모두에게 한 명한 명 일일이 안수하셔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예수님은 한 번의 말씀선포로 여기에 모인 모두 나음을 입을지어다!” 하실 수도 있지만한 명한 명 안수하시면서 대화하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루 일과로 지친 가운데 수요기도회로 모인 우리들 한 명한 명과 교제하시고 우리를 고쳐주기 원하십니다우리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너무나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

이제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다 같이 요한일서로 돌아와서 요한일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요한일서 3장 14절과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향해 오래 참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향해 오래 참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급하게 바꾸고 변화시키려하지 않으시고 아기에게 이유식을 한 숟갈 한 숟갈 떠 넣어주는 엄마처럼 우리를 자상하게 한 걸음씩 이끌어주셨듯이우리도 형제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인내하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괘씸하게 여기셨다면주님이 우리에게 조건을 요구하셨더라면 우리는 너무나 괴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생명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아무리 답답하고 이상하고 어려운 형제일지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나의 어린 자녀들아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교만하고 더럽고 추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온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이로써 마음이 둔하고 어리석은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우리가 말과 혀로는 사랑한다 말할 수 있지만형제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십자가가 없이는 형제들이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사랑은 아픔 없이 할 수 없고손해를 입지 않고는 할 수 없고버리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고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생명을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며생명 안에 거하고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주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풍성할 때우리는 우리의 시간재물재능,자존심생명까지도 형제들을 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받았고날마다 받고 있기 때문에이러한 참된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그러나 너무나 절망적이게도 저의 눈물과 노력과 결심으로는 결코 어떠한 사랑도 나오지 않습니다그래서 저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주님이 내 안에 풍성하시고내가 주님 안에 거할 때만이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고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와 교제

다시 요한일서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사도 요한은 너희가 먼저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개인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형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아울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사람과 교제하면 우리는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겉으로는 형제와 교제하고 있지만그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 부어진 주님의 빛과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할 때 무엇인가를 주장하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무엇인가를 고쳐주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무엇이 옳은가무슨 말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많은 일과 의무와 사역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자신과의 교제로 부르십니다주님은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와 만나기 원하시고 매순간 동행하기 원하십니다오늘 이 시간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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