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31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금요일 채플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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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마 9:12)
이승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2학기의 첫 번째 채플입니다. 시간도 70분으로 늘어나서 상당히 여유로운 채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설교도 지루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알차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마태복음 9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학교만 보더라도, 더 많은 교실이 필요하고, 또 더 많은 좋은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학생들도 필요하고, 운동장, 식당, 기숙사, 도서관 등의 큰 건물들과 시설들도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족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친구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기도 필요하고, 물도 필요합니다. 자녀들에게는 부모님이 필요하고,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지혜가 필요하기도 하고, 또 많은 일로 피곤한 사람에게는 휴식과 잠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고플 때는 음식이 필요하고, 또 추울 때는 따듯한 옷과 집이 필요합니다. 또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병든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에게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우리에게 필요한 분은 바로 주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올바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또 우리가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분이십니다.
여러분 혹시 병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승연이에게 예방주사를 맞히려고 병원에 데려간 적이 몇 번 있었는데요. 승연이가 어떤 장소나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병원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울기도 하고,의사 선생님 앞에 앉으면서부터 울기도 하였습니다. 아기병원에는 온갖 아기들이 우는 소리로 가득합니다. 제가 볼 때는 병원을 좋아하는 아기나 어린이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을 보면 빨리 병원에 가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정작 자기의 몸이 안 좋을 때는 그냥 쉬면 낫는다고 말하면서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는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하고, 자기는 건강하다고 말하고, 또 자기 몸은 자기가 잘 안다고 말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사실을 따져보자면, 그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의사가 필요 없다고 주장을 하고, 또 진심으로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주 하나님께서 정말 절실히 필요한 분이시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그다지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자기는 건강하다고 주장을 했던 사람이 병원에 가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도, 너~~무 아플 때, 비로소 마음을 바꿔서 병원에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들도 정말 큰 시련과 고통과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한 가지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절실히 느끼고 있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왜 나에게 하나님이 필요한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구원과 구원의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다른 말로 하면 구조한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서 놀다가 물에 휩쓸려가게 되었을 때, 우리가 스스로 헤엄쳐서 나올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해양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면 우리에게는 해양구조대원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가 산에 올라가서 무사히 걸어서 내려올 수 있다면, 산악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부상을 당하여 스스로 내려올 수 없는 어떤 위급한 상태가 된다면 우리에게는 산악구조대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갑작스런 사고에서 스스로 대처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119긴급구조대원이 필요하지 않겠지만,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119긴급구조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것은 우리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고, 죄에 따른 지옥의 심판이라는 너무나 크고 무거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구원자, 구조대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다에서든, 산에서든, 또 긴급한 상황에서든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구조대원과 만나는 것입니다. 구조대원을 만나기만 한다면 그때부터는 구조대원이 알아서 모든 일들을 처리해 줄 것이기 때문에, 그 뒤부터는 모든 것을 구조대원에게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문제도 이와 똑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대원,바로 구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이제 우리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모든 것을 완전히 맡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조대원, 우리의 구원자는 바로 다음과 같이 우리를 지옥으로부터 완전히 구조하셨습니다. 다함께 히브리서 10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뜻을 세우셨고, 바로 그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시고 구조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죄로 인한 속죄의 헌물로, 제물로 드리셔서 죄 값을 치르시고, 바로 그 단 한 번의 십자가로 우리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습니다.
17절도 보시겠습니다. 다함께 읽으시겠습니다.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온 우주의 재판장이시며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재판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하나도 기억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죄 없다고,무죄라고, 선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 전에 태풍이 지나갔는데, 만약 여러분이 어떤 태풍의 강한 바람에 휩쓸려서 되고, 또 어느 숲속에 떨어지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산의 가장 높은 부분으로 올라가서, 누군가가 멀리서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래서 여러분을 구조할 수 있도록, 소리도 질러보고, 펄쩍펄쩍 뛰어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며칠 동안 지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굶주리고, 또 무서움에 떨면서 밤을 지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구조대원을 만나서 구조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구조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자다가 악몽을 꿀 수도 있을 것입니다. 꿈을 꾸다가 내가 아직도 숲 속에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서웠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괴롭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두려움이나 안 좋은 기억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내가 구조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이와 똑같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다시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불안한 느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느낌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단 한 번의 십자가의 헌물로 나를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고, 나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아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느끼는 어떠한 느낌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구원의 기초와 근거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학생들 중에 구원의 확신에 대해 불안한 분들이 계시다면, 구원의 근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의 기분이나 느낌이 아니라, 오직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왜 필요하십니까? 첫 번째로, 바로 나의 구원과, 구원의 확신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병든 자들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2)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구원을 받고, 또 구원을 확신하는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할까요? 정말 많은 이유들이 있고, 정답들이 있겠지만, 저는 오늘 이것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우리 다 함께 히브리서 4장 15-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힘이 없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어제 밤에 저는 조금 어려운 일을 겪었습니다. 바로 우리 승연이가 똥을 못 눠서 괴로워했기 때문입니다. 15개월 밖에 안 된 조그만 아이가 똥을 못 눠서 괴로운 가운데,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기저귀를 차고 있는 것 자체도 아파서, 계속 울었습니다. 승연이는 소화가 잘 안되서 똥을 누고 싶어도 누지 못하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하였습니다.결국에서 약국에서 관장약을 사서 저와 연지 선생님이 잡고 승연이에게 약을 넣었습니다. 승연이는 소리를 지르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면서 울었는데, 저는 승연이에게 약을 넣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꼭 앉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울고 있는 승연이의 얼굴을 볼 때 저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때 저의 감정은 슬픔과 안타까움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바로 연약함의 감정이었습니다. 내 딸이 고통스러워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이 없다는 무력감, 연약함의 감정이었습니다.
또 저는 학생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면서도 이러한 감정을 많이 느낍니다. 정말 새벽 늦은 시간까지 최선을 다해서 수고하며 준비하고, 진심을 담아서 사랑하고 가르치고 책망하고 잔소리도 하고 하면서 학생 여러분이 정말 바르고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이러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당장 선생님의 눈앞에서는 잘하였는데, 어떤 다른 곳에서의 또 다른 모습들을 우연히 보거나 또는 듣게 될 때, 내가 마음을 쏟아서 말한 것에 비해서,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가 되지 않을 때, 여러 가지 경우에 저는 연약함의 감정을 느낍니다. 서글프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정말 아무런 영향력도, 설득력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학생 여러분들도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나도 변화되고 싶고, 나도 주님을 닮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데, 또 다시 실패하고, 또 다시 넘어질 때, 또 다시 내 입에서는 말이 함부로 나오고,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행동들이 나오게 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하면서, 이러한 연약함의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나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없구나. 나 자신조차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구나.”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 여러분은 단순히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보다는, 나를 잘 이해해주고 마음이 통하는 선생님을 더 좋아할 것입니다.그런데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읽은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친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모든 것들을 친히 경험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고픔이 무엇인지, 피곤함이 무엇인지, 가족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기분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고하게 억울한 재판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며 멸시를 당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아무도 나의 편에 서서 변호해 주지 않고 모두에게 비난을 받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몸소 겪으시고 아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마음도 모르면서”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이 필요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바로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다 아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시고 위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도와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다함께 16절을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너무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또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은혜의 왕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입니다. 왕좌에 앉아 계시다는 것은 바로 주님께서 왕으로서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은혜로우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머뭇거리거나 주저하지 말고, 은혜의 왕좌로 담대하게, 용감하게 나아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내가 좀 못났어도, 또 죄를 지었어도, 또 실패하고 넘어졌어도, 내가 좀 문제가 많아도, 담대하게 은혜와 왕좌로 나와서 필요를 말하고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정리
저는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에게 왜 하나님이 필요한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첫 번째로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고,두 번째로는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내가 바르게 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조금 진지하게 하게 되고, 찬송을 부를 때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재밌게 읽고 또 깨닫게 되었을 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초와 근거는 나의 생활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십자가에만 세워지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나의 모든 죄 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나를 구조하셨다는 이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병든 사람에게 의사가 필요하듯이, 연약한 우리들에게는 강하신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면서도, 완전한 승리의 삶을 사셔서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주님,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장 30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의 강함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어리석을 때 우리의 지혜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죄 많고 더러울 때 우리의 의가 되어주시고,
우리가 고난당할 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외로울 때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우리가 쓰러질 때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주십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만남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우리는 연약한데 왜 힘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어리석은데 왜 지혜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교만한데 왜 겸손이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차가운데 왜 따듯하신 주님을 붙잡지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셔서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신 바로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지금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끝까지 붙잡으십시오.
결코 놓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오직 주님이 필요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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