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18.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3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50

주의 긍휼에 감사합니다(삼하 24: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24장입니다. 사무엘기하 24장 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큰 곤경에 빠졌도다. 주의 긍휼은 크니 이제 우리가 그분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저는 오늘 “주의 긍휼에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의 가장 마지막인 24장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내용의 흐름상으로 보면 사무엘기하는 23장에서 끝날 때 가장 아름다고 훈훈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윗의 마지막 찬양의 말과 전설의 용사들에 대한 승리담으로 끝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4장은 다소 당황스럽게도, 다윗의 실패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마무리를 아주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사무엘기하 24장의 말씀을 기록하셨으며, 또 이러한 안타까운 내용으로 사무엘기 상하의 모든 말씀을 마무리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끝까지 분명하게,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직 주님의 긍휼뿐입니다. 우리가 사무엘기상하의 모든 말씀을 다 살펴보고 나서 다윗이 참 대단하다는 결론을 가지게 된다면,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다윗을 높이시고 사용하신 위대하신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게 되고, 또 찬양하게 된다면, 우리는 성경을 기록된 목적대로 바르게 읽고 이해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윗을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성경 말씀이 주는 위로와 인내를 통해 믿음의 길을 힘차게 걸어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24장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과 이스라엘의 실패와 심판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긍휼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말씀의 제목과 같이 “주의 긍휼에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 다윗에게 온 시험 - 시험자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4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다시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해 타오르매 그분께서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이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세라, 하고 말하게 하시니라.
지금 우리가 읽은 1절에서는 주의 분노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타올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단지 다윗을 향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타올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무엘기하 뒷부분의 내용을 기초로 생각해 본다면, 압살롬의 반역과 또 곧바로 세바의 반역에 가담하였던 온 이스라엘의 반역죄와 연관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1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움직이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수를 세라고 말하도록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어떠한 동기를 부여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도록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제가 개역개정판 한글역본에 기록된 사무엘기하 24장 1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무엇이 다른지 한 번 비교하면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개역개정판 한글역본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한 것처럼 이해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는 진행되는 내용을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것이 죄가 되어버리는 매우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다윗은 인구를 조사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어떠한 동기를 제공하시고, 시험을 주셔서, 마음을 움직이신 것이지, 직접적으로 순종해야 할 명령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무엘기하 24장 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백성의 수를 세도록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시면서, 역대기상 21장 1절 말씀과 비교해 보시겠습니다. 
사탄이 이스라엘을 대적하려고 일어나 다윗을 선동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세게 하니라.
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선동하여 이스라엘의 수를 세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이렇게 질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를 세도록 다윗을 움직인 이는 하나님인가, 사탄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욥기 말씀을 참조해보겠습니다. 욥기 1장 8-12절을 보시겠습니다. 
8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깊이 살펴보았느냐? 그와 같이 완전하고 곧바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가 땅에 없느니라, 하시니라.
9 이에 사탄이 주께 응답하여 이르되,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나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를 사방에서 울타리로 두르지 아니하셨나이까? 주께서 그의 손이 하는 일에 복을 주시니 그 땅에서 그의 재산이 불어났나이다.
11 그러나 이제 주의 손을 내미사 그의 모든 소유에 대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주의 얼굴 앞에서 주를 저주하리이다, 하매
12 주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보라, 그의 모든 소유가 네 권능 안에 있거니와 다만 그에게는 네 손을 내밀지 말라, 하시니 이에 사탄이 주 앞에서 물러가더라.
여기서 우리는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 욥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하나님과 사탄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자랑하셨고, 사탄은 시험하기를 제안하였습니다. 11절에서 주의 손을 내미사 욥의 모든 소유를 쳐보시라고 사탄이 말하였고, 12절에서 그의 모든 소유가 너의 권능 안에 있거니와 다만 그에게는 너의 손을 내밀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욥의 모든 소유를 하루 만에 다 앗아간 것은 11절에 나오는 주의 손입니까, 아니면 12절에 나오는 사탄의 손입니까? 사탄이 먼저 하나님께 제안을 하였고, 실행도 하였으니 사탄의 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으니 하나님의 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마치 다윗을 움직인 것이, 사무엘기하에서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역대기상에서는 사탄이라고 기록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리해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완전한 주권과 통치와 제한하심 가운데 사탄의 활동의 범위를 정하시고, 그 안에서 활동하도록 허용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가운데 시험을 허락하셨고, 사탄은 욥이 믿음을 버리고 무너지기를 원하는 가운데 시험을 제안하였고, 실행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성도가, 모든 일 가운데, 모든 환경 가운데 믿음으로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에 순종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 다윗에게 온 시험 - 시험의 내용
다윗에게 임하였던 시험은 교만, 자기 신뢰, 자기 자랑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왕이 인구조사를 통하여, 백성의 수를 세어보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명백히 말해서, 그 일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수를 세시는 주제를 가지고 민수기를 기록하셨을 정도입니다. 민수기는 영어로 “numbers”, “숫자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책 자체가 민수, 즉 백성의 수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는 다윗의 동기는 교만이며, 자기 신뢰이며, 자기 자랑이었기 때문에, 명백히 말해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력을 확인하고, 느부갓네살 왕처럼 자기 왕국에 대하여 자랑하며,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려 하였기 때문에, 명백히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매우 교묘한 것이었고, 이제 노년에 이른, 믿음의 백전노장인 다윗조차도 넘어지고 실패하게 되었던 시험이었습니다. 저는 때로 저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를 강조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겸손한 나 자신을 자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대단한, 영적인 나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섬긴다고 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영적 야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안에서, 이름을 얻고, 영광을 얻고, 칭송을 받을 만한 놀라운 사역을 소유하고, 업적을 달성하며, 영적인 지위와 명성을 높이고자 하는 야망과 유혹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에게 밧세바의 실패가 완전히 육신으로 드러난 죄라면, 백성의 수를 센 것은 영적 교만이라는 더욱 교묘하고 감추어진 영적인 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침례자 요한이 말하였던 것처럼, 주님만이 반드시 흥하시고 증가되시며, 나는 반드시 쇠하고 감소되어야 한다고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세어보고 계산해야 한다면, 모세의 기도처럼 우리의 짧은 날 수를 세는 지혜를 얻어서,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나의 업적과 자랑거리를 세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풀어주신 긍휼과 복과 은혜를 세어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머리카락도 다 세어볼 수가 없는 것처럼,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 쓸 수가 있고, 그분의 긍휼을 다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세어보아야 한다면,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긍휼을 세어보기를 원합니다. 


** 다윗에게 있었던 기회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4장으로 돌아오셔서 2-4절을 보시겠습니다. 
2 왕이 자기와 함께한 군대 대장 요압에게 이르되, 이제 너희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두루 다니며 백성을 계수하여 내가 백성의 수를 알게 하라, 하니
3 요압이 왕께 이르되, 백성이 얼마나 많든지 이제 주 왕의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백 배나 더하사 내 주 왕의 눈이 그것을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러하오나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였으나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의 말이 요압과 군대의 대장들을 이겼으므로 요압과 군대의 대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세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 나가니라.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시험을 받을 때에 2번의 도움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그의 믿음을 돕고자 하였던 요압과 군대의 대장들, 바로 형제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왕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야를 죽게 하라는 왕의 명령에는 아무런 질문이나 항변 없이 그대로 따랐던 요압 장군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요압 장군만이 아니라, 군대의 대장들이 한 마음으로 반대하였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다윗 왕의 명령은 너무도 이상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평소에, 또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볼 때, 다윗 왕과 요압 장군 중에서 누가 하나님을 더 신실하게 따랐습니까? 다윗이었습니다. 또 다윗과 군대의 대장들 중에 하나님의 마음에 가장 잘 맞는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다윗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다윗이 틀렸고, 요압과 군대 대장들이 맞았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성령 충만하고,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형제자매들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이 때 이들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을 겸손하게 들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영적 교만에 사로잡혔고, 형제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으며, 고집을 피웠고, 결국 자신의 뜻을 실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체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가 겸손한 귀를 가지고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8 이처럼 그들이 온 땅을 두루 다니고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9 요압이 백성의 수의 총계를 왕에게 주었는데 이스라엘 안에는 칼을 뺀 용맹한 자 팔십만 명이 있었으며 유다 사람은 오십만 명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셨던 두 번째 기회는 아홉 달 스무 날이라고 하는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윗은 거의 10개월 동안, 백성의 수를 세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고, 멈출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시간들 동안 고집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을 마감하면서, 백성들의 수를 세어보고, 자신이 어떻게 사울의 망해가는 왕국을 이어받아, 이토록 강건하게 세웠는지를 되짚어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요압 장군이 다윗 왕에게 백성의 수를 보고하였는데, 역대기상 말씀을 참조해 보면 요압 장군이 왕의 명령을 가증하게 여겼기 때문에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세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믿음의 시험을 받을 때 승리할 수 있도록 형제들을 주셨고, 또 충분한 시간도 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윗은 자신의 고집을 그대로 이루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이러한 와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이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 다윗의 회개와 하나님의 심판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4장 10-14절을 보시겠습니다. 
10 다윗이 백성의 수를 센 뒤에 그의 마음이 그를 찌르므로 다윗이 주께 아뢰되, 내가 행한 일로 인해 크게 죄를 지었나이다. 오 주여, 이제 간청하옵나니 주의 종의 불법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주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로 있던 대언자 갓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12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네게 세 가지를 주노니 너는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라.
13 이에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왕의 땅에서 칠 년 동안 왕에게 기근이 임하리이까? 아니면 왕께서 왕의 원수들에게 추격을 받고 그들 앞에서 석 달 동안 도망하시려나이까? 아니면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역병이 있으리이까? 이제 나를 보내신 분에게 내가 어떤 답을 드려야 할지 살피고 알려 주소서, 하매
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큰 곤경에 빠졌도다. 주의 긍휼은 크니 이제 우리가 그분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비록 늦었긴 했지만, 그래도 다윗은 죄를 지은 이후에 무감각하지 않고, 마음에 찔림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성도의 양심이며, 하나님 앞에 올바른 마음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명하고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복을 세어보려고 했다든지, 이스라엘의 군대를 정비하려고 했다든지, 좋은 뜻으로 포장하지 않고, 자신이 크게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였으며, 자신이 어리석었다고 자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다루심을 보게 되는데, 바로 무슨 벌을 받을 것인지, 세 가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한 가지를 다윗에게 고르라고 기회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슨 벌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아야만 하는 것이 다윗의 입장인데,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벌을 보기로 주시고,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벌을 내리시는 와중에도, 다윗을 사랑하시며, 아끼시며 긍휼히 여기고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제시된 보기는 첫 번째, 7년 동안 기근이 임하는 것, 두 번째, 3개월 동안 원수들에게 추격을 당하는 것, 세 번째, 3일 동안 역병이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역대기상에서는 기근이 임하는 기간을 3년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이 구절들 사이에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갓 대언자와 다윗의 대화 중에 긍휼을 베푸셔서 3년으로 줄여주신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하늘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3번, 역병의 재앙을 선택하였는데, 그 이유는 주의 긍휼이 크기 때문에, 주님의 손에 온전히 모든 심판을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역병이 임하게 되는데, 이 일은 단지 다윗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하시고 심판하실 것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4장 15-17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이에 주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이스라엘 위에 역병을 보내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백성 중에서 칠만 명이 죽으니라.
16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해 자기 손을 내밀어 그것을 멸하려 할 때에 주께서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사 백성을 멸한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 네 손을 멈추라, 하시거늘 그때에 주의 천사가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옆에 있더라.
17 다윗이 백성을 친 천사를 보고 주께 아뢰어 이르되, 보소서, 나는 죄를 짓고 악하게 행하였사오나 이 양들 곧 그들은 무슨 일을 하였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하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선택대로 역병을 보내셨습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라는 말은 우리나라로 치면,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처럼, 최북단에서 최남단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기준으로 백성들을 죽게 하셨는지 알 수 없으나, 이스라엘 전국에 걸쳐서 7만 명이 역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말씀에 보면 주의 천사가 아시리아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하룻밤 사이에 전멸시킨 기록을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과 비교해 볼 때, 지금 3일에 걸쳐서 7만 명을 죽게 하신 것은 매우 천천히 심판을 진행하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역병의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충분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재앙에서 스스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주의 천사는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옆에 섰습니다. 다윗은 천사를 보고는, 내가 죄를 짓고 내가 악하게 행하였으니, 주의 손으로 나를 치시고, 내 아버지 집을 치시라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지 다윗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도 심판하실 것이 있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에 대하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왕 다윗에 대한 두 번의 반역에 대하여 심판하셨습니다. 또한 동시에 다윗 왕의 교만과 높아진 마음에 대하여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낮추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긍휼의 풍성하심을 보이고자 하셨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다윗을 대적하였고 압살롬을 따른 바 있습니다. 압살롬이 죽임 당한 직후에도 그들은 옷을 찢고 돌이키기는커녕 세바를 따랐습니다. 사실 온 이스라엘이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 소수만을 죽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왕국을 자신의 자랑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인구 가운데 단지 3일 만에 7만 명이나 죽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아니면 왕국이 유지될 수도 없고,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경고하시며, 다윗의 마음이 겸손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 타작마당의 제단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4장 18,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8 그 날에 갓이 다윗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올라가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주께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19 다윗이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갓의 말에 따라 올라가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또 다시 한 번 주님의 긍휼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대언자 갓을 통하여 범죄한 다윗을 부르시고,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 하였을 때, 더 이상 우리를 보고 싶지 않아서 얼굴을 피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우리를 찾아오시고, 불러주시며 우리와 교제를 회복하고,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이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을 때에,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해변에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음식을 예비하시며,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상태로 모였든지,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불러주고 계십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먹을 것이 있느냐?” 제자들에게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의 메마름과 배고픔과 궁핍함을 아시는 주님께서 지금 이 시간 우리를 새롭게 불러주고 계십니다. 
“너는 왜 왔어? 꼴 보기 싫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내치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떠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또 다시 새로운 긍휼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19절에서 다윗은 주께서 명령하신 대로 즉시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로 기쁨으로 응답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받드시고, 그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우리 함께 역대기상 21장 26-28절을 보시겠습니다. 
26 다윗이 거기서 주께 제단을 쌓고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드리며 주를 부르니 그분께서 하늘로부터 번제 헌물 제단 위에 불을 내려 그에게 응답하시고
27 주께서 천사에게 명령하시매 그가 다시 자기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
28 그때에 다윗이 주께서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자기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보고는 거기서 희생물을 드렸으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헌물에 하늘의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이로써 다윗은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자신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셨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은 사무엘기하에 나오는 여부스 족속 아라우나와 동일 인물입니다. 다윗은 아라우나, 곧 오르난으로부터 그 땅의 일대를 구입하였고, 그 때부터 바로 그곳의 제단에서 주님께 헌물을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역대기하 3장 1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
다윗은 처음에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은 백향목 집에 거하지만, 하나님의 궤는 휘장 안에 있음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주의 집, 성전을 짓기를 원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피를 많이 흘린 전사 다윗을 막으시고, 그의 뒤에 올 샬롬, 즉 평화라는 의미를 가진 샬로몬, 즉 솔로몬을 통하여 짓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왕으로 있는 동안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를 예비하였는데, 마지막으로 성전이 건축될 장소를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예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자신의 교만과 어리석음과 고집이 수치스럽게 드러난 곳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풍성한 긍휼이 나타났던 곳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만났던 바로 그 장소에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되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후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왜 여기에 성전을 건축하였느냐고 묻게 된다면, 다윗 자신의 교만과 수치가 역사 대대로 기억될 것이지만, 그와 동시에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또한 대대로 찬양받으실 것이기에, 다윗은 바로 그 장소에 성전이 세워지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 정리
다윗은 이 장소에서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주님 앞에 고백하였을 것입니다. “주의 긍휼에 감사합니다.” 또한 다윗은 장차 이곳에서 성전이 세워질 때, 모든 주의 백성이 모여 이렇게 고백하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주의 긍휼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시편 103편 8-11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8 주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9 그분은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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