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7.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4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삼하 17: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7장입니다. 사무엘기하 17장 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낫다, 하니 이는 주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주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더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은 다르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인, 공자는 논어 위정편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뜻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뜻을 세웠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나 진로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공자처럼, 30세 정도가 되어서 뜻이 정해질는지 모르지만, 사실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 겨우 태어난 지 1년 4개월밖에 안된, 저의 둘째, 아들인 호윤이도 벌써 자기의 분명한 뜻을 가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고, 좋다 싫다, 자기의 분명한 뜻과 의사를 표현하고, 고집도 피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호윤이의 뜻대로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호윤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또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가자고 잡아끌면서 떼를 쓸 때가 많지만, 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전기콘센트를 만지려고 할 때에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장난감을 입에 넣을 때도 안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물놀이를 하면서 목욕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30분 정도가 지나면, 아무리 울어도 밖에 나와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밤에는 잠을 자기 싫어서 버티지만, 자야만 합니다. 이처럼 아직 어린 아기에 불과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호윤이 같은 어린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 단지 조금 더 건강하기를 원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풍부한 삶을 살기 원하고, 조금 더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것이 순탄하기를 바라고, 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은 공부가 잘되기를 바라고, 조금 더 높은 성적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키가 더 크기를 바라고, 외모가 더 아름답고 멋있어 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사무엘기하 17장부터 19장의 이야기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자신의 뜻을 이루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스스로 가서 다윗 왕을 칠 뜻을 세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압살롬은 반역에 성공하여 스스로 왕이 될 뜻을 세웠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결코 죽이지 않고 살려내야 한다는 뜻을 가졌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요압 장군은 다윗 왕에게 승리를 안겨 왕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기를 원했고, 압살롬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더욱 안전하게 보장받으려 하였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자기 뜻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함께 잠시, 이사야서 55장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가 말하노라.
9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귀한 피를 흘려주시고,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자신보다, 우리에 대하여 더 잘 아신다고 믿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선하시며, 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호윤이의 뜻이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뜻과 다른 것처럼, 오늘 우리들의 생각과 길과 뜻이 하나님과 너무나 다릅니다. 하늘과 땅 치아로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필요해서 주신 것인데, 우리는 가장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없어야 해서 가져가셨는데,우리는 꼭 필요한 것을 가져가셨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며,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설교의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좀처럼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이 척박한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따라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길만이 행복하고, 가치 있으며, 영광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되새겨보기를 원합니다.
** 아히도벨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아히도벨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로서, 자신의 사랑하는 손녀에게 비극적인 일을 일으켰던 다윗 왕에게 복수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손으로 직접 다윗 왕을 처단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 이 밤에 내가 일어나 다윗을 추격하며
2 그가 피곤하고 손이 약할 때에 그를 습격하여 그를 무섭게 하리니 그리하면 그와 함께 있는 온 백성이 도망하리이다. 내가 다윗 왕만 치고
3 온 백성을 왕에게 다시 데려오리니 왕이 찾는 그 사람을 붙잡으면 모두가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니이다. 그리하면 온 백성이 평안하리이다, 하매
4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그 말을 매우 기쁘게 여기더라.
여기서 아히도벨은 뛰어난 지략가답게, 압살롬의 반역을 가장 빠르고 쉽게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였습니다. 오늘 다윗 왕이 예루살렘 성에서 나갔으니, 아직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을 때에, 그들이 전투 준비를 갖추기 전에,전열을 가다듬고 어디론가 숨어 들어가기 전에, 빠르게 가서 다윗 왕만을 치고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그 말을 매우 기쁘게 여겼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6-8절을 보시겠습니다.
6 후새가 압살롬에게 오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히도벨이 이런 식으로 말하였는데 우리가 그의 말대로 행하랴?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 하매
7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히도벨이 베푼 조언이 이때에는 좋지 아니하니이다, 하고
8 또 이르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사람들은 용사들이니이다. 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자기 새끼들을 빼앗긴 것 같이 마음속으로 화가 나 있고 왕의 아버지는 전사인즉 백성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조언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다윗은 베테랑 전사이며 도망의 전문가인즉, 결코 백성들과 함께 머무르지 아니하고, 따로 떨어져있을 것이므로, 아무리 특공대가 빠르게 가더라도, 다윗 왕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아히도벨이 제시한 만 명의 특공대로는 뛰어난 용사들인 다윗의 신하들을 이길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11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조언하노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에게로 총체적으로 모으고 왕께서 친히 싸우러 가소서.
후새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전국적으로 온 이스라엘을 모아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은 군사를 모아서 12절에 사용된 표현처럼, 마치 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같이 습격하고 내려 앉아 다윗의 모든 군사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조언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낫다, 하니 이는 주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주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더라.
두 사람 아히도벨과 후새의 조언이 있었는데, 성경은 아히도벨의 조언이, 좋은 조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고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후새의 조언이 더 좋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히도벨의 조언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여쭙는 것과 같이 뛰어난 지혜를 자랑하였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외면을 당하고, 꺾이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지혜롭고 좋은 계획인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반드시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2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히도벨이 그들이 자기의 조언을 따르지 아니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얹고 일어나 자기 도시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안을 정리한 뒤 스스로 목매어 죽고 자기 아버지의 돌무덤에 묻히니라.
여기서 우리는 아히도벨의 비참한 최후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조언이 거절된 것을 보고, 전쟁에서 질 것을 확신하였으며, 자신의 뜻이 이루어질 수가 없음을 보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가룟 유다가 그러했던 것처럼, 다윗의 배반하였던 아히도벨도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어리석고 비참한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압살롬
이제 우리 함께 압살롬의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은 후새의 조언대로 온 이스라엘을 모았고, 기세등등하게 요르단을 건너 다윗 왕을 추격하며 전쟁 길에 올랐습니다. 우리 함께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마하나임에 이르렀고 압살롬은 자기와 함께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요르단을 건너니라.
이제 또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이처럼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숲에서 싸우더라.
7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죽임을 당하매 그 날 그곳에서 큰 살육이 있어 이만 명이 죽었더라.
8 거기서 온 지역의 지면 위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날 숲에서 멸망당한 자가 칼로 멸망당한 자보다 더 많았더라.
전쟁의 결과는 아히도벨이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압살롬의 신하들은 다윗의 신하들을 당해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8절에서 매우 흥미로운 말씀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숲에서 멸망당한 자가 칼로 멸망당한 자보다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숲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다윗의 신하들이 칼로 쓰러뜨린 자보다,숲에서 쓰러진 자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야생짐승들이 공격을 하였는지, 늪지대에 빠지게 되었는지, 산사태가 일어나 바위들이 무너져 내렸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초자연적인 어떠한 현상에 의해서 많은 압살롬의 군사들이 숲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9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밑으로 지나갈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들리고 그 밑에 있던 노새는 가버렸으므로
압살롬 또한 숲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상수리나무가 압살롬의 머리를 잡아챈 것처럼, 그의 머리가 나무에 걸려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14-15절도 보시겠습니다.
14 그때에 요압이 이르되, 내가 이처럼 너와 함께 늑장을 부릴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압살롬이 아직 상수리나무 한가운데서 살아 있을 때에 그것들로 그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병기를 나르던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서 그를 죽이니라.
압살롬의 뜻은 반역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나서 멋진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위해 수년 간, 모든 것을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보자면, 압살롬이 월등히 앞섰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고 이루어졌습니다. 압살롬은 결국 아히도벨처럼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준비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다윗
이제 다윗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1 이에 다윗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의 수를 세고 천인 대장들과 백인 대장들을 그들 위에 세우며
2 백성의 삼분의 일은 요압의 손 밑에, 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손 밑에, 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손 밑에 주어 내보내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직접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하였으나
3 백성이 응답하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만일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상관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를 상관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나 이제 왕은 우리 만 명과 다름없사오니 그러므로 이제 왕께서 도시에서 나와 우리를 구조하시는 것이 더 나으니이다, 하매
4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가장 선하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옆쪽에 서니 온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나갔더라.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해 청년 곧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 하매 왕이 압살롬에 관하여 모든 대장에게 명을 내릴 때에 온 백성이 들으니라.
다윗 왕은 군사들을 세 무리로 나누어 전쟁의 전문가들인 요압과 아비새에게, 그리고 새롭게 장군이 된 가드 사람 잇대에게 배치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5절의 말씀에서 나를 위해 청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고 작정하신 가운데, 다윗은 압살롬을 살려두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살롬은 요압 장군에 의해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뜻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를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교만과 반역과 속임수와 살인과 왕의 첩들에 대한 음행과 오랜 시간 동안 주어진 돌이킴의 기회를 멸시한 죄에 대한 맹렬한 심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크게 격동하여 문 너머에 있던 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 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좋은 아버지에게, 그 아들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가를 볼 수가 있으며, 최악의 상태에 있는 아들을, 그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아버지 다윗의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압살롬을 사랑하였더라면,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심판하시기 전에, 아버지로서 마땅히 징계하고 가르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졌고, 심판은 집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1 어떤 이가 요압에게 고하되, 보소서, 왕이 압살롬으로 인하여 슬피 울며 애곡하시나이다, 하니
2 왕이 자기 아들로 인하여 근심한다 함을 그 날에 백성이 들었으므로 그 날의 승리가 온 백성에게 애곡하는 일이 되었더라.
3 그 날에 백성이 싸움에서 도망칠 때에 부끄러워하며 몰래 떠나는 것 같이 슬그머니 도시로 들어가니라.
4 그러나 왕이 얼굴을 덮고 큰 소리로 외치되, 오 내 아들 압살롬아, 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매
슬픈 일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감정의 지배를 받는 상태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나, 슬픔이나, 우리의 모든 감정에 십자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감정을 제거하여 마치 로봇처럼 될 수는 없지만,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으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당연히 애통한 마음이 들었겠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서, 마땅히 자신을 위하여 치열한 전투에서 싸웠고, 또 승리하여 돌아오는 군사들을 기쁨과 영광으로 맞이하고 환영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크게 외치면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불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5-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5 요압이 집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러 아뢰되, 왕께서 이 날 왕의 생명과 왕의 아들딸들의 생명과 왕의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왕의 모든 신하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사오니
6 왕께서 왕의 원수들은 사랑하시나 왕의 친구들은 미워하시며 통치자들과 신하들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것을 이 날 밝히 드러내셨나이다. 이 날 내가 깨달은즉 만일 압살롬이 살고 이 날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기뻐하셨으리이다.
7 그러므로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하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옵소서. 내가 주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께서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이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 그리하면 그것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모든 화보다 왕에게 더 나쁘리이다, 하니
8 이에 왕이 일어나서 성문에 앉으매 그들이 온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라, 왕이 성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온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여기에서 요압은 압살롬을 죽인 자로서, 다윗의 슬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자이지만, 오히려 다윗 왕 앞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압은 자기 자신의 앞길을 위하여 압살롬을 죽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를 살려두었을 때, 아마도 또 다시 힘을 모아 다윗 왕에게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압살롬은 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싸웠고, 승리를 가져온 왕의 장군이자 신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다윗 왕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고 배려하지는 않았지만, 자기 판단대로 압살롬을 가차 없이 제거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윗 왕을 위하는 위치에서, 다윗 왕의 편에서 싸운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아니하고, 자기 뜻만을 내세웠을 때, 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이 임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에게 신하로서의 직언을 넘어서서,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로, 지금 다윗 왕이 슬퍼할 때가 아니라, 왕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며, 승리하여 돌아온 군사들을 환영하고 격려해야 할 때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결국 다윗 왕은 요압의 말대로, 슬픔을 뒤로 하고 백성들 앞에 나아가 그들을 환영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고 선하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요압
이제 마지막으로 요압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시겠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젊은 시절부터 함께하면서 다윗을 위해 싸워온 충성된 장군이었습니다. 다윗의 누이의 아들로서, 다윗의 조카로서, 언제나 다윗을 위하여 싸웠습니다.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는 위기의 상황에서 믿음을 발휘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고, 암몬의 도시 랍바를 점령하고자 할 때에는, 거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놓고, 스스로 승리의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자, 속히 다윗 왕을 소환하여, 다윗이 승리의 선봉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 헷 족속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서도 한마디라도 토를 달거나,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않았고, 그대로 복종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다윗에게 투항한 이스라엘의 좋은 장군이었던 아브넬을 암살하였을지라도, 또 다윗 왕의 부탁을 거절하고 압살롬을 쓰러뜨렸다 할지라도, 그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장군으로서,언제나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다만 다윗 왕에게 인정을 받는 좋은 장군이요, 신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라, 하니라.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압을 대신한 다른 군대 대장을 세우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아마사였습니다. 아마사는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 압살롬의 군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던 자입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대장으로 삼았는데 이 아마사는 이드라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사람의 아들이더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가일에게로 들어갔는데 아비가일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네, 압살롬이 임명하였던 군대 대장 아마사는, 요압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누이의 아들이었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었고,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이며, 스루야의 동생인 아비가일의 아들이었습니다. 전쟁 경험으로 보나, 전투 수행 능력으로 보나, 그 동안 쌓아온 공로를 보나, 요압이 아마사보다 월등히 나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윗은 반역자의 무리에 가담했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장군으로 세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아브넬을 죽였고, 또 압살롬을 죽임으로써, 결정적인 순간에 다윗 왕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되었든, 요압의 입장에서는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을 위해 그 동안 열심히 싸운 결과 외면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왕의 가장 좋은 신하로 인정을 받고자 하였던, 그의 뜻은 꺾여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능력이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마무리
오늘 우리는 총 네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아히도벨과 압살롬과 다윗과 요압이었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 사람도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더라면, 그들의 뜻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과 다른 뜻을 가졌기에,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압살롬은 사람의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고, 준비가 철저하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을 가질지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압은 사람의 공로와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잠언 19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 그것만이 서리라.
아멘. 다른 모든 것은 무너지고, 오직 주의 뜻, 그것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아무것도 계획할 필요가 없다거나,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의 뜻에 맞게 계획하고, 주의 뜻에 맞게 순종하며, 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과 철저한 준비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과 그 동안 쌓아온 좋은 과거의 업적을 가졌을지라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순종하는 길로 걷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 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 주님의 길이 나의 길이 되어서, 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자로서, 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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