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5.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0

가짜 사랑의 결과(삼하 13: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3장입니다사무엘기하 13장 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 일 뒤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그녀가 처녀이므로 자기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함이 어려운 줄로 생각하고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심히 괴로워서 병이 드니라.

저는 오늘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거짓된 사랑의 시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면서도 그 의미가 왜곡된 한 단어가 있다면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오늘날 많은 영화드라마만화애니메이션게임유행가그리고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자주 접할 수가 있습니다심지어 우리는 얼굴도 한 번 본적이 없는 전화 상담원에게 전화를 받으면서 사랑합니다고객님하고 사랑을 고백 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육식을 해서도 안 되고가죽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범죄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형제도가 없어져야 하고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매를 가리켜 반드시 사라져야 할 폭력이라 말합니다간음과 불륜을 다루는 저질스러운 드라마들은더러운 죄악을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려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고어린 세대의 가치관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 사랑인지또 사랑이 아닌지 알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마태복음 24장 10-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 서로 배반하여 넘겨주며 서로 미워하고

11 많은 거짓 대언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이며

12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서로 배반하며서로 미워하고많은 거짓 대언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이며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늘날 세상은 사랑을 외치면서카톨릭과 불교와 이슬람과 기독교가 다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민족과 인종과 종교와 이성과 동성의 모든 벽을 허물고 다 하나 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세상은 점점 더 사랑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예수님께서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배반하며미워하고속이며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묘사하면서그 첫 번째 특징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러한 특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되쾌락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자들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을 통하여 한 가지 큰 계명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데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혼을 다하고힘을 다하고생각을 다하여우리의 생명과 온 존재를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점과 실행은 모두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우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진리대로 참된 사랑을 해야 합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동행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기하 13장 말씀에서 우리는 사랑인 것 같지만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랑을 보게 됩니다저는 그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가짜 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오늘 우리는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설교의 제목과 같이육신으로부터 나오는 나름대로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면서주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사랑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 암논의 사랑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3장을 통해서 네 사람의 가짜 사랑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첫 번째는 자신의 아름다운 누이를 사랑했던 암논의 사랑입니다두 번째는 사랑으로 병이 든 암논을 사랑했던 친구인 요나답의 사랑입니다그리고 세 번째는 비참한 일을 당했던 다말의 오빠 압살롬의 사랑입니다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이러한 자녀들의 분쟁을 지켜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다윗의 사랑입니다이들의 사랑은 사건의 현장에서그 순간만큼은 스스로 느끼기에 진실한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하나님의 관점에서진리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는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는 가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함께 1,2절 말씀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제가 1,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일 뒤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그녀가 처녀이므로 자기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함이 어려운 줄로 생각하고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심히 괴로워서 병이 드니라.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의 아들 암논은 모든 아들들 중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그는 아무 일이 없다면 장차 왕위를 이어받게 될 왕자 중의 첫째였습니다그런데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이자아름다운 누이인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 누이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당시 처녀였던 다말에게는 삼엄한 경비와 보호가 따라다녔기 때문에암논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므로 암논은 사랑으로 인해서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암논과 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사모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우리 함께 잠언 31장 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호의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를 두려워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호의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씀하십니다우리는 헛된 것을 사랑하지 말고참된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칭찬하시며사랑하시는 것은헛된 아름다움이 아니라참된 믿음이며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오늘 우리가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우리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사랑하는가짜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전적으로 육신의 정욕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외모 지상주의 사상으로 세상을 이끄는 사탄의 거대한 흐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올바른 관점으로 서기를 원합니다특별히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결혼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오직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관점으로 무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는 아름다운 것이 헛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 학생들이 키 크고 멋지고아름답고 예쁜 외모를 추구하는 가짜 사랑이 아니라주를 두려워하는 믿음의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요나답의 사랑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3장으로 돌아오셔서 3-5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심히 간교한 자더라.

그가 그에게 이르되왕의 아들인 네가 어찌하여 날마다 여위어 가느냐너는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하니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내가 내 동생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하노라하매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너는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그에게 말하기를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음식을 주게 하고 내 눈앞에서 음식을 차리게 하여 내가 그것을 보며 그녀의 손에서 먹게 하옵소서하라하니라.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었습니다그는 암논의 사촌이었으며또한 친구였습니다요나답은 암논의 친구로서 그가 병이 든 것을 보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며암논을 위한 아주 그럴싸한 계획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요나답은 당장 그 상황에서는 암논을 위하는 것 같았고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요나답이 암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했더라면그를 위한 기발한 범죄 계획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을 말했을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고린도전서 13장 6절에서는 사랑이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나답이 진실로 암논이 잘 되기를 바랬더라면과감하게 다말은 너의 누이이니 깨끗하게 마음을 정리하라고 책망을 하였든지아니면 그래도 배다른 누이이니 차라리 왕께 한번 말씀드려보고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방법을 찾아보라고 조언해주었을 것입니다.

 

친구가 주는 상처는 믿음직하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임수가 가득하니라.

바로 이 잠언 27장 6절 말씀처럼요나답이 진정한 친구였다면 당장 상처를 줄지라도 진리를 말해주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친구가 아니었고 원수였습니다그는 믿음직한 상처를 주며진정으로 친구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단지 달콤한 입맞춤으로 비위를 맞추는 원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원하는 형제자매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친구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나의 계획을 듣고무조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까아니면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보인다고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까물론 우리가 일부러 상처를 주고받을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상처를 안주고 안 받는 것이 모든 교제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대언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서직접적으로 왕이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책망하지 않았다면다윗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왕께서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말했더라면그는 대언자가 아니라 사기꾼이 되었을 것입니다저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칭찬만 해주고 싶고격려만 해주고 싶고늘 함께 웃고 싶기만 하지만때로는 큰 소리도 내고잔소리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그때마다 저 자신을 부인하고십자가를 지지 않으면듣기 싫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그러나 우리가 형제자매를친구들을자녀들을또 부모님을 사랑한다면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밉고 못마땅해서 상처를 주고 속 시원하게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다만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 암논의 범죄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3장 6-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암논이 누워서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왕께 이르되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 눈앞에서 납작한 빵 두 개를 만들게 하사 내가 그녀의 손에서 먹게 하옵소서하니

그때에 다윗이 사람을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이제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하므로

이에 다말이 자기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워 있더라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의 눈앞에서 납작한 빵을 만들어 그 빵을 굽고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았으나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며 이르되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하니 그들이 각각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은 요나답이 일러준 계획대로거짓으로 병든 체하였습니다그리고 아버지 다윗이 병문안을 왔을 때에그의 누이 다말로 하여금 직접 빵을 구워주게 해주시면병이 나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의 요청을 그대로 이행하였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0-14절을 보시겠습니다.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음식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납작한 빵을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자기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그것을 먹이려고 가지고 갈 때에 그가 그녀를 붙잡고 그녀에게 이르되내 누이야와서 나와 함께 눕자하매

12 그녀가 응답하되아니니이다내 오라버니여나를 강제로 욕보이지 마소서이스라엘 안에서 이런 일을 해서는 아니 되오니 오라버니는 이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마소서.

13 나 곧 내가 내 수치를 어디로 가게 하겠나이까오라버니로 말하건대 오라버니는 이스라엘 안에서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하나같이 되리이다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왕께 말하소서그분께서 나를 오라버니에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이다하되

14 그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그녀를 강제로 욕보여 그녀와 함께 누우니라.

이것이 암논의 사랑이었습니다암논은 다말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다말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고위하지도 않았습니다여기서 암논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며바로 육신의 정욕이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다말이야말로 암논을 참되게 위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는 오라버니를 위해서 과자를 구웠고또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안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차라리 왕께 말씀드려서 정식 혼인 절차를 밟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왕께서 허락하신다면자기 자신도 기꺼이 오라버니와 혼인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암논의 사랑은 육신의 정욕이었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오늘날 우리는 많은 부모님들이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자녀들에게 많은 것들을 강제로 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그것이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부모님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인 것을 보게 됩니다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을 자녀에게 시키면서 대리 만족을 얻는 부모님도 있으며자녀의 원함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원함을 강요하는 부모님도 있습니다.이것은 사랑이 아니고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그것이 진리를 정면으로 대적하고주님을 떠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면자녀들은 부모님의 뜻이 육신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먼저 순종하기를 배워야 합니다혹시 이 말씀을 듣는 우리 학생들 가운데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과연 육신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없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주신 뜻은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그리하면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암논의 미움

이제 우리 함께 15-17절을 보시겠습니다.

15 그리하고는 암논이 그녀를 심히 미워하였으니 이처럼 그가 그녀를 미워한 그 미움이 전에 그가 그녀를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 더 컸더라암논이 그녀에게 이르되일어나 가라하매

1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이유가 없나이다나를 쫓아 보내는 이 악은 아까 내게 행한 다른 악보다 더 크나이다하되 그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17 그때에 자기를 섬기던 종을 불러 이르되이제 이 여자를 내게서 내보내고 그녀를 보낸 뒤에 문을 빗장으로 잠그라하니라.

암논은 다말을 처음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 큰 미움으로 미워했습니다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돌변할 수가 있을까요이것이 바로 육신의 사랑이며가짜 사랑인 것입니다한순간에 사랑했다가 미워지는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랑이 육신의 사랑입니다엄밀히 말해서암논은 다말을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그는 다만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따랐을 뿐이었습니다암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전혀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고다말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다만 다말을 쫓아내었습니다.

 

 

** 압살롬의 사랑

이제 우리 함께 20-22절을 보시겠습니다.

20 그녀의 오라비 압살롬이 그녀에게 이르되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그러나 내 누이야그는 네 오라비니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하매 이에 다말이 자기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그러나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자기 형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였으므로 압살롬이 암논을 미워하여 좋다 나쁘다 그에게 말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압살롬을 볼 수가 있습니다압살롬은 자신의 누이 다말을 사랑했고자신의 형 암논을 미워하였습니다반면에 다윗은 자기 딸인 다말도 사랑했고자기 아들인 암논도 사랑했습니다그런데 21절 말씀을 보니,다윗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뒤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한 면에서는 암논이 저지른 일이 바로 자신이 밧세바를 범한 죄와 비슷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만약 그가 암논을 불러 책망한다면암논이 아버지도 그랬잖습니까라고 반문할 때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단지 분노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암논을 합당히 징계했어야 할 것이고또 차라리 다말과 정식으로 혼인하도록 이끌었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단지 분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다윗이 암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온 진리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다만 육신적인 아버지로서 가지는 육신의 사랑이었습니다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주 비참하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압살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그는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그러나 여기서 압살롬은 다말을 참되게 위하고 있지 않습니다그는 다만그는 너의 오라비니 잠잠히 있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이것은 다말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다말은 처량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무엘기하를 더 살펴보면 나올 것이지만압살롬은 왕권에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다윗의 첫째 아들이었던 암논은 거의 확정적인 후계자였기 때문에압살롬으로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 1호였을 것입니다압살롬이 정말 다말을 위했더라면차라리 정식으로 암논과 혼인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압살롬은 다만 암논을 제거하여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복수뿐만 아니라자신의 야망을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 압살롬의 복수

이제 우리 함께 23-27절을 보시겠습니다.

23 만 이 년 뒤에 에브라임 옆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으니라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이제 보소서주의 종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았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주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하매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아니라내 아들아이제 우리가 다 갈 필요가 없나니 네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노라하니라그가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에게 복을 빌므로

26 이에 압살롬이 이르되그리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원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하매 왕이 그에게 이르되그가 너와 함께 갈 이유가 무엇이냐하되

27 압살롬이 간청하므로 그가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가게 하니라.

만 이 년이 지난 뒤에 압살롬의 복수의 날이 이르렀습니다그는 양털을 깎는 잔칫날에 먼저 아버지 다윗을 초대하였습니다그러나 다윗은 왕과 신하들이 다 가게 되면 잔치에 부담이 될 것을 걱정하여 다만 복을 빌어주었습니다그 모든 상황을 예상했던 압살롬은 장자인 암논을 대신해서 보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8-29절을 보시겠습니다.

28 이제 압살롬이 이미 자기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이제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포도주로 인해 즐거워할 때를 잘 보았다가 내가 너희에게암논을 치라하거든 그를 죽이라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용기를 내고 용맹스럽게 행하라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이 명령한 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서 각각 자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압살롬은 2년 동안 계획했던 복수를 집행하였습니다드디어 누이 다말의 원수이며또 자신의 미래의 왕권을 가로막았던 암논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입니다이 일이 과연 다말을 위한 것인지다말이 과연 암논의 죽음을 통해 마음에 위로를 얻고기쁨을 얻었을 것인지 알 수 없으나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계자인 암논의 죽음을 통해압살롬은 자신의 야망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비극이 다윗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처음에 다말을 암논의 집에 보낸 것도 다윗이었으며이번에 암논을 압살롬의 양털 깎는 잔치에 보낸 것도 다윗이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의도한 일이 아니었지만하나님께서 다윗의 간음과 살인으로 인하여 허락하신 일종의 형벌이며 심판이었습니다.

 

 

** 요나답의 증언

이제 우리 함께 32-33절을 보시겠습니다.

32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응답하여 이르되내 주께서는 그들이 그 청년들 곧 왕의 아들들을 다 죽인 것으로 생각하지 마옵소서오직 암논만 죽었나이다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의 작정에 의해 이 일이 결정되었나이다.

33 그러하온즉 이제 내 주 왕께서는 그 일을 마음에 두지 마옵시고 왕의 모든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오직 암논만 죽었나이다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암논의 친구였으며그에게 어떻게 하면 완벽범죄를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했던 자였습니다그런데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그는 암논으로 인하여 애곡하고 있지 않습니다자신의 친구가 죽은 것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지도 않습니다다만 왕 앞에서 그가 왜 죽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부터 요나답은 암논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사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는 다윗을 위로한답시고모든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암논만 죽었으니 안심하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압살롬의 도주와 다윗의 반응

이제 우리 함께 37-39절을 보시겠습니다.

37 그러나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암미훗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자기 아들로 인해 애곡하니라.

38 이같이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서 삼 년 동안 거하니라.

39 다윗 왕의 혼이 압살롬에게로 나가기를 열망하였으니 이는 암논이 이미 죽었으므로 그에 관하여 왕이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더라.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외할아버지의 땅으로 도망을 갔고삼 년 동안을 머물렀습니다그리고 사무엘기하 13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윗이 어느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다시 보기를 열망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속임수와 살인에 대하여 징계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하나님의 관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다만 아버지로서의 육신의 천연적인 사랑만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3장의 긴 구절들을 통해서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암논은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요나답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압살롬은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이 모든 마음이 각각 애절하고간절하고선하고좋았을지 모릅니다그러나 그 모든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고육신으로부터 나오게 되었을 때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육신으로부터 나와서는 안 됩니다우리의 사랑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만 흘러나오는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논의 사랑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사모하면서육신의 정욕에서부터 나온 가짜 사랑이었습니다요나답의 사랑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 달콤한 속임수였습니다압살롬의 사랑은 자신의 야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다윗의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단지 분노하거나 애곡하면서 바라만 보게 만드는 무능하고 쓸모없고 능력 없는 장식품과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이 참되고권능이 있으며진리의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우리는 오직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야만 합니다가짜 사랑의 결과는 비참하고 참혹할 뿐입니다우리가 오늘 나의 형제자매나의 남편나의 아내나의 자녀나의 부모님을 육신으로부터 사랑하고 있다면그것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해치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고자 하는 사랑은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성령님의 열매로서의 사랑입니다.우리의 사랑이 오직 진리의 기준대로성경대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또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0.26.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9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삼하 12:13,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2장입니다사무엘기하 12장 13,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저는 오늘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의 주인공인 다윗의 이름은 사랑받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그가 왜 그의 이름처럼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되었는지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합당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먼저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였고간음과 살인이라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나단을 보내셔서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오늘 말씀을 함께 보신 것처럼말씀에 대한 첫마디 반응으로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다윗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또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고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오늘 말씀을 통해서우리가 주님 앞에 범죄하고넘어지고실패한 이후에 어떻게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며주님과의 동행의 삶을 회복하여 걸어가게 되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 나단의 책망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2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한 도시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였나이다.

그 부유한 자는 양 떼와 소 떼가 심히 많았으나

그 가난한 자에게는 자기가 사서 기른 작은 어린 암양 한 마리 외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 어린 암양은 그와 그의 자녀들과 함께 있어 같이 자라고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에서 마시고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마치 딸과 같았나이다.

그런데 어떤 나그네가 그 부자에게 오매 그가 자기 양 떼와 소 떼를 아껴 자기에게 온 여행자를 위해 거기서 잡아 차리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어린양을 빼앗아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해 차렸나이다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대언자인 나단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목적은어떤 좋은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다윗 왕의 죄를 책망하고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그가 이 순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과거에 다윗 왕이 어떤 사람이었든지최근의 다윗 왕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하여충성스러운 신하를 죽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대언자 나단 역시 여차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습니다어쩌면 대언자 나단은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그는 오히려 주님의 지혜를 의지하면서더욱 담대하게그리고 신실하게 준비된 말씀으로 다윗 왕을 찾아왔던 것입니다그는 먼저 일반적인 사건에 대하여 청원을 하는 것처럼다윗 왕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그 이야기는 바로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자기의 손님을 대접한 한 부자의 이야기였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5,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그 사람을 향해 크게 타오르매 그가 나단에게 이르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을지니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어린양을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하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바로 남의 잘못에 대하여 판단하고정죄하고분노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일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 더 심각한 죄가 있더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충성스러운 신하의 목숨을 빼앗고그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도 이렇게 의로운 분노를 일으키면서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부자를 정죄할 수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의로운 왕으로서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의로운 분노를 불태우면서그 부자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사형을 선언하였습니다또한 그 어린양을 네 배로 갚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 함께7-12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왕이 그 사람이니이다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나이다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건져 냈으며

또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주며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네게 주었느니라만일 그것이 너무 조금이었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어찌하여 네가 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그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느냐네가 칼로 헷 족속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으며 암몬 자손의 칼로 그를 죽였느니라.

10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11 가 이같이 말하노라보라내가 네 집에서 너를 대적하는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아내들을 네 눈앞에서 가져다가 네 이웃에게 주리니 이 해가 보는 데서 그가 네 아내들과 함께 누우리라.

12 너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앞에서 해 앞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하매

다윗 왕이 분노하여 말하기가 무섭게대언자 나단은 왕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어쩌면 대언자 나단은 다윗 왕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마음이 찔리고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다윗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더욱더 분명하게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나단은 아마도 성경 안에서청중 한 사람을 놓고대놓고 표적설교를 선포했던유일한 설교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의 다윗처럼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듣고배우고묵상하는 중에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이 말씀은 다른 누가 꼭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정작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다윗도 그러했습니다그러나 담대한 설교자였던 나단은다른 사람이 아니라바로 왕이 그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나단의 메시지 중에는 축복이나 위로의 말이 전혀 없었습니다너무나 맹렬한 책망과 재앙에 대한 경고만이 있었습니다나단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만을 담대히 선언하였습니다이후에 다윗은 이러한 나단 대언자를 얼마나 좋아했든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짓기도 하였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나단의 계보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시게 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셉은 솔로몬의 후손이었고마리아는 나단의 후손으로모두 다윗 왕의 후손이었습니다다윗은 자신에게 표적설교와 같이 날카로운 말씀을 선포한 대언자를 미워하지 않았고,오히려 사랑하며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우리도 우리에게 진리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전해주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대언자 나단과 같은 주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온전하게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두렵고 떨리는 순종이라 할지라도주님의 지혜를 의지하며주저함 없이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헌신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 중에서장차 우리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 가운데서또 초등부또 유치부 학생들 가운데서 이러한 멋진 주님의 말씀 선포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다윗의 돌이킴

이제 우리 함께 13,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맹렬한 책망과 재앙의 말씀을 다 듣고 난 후다윗의 반응은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는 한 마디의 고백이었습니다우리는 매일 매순간 늘 죄를 짓지만책망의 말씀이나 권면을 들을 때주로 이렇게 다윗처럼 반응하지 못합니다우리는그런 뜻이 아니었다든지그렇게까지 한 적은 없다든지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든지상대방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언정내가 주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기는 매우 힘들어 합니다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정당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되기를 원하지만주님 앞에 무릎 꿇고 인정하며 긍휼을 구하고용서받기를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윗도 충분히 나단의 태도나 말투에 꼬투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처음부터 왕이시여왕의 죄에 대한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지무슨 부자의 비유를 들어서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어 놓고왕이 그 사람이라고,기분 나쁘게그런 식으로돌려서 말하느냐고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귀담아 들었고,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진실하고도 겸손하게 인정하며 고백하였습니다과거에 사울 왕은 대언자 사무엘의 말끝마다 변명을 하였습니다죄의 경중으로 따지자면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아서노략물을 취하고아말렉의 왕을 산채로 잡았던 사울 왕의 죄보다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의 죄가 훨씬 더 무거울 것입니다그러나 사울 왕은 끝내 용서받지 못하였고다윗은 용서를 받았습니다그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정 중에 누구든지 넘어질 수 있고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요한일서에서는 심지어,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실패한 이후에주님 앞에서 참되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다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살려줄 것을 구하였습니다백성들이 보고 있으니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나로 하여금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해 달라고 사무엘에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사울 왕에게는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즉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다윗은 주님의 책망이 떨어질 때에주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다윗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그것들을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잠언 28장 13절 말씀처럼다윗은 자신의 죄를 즉시 자백하고 버림으로써주님의 긍휼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래율법에서 간음과 살인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입니다다윗은 죽어야 마땅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사무엘기하 12장 13절을 보면다윗이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고백하였을 때대언자 나단은 주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다윗은 여기서 율법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놀라운 긍휼과 용서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시편 51

우리 함께 시편 51편을 보시겠습니다먼저 1절 위에 있는 설명을 보시면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그가 밧세바에게로 들어간 뒤에 대언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 하나님이여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크신 친절한 긍휼에 따라 내 범법들을 지워 주소서.

내 불법에서 나를 철저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내 범법들을 시인하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다윗은 대언자 나단의 책망을 받았을 때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긍휼을 구하였습니다자신의 범법들을 정직하게 시인하였고용서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10-14절도 보시겠습니다.

10 오 하나님이여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주의 자유로운 영으로 나를 떠받쳐 주소서.

13 그리하시면 내가 범죄자들에게 주의 길들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회심하리이다.

14 오 하나님이여내 구원의 하나님이여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그리하시면 내 혀가 주의 의를 크게 노래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책망하셨던 이유는 그가 돌이키고 회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책망의 목적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도록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다시 일어나 회복하여주님과 동행하도록 이끄는 것에 있습니다다윗은 주님께 책망을 받은 자로서합당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그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였고긍휼을 구하였고용서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주님 앞에 올바른 영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하였고주님과 새롭게 동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과거에 엘리 제사장은 반복된 책망을 받고서도 자신의 길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사울 왕 역시 많은 책망의 말씀을 받았지만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단 한 번의 말씀을 듣고 철저히 돌이키며,주님 앞에 회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우리 함께 16,17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6 주께서는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주께서는 번제 헌물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오 하나님이여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율법에서 자신을 위한 희생물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간음과 살인죄는 소나 양의 피로 덮을 수가 없었고온 백성이 돌로 쳐서 사형을 해야 하는 죄였습니다다윗은 범죄하고 나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이만큼 죄를 지었으니그 대신 이만큼 희생물을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때로 죄를 짓고 나서그 대신 사죄하는 마음으로영적인 일들을 한다든지봉사를 함으로써 그것을 무마해보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육신적인 일 이것저것을 한 대신교회에서 이렇게 섬겼으니 마치 정당한 보상을 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지고 거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윗은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상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받으셨고용서해 주셨으며다시 다윗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 아이의 죽음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12장으로 돌아오셔서 함께 13,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다윗 왕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고그가 죽지 않도록용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그러나 우리가 14절 말씀을 보게 되면다윗 왕이 간음을 통하여 가지게 된 아이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18절 말씀의 앞부분에서 일곱째 날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라고 기록된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첫 번째로 이 아이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그것은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메시아 그리스도의 계보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다윗은 메시아 그리스도의 계보를 약속받은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을 영원히 세우리라고 약속하셨고그의 왕좌가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오심을 끊임없이 방해하고자 하였는데아브라함에게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통해서이삭에게는 야곱을 죽이려 하였던 에서를 통해서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모든 사내아이를 죽게 한 파라오를 통해서 그렇게 방해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헷 족속 우리야의 후손이 아니라정확히 다윗의 후손임을 명확히 밝히시기 위하여간음 중에 태어난 밧세바의 아이를 죽게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죽임을 당한 이 아이는 한 면에서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며또한 무죄함 가운데 죽임을 당하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여기서 죽게 된 이 아이는 다윗의 후손으로서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마땅히 죽었어야 하는 다윗을 대신하여 죽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아이의 죽음은 아기들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아담의 본성인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갓난아기일 때 죽으면 지옥에 가는가천국에 가는가의 문제는 많은 성도들에게 궁금하면서도염려스러운 주제였습니다그가 죄의 본성을 가졌기에 지옥에 가는 것인가아니면 아직 실제로 죄를 짓지 아니하였기에천국에 가는가하는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이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2장 22,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그가 이르되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리요하였기 때문이거니와

23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 내가 금식하리요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하니라.

다윗은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는그가 죽지 않기를 구하면서금식하고 울면서 기도하였지만, 20절에 나타난 것처럼아이가 죽은 뒤에는 오히려 일어나서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주의 집에 들어가 경배하고 돌아와서 빵을 먹었습니다.

23절에서 다윗은 핵심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그가 아이에게 갈 수는 있어도아이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구원을 받은 다윗이 아이에게 갈 수가 있다는 것은아이가 바로 거지 나사로가 갔던 아브라함의 품,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강도에게 말씀하셨던 낙원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서는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무죄상태임을 말씀하십니다아직 양심의 기능이 작용하지 않고선과 악의 개념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그러므로 다윗의 아이는 억울하게 죽어서 지옥으로 간 것이 아니라구원을 받은 다윗이 죽게 된다면그에게로 가서 만날 수 있는 낙원에 가게 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죽은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죽은 가족들이 지옥에서연옥으로 옮겨지고또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사람의 구원의 여부는 살아 있는 때 가졌던믿음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지죽은 자들을 위하여 살아 있는 가족들이 기도하는 것으로 변경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다윗도 아이가 죽기 전까지 기도하였지죽은 아이를 위하여서는 기도하지 않았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 형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시고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여 주셨으며다시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다윗이 육신으로 걸었던 길에 대하여서는 감당해야 할 형벌이 있었고거두어야 할 열매가 있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인도하심을 거슬러 육신 안에서진로를 선택하거나사업을 벌이거나결혼을 하거나어떤 문제들을 발생시켰을 때우리가 주님께 돌이키고 자백하여주님과 교제를 다시 회복하고다시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걷게 된다할지라도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서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에게 심는 자는 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바로이 갈라디아서 6장 8절의 말씀과 같이또 다윗의 삶과 같이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다윗은 주님께 용서를 받았지만자신의 아이가 죽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그가 금식하고 울며 기도하였지만아이의 죽음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외쳤던 것처럼그의 가족들 중에서 네 사람이 끔찍하게 죽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첫 번째는바로 우리가 지금 살펴본 밧세바의 첫 번째 아이였고두 번째는 암논세 번째는 압살롬네 번째는 아도니야로모두 다윗의 아들들이었습니다또한 다윗의 딸과 그의 첩들이 비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두 번이나 반역을 당하여야 했고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였으며또 다시 목숨을 잃을 번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령 안에서 걸으며철저히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나 자신이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전히주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살며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육신으로 걸어간 그 걸음들에 대하여는비록 우리가 주님께 용서받고주님과 관계를 회복한 그 이후라 할지라도감당해야 할 열매들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시편 103편 8-14절을 보시겠습니다.

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그분은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우리를 언제나 풍성한 긍휼로 대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특별히 10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육신에게 심었던 것들을 거두게 될 때에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거두어야 하는 쓰디쓴 열매보다훨씬 더 적게 거두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불법들과 죄악들과 상관없이 은혜와 긍휼 가운데 너무나 감사한 삶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을 우리가 찬양하기 원합니다.

 

 

** 솔로몬여디디야

이제 우리 다시 마지막으로 사무엘기하 12장으로 돌아오셔서 24,25절을 보시겠습니다.

24 다윗이 자기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누우니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대언자 나단의 손으로 보내시매 그가 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밧세바를 통하여 새로운 아들을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고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셨으며새로운 복을 주셨습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슬픔을 경험한 밧세바를 위로하시고차기 왕이 될 지혜로운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은 바로 평화를 의미하는 솔로몬이었습니다성경은 주께서 그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또한 대언자 나단을 통하여 솔로몬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셨는데그것은 여디디야”,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에게는 자신의 육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감당하게 될 문제들과 거두어야 할 쓴 열매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다시 만나주시고다윗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여 주셨습니다그에게 평화를 주셨고사랑을 주셨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제목으로 사무엘기하 12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자를 의미하는 다윗에게,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의미하는 여디디야를 아들로 주셨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한 마디로 말해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죄 많고 더러운 자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그가 죄를 짓고 넘어진 이후에책망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상태 가운데 있었든지다윗과 같이 온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그것이 귀에서 듣기에 좋은 말씀이든지마음 아픈 책망의 말씀이든지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복주시기를 원합니다.

2014.10.2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8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삼하 11: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1장입니다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더라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더라.

저는 오늘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과 인생을 가리켜서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잠언 말씀에서 어떤 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사야서에서는 우리가 모두 어리석은 양들처럼 목자를 버리고 자기 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고사악한 자는 자기 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좁은 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셨고사도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을 다 달렸다고 간증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오늘도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길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라는 것입니다믿음의 길에서는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면정지가 아니라 후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창조물 가운데연어를 보게 되면물론 먹을 때 맛도 좋지만연어가 살아있을 때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연어는 자신의 본향을 향해서 거친 물살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갑니다바다에서는 상어를강에서는 곰을 만나기도 하지만여전히 포기하지 않고폭포를 뛰어넘고거친 물살을 헤치면서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연어는 자신의 본향에 도착할 때까지,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힘차게 휘저으며 전진합니다이러한 연어의 여정 속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연어가 지느러미를 멈추고 정지하는 순간거센 물살에 휩쓸려 아래로아래로밀려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걷고 있는 믿음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우리는 세상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서많은 유혹과 고난을 통과하면서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폭포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바위에 몸이 긁히기도 하고상처를 입고 아파하기도 하지만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하늘의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고믿음의 전진을 주저하는 순간우리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길에 대하여 간증하면서 내가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빌 3:13,14). 오늘도 우리에게 세상의 거센 물살이 다가오며유혹과 고난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연어들처럼사도 바울처럼,멈추거나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이 모든 것을 밀고 나아가며전진하기를 원합니다.

 

 

** 다윗은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에서 믿음의 싸움을 멈추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그리고 우리는 사무엘기하 11장 전체의 말씀에서다윗이 믿음의 길에서 단순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뒤로 물러서고 밀려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우리 다시 한 번 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더라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더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철이나비가 많이 와서 땅이 질퍽해지는 겨울철에는 전쟁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여기서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이제 겨울철이 지나고봄이 되어서 다시 전쟁을 하기에 좋은 기후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암몬 자손은 작년에바로 사무엘기하 10장에서 결판내지 못했던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다시 싸움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전쟁의 사람이었던 다윗은 오직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고 나서정작 자기는 예루살렘의 백향목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이 전쟁은 다윗이 마땅히 몰아냈어야 할 암몬 족속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시도하다가 벌어진 것이었습니다우리는 1절에서 그러나 다윗은이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마땅히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진두지휘했어야 할 다윗이이상하게도가장 앞장 서서 나갔어야 하는데그러나 다윗은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르비딤에서아말렉과 싸웠던 여호수아를 위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던 모세처럼,기도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영적 나태함 가운데 빠져버렸습니다장차 자신의 아들이 건축하게 될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모든 재료를 예비하고자 하던 불타는 열정이 어느새 식어버렸습니다죽음과 한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위기의 상황들 속에서그리고 예루살렘에 막 입성하면서 가졌던처음 사랑과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이믿음의 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나갔는데그는 여전히 예루살렘 성에 머무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 육신 안에 머무른 결과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과의 동행을 멈추고믿음의 길에서 정지하여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던 다윗에게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요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1장 2-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자기 침상에서 일어나 왕의 집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지붕에서 보았는데 그 여인이 보기에 매우 아름다우므로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에 관해 물어보게 하였더니 한 사람이 이르되이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족속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니니이까하니라.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오게 하니 그녀가 그에게로 오니라그녀가 그녀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그가 그녀와 함께 누웠고 그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성경은 참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성경이 만약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유대 민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민족 신화였다면이 부분은 절대로 기록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단군신화를 가지고 있는데우리는 단군이 무슨 죄를 지었고어떤 중대한 잘못을 범하였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명량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 대한 기록들을 볼 수 있지만그들이 어떤 더럽고 추한 죄를 지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습니까놀랍고도 위대한 다윗 왕의 가장 더럽고추하고수치스러운 죄악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 기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시는데그것은 유대 민족이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바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모두 전혀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39편 5절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전적으로 헛될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다윗도 예외가 아니었고마찬가지였습니다그가 더 이상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그가 더 이상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을 때,그가 더 이상 믿음의 길에서 전진하고 있지 않았을 때그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다윗을 쓰러뜨리지 못하였지만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단숨에 쓰러뜨렸습니다끈질긴 생명의 위험과 사울 왕의 추격이 있었던 기나긴 날들은 그를 넘어뜨리지 못하였지만단 하루의 나태한 삶이 그를 넘어뜨렸습니다블레셋과 아말렉과 수많은 이방 민족들의 칼과 창과 화살은 다윗을 상하게 하지 못하였지만한순간의 육신의 정욕이 그를 비참하고 처절하게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게 되면다윗은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얼마나 나태한 하루를 보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그는 자신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치열한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낮잠을 늘어지게 자고저녁때가 되어서야 침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그리고 그는 집 지붕 위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지붕 위에서보기에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사탄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에게 결정타를 명중시켰습니다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틈을 노리면서육신의 정욕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다윗이 여기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면믿음의 길에서 정지상태에 머무르지 않고전진하고 있었다면,그는 그 유혹의 불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능히 막아내었을 것입니다그는 옷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갔던 요셉처럼지붕에서부터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와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육신의 정욕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그는 믿음의 길에서 단지 정지했던 것이 아니라정욕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타락의 길로 밀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마귀의 유혹에 대하여 설명하면서새가 나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새가 나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이처럼공중의 권세 잡은 자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본향에 가서 주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마귀의 모든 유혹과 공격 그 자체를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승리할 수는 있습니다성령 안에서 걷는 삶을 통해서십자가의 삶을 통해서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통해서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통해서최소한마귀의 유혹을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멈추면서육신의 길로 걷게 되었습니다.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라고 말씀하신 갈라디아서 5장 19절 말씀처럼다윗은 육신 가운데 걸으면서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야는 지금 치열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습니다다윗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 물었고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날마다매순간여러 가지 모양으로 죄의 유혹들이 다가옵니다우리의 힘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고이겨낼 수 없고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우리의 결심과 의지와 눈물도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오직 우리 안에 권능으로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우리가 오늘 나의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붙들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1)

이제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여인이 수태하매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내가 아이를 가졌나이다하니라.

다윗은 자신의 타락과 범죄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아무도 모르게 덮여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밧세바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므로이제 다윗의 죄악이 만천하에 공개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라너희가 께 죄를 지었으니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을 분명히 알지니라.” 바로 이 민수기 32장 23절의 말씀처럼다윗의 죄는 결코 숨겨지지 않았고마치 살아있는 추적자처럼끝내 다윗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다윗은 단지 아주 잠깐 동안믿음의 싸움을 멈추고 집에 머물렀을 뿐이었습니다.그는 단지 조금 낮잠을 자고신선한 바람을 쐬기 위해 지붕 위를 거닐었을 뿐이었습니다그는 단지 주님을 향해 처음 마음처럼 뜨겁지 않았을 뿐이었고아주 조금 식어진 것뿐이었으며결코 주님을 대적하여 범죄를 하고자 결심하지는 않았었습니다그러나 그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멈추었을 때육신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때이제 거센 유혹의 물살에 걷잡을 수 없이 밀려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걸을 때에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지만육신 안에서 걸을 때에는 명백한 육신의 행위들이 나타나게 됩니다우리가 육신 가운데 걷다가육신의 열매들을 보게 된다면우리는 즉시 주님 안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즉시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육신의 열매로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는어떠한 행동들을 수정하거나문제들을 해결하거나수습하기에 앞서서가장 먼저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명예와 평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그는 하나님 앞에 즉시 엎드리고회개하며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보다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지혜와 방법을 통해 일을 수습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1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헷 족속 우리야를 내게로 보내라하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야가 그에게 이르매 다윗이 그에게 요압이 어떻게 행하는지백성은 어떻게 행하는지 그리고 싸움은 잘 되어 가는지 다그쳐 묻고

다윗이 또 우리야에게 이르되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하니 우리야가 왕의 집에서 떠나매 왕에게서 온 음식물이 그의 뒤를 따르니라.

 

이제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하여 속히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소환하였습니다그리고는 요압이 어떻게 행하는지백성은 어떻게 행하는지싸움은 잘 되어 가는지 다그쳐 물었습니다그렇게 싸움이 궁금하다면 직접 전쟁터에 나갔으면 될 일이었습니다또 단지 이러한 소식을 묻기 위해서였다면굳이 우리야를 소환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다만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잘 파악해서 돌아오게 하였어도 될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다윗은 다소 의아하고 당황한 표정의 우리야와 어색하고도 초조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어쩌면 더욱 당당하고 위엄 있게 다그쳐 물으면서 행동하였을지도 모릅니다다윗은 사실 안중에도 없고관심에도 없는 전쟁이야기를 속히 마무리 짓고이제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면서왕의 풍성한 음식물로 하여금 그를 뒤따르게 하였습니다어쩌면 다윗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이제 오늘밤만 지나면모든 것이 깨끗하게 덮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9-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왕의 집 문에서 자기 주의 모든 종들과 함께 자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으므로

10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하니 다윗이 우리야에게 이르되네가 여행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냐그런데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하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이르되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서 머물고 또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빈 들에서 진을 치고 있거늘 내가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함께 누우리이까왕께서 살아 계심과 내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니

다윗은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아침부터 심장이 벌렁거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우리야가 집으로 가지 않고왕의 집 문에서 다른 신하들과 함께 머물렀다는 것이었습니다다윗은 우리야를 불러서는 최대한 점잖게그리고 그렇게 큰 관심은 없는 척흘려 지나가는 투로, “아니 여행에서 돌아와서 많이 피곤할 텐데어찌 집에서 좀 쉬지 않았어?”하고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정말 충신 중의 충신이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는 관광여행이나해외여행이나견학체험학습을 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치열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잠시 왕의 소환을 받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여기서 우리야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서 머물고 또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빈 들에서 진을 치고 있거늘 내가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함께 누우리이까왕께서 살아 계심과 내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평소 같았으면다윗이 너무나 기뻐하며주님을 찬양하고우리야를 크게 칭찬했을 법한 고백입니다또 다윗이 조금이라도 주님 앞에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우리야의 고백 한 마디한 마디에 깊은 책망과 찔림을 받았을 것입니다우리야가 지금 왕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한 이 일을 지금 행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바로 그 살아 있는 왕다윗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2)

자신의 죄를 감추어보려던 다윗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다윗은 너무나 절박해졌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야에게 이르되오늘도 여기에서 머무르라내일은 내가 너를 떠나가게 하리라하매 이에 우리야가 그 날과 그 다음 날에 예루살렘에서 머무니라.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자기 주의 신하들과 함께 침상에 눕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그날 우리야를 불러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습니다다윗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로 술을 사용하였습니다우리야가 술에 취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쉴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야의 충성은 술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그는 그 날도 역시 왕의 집 문에서 다른 신하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충성스러운 훌륭한 신하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어디에서 이렇게 귀하고 충성된 사람을 또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그러나 주님과의 동행을 멈추고믿음의 전진을 멈춘 다윗에게오히려 육신의 거센 흐름 가운데 뒤로 물러나버린 다윗에게이러한 충성된 신하는 제거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마치 사울 왕이 다윗에게 하였던 것처럼다윗이 우리야에게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3) - 계획적 살인

이제 우리 함께 14-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보내니라.

15 그가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너희는 우리야를 맹렬한 싸움의 최전방에 두고 그로부터 물러가서 그가 맞아 죽게 하라하였더라.

16 요압이 도시를 살피고는 자기가 알기에 용맹한 자들이 있던 장소에 우리야를 배치하니

17 그 도시의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싸울 때에 다윗의 신하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쓰러지고 헷 족속 우리야도 죽으니라.

우리는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가증하고비열하며더럽고잔인하고추악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다윗의 충성된 신하였던 우리야는 다름 아닌바로 자기 자신의 살인 청부서를 들고 요압에게 보내어졌던 것입니다다윗은 자신의 너무나 충성스러운 신하의 무죄한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마땅히 자신이 가서 싸웠어야 하는 바로 그 싸움에서목숨을 걸고 자기 대신 싸웠던 충성스러운 신하를 고의적으로 죽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그의 계획은 성공하였고마침내 몇몇의 다른 백성들과 함께 우리야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다윗은 단지 아주 잠깐 동안 집에 머물렀을 뿐이었습니다그는 처음부터 간음을 하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었고자신의 충성스럽고 무죄한 신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습니다그는 그저 잠시 믿음의 싸움을 멈추었을 뿐이었습니다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육신에게 아주 작은 틈을 허용한 것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 사건의 결말과 하나님의 평가

이제 우리 함께 23-27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3 사자가 다윗에게 이르되확실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해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덮쳐서 성문 입구에까지 이르렀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벽에서 왕의 신하들을 향하여 쏘므로 왕의 신하들 중에서 몇 사람이 죽었고 왕의 종 헷 족속 우리야도 죽었나이다하니라.

25 그때에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너는 이 일을 불쾌히 여기지 말라칼은 이 사람도 삼키고 저 사람도 삼키나니 그 도시를 향해 더욱 힘써 싸워 그것을 정복하라하고 너는 그의 용기를 북돋우라하니라.

26 우리야의 아내가 자기 남편 우리야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자기 남편으로 인하여 애곡하니라.

27 애곡하는 일을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니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을 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죽음을 알리는 사자를 맞이하면서너무도 태연하게 원래 전쟁이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고용기를 북돋아주고그 도시를 정복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이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양심이 마비된 사람의 모습입니다이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하나님의 대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원수였던 사울 왕조차도 끝까지 살려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을 하고 있는 무죄한 신하를 죽음을 내몰았습니다그리고 다윗은 결국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완벽하게 감추는데 성공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비록 힘든 시간들이었지만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사무엘기하 11장의 모든 말씀을 마치면서오직 침묵 가운데 다윗을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짧은 한 문장으로 평가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을 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그 동안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다윗의 파란만장했던 삶은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평화와 안식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방에서 안식을 주셨고평화를 주셨습니다그러나 이제 이 모든 평화가 끝나게 되었습니다다윗은 믿음의 길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고정지하였으며오히려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범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이후로 이어지는 많은 말씀들을 통해서다윗이 육신의 길을 선택하였던 결과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일들로 나타나게 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정리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이 모든 비극은 다윗이 마땅히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시점에 집에서 여유를 부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그 시작점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고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보였고지극히 작은 선택이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기에믿음의 길에서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이 아니었기에,육신 안에 머무르는 것이었기에 너무나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우리가 오늘 전진하지 않으면우리는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오늘 전진하지 않으면우리는 결국 형제자매들을 대적하게 될 것이고해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하지 않으면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복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이비록 좁고 고단하고 힘들지라도포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물러서지 않고주저하지 않고전진하기를 원합니다연어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세차게 휘젓는 것처럼,우리도 오늘 비록 미약한 발걸음이라 할지라도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전진하고조금 더 주님과 가깝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격려하여 주시고믿음의 발걸음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0.08.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7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삼하 10:9-12)

 

이승선

 

안녕하세요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0장입니다사무엘기하 10장 9-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자기를 치려고 앞뒤에 전투의 최전선이 놓인 것을 보고는 이스라엘의 모든 택한 자들 중에서 택하여 시리아 사람들을 향해 전열을 갖추었더라.

10 또 그가 백성의 남은 자들을 자기 동생 아비새의 손에 넘겨주어 그가 암몬 자손을 향해 전열을 갖추게 하고,

11 이르되만일 시리아 사람들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강하면 네가 나를 도우려니와 만일 암몬 자손이 네가 감당하기에 너무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12 크게 용기를 내라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도시들을 위하여 남자답게 행하자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노라하고

저는 오늘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기를 내면서놀라운 믿음의 승리를 이루어낸 요압과 아비새를 볼 수 있습니다특별히 요압은 자기를 치려고 앞뒤에 전투의 최전선이 놓인 것을 보았음에도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도시들을 위하여 용기를 냈습니다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다하면서 군사들을 배치하였고용맹하게 싸움에 임하였습니다그리고 그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도록하나님의 역할로 온전히 맡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요압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기적적이며 놀라운 승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요압의 역할과 믿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역할이 만나면서 놀라운 승리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0장의 말씀을 통해서오늘 설교의 제목과 같이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다윗의 친절

그러면 지금부터 사무엘기하 10장의 내용을 처음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가장 먼저 오늘의 본문에서는 믿음의 주인공 자리를 요압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다윗의 안타까운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1,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그때에 다윗이 이르되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친절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친절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하고 자기 신하들의 손으로 보내어 그의 아버지로 인해 그를 위로하게 하니라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우리는 여기에서 암몬 자손의 왕이었던 나하스가 죽고그의 아들 하눈이 통치하게 된 소식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그리고 다윗이 하눈에게 친절을 베풀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바로 앞 장인 사무엘기하 9장에서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하나님의 친절을 베푼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므비보셋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이었을 뿐만 아니라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였던 사울 왕의 손자이며요나단의 아들이었기 때문에다윗의 이러한 친절을 받는 것은 매우 적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암몬 자손에게 친절을 베푼다고 하니그것은 매우 부적절해 보이고이상해 보입니다더군다나 암몬의 왕 나하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의아합니다우리 잠시 사무엘기상 11장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암몬 족속 나하스가 올라와서 야베스길르앗을 마주보고 진을 치매 야베스의 모든 사람이 나하스에게 이르되우리와 언약을 맺으라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하니

암몬 족속 나하스가 그들에게 응답하되내가 너희의 오른 눈을 다 빼내어 온 이스라엘 위에 그것을 수치거리로 두리라는 조건 하에서 너희와 언약을 맺으리라하거늘

여기서 우리는 암몬 족속의 왕 나하스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베냐민에 속한 야베스길르앗으로 쳐들어 왔고야베스의 사람들은 조공을 바치고 섬길 터이니 언약을 맺자고 제안하였습니다그러자 나하스는 야베스 사람들의 오른쪽 눈을 다 빼어서온 이스라엘 위에 수치거리와 본보기를 삼는 조건으로 언약을 맺어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나하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렇게 잔인하고잔혹하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나하스 왕은 바로 얼마 전 기름부음을 받았던사울 왕에 의해 참패를 당하고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대항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암몬 족속 나하스 왕이 다윗에게 언제 어떤 친절을 베풀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다윗의 할머니가 모압 출신인 룻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아주 약간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나하스가 다윗에게 친절을 베푼 기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성경에서 그 기록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암몬 족속 나하스는 이스라엘 민족의 관점에서 반드시 쓰러뜨려야 하는 원수이며 대적이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너무나 의아하게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은 이 일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어느 순간부터 다윗이 또 주님께 묻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사람들에게 베푸는 친절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친절을 베푸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아무에게나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특별히 믿음에 있어서 대적이 되는 사람들과는 분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많은 말씀들 중에서 우리 함께 요한이서 1장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요한이서 10절 말씀입니다우리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오면서 이 교리를 가져오지 아니하거든 그를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

사랑의 사도라고 불렸던 요한은 우리에게 오는 사람을 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진리를 따르지 않는 자는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내가 곧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다른 누군가가 예수님 외에 다른 길도 있다고 말한다면우리는 그러한 사람과 안타깝게도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우리는 유아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거나이미 천국에 갈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창세전부터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거나사람의 거룩한 삶과 선한 행위로 구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하거나예수님 외에 다른 중재자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분들과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그분의 십자가 보혈로 인한 죄 사함을 통하여또한 그분의 영광의 부활을 통하여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 다윗의 친절의 결과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10장으로 돌아오셔서 3-5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암몬 자손의 통치자들이 자기들의 주 하눈에게 이르되왕은 다윗이 왕의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에 왕에게 조문객들을 보낸 줄로 생각하시나이까다윗이 도시를 엿보고 탐지하여 정복하려고 자기 신하들을 왕에게 보내지 아니하였나이까하니

그러므로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 한가운데를 도려내되 볼기가 있는 데까지 도려내고 그들을 내보내니라.

그들이 그것을 다윗에게 고하니라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사람을 보내며 이르기를,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그 뒤에 돌아오라하니라.

다윗이 암몬 족속의 새로운 왕인 하눈에게 친절을 베풀겠다는 것은암몬 자손들이 보기에도 이상한 일이었습니다.암몬 족속이 이상하게 다윗 왕의 친절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누가보기에도 이상한 친절을 다윗이 베풀고자 하였다는 것입니다마땅히 대적하고 싸워서 정복을 해야 했던 대상인암몬 자손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한 다윗의 결과는 수치과 모욕으로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수염의 절반을 깎았습니다수염의 절반을 깎았다는 것은 길었던 것을 절반의 길이로 잘랐다는 것이 아니라오른쪽왼쪽으로 따졌을 때절반을 깎아서 매우 우스꽝스럽고수치스럽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또한 의복을 도려내 엉덩이가 다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이것이 다윗이 시도한 친절의 결과였습니다.

우리는 죄는 죄라고 단호히 말해야 합니다진리가 아닌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주님 앞에 합당한 길이 아니라면 그것을 마땅히 거절하고 책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그러한 친절의 결과는 반드시 수치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다윗이 베풀고자 한 친절의 결과는 단지 수치와 모욕 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0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암몬 자손이 자기들이 다윗 앞에서 악취를 내었음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벧르홉의 시리아 사람들과 소바의 시리아사람들의 보병 이만 명과 또 마아가의 왕에게서 천 명과 이스돕에서 만 이천 명을 고용하니라.

다윗이 이상한 친절을 베풀고자 한 결과로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암몬 자손이 많은 용병을 고용하여 먼저 다윗을 공격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

이제 우리 함께 7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그것을 듣고 요압과 용사들의 온 군대를 보내매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이상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바로 다윗이 직접 싸우러 나간 것이 아니라자신은 집에 남아 있으면서요압과 용사들을 파견하였다는 것입니다하나님 앞에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자신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했어야 할 다윗은 지금 주님의 관점을 잃어버렸습니다마땅히 대적해야 할 적에게 괜한 친절을 베풀고자 하였다가 전쟁이 일어나게 만든 장본인이면서이번에는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이제 이러한 다윗의 나태해진 모습은 사무엘기하 11장에서 밧세바 사건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위치와 역할이 있음을 또한 믿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우리에게 주신 위치를 사수하고우리에게 주신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다 하실 것이기 때문에모든 것을 다 맡기고아무것도 하지 않거나아무렇게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우리가 오늘 믿음으로 걷고 있다면우리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주님을 바라보고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지켜야 할 위치가 있었고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 있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자신의 개인적인사사로운 감정 때문에인간적인 정에 이끌려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우리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때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요먼저 우리 자신이 나태해지고믿음에서 물러나게 되며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것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선하고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친절을 베풀었는데 거절을 당하면서 상처를 받고고난을 받는 것 같은 선한 피해자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놓쳐버린 다윗의 이러한 행로는 결국 자기 자신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또한 다윗을 위하여 충성하고다윗을 따르던 좋은 신하들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오늘 하나님 앞에 서있지 않는다면내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받은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않는다면,결국 우리는 믿음에서 물러서게 될 것이며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열심히 많은 일들을 행하는가가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과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에 순종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점이라는 사실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다윗은 그 역할을 잃어버렸고결국 요압과 아비새와 많은 충성된 군사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 요압의 역할

그렇다면이제 우리 함께 오늘의 본문에서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다윗을 잠시 옆으로 제쳐놓고믿음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였던 요압 장군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0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암몬 자손은 나아와 성문 입구에서 전투대형을 갖추고 소바와 르홉의 시리아 사람들과 이스돕과 마아가는 따로 들에 있더라.

요압이 다윗 왕의 명령을 받고 출격을 하여 보니전쟁의 진형이 매우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암몬 자손은 자신들의 성문 입구에서 전투대형을 갖추고 있었고그들이 고용한 용병인 소바와 르홉의 시리아 사람들과 이스돕과 마아가의 부대는 따로 들에 배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요압은 자신이 앞뒤로 포위당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이제는 다른 곳으로 돌이킬 길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앞뒤에서 공격을 당하게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압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자신의 역할에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우리 다시 한 번 9-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자기를 치려고 앞뒤에 전투의 최전선이 놓인 것을 보고는 이스라엘의 모든 택한 자들 중에서 택하여 시리아 사람들을 향해 전열을 갖추었더라.

10 또 그가 백성의 남은 자들을 자기 동생 아비새의 손에 넘겨주어 그가 암몬 자손을 향해 전열을 갖추게 하고,

11 이르되만일 시리아 사람들이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강하면 네가 나를 도우려니와 만일 암몬 자손이 네가 감당하기에 너무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12 크게 용기를 내라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도시들을 위하여 남자답게 행하자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노라하고

요압은 먼저 자신의 군사들을 택하여 시리아 사람들을 향해 전열을 갖추었습니다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아비새에게 나머지 군사들을 넘겨주면서 암몬 자손을 향해 전열을 갖추게 하였습니다그리고 누군가 서로 감당하기에 힘이 들면 서로 돕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그리고 이제 자신의 동생인 아비새와 군사들에게 외쳤습니다크게 용기를 내라.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도시들을 위하여 남자답게 행하자주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노라.

 

요압은 모든 것이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였고최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최고로 선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대승이었습니다우리 함께 13,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요압과 그와 함께한 백성이 시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싸우려고 가까이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14 시리아 사람들이 도망하는 것을 암몬 자손이 보고 자기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도시로 들어가매 이에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돌이켜서 예루살렘으로 오니라.

이것은 거의 무혈승리라고 볼 수 있는 기적적인 승리였습니다요압과 그 군사들이 용병이었던 시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죽기를 각오하고 전진하였을 때 시리아 사람들이 도망하였습니다그리고 시리아 사람들이 도망하는 것을 본 암몬 자손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였던 것입니다이것은 요압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얻어진 결과하였습니다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의 믿음의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던 것입니다.

 

 

**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

이제 우리 함께 시편 127편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함께 읽어보시겠습니다.

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그것을 세우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며 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아멘우리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주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수고할지라도 그 수고가 헛될 뿐임을 믿습니다또한 주께서 도시를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이 깨어서 지키는 것이 헛될 뿐임을 믿습니다그런데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과연 이 말씀을 믿기 때문에집을 짓지 않아도 되고파수꾼이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일까요우리가 과연 이 말씀을 정말 믿게 되면교회의 예배당에 자물쇠도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고우리의 각 가정에도 문을 다 열고 살게 되는 것일까요주께서 우리의 건강을 붙들지 않으시면 우리가 건강을 챙기는 것이 다 헛될 뿐이기 때문에우리가 건강을 해치는 음식도 자유롭게 먹고한 겨울에도 반팔만 입고 생활을 하는 것이 믿음의 삶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요?

 

저는 오늘날 많은 곳에서 주님께서 하신다는 말과 내가 마땅히 순종해야 하는 실제 삶의 영역에서 혼란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저희 학교에 한 학생은 왜 숙제를 안 해오냐는 선생님의 물음에장난 섞인 말로저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난이기는 했지만우리가 믿음을 오해한다면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말과 내가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말은 과연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가 있을까요어디까지가 나의 역할이고어디부터가 하나님의 역할일까요?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그는 간증하기를 내가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그것은 내가 아니요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자신의 모든 사역이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라는 것을 믿었던 사도 바울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습니다그는 밤을 새고감옥에도 갇히고돌에도 맞고굶주리고심지어 형제자매들이 눈물로 가로막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도 개의치 않고 걸어갔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에 최선을 다해 순종하고하나님께 속한 영역에서는하나님의 역할에 속한 면에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조금 더 실제적으로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남편에게아버지에게 주신 역할을 무엇입니까가장 실제적이고 기본적인 역할은 가정의 식탁에 양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향해 땀을 흘려 빵을 먹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가장에게 주신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가정을 돌보되땀을 흘려 성실하게 일해서양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이러한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 것은 믿음의 삶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남편이아버지가 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본인의 믿음이 물러서게 될 뿐만 아니라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 받게 만들 것입니다.

 

또한 아내에게어머니에게 주신 역할을 무엇입니까믿음 안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것입니다또한 남편의 돕는 자로서때로는 따끔한 조언으로때로는 고요한 침묵의 순종으로남편과 함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가정을 가꾸는 것입니다설거지하고빨래하고청소하고요리하는가정을 돌보는 가장 실제적이고 기본적인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매의 역할입니다아내가어머니가 이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본인의 믿음이 뒤로 물러나게 될 뿐만 아니라사랑하는 사람들을 고통 받게 만들 것입니다.

 

또한 자녀에게 주신 역할은 무엇입니까부모님의 말씀에서 순종하는 것이고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어린 형제들은 자신이 커서 어떤 남편이 될 것이며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지믿음 안에서 어떤 가정을 이룰 것이며어떻게 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할 것인지를 준비해야 합니다어린 자매들은 내가 어떤 아내가 될 것이며어떤 어머니가 될 것인지교회 안에서 어떤 섬김을 가지면서 주님을 따를 것인지 준비해야 합니다.

 

미래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심는 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햇빛과 비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자라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지만하나님께서 친히 심고 거두는 수고땀을 흘리는 수고에 대해서는 사람의 역할로 지정해 두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정하신 위치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해 순종하며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요압이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면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를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우리가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을 정확히 분별하고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무엇인지모든 것을 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는 맛볼 수 없을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0장의 말씀을 통해서, “나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때로는 실패하고 넘어지며 자신의 역할을 놓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다윗이 무엇인가 특별한 사람이어서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고그도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신을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다윗과 같은 사람도 주님을 따랐다면우리도 따를 수 있다는 위로와 용기를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한 것은 다윗이 자신의 역할을 놓치고왕국을 큰 위기로 빠뜨릴 번한 바로 그 순간에 요압 장군과 같이 깨어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이처럼 오늘 우리가 넘어지게 될 때우리 옆에서 여전히 자신의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해주는 귀한 지체들이 있음을귀한 교회가 있음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감사하기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은 무엇입니까남편으로서아버지로서아내로서어머니로서자녀로서직장에서 일하는 자로서학생으로서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섬기는 자로서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역할을 무엇입니까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실 줄을 믿으면서오늘 나에게 주신 역할에 최선을 다하며,주님을 따르고 섬기기를 원합니다그리고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가운데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와 지혜와 권능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9.2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6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삼하 9:6-8)

 

이승선

 

안녕하세요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9장입니다사무엘기하 9장 6-8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제 사울의 손자요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얼굴을 대고 엎드려 경의를 표하니 다윗이 이르되므비보셋이여하매 그가 응답하기를보소서주의 종이니이다하니라.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하여 반드시 네게 친절을 베풀고 네 조상 사울의 온 땅을 네게 도로 주리라너는 계속해서 내 상에서 빵을 먹을지니라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나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하니라.

저는 오늘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그것이 좋은 일이든나쁜 일이든우리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우리는 평생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님의 마음도 다 이해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합니다.

 

저희 승연이는 밤에 잠자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는데엄마아빠가 잠을 재우려고 할 때마다왜 잠을 자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예배시간에는 왜 떠들면 안 되는지기도할 때는 왜 눈을 감아야 하는지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승연이보다 조금 더 자란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왜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해야 하는지왜 마음대로 놀 수는 없는지왜 이렇게 숙제가 많은지왜 세상 음악을 들으면 안 되고왜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되는지왜 화장을 하면 안 되고왜 PC방에 가지 못하게 하고노래방에도 가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왜 나는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하는지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한 찬송가의 제목처럼하나님께서 왜 날 사랑하시느냐하는 것입니다나의 모습은 전혀 사랑받을 만하지 못한데자격도 없는데왜 날 사랑하시느냐는 것입니다이것은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사랑이라서우리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에서도 자신에게 왜 이러한 일이 생긴 것인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 사람은 바로 사울의 손자이며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었습니다그래서 그는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라고 말하면서 다윗에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우리가 오늘 함께 사무엘기하 9장의 말씀을 통해서므비보셋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친절에 대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또한 오늘 우리에게 넘치게 부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긍휼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 므비보셋은 어떤 사람?

그러면 먼저우리 함께 므비보셋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9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이르되사울의 집에서 아직 남아 있는 자가 있느냐내가 요나단으로 인하여 그에게 친절을 베풀리라하니라.

먼저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다윗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은 왕이 되고사방에서 안식을 누리고또 전쟁마다 승리하던 바로 그 시점에소위 말해서 아주 잘나가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은혜를 기억하였습니다.자신이 비천한 처지에 있고위기 가운데 있을 때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요나단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순간이나아쉬운 때에는 도움을 찾지만모든 어려움이 지나가고우리가 잘나가게 될 때에도움을 주었던 그 사람을 기억하고 감사를 표하는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기에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요나단이 아니라그가 이미 죽고 사라진 시점에서바로 그의 자손에게 친절을 베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다윗은 자기 자신만을 돌아보고가꾸고아끼는 사람이 아니었고먼저 하나님을 섬기고또 다른 이들을 돌아보고베풀고섬기기를 추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서이기적으로 나만을 위하는 삶이 아니라내가 아니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그리고 주님께서 피 값을 주고 사신 교회의 형제자매들그리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이르되사울의 집에서 아직 남은 자가 없느냐내가 그에게 하나님의 친절을 베풀리라하니 시바가 왕께 이르되요나단에게 아직 아들 하나가 있는데 그가 두 발을 저나이다하매

다윗은 사울의 집에 속한 종이었던 시바라고 하는 종을 불러다가 사울의 집에 남은 자에 대하여 물었습니다다윗은 바로 그에게 하나님의 친절을 베풀기를 원하였습니다그 때 그 종은 요나단에게 아직 아들 하나가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그리고는 다윗에게 귀띔이라도 해주는 것처럼그가 두 발을 전다고 덧붙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 발을 전다는 것은 단순히 절뚝이면서 걷는 것이 아니라혼자 걷는 것이 불가능하여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만 한다는 의미입니다이 당시에는 휠체어도자동차도엘리베이터도 없었기 때문에므비보셋은 혼자 힘으로 아무데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집안에서 조금 돌아다니는 것이 가능했을지는 몰라도어디론가 다니면서 외부 활동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입니다또한 여기서 사울의 종이 므비보셋에 대하여두 발을 전다고 덧붙인 이유는 그가 왕의 친절을 받기에 자격이나 가치가 없기 때문에왕께서도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없고그는 그 모든 친절을 받기에 부적합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주려는 의도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그의 할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습니다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이었으며왕의 아들이었습니다그런데 이제 그는 몰락한 가문의 유일한 핏줄이며 장자일 뿐이었습니다그는 두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우리 잠시 사무엘기하 4장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를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전에 예스르엘에서 사울과 요나단의 소식이 왔을 때에 그가 다섯 살이었더라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도망할 때에 급히 도망하였으므로 그가 떨어져서 발을 절게 되었더라그의 이름은 므비보셋이더라.

므비보셋은 다섯 살이었을 때사울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우면서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날부터 두 발을 절게 되었습니다그의 유모가 그를 안고 급히 도망을 가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두 발을 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므비보셋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고작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거나오늘의 현실을 괴로워하는 것뿐이었습니다그에게는 아무런 소망도 없었습니다그가 자기에 대하여 소개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오늘 본문인 사무엘기하 9장 8절 말씀과 같이 죽은 개라는 단어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므비보셋은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오늘날 모든 인생의 비참하고 가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아무런 소망도확실한 목적도가능성도 없이아무것도 할 수 없이절망 가운데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살고 있던 지역은 로드발이라는 곳이었는데그 말은 목초가 없다는 뜻입니다. “라는 것은 없다는 의미이고, “드발이라는 것은 목초를 의미합니다므비보셋은 목초가 없는 곳에서메마른 땅에서 방황하고 있는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습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 다윗의 부름

이제 우리 함께 이러한 므비보셋을 향한 다윗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다윗은 그가 두 발을 전다는 말을 들었을 때그 말에 대하여 전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얼마나 심각한지얼마나 오래되었는지치료될 가능성은 있는지전혀 묻지 않았습니다다윗은 다만 므비보셋을 직접 만나보기를 원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9장 5,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에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라.

이제 사울의 손자요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얼굴을 대고 엎드려 경의를 표하니 다윗이 이르되므비보셋이여하매 그가 응답하기를보소서주의 종이니이다하니라.

 

다윗은 즉시로 므비보셋을 데려오게 하였고 므비보셋은 왕 앞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습니다이때 므비보셋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왕이 나를 불러주었기 때문에 기쁘고 자랑스러웠을까요?

 

왕이 자기 같은 사람을 불렀을 때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고목적이 있을 터인데그것이 무엇이었든지 그는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그는 다윗을 끝까지 죽이려고 추격하였던 사울 왕의 손자였습니다그는 두 다리를 저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고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왕이 자기에게서 무엇을 기대했든지그는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찾을 필요라고는오직 사울의 집을 멸족시키고 복수하는 것 말고는다른 목적이 없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을 것입니다여기서 므비보셋은 벌벌 떨면서 왕 앞에 엎드렸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7,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인하여 반드시 네게 친절을 베풀고 네 조상 사울의 온 땅을 네게 도로 주리라너는 계속해서 내 상에서 빵을 먹을지니라하니

그가 절하여 이르되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나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하니라.

다윗이 벌벌 떨고 있던 므비보셋을 향하여 가장 먼저 말했던 것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이 말은 얼마나 은혜로운 말이며감사한 말입니까내가 여기 온 것은 심판을 받고복수를 받아 죽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 모르는 므비보셋에게 이 말은 그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구원의 말씀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 인하여 므비보셋에게 반드시 친절을 베풀고 사울이 개인적으로 소유하였던 온 땅을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푼 이유는 오직 요나단 때문이었습니다여기서 므비보셋의 어떠한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그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인지그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지그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그가 얼마나 잘생긴 사람인지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아무것도 계산되지 않았습니다.므비보셋에게 베풀어진 친절은 오직 그가 요나단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친절이 베풀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내가 얼마나 건강한 사람인지내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인지내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내가 얼마나 영적인 사람인지아무것도 계산되지 않습니다.오늘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놀랍고 신기한 하나님의 친절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심판받으시고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기 때문에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부활하시고 영광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오직 예수님 때문에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떠한 모습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친절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놀랍고 신기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과 친절을 찬양하기 원합니다두 발을 저는 므비보셋과 같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우리들을 놀랍게 사랑해 주시는 주님을 우리가 사랑하기 원합니다.

다윗은 또한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왕의 식탁에서 빵을 먹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9장 11절의 중간부터 보시겠습니다.

...므비보셋에 관하여는 왕이 이르기를그가 왕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처럼 내 상에서 먹으리라하였더라.

다윗은 목초지가 없는 곳인 로드발에 거하던궁핍하던므비보셋을 불러다가 왕의 만찬에서 매일 식사하도록 초대하였습니다그러나 그가 왕의 식탁에서 빵을 먹는다는 것이단순히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이것은 다윗 왕이 그를 아들처럼 대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또한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교제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몰락한 가문의두 발을 저는 므비보셋이 왕의 아들처럼 왕의 식탁에서왕과 교제하면서 풍성한 식사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말씀의 빵과 생명의 물로 먹이시면서우리와 동행하시고교제하시고함께하고 계십니다.

 

 

** 여전히 은혜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9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처럼 므비보셋이 계속해서 왕의 상에서 먹었으므로 예루살렘에 거하니라그는 두 발을 다 절었더라.

사무엘기하 9장의 마지막 구절은 이제 므비보셋이 계속해서 왕의 상에서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런데 이상하게 또 다시 그가 두 발을 절었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사무엘기하 9장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두 발을 전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서 또 그 안타까운 사실을 강조하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함께 로마서 15장 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으니 이것은 우리가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말씀은 특별히 구약의 말씀들을 언급하면서어떤 말씀이든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또한 성경 기록들이 주는 인내와 위로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저는 바로 이 말씀과 같이사무엘기하 9장의 가장 마지막 문장을 통하여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두 발을 다 절었더라.” 므비보셋이 두 발을 다 절었다는 말이 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될까요?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그 정도 시간 동안 왕의 상에서 빵도 먹고왕과 교제도 나눴으면 이제 좀 걸어야 되는거 아닌가그 정도 시간 동안 믿음 생활하고교회 생활 했으면주님 같아져야 하는거 아닌가그 정도 성경을 읽고설교를 듣고말씀을 배웠으면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물론 우리는 주님을 만난 이후에 더욱 거룩하고더욱 겸손하게더욱 사랑이 풍성하게 변화되어져야 합니다그러나 저는 여전히 두 발을 절었던 므비보셋의 모습을 보면서여전히 오늘 주님 앞에 자격이 없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고또 여전히 자격이 없는 우리들에게여전히 변함없이 베풀어지는 왕의 만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끝까지그에게는 자격이 없었습니다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는 동일한 은혜와 친절이 베풀어졌습니다단 한 번도 므비보셋이 자격이 있어서왕의 만찬을 먹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처음부터 끝까지 다 은혜였습니다.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9장으로 돌아오셔서 8절 말씀을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그가 절하여 이르되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나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하니라.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그가 무엇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그가 사랑받을 만하고친절한 대우를 받을 만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오직 다윗이 은혜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오직 다윗이 요나단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합니다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그런데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서 어떠한 자격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예쁘니까 사랑을 받고무엇을 잘하니까 사랑을 받고또는 무엇이 없으니까 동정으로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위해서예뻐지려고 하고뛰어난 실력을 갖추려고 하고착한 척을 하고영적인 척을 하고때로는 불쌍한 척도 합니다사랑을 받고인정을 받고관심을 받기 위해 바쁘고 지치게 여러 가지 말들을 하고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때로는 사랑을 받는 다른 사람을 시기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합니다나보다 사랑받는 것처럼 보이는 다른 사람을 헐뜯고 깎아내리면내가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그러나 그 결과는 만족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더 공허하고 곤고한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여러분우리는 이미 놀라운 사랑을 받았고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두 발을 저는 자와 같고죽은 개와 같은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면이처럼 사랑하셔서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전능자 하나님께서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면더럽고 비좁고 누추한 우리들의 마음속에 거하시고 동행하시면서우리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십니다온갖 더러운 생각과 교만과 고집과 이기적인 마음과 거짓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마음에 거하시면서늘 우리를 참아주시고긍휼로 대해주시고친절을 베푸시면서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갈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숨을 쉬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 무엇인가를 볼 만한 아무런 자격도 없는데앞을 볼 수 있는 눈을 받았습니다아무것도 들을 자격도 없는데들을 수 있는 귀를 받았습니다어디론가 걸어갈 자격도 없는데 튼튼한 다리를 받았습니다아무것도 만질 자격이 없는데두 손을 받았습니다아무것도 생각할 자격이 없는데생각할 수 있는 두뇌를 받았습니다아무것도 가질 자격이 없는데먹을 것과 입을 것과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주셨습니다.

 

주의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나같이 죽은 개를 돌아보시나이까?

오늘도 우리는 두 발을 저는 므비보셋과 같습니다오늘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여전히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사랑과 친절과 은혜를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오늘 우리는 그 사랑을 누리고 있습니까아니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다른 곳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기진하며 헤매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었든지지금 이 순간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나를 먼저 불러주시고먼저 사랑하시고먼저 친절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 주님과 함께 만찬을 누리며교제를 누리기 원합니다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만족이 되실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비록 두 발을 다 전다할지라도왕의 만찬에 나아오기 원합니다살아계신 주님과의 풍성한 교제를 누리기 원합니다사랑을 받기 위해서 잘 걷는 모습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우리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를 원합니다부족하면 부족한대로못나면 못난 대로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주님 앞에 그대로 나아오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윗처럼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처럼바울처럼예수님처럼그렇게 조건 없이 형제자매들을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9.17.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5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삼하 8:6,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8장입니다사무엘기하 8장 6절과 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8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뒤에 다마스쿠스의 시리아에 수비대를 두매 시리아 사람들이 다윗의 종이 되어 예물을 가져오니라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께서 그를 보존하시니라.

그리고 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4 그가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두루 수비대를 두니 에돔의 모든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께서 그를 보존하시니라.

저는 오늘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안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공사장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안전제일이라는 문구와 함께 위험하다는 경고표시를 볼 수가 있습니다추석이나 설날 명절 때마다 우리가 가족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라기보다는 다만 아무 사고 없이 안전하고 무사하게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이번에 우리 구정민 목사님 부부께서 캐나다 밴쿠버에 방문하셨는데우리 학생들과 함께 목사님 부부를 위해 기도하면서 가장 먼저그리고 가장 자연스럽게 나왔던 기도는 바로 모든 길 가운데의 안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천만해 보이는 암벽등반을 즐기기도 하고번지점프를 즐기기도 하지만안전장비를 충분히 갖추고 확인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오늘날 사람들이 어떤 위험해 보이는 활동을 하든지결국 사람들은 안전한 가운데 스릴을 즐기기를 원하는 것이지결코 위험 그 자체를 즐기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했던 한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의 이름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그는 소년 시절에 혼자서 사자와 곰을 상대했고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웠습니다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찾아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녔습니다심지어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돌을 들어 죽이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그는 왕이 된 이후에도 수많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그를 보존하셨습니다이 세상에 이보다 더 안전한 사람이 있었을까요다윗은 안전을 추구하거나안전을 찾아다닌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오히려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고치열했으며언제든지 한순간만 잘못하면 목숨을 잃게 되는죽음과 오직 한발자국만이 떨어진 삶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를 가든지 지키시고 보존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8장의 말씀을 통해서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 과연 어떠한 사람인지다윗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놀라운 주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살 수 있었는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또한 우리들도 우리들의 삶 속에서,어디를 가든지 동행하시며우리의 발걸음을 지키시고 보존하시는주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메덱암마

그렇다면 이제 다윗이 과연 어떻게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 되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우리 잠시 함께 사무엘기하 7장으로 가셔서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왕에게 안식을 주시고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사 왕이 자기 집에 앉아 있을 때에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안식을 주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제 다윗에게는 원수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평화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이러한 평화와 안식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었습니다이제 우리 이 사실을 기억하시면서사무엘기하 8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 뒤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이 말씀은 이 일 뒤에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이 일이라는 것은 바로 다윗이 주의 집을 지으려고 마음을 먹었다가,하나님께서 다윗은 전쟁의 사람이며피를 많이 흘렸으니다윗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입니다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이 평화와 안식의 사람으로서 주의 집을 건축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일 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지으려고 했다가도리어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나단을 통하여 들은 바로 그 뒤입니다.

 

이제 다윗은 바로 이 일을 통하여하나님께서 자신을 전쟁의 사람으로주님을 위한 전사로 세우셨음을 확신하게 되었고자신이 어떤 역할을 가진 왕이어야 하는지 진로를 새롭게 발견하였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제 이 일 뒤에 다윗은 다만 평화를 누리고 안락함을 누리는 삶을 지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궁전 안에서 안전을 추구했기 때문에주님의 보존하심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오직 주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에하나님의 놀라운 보존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이처럼 우리도 단지 우리 자신의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주님의 뜻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자신의 시간과 힘을 드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그리고 그러한 순종과 드림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먼저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공격하였고그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다고 되어 있습니다여기서 메덱이라는 말은 굴레라는 의미이고, “암마라는 말은 우리말의 엄마와 비슷한데바로 어머니라는 의미가 있습니다그래서 메덱암마라는 것은 어머니의 굴레”, “모성의 굴레라는 의미로블레셋의 주요 도시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역대기상 18장 1절에서는 여기서 블레셋 사람들의 도시 가드를 빼앗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바로 다윗이 얼마 전까지 자신이 종노릇을 하였던 블레셋의 가드 왕 아기스가 있던 바로 그 땅을 정복하였던 것입니다.

 

메덱암마의 의미를 우리들의 삶 속에 영적 의미로 적용을 해보면바로 우리가 어머니 배에서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된 우리들의 천연적인 본성즉 육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다윗이 과거에 자신이 종노릇하였던 바로 그 가드 땅바로 그 굴레를 정복하였던 것처럼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그 동안 우리가 굴레처럼 잡혀 살았던 육신을 죽음으로 넘기고주님 안에서 자유와 승리를 누리기 원합니다.

 

 

** 모압

이제 우리 함께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또 모압을 쳐서 그들을 땅에 내던지고 줄로 재어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이와 같이 모압 족속이 다윗의 종이 되어 예물을 가져오니라.

다윗은 블레셋의 가드 땅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그는 또 모압을 쳤고 정복하였습니다다윗은 모압 사람들의 포로들을 땅에 내던지고 줄로 재어서 두 줄 길이인 2/3는 죽이고오직 한 줄 길이인 1/3만을 살려두어서 자신에게 예물을 가져오게 하였습니다이 말씀은 모든 사람의 키를 일일이 다 재어보고 키 큰 사람을 죽였다는 의미가 아니라전체 인원을 나열해 놓고 1/3만을 살려두었다는 의미입니다.

 

 

** 하닷에셀

또한 3,4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프라테스 강에서 자기의 경계를 회복하러 갈 때에 다윗이 또 그를 쳐서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 대의 병거에 쓸 것만 남겼더라.

다윗은 블레셋을 치고모압을 치고 또한 하닷에셀을 쳤습니다이처럼 다윗은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하였던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그 이유는 다윗이 전쟁을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순종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4절 말씀에서는 다윗이 하닷에셀로부터 병거 천 대와 기병 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았다고 하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런데 이 말씀은 사람들 가운데 다소 논란이 되는 말씀입니다왜냐하면 이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역대기상 말씀과 비교해 볼 때 기병의 숫자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우리 함께 이 부분을 잠시 다루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병거 천 대와 기병 칠백 명과 보명 이만 명을 기억하시면서사무엘기하 말씀은 손가락으로 끼워두시고역대기상 18장 3,4절을 보시겠습니다.

소바 왕 하달에셀이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자기의 통치권을 굳게 세우러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하맛에까지 이르렀으며

그에게서 병거 천 대와 기병 칠천 명과 보병 이만 명을 빼앗고 또 모든 병거의 말은 다리의 힘줄을 끊되 다만 그것들 중에서 백 대만 남겼더라.

여기 보시면 소바 왕 하달에셀이 등장하고 있는데사무엘기하에 나타난 하닷에셀과 동일인물입니다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전쟁이 벌어진 것도 같습니다그런데 4절에 나온 병사들의 수를 보면 차이가 있습니다병거 천 대라는 것이 똑같고보명 이만 명이 똑같은데사무엘기하에서는 기병이 칠백이라 하였고여기 역대기상에서는 기병이 칠천이라 하였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10배의 수 차이를 볼 수가 있습니다수 차이를 확인하셨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구절들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거나원본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사본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NIV성경은 사무엘기하의 칠백 명을 아예 칠천 명으로 수정해버렸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병사들의 수를 어떤 방식으로 세었고어떤 방식으로 분류하였는지를 살펴본다면 이 두 부분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에서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눈먼 두 사람을 고쳐주신 것을마가복음에서는 바디매오 한 명만을 언급한 것과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두 명이 사실이냐한 명이 사실이냐가 서로 충돌하는 기록이 아니라두 명이라고 기록한 마태복음도 맞고그 중에 한 명인 바디매오에 집중해서 기록한 마가복음도 맞는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사무엘기하와 역대기상 말씀에서 하닷에셀을 하달에셀이라고 부른다든지메덱암마를 가드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맞습니다.

 

우리 함께 이스라엘에서 병사들을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였는지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사무엘기하 10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므로 다윗이 시리아 사람들의 병거 칠백 대의 사람들과 기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들의 군대 대장 소박을 치매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여기서 사람들 숫자를 보시면시리아 사람들의 병거 칠백 대의 사람들과 기병 사만 명이라고 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이것을 기억하시면서 역대기상 19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므로 다윗이 병거를 타고 싸우던 칠천 명과 보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대 대장 소박을 죽이니라.

여기서 사람들 숫자를 보시면시리아 사람들 중에서 병거를 타고 싸우던 칠천 명과 보병 사만 명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사무엘기하와 역대기상을 비교해서 보면병거는 칠백 대였고그 병거와 관련되어서 싸우던 군사는 칠천 명이었으며병사들은 사무엘기하에서는 기병 사만 명이라고도 불리고역대기상에서는 보병 사만 명이라고도 불리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확인하셨습니까?

당시에는 기병이나 보병을 철저히 구분했던 것이 아니라처음에는 기병으로 출전하였다 하더라도말을 타다가 떨어져서 싸우게 되면 보병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이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은 기병 사만에보병 사만으로 총 팔만 명이 아니라기병이기도 하고 보병이기도 한사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가 사무엘기하 8장 4절 말씀을 본다면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이 말씀에서는 기병이 될 수도 있고보병이 될 수도 있는 병사들의 수를 굳이 기병 칠백에보병이 이만이라고 구분을 해서 기록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것은 전체 군사인 보병 이만 명 중에서 기병이 칠백이었다는 의미로기병이 보병의 숫자 속에 포함되고 소속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 영어로는 “and”라고 묶어주는 접속사가 대등하게 무엇과 무엇으로 나열하고 구분하는 데 쓰이기도 하지만앞과 뒤에 나온 단어가 서로 포함하는 개념으로 등장하기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가령 우리는 성경에서 예루살렘과 유다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는데엄밀히 따지자면예루살렘은 유다 지파의 영토 중 한 도시입니다. “서울과 한국이라는 말이 나열식으로 이해된다면 매우 이상한 표현인데성경에서는 예루살렘과 유다라고 해서 결국에는 유다를 가리키지만유다 안에 포함된 예루살렘을 강조하기 위하여접속사 “and”를 사용하면서굳이 예루살렘을 언급하는 용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나타났던 한 천사는 여인들에게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가서 소식을 전하라고 말하였습니다이때그냥 제자들이 아니라제자들 가운데 소속되어 있지만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여기고 있던 베드로를 강조하여 언급한 예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소속과 포함의 개념으로 접속사 “and”를 이해하게 되면기병 칠백과 보병 이만이라고 할 때전체 병사가 이만 칠백이나이만 칠천이 아니라전체 병사는 이만 인데그 중에 말을 탔던 기병이 처음에는 칠천이었다가전투 도중에 말을 잃고 칠백이 남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사무엘기하와 역대기상의 기병의 수가 차이가 나는 것은전체 병사의 수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전체 병사 이만 가운데말을 탄 기병이 얼마였느냐를그 구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이 점을 우리가 이해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보존하셨는데하물며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성경을 온전하게 보존하시지 않는다면 그것처럼 이상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보존하셨을 뿐만 아니라오늘 우리들의 손에 오류가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해 주셨습니다.

 

 

** 시리아

이제 우리 다시 다윗의 이야기로 돌아오셔서 함께 사무엘기하 8장 5,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시리아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구출하러 왔을 때에 다윗이 시리아 사람들 중에서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그 뒤에 다마스쿠스의 시리아에 수비대를 두매 시리아 사람들이 다윗의 종이 되어 예물을 가져오니라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께서 그를 보존하시니라.

다윗은 하닷에셀 만이 아니라 그 지원 병력으로 왔던 시리아 사람들까지도 무찔렀습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뜻을 성취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순종하며 자신을 드린 다윗에게 승리와 안전을 주셨습니다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은 자신의 안전을 추구하며가만히 조심하는 사람이 아니라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행동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이었음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드림과 봉헌

다윗은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었는데그 이유는 첫 번째로 그가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이제 두 번째 이유를 생각해보시겠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9-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쳤다는 것을 듣고는

10 그때에 자기 아들 요람을 다윗 왕에게 보내어 문안하고 그를 축복하게 하였으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전쟁을 하던 때에 그가 하닷에셀과 싸워 그를 쳤기 때문이더라요람이 은그릇과 금 그릇과 놋그릇을 가져왔으므로

11 다윗 왕이 그것들도 께 봉헌하되 자기가 정복한 모든 민족들에게서 취하여 봉헌한 은과 금

12 곧 시리아와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에게서 취한 것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취한 노략물과 함께 봉헌하니라.

다윗은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었는데그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전리품을 노략하는 자가 아니라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지금 다윗이 이 모든 전쟁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이었을까요가장 먼저는 물론하나님께서 원래 이스라엘에게 목적하신대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가나안 민족들로부터 노략물을 얻고예물을 얻어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한 재료를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비록 그 자신이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그 모든 것을 순조로이 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예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사울 왕의 마음은 오직 노략물에 있었지만다윗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자신이 얻은 모든 노략물을 주님께 드리고 봉헌하였습니다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물이 하나님의 것이며자기 자신 또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였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우리들의 시간과 힘과 미래와 인생을 주님께 드린다면우리가 가진 어떤 소유나 재능만이 아니라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린다면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자신의 소유가 된 우리들을 보존하시고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 되었습니까다윗 자신이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였기 때문이고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우리도 오늘 다윗과 같이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려진 삶,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삶그리하여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 공의와 정의

우리는 오늘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라는 주제로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습니다우리는 다윗이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 된 첫 번째 이유로그가 자신의 안전이나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그리고 두 번째로다윗이 자기의 유익이나 부와 명예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고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리기를 원하는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이제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8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며 자기의 온 백성에게 판단의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였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통치하였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외적으로는 많은 전쟁과 침략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고또 수비대를 건축하는 전쟁 지휘관이었습니다뿐만 아니라이제 그는 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공의와 정의로 판단하며 통치하는 공정한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과 같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백성들의 반응을 두려워하고자신의 왕권에 대하여 초조해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그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거나사람들을 차별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먼저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걷기를 원하였고자신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대로 공의롭고 정의롭게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이 어디에서나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으로 나타나게 된 것은 그가 공의롭고정의롭게 주님의 말씀을 집행하고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그는 자신의 욕심이나 선호도에 따라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정에 이끌려서진리의 길을 타협하거나 비뚤어진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의롭고 공의로운 길을 걷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믿음의 좁은 길입니다진리의 길에는 언제든지 타협의 유혹이 있을 수 있고손해나 핍박이나 박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믿음의 길은 정의의 길이며공의의 길입니다우리가 이러한 길을 가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값을 지불하고손해를 담당해야 한다면기꺼이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값을 지불하시고우리의 죄 값으로 자신의 몸과 피와 생명을 지불하셨습니다이처럼 우리도 오늘 기꺼이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하여그리고 그 무엇보다 하나님과 진리의 길을 위하여 기꺼이 값을 지불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그리고 우리가 값을 지불한 것보다 훨씬 더 넘치게 보상하시는 주님의 보상을 영원히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다윗의 삶은 그 누구보다 위험하고 파란만장했지만하나님께서는 어디서나 그를 보존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다윗은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다니고창칼이 달려드는 위험한 전쟁터를 수도 없이 누비고 다녔지만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길에서 다윗을 지켜주셨습니다우리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다윗이 자신의 안전이나 안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고오직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일어서는 사람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두 번째로 다윗이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모든 노략물과 바쳐진 조공을 모두 주의 집을 건축하는 일을 위해 봉헌할 만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세 번째로 다윗이 타협하거나 물러서거나 현재의 상황에 머물러 있지 않고신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단의 공의와 정의를 집행하는 길을 걸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러한 과정은 원하지 않은 채하나님께서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그를 보존하셨다는 결과만을 원할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오늘 우리들 자신에게또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장 안전한 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안전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유익을 추구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계산하는 삶이 아니라나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나 자신을 기꺼이 드리는 삶인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리의 길에서 물러서거나 타협하지 않고내가 아는 만큼배운 만큼주님께서 알려주신 만큼순종하며 따라가는 공의와 정의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지금 이 순간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합니다그래서 어디서나 우리와 동행하시며우리를 보존하시는 주님을 경험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어디를 가든지주께서 보존하시는 사람으로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9.03.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4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삼하 7:27-29)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7장입니다사무엘기하 7장 27-29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27 오 만군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주께서 주의 종에게 계시하사 말씀하시기를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하셨사오니 그러므로 주의 종이 주께 이 기도를 드려야 함을 마음속으로 알게 되었나이다.

28 이제오 주 하나님이여주는 그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은 참되나이다주께서 이 선한 일을 주의 종에게 약속하셨사오니

29 그런즉 이제 주께서 주의 종의 집에 복 주시기를 기뻐하사 그 집이 주 앞에 영원토록 있게 하옵소서오 주 하나님이여주께서 그것을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복으로 주의 종의 집이 영원토록 복을 받게 하옵소서하니라.

저는 오늘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복을 구하는 마음

인류 역사 가운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삶의 방향이 있다면한 글자로 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다섯 가지로 주제를 나누어서 오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우리는 가정이 화평한 사람을 보면 가정복을 받았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잘 만나는 사람을 보면 사람복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크게 노력하지 않았는데 돈을 잘 버는 사람에게는 재물복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우리는 새해 인사를 할 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면서 서로 복을 빌어줍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도 인생이 자기 생각이나 계획대로자기 노력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아왔습니다그래서 복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결국 여러 가지 종류의 기복신앙즉 복을 비는 종교적 믿음을 발전시켜왔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밤하늘 보름달 아래 정안수를 떠놓고 비나이다비나이다.”하면서 지극 정성으로 복을 빌면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준다는 기복신앙이 전래되었습니다.

또 세계 여러 나라마다 소를 섬긴다든지고양이를 섬긴다든지원숭이를 섬긴다든지심지어 쥐나 메뚜기의 형상을 만들어 섬기면서 복을 비는 다양한 모습들도 볼 수가 있습니다돼지 머리를 올려놓고 콧구멍에 돈을 끼워 넣으면서 절을 하면 물질적인 복을 받는다든지어떤 유명한 위인의 동상의 오른발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든지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든지심지어 어떤 희귀한 동물의 뼈를 목걸이로 만들어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안전하다든지하는 등의 기복신앙은 전 세계적으로 어디서나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최근에는 세계적인 부자인 만수르의 사진을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지정하거나잠잘 때 머리맡에 붙여두면 재물복을 받을 수 있다는 말까지도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사람이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우리는 복을 받기를 원하는 마음 자체가 악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여기 보면 다윗도 하나님께 영원토록 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또 야곱도 얍복 강에서 주님과 씨름을 하면서나에게 복을 주지 않으시면 절대 놔드릴 수가 없다고 주님께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아브라함 그 자신이 복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또 시편의 많은 말씀들을 보면복 있는 사람이 과연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해서 자주 말씀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아마도 미신적인 기복신앙에 대한 반작용으로축복이나 복을 받는 것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나지나친 조심성을 가지게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이유는첫 번째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들에게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그리고 두 번째로 그들이 구하는 복이 잠시 동안 살아갈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본문의 다윗처럼다른 누군가에게가 아니라오직 만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복을 구하고,또 이 땅에서 썩어져버리고 불타버릴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의 영원한 복을 구한다면그것은 마땅히 우리가 구해야 하는 복이고하나님께서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주목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의 삶을 복주시기를 원합니다또 저의 가족들과 또 저의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한없이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너무나 사랑하는 우리교회의 주일학교중고등부 학생들의 앞길에 주님의 복이 임하기를 원하고또 우리 성도님들 모두 삶 속에서 주님의 크신 복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의 복 가운데 걷기를 원하고또한 주님 앞에 갔을 때영원한 왕국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성도님 여러분들도 원하십니까아멘.

 

그렇다면 지금부터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과연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인가그리고 그 복이 어떠한 복인가를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다윗의 원함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7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왕에게 사방에서 안식을 주시고 그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사 왕이 자기 집에 앉아 있을 때에

왕이 대언자 나단에게 이르되이제 보라나는 백향목 집에 거하나 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거하는도다하매

나단이 왕께 이르되께서 왕과 함께 계시오니 가셔서 왕의 마음속에 있는 바를 다 행하소서하니라.

우리는 벌써 이 말씀에서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제 드디어 왕이 된 다윗에게 사방에서 안식을 주셨고그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셨습니다그리고 이제 다윗은 드디어 자기 집에서 편안히 앉아 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그 동안 그의 삶은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망과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서러움과 억울함과 서글픔이 가득했던 그의 삶은 이제 안식과 풍요를 누리는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다윗은 두로 왕 히람이 보낸 백향목으로 고급스럽게 지은 왕의 궁전에 거하면서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렵고 힘들 때는 주님을 긴급히 찾습니다그러나 다시 인생길이 즐겁고 축복이 넘칠 때우리는 곧 주의 은혜를 잊어버리다가... 주님과 별로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안식 가운데 우리의 진정한 믿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고난과 역경 중에서는 주님을 찾지 아니할 사람이 없습니다다급한 위기의 순간에는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 말했던 무신론자도 하나님을 찾는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에 복을 주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다윗이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그는 천연요새였던 예루살렘 도성의 백향목 집에 앉아서 이제 평안한 안식을 누리게 되면서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취미 활동에 열중하거나자기 왕국에 마음이 집중되어서 더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짓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그는 연회를 베풀거나 향락을 즐기지도 않았습니다그는 아무런 문제나 걱정거리가 없고 사방에서 안식이 가득하던 바로 그 시점에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만필요한 순간에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했고어떻게 해서든지 더 좋은 것을 주님께 드리고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내가 원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주실까 안 주실까의 단계가 아니라여유만 주어지면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다윗은 자기중심의 삶이 아니라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2절에 보면다윗은 자신의 안식을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은 대언자 나단과 교제하면서,나는 이렇게 좋은 백향목 집에 거하는데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거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하였습니다다윗은 얼마 전에 하나님의 궤를 다만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고자기 집보다 더 좋은 주님의 집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잠언 8장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고 복을 주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더럽고 죄가 많은 가와 상관없이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를 용서하시고 받아주시고 사랑하셨습니다여기에는 차별이 없었고조건도 없었습니다그렇기에 우리가 영원한 지옥 불에서부터영광의 하늘나라로 옮겨지는 놀라운 구원을 받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우리와 같은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권능으로 부활하셔서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우리가 찬양하며 따르기를 원합니다아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구원에 있어서 차별이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그런데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바로 이 잠언 말씀에서 매우 인상 깊은 말씀을 볼 수가 있는데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우리가 모든 계명의 첫째 계명처럼마음을 다하고힘을 다하고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모든 것보다 첫째로 사랑하면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더 크고 놀라운 영광과 복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위급할 때 주님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평안하고 안식 중에 거할 때에도 주님을 구하고 찾았던 것처럼우리도 고난 중에 있을 뿐만 아니라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주님을 구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의 응답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상 17장 3,4절을 보시겠습니다.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니라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고하기를가 이같이 말하노라너는 나를 위해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이 날낮에 다윗이 주님의 집을 짓고자 할 때나단은 왕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대로 다 행하라고 다윗을 격려하였습니다그런데 바로 그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셔서다윗에게 주의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고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다윗의 이같이 귀한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첫 번째 응답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역대기상 22장 8-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큰 싸움을 많이 하였느니라네가 내 눈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보라네게 한 아들이 태어나리니 그는 안식의 사람이 되리라내가 그에게 안식을 주고 사방에 있는 그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리라그의 이름이 솔로몬이 되리니 내가 그의 날들에 화평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주리라.

10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하리라그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어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우리라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주님 앞에서 피를 많이 흘린 전쟁의 사람임으로 주의 집을 건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새로운 계획을 제시하여 주셨는데그것은 바로 그의 아들 솔로몬이 주의 집을 건축하는 것입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게 안식과 화평과 안정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7장으로 돌아오셔서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전에 내가 재판관들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고 또 너로 하여금 네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 안식하게 하던 때 이후와 같이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리라또한 가 친히 너를 위해 집을 세우리라고 네게 말하노라.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가 친히 다윗을 위해 집을 세우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이 하나님을 위하여 집을 짓고자 하였을 때반대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한 영원한 왕좌와 집을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우리 함께 15,16절도 보시겠습니다.

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물리친 사울에게서 내 긍휼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 떠나게 하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하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다윗에게 결코 빼앗기지 않을 영원하고 확실한 긍휼을 약속하고 계십니다그것은 바로 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과 왕국과 왕좌를 영원히 세우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한 것은 하나님의 궤를 위해 휘장이 아닌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뿐이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친히 다윗을 위한 영원한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우리 함께 사도행전17장 24,25절을 보시겠습니다.

24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라.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십니다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할 필요가 없는 분이십니다사람들의 손을 통해 어떠한 섬김이나 경배를 받을 필요가 없으시고,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이나 솔로몬이 만들어 드리는 어떠한 집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안식 중에 있을 때에먼저 주님을 구하고 찾았을 때감동을 받으셨고다윗의 그 사랑스러운 마음에 따라 넘치게 보상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복을 얻기 위해서 계산적으로 이러한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은 다만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양치기 소년에 불과하였던 자기를들어 올리셔서 복 주시고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는 왕으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모든 위기의 순간에 자기와 동행하여 주신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라도 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이러한 다윗의 작은 소망과 사랑의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케 하였고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그것은 다윗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온 자발적인 섬김과 드림이었기 때문에 주님이 기뻐 받으셨습니다우리가 과연 모든 것을 소유하신 완전하신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 기쁘시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그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자원하는 마음과 사랑인 것입니다.

 

 

** 복의 특징

그렇다면 우리 함께 다윗이 받은 복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열왕기하 8장 16-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오년에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었을 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이 통치하기 시작하니라.

17 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삼십이 세더라그가 예루살렘에서 팔 년 동안 통치하니라.

18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걸으며 아합의 집과 같이 행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의 아내가 되었기 때문이라.그가 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으나

19 그럼에도 께서 자신의 종 다윗과 그의 자손들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다윗으로 인하여 유다를 멸하려 하지 아니하셨더라.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 왕의 6대손으로 다윗 왕의 왕좌를 이어받은 여호람 왕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예루살렘에서 8년 동안 유다를 통치하였는데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여호람 왕의 행적으로만 보자면하나님께서 그를 멸하실 뿐만 아니라그의 가문을 완전히 끊어버리기에 마땅하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인하여 유다를 멸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다윗이 받은 복은 이렇게 놀라운 것이었습니다다윗이 얻은 확실한 긍휼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그의 자녀들과 후손들까지도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만약 나 자신만이 아니라우리의 자녀들과 후손들까지도 주님 앞에 긍휼을 입고은혜를 입기를 원한다면,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걸어야 합니다주님께서는 우리의 자원하는 사랑과 섬김을 원하십니다.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고난 중에 있든지안식 중에 있든지 한 결 같이 주님을 먼저 찾고 구하기를 원하십니다형식적으로가 아니라종교적으로가 아니라참되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다가오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는 어떠한 방법과 수단을 얻기 위해유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정말 살아계신 하나님 그 자신을 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단순히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든 것이 아니라정말 마음에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다윗에게 임한 복은 그 자신에게 만이 아니라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 다윗의 예비함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상 22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보라내가 고난 중에 의 집을 위해 금 십만 달란트와 은 백만 달란트를 예비하고 또 놋과 쇠는 풍족하여 무게를 달 수 없을 만큼 예비하였으며 또 재목과 돌들을 예비하였으니 너는 거기에 더할지니라.

다윗은 왕의 자리를 솔로몬에게 물려주면서자신이 주의 집을 직접 건축할 수는 없었지만 많은 재료들을 예비하였으니그것들에 더하여서 주의 집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다윗은 자신의 생각대로 직접 주의 집을 건축하지 못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 너는 피를 많이 흘린 자이니 건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다윗은 이러한 일로 하나님께 마음이 상할 수도 있었고서운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다윗이 일부러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골리앗을 처음 죽인 것으로부터 시작해서언제든지 주님을 위하여 전쟁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일을 개의치 않았습니다다윗은 정말 주님을 사랑했고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다 기쁘게 받았습니다다윗의 목적은 으리으리한 주의 집을 건축하고내가 지었다고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데에 있지 않았습니다다윗의 목적은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다윗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역할에 따라주님께서 제한하신 모든 환경에 따라 최선을 다해 주님의 일을 예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도 또 다시 한 번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를 볼 수가 있습니다.

 

 

** 죄들이 용서받는 복

이제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다윗이 받은 가장 큰 복그리고 우리에게도 임하였던 동일한 복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우리 함께 시편 32편 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자기 범법을 용서받고 자기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영 안에 간사함이 없고 께서 불법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복을 받은 다윗이 직접 시를 지으면서누가 과연 복이 있는 사람인가를 선언하고 있습니다.다윗이 말하는 복이 있는 사람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자기 범법을 용서받고 자기 죄가 가려진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영 안에 간사함이 없고 주께서 불법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범법을 저질렀는데 용서 받고죄가 나타났는데 가려지고불법을 행하였는데 주께서 불법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복을 받았고우리도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하여 이러한 놀라운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들이었습니다그런데 그러한 나를 대신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권능으로 부활하셨습니다나의 모든 죄 값을 주님의 피 값으로 지불하셨고우리를 용서해 주셨습니다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미 받고누리고 있는 영원한 복 중의 복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의 놀라운 복을 은혜로 허락하여 주신 주님을 우리가 찬양하며 사랑하기 원합니다.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주께 내 죄를 시인하고 내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며 또 이르기를내 범죄들을 께 자백하리라하였더니 주께서 내 죄의 불법을 용서하셨나이다셀라.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를 또 다시 한 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용서와 긍휼의 놀라운 복은 자기 죄를 정직하고 겸손하게 시인하고 숨기지 아니하며자백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날마다의 삶 속에서 넘어질 때마다실수할 때마다그것을 정당화하고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정직하게 인정하고 버리면서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 복으로 이끄심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복을 받은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하나님의 마음에 쏙 드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과 시련 중에서 주님을 붙들었을 뿐만 아니라안식과 평안 중에도 자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자신의 뜻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고자기의 계획이 변경되고 틀어질 때에도 기쁘게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범죄하였을 때 불법을 숨기지 아니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시인하고 자백하는 사람이었습니다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사랑하셨고그에게 복을 주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다윗에게 임한 복은 다윗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대대로 그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들에게도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마태복음25장 34절을 살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에 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오라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너희는 세상의 창건 이후로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우리의 복된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왕국의 영광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다윗에게 왕좌를 예비하시고 복을 주셨던 것처럼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예비된 왕국과 통치의 놀라운 영광과 복을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주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과 동행하며주님을 따르기를 원합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온 영광과 복을 모두 받아서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8.2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3

하나님의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을 위한 섬김(삼하 6:1-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6장입니다사무엘기하 6장 먼저 1-3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서 택한 모든 사람 삼만 명을 다시 함께 모으고

다윗이 일어나 유다의 바알레에서 나와 자기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려 하였는데 그 궤의 이름은 그룹들 사이에 거하는 만군의 의 이름으로 불리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기브아에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서 그 궤를 가지고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히오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그 다음으로 6-8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에 소들이 하나님의 궤를 흔들므로 웃사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 궤를 붙들었더니

의 분노가 웃사를 향해 타올라 하나님께서 그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를 거기서 치시매 그가 거기서 하나님의 궤 옆에서 죽으니라.

께서 웃사를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니라그가 그곳의 이름을 베레스웃사라 하니 이 날까지 이르니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을 위한 섬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우리는 때로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고 나서칭찬이나 고마움의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왜 그랬느냐고 비난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내 마음에서는 좋은 의도로 한 일인데그 일이 상대방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거나오히려 손해가 되는 경우에 그런 일이 발생합니다그런 일은 정말 발생하지 말아야 하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왜냐하면상대방도 안 좋고상대방을 위해 그 일을 한 나 자신도 안 좋기 때문입니다서로 좋자고 한 일인데서로가 다 안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기 전에먼저 상대방을 정확히 이해하고 알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사탕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사탕을 줄 것이 아니라그 사람이 사탕대신 초콜릿을 좋아한다는 것을 빨리 알아서 초콜릿을 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자신의 새로운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옮겨놓고바로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에서 명하신 모든 헌물을 드릴 뿐만 아니라주님께 여쭙고주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이 일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어서그 일이 하나님께도 안 좋고다윗 자신에게도 안 좋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할 텐데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이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무엘기하 6장의 말씀을 잘 살펴보는 일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오늘의 말씀을 통해서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위해서형제자매들을 위해서 섬기는 일들이 과연 섬김으로써 받아들여지기에 합당한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조언을 구하라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도성으로 옮겨오고자 하였습니다그 의도는 매우 선하고 좋은 것이었습니다다윗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고 싶었고더 친밀하게 동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그러면 먼저 다윗이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였는가를 살펴보시겠습니다역대기상 13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천인 대장들과 백인 대장들과 모든 지도자들과 의논하고

다윗이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이르되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그 일이 주 우리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면 우리가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들과 또 그들과 함께 그들의 도시와 주변 지역에 거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사람을 널리 보내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다시 옮겨오자사울 시대에는 우리가 그 궤 에서 여쭙지 아니하였노라,하매

그 일이 온 백성의 눈에 옳게 보이므로 온 회중이 자기들이 그대로 행하겠다고 말하매

 

다윗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천인 대장들백인 대장들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함께 의논하였습니다.또한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너희가 좋게 여기고또 그 일이 하나님에게서부터 나왔으면레위 사람들을 예루살렘에 모으고하나님의 궤를 옮겨오자고 말하였습니다또한 사울 시대에는 궤 앞에서 여쭙지 않았음을 지적하였습니다다윗이 하고자 하는 이 일은 온 백성의 눈에 옳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과거에 모세가 광야에서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대언자 사무엘이 아직 어린 아이였고엘리 제사장이 그들을 재판하던 때에 주의 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빼앗겼던 바로 그 궤를 통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다곤 신을 치셨고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온갖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결국 블레셋 사람들은 주의 궤를 수레에 싣고젖먹이 송아지를 가진 암소들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하였는데이 어미 암소들은 새끼들이 있는 자기들의 땅으로 가지 않고울면서주의 궤가 원래 있던 벧세메스 땅으로 향하여 갔고결국 이스라엘 땅으로 반환되었습니다그러나 주의 궤에 대하여 무지하던 이스라엘의 벧세메스 사람들은 함부로 주의 궤를 열어보았고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결국 하나님의 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보관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은 새로운 왕으로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 수도로 가져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그런데 여러분우리가 지금 읽은 역대기상 13장 1-4절까지 말씀 중에서 혹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정말 이상합니다지금까지 다윗이 무슨 일을 하든지습관처럼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그것은 바로주님에 여쭙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지금 여기서는 이상하게도 다윗이 주님께 여쭙지를 않고 있습니다그러면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즉 사람들과’ 의논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어찌하여 다윗은 주님께 묻지 않고 사람들과만 의논을 하였던 것일까요?

 

물론 우리는 어떤 일들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의논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넘어져도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이 있느니라.라는 잠언 11장 14절 말씀처럼성경은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많은 조언자들 중에서 절대로 빠뜨리지 말아야 할 조언자가 있습니다우리 함께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우신 이조언자강하신 하나님영존하는 아버지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사야서는 이 땅에 한 아들로 태어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을 해주고 있는데그 때 바로 우리 주님에 대하여 조언자, Counseller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조언을 구했어야 하는 분은평소에 잘 했던 것처럼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만약 하나님께 조언을 구했더라면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할 적절한 시간과 방법에 대하여 아주 자상하게 말씀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도대체 왜 하나님께 여쭙지 않았을까요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인 것입니다하나님께 여쭤볼 필요도 없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하시는 일이고하나님께서 당연히 복을 주실 일이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여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모든 섬김은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하나님의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하나님으로부터 나온하나님의 방법대로의하나님 자신의 일이어야 하는 것입니다나에 의한나를 위한나의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너무나 영적인 일들을 하면서그것이 너무나 옳은 일이고선한 일이고좋은 일이고영적인 일이기 때문에주님께 묻거나또는 목사님이나 다른 형제자매님들과 거의 의논하지 않고 즉시 시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내가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부담이 생겼다든지누구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사람이 없으니 반드시 나라도 해줘야만 한다든지이 일은 너무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인데 아무도 안하는 것 같다든지우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어떤 일들을 행합니다.

 

때로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그 섬김을 받아주시고그 의도 자체를 귀하게 여겨주셔서모든 일들이 은혜롭게 진행되도록 섭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배움을 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모든 일들이 여과 없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데우리의 바로 그 영적인 섬김을 통하여 누군가가 상처를 받거나마음이 어려워지거나믿음에서 물러나게 되는 일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하기 전에 반드시 주님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그것이 영적인 일일수록당연한 일일수록중요한 일일수록정당한 일일수록가장 좋은 조언자가 되시는 주님께 여쭈어야 합니다우리가 주님께 조언을 구했을 때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내 마음속에 주시는 평강과 주변 환경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형제자매들의 조언을 통하여 나에게 응답해 주십니다우리는 나 자신이 사탄에게 속임을 당하기 쉬운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은 겸손히 인정하고여러 형제자매들의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통 언제 조언을 구하지 않는가를 보면듣고 싶지 않은 조언이 있는 경우입니다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따르고 싶은 마음보다이미 내게 좋은 나의 뜻을 굳게 붙들고 있기 때문에반대로 조언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고,반대로 조언하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조언을 구하지 않는 경우는 마음이 높아지고 교만한 경우입니다나에게 조언을 하는 형제자매들이 나보다 영적으로나사회적으로나경험적으로지식적으로 수준이 낮고 부족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조언을 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나는 너무나 분명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영적인 상태에 있고저 형제는 너무나 육신적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언을 구하지 않고듣지도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위한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의 일들을 섬기기 원한다면우리는 반드시 주님께 묻고,형제자매들과 함께 교제해야 합니다그리고 그 모든 조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또 다시 최종적으로 주님 앞에서 묻고 응답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백성들과 의논할 뿐만 아니라전에 하던 대로 주님께 여쭈었더라면웃사가 죽지도 않았을 것이고다윗이 낙담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주님을 섬기는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야하고하나님에 의해 진행되어져야 하고하나님을 섬기는형제자매들을 섬기는 나는 순종하는 종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내가 답답하거나 못마땅해서 또는 가만히 있는 것을 못 참아서 시작되는 섬김은안타깝게도 나를 위한나의 의한나의 섬김입니다그것은 자기만족이고 자기 성취이지 섬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들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많은 조언자들에게 겸손히 귀를 열기를 원합니다그리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조언자가 되시는 주 하나님께 여쭙기를 원합니다그래서 가장 안전한 길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귀한 섬김의 길을 가게 되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6장으로 돌아오셔서 9-1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를 두려워하여 이르되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하고

10 이에 의 궤를 옮겨 자기에게로 곧 다윗의 도시 안으로 가져가려 하지 아니하고 궤를 옆으로 돌려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으로 가져갔으므로

11 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렀고 께서 오벳에돔과 그의 온 집안에게 복을 주셨더라.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보고 두려워하였고또 역대기상 말씀을 보게 되면그 일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다윗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고 복 주실 줄 알았는데너무나 마음이 상했고또 자기 목숨도 잃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그래서 다윗은 궤를 옮기던 도중에 일을 중단하고그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오벳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궤를 맡겨두고 떠나갔습니다오벳에돔은 주의하여 주의 궤를 보관하였고하나님께서는 오벳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주의 궤는 오벳에돔의 집에 석 달 동안 머물러 있었고다윗은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던 것인가우리 함께 민수기 7장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고핫의 아들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속한 일 곧 성소에서 섬기는 일이 그들의 어깨로 나르는 것이기 때문이더라.

하나님께서는 레위 지파 가운데서 고핫 자손을 특별히 선택하셨고성소에서 섬기는 모든 기구를 어깨로 나르는 섬김을 지정하셨습니다고핫 자손 역시 레위 지파였지만그들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성소의 모든 기구를 어깨로 나르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상 15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자기를 위해 다윗의 도시에 집들을 짓고 또 하나님의 궤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며 그것을 위해 장막을 치고는

그때에 이르되레위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궤를 나를 수 없나니 그들을 께서 택하사 하나님의 궤를 나르고 영원토록 그분을 섬기게 하셨느니라하니라.

다윗이 자기가 의 궤를 위해 예비한 궤의 처소로 궤를 가지고 올라오기 위해 온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함께 모으니라.

하나님의 궤가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러 있었던 3개월 동안 다윗은 낙담하여 아무것도 안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다윗은 실패를 맛보고패배를 맛보았지만포기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은 3개월 동안 예루살렘 도시를 정비하면서 집도 짓고하나님의 궤를 위한 처소도 예비하였습니다그리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고민하면서또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해답을 발견해 내었습니다다윗은 2절에서 레위 사람들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나를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3절에서 다윗은 다시 한 번 온 이스라엘을 예루살렘으로 모았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상 15장 13-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처음에는 너희가 그것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합당한 규례대로 그분을 찾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하매

14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주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올라가기 위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15 모세가 의 말씀에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사람들의 자손들이 막대들로 하나님의 궤를 들어 어깨에 메니라.

다윗은 처음에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백성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그리고 특별히 레위 사람들을 불러다가 처음에 너희가 그것을 했어야 하는데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합당한 규례대로 찾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당하였음을 선언하였습니다그리고 이제는 모세가 주의 말씀에 따라 명령한 대로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도록 명령하였습니다이제야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이 귀한 일이,하나님의 규례대로하나님의 방법대로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것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일은 그 시작과 과정과 완성이 철저히 하나님께 속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오늘날 우리는 결과 중심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그 과정이 어떠하든 일등만 하면 되고이기기만 하면 되고어떤 일을 완수해 내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결코 그러한 방식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결과만을 보고 평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면 됐지무슨 수레로 옮기나레위 사람 어깨로 옮기나 그게 중요하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섬기는 분이 나 자신이 아니라하나님이시라면우리는 모든 것을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시작바로 의도와 동기를 중요하게 보십니다아무리 선하고 영적인 일이라도 그 시작이 순수하지 못하다면그 일의 동기가 감추어진 나의 영광이나나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라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그 일을 왜 하느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의 과정을 중요하게 보십니다결과가 아무리 좋더라도 그 과정이 주님의 말씀대로그리고 육신이 아닌 성령으로 진행되어졌는가를 반드시 평가할 것입니다그렇지 않다면 불평 가운데니느웨 사람들이 정말 멸망하기를 바라는 가운데심판을 외쳤다가 온 니느웨 도시를 하루만의 설교로 회심시킨 요나와 성령 충만한 가운데 설교하였다가 사람들을 회심시키기는커녕 돌에 맞아 순교하였던 스데반 집사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점수가 얼마냐그래서 성공했느냐결과를 보시기 전에 반드시 과정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제 결과와 열매를 또한 보실 것입니다잘 시작하고잘 진행하였는데끝까지 신실하게 그 일을 마쳤는가를 반드시 평가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볼 수 있는 두 번째 교훈은 바로 실패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었습니다다윗은 자신이 잘못 섬긴 것을 가지고하나님께서 심판하셨을 때하나님을 향하여 서운 마음을 품고다시는 궤를 옮기지 않겠다는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과정에서 많은 실수를 합니다좋은 의도로 교제를 했다가 오해가 생겨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주었는데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좋은 정보를 알려주었는데 교만하게 가르친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다른 지체들이 교제를 나누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해주었는데나만 보면 피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이처럼 우리는 때로 억울하기도 하고서럽기도 하지만,따지고 보면 정말 실수도 많고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은 실패 속에서 다윗을 본받기 원합니다우리는 이 땅에서 실수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실수를 안 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오해나 비난을 단 한 번도 받지 않으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완전하신 예수님도 비난을 받으셨고완전하신 예수님도 고난을 당하셨는데하물며 실수투성이인 우리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목적은 실수를 안 하고오해를 안 받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목적은 실수도 하고넘어지고오해도 받고고난도 당하고눈물도 흘릴지라도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을 위한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온전한 섬김으로 주님을 섬기고형제자매들을 섬기는 것입니다혹시 이 자리에 주님을 섬기시다가내가 서툴러서든지또는 오해가 발생하여서든지상처받고 의기소침하고,낙담이 되신 분이 계십니까다 잊어버리시고다 털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실패는 우리를 겸손하게 해줍니다실패는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잡혀야 할 부분들을 볼 수 있게 해줍니다다윗에게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다윗에게 실패는 주님의 뜻을 더 분명히 알 수 있는 배움을 주었습니다분명히 실패 그 자체는 아프고 쓰라린 것이지만다윗은 그것을 포기하는 계기로 삼지 않고더욱 주님 앞에 전진하여 나아가는 계기로 삼았습니다실패는 재앙이 아니라축복이라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도 그러하기 원합니다한 번 넘어졌다면두 번 일어나고두 번 몰랐다면세 번 제대로 배우면서 그렇게 더 온전히 주님을 따르는 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오늘 하나님께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우리를 실패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 미갈의 비난

이제 우리 함께 다시 사무엘기하 6장으로 돌아오셔서 14-16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주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니 그때에 다윗이 아마 에봇을 입었더라.

15 다윗과 이스라엘의 온 집이 이같이 크게 소리를 내며 나팔 소리와 함께 의 궤를 가져오니라.

16 의 궤가 다윗의 도시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주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여겼더라.

다윗은 주의 궤가 예루살렘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웠습니다또한 다윗은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이스라엘의 온 집이 크게 소리를 내며 음악을 연주하면서 주의 궤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그런데 그 때 이러한 다윗을 업신여기면서 바라본 사람이 있었는데바로 다윗의 아내인 미갈이었습니다또한 20-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0 그 뒤에 다윗이 자기 집안사람들을 축복하러 돌아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오늘 이스라엘 왕이 어찌나 영화로우시던지 오늘 자기 신하들의 계집종들 눈에 몸을 드러내시되 마치 하잘 것 없는 자들 가운데 하나가 염치없이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드러내셨도다하매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그것은 주 앞에서 한 것이라그분께서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 앞에서 나를 택하시고 나를 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치리자로 세우셨으니 그러므로 내가  앞에서 놀리라.

22 또한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나 스스로 보기에 천하게 될지라도 네가 말한 계집종들에게서는그들에게서는 내가 존경을 받으리라하니라.

여기에서 다윗은 주님을 따르다가 업신여김을 당하였고염치없다는 말도 들었고어찌나 영화로우시던지 라고 하는 비아냥거리는 말도 들었습니다이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르다가주님을 섬기다가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고조롱을 당할 수도 있고비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때로는 우리가 실수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당하기도 하지만때로는 정말 주님을 따르는 것 그 자체로 인해 비난을 당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을 비난한 사람은 다윗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인 바로 그의 아내였습니다이처럼 우리의 섬김에 대하여 지적을 하고판단을 하면서우리의 의욕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닙니다우리가 오늘 섬기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면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일꾼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주님을 섬기는 길에 고난은 당연히 있는 것입니다베드로 사도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여기지 말고감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에 의한하나님을 위한하나님의 일을 섬기고 있다면하나님께 칭찬받기를 원합니다사람들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격려해 준다면참으로 감사한 일이지만그렇지 않다할지라도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따르고 섬기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6장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오늘 우리의 섬김은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어야 합니다나에 의한 섬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해 시작되고 진행되고 마무리되어지는 섬김이어야 합니다그리고 나 자신의 만족이나 유익을 위한 섬김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섬김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받으시는 합당한 섬김을 하기 위하여 참 조언자이신 주님께 여쭙고 응답을 받아 순종하는 길로 걸어가기를 원합니다실패하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더 큰 배움과 온전함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그리고 비방과 업신여김을 받을지라도 감사하며 주님을 따라가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더욱 참된 섬김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아멘

2014.08.20.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2

앞서 가시는 주님(삼하 5:2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5장입니다사무엘기하 5장 2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뽕나무 수풀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가는 소리를 듣거든 재빨리 움직이라그때에 가 너보다 앞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하시니라.

저는 오늘 앞서 가시는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무엘기하 5장 24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긴급히 따라오라고 작전을 지시하시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뽕나무 수풀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가는 소리를 들으면 재빨리 움직여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여기에서 영어로 “mulberry”라고 하는 이 뽕나무는 최대높이가 10미터까지 자라는 아주 큰 나무라고 합니다이렇게 높은 뽕나무 수풀 꼭대기에서 간다는 것은 나무를 밟고 걷는다기보다는 하늘을 날고 비행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이것을 어떤 목사님은 약간의 유머를 섞어서 미확인 비행물체이다영어로는UFO이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뽕나무 수풀 위에서 가시는 분이 미확인이 아니라바로 분명하게 확인되신 하나님 자신이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블레셋과 첫 번째 공식적인 전투를 벌이는 다윗 왕을 위하여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시는데그것은 바로 주께서 친히 앞서 나가셔서 블레셋 군대를 치시고모든 전쟁을 지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주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또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주님께서 앞서 가신다는 말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 앞서 가시는 분이시기에우리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우리가 매일 걸어가는 믿음의 삶은 바로 앞서 가시는 주님앞에서 인도하시는 선하신 목자의 음성을 따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가시는 분이심을 곳곳에서 기록하여 주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먼저 신명기 130-33절을 보시겠습니다.

30 너희보다 앞서가시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눈앞에서 행하신 모든 것에 따라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31 광야에서 너희가 보았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듯이 주 네 하나님께서 너희가 걸은 모든 길에서 너를 안으사 너희가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하였으나

32 이 일에서 너희가 주 너희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분은 길에서 너희보다 앞서 가시며 너희를 위해 너희의 장막을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신 분이시니라.

성경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서가시는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가시면서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가야 할 길을 보여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듯이 이스라엘을 안고 걸으셨습니다.

 

저도 울퉁불퉁한 길이나높은 턱이 있는 곳처럼 넘어지면 다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에서는 꼭 저의 아들인 호윤이를 안고 걷습니다크게 다치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넘어지더라도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울어도 일으켜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격려하지만정말 위험한 곳에서나다친 경우에는 즉시로 안아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듯이 이스라엘을 모든 길에서 안고 걸으셨고또한 앞서나가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그렇게 우리를 앞서 나가시며우리를 안고 걸으십니다.

 

우리 함께 시편 59편 10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내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나보다 앞서 가시리니 곧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내 소원이 내 원수들 위에서 이루어짐을 보게 하시리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앞서 가신 분이셨고오늘 우리가 살펴볼 다윗의 생애 가운데서도 앞서 가셨으며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다가 언제 넘어지는가를 보면앞서 가시는 주님의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내가 앞서 나가는 경우입니다또는 앞서 가시는 주님께서 재빨리 따라오라고 말씀하실 때머뭇거리거나 주저앉아버려서 따라가지 않는 경우에 우리가 넘어지고 방황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가셔서 우리의 모든 길을 예비하시고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을 발견하고이러한 주님을 새롭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 왕이 된 다윗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5장 1-5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말하여 이르되보소서우리는 왕의 골육이니이다.

또한 지나간 때 곧 사울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나가게 하고 들어오게 하신 이는 왕이었고 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며 이스라엘의 대장이 되리라하셨나이다하니라.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앞에서 그들과 동맹을 맺으니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니라.

다윗이 삼십 세에 통치하기 시작하여 사십 년 동안 통치하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였더라.

이제 다윗은 믿음의 오랜 훈련의 과정을 다 마치고마침내 처음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바로 그 부르심대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이 모든 과정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다윗이 한 일이라고는 오직 앞서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이 처음 골리앗과 맞서게 되었을 때그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왕이 되어야겠다는 계산이 들어있지 않았습니다요나단과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을 때사울의 딸 미갈과 결혼하였을 때그는 어떻게 왕좌를 차지할 것인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다윗이 한 것은 다만 주님을 사랑하고주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주어졌을 때에도다윗은 다만 주님을 따랐습니다다윗은 어떤 기회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고주님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먼저 주님께서 행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하나님께서 앞장서시고 모든 길을 인도하실 때까지내가 먼저 나서지 않고 잠잠히 주님만을 바라며 기다리며 주님과 연합 가운데 머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도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다만 헤브론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바로 그 때 앞서 가시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스스로 먼저 다윗을 찾아와서 왕으로 세우도록 이끄셨던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은 오직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주님의 뜻을 알아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교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말하는지 알리라.

지금 읽어드린 요한복음 7장 17절 말씀처럼우리가 이미 우리에게 밝히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고또 우리의 앞길에 대해서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뜻대로 행하려 하면하나님께서 무엇이 그분의 뜻인지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앞서 가시는 주님의 뜻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 예루살렘 점령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5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과 그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의 거주민들인 여부스 족속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네가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를 없애지 아니하면 여기로 들어오지 못하리라하니라그들은 다윗이 여기로 들어오지 못할 줄로 생각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시온의 강한 요새를 빼앗았는데 그것이 곧 다윗의 도시니라.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누구든지 도랑에 올라가 여부스 족속을 치고 다윗의 혼이 미워하는 자 곧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대장이 되리라하였으므로 그들이 이르기를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하였더라.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벌인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동안 결코 공략하지 못했던 예루살렘 도성을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예루살렘은 가나안 땅의 주요 도시 중 하나였지만이스라엘 백성은 여부스 사람들에게서 이 성을 한 번도 빼앗지 못했습니다예루살렘 도성은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공략하기가 매우 어려운 천연 요새였습니다.

 

우리 함께 여호수아기 15장 63절을 보시겠습니다.

예루살렘 거주민들인 여부스 족속으로 말하건대 유다 자손이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이 날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하느니라.

또한 사사기 1장 21절도 보시겠습니다.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아니하매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이 날까지 예루살렘에 거하느니라.

 

이처럼 이스라엘은 다윗의 시대까지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사무엘기하 5장에 와서야 비로소 다윗이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는 시온의 강한 요새바로 예루살렘을 공략하였던 것입니다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공격하려는 것을 보고 다윗을 조롱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은 천연 요새로서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가 지켜도 지킬 수 있는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아무것도 안 해도 성문만 굳게 닫으면 공략하기가 매우 힘든 도시였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먼저 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를 없애지 않으면 여기로 들어올 수가 없다고 말하면서 다윗을 조롱하였습니다.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5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누구든지 도랑에 올라가 여부스 족속을 치고 다윗의 혼이 미워하는 자 곧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대장이 되리라하였으므로 그들이 이르기를눈먼 자와 다리 저는 자는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하였더라.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의 그 말을 받아서누구든지 도랑에 올라가 여부스 족속즉 다리 저는 자와 눈먼 자를 치는 자를 대장으로 삼겠다고 말하였습니다그리고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역대기상 11장 6절에서는 요압 장군이 가장 먼저 올라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도랑이라는 것은 예루살렘 도성에서 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수구를 말합니다난공불락의 천연요새였지만다윗은 바로 그 작은 도랑을 이용해서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병사 한 명이라도 지키고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작은 통로였는데여부스 사람들의 거만함이작은 물구멍 하나가 온 도시를 함락시키는 열쇠가 되었던 것입니다이처럼 우리들의 믿음의 삶 속에서도우리가 많은 부분에서 강한 요새와 같이 튼튼하게 믿음의 벽을 쌓아 올렸다 할지라도작은 죄와 작은 부분의 타협을 허용하게 될 때그것이 치명적일 수가 있음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에베소서 4장 27절 말씀처럼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여 늘 깨어있기를 원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고이 도시는 그때부터 다윗의 도시라고 불렸습니다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모든 땅을 점령하고예루살렘까지도 정복하는 것이 원래부터 있었던 하나님의 뜻이었는데다윗이 바로 그 뜻을 성취하였던 것입니다.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한 면에서 주님께서 모든 일을 시작하시고 행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또 한 면에서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제시되었을 때적극적으로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을 또한 의미합니다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앞서가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불기둥이 멈추면 머무르고구름기둥이 떠오르면 따라갔습니다우리 함께 민수기 9장 21-22절을 보시겠습니다.

21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머물다가 아침에 떠오를 때에도 그와 같았으니 그때에 그들이 이동하되 밤이든 낮이든 구름이 떠오르면 그들이 이동하였더라.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그 위에 남아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의 장막 안에 머물고 이동하지 아니하다가 그것이 떠오르면 이동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은 구름기둥을 통해 그들을 인도하시며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갔는데하룻밤을 머물든지이틀이든지한 달이든지일 년이든지 구름이 머물 때에는 기다렸고구름이 떠오르면 따라서 이동하였습니다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삶도 이와 같습니다언제 멈추고 언제 가야 하는지우리는 우리 자신이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앞서가시는 주님의 인도를 철저히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원수의 목숨이 바로 내 앞에 있더라도 멈추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그것이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강력한 천연 요새였다 할지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그것을 정복해 내었습니다우리도 이와 같이 주님을 따라가기 원합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로 돌아오셔서 5장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나아가서 창대하게 되었고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더라.

이 모든 일들이 가능했던 이유는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셨던 이유는다윗이 앞서 가시는 주님을 잘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문제가 있다면그것은 내가 돈이 없거나머리가 나쁘거나외모가 부족하거나환경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바로 내가 주님을 잘 따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12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신 것과 또 그분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자기의 왕국을 높이신 것을 깨달으니라.

이제 와서 조금은 새삼스럽지만다윗은 정말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하나님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다윗의 왕국을 높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여기서 다윗의 깨달음이 참 정확하고 훌륭한 점은 바로 무엇을 위하여 다윗 자신이 그렇게 되었는가를 정확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그것은 바로 다윗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먼저는 주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또한 12절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하나님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된 것임을 온전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께서 우리를 선하게 대해주셔서우리의 일들이 잘 풀리게 될 때나 중심적으로나를 위한 것으로만 깨달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백성을 생각했던 다윗과 같이주님의 양떼인형제자매들을 늘 기억하고 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블레셋과 전쟁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5장 17-1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7 그러나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았다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는 모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올라오매 다윗이 그것을 듣고 요새로 내려가니

18 블레셋 사람들도 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퍼지니라.

19 다윗이 께 여쭈어 이르되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올라가리이까주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하매 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올라가라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하시니

이제 예루살렘 성을 점령하고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는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해 왔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얼마 전에 사울 왕을 무찌르고 이스라엘로부터 큰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사기가 충천하였을 것입니다사울 왕도 잡았는데다윗도 문제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우리가 여부스의 강한 요새를 성공적으로 공략하였을 때새롭게 시작하려는 시점에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한 번의 영적 승리 이후에곧바로 공격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구원을 받은 직후에 마귀의 공격을 받았고새로운 헌신과 영적 승리 뒤에 마귀의 공격을 받아왔습니다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귀의 공격을 받았고말씀을 통해 크게 은혜를 받은 뒤에 공격을 받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마귀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할 것이고특별히 영적 승리 뒤에 방심하기 쉬울 바로 그 때에즉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앞서 가시는 주님이 계셨던 것처럼오늘 우리에게도 앞서 가시는 주님이 계십니다다윗은 어김없이 주님께 여쭈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윗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여전히 다시 올라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세상과 마귀와 죄와 육신의 공격은 여전히 다시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한 번 승리했어도또 다시 우리에게 찾아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주님만을 붙들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 함께 22-25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2 블레셋 사람들이 여전히 다시 올라와 르바임 골짜기에 퍼지므로

23 다윗이 께 여쭈니 그분께서 이르시되너는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습격하되

24 뽕나무 수풀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가는 소리를 듣거든 재빨리 움직이라그때에 가 너보다 앞서 나가서 블레셋사람들의 군대를 치리라하시니라.

25 다윗이 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게바에서부터 네가 게셀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치니라.

다윗은 또 다시 찾아온 블레셋 사람들에 대하여 또 다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하나님께서 처음에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서 습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대로 주님께서 뽕나무 수풀 꼭대기에서부터 앞서 나가실 때재빨리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렇게 다윗이 주님을 따랐을 때승리를 거둘 수가 있었습니다이처럼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앞서 가시면서 따라오라고 말씀하시고우리가 주님을 따랐을 때 승리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똑같은 지역 르바임 골짜기에서똑같은 대적인 블레셋 사람들과 두 번 연속으로 전투를 벌였는데그 때마다 주님께 여쭈었습니다그리고 그 때마다 주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한 번은 올라가라또 한 번은 올라가지 말고 뒤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우리는 평소 우리가 하던 습관이나 고정된 관념대로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따르는 자라면매순간 주님께 묻고 응답을 받아서 가는 새로운 길을 갈 필요가 있습니다.

 

 

** 앞서 가시는 주님

우리 함께 히브리서 6장 19-2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9 우리에게 있는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고 굳건하여 휘장 안에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나니

20 앞서 달려가신 분 곧 예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라 영원토록 대제사장이 되사 우리를 위해 거기로 들어가셨느니라.

성경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앞서 달려가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앞서 달려가셨습니다예수님께서 앞서 달려가신 곳은 바로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막의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였습니다죄인이 들어가면 즉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바로 그곳에예수님께서 먼저 달려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처럼 지성소는 우리에게 소망이 되었고혼의 닻과 같은 확실하고 굳건한 소망이 되었습니다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향해 달려가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우리는 다 멸망을 향해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예수님께서 우리 앞서 달려가셔서우리가 당해야 할 모든 심판과 형벌을 우리 대신 받으셨습니다이러한 좋으신 주님을 우리도 사랑하고 따르기를 원합니다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주님을 우리가 신실하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서 앞서 가시는 주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주님은 우리 앞서 가시며 우리의 모든 길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서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대적들과 싸우시며모든 길에서 우리를 안고 걸으시는 분이십니다.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한 면에서 주님께서 앞서가실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며 머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또 한 면에서는 주님께서 앞서가실 때따라오라고 말씀하실 때머뭇거리지 않고 즉시 재빨리 응답하고 순종하며 적극적으로 자원하여 따라가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는 언제 멈출지언제 움직일지 어떻게 분별할 수가 있을까요참으로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며주님의 뜻을 여쭈어 볼 때에만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앞서가시는 주님을 참되게 따르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길을 선하게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며우리 앞서가시며우리의 모든 길을 예비하시고가장 선한 것들로 신실하게풍성하게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오늘도 새롭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8.0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1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역할(삼하 3:39)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3장입니다사무엘기하 3장 39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일지라도 이 날 약하며 이 사람들 곧 스루야의 아들들이 내게 너무 강하니 께서 악을 행한 자에게 그의 사악함대로 갚으실지로다하니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한 그리스도인은 인생이 연극과도 같다고 말했습니다연극배우는 자기가 왕이 아니라도맡은 배역이 왕이면 왕처럼 말하고 왕처럼 행동합니다연극배우는 자기가 거지가 아니라도맡은 배역이 거지이면 거지처럼 말하고 거지처럼 행동합니다이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지만오늘 나의 감독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에 따라 모든 것이 될 수 있고그 무슨 역할도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우리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지만제가 무슨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감독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이기 때문에저는 최고의 선생님처럼최선을 다해서 그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우리가 무슨 자격을 가졌고무슨 능력을 가졌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슨 역할을 맡기셨는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연극에서 자기가 진짜로 왕이 될 자격이 있어서 왕의 역할을 맡는 배우는 없을 것입니다또 자기가 정말 거지같아서 거지 역할을 하는 배우도 없을 것입니다다만 감독이 왕을 하라고 시켰기 때문에최선을 다해 왕 노릇을 하고감독이 거지를 하라고 시켰기 때문에최선을 다해서 거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이처럼우리 혼의 감독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역할을 안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발견하고감독의 지시대로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라틴어로, “Deus providet”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라는 말인데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불완전함과 실수까지도 모두 사용하셔서하나님 자신의 뜻과 목적을 이루시는 손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바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하나님의 주관하심을 가리켜서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이 되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섭리하심을 통해자신의 뜻과 목적대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나가시는데그 가운데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역할을 볼 수가 있습니다결과적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게 되고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 가는데정작 그 일에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역할을 보면이상한 일들을 벌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서오늘 과연 나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 등장인물

오늘 우리가 살펴볼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먼저 사울의 넷째 아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스보셋을 살펴볼 것입니다그리고 이스보셋의 모든 군대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권력자인 아브넬을 살펴볼 것입니다또 다윗의 편에서는 다윗의 누이였던 스루야의 아들들인 삼총사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 중에서요압과 아사헬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러한 네 명의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기의 뜻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면이스보셋이나아브넬이나요압이나이사헬이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다모두가 다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들을 사용하셔서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의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더라면훨씬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윗이 왕이 될 수가 있었을 것이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처음 읽었던 사무엘기하 3장 39절의 말씀처럼다윗은 자기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일지라도 너무나 약하다고 탄식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럼 지금부터 우리 함께 등장인물들을 한 명씩 살펴보시겠습니다.

 

 

** 이스보셋

먼저 이스보셋은 사울 왕의 넷째 아들이었고요나단의 동생이었습니다이스보셋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브넬의 힘을 의지하여 사울 가문의 왕조를 유지하고자 하였습니다다윗은 아무런 피흘림 없이 평화롭게 왕국이 통일되고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막아서고 나선 자가 바로 이스보셋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요나단처럼 다윗을 인정하고 축복하면서하나님의 뜻에 따라 다윗에게 왕권을 넘겼더라면그의 나머지 인생은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다윗은 마음을 다해 이스보셋을 존중해 주었을 것이고그가 누리기를 원하는 평안한 삶을 최대한 제공해 주었을 것입니다이스보셋은 다윗에게 왕권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던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가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3장 7-1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에게 첩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아이야의 딸 리스바더라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에게로 들어갔느냐하니

그때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로 인해 심히 노하여 이르되내가 개의 머리냐내가 유다를 대적하고 이 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친구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당신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 이 여인에 대한 허물로 나를 비난하는도다.

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 대로 내가 그에게 행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넬에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10 그 맹세는 곧 왕국을 사울의 집으로부터 옮기고 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유다 위에 다윗의 왕좌를 세우는 것이라하매

11 이스보셋이 아브넬을 두려워하여 다시 한 마디도 응답하지 못하니라.

다윗과 이스보셋이 서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그것은 바로 아브넬이 사울의 첩과 음행을 저지른 것이었습니다이것은 단순한 음행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이 일은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이스보셋은 왕이기는 하였지만아브넬이 앞세운 꼭두각시에 불과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왕권에 대한 도전에 대하여 아브넬과 맞서고자 하였습니다그러나 그 결과 이스보셋은 더욱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아브넬은 하나님의 맹세를 언급하면서자기가 바로 그 맹세를 이행하여이스라엘 온 왕국을 다윗에게 넘겨주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이스보셋은 아브넬을 두려워하였고다시 한 마디도 응답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4장 5-8절을 보시겠습니다.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가서 날이 뜨거울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렀는데 그가 한낮에 침상에 누워 있으므로

그들이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거기서 집 가운데로 들어가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 밑을 찌르고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도망하니라.

그들이 집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침실에서 침상에 누워 있었으므로 그들이 그를 쳐서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벤 뒤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평야를 지나 도망하여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지고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 왕에게 이르되왕의 생명을 찾던 왕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를 보소서께서 이 날 사울과 그의 씨에게 내 주 왕의 원수를 갚으셨나이다하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보셋이 암살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그는 낮잠을 자는 동안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다윗은 과거에 자신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고백했던 아말렉 청년을 죽인 것처럼이스보셋을 죽이고 보상을 받으려고 온 레갑과 바아나를 처형하였습니다.

이스보셋은 정말 너무나 허무하고 안타깝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다윗의 명령에 의해서도 아니고다윗의 뜻도 아니었는데다윗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이스보셋이 만약 스스로 다윗에게 왕권을 양도하였더라면그의 나머지 인생은 정말 행복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그 역할을 차지하지 못했고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 아브넬

이제 우리 함께 아브넬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아브넬은 이스보셋에게 화를 낼 때 했던 말과 같이하나님의 뜻이 어떠했는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아브넬은 골리앗을 치고 돌아오는 다윗을 맞이해 사울 왕 앞으로 안내한 사람이었습니다아브넬은 사울과 다윗과 요나단과 함께 왕의 식탁에서 식사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아브넬은 다윗이 아비새와 함께 사울 왕의 창과 물병을 취해 갈 때사울 왕 옆에서 잠을 자다가왕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인해 다윗에게 크게 책망을 들었던 사람이었습니다아브넬은 많은 시간 다윗을 지켜보았고그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아브넬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그러할 때 이스라엘 왕국이 정말 행복할 것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아브넬이 선택한 역할은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을 앞세워 자기 세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장 14-17절을 보시겠습니다.

14 아브넬이 요압에게 이르되이제 청년들이 일어나 우리 앞에서 경기하게 하자하니 요압이 이르되그들이 일어나게 하라하매

15 그때에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속한 베냐민의 열두 명과 다윗의 신하 가운데 열두 명이 수효대로 일어나서 나아가더라.

16 그들이 각각 자기 상대의 머리를 잡고 칼로 상대의 옆구리를 찌르매 그들이 함께 쓰러졌으므로 기브온에 있는 그곳을 헬갓핫수림이라 하였더라.

17 그 날 싸움이 매우 심하였고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패하였더라.

아브넬은 다윗의 군대 대장이었던 요압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습니다처음에는 청년들 열두 명씩을 대표로 서로 싸우게 하였는데그것이 큰 싸움의 시작이 되고 말았습니다아브넬은 여기서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청년들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18-23절을 보시겠습니다.

18 거기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은 발이 들노루같이 가볍더라.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추격하며 갈 때에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라.

20 이에 아브넬이 자기 뒤를 돌아보며 이르되네가 아사헬이냐하니 그가 대답하되그러하다하매

21 아브넬이 그에게 이르되너는 네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쳐서 청년들 가운데 하나를 붙잡고 그의 병기를 빼앗으라하되 아사헬이 치우치려 하지 아니하고 그의 뒤를 쫓으니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너는 치우쳐서 나를 쫓지 말라어찌하여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쓰러지게 하겠느냐그리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에게 얼굴을 들겠느냐하되

23 그가 치우치기를 거절하므로 아브넬이 창 뒤끝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 밑을 찌르니 창이 그의 등 뒤로 나가므로 그가 거기에 쓰러져 그 자리에서 죽으니라아사헬이 쓰러져 죽은 곳에 이른 많은 자들이 가만히 섰더라.

여기서 아브넬은 자신이 시작하였던 싸움에서 도망을 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그리고 요압의 동생인 아사헬에게 추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성경은 아사헬의 발이 들노루같이 가벼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아사헬은 빠른 발로 아브넬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다른 그 누구도 아니라 아브넬 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아브넬은 요압 장군을 두려워했기 때문에그의 동생인 아사헬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그러나 아사헬은 돌이키지 않았고결국 아브넬은 아사헬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이 일을 기억하시면서다음에 진행되는 일들을 보시겠습니다이 모든 일들 뒤에 아브넬은 이스보셋에게 분노하여이스라엘 왕국을 다윗에게 넘겨주고자 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3장 17-21절을 보시겠습니다.

17 아브넬이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대화하여 이르되지나간 때에 너희가 너희를 다스릴 왕으로 다윗을 구하였으니

18 그런즉 이제 그 일을 하라께서 다윗에 관하여 이르시되내가 내 종 다윗의 손으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그들의 모든 원수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리라하셨느니라하고

19 아브넬이 또 베냐민의 귀에 말하며 또 이스라엘이 선하게 여기는 모든 것과 베냐민의 온 집이 선하게 여기는 것을헤브론에서 다윗의 귀에 말하려고 가니라.

20 이처럼 아브넬이 스무 명과 함께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가니 다윗이 아브넬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더라.

21 아브넬이 다윗에게 이르되내가 일어나 가서 온 이스라엘을 내 주 왕에게로 모으고 그들이 왕과 동맹을 맺게 할 것이요또 왕의 마음이 원하는 모든 것을 왕께서 통치하게 하리이다하니라다윗이 아브넬을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가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넬이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그가 이스라엘 온 왕국을 다윗에게 돌리고자 하였을 때그 모든 일이 순식간이 이루어졌습니다물론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를 원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아브넬은 심지어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까지도 손쉽게 설득하였고다윗 왕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와 왕국을 넘겨줄 수가 있었습니다다윗은 잔치를 베풀었고아브넬을 평안히 가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26,27절을 보시겠습니다.

26 요압이 다윗에게서 나와 사자들을 보내어 아브넬을 쫓아가게 하였더니 그들이 시라 우물에서 그를 다시 데리고 왔으나 다윗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더라.

27 아브넬이 헤브론으로 돌아오매 요압이 그와 함께 조용히 말하려고 그를 성문에서 곁으로 데리고 들어가 자기 동생 아사헬의 피로 인해 거기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 밑을 찔러 죽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아브넬의 죽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아사헬의 형이었던 요압은 다윗 왕 몰래 동생의 원수를 갚았습니다아브넬은 이제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생각하였고다윗 왕이 자기에게 긴급히 전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무방비 상태에 있었습니다요압은 아브넬을 방심하게 만들었고일격에 원수를 갚았습니다.

 

아브넬은 처음부터 평화롭게 모든 왕국을 다윗에게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이스보셋도 설득할 수가 있었고베냐민 지파와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을 설득할 수가 있었습니다그가 처음부터 평화롭게 다윗 왕을 맞이했더라면아사헬을 죽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요압 장군의 원수가 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는 사울의 좋은 장군이었으며다윗 왕의 좋은 장군이었다고 역사에 기록될 수도 있었지만여기서 갑작스럽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아사헬

이제 우리 잠시 아사헬을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아사헬은 발이 들노루 같이 빨랐지만빠른 발만 믿고 자기 능력을 과신하다가 갑작스런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아브넬은 아사헬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그의 형인 요압 장군과 대적이 되지 않기를 원해서 도망가고 있었는데아사헬은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어서 그가 도망가던 것으로 착각을 하고 말았습니다아브넬은 두 번이나 그에게 다른 사람에게로 돌이키라고 경고하였지만그는 듣지 않았습니다아사헬의 마음속에는 아브넬을 잡아서 큰 공을 세우고 싶은 마음자기 능력을 넘어선 야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아사헬의 죽음은 정말 아깝고 안타깝습니다죽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죽었고하지 않아도 되는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 요압

이제 우리 마지막으로 요압을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요압 장군은 다윗의 조카로서그 누구보다 다윗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아무런 전쟁 없이 평화롭게 왕국이 통일되기를 원했습니다그러나 요압은 아브넬이 싸움을 걸어왔을 때기꺼이 응수하였고다윗이 아브넬을 평화롭게 보냈을 때그를 죽여 자기 동생 아사헬의 원수를 갚고 말았습니다이 요압 장군이 나중에 어떤 죽음을 당하게 되는지 우리 잠시 살펴보겠습니다열왕기상 2장 1절입니다.

이제 다윗의 죽을 때가 가까이 이르매 그가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이르되,

지금 이 장면은 다윗이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5,6절을 보시겠습니다.

또한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과 이스라엘 군대의 두 대장 곧 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너도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서 평화로운 때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그 전쟁의 피를 자기 허리에 띤 띠와 자기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그러므로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흰머리가 평안히 무덤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다윗은 솔로몬에게 요압이 평화로운 때에 전쟁의 피를 흘린 자이며다윗에게 철저히 순종한 신하가 아니라자기 뜻대로 언제든지 마음대로 행하고 반역한 자이므로반드시 심판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31-33절을 보시겠습니다.

31 왕이 그에게 이르되그가 말한 대로 하여 그를 덮치고 그를 묻을지니 이것은 네가 요압이 흘린 무죄한 피를 나와 내 아버지 집에서 제거하게 하려 함이라.

32 께서 그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시리니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사람 둘을 덮쳐서 그들 곧 이스라엘의 군대 대장 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의 군대 대장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느니라그 일을 내 아버지 다윗은 알지 못하였나니

33 그러므로 그들의 피는 영원히 요압의 머리와 그의 씨의 머리로 되돌아갈 터이나 다윗과 그의 씨와 그의 집과 그의 왕좌에는 로부터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하니라.

결국 요압 장군은 다윗 왕과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큰 길 안에서는 다윗 왕의 편에 서서 싸웠지만결국에는 다윗을 대적하는 자로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요압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 정리

이제 우리 함께 말씀을 정리하면서 사무엘기하 3장 36,37절을 보시겠습니다.

36 온 백성이 그것을 주목하고 그것으로 인해 기뻐하였더라왕이 무슨 일을 하든지 온 백성을 기쁘게 하였으므로

37 그 날 온 백성과 온 이스라엘은 의 아들 아브넬을 죽인 것이 왕에게서 비롯되지 않은 줄을 깨달았더라.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직적 아브넬의 무덤 앞으로 찾아가서 소리를 높여 울었고사람들이 음식을 권하였을 때해가 지기 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음식을 거절하였습니다그러자 백성들은 아브넬의 죽음이 다윗 왕의 뜻이 아니었음을 깨닫고다윗 왕을 더욱 따르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2, 3, 4장에 등장하고 있는 여러 인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하나님의 뜻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는 것이었습니다그것은 다윗에게만 좋은 일이 아니라온 이스라엘에게 유익한 일이며복된 일이었습니다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행복한 일이고좋은 일이었습니다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역사 가운데 진행되고 이루어지고 있을 때우리는 각자의 이유와 각자의 뜻을 가지고 자기 역할을 감당했던 네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이스보셋아브넬아사헬요압그들은 모두 각자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은 내 아버지 사울의 왕좌를 이어받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그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아브넬 역시도 원래 왕은 나의 사촌인 사울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고또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모든 왕국을 돌리셔서 내가 그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말할 수가 있었고아사헬이 계속 쫓아와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정말 정당하고 타당합니다.

 

아사헬은 전쟁 중에 최고 장수를 잡기 위해 추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었고요압은 동생의 원수를 갚는 것은 당연하며또 아브넬은 장차 다윗의 왕국에서 위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미리 제거하는 것이 마땅하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정말 정당하고 타당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교회 안에서여러 가지 주님의 사역이 진행되는 가운데 각자의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습니다과연 오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내가 하고 있는 역할은 무엇입니까유치부주일학교중고등부청년부장년부찬양대음식의 섬김안내위원대안학교선교지원사역문서미디어부 사역 등등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우리는 각자 나의 입장과 나의 타당한 이유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나의 개인적인 사정이 아니라정말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살피는 사람은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자기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다윗뿐이었습니다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이름도 나오고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왔지만정말 하나님의 뜻대로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다윗뿐이었습니다요압과 아사헬이 꼭 다윗의 편에 서 있었다고 해서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역할을 수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오히려 그들은 다윗에게 너무 강해서 다윗이 그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의 등장인물들이 자기들의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와 뜻을 내려놓고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그에 맞는 자기 역할을 찾았더라면정말 등장인물들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일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서자기 뜻대로 자기 역할을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를 살았습니다나의 개인적인 정당하고 타당한 이유와 목적에 따라 바쁘게 행동하면서 살았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우리가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섭리가 과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기를 원합니다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서나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시는가나에게는 어떤 역할을 원하시는가를 우리가 살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와 나의 역할에 대하여 주님께 묻기를 원합니다그래서 내가 타당하게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내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뜻 가운데서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역할을 찾아서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자격이나 능력이 되어서가 아니라우리에게 지혜와 힘을 공급하시는 주님을 힘입어서오늘 나에게 주신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우리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감당하게 될 때우리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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