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일시 : 2010.07.25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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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모할 자(시 73:25-26)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73편입니다시편 73편 25절과 26절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내 마음이 쇠약하오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영원토록 내 몫이니이다.

 

오늘 저는 내가 사모할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아삽

오늘 우리가 침례식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에 대한 귀한 간증을 듣고 주님을 함께 찬양했는데요주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우리가 시편 73편을 통해서 아삽이라는 사람의 간증을 들어보고자 합니다성경 전체를 통틀어서 볼 때, “시편 73편처럼 성경의 한 챕터 전체에 걸쳐서 이렇게 솔직담백하게 기록해 놓은 간증문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3편은 매우 흥미진진한 간증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그러면 먼저 간증을 살펴보기 전에 이렇게 성령님의 영감을 받아 간증문을 기록해 준 아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도대체 이 아삽이 누구길래 이렇게 시편도 기록했을까요?

 

다함께 역대기상 16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역대기상 16장의 상황은 다윗 왕 시대에 석 달 동안 오벳에돔의 집에 보관되어 있던 주의 언약궤를 다시 다윗의 도시로 옮겨오고 나서 큰 축제를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이제 4절을 보시면, “또 그가(다윗 왕이) 레위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을 임명하여 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기념하고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는데 그 우두머리는 아삽이요...”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레위 지파의 찬양 대장이 바로 시편 73편을 기록한 아삽입니다.

 

또한 역대기상 16장 37절을 보시면 이처럼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거기에 의 언약 궤 앞에 남겨 두어 항상 그 궤 앞에서 섬기게 하되 날마다 필요한 일에 따라 그리하게 하였고

또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역대기상 25장에 보면 그 장 전체가 다윗 시대의 음악가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요아삽의 네 명의 아들들까지도 왕궁의 찬양대에서 심벌즈와 비파와 하프를 연주하기도하고노래를 부르기도 하고또 대언을 하기도 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아삽이라는 사람은 왕이 직접 임명한 왕궁의 찬양 대장이기도 했고주의 궤 앞에서 섬기는 직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그의 아들들까지도 찬양대를 함께 구성할 만큼매우 신실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과연 이런 사람에게 어떤 고민거리나 간증거리가 있을까요직업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고그 월급은 왕이 보장해주고또 자녀들도 함께 그 일을 하면서 가정도 아주 화평할 것으로 보이는 아삽인데요... 아삽이 그냥 특송 한곡을 부르고 내려갔을지아니면 과연 무슨 간증을 했을지한번 시편 73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실족할 뻔

시편 73편 1절부터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곧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도다.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내 발은 거의 지나갈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이로다.

 

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섬겼던 아삽이 지금 매우 뜻밖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조금 쉽게 풀어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게 맞습니다맞는데그런데내가 보니까 꼭 사악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것 같고어리석은 자에게 복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얼마나 부러운지... 하나님은 오히려 나같이 마음이 깨끗한 자는 너무 신경도 안 쓰신다... 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거의 실족할 뻔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해 보신 적 없으십니까있으시죠저도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주님께 나의 온 일생을 전폭적으로 드린답시고 이렇게 걸어온 길이 정말 잘된 것인가그런데 현재 나의 모습은 이렇게 초라하고 볼품없지 않은가나는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모아놓은 돈도 없고... 도대체 나는 뭔가?”

때때로 세상 사람들을 보면 정말 사악하게 행하면서도 번영하고 또 어리석게 행하는데도 잘 나가는게 신기하고 부럽게 보이기도 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원망의 마음을 가져보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4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조이는 끈이 없고 오히려 힘이 강건하며

다른 사람들같이 고난 중에 있지도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같이 재앙을 당하지도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사슬처럼 그들을 두르고 폭력이 옷처럼 그들을 감쌌도다.

그들의 눈은 기름져서 솟아오르고 그들이 가진 것은 마음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으며

그들의 부패한 자로서 학대하는 것에 관하여 악하게 말하고 거만하게 말하며

 

아삽이 살던 시대의 세상이나 오늘날의 세상이나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하나님과 동행하던 다윗이 통치하던 세상에도 이랬는데오늘날의 세상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오늘날 우리는 성실하면 손해를 보고정직하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사납지 않으면 무시를 당하고공격적이지 않으면 피해를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특히 우리 한국 사회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남을 억누르고 일어서야만 하는 삭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선하고 겸손한 사람에게는 고난과 시련이 닥쳐오고악하고 교만한 사람에게는 번영과 재물이 넘치는 같은 모습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남을 불쌍히 여기고 자기 것을 베푸는 사람은 점점 가난해지고오히려 남을 괴롭히고 빼앗는 사람은 점점 번영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아삽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속이 상하고 믿음이 실족할 뻔하였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보라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 이렇게 이 세상은 뭔가 불합리하고 비정상적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므로 수많은 불신자들이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드셨는가?” 또 많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번에 기도도 열심히 하고교회도 잘 나왔는데 왜 하나님은 나에게 성공을 주시지 않고 고난만 계속 주실까?” 저도 최근에 그런 생각을 좀 했었는데요. “왜 다른 집들은 다 집이 잘 빠져서 이사를 가는데 왜 우리 집만 안 빼주시나지금 얼마나 할 일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은데지금 다음 달이 결혼인데 왜 그걸 안해주실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을 수가 있을까요있습니다.

 

우선 계속해서 13절부터 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무죄함 속에서 씻은 것이 참으로 헛되니

14 내가 종일토록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계를 당하였도다.

15 내가 만일 이르기를내가 이렇게 말하리라하면보소서내가 주의 자녀들의 세대를 향하여 죄를 지으리이다.

 

제 생각에는 왕궁에서 임명한 찬양 대장이라면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았을 것 같은데 무슨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나하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데요어떻게 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말 솔직하고 또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진짜 인생 헛살았다매순간 주님만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고 하는게 다 무슨 소용이야?저기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다 잘나가는데나는 무슨 아침마다 종일토록 고생이고... 차라리 나도 죄짓고 즐길거 다 즐기고 사는게 낫겠네.”

 

이제 아삽이 아주 그냥 갈 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우리도 때로 억울한 일을 당하고부당한 일을 당할 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사악한 자들이 잘되고 번영하는 것을 볼 때 우리의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합니다믿음을 저버리고 내 방식대로 살고자 하는 충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렇게 우리 마음대로 살고자 할지라도 이내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고 공허하고 어둡고 답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지고 만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 외에 다른 세상의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만족시켜줄 수가 없습니다.

 

다함께 시편을 손가락으로 끼시고예레미야 애가 3장 22절과 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의 긍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지 아니하였나니 그분의 불쌍히 여기심은 끝이 없도다.

23 그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신실하심은 크시나이다.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며 부러워했던 아삽에게는 하루하루가 재앙과 같았고 아침마다 징계를 당하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던 예레미야에게는 하루하루가 주의 긍휼과 불쌍히 여기심이며 아침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소멸되지 않고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긍휼이며 불쌍히 여기심입니다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신실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인 것입니다이렇게 아삽이 분을 내며 차라리 죄를 맘대로 지으며 사는 것이 낫겠다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아삽을 불쌍히 여기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불쌍히 여기시고얼마나 긍휼로 대하셨습니까자기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내어주시기까지 그렇게 하셨습니다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해 주셨기에 우리가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긍휼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의 종말

다시 시편 73편으로 돌아오셔서 16절부터 20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6 내가 이것을 알려고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너무 심한 아픔이 되었는데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분명히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그들을 던지사 파멸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19 그들이 어찌 그리 순식간에 황폐하게 되었나이까그들이 두려움으로 완전히 소멸되었나이다.

20 오 사람이 깬 뒤에 꿈을 멸시하는 것같이 주께서 깨시면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아삽은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 마음에 큰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세상 사람들을 보면서 나와 비교하자니 나의 삶이 너무나 비참한 것 같고그렇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믿음을 저버리자니 그것도 마음이 힘들고양쪽에 끼어서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마음의 큰 답답함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다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비로소 자신이 부러워했던 사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의 종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끝나는 순간 그들은 성경에 경고되어있던 그대로 심판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혹시 지난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분 계십니까저는 어쩌다가 꿈속에서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 엄마가 깨워서 못 먹은 적이 있습니다또 한 번은 제가 꿈에서 카레이서가 되어서 경주를 시작하고 있는데계속 시작만하고 차가 출발을 안하는 겁니다그때 깨고 보니 울렸던 알람시계가 자동차 모양으로 계속 경주 시작하는 소리만 나는 알람이었습니다아무튼 꿈은 그냥 깨면 사라져 버립니다.

지금 아삽은 사악한 자들의 번영이 바로 그렇게 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번영과 재물과 형통함이 마치 허상과 같아서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삽의 돌이킴

이제 21절부터 2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1 이와 같이 내 마음이 괴로우며 내가 내 속 중심에서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어리석고 무지하므로 주 앞에 짐승 같았사오나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권고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받아주시리니

 

아삽은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면서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이 세상에서 형통하고 재물을 불리는 것을 보면서 믿음이 실족할 뻔하였습니다아삽은 그들을 부러워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다시 주님을 찬양하고기도하며하나님의 말씀을 듣고형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때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먼저 그는 꿈처럼 사라져버릴 이 세상의 헛된 영광과 재물을 갈망했던 자신의 마음에 대해 괴로움과 찔림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아삽은 자기 자신을 어리석고 무지한 짐승과 같았다고 고백하고 있는데이것은 짐승들이 먼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특별히 양 같은 경우는 풀을 먹을 때 뿌리까지 다 씹어 먹는다고 합니다뿌리를 남겨둬야 그 윗부분이 다시 자라서 다음번에 올 때 또 다시 풀을 먹을 수가 있는데이 어리석고 무지한 양들은 현재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뿌리까지 다 먹어치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현재의 고난을 주고 계시는데어리석은 우리는 현재의 안락한 삶과 행복과 재물과 영광을 위해 시간을 다 허비하여영원한 영광을 거두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던 아삽은 24절에 나온 것처럼 주님께서 현재 자신을 주의 권고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하나님께서 마치 사악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번영하도록 인도하시고자신은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시는 것처럼 생각했었는데알고 보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주의 권고로 인도하고 계셨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우리도 때로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가정말 내 기도를 듣고 계신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불같은 시련을 통과할 때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주의하여 보고 계심을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토기장이가 질그릇을 만드는 과정 중에 가장 질그릇에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바로 질그릇을 불에 구울 때라고 합니다가장 정확한 시간에 불 가운데서 꺼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 보고 있다고 합니다오늘 우리의 고난은 우리를 작품으로 만드시고자 하는 토기장이의 부드러운 손길임을 이해해야 합니다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좋은 것을 주시며언제나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기 원합니다.

 

또한 24절 뒷부분에서는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받아주시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바로 이 영광이 우리가 도착하게 될 종착점입니다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참된 안식과 영광입니다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번영과 성공은 잠시 잠깐 뿐이지만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비록 현재는 고난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결국 우리가 가게 될 종착점은 안식과 영광인 것을 기억하고 힘을 내기 원합니다우리가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할 때하나님은 불공평한 것 같고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하시는 것 같지만우리가 영원을 생각할 때 오늘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영원한 그림을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처럼우리도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오늘의 고난 속에서 용기를 내고 힘을 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가 사모할 자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의 말씀, 25절과 26절에 이르렀습니다.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내 마음이 쇠약하오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영원토록 내 몫이니이다.

 

만약 아삽이 항상 번영하고 형통하고 성공했다면 이런 고백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만약 아삽의 마음에 너무 심한 아픔이나 괴로움이나 찔림이 없었다면 이런 고백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아마도 아삽은 이 세상에 사모할 만한 수많은 것들을 움켜쥐고 있었을 것입니다처음에는 아삽도 세상의 재물과 번영을 사모했을 것입니다세상에서의 성공과 형통함을 갈망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그는 주 외에 사모할 자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삽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셔서 아삽으로 하여금 오직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주님만 사모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비록 육체와 마음이 쇠약할지라도 하나님을 마음의 힘으로 삼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고세상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 자신을 영원한 자신의 몫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도 이러한 고백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주님만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우리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가 있습니다오늘 주님만이 우리를 만족시키실 수가 있습니다사람들의 찬사와 인정이나 성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오늘 아삽이 시편을 통해 고백한 간증과 같이 우리도 오직 주님만 사모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73편의 마지막 구절을 한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내게 좋사오니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밝히 보이리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오직 주님만을 신뢰하기 원합니다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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