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0.13.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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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0
내가 없어질 때 세우신다(삼상 10:17-2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0장 17-21절입니다.
17 사무엘이 백성을 불러 미스바로 주께로 함께 오게 하고
18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고 너희를 이집트 사람들의 손과 모든 왕국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던 자들의 손에서 건져 내었느니라, 하시거니와
19 이 날 너희는 너희의 모든 곤경과 환난으로부터 너희를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 하나님을 버리고 그분께 이르기를, 아니니이다. 오직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우소서, 하였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 지파들대로 수천 명씩 너희 자신을 주 앞에 보이라, 하고
20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베냐민 지파가 뽑혔고
21 또 그가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으며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들이 그를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내가 없어질 때 세우신다”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전반적 설명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인생이란,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부르심을 받고, 세우심을 받고, 사용받기를 원합니다. 설교의 황태자라 불리는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권세를 준다할지라도,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설교자의 일과 결코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의 가치는 어떠한 직업, 어떠한 겉모습을 가지느냐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사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을, 사람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쓰시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없어질 때 세우신다”라는 영적 진리에 대해 살펴보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왕을 요구하는 이스라엘에게 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기름을 붓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잃어버린 나귀들을 찾다가 우연히 사무엘을 만나게 된 것 같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사무엘과 사울이 개인적으로 만나게 하셨고, 그 이후에 공식적으로 사울을 이스라엘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또 한 번의 검증 과정을 통해, 사울을 다만 공식적이고 일방적으로 통보된 왕이 아닌, 정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에서부터 지지할 수 있는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사울이 세워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사람을 세우시고 쓰시는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 함께 사울이 걸어간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사울의 첫 번째 반응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9장 20-21절을 보시겠습니다.
20 사흘 전에 잃은 네 나귀들에 관하여는 네 생각을 그것들에 두지 말라. 그것들을 찾았느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이 누구에게 있느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에게 있지 아니하냐? 하니
21 사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가장 작은 지파 출신으로 베냐민 족속이 아니니이까? 또한 내 가족은 베냐민 지파의 온 가족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니이까? 그런데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하니라.
사무엘은 사울을 처음 만나자마자 20절과 같은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이 누구에게 있느냐? 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에게 있지 아니하냐?” 사무엘은 여기서 왕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이 너에게 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사울의 반응은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키시려고 하는지, 나에게 어떤 직위나 임무를 주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의 집안은 실제로 능력 있고 강력한 집안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자신의 베냐민 지파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고, 또 자신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중에서 가장 작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비교 평가가 아니었고, 하나님 앞에서의 주관적인 평가였습니다. 사울은 여기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삼촌 앞에서 잠잠함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0장 14-16절을 보시겠습니다.
14 사울의 삼촌이 그와 그의 종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디로 갔었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귀들을 찾다가 그것들이 아무 데도 없음을 우리가 보고 사무엘에게 갔었나이다, 하매
15 사울의 삼촌이 이르되, 원하노니 사무엘이 너희에게 이른 것을 내게 고하라, 하매
16 사울이 자기 삼촌에게 이르되, 그가 나귀들을 찾았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하더이다, 하고 사무엘이 말한 왕국의 일은 그에게 고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사울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자랑스러운 일을 경험하면 누가 묻기도 전에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에 대해서 자랑하기 바쁘고, 어린 자녀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 했는지 자랑하기 바쁩니다. 우리는 어떤 말 표현 한 가지를 잘하더라도, 심지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까지,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은근히 내비치거나, 또는 반복적으로 말해서 자랑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때로 간증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한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원하고, 나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정받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하고, 칭찬받기를 원하고,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울은 삼촌에게 질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이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것에 대하여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주의 영이 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신비한 영적 체험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주님이 주신 새로운 마음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서 잠잠하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자이며, 자격이 없는 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건들 사이에 숨음
이제 우리 함께 21-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1 또 그가 베냐민 지파를 그들의 가족대로 가까이 오게 하였더니 마드리의 가족이 뽑혔으며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혔으나 그들이 그를 찾아도 발견하지 못하니라.
22 그러므로 그 사람이 거기에 왔는지 그들이 또 주께 여쭈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보라, 그가 물건들 사이에 숨었느니라, 하시니라.
이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아서, 왕을 뽑는 절차를 진행하였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 중에서 베냐민 지파를 뽑혔고, 베냐민 지파의 모든 가문들 가운데, 마드리의 가문이 뽑혔습니다. 마드리의 가문 중에서는 기스의 가족이 뽑혔고, 결국 사울이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사울이 어디 있는지 물었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물건들 사이에 숨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사울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은 숨바꼭질을 하려고 숨은 것도 아니고, 장난을 치려고 숨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가 아무런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진심으로 왕이 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고, 힘도 없고, 지혜도 없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의 진심이었던 것입니다.
험담하는 말에 잠잠함
이제 우리 함께 23-24절을 보시겠습니다.
23 그들이 달려가 거기서 그를 데려오매 그가 백성 가운데 서니 그는 백성 중에 어떤 사람보다 자기 어깨로부터 위만큼 키가 더 크더라.
24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주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온 백성 가운데 그와 같은 자가 없느니라, 하니 온 백성이 외치며 이르되, 국왕 폐하 만세, 하니라.
사울은 사람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나오다시피 백성들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백성에게 바로 이 사람이 주께서 택하신 사람이라고 공식선언하였고, 백성들은 환호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6-27절을 보시겠습니다.
26 사울도 기브아에 있던 집으로 갔으며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의 무리가 그와 함께 갔더라.
27 그러나 벨리알의 자손들은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그를 멸시하며 그에게 예물을 가져오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이제 왕을 공식적으로 세우고 선언하는 모든 절차를 마치고, 백성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사울도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신 사람들의 무리가 사울에게 헌신하여, 그를 따르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니까, 이스라엘의 백성 전원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었고, 몇몇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사울을 멸시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이렇게 헐뜯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무런 흠도 죄도 없는 완전한 삶을 사셨지만, 이 땅에 계실 때, 바리새인들, 서기관들, 율법박사들, 헤롯 당원들, 산헤드린 공회원들,그리고 사두개인들로부터 끊임없는 험담을 당하셨습니다. 완전하신 예수님도 험담을 당하셨는데, 흠이 많고 문제가 많은 우리들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의 반응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울은 잠잠하였습니다. 그는 멸시를 당하고, 조롱을 당하였지만, 잠잠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너무나 모욕스럽고 화가 나는데 겨우 꾹 참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사울은 아마도 이 대적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였을 것입니다. “아멘. 내가 무슨 능력으로 감히 이 백성을 구원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우셨으니 하나님께서 해주시면 제가 따라가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사울은 잠잠히 그 모든 말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모세도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을 받을 때 잠잠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다니엘도 자신을 대적하는 칙령이 재정되었을 때, 그것에 대해 따지지 않고, 다만 잠잠히 그 모든 일들을 받아들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잠하다는 것은 털 깎는 자 앞의 어린양과 같은 것이고, 예수님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표시 중 하나는 잠잠한 것인데,특별히 자신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판단이 이루어지고, 비방하는 말들이 들려올 때, 잠잠한 것입니다.
사울은 지금 사무엘 앞에서 내가 무슨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후로, 잠잠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삼촌 앞에서도, 백성들 앞에서도,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도 그는 잠잠하였습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힘으로 참은 것이 아니라, 정말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겸손한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잠잠함이었습니다.
왕권의 검증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1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1 그때에 암몬 족속 나하스가 올라와서 야베스길르앗을 마주보고 진을 치매 야베스의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을 맺으라.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2 암몬 족속 나하스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내가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내어 온 이스라엘 위에 그것을 수치거리로 두리라는 조건 하에서 너희와 언약을 맺으리라, 하거늘
3 야베스의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의 유예 기간을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사자들을 보내게 하라.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없으면 우리가 네게로 나아가리라, 하니라.
이제 사울이 막 왕으로 선포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바로 사울이 정말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라는 것을 검증하기 위하여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 모든 일들에는 우연이 없고, 모두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이기 위해 일어났던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갑자기 암몬 족속 나하스가 야베스길르앗를 공격하러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항복을 하고, 우리가 너희를 섬기겠다고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나하스는 단순히 항복을 받아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모든 야베스길르앗 거주민의 오른쪽 눈을 다 빼내어 가져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베스의 장로들은 일주일의 유예 기간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 함께 4-7절을 보시겠습니다.
4 이에 사자들이 사울의 기브아에 이르러 그 소식을 백성의 귀에 고하매 온 백성이 소리 높여 울더라.
5 보라,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따라 오다가 말하되, 무엇이 백성을 괴롭게 하기에 그들이 우느냐? 하매 그들이 야베스 사람들의 소식을 그에게 고하니라.
6 사울이 그 소식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크게 분노하여
7 한 겨리의 소들을 취해 그것들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고 사자들의 손으로 그것들을 이스라엘 온 지역에 두루 보내며 이르되, 누구든지 나아와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되리라, 하였더니 주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마음으로 나오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로 하여금 이 소식을 듣게 하셨고, 그 마음에 큰 부담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음에 주신 부담에 따라,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언제 물건들 사이에 숨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언제 대적하는 자들 앞에서 말도 한마디 못하고 잠잠하였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담대하게 행하였습니다. 자신의 소들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 이스라엘 온 지역으로 보내어, 나와 사무엘을 따르지 않으면, 그의 소들도 이렇게 만들겠다고 권위 있게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의 두려움이 온 백성에게 임하여 그들이 한마음으로 사울에게로 집결되었습니다. 우리는 8절 말씀에서 그 수가 30만 명이나 되는 것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11-13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이처럼 다음 날 사울이 백성을 세 무리로 나누었더니 그들이 새벽 경점에 그 군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날이 뜨거울 때까지 암몬 족속을 치매 남은 자들이 흩어져서 그들 중 두 사람이 함께 남지 아니하였더라.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우리를 통치하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 사람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그들을 죽이겠나이다, 하매
13 사울이 이르되,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하니라.
우리는 11절에서 사울이 암몬 족속을 향해서 매우 큰 승리를 거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12절에서 사울의 열심당원들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을 멸시하여 함부로 말한 사람들을 끌어내어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도, 사울을 멸시했던 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사울과 전쟁을 하여 승리를 거두기 전에는 공개적으로 말만 안했지, 사울에 대하여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사울에 대하여 멸시한 사람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온 백성 앞에 사울이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만한, 이스라엘의 왕으로 권위 있게 세워지고 나자 열심을 가지고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무엇인가 정의롭게 말하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비겁하고 거짓된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사울의 반응입니다.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와서 소란스럽게 말하고 있었을 터인데, 사울이 와서 한마디 하면서 모든 백성을 잠재운 것입니다.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안에서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라.”
여기서 사울은 전쟁 승리의 영광을 주님께 온전히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이 말속에서 우리는 사울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주께서 오늘 이스라엘 안에 구원을 주셨으니, 아무도 죽일 수 없다. 라고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없어질 때 세우신다
우리는 오늘 사울이 처음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삼촌 앞에서, 공식적으로 백성들 앞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첫 번째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 후까지, 사울의 반응과 말들을 통하여,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바로 겸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없었습니다. 자기를 변호하는 것도 없었고, 자기를 방어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잘생긴 나도 없고, 키가 큰 나도 없고, 강력한 집안의 나도 없고, 사울에게는 자기가 없었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사울이 뽑혔을 때에도 그는 없었고,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도 그의 말속에는 주님만 있었지, 자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언제 세우실까요? 언제 부르시고, 언제 사용하실까요? 사울과 같이 자기가 없을 때, 바로 그 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녹아 없어져야하고, 한 알의 밀이 열매를 맺으려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합니다. 향유의 향기가 퍼져나가려면 옥합이 깨뜨려져야하고, 기드온의 횃불이 찬란하게 빛나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깨져야 하는 것입니다.소년의 오병이어가 5천명의 영혼들에게 공급되려면 주님의 손에서 부서져야하고, 대장장이의 손에 들린 철기가 유용한 도구가 되려면 용광로와 망치질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세우는 자, 자기를 보존하는 자, 자기를 내세우는 자, 자기를 높이는 자, 자기를 주장하는 자, 자기를 사랑하는 자, 자기를 신뢰하는 자... 자기가 남아 있는 자는 하나님께서 결코 사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지혜나 능력이나 재능을 필요로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없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 남아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내가 실력이 부족해서 주님은 나를 사용하실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잘못되고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내가 이 정도 능력이 되니까 주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생각 또한 교만하고 속임 당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어부 베드로를 부르시고, 자기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다는 남자로서의 의리와 충성심이라는 자기 확신마저 산산조각 부수신 다음부터 베드로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젊음이 없어진 아브라함, 자기 확신이 없어진 모세, 자기 강함을 잃어버린 바울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없어질 때 세우십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 내게 베푸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그들 모두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바울은 자신이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섬기고 수고한 그 원동력이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의 결심과 노력과 의지로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기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그리고 역사 가운데 사람들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사용하신 기준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만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바로 그 상태가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시는 상태인 것입니다.
나의 자존심, 나의 기준, 나의 고정관념, 나의 생각, 나의 야망, 나의 욕심, 나의 계획, 나의 뜻, 나의 생각, 나의 의견, 나의 선호도, 나의 정당성, 나의 억울함, 나의 상황, 나의 옳고 그름, 나의 경험, 나의 방식, 나의 노력, 나의 결심, 나의 시도,나의 한계, 나의 모든 것, 나의 자녀, 나의 인생, 나의 생명...
내가 없고, 오직 주님만 우리 마음에 충만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제한없이 사용하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지혜와 결단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도무지 신뢰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는 사람, 나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있는 사람을 찾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 앞에 그러한 사람을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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