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1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20

두려워하지 말라(삼상 21:10-15)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21장입니다사무엘기상 21장 10-15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이 사람은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그들이 춤추며 그에 관해 서로 노래하여 이르되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다윗은 수만이로다하지 아니하였나이까하므로

12 다윗이 이 말들을 마음속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자기 행동을 바꾸고 그들의 손 안에서 미친 체하며 바깥문의 문짝들에 휘갈겨 쓰고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그때에 아기스가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보라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쳤도다그런즉 어찌하여 너희가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필요하여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이 자가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하니라.

저는 오늘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한 사람바로 다윗을 보게 됩니다. 10절에는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일어나 도망하여이스라엘 영토를 벗어나서 가드 땅으로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12절에서는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미친 사람의 시늉까지 하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인생의 길에서 가장 비참한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사울 왕으로부터의 죽음을 피하고자이방 땅으로까지 도망을 쳤는데이제는 이방 땅의 가드 왕 아기스 앞에서 또 다시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앞에서도 죽음이뒤에서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다윗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공포가 그를 엄습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상황이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고난을 통하여 다윗을 성숙한 작품으로 빚어내기를 원하셨습니다다윗은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는 것 같았지만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습니다.

도자기 장인이 도자기를 만들면서도자기를 가장 주목하고가장 많은 주의를 집중하고 있는 시간이 바로 도자기가 불가마 속에서 구워지는 동안이라고 합니다부족하지도 않고초과하지도 않은가장 적절한 시간에 불 속에서 꺼내야 만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는 도자기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처럼 오늘 우리는 다윗의 발걸음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지만강한 손으로 다윗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숨은 손길과 음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20장과 21장의 말씀을 통해서다윗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었을 때또 육신 안에서 걷게 되었을 때어떤 일들을 벌이게 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그리고 그러한 실패의 순간들 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 요나단에게 원망함

이제 우리 함께 오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살펴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20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라마의 나욧에서 도망하여 가서 요나단 앞에서 이르되내가 무엇을 하였느냐내 불법이 무엇이냐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하니

19장에서 다윗은 사울 왕의 창을 피하고미갈을 통해 창문으로 도망을 쳤고그 후에 사무엘이 있던 라마의 나욧에 거하다가 이제 다시 몰래 요나단에게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이제 요나단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였느냐내 불법이 무엇이냐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 다윗은 이러한 말들을 사울 왕 앞에서 직접하고 싶었을 것이지만그렇게 하지 못하고오히려 다윗을 위하고 있는 요나단 앞에서 쏟아내었습니다.

 

이때 요나단은 왜 나한테 화를 내느냐고너를 죽이려 한 사람이 나냐고이렇게 반응하지 않고다윗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고 받아주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곤고하고 지친 다윗을 위하여 아주 좋은 친구를 예비해 주셨던 것입니다아무리 골리앗을 홀로 쓰러뜨렸던 믿음의 용사라 할지라도이렇게 지치고 힘든 순간이 올 때가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러한 때에 그를 붙잡아 줄 수 있는 믿음의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형제자매들이 있으니 주님께 감사합니다우리도 다윗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고자초지종을 들어줄 수 있고또 원망하며 화를 내는 말까지도 다 들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요나단과 같은 친구형제자매들이 되기를 원합니다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최후의 순간에찾아와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귀한 친구형제자매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사울 왕을 향한 속임수

우리 함께 3,4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또 맹세하여 이르되내가 네 눈에 은혜를 입은 줄을 네 아버지가 확실히 알고 말하기를요나단이 근심할까 염려가 되므로 그가 이것을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하느니라그러나 진실로 께서 살아 계심과 네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와 죽음 사이에는 단 한 걸음만 있느니라.

이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네 혼이 무엇을 원하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행하리라하니

 

다윗은 자신이 죽음과 단지 한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맹세하며 말하였습니다그러자 4절에서 요나단은 자기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무엇이든지 돕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윗의 3가지 속임수를 보게 될 것입니다먼저 그 첫 번째 속임수에 대해서 살펴보시겠습니다. 5-7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보라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반드시 왕과 함께 식탁에 앉아야 할 터이나 부디 나를 가게 하여 내가 셋째 날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아버지가 만일 나를 섭섭히 생각하거든 그때에 말하기를다윗이 자기 도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기 위해 내게서 떠날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사오니 그들이 거기서 온 가족을 위하여 해마다 희생물을 드리나이다하라.

만일 그가 이같이 말하기를좋다하면 네 종에게 평강이 있으려니와 그가 만일 심히 노하면 그가 악을 결심한 줄을 확실히 알지니

다윗은 사울의 신하로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물론 그는 왕의 사위가 되었지만여전히 왕의 신하로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특히 새로운 달이 시작되는 월삭은 왕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날이기 때문에 더더욱 허락되지 않았습니다우리 함께 잠시 사무엘기상 18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사울이 다윗을 데리고 가서 다시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바로 이렇게 다윗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만약 그가 아버지의 집에 가고자 한다면사울 왕에게 직접 와서 요청을 하고 허락을 받았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그러나 다윗은 지금 여기서 무단으로 아버지의 집에 간 것처럼사울 왕에게 말해보고 나서 그 반응을 살펴보자고 요나단에게 말하였던 것입니다실제로 가지는 않지만간 것처럼 속임수를 써서사울 왕의 마음을 확인해 보자고 말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7-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7 다음 날 곧 그 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비었으므로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에게 말하되어찌하여 이새의 아들이 어제나 오늘이나 식사 자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하매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다윗이 베들레헴에 가려고 내게서 떠날 것을 간절히 요청하여

29 이르되원하건대 나를 가게 하라우리 가족이 그 도시에서 희생물을 드리려 하므로 내 형이 내게 거기에 올 것을 명령하였나니 이제 내가 네 눈에 은총을 입었거든 내가 떠나가서 원하건대 내 형들을 보게 하라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탁에 오지 아니하나이다하니라.

30 이에 사울의 분노가 요나단을 향해 타오르매 그가 요나단에게 이르되너 사악하고 반역하는 여인의 아들아네가이새의 아들을 택하여 네게 혼란을 가져오고 또 네 어머니를 벌거벗기는 혼란을 가져온 줄을 내가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한 너나 네 왕국이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그는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하니

32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무슨 이유로 그가 죽어야 하리이까그가 무엇을 행하였나이까하매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던져 치려 하니 이로써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사울 왕은 다윗의 예상대로 매우 분노하면서다윗을 죽이고자하는 마음을 나타내 보여주었습니다그는 심지어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에게까지 창을 던지려고 하였습니다다윗의 속임수는 성공적이었고사울 왕의 마음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차라리 다윗과 요나단이 함께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였더라면 어떠했을까요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지혜와 꾀를 사용하여자신의 안전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그 길은 자신의 사랑하는 친구인 요나단에게 거짓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고또한 요나단의 생명까지도 위험할 번 한 일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기의 순간에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 빚어내시기를 원하셨습니다그러나 아직까지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 자기만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아히멜렉에게 거짓말함

다윗은 결국 요나단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도망을 가게 됩니다이제 그가 간 곳은 놉이라는 지역에 거하던 하나님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처소였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21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이 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다윗을 만나 두려워하며 그에게 이르되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아무도 너와 함께하지 아니하느냐하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내게 이르시기를내가 너를 보내어 하게 하는 일과 또 네게 명령한 것을 아무에게도 전혀 알리지 말라하시기에 내가 내 종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가라고 지정하였나이다.

아히멜렉은 다윗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또한 다윗의 표정이나 행동이 매우 초조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다윗은 자신이 왕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다윗의 첫 번째 속임수는 사울 왕의 마음을 알기 위한 것이었고두 번째 속임수는 아히멜렉에게서 도움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이제 당신의 손안에 무엇이 있나이까빵 다섯 개나 무엇이든지 거기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하거늘

 

다윗은 하나님의 제사장 앞에 와서 거짓말을 하면서 빵을 구걸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아히멜렉에게 일반적인 빵이 없었고오직 성막에서 진열하여 놓는오직 제사장들만 먹도록 허락된 거룩한 빵만 있었습니다우리 함께 6-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제사장이 거룩한 빵을 그에게 주었더라이는 거기에 보여 주는 빵 곧 주 앞에서 취한 빵밖에 다른 빵은 없었기 때문이더라이 빵은 더운 빵을 놓는 날에 치워놓은 것이더라.

이제 그 날 사울의 신하들 중 어떤 사람이 거기서 주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도엑이요그는 에돔 족속으로 사울에게 속한 목자들 중에서 으뜸가는 자였더라.

 

다윗은 여기서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제사장들 외에는 먹으면 율법에 어긋나는 빵을 먹게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이것을 인용하셨습니다우리 함께 마태복음 12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보여 주는 빵 곧 제사장 외에 자기나 자기와 함께한 자들이 먹으면 율법에 어긋나는 빵을 먹었느니라.

또한 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니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신 것입니까바로다윗이 하나님의 제사장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제사장들 외에는 먹으면 율법에 어긋나는 빵을 먹었어도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다윗은 비록 속임수와 거짓말과 자기 자신이 계략과 지혜로 오직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가고 있었지만하나님께서는 선하심과 긍휼이 다윗을 따르도록 인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윗의 이러한 속임수 이후에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22장 16-19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왕이 이르되아히멜렉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요너와 네 아버지의 온 집이 그러하리라하니라.

17 왕이 자기 주위의 보병들에게 이르되돌이켜서 의 제사장들을 죽이라그들의 손이 다윗과 함께하고 또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그들이 그것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느니라하였으나 왕의 신하들이 자기 손을 내밀어 의 제사장들을 덮치려 하지 아니하므로

18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너는 돌이켜서 제사장들을 덮치라하매 에돔 족속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덮쳐서 그 날에 아마 에봇을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19 제사장들의 도시 을 칼날로 치되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과 젖 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들을 칼날로 쳤더라.

 

아히멜렉은 다윗이 도망 중인 것을 모른 채로다윗에게 빵을 주고 평안히 가게 하였는데그 결과로사울 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아히멜렉 뿐만이 아니라제사장들 85명이 죽임을 당했고제사장들의 도시였던 놉 자체가 살육을 당하였습니다속임수의 결과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왔을 때그 자리에 함께 있던 에돔 사람 도엑이 그 모든 일을 주도하였습니다. 22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아비아달에게 이르되그 날에 에돔 족속 도엑이 거기 있기에 그가 반드시 사울에게 고할 줄 내가 알았노라.내가 네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을 죽게 하였도다.

다윗은 아비아달에게 말하였는데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아비아달은 죽임을 당한 아히멜렉 제사장의 아들로모두가 살육을 당하는 처참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다윗을 만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일어난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알려주었습니다다윗은 아히멜렉에게 거짓말을 할 때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습니다.다윗은 그 날의 모든 책임을 자기의 것으로 돌리고 있습니다만약 다윗이 그 순간에 주님과 동행했었더라면그는 속임수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그가 주님과 동행하였더라면아히멜렉이 이렇게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속임수는 처음에는 요나단을 죽일 번 하였고이번에는 제사장들의 온 도시를 죽게 만들었습니다이처럼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우리는 많은 사랑하는 귀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우리 함께 시편 52편을 보시겠습니다먼저 시편 52편의 머리말을 먼저 읽어드리겠습니다.

악장에게 준 마스길다윗의 시에돔 족속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고하며 그에게 이르기를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나이다할 때에 지은 시

 

다윗은 에돔 족속 도엑이 사울에게 모든 일을 말할 때 이러한 시를 지었습니다. 2-5절을 보시겠습니다.

네 혀가 해악을 꾀하고 날카로운 칼같이 속임수로 일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하기보다 거짓말하기를 더욱 사랑하는도다셀라.

오 속이는 혀여네가 사람을 삼키는 모든 말을 사랑하나니

하나님께서도 그와 같이 너를 영원히 멸하시리라그분께서 너를 붙잡아 가시며 네 거처에서 너를 뽑아내시고 산 자들의 땅에서 너를 뿌리째 뽑으시리로다셀라.

다윗은 자기 자신을 향해서자기의 속임수와 거짓말을 한 혀를 향해서마치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강력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또한 7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자기의 많은 재물을 신뢰하며 자기의 사악함으로 자기를 강하게 하던 자라하리로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힘으로 삼지 않았고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으며자기의 사악함으로 자기를 강하게 하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우리가 다윗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잘못을 저지른 뒤에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점입니다다윗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순간마다 거짓말과 속임수를 사용하였고자기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고민폐를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자기만 살아보겠다고 남들의 안전은 신경도 쓰지 않는 사악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렇게 주님 앞에 잘못할 때마다 돌이키면서하나님 앞에서 배움을 가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도 오늘 넘어졌다면주님 앞에서 새롭게 배우면서 다시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상 21장으로 돌아오셔서 8-9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여기 당신의 손안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왕의 일이 신속함을 요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져오지 못하였나이다하매

제사장이 이르되네가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을 보라그것이 여기에 에봇 뒤에 있는 보자기에 싸여 있으니 네가 그것을 가지려거든 가지라여기에 그것 말고는 다른 것이 없느니라하매 다윗이 이르되그와 같은 것이 또 없으니 그것을 내게 주소서하니라.

다윗은 목자의 막대기와 조약돌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사울의 갑옷이나 칼이나 어떤 무기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오직 만군의 주의 이름을 자기 무기로 삼았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지금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하여 무기를 구하고 있습니다제사장이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을 주자다윗은 그와 같은 것이 또 없으니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되면무가치했던 것들이 가치 있게 보이고무의미했던 것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와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렇게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다윗은 자기가 골리앗의 칼이라도 자기고 있으면 마치 안전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어떻게 되었습니까그는 가드 출신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가드 왕에게로 건너가 스스로 덫에 걸려든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위하게 된다면우리 자신의 생각과 계략과 지혜는 결국 우리 자신을 망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주님과 동행하는 것만이 우리가 가야하는 길인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오직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아기스 앞에서의 속임수

오늘 우리는 다윗이 사람들을 두려워하면서육신 가운데 행한 속임수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다윗의 첫 번째 속임수는 사울 왕을 향한 것이었고그 결과 요나단이 죽을 번 하였습니다두 번째 속임수는 제사장 아히멜렉을 향한 것이었고그 결과 제사장의 도시가 살육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세 번째 속임수는 가드 왕 아기스를 향한 것이었는데다윗은 생명을 구출하기 위하여 수염을 침을 흘리면서 미친 사람 시늉을 하는 비참하고 참담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과연 가드 땅에서 가드 출신의 영웅 투사였던 골리앗의 칼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요아기스의 신하들은 단 번에 다윗을 알아보았습니다다윗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골리앗의 칼을 받아왔는데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되고 말았습니다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 위하여 가드 땅으로 도망쳤는데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입니까다윗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고자기 지혜로 모든 어려움을 빠져나가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우리 함께 처음 읽었던 사무엘기상 21장 10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였으므로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또한 12절도 보시겠습니다.

12 다윗이 이 말들을 마음속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이 상황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에는 옆에 요나단도 있었고미갈도 있었고사무엘도 있었고제사장 아히멜렉도 있었습니다그래도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정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이방 땅인가드 지역에서 다윗을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미친 척을 한다고 해서 살아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미친 척을 하여도 왕이 죽이라고 명령하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다윗은 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자기의 지혜와 속임수와 방법으로 다 해보았는데이제는 하나님 밖에 없었습니다우리 함께 시편 34편을 보시겠습니다먼저 머리말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행동을 바꿀 때에 아비멜렉이 그를 쫓아내므로 그가 떠나면서 지은 시

 

4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를 찾으매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은 아기스 왕 앞에서 긴급히 주님을 찾았습니다그리고 이제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7-9절까지의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

오 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오 의 성도들아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이제 다윗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 것인지 깨달았습니다다윗이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사울 왕도 아니요아기스 왕도 아니요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사울 왕의 부하들도 아니요오직 하나님이셨습니다.

또한 13절도 보시겠습니다.

네 혀를 지켜 악에서 떠나게 하고 네 입술을 지켜 교활한 말에서 떠나게 하며

다윗은 그 동안 속임수와 거짓말로 걸었던 모든 발걸음으로부터 떠나기를 원하였습니다이제는 정직하게 말하고,정직하게 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18-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께서는 상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통회하는 영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는도다.

19 의로운 자의 고난이 많으나 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지시는도다.

다윗은 바로 이러한 방황의 순간을 계기로 주님과 온전히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전까지 우리는 다윗이 주님께 여쭙고 응답을 받았다는 기록을 읽어볼 수 없지만이제 이후로부터는 다윗이 발걸음마다 주님께 묻고 응답을 받아서 길을 가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여러 가지 두려운 일들이 생겨나도록 허락하시는 이유는우리로 하여금 눈을 들어 하나님께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많다면우리가 상한 마음을 가졌다면주님은 우리와 가까이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고난과 두려움에서 건져내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기도하겠습니다

2014.04.0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9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삼상 19:4-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9장입니다사무엘기상 19장 4-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좋게 말하며 그에게 이르되원하건대 왕께서는 왕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짓지 마옵소서그가 왕께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들이 매우 선하였나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자기 손에 두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며 또한 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께서 그것을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왕께서 이유 없이 다윗을 죽이고 무죄한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 하시나이까하니

사울이 요나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맹세하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니라.

저는 오늘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어느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습니다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 속에 들어가시더니 시원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아들은 아버지께서 물이 시원하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물에 첨벙 뛰어들었습니다그러나 몸이 미처 물에 다 들어가기도 전에 아 뜨거워!”하면서 소리를 치고 말았습니다바로 그 때 그 초등학생의 머릿속에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것은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지만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그 말 자체는 진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라는 것인데또 다른 말로 하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사람은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9장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에게 임한 고난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그리고 다윗이 정말 목숨을 잃을 것만 같은 위급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는지 그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사무엘기상 19장의 말씀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면서다윗의 도피생활이 시작되는 단계의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신뢰할 분이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요나단과 사울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9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과 자기의 모든 신하에게 그들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였으므로 요나단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 하시느니라그러므로 이제 원하노니 아침까지 조심하고 은밀한 곳에 거하며 숨어 있으라.

내가 나아가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옆에 서서 너에 관하여 내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그것을 네게 고하리라하더라.

사울 왕은 이미 다윗을 향해 창을 두 번이나 던지면서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그리고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미끼로 삼아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과의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어 자연스럽게 죽기를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그런데 그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사울 왕은 이제 공개적인 왕의 명령으로자기의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그들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을 은밀한 곳에 숨기고 아버지를 설득해 보고자 하였습니다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가 가장 먼저 읽었던 본문인 4-6절까지 말씀입니다요나단은 다윗에 대하여 좋게 말하면서다윗을 죽이지 마시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그러자 사울 왕은 6절과 같이 맹세하였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맹세하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하니라.

요나단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울 왕은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이로써 요나단은 안심할 수가 있었고다윗이 이제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함께 7-8절을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려 주고 다윗을 사울에게 데려가니 그가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앞에 있었더라.

다시 전쟁이 있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살육하매 그들이 그를 떠나 도망하니라.

이제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으로 인하여 다시 사울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더 이상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전과 같이 다시 왕의 명령을 받고 전쟁터에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다윗은 큰 위험에 빠졌었지만요나단을 통해 이제 위험을 완전히 벗어나 안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우리 함께 9-10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손에 창을 가지고 자기 집에 앉았는데 주에게서 온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하므로 다윗이 손으로 하프를 탈 때에

10 사울이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에서 피하여 나가고 사울은 창을 벽에 박으니라.다윗이 그 밤에 도망하여 피하매

 

사울은 분명히 주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그러나 그는 여기서 다시 직접 창을 들어 다윗에게 던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사람의 약속이나 맹세는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사람의 마음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아침에 기뻐했다가점심에 분노하고저녁에 또 다시 미안해지는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러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우리는 다른 사람이나나 자신조차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분명 요나단 앞에서 진실 되게 맹세하였을 것입니다그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순간적으로 요나단의 말을 듣고 보니정말 다윗이 죽일 필요가 없는오히려 좋은 신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였지만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했던 그 시간을조금 지연시키고 늦추었는지는 모르지만그 상황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하고 위해주는 따듯한 마음으로 다윗에게 심적으로는 힘이 되어주었지만실제적인 다윗의 위험한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이사야 2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그의 숨은 그의 콧구멍에 있나니 어떤 점에서 그를 수에 넣어야 하겠느냐?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어떤 점에서도 사람을 수에 넣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나 자신을 포함하여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사람을 의지한다면사람을 숫자에 넣고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기대한다면결국 그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릴 뿐인 것입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사울 왕의 맹세도 아니었고요나단이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말이나자기 혼같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도 아니었습니다다윗의 안전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 미갈

우리는 먼저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요나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이제 또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9장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사울이 또한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하므로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당신이 오늘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하니라.

12 이처럼 미갈이 창을 통해 다윗을 밑으로 내리매 그가 나가서 도망하여 피하니라.

다윗은 갑작스럽게 창을 던지는 사울 왕을 피해 집으로 도망쳤습니다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의 집 앞에 사람들을 매복시켜서 다윗이 나오면 아침에 죽이고자 하였습니다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이었던 미갈은 다윗을 창문을 통해 도망가게 하였습니다.

미갈은 한 형상을 취하여 침상 위에 놓고마치 다윗이 누운 것처럼 속였습니다사울이 보낸 병사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왔을 때이불을 덮어놓고 다윗이 병들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사울 왕은 침상 채로 들고 오라고 명령하였고사울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다윗의 방에 들어갔다가다윗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우리 함께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보내어 그가 피하게 하였느냐하니 미갈사울에게 대답하되그가 내게 말하기를내가 가게 하라어찌하여 내가 너를 죽이겠느냐하더이다하니라.

사울 왕은 자신의 딸이 거짓말을 하고 다윗을 몰래 도망가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화를 내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보내어 그가 피하게 하였느냐?” 사울은 또 다시 다윗을 자신의 원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미갈은 다윗의 아내였습니다사울은 자기 딸에게 화를 내면서어찌하여 너는 너의 사랑하는 남편을 무사히 도망가게 하였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자기가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로 다윗을 전쟁터로 내몰았다가결국에는 자기 딸과 결혼하게 만든 장본인이면서이제는 그 딸 앞에서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와 같이 육신의 발걸음은 비극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미갈이 한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미갈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화를 내자즉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게 하라어찌하여 내가 너를 죽이겠느냐하더이다.” 자기의 마음은 아버지를 도와서 다윗을 잡고 싶었지만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그를 보내주었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이것은 사울 왕이 너무 살기등등하였기 때문에미갈로서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것이라고 보여 지고또 미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다고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어쩌면 우리들이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우리 모두를 포함하여사람들은 누구든지 위기의 순간에는최후의 순간에는 등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였다가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했던 베드로처럼다윗을 너무나 사랑한 아내일지라도다윗이 없는 이 마당에서는이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다윗이 마치 스스로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내까지 죽이려던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미갈을 감히 정죄할 수 없고오히려 잘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이것이 바로 사람의 연약함이고 바로 우리들 자신의 연약함입니다우리는 어떻습니까어느 순간에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충만하였더라도,위기의 순간이 오면또 우리가 위하던 그 당사자가 당장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의 혀를 사용하여손쉽게 탈출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저 곳에서는 저렇게 말하면서이 사람도 위하고 싶고저 사람도 위하고 싶지만결국에는 사람들을 상처주고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으며결국에는 나 자신만을 변호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너무나 안타깝지만우리는 비겁하고부정직하며이기적인 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간사하고 거짓된지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서나는 정당하고나는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도록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 발걸음을 중단하고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하나님의 말씀에만 영향을 받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우리를 애통하게 만들기도 하고또 우리를 기뻐하게도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오직 주님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미갈과 같이나를 도왔던 바로 그 사람이나에 대하여 잘못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상황에 따라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우리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평소에 나에 대하여 사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아니라평소에 나를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라다만연약한 사람이라서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다윗을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였던 미갈 조차도 위기의 순간에 그러했고우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똑같은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하거나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말고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사람들을 향해서는 기대를 할 것이 아니라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바로 우리들을 향해 오늘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배반당할 준비도 하고오히려 더 넘치게 사랑하고 용서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사무엘

우리는 먼저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요나단을 살펴보았고그 다음으로 미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이제 사무엘기상 19장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있는 한 사람을 간단히 살펴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9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이 도망하여 피하고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이르러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고하였고 그와사무엘이 가서 나욧에 거하였더라.

이제 다윗은 자기에게 처음으로 기름을 부었던 사람이스라엘에서 가장 영적인 사람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인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그리고 그는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다 말하였습니다사울이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두 번째세 번째어떻게 자기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였는지사무엘에게 다 일러주었던 것입니다어쩌면 원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나한테 기름을 부었잖아요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양치기 소년의 삶이 차라리 더 안전하고 좋았는데도대체 왜 나한테 기름을 부은 것입니까내가 기름 부음을 받았어도당장 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지금 나는 죽게 생겼는데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무엘은 다윗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어떤 말씀을 주었다든지어떤 길을 보여주었다든지 하는 말씀을 전혀 읽어볼 수가 없습니다다만 사울이 다윗을 잡으라고 보낸 군사들의 무리가,세 번에 걸쳐서사무엘과 함께 있던 대언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대언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고심지어는 나중에 사울 자신이 직접 와서 똑같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대언을 하게 되었다는 기록만 읽어볼 수가 있을 뿐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을 돕기를 원했지만별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다만 그에게 몇 가지 권면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권위를 거슬러서 사울 왕을 직접 대적하지 말 것하나님께서 심판하시거나 모든 일을 완전히 정리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것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울 것.” 이러한 어찌 보면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말들만 다윗에게 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그래서 다윗은 또 다시 사무엘을 떠나 도망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9장에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과그에 맞서서 다윗을 돕고자 하는 세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바로 요나단과 미갈과 사무엘입니다이들의 특징은 어떻게 해서든 다윗을 위하고 돕고자 노력을 했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며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에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우리가 사람을 바라보고사람을 신뢰하는 순간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사람은 우리의 안식처가 될 수 없고사람은 우리의 든든한 반석이 되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러한 믿음의 길로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하나님도 믿고내 통장의 잔고도 믿는 삶이 아니라하나님도 믿고나를 도와줄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도 믿는 삶이 아니라하나님만 믿을 수밖에 없는 철저하고도 분명한 믿음의 길로 우리를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믿음의 용사였습니다아무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오직 혼자서 믿음으로 감당했던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더욱 깊은 믿음의 길로 이끄시기를 원하셨습니다다윗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든아니면 다른 좋은 사람들이든사람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으로 이끄셨습니다또한 다윗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의미 없게 만드셨습니다요나단은 그 나라의 왕자였지만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아버지이며 최고 권위자인 왕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미갈은 그의 아내였고 또한 공주였지만역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영적 지도자였지만그 조차도 다윗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다윗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다윗에게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이 있다면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그것은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이며인도하심입니다우리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상처를 받는 모든 환경들조차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정죄하라고 주시는 일들이 아니라다만사람은 신뢰할 만한 대상이 아니며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훈련과정인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의지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사람은 다만 우리가 섬기고 돌보며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시편 62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시편 62편 5-8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내 혼아너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나의 구원이시요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나니 곧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가 하나님 안에 있도다.

백성들아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셀라.

 

아멘기도하겠습니다.

2014.03.30.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8

사랑과 두려움(삼상 18:15-1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8장입니다사무엘기상 18장 15-1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5 그러므로 그가 매우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을 사울이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이 자기들 앞에서 나가고 들어왔으므로 그를 사랑하였더라.

저는 오늘 사랑과 두려움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지혜롭게 행동하던 다윗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서로 반대의 감정을 가졌던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한 부류는 다윗을 사랑하였던 온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었고나머지 한 부류는 너무나 외롭게도 혼자서 다윗을 두려워하고 미워하였던 사울 왕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8장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반드시 한 부류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때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부류에 속할 것이고때로는 누군가를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는 부류가 될 것이고또 때로는 다윗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는 동시에미움도 받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 사무엘기상 18장 말씀을 통해서 사랑과 두려움에 대해 살펴보고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며또 누구를 어떻게 두려워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또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과 두려움,그리고 성령님으로부터 나오는 사랑과 두려움에 대해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요나단

먼저 우리 함께 다윗을 가장 진실하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8장 1-4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밀착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니라.

그 날에 사울이 다윗을 데리고 가서 다시는 그가 그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니라.

그때에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으므로 그와 다윗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은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또 자기 옷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요나단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것을 보고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요나단은 얼마 전에 자신의 병기를 드는 청년과 단 둘이서이스라엘의 전쟁을 대승으로 이끌었던 용사였습니다요나단의 승리는 요나단 자신의 뛰어난 전술이나,싸움실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적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목숨을 건 전쟁에서 주님을 믿고 싸움에 임할 만큼놀라운 믿음의 용사였던 요나단은 다윗의 믿음을 한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성경은 요나단의 혼이 다윗의 혼과 굳게 결합되었다고 말씀하고 있고또한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혼같이 사랑하여서 사랑과 우정의 언약을 맺었고자기의 옷과 칼과 활과 띠도 다 주었습니다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한 이유는 단 한 가지그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요나단은 다윗의 출신배경이나용모나미래의 있을 일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았고오직 그의 믿음을 보고 사랑하였습니다.

 

요나단은 왕족이었고다윗은 시골 양치기 소년에 불과하였습니다요나단이 어떤 신분의 격차에 대해서 따졌다면,둘은 친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요나단이 어떤 지식적인 수준을 따졌다면다윗은 별반 배우지 못한 양치기 출신이었으므로둘이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요나단은 왕권을 이어받을 자였고다윗 역시나 백성들로부터 영웅이요 지도자로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요나단이 자신의 왕권에 대해서 계산하였더라면그는 다윗을 사랑할 수 없었을 것이고오히려 경계하였을 것입니다그러나 요나단은 오직 다윗의 믿음만을 보았고그를 자기 혼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23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곧 그가 그에게 말하기를두려워하지 말라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너를 찾지 못하리라너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되리니 그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아시느니라하니라.

여기 보면 요나단이 심지어 자신의 왕권까지도 다윗에게 양보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요나단에게는 자신의 유익이나 권리를 계산하거나 주장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다만 요나단은 하나님을 따르는 한 사람으로서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 그대로를 원하고 응원해 주었습니다.

이처럼오늘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요나단처럼 사랑하기를 원합니다나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향한 믿음 때문에그 믿음이 너무나 귀하기 때문에 사랑하기를 원합니다자격이나 유익을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보며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잠시 다윗의 편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다윗은 신실하게 주님과 동행한 결과 왕자인 요나단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다윗은 누군가로부터 인정을 받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 골리앗과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로 요나단의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사랑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다만 묵묵히 신실하게 주님을 따른다면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고 격려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내주실 것입니다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할 때그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다만 주님과 동행할 때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놀라운 사랑을 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 여인들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상 18장으로 돌아오셔서 5-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보내는 곳마다 그가 가서 지혜롭게 행동하매 사울이 그를 세워 군사들을 다스리게 하였더니 온 백성의 눈앞에서와 사울의 신하들의 눈앞에서 그가 인정을 받으니라.

그들이 돌아올 때 곧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살육하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에서 나아와 노래하고 춤추며 작은북과 악기를 가지고 기뻐하며 사울 왕을 맞이하더라.

여인들이 놀며 서로 화답하여 이르되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다윗은 수만이로다하니라.

사울이 심히 노하고 그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르되그들이 다윗에게는 수만을 돌리고 내게는 수천만 돌리니 왕국 외에 그가 더 얻을 것이 무엇이겠느냐하고

그 날 이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서 다윗을 사랑했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은 온 백성과 사울의 신하들의 눈앞에서 인정을 받았고사랑을 받았습니다. 7절에서 우리는 특별히 이스라엘 여인들의 노래를 볼 수가 있는데그들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 군사들을 맞이하면서사울과 다윗을 언급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다윗은 수만이로다.” 이들은 진심으로 다윗을 귀하게 여겼고다윗을 사랑했습니다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노래 때문에 다윗은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우리의 사랑은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 합니다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더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편파적이고분파적이며차별을 두고분열을 일으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여인들이 별다른 의도를 가지지는 않았다할지라도그들은 의도 없이 사울과 다윗을 비교함으로써사울 왕에게 상처를 주고 자극하였던 것입니다아무리 순수하게 보이는 사랑일지라도 그것이 육신에서 나온 것이라면반드시 십자가를 통해 죽음으로 넘겨져야 합니다우리의 사랑은 오직 성령님으로부터 흘러나와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십자가로 가지 마시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였다가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하고 책망을 받았던 것처럼인간적인 사랑인본주의적인 사랑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내가 사랑한다고 여기는 그 사람을 결국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들을 육신의 천연적인 본성만으로 사랑하게 된다면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냉철하게 볼 수 없을 것입니다부모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자녀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자녀들을 향해 가장 좋은 것을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육신의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고립시키고괴롭게 만들 것입니다.

여기서 여인들은 다윗을 드높이고다윗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결과적으로는 다윗에게 크나큰 위기를 가져왔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다윗은 수만이로다.” 이 노래 한 마디가 사울 왕의 귀에 들어갔을 때다윗은 죽음과 한 발자국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위태로운 상태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잠언 27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도가니로 은을용광로로 금을 시험하듯 칭찬으로 사람을 시험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다양한 방법으로 연단하시고 훈련하시는데때로는 고난을 통해서 하시기도 하시지만때로는 칭찬을 통해서 하십니다다윗은 시골의 양치기 소년에서 하루아침에 온 백성의 영웅이 되었지만칭찬으로 인해 마음이 교만하게 높아지지 않았습니다다윗은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였고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 기억하면서 시험을 통과하였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8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내가 누구니이까이스라엘 안에서 내 삶이나 내 아버지 집이 무엇이기에 내가 왕의 사위가 되리이까하였더라.

또한 23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의 신하들이 그 말들을 다윗의 귀에 말하매 다윗이 이르되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너희에게는 가벼운 일로 보이느냐나는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이라하니라.

이처럼 다윗은 칭찬의 시험을 잘 통과하였습니다그는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에 대하여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그는 사람들의 칭찬과 평가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다윗은 양치기 소년이었을 때나전쟁 영웅이었을 때나자기 자신을 하찮은 자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인정한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의 목적은 사람들로부터 환심을 사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동정이나 도움이나 칭찬을 받으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우리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오늘을 사는 것입니다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든비난하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의 평가이며주님의 칭찬인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를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부모님들께서는 자녀들을 넘치게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칭찬으로 사람을 시험하신다는 말씀은 칭찬과 격려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어린 시절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하나님을 대표하는 거울과 같습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넘치게 칭찬하시는 분이심을 자녀들에게 보여주시기 바랍니다엄격하게 통제하고아무것도 못하게 하면서즉시 순종할 것만을 강요하고잘못했을 때 불같이 혼내는 하나님만 보여주지 마시고아이가 어렵지만 순종하고자 하였을 때너무나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칭찬해주시고 격려해 주시고보상해 주시는 하나님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자만할까교만할까 걱정하지 마시고잘한 것이 있다면 넘치게 칭찬해 주시고쓰다듬어 주시고안아주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칭찬을 받아서 교만해 지는 것이 아니고원래 교만한 사람입니다주님께서 우리 자신의 진정한 모습아무것도 아닌 모습을 보여주실 때우리는 자연히 겸손해지고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만약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려놓고, “엄마이거 보세요.” 한다면 바쁘시더라도, “잘 그렸구나.”라는 결과에 대해서또 더 나아가 열심히 그렸구나.” 하면서 노력과 과정에 대해 많이 칭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잠시 사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다윗은 사람들의 칭찬을 잘 통과하였지만사울왕은 사람들의 칭찬을 듣고 시기심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사울왕의 마음은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거기에 얽매인 고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울왕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자기를 부르셔서 왕으로 세워주시고주님을 위해 수천의 블레셋 사람들을 쓰러뜨리게 하신 주님을 찬양한 것이 아니라나는 겨우 수천인데다윗은 수만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여인들이 다윗을 더 높이 노래한 것은 사실이지만그렇다고 사울을 깎아내린 것이 아니었습니다여인들은 다소 부주의하였지만사울 왕이 죽인 자가 수천이라고사울왕도 역시 포함시켜서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사울은 다윗과 자신을 비교한 것에 주목하면서시기심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하나님 앞에서 걷기를 원합니다우리 자신을 볼 때에사람들과 비교하여 평가하지 말고하나님 앞에서말씀 앞에서 돌아보기를 원합니다최종적인 평가는 하나님께서 내리실 것이기에우리가 오늘도 주님 앞에서 걷기를 원합니다.

 

 

** 사울

지금까지 우리는 요나단과 여인들의 사랑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이제 사울의 두려움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8장 10-12절을 보시겠습니다.

10 그 다음 날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하매 그가 집의 한가운데서 대언을 하더라다윗이 다른 때와 같이 손으로 하프를 켜더라사울의 손에 창이 있었으므로

11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니 이는 그가 말하기를내가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리라하였기 때문이더라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2 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하니라.

사울의 두려움은 증오와 살인으로까지 발전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은 사울을 대적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고그를 위해 하프를 연주할 뿐만 아니라목숨을 걸고 전쟁에 앞장서는 최고의 충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사울은 그를 두려워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17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내 맏딸 메랍을 보라내가 그녀를 네게 아내로 주리니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용맹스럽게 되고 의 싸움을 싸우라하니라이는 사울이 말하기를내 손을 그에게 대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을 그에게 대리라하였기 때문이더라.

사울은 자신의 딸을 미끼로 삼아다윗에게 왕의 사위라는 명예와 신분상승의 기회를 제공하면서다윗을 더욱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 죽이고자 하였습니다또한 25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이르되너희는 다윗에게 이같이 말하기를왕이 아무런 지참금도 원치 아니하고 다만 왕의 원수들을 보복하기 위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포피 백 개를 원하신다하라하니라그러나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다윗을 쓰러뜨리려고 생각하였더라.

사울은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다윗을 죽이고자 생각하였지만사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우리 함께 28, 2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8 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며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는 것을 사울이 보고 알았으므로

29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여 계속해서 다윗의 원수가 되니라.

결국 다윗은 사울의 딸 중에 미갈과 결혼하였고왕의 사위가 되었습니다사울은 주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았고자신의 아들인 요나단과 자신의 딸인 미갈과 모든 백성들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그 결과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며 스스로 더욱 다윗의 원수가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사로잡히게 될 때우리는 스스로 누군가와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실제로 다윗은 사울에게 어떠한 해를 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다윗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울을 대적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그러나 사울왕은 다윗을 두려워하였고미워하였고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육신 가운데 있을 때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를 해하려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말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또는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형제자매들과 갈등을 가지는 이유는내가 육신 가운데 있기 때문이지결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내가 자주 실수하고 넘어지는 사람인 것처럼나의 지체들도 그렇게 연약할 뿐입니다내가 그래도 용서하고 주님 안에서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처럼나의 형제자매들도 다 나와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사울 왕처럼나 자신의 권리와 유익을 따진다면우리는 결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내가 인정받고자 하고내가 대우받고자 하고내가 존중을 받고자 한다면나의 무엇인가를 빼앗기지 않으려 한다면우리는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 함께 요한일서 4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고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이는 두려움에 고통이 있기 때문이라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지 못하였느니라.

성경은 완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나단은 완전한 사랑으로 다윗과 화평을 누렸고,행복했습니다그러나 사울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고주님의 사람인 다윗을 사랑하지 않았기에오직 자기 자신만 사랑하고 있었기에두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었습니다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이러한 이기적인 자기 사랑과 두려움으로부터 건져내기를 원하시고해방시켜 자유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1장 7절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을 주지 아니하시고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을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의 영이 아니라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주셨습니다우리의 육신 안에는 어떠한 권능도사랑도건전한 생각도 없지만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님 안에는 그 모든 것이 있습니다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정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때에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권능으로 일하시며사랑으로 일하시며마땅히 생각할 바를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 안에서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의 고리를 중단하고차단하고끊어버려야 합니다수많은 추측과 계산과 상상을 멈춰야 합니다사울은 자기만의 생각 속에서 다윗을 두려워하였고원수로 삼았습니다사울이 주님과 동행하였더라면다윗을 자신의 친구로 삼았을 것이고자기에게 주신 든든한 선물로 인해 주님께 감사드렸을 것입니다사울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다윗에게 왕좌를 물려주면서사울 자신도 안락하고 평안하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사랑하지 못하고두려움 가운데 있다면그것은 우리가 육신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들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육신의 생각들을 우리는 다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즉시 십자가로 나아가 죽음으로 넘겨야 합니다나는 아무것도 아닌 자임을지옥에 떨어졌어야 마땅했던 자임을 다시 주님 앞에 인정하면서오직 은혜로 살고 있는 자임을 주님 앞에 고백하면서성령 안에 거해야 합니다그러할 때 우리는 두려움의 영이 아닌 권능과 사랑과 건전한 생각의 영 가운데 행복하고 평안하며 담대한 삶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옳고 그름을 따지고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우리가 다만 주님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그리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함

우리 마지막으로 시편 34편을 보시겠습니다시편 34편 7-9절을 보시겠습니다.

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는도다.

오 께서 선하신 것을 맛보고 알지어다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은 복이 있도다.

오 의 성도들아너희는 그분을 두려워하라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성경은 우리가 사랑하고 또 두려워해야 할 대상으로 오직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주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공포스럽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주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며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사울 왕은 다윗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합니다사울 왕은 백성들의 평가와 평판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두려워했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주의 천사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다윗은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주님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의 평가를 주의하고사람의 눈치를 살피게 되지만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주님의 평가를 주의하고주님의 눈치를 살피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사람들의 칭찬을 원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오직 주님의 칭찬만을 원합니다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주는 영광을 바라지 않습니다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을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8장의 말씀을 통해서 사랑과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우리는 때로 요나단처럼 형제를 온전히 사랑하기도 하고때로는 여인들처럼 편파적인 육신의 사랑을 하기도 하고때로는 사울처럼 육신의 생각 속에서 스스로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때로는 다윗처럼 주님을 따르면서 사랑을 받기도 하고또 때로는 오해와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무엘기상 18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든 모습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모습입니다사랑과 두려움이라고 하였을 때우리는 과연 누구를 사랑해야 할까요우리가 오직 마음을 다하고혼을 다하고생각을 다하고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처럼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그리고 내 옆에 주신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연약하고 실수도 많지만내 옆에 선물로 주신 형제자매들을 누리고 감사하면서사랑하기를 원합니다요나단처럼주님과 같은 온전한 관점에서 사랑하고 아끼기를 원합니다.

 

또 우리가 두려움에 대해서 생각할 때우리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게 될 때 우리는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고넘어지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두려워한다면주님께서는 우리를 둘러 진치시고건져내시며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공급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오늘도 한 걸음우리를 주님 앞에 이끌어 주시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대상이 오직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3.1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7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삼상 17:48-5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7장입니다사무엘기상 17장 48-5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8 그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나오며 다윗을 맞으러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맞으러 군대 쪽으로 빨리 달려가면서

49 손을 자루에 넣어 거기서 돌을 꺼내 돌팔매기구로 그것을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그 돌이 그의 이마에 박혀 그가 얼굴을 땅에 대고 쓰러지니라.

50 다윗이 이와 같이 돌팔매 기구와 돌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 블레셋 사람을 쳐서 죽였으나 다윗의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그러므로 다윗이 달려가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을 잡고 그 칼집에서 그것을 빼내어 그것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투사가 죽은 것을 보고 도망하므로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네가 골짜기와 에그론 성문들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가고 블레셋 사람들의 상한 자들은 사아라임으로 가는 길 곧 가드와 에그론에 이르는 길에서 쓰러졌더라.

저는 오늘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우연을 신봉하는 사람들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우상 신이 무엇일까한 번 생각해 본다면우리는 여러 가지 단어들을 떠올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돈과 재물이 오늘날의 우상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교육이나 과학쾌락과 즐거움스포츠영화인터넷스마트폰 역시도 오늘날 우상이라 불릴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연이라는 단어를 우상의 한 종류로 떠올려보았습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 바로 우연이라고 생각을 합니다또한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 바로우연이라고 믿고 있습니다시간도 공간도 없었던아무것도 없었던 때에우연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이 우주가 생겨나게 되었고어느 날 우연히 지구상에 단세포 생물이 출현을 하였고또 생명체는 우연히 돌연변이를 일으키면서 진화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오늘날 진화론을 믿는 과학자들이 실제로 믿고 있는 신의 이름을 한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그것은 바로 우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진화론을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자면 우연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우연이라는 신은 과학에서뿐만 아니라세상 사람들이 즐겨 만드는 여러 이야기에서도 신처럼 떠받들어지고 있습니다초능력을 가진 어떤 주인공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게 되면주인공이 꾸준한 어떤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라단지 우연한 사건이나우연한 만남을 통해 놀라운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무협 이야기를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주인공이 우연한 사건을 통해 순식간에 무림의 고수가 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모든 것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연히 어떤 것을 발견하면서 해피 엔딩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만들고,또 보고 듣고 즐기면서, “나에게도 우연한 일이 일어나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연이라는 신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기도 하고로또복권 당첨을 통해 많은 돈을 주기도 하며또 행복을 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최첨단 과학 시대에도 사람들은 오늘의 운세를 즐겨보고타로카드나손금이나,여러 가지 모양의 점괘를 여전히 주의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연을 믿고 우연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을 믿고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놀랍고 새로운 큰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우리와 같은 침례신앙을 가졌던 근대 선교의 아버지인 윌리암 캐리는 하나님을 향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고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인도하십니다또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십니다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주님의 인도를 따라 날마다 새롭게 걸어갈 수가 있을까요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까요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우리에게 새롭게 생겨나는 일들은과연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우연과 어떻게 다를까요?

 

오늘 저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인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사무엘기상 17장의 말씀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일반적으로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통해서믿음의 승리에 대해서 많이 우리가 들을 수가 있기 때문에조금 색다른 각도에서 한 번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가또 새로운 길이 열릴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우리가 오늘의 말씀에서3가지 요점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보편적인 뜻에 순종하는 가운데

먼저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지금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전쟁을 위하여 서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서 키가 약 3미터 가량 되는 거인 골리앗이 나와서 장수끼리 모든 전쟁을 결정짓는 일기토 전투를 신청하고 나섰습니다그는 놋 투구를 썼고쇠 그물 옷으로 무장하였는데그 옷의 무게만 놋 오천 세겔약 57kg 정도 되었습니다다리에는 놋으로 된 정강이가리개가 있었고어깨 사이에는 놋 방패가 있었습니다그의 창촉의 무게는 육백 세겔약 7kg 정도 되었습니다.

 

사울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는 키가 큰 사람이었지만골리앗 앞에서는 매우 작은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은 블레셋 사람들과 대치를 하고 있었지만군사들의 사기는 점점 더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7장 15-18절을 보시겠습니다.

15 다윗은 갔다가 사울에게서 돌아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버지의 양들을 먹이더라.

16 그 블레셋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사십 일을 가까이 와서 자기를 보이더라.

17 이새가 자기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이제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일 에바와 이 빵 열 개를 가지고 진영으로 달려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인 대장에게 주며 네 형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 그들의 증거물을 가져오라하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첫 번째 요점을 볼 수가 있습니다첫 번째 요점은 바로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진로는 일상적인 순종의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열린다는 것입니다다윗은 지금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상태였지만여전히 아버지의 양들을 먹이는 일상적인 생활 가운데 있었습니다그는 사울 왕 앞에 불려가서 하프를 타기도 하였고형들을 따라 전쟁에 잠시 따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5절 말씀처럼다윗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와서 평소처럼 양들을 돌보았습니다. 15절 말씀에 소제목을 달아본다면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상적인 다윗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16절에서는 다윗의 새로운 진로를 열어주는 그 블레셋 사람바로 골리앗이 등장하고 있습니다그는 마치 다윗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무려 40일을 이스라엘 앞에 보이고 있습니다. 16절 말씀에 소제목을 달아본다면새로운 진로이자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인 골리앗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7-18절 말씀을 보면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다윗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바로 전쟁에 나간 형들이 무사한지 소식을 가져오라는 심부름이었습니다이 말씀에도 소제목을 달아본다면, 15절과 똑같이 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상적인 다윗의 삶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 함께 15절과 16절과 그리고 17-18절 말씀이 어떻게 샌드위치처럼 서로 포개져 있는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인 16절의 골리앗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상적인 다윗의 삶이라고 하는 15절과 17-18절 말씀 사이에 정확하게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고특별한 뜻을 보여주시는가바로 일상적인 삶 가운데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매일의 길 가운데새로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특별하고 분명한 진로와 뜻과 인도하심을 구한다면우리는 이미 밝히 드러나고 알려진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시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만약 다윗이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기본적인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지 않았다면그는 골리앗이라는 새롭고 특별한 인도하심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요셉이 만약 감옥에서 생활하던 일상적인 삶 가운데 파라오의 잔 맡은 자와 빵 맡은 자를 섬기지 않았더라면그는 파라오의 왕좌에 앉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모세가 장인의 양떼를 성실하게 먹이는 일상적인 삶 가운데 있지 않았더라면그는 불타는 가시덤불을 볼 수가 없었을 것이고기드온이 숨어서라도 밀을 타작하지 않았더라면그는 주의 천사를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는 새로운 길은 평상시 주님을 따르는 생활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매일의 삶속에서 이미 나에게 드러나고 보여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가게 될 때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과 인도하심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이미 나에게 보여주신 뜻에 순종하지 않는데갑자기 특별한 뜻으로 부르시거나갑자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믿는 우연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환경과 일들 가운데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신실하게 감당하며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자 할 때언제 어디서든 주님과 동행하고자 할 때바로 그때우리는 그러한 순종의 삶 가운데 주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22-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다윗이 자기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자기 형들에게 문안하며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보라블레셋 사람들의 군대에서 가드 출신의 블레셋 사람 곧 이름이 골리앗이라 하는 투사가 올라와 똑같은 말들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다윗은 아버지께 순종하는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그런데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골리앗의 조롱하는 외침을 다윗으로 하여금 듣도록 인도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2. 사람들의 평가와 비난

이제 우리 함께 두 번째 요점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2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그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 그의 맏형 엘리압이 들었으므로 엘리압의 분노가 다윗을 향해 타오르매 그가 이르되,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광야에 있는 몇 안 되는 그 양들을 네가 누구에게 맡겼느냐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무례함을 아나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려고 내려왔도다하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첫째 형인 엘리압이 다윗에게 크게 분노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 이유는 다윗이 골리앗이 외치는 말을 듣고, 26절과 같이 말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26절의 뒷부분을 보시면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그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에게 도전하느냐?라고 말하였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여 벌벌 떠는 가운데다윗이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는 모습은 매우 얄밉게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특별히 그의 형인 엘리압은 자기 눈앞에서 막내 주제인 다윗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는 모습을 목격하였기에 더욱더 미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지금 목숨이 달린 전쟁이고매우 신중하게 싸워야 하는데교만하고 무례하게 함부로 말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함께 33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네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을 치며 그와 싸울 수 없나니 너는 단지 소년이나 그는 어려서부터 전사이니라하거늘

다윗이 사울 왕에게 찾아가서 자기가 싸우겠다고 말하자사울 왕은 다윗이 그와 싸울 없다고 말하였습니다영어로 보시면너는 소년에 불과하지만골리앗은 소년 시절부터 전사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요점으로사람들의 방해와 반대 가운데새로운 길이 열린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가장 먼저 방해한 사람은 다윗의 가족바로 다윗의 형이었고그 다음 방해한 사람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게 될 때모두가 찬성하고 축하해 줘야 할 것 같은데성경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길에는 언제든지 방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크게든 작게든 방해하고 반대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교만하고 무례하다는어찌 보면 매우 영적인 책망과 같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때로는 가능성이 없다는 말로 권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너는 소년이지만그는 소년 시절부터 전사라는어찌 보면 매우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상황 설명으로 방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처럼 친밀한 사람들이 방해를 할 수도 있고때로는 이스라엘의 왕처럼 매우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말릴 수도 있습니다때로는 책망을 하듯이 방해를 할 수도 있고때로는 타이르듯이 다정하게 방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우리는 겸손히 모든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지만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바로첫 번째 요점에서 살펴본 것처럼평소 나에게 분명히 드러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될 때오늘 나에게지금 나에게 특별히 임한 하나님의 뜻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길을 갈 뿐만 아니라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라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할 때그것을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서 함께하고 격려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마치 요나단의 병기를 드는 청년이내가 당신과 함께한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것처럼우리는 내 옆의 형제자매들이 주님을 따르고자 할 때 함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엘리압은 막내에 대한 시기심으로 인해서 다윗을 방해하였습니다사울은 눈에 보이는 현상들을 가지고 다윗을 방해하였습니다이처럼 개인적인 감정이나인간적인 경험과 관점은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게 만듭니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다른 사람의 인도하심까지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다윗과 같이 언제든지 새롭게 길을 인도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또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할 때그것을 같은 마음으로 격려하고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시험해 본 것

이제 우리 함께 마지막 세 번째 요점을 살펴보시겠습니다우리 함께 34-37절을 보시겠습니다.

34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당신의 종이 자기 아버지의 양들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어린양을 움켜 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것의 입에서 그것을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서 내게 대항하면 내가 그것의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서 죽였나이다.

36 당신의 종이 사자와 곰을 죽였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에게 도전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들 가운데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신 주 그분께서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하니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가라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하니라.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주님과 동행하였던 일들을 간증하고 있습니다다윗은 골리앗의 외치는 말을 듣고 감정적이거나 순간적인 충동으로육신의 격한 감정으로 싸우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그는 평소에 양들을 돌보며 주님과 동행하면서양들을 지켜냈던 믿음의 걸음들을 바탕으로지금 이스라엘의 양들을 골리앗이라는 사자나 곰 같은 짐승으로부터 지켜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하고자 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쟁이라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일이었습니다그러나 원리적인 면에서는 그가 날마다 양치기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시험하고 검증하였던 일들이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38-40절도 보시겠습니다.

38 사울이 자기 갑옷으로 다윗을 무장시키고 놋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워 주며 또 쇠 그물 옷으로 그를 무장시키매

39 다윗이 그의 칼을 그의 갑옷 위에 차고는 그것을 시험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이르되내가 이것들을 시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것들을 입고 갈 수 없나이다하고 그것들을 벗고는

40 손에 자기의 지팡이를 들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골라 자기가 지닌 목자의 자루 곧 짐 보따리에 그것들을 넣고 손에 자기의 돌팔매 기구를 가지고 그 블레셋 사람에게로 가까이 나아가니라.

다윗의 경험담을 들은 사울왕은 즉시 자신의 갑옷과 투구와 칼을 주어서 다윗을 무장시켰습니다사울이 가진 장비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최고의 품질을 가졌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시험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것을 거절하였습니다그리고 자신이 시험하고 검증하였던 조약돌과 돌팔매 기구를 가지고 나아갔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가세 번째 마지막 요점으로평소 믿음의 걸음 가운데 시험되고 검증된 것들 안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그것이 비록 겉으로는 새로운 길이고새로운 종류의 일이라 할지라도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이미 익숙하게 믿음 안에서 시험되고 검증된 방식으로 안전하게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비록 완전히 새로운 길이라 할지라도인도하심을 받는 원리적인 면에서는 평소에 주님과 동행하던 그 발걸음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갑옷과 무기는 매우 좋은 것이었지만다윗에게는 시험해 본 적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고 또 사용하는 장비를 가지고 다윗을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평소 다윗의 믿음의 걸음을 통해 오직 다윗에게만 시험되고 입증된 것들을 통하여 다윗을 새로운 길로 이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길을 걷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입니다누가 갑옷을 사용했으니까다윗이 조약돌을 사용했으니까기드온이 항아리를 사용했으니까요나단은 단 둘이서만 전쟁을 했으니까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조용히 돌았으니까하는 겉으로 보이는 어떤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어떤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어떤 방법으로든지 인도하시고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 그분 자신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는 겸손히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신 주님의 역사에 대해 듣고 배울 수 있어야 하지만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추천하는 방법이 나에게 항상 효과적으로 역사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개별적으로 주님을 따르면서 시험하고 검증해온 믿음의 발걸음 안에서우리 각자에게 맞는 새로운 일을 예비하시는 분이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매일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며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다윗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그러한 일상적인 순종의 삶 가운데 골리앗이라는 특별한 인도하심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특별한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께 순종하고자 할 때그에게는 형으로부터의 비난이 있었고이스라엘의 왕으로부터 안된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그러자 그는 사울 왕으로부터 아직 그가 시험해 본 적이 없는 좋은 장비를 제시받았습니다그러나 다윗은 그가 평소에 주님을 따르면서 걸었던 시험되고 검증된 방식대로전혀 새로운 싸움을 직면하였고결국 승리하였습니다.

 

바로 이 일을 통하여 다윗은 인생에서 완전히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베들레헴의 작은 양치기 소년에서 사울이 죽인 자는 수천이요다윗이 죽인 자는 수만이로다.”하는 노래의 주인공이자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인도하십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는 첫 번째로 이미 나에게 분명히 보여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매일 매순간 살아야 합니다두 번째로 사람들의 방해와 비난이 있을 수 있음을 마음에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그리고 세 번째로 다른 사람의 인도하심을 모방하고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과 내가 개인적으로 동행하면서시험되고 검증된 믿음의 발걸음을 지속하며 걷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새로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이십니다그 길은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르고오늘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2.2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6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삼상 16:7)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6장입니다사무엘기상 16장 7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똑같은 것을 보아도 다르다

오늘 말씀을 시작하면서먼저 재미있는 질문을 한 번 드려보겠습니다여러분여기에 카드 3장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그 카드에는 각각 원숭이 사진판다(팬더사진그리고 바나나 사진이 들어가 있습니다이 3장의 카드에서 어울리는 카드 2장을 골라서 짝을 지으라고 한다면과연 여러분은 어떤 카드를 뽑으시겠습니까?

이러한 물음에 대부분의 동양 사람들은 원숭이와 바나나를 뽑는다고 합니다왜냐하면 원숭이가 바나나를 잘 먹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러나 대부분의 서양 사람들은 원숭이와 판다를 뽑는다고 합니다왜냐하면 원숭이와 판다는 동물이고바나나는 과일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실험 결과처럼 사람들이 어떠한 사물을 보고 생각하는 관점이 너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똑같은 물건이라도똑같은 사람이라도똑같은 상황과 환경이라도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동양과 서양의 관점이 다르고남자와 여자의 관점이 다르고또 부모님과 자녀의 관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 말씀에 나타난 것처럼주께서 보시는 관점과 사람이 보는 관점이 다릅니다.

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일을 보는 관점이 다를 때그것은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관점이 다를 때그것은 심각하고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라는 잠언 14장 12절과 16장 25절에서 똑같이 2번이나 반복된 말씀처럼사람의 관점은 그것이 아무리 옳게 보여도,결국 망하는 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적인 육신의 관점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사무엘기상 16장의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라는 주제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관점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남편과 아내가부모님과 자녀들이형제자매가 어떻게 한 마음한 뜻으로 주님을 따를 수가 있을까요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우리 각자가우리 모두가 오직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 이미어느 때까지

우리 먼저 사무엘기상 16장 1-3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기름을 네 뿔에 채우고 가라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하시니라.

사무엘이 이르되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사울이 그것을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하매 께서 이르시되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다하고

이새를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라네가 행할 일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니 너는 내가 네게 지명하는 자에게 나를 위해 기름을 부을지니라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더 이상 사울 왕을 위해 애곡하지 말고베들레헴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자에게 하나님을 위해 기름을 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먼저우리가 1절에 있는 두 단어를 주목해서 보기 원합니다바로 이미라는 단어와 어느 때까지라는 단어입니다성도님들 각자 성경에 이미와 어느 때까지라는 말에 동그라미로 표시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우리의 눈이우리의 관점이 날마다 매순간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영어로 보시면 “seeing”, “보면서라는 말이 있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거절하시고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 것을 사무엘이 보면서언제까지 애통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바라봅니다우리는 일상 속에서 자주 반복되는 일들을 바라봅니다그러나 우리는 이미”, 어느 때까지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과거가 아니라오늘 새롭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날마다 새롭습니다겉으로는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 같을지라도늘 새롭습니다어제까지 말썽을 피웠던 학생이라도 오늘 아침 새롭게 사랑스럽고어제까지 실패하고 넘어졌던 나 자신이라 할지라도 오늘 아침 새롭게 은혜로 강건하여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감옥에 갇혀있던 요셉이 오늘 아침 파라오의 왕좌에 앉을 수 있는 것이고어제까지 도망자 신세였던 다윗이 오늘 아침 이스라엘의 왕좌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아침까지 메대 페르시아의 총리였던 다니엘이 그날 밤 사자 굴에 던져질 수도 있는 것이고또 어젯밤에 사자 굴에 던져졌던 다니엘이 다시 오늘 아침 총리의 자리에 복귀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어제까지 교수대에 달릴 뻔했던 모르드개가 오늘 아침 왕의 의복을 입고왕의 반지를 끼고왕의 말을 타고 백성들 앞에 행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어제의 인도하심은 어제까지이고오늘 우리에게는 날마다 새로운 오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 나를 위해

또 우리는 1절 말씀 뒷부분에 나를 위해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 “어느 때까지 사울을 위해 애곡하려느냐이제 나를 위해 가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한 왕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또한 3절에서도 나를 위해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너는 내가 네게 지명하는 자에게 나를 위해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은 여전히 사울 왕을 위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기름을 부어서 왕이 되라고 했던 사람인데.”, “그래도 불쌍하지 않은가.” 또 사무엘은 2절 말씀처럼자기 자신을 위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울 왕이 나를 죽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나 자신이나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오직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다른 사람들을 위하는 것임을 보아야 합니다이제 이 시점에서 진정 사울 왕을 위하는 것은사울이 원로처럼 대우를 받을지라도일선에서는 이스라엘을 이끄는 왕권을 내려놓고다윗이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입니다또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는 것도 더 이상 사울 왕이 아니라다윗 왕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맑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첫째로 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나 자신의 손해와 이익을 계산하고나 자신을 위하는 이기적이고 육신적인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는 결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뿐만 아니라때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조차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내가 위하지 않아도하나님께서 가장 위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우리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모든 일들을 오직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우리가 위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분은,나 자신도다른 사람들도 아니라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 이새의 아들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6장 4,5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께서 말씀하신 바를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그 고을의 장로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떨며 이르되,당신이 평화롭게 오시나이까하니

그가 이르되평화롭게 오느니라내가 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하고는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 가서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였습니다베들레헴의 장로들은 사무엘이 오는 것이 심판을 위함인지평화를 위함인지 모르기 때문에 떨면서 맞이하였습니다사무엘은 이새의 모든 아들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초청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6-1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오매 그가 엘리압을 보고 이르기를의 기름 부음 받을 자가 참으로 그분 앞에 있도다하였으나

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이에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매 그가 이르되이 사람도 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하니라.

그때에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이 사람도 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하니라.

10 다시 이새가 자기의 일곱 아들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니라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네 아이들이 다 여기 있느냐하니 이새가 이르되아직 막내가 남았는데보소서그가 양들을 지키나이다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하니

사무엘은 이새의 첫 번째 아들이었던 엘리압을 보고주의 기름 부음 받을 자라고 확신하였습니다왜냐하면 그의 용모가 뛰어나고사울 왕처럼 키가 큰 사람으로 백성들 앞에 나설만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처음에 사울 왕을 선택하신 이유는 키가 컸기 때문이 아니라그가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이새는 첫째인 엘리압둘째인 아비나답그리고 셋째인 삼마와 나머지 아들들까지 7명의 아들들을 모두 사무엘 앞에 보였지만 아무도 주께서 택하신 자가 없었습니다사무엘은 정말 모든 아들들이 다 모였는지를 물었고이새는 막내가 남았다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막내였던 다윗은 지금 혼자 들판에서 양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이스라엘의 지도자이자 재판관이었던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초청한 것은 어찌보면 정말 이새의 가족의 큰 행사입니다더군다나 아들들 중에서 누군가를 뽑아서 세울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므로집안에 아주 영광스러운 일이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그런데 아버지 이새의 관점에서 다윗은 사무엘에게 택함을 받을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받을 가능성이 제로, 0%, 전혀 없었기 때문에너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니너는 양을 보고 있거라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의 관점에서는 엘리압이 주께서 택하신 자였고이새의 관점에서는 막내는 주께서 택하실 리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이처럼 우리 사람의 관점육신의 관점은 하나님과 완전히 다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무엘은 한 평생을 주님과 동행해온 사람인데그 관점이 하나님과 달랐습니다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이새는 8명의 아들들을 너무나 잘 알고 그들을 지금껏 잘 양육해 온 아버지인데그 아버지의 관점이 하나님과 달랐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가 말하노라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는 이사야 55장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손쉽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우리에게는 이러한 말씀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능성을 100%라고 말했을 때하나님께서는 전혀 아니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고우리가 가능성이 0%라고 말할 때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길이라고바로 그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히어제까지 100%였던 일 조차도오늘 다시 새롭게 물으면서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말합니다. “내 자식은 내가 압니다.” 그러나 저는 18살 때부터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면서그리고 중고등부대안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10년 이상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보아왔지만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요즘 아이들에 대한 어떤 말을 들으면 나의 자녀는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사랑하는 우리의 부모님들이 여기에 나타난 이새와 같은 아버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아들을 부르러 오셨는데나의 이 아들은 부르실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면서아예 제외시켜놓는 부모님이 없기를 원합니다오늘 하나님께서 나의 자녀를 선교사로목회자로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님의 놀라운 일꾼으로 쓰시기를 원하시는데내 자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내 관점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알기 때문입니다어떤 일에 대해서 지식도 많고정보도 많고경험도 많기 때문에하나님께 물을 필요도 없이 나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기 때문에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자연스럽게 나의 관점에서 보게 되고그것이 옳다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초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점이고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 위해서는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그 무엇조차도 주님 앞에 다시 내려놓고틀릴 수 있음을 기억하면서겸손히 여쭙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

이제 우리 함께 12, 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는데 이제 그는 혈색이 좋으며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보기에 잘생겼더라께서 이르시되이 사람이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하시니라.

13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 날 이후로 의 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이에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12절은 어찌보면 우리가 혼란스럽게 볼 수도 있는 구절입니다하나님께서 겉모습을 안 보신다고 하더니결국 다윗이 훈남이었다는 소리가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다윗이 혈색이 좋고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또 보기에 잘생겼다는 말씀은 다만 다윗에 대한 묘사일 뿐이지하나님께서 그러한 이유로 다윗을 선택하셨다는 의미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것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잘 맞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아름다운 용모는 어찌보면 전쟁을 이끄는 전사나 왕으로서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우리 잠시 사무엘기상 17장 4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그를 업신여겼으니 이는 그가 단지 소년이며 혈색이 좋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더라.

소년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골리앗은 다윗의 겉모습을 보고 업신여겼습니다다윗이 싸움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풋내기곱상하게 생긴 꼬맹이 정도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다윗은 누구보다 담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그렇기에 모두가 골리앗의 겉모습에 압도되었을 때다윗은 오히려 그가 하나님을 모독하였으니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강력하게 나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한 목사님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설명하였습니다이스라엘 온 백성은 골리앗이 저렇게 크니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골리앗을 바라보았고다윗은 골리앗이 저렇게 크니 어떻게 조약돌을 못 맞출 수가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을 때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였습니다그런데 특이한 점은 사무엘이 아무 설명 없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입니다. “너는 이제부터 사울을 대신하여 왕이 될 것이니...”하는 등의 아무런 설명 없이 기름을 붓고 갔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기름 부음을 받아 임명되는 세 가지 직분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제사장대언자그리고 왕이었습니다다윗은 레위 지파가 아니고유다 지파였기 때문에 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그러면 이제 대언자와 왕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사울이 이미 왕으로 있었기 때문에다윗은 어쩌면 자신이 대언자로 부르심을 받았겠거니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부르시고 택하신 이유와 기준은 무엇입니까우리는 사무엘기상 16장 안에서 많은 것을 찾을 수는 없지만한 가지 매우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다윗이 순종하는 아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그는 모든 아들들을 초청한 사무엘의 초청 가운데모든 아들들 중에서 오직 자기만 제외되는 상황에서도 순종하여 들판에서 양들을 지키는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자기만 들판에 남은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서 슬쩍 다른데로 사라져 방황하지 않았고아버지가 사람을 보냈을 때정확히 그 자리에서 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또 아버지가 뒤늦게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렀을 때들판에 남으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오라가라하냐면서들판에서 고집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성품을 엿볼 수가 있는데그것은 바로 그가 순종하는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양을 돌보는 그 일 자체는 어찌보면 영적인 일이거나거룩한 일이거나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양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과 별로 관계가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너무나 기뻐하셨습니다왜 그렇습니까하나님께서는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들판에 양치기 소년이 수십 명수백 명이 있었을 것이고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양치기 소년이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중에서 다윗이야말로 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양치기 소년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 사울 왕과의 만남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6장 16-18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이제 우리 주는 왕 앞에 있는 왕의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솜씨 있게 하프를 탈 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하나님으로부터 온 그 악한 영이 왕에게 임할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하니

17 사울이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이제 나를 위해 하프를 잘 타는 사람을 구해 내게로 데려오라하니라.

18 그때에 신하들 중에서 한 사람이 응답하여 이르되보소서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보니 그는 솜씨 있게 하프를 탈 줄 알고 또 강하고 용맹한 자요전사요일에 분별력이 있으며 단정한 자니이다께서 그와 함께 계시나이다하더라.

사울은 육신의 삶을 지속한 결과주의 영을 잃어버리게 되었고그 대신 악한 영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사울의 신하들은 하프를 잘 타는 사람을 구해 연주를 하게하고주님을 찬송하게 하여마음의 평안을 구해볼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사울의 신하들 가운데 다윗을 아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는 이 신하의 이름조차도 알 수 없지만이 신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볼 수 있는 자였습니다볼품없는 양치기 소년에 불과했던 다윗을 보고그는 솜씨 있게 하프를 탈 줄 알고강하고 용맹한 자요전사요일에 분별력이 있으며 단정한 자며주께서 그와 함께 계신다고 정확하게 보았던 것입니다그는 다윗을 단지 한 명의 양치기로 가벼이 본 것이 아니라눈여겨보았고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경 속에서또 역사 속에서이름도 없이빛도 없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발견하게 됩니다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어떤 사람이었는지우리가 천국에 가서 만나보고 교제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21-2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로 삼고

22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원하건대 다윗이 내 앞에 서게 하라그가 내 눈앞에서 은총을 얻었느니라하니라.

23 하나님에게서 온 그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할 때에 다윗이 하프를 취하여 손으로 타니 이에 사울이 상쾌하게 되고 나았으며 그 악한 영이 그에게서 떠나니라.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자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우리가 사람에게 옳게 보이는 길을 따라 걷게 된다면우리는 결국 사망의 길들로 가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은 그렇게 보아도 되고,안보아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생명의 길이냐사망의 길이냐 하는 너무나 절실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눈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과거에어제까지 보았던 대로 보지 않고오늘 주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보기 위하여 우리는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내가 알고 경험하고 판단하는 대로 보지 않고나를 초월하시는 주님이 보시는 그대로 보기 위하여 날마다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골로새서 3장 23,24절을 보시겠습니다.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무슨 일을 하는지도 중요하지만더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는 것입니다다윗에게 양을 돌보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일이었습니다.

 

학생에게 공부하는 일은 주님께서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실 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남편에게 직업의 일은 주님을 섬기는 일일 수가 있습니다아내에게 자녀를 양육하는 일과 집안일은 그 자체가 영적이고 거룩한 일이 될 수가 있습니다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겉모습은 마음속에서부터 나올 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겉으로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작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가 더욱더 중요한 것입니다.

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는 마음을 보느니라.

 

오늘 우리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2.1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5

자기를 존중한 결과(삼상 15:30-3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5장입니다사무엘기상 15장 30절과 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0 그때에 사울이 이르되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원하건대 이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소서하니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께 경배하니라.

저는 오늘 자기를 존중한 결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기상 15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주신어찌 보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순종의 기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 기회를 놓쳐버렸고잘못을 범한 이후에 그 일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조차도 너무나 잘못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무엘기상 15장을 보게 되면 22절의 말씀을 주목하게 됩니다우리 함께 2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께서 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보소서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다는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순종이란 어떤 것인가그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런데 오늘 저는순종이 얼마나 중요한가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라는 순종의 주제보다는사울이 도대체 ” 순종을 하지 못하였는가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과 사울의 불순종

먼저 우리 함께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허락하여 주신 또 다시 한 번의 기회순종의 그 사명에 대해여 살펴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5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또한 사울에게 이르되께서 나를 보내사 왕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백성 곧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그런즉 이제 왕은 의 말씀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만군의 가 이같이 말하노라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그가 길에서 숨어 그를 기다린 일을 내가 기억하나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며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기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하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쳐서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구체적으로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기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들을 다 죽이라고 목록까지 열거를 하시면서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오해할 만한 소지가 전혀 없는 너무나 분명한 말로 사울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4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백성을 함께 모으고 들라임에서 그들의 수를 세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유다 사람이 만 명이더라.

예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할 때사울과 함께한 자들이 고작 600명에 지나지 않았었는데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이스라엘에게 주셨고이제 사울 왕이 군대를 소집하였을 때무려 이십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함께 7-9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네가 이집트 맞은편에 있는 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족속을 치고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잡으며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니라.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또 양과 소와 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나쁘고 가치 없는 것만 다 진멸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않고제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그러나 사울과 백성은 아말렉 족속의 왕인 아각을 산채로 사로잡았고가축들 중에서 좋은 것들을 모두 남겨두었습니다.

 

우리 함께 11절을 보시겠습니다.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노니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하시니라그것으로 인해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부분적인 순종에 대하여그가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사울 왕이 실수로 어떤 부분을 빠뜨렸다든지깜빡하고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1절을 다시 보시면,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이 표현은 사울이 실수로 몇 사람을 놓쳐서 진멸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주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아각 왕을 살리고모든 좋은 짐승들을 살려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실제로 우리가 32절에 보면사무엘이 아각을 죽이기 위해 끌어오라고 하였을 때그가 죽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 기분 좋게 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아각 왕은 사울 왕으로부터 자기가 죽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육신의 관대함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의 육신을 볼 수가 있고바로 우리들의 육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육신의 특징은 하나님보다 관대한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예전에 사울 왕은 전쟁을 수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맹세하면서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여서정말 이상하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그것은 사울의 육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우리는 또한 사울의 엄격한 모습이 아니라매우 관대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아말렉 족속의 왕인 아각을 살려두었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신 것을사울 왕이 살려두었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자를사울 왕이 용서하였다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모두 멸하라고 하신 가축들을사울 왕이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이러한 관대한 모습 또한 사울의 육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보다 관대하고 넓은 육신의 일들을 보게 됩니다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못하였을 때 회초리로 징계하라고 말씀하시고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자녀를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지만,사람들은 그것이 폭력적이며 사랑이 없는 것이고자녀들을 망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실수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악한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말씀하셨지만사람들은 살인자도 인권이 있고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사형을 하지 않습니다어찌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더 관대하고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벗어난 일들은 그것이 얼마나 선하고 좋아 보이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일들입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과 자기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을 만큼사람을 존귀하게 대하시는 분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만큼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이러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때에는 그것이 가장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그것이 엄격하든지 또는 관대하든지오직 하나님의 기준대로 해야만 합니다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사울 왕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너무나 관대한 모습으로 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 사울 왕의 어두움

우리 함께 13-15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내가 의 명령을 수행하였나이다하매

14 사무엘이 이르되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들의 울음소리와 또 내게 들리는 소들의 울음소리는 무엇을 뜻하나이까하니

15 사울이 이르되그들이 그것들을 아말렉 족속에게서 끌어왔나이다백성이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겼으며 나머지는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하매

13절에 보니까 사울 왕은 자기가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육신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사울은 분명히 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지만자기는 진심으로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사울은 주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켰지만자기는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14절에서 양들과 소들의 울음소리에 대하여 물었습니다그러나 사울은 첫 번째로는 백성이 한 것이라고 백성에게 책임을 전수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두 번째로는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는 좋은 의도였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어찌 보면 사울의 마음은 그렇게 사악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의 마음은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기 위하여 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순수한 마음으로 일어난 것 같을지라도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적인 것이며악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순수한 마음으로예수님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여 결코 그리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꾸짖고절대로 죽으시면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탄아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책망하셨습니다아무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할지라도그 근원이 육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라고 로마서 8장 7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육신적인 생각으로는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순수한 것처럼 보일지라도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이며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18,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또 께서 왕을 보내 이동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가서 죄인인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이 소멸되기까지 그들과 싸우라하셨나이다.

19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노략물에만 날아가 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였나이까하니

사무엘은 더욱 정확한 말로 사울 왕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서그들을 진멸하고 소멸하라는 것이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그리고 19절에서는 사울 왕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사울 왕은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고노략물에 탐심을 품었으며그것이 바로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한 것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육신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욕심입니다그것이 돈에 대한 욕심이든명예와 인기와 영광에 대한 욕심이든힘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쾌락에 대한 욕심이든육신의 일들은 명백히 욕심으로 나타납니다.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안에서 걸으라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라고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야고보서 1장 15절에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이렇게 사무엘로부터 강한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그런데 사울 왕의 반응이 어떠합니까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20,21절을 보시겠습니다.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참으로 나는 의 음성에 순종하여 께서 나를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노략물 중에서 양과 소와 또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였나이다하매

여기서 사울 왕은 차라리 내가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어떻게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다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어야 했습니다그러나 사울 왕은 참으로 나는참으로 나는주의 음성에 순종하였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시 한 번 참으로 나는 순종했지만백성들이백성들이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린다는 좋은 의도로 그렇게 남긴 것을 내가 관대하게 허용한 것뿐이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 왕의 어두움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그의 양심과 마음에 빛을 비춰주셨지만사울 왕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그의 생각 속에서는 상황 논리와 자기 마음의 선하고 좋은 의도만 강조되고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 것인지 듣고자 하지 않고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계속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된 요한복음 1장 5절 말씀처럼사울 왕은 어둠 가운데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울의 관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22-25절을 보시겠습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께서 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보소서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나이다왕이 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하더라.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내가 죄를 지었나이다내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음성에 순종한 까닭에 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들을 어겼나이다.

25 그러므로 이제 원하오니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께 경배하게 하소서하매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바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것이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미 나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다른 영적인 일들과 섬김으로 헌물을 가져오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더욱 강력하게 책망하자 사울 왕은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4절에서 사울 왕은 자기가 백성을 두려워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육신의 또 다른 표시입니다사람들의 평판과 평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육신의 모습입니다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을 두려워합니다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며주를 두려워하는 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육신 가운데 행하게 될 때우리는 사람들을 칭찬과 비난과 평가를 하나님의 평가보다 더욱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얼마 전 요나단을 죽일 번 하였고온 백성들이 똘똘 뭉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 왕을 막아선 일을 경험하였습니다이러한 일들이 아마도 사울 왕을 위축되게 하였고백성들의 눈치를 살피게 하였을 것입니다왜냐하면 사울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 육신 가운데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자신이 용서받기를 원하고또 주님께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보면사울 왕이 진심으로 죄를 돌이키고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기를 방어하고 변명하던 사울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갑자기 죄를 인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그의 마음에 빛이 임한 것일까요바로 23절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한 문장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바로 그가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다는 이 말 한마디에사울 왕은 무작정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처럼,심지어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순간에 조차우리는 육신일 수가 있습니다심지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중에도 우리는 간사한 육신 가운데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사울의 관심은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자기의 왕권에 있었습니다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바로 자기를 존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26-28절을 보시겠습니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왕이 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께서 왕을 버려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하니라.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그가 그의 겉옷 자락을 붙잡으매 그것이 찢어지므로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께서 이 날에 이스라엘 왕국을 왕에게서 찢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무엘은 사울 왕의 거짓된 자백에 아랑곳하지 않고다시 한 번 마음에 쐐기를 박으며 돌아서고 있습니다. “왕이 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붙잡았고옷이 찢어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며 당겼습니다사무엘은 옷이 찢어진 것을 보면서이 옷이 찢어진 것처럼당신의 왕국이 찢어지고왕보다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 나를 존중히 여기사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지고끝나버린 사울 왕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바로 우리가 처음 읽은 30,3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30 그때에 사울이 이르되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원하건대 이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소서하니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께 경배하니라.

사울은 내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든 말든일단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행동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사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자기를 존중하는 삶자아중심의 삶인 것입니다그리고 그는 온 백성들 앞에서 주님이 받지도 않으시는 경배를종교적으로위선적으로 보란 듯이 드렸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끝까지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그 길은 참되게 자기를 존중하는 길이 아닌데그 길은 참되게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길에 아닌데그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자기를 파멸시키는 그 육신의 삶이 마치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길인 것처럼 신속히 걸어갔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끝나버렸을 때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나는 정말 하나님을 대적할 뿐이구나주님이렇게 비참한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마치 모든 머리털을 잃고두 눈이 뽑히고원수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삼손이최후의 순간에 만큼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처럼우리는 모든 것이 끝나버린 순간에 조차다시 주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온 마음을 다해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가면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2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는 결국 육신으로 인해 길을 잘못 가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통해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며내가 아니요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을 살아간다면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내가 나를 존중히 여겨서내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내가 오직 주님만을 존중히 여길 때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사랑과 긍휼의 주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존귀하게 대하실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육신의 삶이 아니라오직 주님만을 첫째로 구하며주님만을 존중히 여기는 십자가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1.26.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4

주님과 동행해야 할 필요성(삼상 14:44-4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4장입니다사무엘기상 14장 44-4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4 사울이 응답하되요나단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하매

45 백성이 사울에게 이르되이스라엘 안에서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어야 하리이까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이다그가 이 날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나이다하여 백성이 이렇게 요나단을 구출하므로 그가 죽지 아니하니라.

46 이에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처소로 가니라.

저는 오늘 주님과 동행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우리가 지금 읽은 사무엘기상 14장 44절의 말씀은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왜냐하면사울 왕이 지금 자기의 아들인 요나단 왕자를 향하여 사형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지금 사울 왕은 자기 아들에게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요요나단은 자기와 함께한 병기를 드는 한 청년과 함께오직 두 명이서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가져온승리의 주인공이었습니다요나단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다 흩어져 떠나가고오직 600명만 남았던 상황에서벌벌 떨고 있던 백성들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가 전쟁을 승리로 일으켰던 용사 중의 용사였습니다패배가 확실시 되었던 상황을 한 순간에 큰 승리로 만든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도대체 왜사울 왕은 자기 아들에게 반드시 죽어야 한다고그것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언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그 이유를 결론적인 한 마디로 표현해 본다면바로 사울 왕이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 모든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요나단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사울 왕 본인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24절부터 46절까지의 말씀을 살펴보면서오늘 설교의 제목처럼주님과 동행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우리는 왜 주님과 동행을 해야 하는가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가우리가 함께 살펴보면서하나님과 동행하는 관계를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 내가 없어야 한다.

그럼 우리 함께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인지먼저 사무엘기상 14장 23절과 24절을 연결해서 보시겠습니다.

23 이와 같이 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므로 전쟁이 벧아웬으로 넘어갔더라.

24 그 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니라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저녁때까지 아무 음식이든지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니 이로써 내가 내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로다하였으므로 백성 중 아무도 어떤 음식도 맛보지 못하니라.

23절에 보시면 주께서 그 날에 요나단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패배가 확실했던 전쟁은 놀라운 승리로 바뀌었고도망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회복되고 돌이켜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이 날 백성의 마음은 주님으로 인하여승리로 인하여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격에 휩싸였을 것입니다말로만 들었던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현장에서 체험하는 자가 되었기에그 기쁨과 놀라움에 매우 흥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4절에 보시면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을 보게 됩니다그 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뻐하며 주를 찬양하고 경배하니라라고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이상하게도그 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니라라고 기록된 것입니다축제의 분위기가 되었어야 할 상황에장례식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바로사울 왕이 저녁때까지 아무도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맹세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크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했던 사울 왕이 도대체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요그 이유는 그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가 주님과 동행하였더라면자기 자신이 감히 제사장만이 드려야 했던 헌물을 직접 드린 것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돌이켰을 것입니다그가 주님과 동행하였더라면자기 자신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승리를 주신 주님을 겸손히 찬양하였을 것이며백성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았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고여전히 육신 가운데 행하였습니다.

이로써 내가 내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로다

 

사울 왕은 요나단의 믿음으로 인한 놀라운 승리에숟가락만 얹은 것처럼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지만마치 자기 자신이 전쟁을 이끈 것처럼내가 내 원수들에게 원수를 갚으리로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람의 표시는바로 내가내가 등장한다는 것에 있습니다주께서 승리를 주셨지만사울은 내가 원수를 갚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주님의 대적들과 싸우는 것이지만사울은 내 원수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 자신이 주님과 잘 동행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좋은 기준 가운데 하나는나의 생활 속에 누가 중심이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 육신의 엄격함

사울 왕은 육신 가운데서 매우 엄격한 명령을 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저녁까지 어떤 음식도 먹지 말하는 것이었습니다사울 왕은 단순히 명령만 내린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맹세하였습니다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육신의 또 다른 표현은 율법적이고종교적이며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엄격함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육신이 영적인 겉모습과 모양을 가지게 될 때반드시 나타나는 표현 중 하나는 이러한 율법적이고종교적이며부자연스러운 엄격함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타락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보게 되면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같은 겉모습을 가졌지만그들의 특징을 보면율법적이고종교적이며부자연스럽게 엄격하였다는 것입니다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오랜 세월 동안 허약한 질병에 매였던 자들에게참된 안식을 주셨지만그들은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그 사람과 함께 기뻐하기보다오히려 예수님께 그들만의 이상한 해석으로 안식일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면서예수님을 판단하고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셨는데

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보게 되면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마귀들의 영들과 교리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3절에 보게 되면혼인을 금하고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하면서거룩한 모양을 가진 것을 보게 됩니다로마 카톨릭이나 불교에서는 사제들이 혼인을 하지 말아야 하며그렇게 혼인을 하지 않아야 거룩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육신을 하는 것보다채식을 하는 것이 더 성스럽고 고상한 것이라고 가르치기도 합니다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표시는 겉모습이 아무리 거룩하게 보일지라도자기 자신과 남을 얽어매어 묶어버리는 부자연스러운 엄격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육신의 표시는 정죄와 판단과 심판입니다그러나 반대로 성령의 표시는 사랑과 긍휼과 용서와 부드러움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느니라.라는 야고보서 2장 13절 말씀처럼성령님이 이끄시는 거룩한 삶은율법과 원칙과 엄격한 기준과 판단과 심판에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뜨거운 사랑과 감당할 수 없이 넘치게 부어주시는 은혜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 요나단과 백성의 넘어짐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상 14장으로 돌아오셔서이야기를 조금 살펴보겠습니다. 25-30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5 그 땅의 모든 사람이 숲에 들어갔는데 땅에 꿀이 있었으며

26 백성이 숲으로 들어갈 때에보라꿀이 떨어지더라그러나 맹세를 두려워하여 아무도 자기 손을 입에 대지 아니하니라.

27 그러나 요나단은 자기 아버지가 맹세로 백성에게 명할 때에 듣지 못하였더라그러므로 그가 자기 손에 든 막대기 끝을 내밀어 벌집에 그것을 담그고 자기 손을 입에 대니 그의 눈이 밝아졌더라.

28 그때에 백성 중에서 한 사람이 응답하며 이르되당신의 아버지가 맹세로 백성에게 엄히 명하여 이르시기를이 날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하셨으므로 백성이 기진하였나이다하니

29 이에 요나단이 이르되내 아버지가 그 땅을 괴롭게 하였도다청하건대 내가 이 꿀을 조금 맛보았으므로 내 눈이 이와 같이 밝아진 것을 보라.

30 하물며 백성이 오늘 자기들의 원수들에게서 자기들이 노략하여 얻은 것을 마음껏 먹었더라면 얼마나 더 그리하였겠느냐이제 블레셋 사람들 가운데 더 큰 살육이 있지 아니하였겠느냐하니라.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큰 승리를 거두고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여기운이 빠지고 고통을 당하는 중에 있었습니다그들은 숲에서 꿀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침을 삼키면서도그림의 떡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그런데 요나단은 아버지의 맹세를 듣지 못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자연스럽게 꿀을 먹고 기운을 차리게 되었습니다그러자 백성 중의 한 사람이 사울 왕의 맹세에 대하여 요나단에게 귀띔해 주었고요나단은 이 상황을 너무나 안타까워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을 때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지 주목해 보기 원합니다내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내가 개인적으로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내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을 때우리는 우리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 것입니다우리 자신의 옳고 영적인 것 같은 어떠한 엄격한 기준들을 가지고주변 사람들을 가두고요구하고얽매어 묶으면서 고통을 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말처럼사울 왕이 백성들에게 마음껏 먹게 하였더라면이스라엘은 더 큰 승리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이제 이스라엘은 마치 패배를 한 것처럼기운이 빠지게 되었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31-32절을 보시겠습니다.

31 그 날에 그들이 믹마스에서부터 아이얄론에 이르기까지 블레셋 사람들을 쳤으므로 백성이 심히 기진하였더라.

32 백성이 노략한 물건으로 달려가서 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취하고 땅에서 잡아 그것들을 피째 먹었더라.

백성들은 심히 기진한 가운데 겨우겨우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며 전쟁하였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여 도망 중에 있었기 때문에승리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그런데 문제는 전투를 마친 백성들이너무나 기진한 나머지 노략물을 피째 먹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그들을 불을 피워서 고기를 구울만한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그들은 마치 짐승처럼양과 소와 송아지들을 잡아서 날고기를 뜯어먹고 있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이 배고픔으로 인하여 이렇게 품위 없고 질서 없는짐승과 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신명기 12장 23-25절을 보시겠습니다.

23 오직 확실하게 너는 그 피를 먹지 말라피는 생명이니 네가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라.

24 너는 피를 먹지 말고 그것을 물같이 땅에 쏟을지니라.

25 너는 피를 먹지 말라이로써 네가 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면 너와 네 뒤를 이을 네 자손들이 잘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결코 피를 고기와 함께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는 피가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이것은 피를 음료처럼 마시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고기를 요리하지 않고피째 먹지 말라는 말씀입니다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노략물을 피째 먹고 있었습니다우리 다시 사무엘기상으로 돌아오셔서, 14장 33-34절을 보시겠습니다.

33 그때에 그들이 사울에게 고하여 이르되보소서백성이 피째 먹어 께 죄를 짓나이다하니 사울이 이르되너희가 죄를 지었도다이 날 큰 돌을 내게로 굴려 오라하고

34 또 사울이 이르되너희는 백성 가운데 흩어져 다니며 그들에게 말하기를각 사람이 자기 소와 자기 양을 이리로 내게로 끌어다가 여기에서 그것들을 잡아 먹되 피째 먹어서 께 죄를 짓지 말라하매 그 밤에 온 백성이 각각 자기 소를 끌어다가 거기서 잡으니라.

사울은 뒤늦게 백성들을 만류하면서백성들에게 고기를 요리해서 먹도록 허락하였습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우리가 육신 가운데 행하게 될 때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환경을 제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사울은 여기서 자기 자신이 직접 피째 먹지 않았으므로죄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아무리 배가 고파도 고기를 피째 먹은 것은 백성들이므로백성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엄밀히 따져본다면연약한 백성을 이렇게 죄악으로 이끈 것은 사울 왕 자신이었습니다본인이 정말 그렇게 주님 앞에 승리를 원한다면혼자서 조용히 금식할 것이지사울은 그것은 백성들에게 강요함으로결국 백성들을 피째 먹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우리는 우리의 가족들형제자매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그들에게 죄를 짓는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 요나단의 위기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36, 37절을 보시겠습니다.

36 사울이 이르되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서 동틀 때까지 그들을 노략하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하니 그들이 이르되무엇이든지 왕이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소서하니라그때에 제사장이 이르되우리가 여기로 하나님께로 나아가사이다하매

37 사울이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되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가리이까주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겠나이까하였으나 그분께서 그 날에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제 사울은 밤새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서 아침까지 그들을 멸하자고 백성들을 이끄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어떻게 보면 낮에는 먹지도 못하게 하고이제 밤에도 잠도 못 자게 하는 것입니다사울 곁에 있던 한 제사장이 너무나 힘이 들었는지마음이 안 좋았는지하나님께 여쭤보자고 제안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사울 왕은 하나님의 조언을 구하면서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내려갈 것인지를 여쭈었습니다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런 대답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함께 38-39절을 보시겠습니다.

38 사울이 이르되너희 백성의 모든 우두머리들아여기로 가까이 오라이 날 이 죄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살펴보라.

39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 죄가 내 아들 요나단에게 있다 할지라도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하되 온 백성 가운데서 그에게 대답하는 자가 하나도 없더라.

사울은 백성 가운데 죄가 있다고 판단하고반드시 그 죄를 찾아내어 죽이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지금 이 자리에 죄가 없는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사울 왕은 제사장도 아니면서감히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 의식을 진행하였습니다온 백성들은 피째 먹었습니다지금 사울을 포함한 온 백성이 하나님의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다 어겼습니다그런데 지금 누구 한 사람을 잡아서 처단해야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42-44절을 보시겠습니다.

42 사울이 이르되나와 내 아들 요나단 사이에 제비를 뽑으라하였더니 요나단이 뽑히니라.

43 그때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네가 행한 것을 내게 고하라하니 요나단이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내가 다만 내 손에 든 막대기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보소서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하거늘

44 사울이 응답하되요나단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노니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하매

사울 왕은 제비뽑기를 하면서결국 요나단의 죄를 물었습니다그러자 요나단은 숲속에서 꿀을 조금 맛보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그리고 사울은 요나단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형을 언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우리는 결국 우리의 손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해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부모님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결국 사랑하는 자녀를 내 손으로 망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내가 사랑하는 지체들을 내 손으로 상처 주게 될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 사울 왕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어떻게 보면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자기 명예를 위해서자기가 정한 법을 위해서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하고 있고패배가 확실한 상황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가져온 위대한 용사를 친히 제거하려는 것이었습니다그는 하나님의 편도 아니었고이스라엘의 편도 아니었습니다오히려 마치 블레셋 사람들의 편과도 같습니다요나단이 죽은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게 되면박수를 치며 즐거워할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 사탄에게 즐거움을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우리는 주님의 대적 마귀가 기뻐할 일들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우리는 결코 지혜를 가질 수가 없고정상적인 생각조차 할 수가 없게 되고매우 이상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 전투의 종결

이제 우리 함께 45-46절을 보시겠습니다.

45 백성이 사울에게 이르되이스라엘 안에서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어야 하리이까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이다그가 이 날 하나님과 함께 일하였나이다하여 백성이 이렇게 요나단을 구출하므로 그가 죽지 아니하니라.

46 이에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들의 처소로 가니라.

사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요나단을 죽이고자 하였지만백성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막아서서 요나단을 구출하였습니다불행 중 다행으로 사울 왕은 자기 아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백성들이 아무도 말려주지 않았다면,그는 정말 자기 손으로 모든 것을 망치게 되었을 것입니다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이러한 어리석고 육신 충만한 사울에게도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이 늘 따르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 46절에 보면사울은 더 이상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지 않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하나님의 일을 중단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만약 사울 왕이 어리석은 맹세를 하지 않았더라면백성은 처음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축제의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음식을 먹고 위로와 격려를 얻은 뒤에블레셋 사람들을 완전히 진멸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사울 왕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에백성들은 기진하게 되었고피째 먹음으로 죄를 짓게 되었고주님께 물었을 때 대답을 들을 수가 없었고요나단을 죽일 번 하였고맹세를 깨면서 힘들게 요나단을 구출하게 되었고결국에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해산해 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그 결과는 무엇입니까우리 함께 마지막 5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의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심한 싸움이 있었으며 사울이 강한 자나 용맹 있는 자를 보면 그를 자기에게로 데려왔더라.

그 결과는 사울이 평생 동안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다가오는 한 번 한 번의 문제들에서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육신 가운데 행한다면우리는 평생 동안 길을 돌아서 가야할지도 모릅니다한 순간에 통과할 수 있는 길을 한 달, 1년 동안 더 고통스럽게 통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 결론

우리는 오늘 주님과 동행해야 할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사무엘기상 14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사울 왕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육신 가운데 자기 스스로 모든 일들을 주관하고 진행한 결과모든 일들이 망쳐지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굶주려 힘들게 만들었고피째 먹는 죄를 짓도록 환경을 제공하였으며자기 아들을 죽일 번 하였고완전한 승리를 놓쳐버렸습니다이 모든 일들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우리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필수입니다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액세서리 장식품이 아니라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에우리는 반드시 주님과 동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우리가 우리 자신의 지혜와 힘을 의지하면우리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게 된다면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풍성히 공급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님을 따르고 섬길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또 우리는 많은 영혼들을 살리고형제자매들을 소생하게 될 것이고완전한 패배를 승리로 바꿔놓을 것입니다이 모든 일들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하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십자가를 통하여 주님과 동행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함께 미가서 6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 사람아그분께서 선한 것을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오늘 우리에게 놀라운 승리와 복을 풍성히 주시기를 원하십니다우리 모두가 사울 왕이 아니라요나단처럼하나님과 함께 일하여 온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고기적의 승리를 가져온 요나단처럼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01.15.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3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삼상 14: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4장입니다사무엘기상 14장 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보라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혹시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께는 제약이 없느니라하니

저는 오늘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제약을 주시는 이유 Why God gives us limitation

우리가 오늘 살펴볼 사무엘기상 14장의 상황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비치는 것처럼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전쟁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절망적이었는지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다이날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 상황은 전혀 전쟁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은 기브아의 맨 끝 지역에서 미그론에 있던 석류나무 밑에 머물렀고 그와 함께한 백성은 육백 명가량이더라.

지금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사울왕과 함께한 백성은 고작 600명밖에 없었습니다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요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함께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대요기병이 육천 명이요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더라그들이 올라와 벧아웬에서 동쪽으로 믹마스에 진을 치매

 

지금 사울왕과 함께 한 백성은 고작 600명뿐인데블레셋 사람들은 병거만 삼만 대요기병이 육천 명이고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았습니다초조했던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던 헌물을 직접 드리게 되었고나중에 도착한 사무엘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왕을 책망하고는 베냐민의 기브아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또한 사무엘기상 13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창이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심지어 사울왕과 함께 한 온 백성 가운데 제대로 된 무기라고는 오직 사울과 요나단에게 있던 칼 두 자루 뿐이었습니다이것은 결코 전쟁을 할 수가 없고오직 확실한 패배만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군사적인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고심지어 사울왕은 사무엘로부터 버림을 받은영적인 상황마저도 너무나 암울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들이 자주 다가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방법도 없고길도 없고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답답하고 힘든 일들이 날마다 다가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일들이 다가오는 것일까요왜 우리에게는 할 수 없는 것도 많고제약도 많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상황을 통하여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만나게 되고경험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이 세상에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는 일들만 있다면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을 주셔서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게 만드시는 것입니다바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경험하게 하시려고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불가능함과 제약을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모든 것에 제약을 받는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이 상황 속에서믿음의 사람인 요나단이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고위대한 기적과 승리를 경험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그리고 우리의 삶에 날마다 다가오는 어렵고 힘든 일들 속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며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 주님께는 제약이 없다 There is no restraint to the LORD

우리 함께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보라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혹시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께는 제약이 없느니라하니

우리는 모든 것에 제한을 받고제약을 받는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요나단이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먼저 그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그는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그는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그는 자신의 불가능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그는 자신의 능력이나 제한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오직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요나단에게 가장 현실적인 계산은 군사의 차이가 몇 명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요나단에게 가장 실제적인 계산은 얼마나 좋은 무기를 가졌는가가 아니었습니다요나단에게 가장 정확한 계산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렇게 계산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우리는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계산할 때우리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바라보고통장의 잔고를 바라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우리는 주님의 일을 계산할 때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를 계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우리는 주님의 일을 계산할 때나의 능력의 유무를 고려하고 따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는 때로 마치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처럼하나님을 계산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가 결코 아닙니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입니다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정말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우리는 어쩌면우리의 머릿속으로 가능한 것을 다 계산해놓고그 범위와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나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지금 요나단은 자기와 함께한 병기 드는 청년과 함께 오직 2명이서 싸우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사울왕은 600명밖에 남지 않는 백성을 보면서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요나단은 제약이 없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오직 2명으로 담대하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능력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고려하고그 범위 안에서만 계산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지금 요나단은 자신이 몇 명까지 이길 수 있을지자신의 검술실력이 얼마나 되는지자기와 함께한 병기 드는 청년이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지를 전혀 계산하지도 않고고려하지도 않고 있습니다요나단은 지금 현실적인 감각이 전혀 없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입니다그러나 요나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현실로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경책이나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이야기가 아니라우리들의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원한다면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나의 제약을 계산하지 말고제약이 없으신 주 하나님을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야 합니다무엇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계산하는 고려하는 내가 없어야 합니다오직 모든 것이 가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실 때에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나의 일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제약을 받으시는 경우 When the LORD has limitations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아무것도 없는 가운데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은 권능과 능력의 면에서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십니다아멘!

 

그런데 그렇다면어째서 성경 속에서 놀랍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역사하시지 않는 것일까요왜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없고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감동의 역사가 너무나 가끔씩만 일어나는 것일까요우리 함께 시편 78편 41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뒤로 돌이켜 하나님을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제한하였도다.

시편 78편에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면서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주목할 만한 표현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한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는 무제한입니다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제한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 함께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그분의 놀라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믿지 아니하였으니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놀라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그분의 역사와 권능을 제한하였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가나안 백성의 거인들을 물리치시고후에 길이길이 남을만한 기적적인 승리의 역사들을 풍성히 주시려고 하였지만이스라엘의 믿지 아니함을 통해제한을 받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했던 놀라운 승리의 역사들은 무려 40년이 지난 뒤에야 새로운 세대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잘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제약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제한을 받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믿는다고 말하지만실제로는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이미 계산하고 있고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고이미 모든 일을 단정 짓고 결론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들의 인간적인 한계 안에서 가능한 것들까지만범위를 정해놓고그 범위 안에서만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제한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런 제약이 없고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역사하기를 원하시지만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한을 받으시는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요나단과 함께하신 주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모든 것에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그리고 우리도 요나단과 같이 불가능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우리의 실제 삶 가운데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 함께하는 동료 Fellow-walker

능력의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칙의 면에서그분은 사람과 함께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사람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제약을 받으십니다많은 사람으로 구원을 하시든지혹시 적은 사람으로 구원을 하시든지사람의 수에는 제약이 없지만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믿음의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기상 14장에서 보면정말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에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무제한의 권능을 나타내시고자유롭게 역사하실 수가 있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7절도 보시겠습니다.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그에게 이르되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대로 다 행하시오며 몸을 돌이키소서보소서당신의 마음에 따라 내가 당신과 함께하나이다하니라.

여기에는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요나단이 있었고요나단과 함께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우리는 많은 경우요나단처럼 말하는 사람 옆에서그를 말리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하십니까믿음도 좋지만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우리 둘이서 저 많은 사람들과 싸우겠다는 말입니까아무리 주님이 도와주셔도 이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이 청년은 요나단 못지않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그는 요나단의 믿음의 고백을 응원하면서격려하면서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따라 내가 당신과 함께하나이다” 오늘 우리들이 요나단처럼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고또한 그와 함께한 바로 이 청년처럼형제자매의 믿음의 고백에 마음으로 아멘하고 화답하며함께 믿음을 격려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모든 상황을 뛰어넘고 초월하여제약이 없이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시는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합니다그리고 이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전진하고자 하는 형제자매들을믿음으로 독려하고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더더욱 많이 필요합니다제약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시며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믿음의 결과 The result of faith

이제 우리 함께 요나단과 병기 드는 청년의 믿음을 통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지믿음의 결과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4장 13-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요나단이 손과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의 병기를 드는 자도 그를 따랐더라그들이 요나단 앞에서 쓰러지매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그를 따라가며 죽이니라.

14 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한 겨리의 소들이 쟁기질 할 수 있는 반 에이커 땅에서 처음으로 살육한 자가 이십 명가량이더라.

15 군대와 들과 온 백성 가운데서 떠는 일이 일어나매 수비대와 노략하는 자들도 떨며 땅도 흔들렸으니 이처럼 그것은 참으로 큰 떨림이었더라.

이제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오라고 말하는 그 말을 주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표시로 확인하면서믿음으로 전투를 시작하였습니다오직 두 사람이 해변의 모래와 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으로 쳐들어간 것입니다스파이처럼 위장을 하고 몰래 잠입을 한 것도 아니었고대놓고 칼을 들고 쳐들어갔습니다요나단에게는 어떻게 전쟁을 할지 아무런 계산이 없었습니다다만 주님께서 올라가서 싸우라는 신호를 주셨기 때문에믿음으로 순종하고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14절에 나온 것처럼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드는 청년이 쓰러뜨린 자가 이십 명 가량이 되었습니다그리고 15절에 나온 것처럼그때에 땅이 흔들리며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우리 함께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냐민의 기브아에 있던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보니보라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그들이 서로를 내리치더.

사울의 파수꾼이 멀리서 바라보니블레셋 사람들이 서로를 내리치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그들은 요나단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우리 함께 20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있던 온 백성이 모인 뒤 그들이 싸우러 갔는데보라각 사람의 칼이 자기 동료를 치매 거기에 크게 쳐부수는 일이 있더라.

무서워 떨고 있던 사울과 백성들은 무리 중에서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이 없어진 것을 보았고또 블레셋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그리고 이제 그들이 싸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우리 함께 21-23절을 보시겠습니다.

21 또한 그 일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들 즉 사방의 지역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올라와서 진영에 들어온 자들 곧 그들도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고

22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산에 숨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쳤다는 것을 듣고는 싸우면서 그들을 거세게 추격하였더라.

23 이와 같이 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므로 전쟁이 벧아웬으로 넘어갔더라.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믿음의 두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놀라운 일 중의 첫 번째는 21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바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믿음에서 물러났던 하나님의 백성들이세상 민족과 연합하였던 믿음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놀라운 일 중의 두 번째는 22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도망갔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담대하게 나와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일은 23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그 날에 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놀라운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단 두 사람이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하였을 뿐인데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전쟁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요나단과 청년은 백성들을 찾아다니면서우리 함께 싸우자고 권면하고 다니지 않았습니다요나단과 청년은 두려워서 도망간 백성들을 찾아다니면서책망을 하거나 정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전진하였습니다우리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는 형제자매들이 일어나게 될 때세상과 연합하였던 형제자매들믿음의 길에서 물러나있었던 형제자매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Closing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하기가 힘들고길이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다가옵니다그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기 원하시고또 우리에게서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승리의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아무런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였습니다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이 주님을 믿은 만큼 역사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순종하며전진하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우리가 그러한 사람들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요나단처럼먼저 나서서 믿음의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요나단과 함께하였던 청년처럼믿음의 고백과 결단에 대해서 들을 때에마음으로부터 함께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두 사람의 믿음의 전진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승리를 거두었던 것처럼우리 안에 정말 믿음으로 전진하는 형제자매들이 일어나게 될 때에그 한 두 명의 형제자매들만이 믿음의 전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온 교회가 함께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우리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 말씀사무엘기상 14장 6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보라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혹시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께는 제약이 없느니라하니

아멘기도하겠습니다.

2013.12.04.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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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2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삼상 13:13-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3장 13-14절입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이제 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하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서우리는 너무나 슬프고도 충격적인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불과 몇 구절 전에온 이스라엘 앞에 공식적인 왕으로 세워졌던 사울 왕이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사울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고 하셨는데이제 그것이 취소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말이 있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도 있습니다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거나, “한 번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이러한 말들은 오늘의 작은 어떤 일을 통해서 미래의 큰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서도 이러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4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한 평생 고난만 받는다 하더라도, 80년 동안 받는 고난이 영원한 영광을 이룬다고 할 때그것은 정말 작은 것으로 큰 것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 왕이 어찌 보면 작은 것 같은 한 번의 잘못으로영원히 보장될 번하였던 왕국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도대체 사울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였기에바로 얼마 전 왕이 되었는데이렇게 버림을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으로 돌아가셔서 살펴보시겠습니다.

 

 

배경이야기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일 년을 통치하니라사울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뒤에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의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의 기브아에 있게 하며 남은 백성은 각 사람의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 때는 사울 왕이 1그리고 2년을 통치한 뒤였습니다사울 왕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3,000명을 군사로 뽑아, 2,000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나머지 1,000명은 자기 아들인 요나단의 통솔을 받게 하였습니다암몬 족속 나하스를 치고 큰 승리를 거둔 이후에이스라엘 땅은 적어도 2년간은 평화로웠습니다.

 

3-4절을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게바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일을 들으니라사울이 온 땅에 두루 나팔을 불어 이르되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하니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증히 여겨진 것을 온 이스라엘이 듣고 백성이 부름을 받아 길갈로 함께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요나단은 아주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여기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요나단은 블레셋 수비대와 무력 충돌을 가지게 되었고이 일을 통해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5절을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함께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대요기병이 육천 명이요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더라그들이 올라와 벧아웬에서 동쪽으로 믹마스에 진을 치매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가지고 진을 쳤는데그 병력을 보니 상당히 막강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말 두 마리가 앞에서 몰고뒤에서는 군사들이 타고가면서 활을 쏘거나창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병거가 삼만 대요기병이 육천 명이요또 걸어서 공격을 하는 보병일반 군사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우리 함께 19-22절을 보시겠습니다.

19 이제 이스라엘 온 땅에는 대장장이가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히브리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하였기 때문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각 자기의 보습이나 날이나 도끼나 곡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더라.

21 그들은 줄이 있어서 곡괭이와 날과 쇠스랑과 도끼와 가시 채를 벼렸더라.

22 그러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창이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블레셋 군대가 매우 막강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 군대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수만 명이 모였다 할지라도온 이스라엘 군대에 있는 칼이라고는 단 두 자루뿐이었습니다나머지 백성들은 도끼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나 생활 도구를 가지고 전쟁에 임하였던 것입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가 대대적으로 몰려와 진을 친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6-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이 위험에 빠진 것을 보고 백성이 굴과 덤불과 바위와 높은 곳과 구덩이에 숨으니라. (백성이 곤란을 당하였더라.)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르단을 건너서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으나 사울로 말하건대 그는 아직 길갈에 있었고 그를 따르던 온 백성은 벌벌 떨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가 모여든 것을 보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숨어들었습니다굴과 덤불과 높은 곳과 구덩이 등에 숨어들었습니다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요르단 강을 건너서 멀리 도망가기도 하였고심지어 아직 사울과 함께 남아있던 사람들조차 용감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사울이 왕이 된 이후에 만난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을 것이고어찌 보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그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믿음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그런데 사울 왕은 이 때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사울의 실수

우리 함께 8-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때를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사울이 이르되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이리로 내게로 가져오라하고 그가 번제 헌물을 드렸더라.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사무엘은 이레 동안즉 일주일 동안 기다리라고 소식을 전한 뒤에사울 왕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사울은 이레 동안을 기다렸지만아직 사무엘은 오지 않았고백성이 계속해서 자기를 떠나 도망가는 것을 보고는 결단을 내렸습니다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이렇게 번제 헌물을 드리는 일은 율법에서 금지한 일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레위 사람 제사장을 통하여 헌물을 드리도록 정하셨습니다사울이 아무리 왕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레위 사람도 아닌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으므로하나님께 헌물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스스로 번제 헌물을 드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바로 자기를 떠나 흩어지는 백성들을 붙잡아두고 싶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백성들이 혹시라도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을 보면사무엘이 온 것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고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면서더 이상 흩어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필요한 시점에믿음을 붙들지 못했습니다그는 믿음을 붙들지 못하였고믿음과 비슷한 번제 헌물 예식이라는 겉모양을 붙들었고자기들과 함께한 백성들을 붙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10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번제 헌물 드리기를 끝마치매 즉시 사무엘이 오므로 사울이 나아가 그를 맞으며 그에게 문안하니라.

사울 왕이 번제 헌물을 드리기를 끝마치자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아직도 제단 위에서는 헌물이 불타고 있었을 것입니다사울은 조금 반갑기도 하였겠지만안 올 것 같았던 사무엘이 갑자기 온 것에 대하여 매우 당황하면서 그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그는 자기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변명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사무엘이 이르되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나이까하니 사울이 이르되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내가 말하기를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께 간구하지 못하였다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하니

사무엘은 사울 왕이 번제 헌물을 드린 것을 알고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이것은 어쩌면 사울 왕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정말 사무엘이 이 모든 일을 몰라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사울 왕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시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 왕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바빴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흩어지고사무엘은 정한 날이 오지 않았고또 블레셋 사람들은 모였기 때문에 자기가 번제 헌물을 드렸다고 말했습니다내가 전쟁을 해야 하는데주님께 간구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제 헌물을 드렸다고스스로 어쩔 수 없이 드렸다고 말했습니다사울의 이러한 어설프고어정쩡한 변명 이후에우리가 처음 읽었던 말씀인13-14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이제 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하고

바로 이 일 때문에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거절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그리고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의 기브아로 올라가니라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던 백성의 수를 세니 육백 명가량이더라.

사무엘은 이렇게 사울 왕을 찾아와서는 저주스러운 말만 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사울 왕은 그나마 자기 곁에 남아있는 백성의 수를 세어보았더니 육백 명가량만 남아 있었습니다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3만이요기병이 6천인데사울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칼이나 창 같이 제대로 된 무기하나 들지 못한 사람들이 고작 6백 명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사울의 이러한 실패와 관련해서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이란 관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사울 왕은 영원한 왕국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였지만믿음이 없었기 때문에,그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영원한 왕국을 상속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오늘 어떠한 믿음으로 이 영원한 왕국을 받을 수 있는지사울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첫 번째 요점은 8절에 있습니다.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때를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기다리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렸지만자기가 정한 한계점까지만 기다렸습니다사울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사울이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기다리는 믿음입니다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끈기 있게 인내하고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기는 기다렸지만끝까지 기다리지는 못하였습니다우리도 때로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다리다가결국 우리 자신이 나서서 일들을 더욱 망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주님께 맡겼다면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우리는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두 번째 요점은 1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나이까하니 사울이 이르되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사울은 백성들을 바라보았고오지 않는 사무엘을 바라보았고블레셋 사람들이 모인 것을 바라보았습니다그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결국에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그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은하나님을 믿지 않고,사람들을 믿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보는 것으로 걷는 것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나의 상황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그것들을 의존하지 않고그것들을 향해 나의 믿음을 주지 않고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함께 히브리서 11장 27절을 보시겠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를 버렸으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느니라.

모세는 파라오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이집트를 버렸습니다모세는 믿음으로 그러한 일을 하였는데성경은 그 믿음에 대하여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영원한 왕국을 위해 필요한 오늘의 믿음은 무엇일까요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상황을 바라보고돈을 바라보고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점도 보시겠습니다사무엘기상 13장으로 돌아오셔서, 1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께 간구하지 못하였다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하니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우리는 사울 왕과 같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진리를 위해서주님께 순종해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고해야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여기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어쩔 수 없이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명령은 사무엘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지만그는 여기서 기다리지 않고결국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어찌 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이 아닌 자가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은 주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사울은 진리대로 행하지 않았고자기 스스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귀한 믿음의 본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모든 것을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우리 함께 요한복음 5장 30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내가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우리는 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심지어는 그것이 옳고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그것은 육신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정리

오늘 사울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영원한 왕국을 박탈당하였습니다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그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이며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며또 내 뜻대로나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사울 왕이 맞이한 것과 같은 위기의 순간들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나를 도와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나를 떠나가는 것 같고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것 같고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은 점점 더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이러할 때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필요한데우리는 과연 그때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사울 왕과 같이 믿음이 없는 가운데 걷지 않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어떤 일들을 온전히 맡겨드렸다면주님께서 응답하시고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기 원합니다조금 기다라다가 나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끝까지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상황들과 환경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주만 바라보기 원합니다나를 사랑하시는 주님나를 돌보시는 주님나와 함께하시는 주님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을 멈추기 원합니다상황에 이끌려서 어떠한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스스로 자기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루하루의 믿음의 걸음을 신실하게 걸어가기 원하고영원한 왕국에서 주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3.11.0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예배/로빈31세

http://robinbox.net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삼상 12:22-2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2장 22-24절입니다.

22 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24 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우리는 오늘 젖을 떼면서부터 하나님 앞에 드려져서 주님을 섬기기 시작하여머리가 회색빛이 되기까지 주님을 섬겼던 한 사람의 마지막 말씀 선포를 볼 수 있습니다이 마지막 말씀 선포 이후로 사무엘은 사울 왕을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세웠기 때문에더 이상 온 이스라엘을 이끄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기상 12장 말씀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탄생되고또 어릴 적부터 한 평생 주님을 흔들 없이 섬겨온 한 사람바로 사무엘의 인생의 마지막 선포와도 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에 처음으로 치른 전쟁 승리 직후였습니다사울 왕은 사사기 시대에 정말 주님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어서 거의 모든 지파가 멸족이 될 뻔 했던 베냐민의 후손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수가 적고 약해진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가장 겸손한 한 청년을 일으켜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 사울이 왕이 될 수 있을 것인지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으로 하여금 암몬 족속 나하스를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이제 이스라엘 온 백성 가운데 정말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선포한 이후에이제 전쟁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증명된 왕을 다시 한 번 확정지으면서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의 말씀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오늘 우리는 사무엘의 이 마지막 말씀을 통하여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가 무엇인가 한 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사역을 돌아봄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2장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보라너희가 내게 말한 모든 것에서 내가 너희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너희를 다스릴 한 왕을 세웠나니

이제보라그 왕이 너희 앞에서 걷느니라나는 늙어 머리가 세었고보라내 아들들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내가 어려서부터 이 날까지 너희 앞에서 걸었노라.

보라내가 여기 있나니 주 앞과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나를 대적하여 증언하라내가 누구의 소를 취하였느냐누구의 나귀를 취하였느냐누구를 속였느냐누구를 학대하였느냐내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하니

그들이 이르되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학대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어떤 사람의 손에서 조금도 취하지 아니하였나이다하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에 관하여 께서 너희에게 증인이시며 또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도 이 날 증인이니라하니 그들이 응답하되그분께서 증인이시니이다하니라.

먼저 사무엘은 이제 온 이스라엘 앞에서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고 있습니다이제 자신을 늙고 머리가 세었으며이스라엘을 다스릴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사무엘은 온 주 앞에서그리고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모두 정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누구의 물질을 부당하게 취하였다면누구를 속였다면누구를 학대하였다면 다 갚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이 자신들을 속이지도학대하지도 않았으며어떤 사람의 손에서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사무엘과 같이 간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우리의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증언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정말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였다할지라도우리의 마음만큼은 온전히 주님을 따랐다고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인도하신 하나님

이제 우리 함께 6-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모세와 아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분은 시니

그런즉 이제 가만히 서 있으라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바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 조상들이 께 부르짖으매 그때에 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니 그들이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곳에 거하게 하였느니라.

사무엘은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이스라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고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7절 말씀의 뒷부분을 보시면,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라고 된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여기서 변론한다는 말의 영어 표현을 보시면 “reaso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이 단어에는 이유”, “까닭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다른 말로 하면사무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마지막 말씀을 하면서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그 이유를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를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기준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때로는 내가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때가 있고때로는 내가 넘어지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나를 외면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면그렇지가 않습니다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사람들과 같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결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지 않았습니다그 당시에 그들에게는 율법도 없고제사장도 없고성막도 없었고오로지 이집트의 생활 방식만이 있었습니다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원수가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이유와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그 근거는 절대로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그 근거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신실하신 성품에 그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가 기도회로 모여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오늘 하루 동안 주님 앞에 합당했기 때문일까요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는 수십 번 넘어지고마음으로 생각으로 주님을 대적하기도 하고불평을 하며 멀리멀리 떠나기도 하였습니다오늘도 우리는 세상과 주님육신과 성령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힘겹게 살아왔습니다우리가 오늘도 다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모습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사기 시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2장 9-1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었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을 하솔의 군대 대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팔아넘기셨더니 그들이 그들과 싸우매

10 그들이 께 부르짖어 이르되우리가 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죄를 지었나이다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하매

11 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사방에 있던 너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므로 너희가 안전히 거하였느니라.

출애굽 이후 지금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해 보자면반역과 타락심판과 징계그리고 돌이킴과 회복의 역사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신 것은 오직 한 가지바로 그들이 자기들의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모든 생활 속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수많은 우상들을 섬겼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고그들은 돌이켰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이킬 때마다 여룹바알 기드온과 입다와 사무엘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건져내시고안전히 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한 가지는우리가 매순간 주님을 잊지 않고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는 늘 주님을 잊어버리고육신의 원함대로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다가,우리 스스로 모든 일들을 망치고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오고,주님께서는 우리를 건지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자주 반역하고 주님을 떠나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징계하셔서 바로 잡으시고또 그들이 돌이키면 다시 건져내시는 이런 일들을 반복하셨던 것일까요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차라리 또 다른 충성스러운 민족을 선택하지 않으시고계속해서 사랑으로 돌보시는 것일까요그 이유와 근거는 결코 이스라엘에게 있지 않았습니다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 자신께만 있었습니다우리 함께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사무엘기상 12장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이유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떠한 모습과 상관없이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시기에하나님은 약속을 취소하는 분이 아니시기에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여전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도 하나님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한 것입니다우리 자신의 선하고 의로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하나님 자신의 약속과 신실하심과 사랑 때문에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왕을 구한 이스라엘

우리 함께 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온 것을 너희가 보고는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말하기를아니니이다왕이 우리를 통치하여야 하리이다하였도다.

13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택하고 너희가 바라던 왕을 보라보라께서 너희를 다스릴 왕을 세우셨느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암몬 자손이 공격해 올 때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인간 왕을 구하였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사울 왕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라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사울 왕에게 기름을 붓고이스라엘의 왕을 세웠지만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아니었고,다만 허락하신 뜻이었음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6-19절을 보시겠습니다.

16 그러므로 이제 서서 께서 너희 눈앞에서 행하시는 이 큰일을 보라.

17 오늘은 밀을 수확하는 때가 아니냐내가 를 부르리니 그분께서 천둥과 비를 보내사 너희가 너희를 위해 왕을 구하면서 의 눈앞에서 행한 너희의 그 사악한 일이 큰일임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하시리라하고

18 이에 사무엘이 를 부르매 께서 그 날에 천둥과 비를 보내시니 온 백성이 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19 온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당신의 종들을 위해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다 우리를 위해 왕을 구하는 이 악을 더하였나이다하니라.

이스라엘의 기후는 5월부터 10월이 건기이기 때문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특히 밀을 수확하는 때인 5월 하순에서 6월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잠언 26장 1절 말씀을 읽어드리면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명예가 어울리지 아니하니 그것은 마치 여름의 눈 같고 수확 때의 비 같으니라.

밀을 수확하는 때에 천둥과 비가 있다는 것은 한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그런데 사무엘은 밀을 수확하는 바로 이 때에 하나님께서 천둥과 비를 보내셔서이스라엘이 정말 잘못하였다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면서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같이 되기를 원한 것이얼마나 주님을 대적한 것인지주님 앞에서 악하게 행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기를 원하였습니다.

 

또한 이 표적은 바알을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바알 신은 이슬과 비를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졌고농사를 주관하는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바알이 신이 아니라오직 하나님께서만이 그들에게 모든 풍요를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우리에게 좋은 대학좋은 직장많은 돈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밀 수확 때에 천둥과 비가 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비로소 자신들이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구하면서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한 것을 깨달았습니다우리 함께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두려워하지 말라너희가 이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으나 를 따르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를 섬기라.

사무엘은 이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고 있습니다너희가 비록 이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으나하나님의 뜻은 너희가 이대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이제부터 다시 주님을 새롭게 섬기는 것이니마음을 다해서 주를 따르고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렀다 할지라도주님을 떠나 있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다 할지라도주님 앞에 새롭게 되어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그것은 이스라엘이 훌륭하고 신실하게 주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이스라엘이 주님을 따르고 섬길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있었습니다마찬가지로 오늘도모든 사악한 일을 행한 우리들이매일 불법을 물처럼 마시는 우리들이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고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근거는우리 자신의 어떠한 모습에 있지 않고오직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정리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말씀 22-24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22 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24 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한 평생 주님만을 섬겨온 사무엘은 오늘 이스라엘 앞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오늘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시고그들을 돌보시며여전히 선하게 인도하시는 그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주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을 삼으시기로 결정하시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며자신의 크신 이름 때문에,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시편 23편을 보시겠습니다시편 23편 3절을 보시겠습니다.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신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들을 인도하시는 근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것은 무엇입니까바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한다면그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할 것입니다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건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6절도 보시겠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과 수많은 육신의 발자국 뒤에 따라오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이 내 평생에 나를 따라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너뜨린 것을 회복시켜주시고우리가 망쳐 놓은 것을 다시 고쳐주시면서선하심과 긍휼로 우리의 못난 발걸음을 덮어주시면서,우리를 앞에서 인도하시고뒤에서 따라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많은 실패와 넘어짐 가운데서도 다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근거는우리 자신에게 어떠한 소망이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근거로 한다면우리 자신을 이유로 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다시 주님 앞에 나아오고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이유는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바로 하나님 그분의 이름 때문인 것입니다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서그렇게 주님을 붙들 것입니다.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오늘도 우리를 돌보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함께 찬양하고감사하며,힘차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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