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1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로빈33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6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삼하 20:19)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20장입니다. 사무엘기하 20장 19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신실하게 사는 자들 가운데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에서 한 도시와 한 어머니를 멸하려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당신이 주의 상속 재산을 삼키려 하시나이까? 하매
저는 오늘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오늘날 현 시대는 마지막 날들 중에서도, 정말 끝이 가까워 보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나타난 성경의 여러 말씀들을 살펴볼 때,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 한 가지는 바로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가장 마지막 교회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인데, 바로 사람들의 권리, 즉 인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모든 생각의 중심이 되고, 근본이 되고, 모든 권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부모님들이 권위를 잃어가고 있고, 남편들이 머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학교와 교회들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질서와 반역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참으로 가깝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인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판단, 자기 경험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석하고 평가할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그러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발견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기하 20장 19절 말씀에서, 우리는 한 어머니의 고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어머니가 일어나서 주의 상속 재산을 보호하고, 가족들을 지키며, 반역을 끝내는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실한 믿음의 어머니들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교회에 주신 믿음의 어머니들, 자매님들로 인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교회의 청년부, 중고등부, 초등부의 자매님들이 귀한 믿음의 어머니들로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저희 승연이도 잘 자라나서 먼저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딸이 되기를 원하고, 또 좋은 믿음의 어머니도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조금 이상한 점은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남편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한 어머니가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교회에서 믿음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믿음의 아버지, 형제들도 굳건하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무질서하고, 진리가 권위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믿음으로 굳게 서서 전진하는 우리 형제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20장 말씀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의 길을 걸었던 네 명의 사람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네 사람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 어떤 모습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이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참된 순종의 삶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 다윗의 불순종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마침 거기에 세바라는 이름의 벨리알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얻을 몫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 안에서 얻을 상속 재산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르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에게 굳게 붙으니라.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인물은 세바가 반역을 하도록 원인과 빌미를 제공하였던 다윗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첫 번째 인물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순종하지 못했고, 자기 방법대로 왕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혈통과 친족을 통해서 속히 왕의 자리로 돌아오고자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무엘기하 19장의 뒷부분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 지파는 왕이 우리의 친족이라고 주장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우리가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무엘기하 20장 1절에서 세바라는 사람이 마침 거기에 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반역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불순종은 불순종을 낳습니다. 왕이 불순종의 길을 걸을 때, 백성들도 반역의 길을 걷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지 않을 때, 자녀들이 거역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물론 세바의 반역은 전적으로 세바의 책임입니다. 그는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 때문에 자녀가 죄를 지어도 되거나, 인도자 때문에 누군가가 하나님을 거역해도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편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길을 걸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압살롬의 반역 직후에, 또 다시 반역하게 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생각해 본 다윗의 경우는 바로 앞에서 이끄는 인도자로서의 불순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잘못일 뿐 아니라, 뒤따르는 백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는 더욱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 세바의 반역
이제 우리가 두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바로 사무엘기하 20장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세바입니다. 세바는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등하는 그 현장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2절 말씀에 의하면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치리니 너는 네 주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를 추격하라. 그가 성벽을 두른 도시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다윗은 세바의 반역을 압살롬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만큼 세바의 반역은 대규모적이었며, 성공적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다윗 왕을 맞으러 왔던 백성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왕을 버리고 세바를 따랐으니, 말 그대로 온 백성의 마음이 세바를 따르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1절에서 세바는 자기를 따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몫이 없으니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백성이 세바를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바의 반역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다윗의 혈통 지파와 그렇지 않은 지파를 다윗이 나누었습니다. 다윗 왕이 잘못했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권위를 거역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옳고 정당한 자의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의 원리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의 편에 서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였고, 자신의 왕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한 순간도 사울 왕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제거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었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권위와 질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잘했느냐, 못했느냐보다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윗은 온 우주의 왕이시며, 권위가 되시며, 모든 질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의 모든 역사는 교만과 불순종, 그리고 거역과 반역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 내가 옳고 정당하다는 속임수가 숨어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거스르는 모든 역사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루시퍼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최초의 반역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것도, 옛 뱀,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사탄은 무질서를 원하고, 거역의 역사를 원합니다. 락 음악의 정신은 “반항”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정확히 사탄의 정신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 순종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헌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도, 그를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순종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거역과 불순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표현입니다. 의심과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 없음이 악한 마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땅에서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바로 그 죄가 믿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불순종하고 거역하게 됩니다. 믿음은 순종과 연결되며, 믿음 없음은 거역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믿음의 길, 순종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여인이 지혜롭게 온 백성에게 가니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므로 그가 나팔을 불매 그들이 그 도시에서 물러나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이르니라.
이것이 바로 반역자 세바의 최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라고 자신을 밝혔던 여인이 지혜롭게 온 백성들과 대화하여, 반역자를 처단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믿음의 어머니는 전쟁을 막을 수 있었고, 평화를 지키며, 자신의 가정과 주의 상속 재산인 삶의 터전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그리하시리라.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이유는 죄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자신의 피로 지불하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끈기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해도 누구나 순종할 수 있는, 단순히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는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바로 믿음이며,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이 있다면, 진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성품이 있다면 바로 순종입니다. 흠도 많고 실수도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따지고 평가하고 거역하는 길은 결코 지혜로운 길이 아니며, 오히려 어리석고 사악한 길입니다. 지혜로운 길은 모든 질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진리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순종하는 길을 가기 원합니다.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진리에 무릎 꿇고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 아마사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20장으로 돌아오셔서 4,5절을 보시겠습니다. 
4 그때에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사흘 안으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에 있으라, 하니
5 이에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러 갔으나 왕이 그에게 정해 준 약정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무니라.
우리가 생각해 볼 세 번째 인물은 아마사입니다. 그는 처음에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던 사람이었고, 군대 대장으로서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기에 마땅했고,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온 유다 지파를 다윗 왕에게 이끌어 올 역할을 하기에 좋은 자이며, 다윗 왕의 혈통이요, 골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면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윗의 새로운 군대 대장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아마사가 말하는 것을 단 한마디도 읽어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반역했던 것을 참으로 돌이키고, 새롭게 되었더라면, 믿음과 돌이킴의 고백이 한마디쯤은 기록되었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아마사는 끝내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아마사는 다윗 왕에게 사흘 안으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정해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무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에 아마사의 말을 잘 들어서, 다윗 왕을 모시러 나왔습니다.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사는 그 일을 매우 게으르고 나태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여기서 정해 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는 것은 일이 어려워서 시간이 더 걸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마사가 의도적으로 더 오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며칠을 더 머물렀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아마사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다윗 왕을 섬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신속하게 군대를 소집해야하며, 세바의 반역을 진압해야 한다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향 집에 간 김에 좀 더 여유를 즐기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마사의 모습은 우리들 속에도 있는 소극적인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기는 하는데, 정해준 시간에 맞춰서 신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간에 맞춰서 여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기는 하는데, 정해진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법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순종은 결코 순종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순종의 기준은 즉시로, 기쁘게, 마음을 다하여,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순종입니다. 믿음의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 순종은 바로 이러한 순종입니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억지로, 주어진 역할의 일부분만을 행하는 것을 순종이라고 용납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데,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표준에 합당한 순종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하듯이 하는, 적극적인 순종이야말로 참된 순종입니다. 소극적이고 게으른 순종은 다른 말로 거역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그러한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 요압
이제 우리 함께 네 번째, 마지막 인물로 요압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9,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그가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치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요압 장군은 큰 맥락 가운데서는 단 한 번도 다윗 왕을 대적하거나 반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윗을 위하는 쪽에 섰고, 다윗의 편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를 위하여 칼을 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하다가, 드디어 이스라엘의 장군이었던 아브넬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요압 장군은 다윗 몰래 아브넬을 암살하여, 자신만이 온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장군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어찌하든 압살롬을 살려두기를 원했지만, 요압은 후에 일어날 복잡한 일을 피하기 위하여, 주저함 없이 압살롬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아마사입니다. 요압은 아마사가 자기를 대신하여 군대 대장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더욱이 반역하였던 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칼을 들었습니다. 

요압은 드러나게 다윗을 대적하고 반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윗의 마음처럼, 완전히 다윗에게 순종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많은 경우, 주님을 사랑하는 것 같고,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것 같은 모습을 가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 자신을 위하여,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위하면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의심하지 않으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하나님 앞에 그러한 순종의 사람으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사무엘기하 20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서 네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다윗은 왕좌를 회복하게 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지만, 그 뜻을 육신의 방법대로 이루다가 또 다른 반역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마땅히 백성들 앞에서 순종의 본을 보여야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순종과 반역이라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모든 시간과 방법과 과정까지도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세바는 옳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다윗 왕에게 반역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육신에게 옳은 판단과 정당성이 주어질 때 매우 강력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에 순종하는 것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세 번째 아마사는 왕의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한 가운데 자기 나름대로의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종이 아니었고 거역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덧붙여서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고는 순종하였다고 주장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순도 100%의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이었던 요압은 큰 맥락 가운데서는 다윗 왕에게 순종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판단대로 일들을 결단하고 실행하였습니다. 우리가 오직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큰 맥락 가운데뿐만 아니라, 모든 결정적이고 세밀한 순간에조차,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너무나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에, 누가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이, 비록 아무것도 아니며, 한 없이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바로 그러한 순종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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