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1.21.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설교/로빈33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7

마음의 기근을 해결하는 길(삼하 21: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21장입니다. 사무엘기하 21장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 시대에 해를 이어 삼 년 동안 기근이 있어서 다윗이 주께 여쭈었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그것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으므로 그와 및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인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저는 오늘 “마음의 기근을 해결하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물은 생명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결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꼭 물고기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물이 없으면 식물들도 살 수가 없고,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가 없으며, 사람도 마찬가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근이라는 것은 정말 무섭고도 큰 재앙입니다. 

실제적인 물이 없는 기근도 참으로 무서운 재앙이지만, 오늘날 이 시대에 있는 영적인 기근 역시 너무나 무섭고 치명적입니다. 우리 함께 아모스 8장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그 땅에 기근을 보내리라. 그것은 빵으로 인한 기근도 아니요 물로 인한 갈증도 아니며 오직 주의 말씀들을 듣는 것에 대한 기갈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날들이 이르게 될 때, 이 땅에 기근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빵이나 물이 없는 갈증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이 풍부한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기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한 기갈입니다.

홍수가 나면 온 사방이 물이지만, 정작 마실 수 있는 물은 없다고 합니다. 그처럼 오늘날 우리는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 있으면서, 정작 먹고 마실 수 있는 주의 말씀을 찾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설교자도 많고, 기독교 서점에는 책들도 넘쳐납니다. 그러나 “외치는 자 많건 만은 생명수는 말랐어라.”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정작 참된 진리의 말씀을 듣기는 너무나 어려운, 기근의 시대를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독한 영적 기근의 결과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나 메말라 있습니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땅은 싹을 내고, 꽃을 피우며, 풍성한 곡식과 열매를 자라게 만듭니다. 그러나 메마른 땅은 그렇게 하기가 너무나 힘듭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은 영적 기근 속에서 메마르고 지쳐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21장 1절 말씀에서 다윗 시대에 삼 년 연속으로 일어났던 기근에 대하여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1,2년 정도의 기근이야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3년 연속으로 기근이 들었을 때는, 4년차부터 매우 힘든 시간이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무엘기하 21장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 안에 있는 마음의 기근을 해결하는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목마르고 갈증이 난 우리들의 마음을 시원한 진리의 말씀과 성령님의 생명의 물로 풍성히 채워주시기를 원합니다. 


** 기브온 사람들
먼저 우리 함께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살펴보시겠습니다. 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때에 다윗 시대에 해를 이어 삼 년 동안 기근이 있어서 다윗이 주께 여쭈었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그것은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으므로 그와 및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인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여기서 정말 오래간 만에 다윗이 주님께 여쭈었다고 하는 너무나 반가운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1년째 기근이 들었을 때나, 혹은 2년째 기근이 들었을 때에라도 더 빨리 주님께 여쭈었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다윗은 3년만에라도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는 다윗에게 즉시로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울왕의 시대에 사울왕과 그의 집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한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있는 문제들을 주님 앞에 가져가 여쭙기를 원합니다. 한두 번 그냥 넘어갔을지라도, 세 번째에는 주님께 여쭙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1장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며 아모리 족속 중에서 남은 자들이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을 향해 열심이 있었으므로 그들을 죽이려고 꾀하였더라.) 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그들에게 말하니라.
잠시 기브온 사람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에 속하지 않았고, 가나안 이방 민족인 아모리 족속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처음에 이스라엘은 모든 가나안 백성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오면서 얼마 되지 않아, 기브온 거주민과 주님의 이름으로 화친을 맺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기브온 거주민들이 사람들을 보내어 아주 먼 곳의 나라에서부터 온 것처럼 여호수아를 속이고, 평화조약을 맺기를 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주님께 여쭙지 않았고, 기브온 거주민들에게 속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맹세하였습니다. 며칠 뒤에 그들이 바로 근처에 거하는 마땅히 진멸해야 하는 가나안 백성인 것을 알게 되었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맹세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브온 거주민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직후에, 다른 가나안의 왕들은 배신자들인 기브온 주민들을 대적하여 연합군을 결성하였습니다. 그러자 기브온의 거주민들은 여호수아에게 긴급히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만히 두면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속임수를 사용한 기브온 사람들을 멸할 수가 있었지만, 주님 앞에서 맹세한 언약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가나안 연합군을 대적하는 전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군사들을 이끌고 밤새도록 달려가 전쟁터에 합류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돌과 우박을 내리셔서, 이스라엘이 칼로 죽인 자보다 더 많은 자들을 쓰러뜨리셨습니다. 심지어 전쟁이 끝나기 전에 해가 넘어가 어두워지지 않도록, 해와 달을 멈추어 서게 하셔서, 전쟁을 완전한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마땅히 진멸 당했어야 할 가나안 민족이며, 속임수를 사용하였던 자격이 없는 기브온 거주민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시고, 긍휼로 그들을 보존하시며, 완전한 승리를 허락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날까지 기브온 거주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기브온 거주민들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이스라엘과 함께 살도록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긍휼을 베푸신 그들의 이웃이며 형제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비록 주님께 묻지 않고, 속임을 당하여, 어리석게 결정하고, 함부로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자신의 맹세로 인정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마태복음 18장 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묶으면 그것이 하늘에서 묶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풀면 그것이 하늘에서 풀리리라.
이 마태복음 말씀은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가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 자신의 뜻으로 승인하시고 인정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카톨릭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면서 교황이 사람들을 구원하고 지옥에 보낼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대적한다면, 그것은 인정받을 문제가 아니라 심판을 받을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선택과 결정을 하늘의 뜻으로 인정하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성도들이 깨어서 주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의 다소 어리석은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승인하셨고, 기브온 거주민들을 멸하시지 않는 것을 하나님 자신의 맹세로 받아들이시고, 정하셨습니다. 자격이 없고 멸망을 당하기에 합당하였던 기브온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우리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 사울왕의 위험한 열심
그런데 사울왕은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을 위한 “열심” 때문에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울의 무서운 “열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 사울의 경우에서는 결코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열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맹세를 깨뜨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민족을 죽이고자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10장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니니라.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잘 모르고,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열정과 열심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주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지식에 따른 것이 아닌 그 결과로, 메시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진리가 없는 열심의 결과 사도 바울은 교회의 성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는 일을 하였고, 스데반을 돌로 치는 일에서도 찬성하였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열심이라고 해서 그 자체가 항상 유익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열심은 오히려 해악이 될 수가 있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사울왕은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을 향한 열심으로 기브온 거주민을 멸하려고 하였고, 많은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스라엘에 기근을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인하신 맹세와 언약을 사람의 선한 열심으로 깨뜨리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성경을 배워야 하며, 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걸어야하며, 왜 주님께 기도해야 하고, 교회의 지체들과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할까요? 우리의 열심이 언제든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이 비록 그 자체로는 순수할지라도, 하나님이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육신의 뜻 가운데 행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울왕의 열심은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자기 눈에 옳은 대로 행할 때, 그것이 옳기 때문에 그것은 무서운 열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눈에 옳은 길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 기브온 거주민의 요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1장으로 돌아오셔서 3-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 그러므로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위해 무엇을 하랴? 내가 무엇으로 속죄하여야 너희가 주의 상속 유업을 위해 복을 빌겠느냐? 하매
4 기브온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사울과 그의 집에서 은이나 금을 취하기를 원치 아니하고 또한 왕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이스라엘 안에서 사람을 죽이지 마옵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너희가 무엇을 말하든지 내가 너희를 위해 그것을 행하리라, 하매
5 그들이 왕께 응답하되, 우리를 소멸시킨 사람 곧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지역의 어느 곳에도 남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를 대적하며 계략을 꾸민 사람
6 즉 그의 아들들 중에서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주소서. 주께서 택하신 사울의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주를 위해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그들을 주리라, 하니라.
다윗은 즉시로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을 죽였던 사울왕의 집에서 7명에게 복수하면 만족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7-9절을 보시겠습니다.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곧 그들 사이에 있던 주의 맹세로 인하여 왕이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아끼니라.
8 다만 왕이 아이야의 딸 리스바의 두 아들 곧 그녀가 사울에게 낳은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붙잡고 또 사울의 딸 미갈의 다섯 아들 곧 그녀가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을 위하여 키운 아들들을 붙잡아
9 그들을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니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을 산에서 주 앞에 목매어 달므로 그들 일곱 명이 다 함께 쓰러져 수확하는 때 곧 보리를 수확하기 시작하는 때의 첫 무렵에 죽으니라.
이것은 오늘날로서는 이해하기가 다소 어려운 복수와 정의의 실현 방식입니다. 어찌되었든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를 그대로 이행하여, 사울의 자손 7명을 넘겨주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방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돌무덤에 묻고 왕이 명령한 모든 것을 수행하니라. 그 뒤에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하여 간구를 들으시니라.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를 그대로 이행하였고, 여기에 더하여 과거 다른 장소에 있었던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옮겨와 고향 땅에 묻어주었습니다. 다윗이 이 모든 일을 이행한 뒤에야,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하여 간구를 들어주셨고, 기근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 형제들을 사랑하는 길
우리는 오늘 “마음의 기근을 해결하는 길”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다양한 영적 교훈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주님께 여쭙는 모습에서, 사울왕이 잘못된 열심을 부리는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자격이 없는 기브온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시는 모습에서 여러 가지 면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의 말씀을 “형제자매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기브온 사람들처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일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고, 너무나 육신적이어서 영적으로 필요가 없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거짓되게 행하여 믿기가 어렵고, 함께 무슨 일을 하기도 어려운 지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제, 자매를 구원하시고, 우리교회에 한 몸으로 더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마땅히 그 형제자매를 받아들이며,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메마름과 기근이 있는 이유는, 우리 나름대로의 열심 가운데 행하면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옳고, 정당하고, 내가 성경적이고, 내가 더 영적이기 때문에, 많은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면서, 다른 지체들은 고려하지 않고, 내 눈에 육신적이고, 자격이 없는 지체들을 버려두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곤고한 것입니다. 혹시 지금 우리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형제자매가 있지는 않습니까? 왜 나는 성령 충만의 삶을 살지 못할까를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님께서 알려주시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함께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시겠습니다. 
23 그러므로 네가 네 예물을 제단으로 가져오다가 너를 대적할 어떤 일이 네 형제에게 있음을 거기서 기억하거든 
24 네 예물을 거기에, 제단 앞에 두고 네 길로 가서 맨 먼저 네 형제와 화해하고 그 뒤에 와서 네 예물을 드리라.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단 위에 예물을 드리기 전에, 맨 먼저 형제와 화해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의 모든 요구를 이행하고, 정당하게 보상하고, 심판을 집행한 그 이후부터 기근을 끝내시고, 그 땅을 위한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형제자매들과 어려운 일들이 있었다면, 그리고 주님께서 그것을 기억나게 해주신다면, 즉시 그것을 가지고 형제자매와 화해하기를 원합니다. 서로 더 이상 대화를 안 하거나, 적당히 인사만 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표면적인 예의를 지키는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한 방법으로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기근을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적당히 잘 지내면서 다투지 않도록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렇게 사랑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잘못을 고백하고, 보상하며, 용서하고,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교회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 거인들을 대적하는 법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1장 15-21절을 보시겠습니다. 
15 블레셋 사람들이 여전히 또 이스라엘과 싸움을 하매 다윗이 자기 신하들과 함께 내려가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더라. 다윗이 기진하게 되매
16 그 거인의 아들들 중에서 무게가 놋으로 삼백 세겔 나가는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였으나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그를 구조하고 그 블레셋 사람을 쳐서 죽이니 이에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께서 다시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나가지 마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18 이 일 후에 다시 곱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이 있었는데 그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가 그 거인의 아들들 중에서 삽을 죽였더라.
19 다시 곱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움이 있었고 거기서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동생을 죽였는데 그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여전히 가드에서 싸움이 있었고 거기에 키 큰 자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손마다 손가락이 여섯 개요, 발마다 발가락이 여섯 개로 개수가 스물네 개더라. 그도 그 거인에게 태어났더라.
21 그가 이스라엘에게 도전하므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거인들을 쓰러뜨렸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물론 혼자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만나는 거인마다 혼자서 다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윗과 함께하면서 거인들을 쓰러뜨렸던 사람들의 이름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과 형제들은 하나의 팀을 이루어서 함께 돕고 구조하면서 싸움을 싸웠고, 혼자서는 쓰러뜨리기가 힘든 많은 거인들을 쓰러뜨렸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앞에도 거인들과 같이 많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거인들을 어떻게 상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만약 다윗과 그의 사람들처럼, 형제들과 함께한다면, 우리는 능히 이러한 거인들을 쓰러뜨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한 울타리의 각 양떼로 부르셨고, 한 몸의 각 지체로 부르셨습니다. 각각의 용사들이 모인 군단으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교회의 길입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고, 내가 십자가의 삶을 살고, 내가 주님을 섬기고, 내가 믿음이 성장하는 길이 아닙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길이 아니라, 우리교회가, 나와 내 형제, 나와 내 자매가, 나와 내 지체가 함께 주님을 따르고, 함께 십자가를 지며, 함께 섬기고, 함께 성장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교회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 정리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의 다소 어리석은 결정을 하늘의 뜻으로 인정하셨고, 자격이 없는 기브온 거주민들을 하나님의 백성과 같이 대우해 주셨습니다. 사울과 그의 집은 잘못된 열심 가운데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정의롭게 심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대로 모든 것을 정당하게 보상하고, 정의를 집행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그 땅을 위한 간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자격이 없는 민족들과 같은 기브온 형제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땅에 기근이 들고, 또 풀어지는 일이 있었음을 우리가 주목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의 기근을 해결하는 길”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적 기근과 메마름이 있다면, 다윗과 같이 주님께 여쭙기를 원합니다. 사울왕과 같이 나름대로의 열심 가운데 행하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을 어렵게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보상하였던 것처럼, 용서를 구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화해해야 할 지체가 없는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다윗과 형제들이 팀을 이루어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거인들을 쓰러뜨렸던 것처럼, 우리가 한 몸, 한 교회로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며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각자는 약하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될 때, 온전케 될 수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 각자는 부족하지만,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 풍성하고 충분하며 만족할 수가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귀한 교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너무나 귀한 형제자매들을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 모두가 풍성한 믿음의 만찬과 생수를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5.01.18.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로빈33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6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삼하 20:19)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20장입니다. 사무엘기하 20장 19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평화롭고 신실하게 사는 자들 가운데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에서 한 도시와 한 어머니를 멸하려 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당신이 주의 상속 재산을 삼키려 하시나이까? 하매
저는 오늘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는데, 오늘날 현 시대는 마지막 날들 중에서도, 정말 끝이 가까워 보입니다. 마지막 날들에 나타난 성경의 여러 말씀들을 살펴볼 때, 발견할 수 있는 특징 중, 한 가지는 바로 권위와 질서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가장 마지막 교회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인데, 바로 사람들의 권리, 즉 인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이 모든 생각의 중심이 되고, 근본이 되고, 모든 권리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평가를 하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존경을 받지 못하고, 가정에서는 부모님들이 권위를 잃어가고 있고, 남편들이 머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학교와 교회들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 권위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질서와 반역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참으로 가깝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똑똑하고 재능이 뛰어나고, 능력 있는 인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 생각, 자기 지식, 자기 판단, 자기 경험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석하고 평가할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그러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발견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기하 20장 19절 말씀에서, 우리는 한 어머니의 고백을 볼 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어머니가 일어나서 주의 상속 재산을 보호하고, 가족들을 지키며, 반역을 끝내는 역할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실한 믿음의 어머니들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교회에 주신 믿음의 어머니들, 자매님들로 인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또한 우리교회의 청년부, 중고등부, 초등부의 자매님들이 귀한 믿음의 어머니들로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저희 승연이도 잘 자라나서 먼저는 믿음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귀한 딸이 되기를 원하고, 또 좋은 믿음의 어머니도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조금 이상한 점은 믿음의 아버지, 믿음의 남편은 어디로 갔느냐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은 다 어디로 가고 한 어머니가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를 생각할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교회에서 믿음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믿음의 아버지, 형제들도 굳건하게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무질서하고, 진리가 권위를 잃어가는 이 시대에, 믿음으로 굳게 서서 전진하는 우리 형제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20장 말씀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거역의 길을 걸었던 네 명의 사람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네 사람의 모습은 각각 다르게 나타났지만, 그 어떤 모습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이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주님을 대적하고, 거역하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참된 순종의 삶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 다윗의 불순종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마침 거기에 세바라는 이름의 벨리알의 사람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베냐민 족속 비그리의 아들이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얻을 몫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 안에서 얻을 상속 재산이 없도다. 오 이스라엘아,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2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으나 유다 사람들은 요르단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자기들의 왕에게 굳게 붙으니라.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인물은 세바가 반역을 하도록 원인과 빌미를 제공하였던 다윗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던 첫 번째 인물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며 순종하지 못했고, 자기 방법대로 왕의 자리로 돌아오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혈통과 친족을 통해서 속히 왕의 자리로 돌아오고자 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무엘기하 19장의 뒷부분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 지파는 왕이 우리의 친족이라고 주장하였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우리가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사무엘기하 20장 1절에서 세바라는 사람이 마침 거기에 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반역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불순종은 불순종을 낳습니다. 왕이 불순종의 길을 걸을 때, 백성들도 반역의 길을 걷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부모님이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지 않을 때, 자녀들이 거역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물론 세바의 반역은 전적으로 세바의 책임입니다. 그는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 때문에 자녀가 죄를 지어도 되거나, 인도자 때문에 누군가가 하나님을 거역해도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편에서는, 그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길을 걸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압살롬의 반역 직후에, 또 다시 반역하게 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생각해 본 다윗의 경우는 바로 앞에서 이끄는 인도자로서의 불순종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개인적인 잘못일 뿐 아니라, 뒤따르는 백성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는 더욱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 세바의 반역
이제 우리가 두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바로 사무엘기하 20장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세바입니다. 세바는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등하는 그 현장에서 반란을 일으켰고, 2절 말씀에 의하면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서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랐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해를 끼치리니 너는 네 주의 신하들을 거느리고 그를 추격하라. 그가 성벽을 두른 도시에 들어가서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다윗은 세바의 반역을 압살롬보다 더 위험한 것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만큼 세바의 반역은 대규모적이었며, 성공적이었습니다. 압살롬의 반역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다윗 왕을 맞으러 왔던 백성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왕을 버리고 세바를 따랐으니, 말 그대로 온 백성의 마음이 세바를 따르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1절에서 세바는 자기를 따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에게는 다윗 안에서 몫이 없으니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백성이 세바를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바의 반역은 매우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분열을 초래하였습니다. 다윗의 혈통 지파와 그렇지 않은 지파를 다윗이 나누었습니다. 다윗 왕이 잘못했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권위를 거역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옳고 정당한 자의 편에 서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의 원리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의 편에 서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였고, 자신의 왕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한 순간도 사울 왕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사울 왕을 제거할 수 있는 완벽한 기회를 얻었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권위와 질서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잘했느냐, 못했느냐보다 중요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세우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윗은 온 우주의 왕이시며, 권위가 되시며, 모든 질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사탄의 모든 역사는 교만과 불순종, 그리고 거역과 반역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 내가 옳고 정당하다는 속임수가 숨어있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거스르는 모든 역사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루시퍼 사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 최초의 반역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만들었던 것도, 옛 뱀,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사탄은 무질서를 원하고, 거역의 역사를 원합니다. 락 음악의 정신은 “반항”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정확히 사탄의 정신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면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 순종하였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헌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에도, 그를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순종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순종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거역과 불순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표현입니다. 의심과 불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믿음 없음이 악한 마음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땅에서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는데, 바로 그 죄가 믿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불순종하고 거역하게 됩니다. 믿음은 순종과 연결되며, 믿음 없음은 거역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믿음의 길, 순종의 길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여인이 지혜롭게 온 백성에게 가니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지므로 그가 나팔을 불매 그들이 그 도시에서 물러나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이르니라.
이것이 바로 반역자 세바의 최후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라고 자신을 밝혔던 여인이 지혜롭게 온 백성들과 대화하여, 반역자를 처단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믿음의 어머니는 전쟁을 막을 수 있었고, 평화를 지키며, 자신의 가정과 주의 상속 재산인 삶의 터전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데살로니가후서 1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그리하시리라.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옥에 떨어지는 이유는 죄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의 죄 값을 자신의 피로 지불하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힘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끈기가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해도 누구나 순종할 수 있는, 단순히 마음으로 믿으라고 하는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있다면 바로 믿음이며, 순종입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영원히 가치 있는 삶이 있다면, 진리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성품이 있다면 바로 순종입니다. 흠도 많고 실수도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따지고 평가하고 거역하는 길은 결코 지혜로운 길이 아니며, 오히려 어리석고 사악한 길입니다. 지혜로운 길은 모든 질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진리에 순종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순종하는 길을 가기 원합니다.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진리에 무릎 꿇고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 아마사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20장으로 돌아오셔서 4,5절을 보시겠습니다. 
4 그때에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사흘 안으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고 너도 여기에 있으라, 하니
5 이에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러 갔으나 왕이 그에게 정해 준 약정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무니라.
우리가 생각해 볼 세 번째 인물은 아마사입니다. 그는 처음에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했던 사람이었고, 군대 대장으로서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죽임을 당하기에 마땅했고, 심판을 받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지 온 유다 지파를 다윗 왕에게 이끌어 올 역할을 하기에 좋은 자이며, 다윗 왕의 혈통이요, 골육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면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윗의 새로운 군대 대장으로 임명되기까지 하였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성경에서 아마사가 말하는 것을 단 한마디도 읽어볼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반역했던 것을 참으로 돌이키고, 새롭게 되었더라면, 믿음과 돌이킴의 고백이 한마디쯤은 기록되었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아마사는 끝내 침묵하고 말았습니다. 

아마사는 다윗 왕에게 사흘 안으로 유다 사람들을 소집하고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정해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무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바로 얼마 전에 아마사의 말을 잘 들어서, 다윗 왕을 모시러 나왔습니다. 아마사가 유다 사람들을 통솔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마사는 그 일을 매우 게으르고 나태하게 처리하였습니다. 
여기서 정해 준 시간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는 것은 일이 어려워서 시간이 더 걸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마사가 의도적으로 더 오래 머물렀다는 것입니다. 며칠을 더 머물렀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아마사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다윗 왕을 섬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왕이 신속하게 군대를 소집해야하며, 세바의 반역을 진압해야 한다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고향 집에 간 김에 좀 더 여유를 즐기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마사의 모습은 우리들 속에도 있는 소극적인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기는 하는데, 정해준 시간에 맞춰서 신속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시간에 맞춰서 여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기는 하는데, 정해진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법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순종은 결코 순종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순종의 기준은 즉시로, 기쁘게, 마음을 다하여,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순종입니다. 믿음의 부모님이 자녀에게 가르치고 훈련해야 하는 순종은 바로 이러한 순종입니다. 시간을 질질 끌면서, 억지로, 주어진 역할의 일부분만을 행하는 것을 순종이라고 용납해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데,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표준에 합당한 순종을 가르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순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하듯이 하는, 적극적인 순종이야말로 참된 순종입니다. 소극적이고 게으른 순종은 다른 말로 거역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그러한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 요압
이제 우리 함께 네 번째, 마지막 인물로 요압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9,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그가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치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요압 장군은 큰 맥락 가운데서는 단 한 번도 다윗 왕을 대적하거나 반역한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다윗을 위하는 쪽에 섰고, 다윗의 편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를 위하여 칼을 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하다가, 드디어 이스라엘의 장군이었던 아브넬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때 요압 장군은 다윗 몰래 아브넬을 암살하여, 자신만이 온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장군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 다윗은 어찌하든 압살롬을 살려두기를 원했지만, 요압은 후에 일어날 복잡한 일을 피하기 위하여, 주저함 없이 압살롬을 제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아마사입니다. 요압은 아마사가 자기를 대신하여 군대 대장이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더욱이 반역하였던 자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칼을 들었습니다. 

요압은 드러나게 다윗을 대적하고 반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윗의 마음처럼, 완전히 다윗에게 순종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많은 경우, 주님을 사랑하는 것 같고, 주님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것 같은 모습을 가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나 자신을 위하여, 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해 버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위하면서,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의심하지 않으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 하나님 앞에 그러한 순종의 사람으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하다”라는 주제로 사무엘기하 20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가운데서 네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 다윗은 왕좌를 회복하게 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지만, 그 뜻을 육신의 방법대로 이루다가 또 다른 반역의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마땅히 백성들 앞에서 순종의 본을 보여야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불순종과 반역이라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행하는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모든 시간과 방법과 과정까지도 온전히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두 번째 세바는 옳고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다윗 왕에게 반역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육신에게 옳은 판단과 정당성이 주어질 때 매우 강력해 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와 질서에 순종하는 것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세 번째 아마사는 왕의 명령대로 순종하지 않고, 게으르고 나태한 가운데 자기 나름대로의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종이 아니었고 거역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내 나름대로의 기준을 덧붙여서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고는 순종하였다고 주장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직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순도 100%의 온전한 순종의 삶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인물이었던 요압은 큰 맥락 가운데서는 다윗 왕에게 순종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기 판단대로 일들을 결단하고 실행하였습니다. 우리가 오직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큰 맥락 가운데뿐만 아니라, 모든 결정적이고 세밀한 순간에조차,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는 순종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이 너무나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에, 누가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하겠습니까? 바로 우리들이, 비록 아무것도 아니며, 한 없이 자격이 없는 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바로 그러한 순종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번 설교에 대한 간략한 덧붙임
사무엘하 19장, 다윗이 왕으로서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하는 과정의 사건들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등장하는데...
한 사건마다 한 번의 설교로 다루자니 그다지 큰 사건들이 아니고, 
또는 그러려면 사무엘하 19장에서만 4번 이상의 설교가 나오게 되고...
그렇다고 무시하고 통과하자니 아쉬운 그런 본문이었습니다. 
결국 많은 일들 속에서도 여전히 한 걸음, 오늘의 믿음의 한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주제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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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7.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3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5

오늘도 한 걸음을 걷자(삼하 19:14,15)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9장입니다. 사무엘기하 19장 14,15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4 그가 유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같이 돌리매 그들이 왕에게 이 말을 보내어 이르되, 왕과 왕의 모든 신하들은 돌아오소서, 하므로
15 이에 왕이 돌아와서 요르단에 이르매 유다가 왕을 맞으러 가서 왕이 요르단을 건너도록 안내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저는 오늘 “오늘도 한 걸음을 걷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 달리기
사람의 인생은 달리기 경주와도 같습니다. 달리기야 말로 사람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종목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달리기를 참 좋아합니다. 달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는 주변 어디서에나 달리기와 관련된 많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 중에는 “테일즈러너”라고 있는데 바로 달리기 게임입니다. 또 스마트폰에도 “쿠키런”이나 “템플런”이라는 게임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러닝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또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는 미로 속에서 달리는 “메이즈러너”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 이야기 역시 인생을 달리기에 빗대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걷는 적이 없어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저희 승연이와 호윤이도 집에서 차분하게 걷기보다는 언제나 그 작은 발로, 호윤이는 짜리몽땅한 다리로 다다다다, 뛰어다닙니다. 우리 대안학교에서도 언제나 초등학생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이 복도에서 뛰어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서도 인생을 달리기 경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9장 24절을 보시겠습니다. 
경주할 때에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한 사람이 상을 받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성경은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상을 받도록 달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리라.” 우리 함께 히브리서 12장 1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성경은 우리 앞서간 믿음의 사람들이 스타디움의 관중들처럼, 큰 구름을 이루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의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은퇴한 믿음의 경주자들, 믿음의 승리자들과 영웅들이 우리의 경주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사무엘기하 19장의 말씀은 다윗의 힘겨운 믿음의 경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온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인하여, 추방당한 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원했지만, 결국 압살롬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아들을 위하여 슬퍼할 시간도 없이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읽었던 사무엘기하 19장 14,15절 말씀은 이제 유다의 집이 다시 왕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기하 19장의 말씀은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예루살렘 도시 밖으로 나왔던 길이 절망의 발걸음이었다면, 이제 다시 예루살렘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영광과 승리의 귀환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단순히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왕의 자리를 회복하였더라, 라고 하면서 간단하게 기록하지 않고, 다윗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돌아오는 그 발걸음 가운데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를 회복하여 가는 길 가운데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시며, 다윗의 왕좌를 회복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다윗의 발걸음은, 오늘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과 비슷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말씀을 살펴보시면서, “오늘도 한 걸음을 걷자.”라는 말씀의 제목처럼, 우리가 매일의 삶 속에 있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 가운데서 주저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힘을 얻기 원합니다. 


** 다윗의 방법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9-11절을 보시겠습니다. 
9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두루 온 백성이 다투어 이르되, 왕이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나 이제 압살롬으로 인해 이 땅에서 도피하셨도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아니하느냐? 하니라.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유다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온 이스라엘의 말이 왕에게 이르고 왕의 집에까지 이른 것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왕의 집으로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9절과 10절 말씀은 압살롬의 죽음 이후에 생겨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여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압살롬이 죽은 시점에서 어찌하여 다윗 왕을 도로 모셔오려고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쉽게 다윗 왕을 다시 왕의 자리로 모셔오기를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윗이 11절 말씀처럼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을 통하여 유다의 장로들을 부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의 말이 왕에게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다윗 왕의 지파인 유다 지파가 가만히 있느냐고 재촉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친족인 유다 지파를 통하여 왕의 자리로 돌아오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걷는데 있어서 한 가지 유혹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좋은 방법으로 이루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어떻게 해야 할지 주님께 여쭈어 보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먼저 자기의 방법으로, 자기의 혈육과 인맥을 이용하여 왕의 자리에 돌아오려고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12-14절을 보시겠습니다.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서 나중이 되려 하느냐? 하고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라, 하니라.
14 그가 유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같이 돌리매 그들이 왕에게 이 말을 보내어 이르되, 왕과 왕의 모든 신하들은 돌아오소서, 하므로
다윗은 자신의 골육, 혈연, 인맥을 이용하여 왕의 자리로 귀환하는 과정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는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 군대 대장으로 앞장을 섰던 아마사를, 자신의 군대 대장으로 세우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의 아들이어서, 다윗의 친척이었지만, 명백히 반역자의 무리에 속했던 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를 심판하거나 처벌하려하지 않고, 오히려 반역자의 무리를 진압하였던 요압 장군을 대신하여 군대의 대장으로 세우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주님께 여쭈었다면 온전한 지혜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의 지혜와 방법으로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부탁을 무시하고,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죽였던 요압 장군을 밀어내고, 오히려 반역자의 무리에 가담하였던 아마사를 자신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장군으로 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사를 통하여 유다의 온 집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서는 아마사가 유다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한 사람의 마음같이 돌려서 다윗 왕을 모셔오고자 하였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방법이 통하였고, 다윗의 지혜대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두려운 사실은, 때로 우리가 육신의 방법으로 일을 진행할지라도, 예상대로 일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일이 잘 된다는 것이 꼭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장이 아님을 우리가 보기 원합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41-43절을 보시겠습니다. 
41 보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 어찌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도둑질하고 왕과 왕의 집안과 왕과 함께한 다윗의 모든 사람들을 데려다가 요르단을 건너게 하였나이까? 하매
42 유다의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답하되, 왕이 우리의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이라. 그런즉 너희가 어찌 이 일로 인해 분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경비에서 조금이라도 먹었느냐? 그분께서 우리에게 무슨 선물을 주셨느냐? 하니
43 이스라엘 사람들이 유다 사람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해 열 몫을 가졌으므로 다윗에 대해 너희보다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멸시하고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서 우리의 권고를 먼저 받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 유다 사람들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다윗의 좋은 방법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분열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은혜와 평강이 흐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조급함과 육신의 방법에는 시기와 분열과 다툼이 열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유다 지파는 자신들이 왕의 가까운 친족인 것을 교만으로 삼았고, 이스라엘 다른 지파들은 시기와 질투 가운데 우리가 열 몫이나 더 가졌고, 더 큰 권리를 가졌다고 싸웠던 것입니다. 다윗이 왕의 자리에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다윗은 그 뜻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기다리지 못했고, 자신의 방법대로 진행하였으며, 결국 형제들 가운데 자신의 친족과 친족이 아닌 다른 형제들을 나누며 분열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0장 9,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건강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려 하였으나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던 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므로 이에 그가 칼로 그의 다섯 번째 갈빗대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흘러 나와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그가 죽으니라. 이처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추격하였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새롭게 세운 군대 대장 아마사가 요압 장군에 의해 암살당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압과 아마사는 함께 다윗의 편으로서 반역자 세바를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압은 그 과정에서 아마사를 쳐서, 마치 그가 세바와의 전투 중에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요압과 아마사의 문제를 주님께 물어, 주님 뜻대로 처분하였더라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급함으로 인해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길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묻고, 오직 주님 뜻대로 걷기를 원합니다. 


** 시므이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16-20절을 보시겠습니다. 
16 바후림에서 나온 베냐민 족속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들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려 내려올 때에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하고 사울의 집의 종 시바도 자기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과 함께 요르단을 지나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18 왕의 집안사람들을 건너가게 하며 또 왕이 선하게 여기는 것을 행하게 하려고 나룻배가 건너가니라. 왕이 요르단을 건너려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19 왕께 이르되, 내 주께서는 불법을 내게로 돌리지 마옵소서. 또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왕의 종이 그릇되게 행한 것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20 내가 죄를 지은 줄을 왕의 종이 아나이다. 그러므로, 보소서, 이 날 요셉의 온 집에서 내가 가장 먼저 와서 내려가 내 주 왕을 맞이하나이다, 하였으나
여기서 우리는 다윗을 저주하던 베냐민 족속 시므이가 다윗 왕 앞에 엎드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조롱하던 자들도, 결국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무릎이 꿇려질 것이고, 모든 혀가 주님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을 사모하면서, 오늘도 우리가 믿음의 한 걸음을 걸어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모든 원수들과도 화목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이 처음에 시므이의 비방과 저주를 듣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시간에, 시므이 스스로가 자신의 죄를 알게 되었고, 다윗 왕 앞에 나아와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가 담담히 주님의 뜻만을 구하며, 신실하게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있는 시므이들과, 결국 화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21-23절을 보시겠습니다.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응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주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이 일로 인해 그가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매
22 다윗이 이르되, 너희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이 날 나의 대적이 되려 하느냐? 이 날 이스라엘 안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겠느냐? 내가 이 날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느냐? 하고
23 그런 까닭에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여기서 아비새는 우리들 안에 있는 옳고 그름의 기준과 정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법대로 하자면 시므이는 죽어야 마땅했습니다. 아비새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습니다. 아비새는 다윗 왕을 위하는 좋은 의도로, 충성심으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윗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17절 말씀에 보시면 시므이와 함께 베냐민 사람 천 명이 나아왔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반역으로 인해서 혼란스러워지고, 또 흩어졌던 백성들의 마음을 평화 가운데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시므이를 처단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므이 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면서, 온 베냐민 지파를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므이에게 긍휼을 베풀 것을 맹세하였습니다. 
우리는 정의롭고 올바르고 정당한 사람의 뜻조차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합니다. 때로는 교회를 위하고, 때로는 형제자매들을 걱정해서 하는 좋은 말조차 상처를 줄 수 있고, 무너뜨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의롭고 정당한 육신은 어느 정도까지 성령의 인도하심과 일치해 보일 수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의 뜻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깨어서 주님과 동행하고, 오늘도 믿음의 한 걸음을 걸으며 전진하기를 원합니다. 


** 므비보셋

이제 우리 함께 므비보셋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살펴보시겠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24-30절을 보시겠습니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다시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발을 치장하지 아니하고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25 그가 예루살렘에서 나아와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매
26 그가 대답하되, 오 내 주 왕이여, 주의 종은 발을 절므로 말하기를, 내가 나를 위해 나귀에 안장을 얹어 그 위에 타고 왕에게 가리라, 하였는데 내 종이 나를 속이고
27 주의 종을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그러나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천사 같으시온즉 왕의 눈에 좋은 대로 하옵소서.
28 내 아버지 집의 모든 사람은 내 주 왕 앞에서 단지 죽은 자나 다름없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께서 왕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들 가운데 두셨사온즉 내게 오히려 무슨 권리가 있어서 더 이상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매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기를, 너와 시바는 땅을 나누라, 하였느니라, 하매
30 므비보셋이 왕에게 이르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자신의 집에 돌아오시게 되었사오니 참으로 그가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다윗이 시므이에게는 긍휼을 베풀었지만, 므비보셋에게는 냉정하게 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이 오해와 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다윗은 끝내 일을 공정하게 풀어내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므비보셋 만큼은 자기와 함께하면서 마음으로나마 위로를 얻기를 기대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을 향한 그러한 다윗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히려 므비보셋의 종을 통하여 그가 왕을 모독하고, 사울의 가문을 다시 일으키고자 한다는 모함을 듣고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된 모함 때문에 닫혀버린 다윗의 마음은 므비보셋 본인의 직접적인 해명을 듣고서도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므비보셋의 태도와 자세는 오히려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죽은 자와 다름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 권리도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다윗 왕이 그 무엇을 하시든지 그것이 감사하며, 자기 종과 땅을 나눌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 주어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믿음의 길에는 오해도 있고, 때로는 모함도 있고, 사실이 아닌 소문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일도 있고, 끝내 오해가 풀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말고, 오늘도 한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믿음의 전진을 결코 멈추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한 번에 많이 달려 나가지 못할지라도, 반드시 한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 바르실래와 김함

이제 우리 마지막으로 바르실래와 김함의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하 19장 32,33절을 보시겠습니다. 
32 이제 바르실래는 매우 늙은 사람으로 팔십 세더라. 그가 매우 창대한 사람이었으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거할 때에 왕에게 양식을 제공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먹이리라, 하니
다윗 왕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길에서, 자신이 피난 중에 있을 때 호의를 베풀었던 바르실래를 초청하였습니다. 그에게 예루살렘에 새로운 거처를 주겠다고 제안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37,38절을 보시겠습니다. 
37 청하건대 주의 종을 돌려보내시옵소서. 내가 내 도시에서 죽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덤 옆에 묻히려 하나이다. 그러나 주의 종 김함을 보소서.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께서 보시기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소서, 하매
38 왕이 응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네게 좋게 보이는 것을 내가 그에게 행하겠고 또 네가 내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너를 위하여 행하리라, 하니라.
바르실래는 팔십 세인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가서 무엇을 하겠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김함을 왕에게 의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은 바르실래에게 베풀고자 하였던 보상과 호의를 바르실래의 아들인 김함에게 주겠노라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가 찾지는 않겠지만 예레미야 41장 17절에서는 김함의 거처가 베들레헴 곁에 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르실래의 아들 김함은 다윗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왕의 도시 베들레헴 곁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버지의 섬김과 헌신이 아들에게 보상되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르실래가 계산적으로 자신의 아들 김함을 다윗 왕에게 추천하기 위해서, 다윗 왕을 도왔던 것은 아닙니다. 바르실래는 정말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위기의 상황에서, 거의 목숨을 걸고 다윗 왕을 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바르실래의 섬김이 그의 아들인 김함에게 보상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이 오늘도 한 걸음을 걸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 부모님의 섬김과 헌신이 자녀의 복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9장에 나타난 다윗의 예루살렘 귀환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그 길은 승리 후에 돌아가는 영광스러운 회복의 길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습니다. 

다윗 왕이 조급하게 서두른 나머지 백성들이 왕과의 친족 관계를 주장하고, 서로의 권리를 외치며, 다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윗 왕을 모독하였던 시므이가 용서를 빌었고, 다윗 왕은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옆에서는 아비새가 다윗 왕을 위하여 나서서 정의의 심판을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맞이하러 나왔지만, 오해가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귀환하는 길에서 바르실래를 초청하였으나, 바르실래가 자신의 아들을 의탁하면서, 그 아들에게 복이 이어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그리고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진행되는 가운데, 모두가 각자의 인생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다윗과 같은 조급함도 있고, 육신의 방법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시기와 질투도 있고, 권리에 대한 다툼도 있습니다. 아비새와 같은 정당성도 있고, 나의 옳고 그름도 있습니다. 므비보셋과 같은 오해와 모함도 있습니다. 또 바르실래와 같은 헌신과 섬김도 있고, 김함에게 임하였던 것 같은 은혜와 보상도 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크고 작은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승리의 길에서든, 영광스러운 회복의 길에서든 많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이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걸음을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때로 넘어지고 실수한다 할지라도, 때로 다툼이 일어나고, 오해가 생겨나고, 나의 마음대로 일들이 진행되지 않아 좌절되고 낙담이 된다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뛰어난 믿음의 영웅들처럼 단 번에 성큼성큼 달려 나가지 못한다할지라도, 오늘의 한 걸음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 나가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014.12.17.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4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삼하 17: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7장입니다사무엘기하 17장 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이르되아렉 사람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낫다하니 이는 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더라.

저는 오늘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은 다르다.

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인공자는 논어 위정편을 기록하면서자신이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뜻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여기서 뜻을 세웠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나 진로에 대한 확고한 결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이렇게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공자처럼, 30세 정도가 되어서 뜻이 정해질는지 모르지만사실 사람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자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제 겨우 태어난 지 1년 4개월밖에 안된저의 둘째아들인 호윤이도 벌써 자기의 분명한 뜻을 가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자기가 원하는 것이 있고좋다 싫다자기의 분명한 뜻과 의사를 표현하고고집도 피우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호윤이의 뜻대로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호윤이는 할아버지할머니또는 엄마아빠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가자고 잡아끌면서 떼를 쓸 때가 많지만요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안 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전기콘센트를 만지려고 할 때에도 안 된다는 말을 듣고장난감을 입에 넣을 때도 안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물놀이를 하면서 목욕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데, 30분 정도가 지나면아무리 울어도 밖에 나와서 물기를 닦고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밤에는 잠을 자기 싫어서 버티지만자야만 합니다이처럼 아직 어린 아기에 불과하지만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호윤이 같은 어린 아이들만이 아니라모든 사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우리는 대단한 것을 바라지는 않지만단지 조금 더 건강하기를 원하고조금 더 여유롭고 풍부한 삶을 살기 원하고조금 더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모든 것이 순탄하기를 바라고우리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방향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랍니다학생들은 공부가 잘되기를 바라고조금 더 높은 성적이 나오기를 바랍니다키가 더 크기를 바라고외모가 더 아름답고 멋있어 지기를 바랍니다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우리의 뜻대로 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사무엘기하 17장부터 19장의 이야기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이 가운데 자신의 뜻을 이루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오직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히도벨은 스스로 가서 다윗 왕을 칠 뜻을 세웠지만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압살롬은 반역에 성공하여 스스로 왕이 될 뜻을 세웠지만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다윗 왕은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을 결코 죽이지 않고 살려내야 한다는 뜻을 가졌지만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요압 장군은 다윗 왕에게 승리를 안겨 왕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기를 원했고압살롬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더욱 안전하게 보장받으려 하였지만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너무나 안타깝게도 자기 뜻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함께 잠시이사야서 55장 8,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과 같지 아니하며 내 길들은 너희 길들과 같지 아니하니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들은 너희 길들보다 높으며 내 생각들은 너희 생각들보다 높으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온 우주에서 가장 귀한 피를 흘려주시고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믿습니다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자신보다우리에 대하여 더 잘 아신다고 믿습니다우리를 사랑하시며우리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선하시며우리에게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습니다그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뜻이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입니다호윤이의 뜻이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뜻과 다른 것처럼오늘 우리들의 생각과 길과 뜻이 하나님과 너무나 다릅니다하늘과 땅 치아로 다릅니다하나님께서 가장 필요해서 주신 것인데우리는 가장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여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없어야 해서 가져가셨는데,우리는 꼭 필요한 것을 가져가셨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나를 가장 사랑하시며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면서설교의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좀처럼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이 척박한 인생의 길에서우리는 과연 무엇을 따라야 할지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그리고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는 길만이 행복하고가치 있으며영광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되새겨보기를 원합니다.

 

 

** 아히도벨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아히도벨에 대하여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아히도벨은 밧세바의 할아버지로서자신의 사랑하는 손녀에게 비극적인 일을 일으켰던 다윗 왕에게 복수하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그는 자기 손으로 직접 다윗 왕을 처단하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아히도벨이 또 압살롬에게 이르되이제 내가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이 밤에 내가 일어나 다윗을 추격하며

그가 피곤하고 손이 약할 때에 그를 습격하여 그를 무섭게 하리니 그리하면 그와 함께 있는 온 백성이 도망하리이다내가 다윗 왕만 치고

온 백성을 왕에게 다시 데려오리니 왕이 찾는 그 사람을 붙잡으면 모두가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니이다그리하면 온 백성이 평안하리이다하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그 말을 매우 기쁘게 여기더라.

여기서 아히도벨은 뛰어난 지략가답게압살롬의 반역을 가장 빠르고 쉽게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였습니다오늘 다윗 왕이 예루살렘 성에서 나갔으니아직 어수선하고 경황이 없을 때에그들이 전투 준비를 갖추기 전에,전열을 가다듬고 어디론가 숨어 들어가기 전에빠르게 가서 다윗 왕만을 치고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그 말을 매우 기쁘게 여겼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6-8절을 보시겠습니다.

후새가 압살롬에게 오매 압살롬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아히도벨이 이런 식으로 말하였는데 우리가 그의 말대로 행하랴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는 말하라하매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아히도벨이 베푼 조언이 이때에는 좋지 아니하니이다하고

또 이르되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사람들은 용사들이니이다그들은 들에 있는 곰이 자기 새끼들을 빼앗긴 것 같이 마음속으로 화가 나 있고 왕의 아버지는 전사인즉 백성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

후새는 아히도벨의 조언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다윗은 베테랑 전사이며 도망의 전문가인즉결코 백성들과 함께 머무르지 아니하고따로 떨어져있을 것이므로아무리 특공대가 빠르게 가더라도다윗 왕을 찾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또한 아히도벨이 제시한 만 명의 특공대로는 뛰어난 용사들인 다윗의 신하들을 이길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11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조언하노니 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온 이스라엘을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왕에게로 총체적으로 모으고 왕께서 친히 싸우러 가소서.

후새는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전국적으로 온 이스라엘을 모아 총력전을 벌여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바닷가의 많은 모래 같은 군사를 모아서 12절에 사용된 표현처럼마치 이슬이 땅에 내리는 것같이 습격하고 내려 앉아 다윗의 모든 군사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조언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이르되아렉 사람 후새의 조언이 아히도벨의 조언보다 낫다하니 이는 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더라.

두 사람 아히도벨과 후새의 조언이 있었는데성경은 아히도벨의 조언이좋은 조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고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의 좋은 조언을 꺾기로 작정하셨습니다그러므로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후새의 조언이 더 좋다고 판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아히도벨의 조언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여쭙는 것과 같이 뛰어난 지혜를 자랑하였지만여기서는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외면을 당하고꺾이고 말았습니다얼마나 지혜롭고 좋은 계획인가에 상관없이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반드시 꺾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2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아히도벨이 그들이 자기의 조언을 따르지 아니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얹고 일어나 자기 도시로 돌아가 자기 집에 이르러 집안을 정리한 뒤 스스로 목매어 죽고 자기 아버지의 돌무덤에 묻히니라.

여기서 우리는 아히도벨의 비참한 최후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자신의 조언이 거절된 것을 보고전쟁에서 질 것을 확신하였으며자신의 뜻이 이루어질 수가 없음을 보았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마치 예수님을 배반하였던 가룟 유다가 그러했던 것처럼다윗의 배반하였던 아히도벨도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어리석고 비참한 길을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압살롬

이제 우리 함께 압살롬의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압살롬은 후새의 조언대로 온 이스라엘을 모았고기세등등하게 요르단을 건너 다윗 왕을 추격하며 전쟁 길에 올랐습니다우리 함께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 마하나임에 이르렀고 압살롬은 자기와 함께한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요르단을 건너니라.

이제 또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처럼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숲에서 싸우더라.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이 다윗의 신하들 앞에서 죽임을 당하매 그 날 그곳에서 큰 살육이 있어 이만 명이 죽었더라.

거기서 온 지역의 지면 위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날 숲에서 멸망당한 자가 칼로 멸망당한 자보다 더 많았더라.

전쟁의 결과는 아히도벨이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압살롬의 신하들은 다윗의 신하들을 당해내지 못하였습니다또한 우리는 8절에서 매우 흥미로운 말씀을 볼 수가 있는데그것은 바로 숲에서 멸망당한 자가 칼로 멸망당한 자보다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숲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다윗의 신하들이 칼로 쓰러뜨린 자보다,숲에서 쓰러진 자가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야생짐승들이 공격을 하였는지늪지대에 빠지게 되었는지산사태가 일어나 바위들이 무너져 내렸는지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지만초자연적인 어떠한 현상에 의해서 많은 압살롬의 군사들이 숲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9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하들과 마주치니라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밑으로 지나갈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들리고 그 밑에 있던 노새는 가버렸으므로

압살롬 또한 숲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마치 상수리나무가 압살롬의 머리를 잡아챈 것처럼그의 머리가 나무에 걸려 매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우리 함께 14-15절도 보시겠습니다.

14 그때에 요압이 이르되내가 이처럼 너와 함께 늑장을 부릴 수 없다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압살롬이 아직 상수리나무 한가운데서 살아 있을 때에 그것들로 그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병기를 나르던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서 그를 죽이니라.

압살롬의 뜻은 반역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나서 멋진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그는 그것을 위해 수년 간모든 것을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준비해 왔습니다객관적인 전력으로 보자면압살롬이 월등히 앞섰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고 이루어졌습니다압살롬은 결국 아히도벨처럼 자기 뜻을 이루지 못한 채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준비와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다윗

이제 다윗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시겠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1-5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다윗이 자기와 함께한 백성의 수를 세고 천인 대장들과 백인 대장들을 그들 위에 세우며

백성의 삼분의 일은 요압의 손 밑에삼분의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손 밑에삼분의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손 밑에 주어 내보내고 왕이 백성에게 이르되나도 반드시 직접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하였으나

백성이 응답하되왕은 나가지 마소서만일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그들이 우리를 상관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를 상관하지 아니하리이다그러나 이제 왕은 우리 만 명과 다름없사오니 그러므로 이제 왕께서 도시에서 나와 우리를 구조하시는 것이 더 나으니이다하매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너희가 가장 선하게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하고 문 옆쪽에 서니 온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나갔더라.

왕이 요압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나를 위해 청년 곧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하매 왕이 압살롬에 관하여 모든 대장에게 명을 내릴 때에 온 백성이 들으니라.

다윗 왕은 군사들을 세 무리로 나누어 전쟁의 전문가들인 요압과 아비새에게그리고 새롭게 장군이 된 가드 사람 잇대에게 배치하여 주었습니다그리고 다윗은 5절의 말씀에서 나를 위해 청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하나님께서는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고 작정하신 가운데다윗은 압살롬을 살려두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고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살롬은 요압 장군에 의해서 무참히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다윗의 뜻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는 것이었지만하나님의 뜻은 그를 심판하시는 것이었습니다그의 교만과 반역과 속임수와 살인과 왕의 첩들에 대한 음행과 오랜 시간 동안 주어진 돌이킴의 기회를 멸시한 죄에 대한 맹렬한 심판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크게 격동하여 문 너머에 있던 방으로 올라가서 우니라그가 올라갈 때에 이같이 말하기를오 내 아들 압살롬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랴오 압살롬내 아들아내 아들아하였더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좋은 아버지에게그 아들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가를 볼 수가 있으며최악의 상태에 있는 아들을그 아버지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아들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며 애통하는 아버지 다윗의 모습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말 압살롬을 사랑하였더라면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심판하시기 전에아버지로서 마땅히 징계하고 가르쳤어야 할 것입니다이제 이미 때는 늦어버렸습니다하나님의 공의는 이루어졌고심판은 집행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어떤 이가 요압에게 고하되보소서왕이 압살롬으로 인하여 슬피 울며 애곡하시나이다하니

왕이 자기 아들로 인하여 근심한다 함을 그 날에 백성이 들었으므로 그 날의 승리가 온 백성에게 애곡하는 일이 되었더라.

그 날에 백성이 싸움에서 도망칠 때에 부끄러워하며 몰래 떠나는 것 같이 슬그머니 도시로 들어가니라.

그러나 왕이 얼굴을 덮고 큰 소리로 외치되오 내 아들 압살롬오 압살롬내 아들아내 아들아하매

슬픈 일에 대하여 슬퍼하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감정의 지배를 받는 상태는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기쁨이나슬픔이나우리의 모든 감정에 십자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우리가 모든 감정을 제거하여 마치 로봇처럼 될 수는 없지만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오직 하나님의 뜻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우리는 감정으로 살지 말고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아버지로서 당연히 애통한 마음이 들었겠지만하나님의 사람으로서그리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서마땅히 자신을 위하여 치열한 전투에서 싸웠고또 승리하여 돌아오는 군사들을 기쁨과 영광으로 맞이하고 환영했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승리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어야 했습니다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있는 그대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면서크게 외치면서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불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5-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요압이 집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러 아뢰되왕께서 이 날 왕의 생명과 왕의 아들딸들의 생명과 왕의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한 왕의 모든 신하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사오니

왕께서 왕의 원수들은 사랑하시나 왕의 친구들은 미워하시며 통치자들과 신하들을 존중히 여기지 아니하시는 것을 이 날 밝히 드러내셨나이다이 날 내가 깨달은즉 만일 압살롬이 살고 이 날 우리가 다 죽었더라면 왕이 기뻐하셨으리이다.

그러므로 이제 곧 일어나 나가서 왕의 신하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하옵소서내가 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께서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이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하리이다그리하면 그것이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한 모든 화보다 왕에게 더 나쁘리이다하니

이에 왕이 일어나서 성문에 앉으매 그들이 온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되보라왕이 성문에 앉아 계신다하니 온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이스라엘은 이미 각각 자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여기에서 요압은 압살롬을 죽인 자로서다윗의 슬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가 있는 자이지만오히려 다윗 왕 앞에서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요압은 자기 자신의 앞길을 위하여 압살롬을 죽였을 수도 있고아니면 그를 살려두었을 때아마도 또 다시 힘을 모아 다윗 왕에게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기에죽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압살롬은 왕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자기 목숨을 걸고 치열한 전쟁터에서 싸웠고승리를 가져온 왕의 장군이자 신하였습니다비록 그가 다윗 왕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고 배려하지는 않았지만자기 판단대로 압살롬을 가차 없이 제거하였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다윗 왕을 위하는 위치에서다윗 왕의 편에서 싸운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아니하고자기 뜻만을 내세웠을 때이중삼중으로 어려움이 임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요압은 다윗에게 신하로서의 직언을 넘어서서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로지금 다윗 왕이 슬퍼할 때가 아니라왕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며승리하여 돌아온 군사들을 환영하고 격려해야 할 때라고 호통을 쳤습니다결국 다윗 왕은 요압의 말대로슬픔을 뒤로 하고 백성들 앞에 나아가 그들을 환영하고 격려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고 선하다 할지라도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요압

이제 마지막으로 요압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시겠습니다요압은 다윗의 젊은 시절부터 함께하면서 다윗을 위해 싸워온 충성된 장군이었습니다다윗의 누이의 아들로서다윗의 조카로서언제나 다윗을 위하여 싸웠습니다.암몬 자손과 싸울 때에는 위기의 상황에서 믿음을 발휘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고암몬의 도시 랍바를 점령하고자 할 때에는거의 모든 것을 무너뜨려놓고스스로 승리의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고자속히 다윗 왕을 소환하여다윗이 승리의 선봉이 되도록 이끌었습니다헷 족속 우리야를 죽이는 일에서도 한마디라도 토를 달거나이유를 묻거나따지지 않았고그대로 복종하였습니다.

 

비록 그가 자신의 동생 아사헬의 복수를 하기 위해다윗에게 투항한 이스라엘의 좋은 장군이었던 아브넬을 암살하였을지라도또 다윗 왕의 부탁을 거절하고 압살롬을 쓰러뜨렸다 할지라도그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장군으로서,언제나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그는 다만 다윗 왕에게 인정을 받는 좋은 장군이요신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9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말하기를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항상 내 앞에서 군대 대장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바라노라하라하니라.

여기서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요압을 대신한 다른 군대 대장을 세우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의 이름은 바로 아마사였습니다아마사는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여압살롬의 군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던 자입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요압 대신 아마사를 군대 대장으로 삼았는데 이 아마사는 이드라라는 이름의 이스라엘 사람의 아들이더라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가일에게로 들어갔는데 아비가일은 요압의 어머니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압살롬이 임명하였던 군대 대장 아마사는요압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누이의 아들이었습니다요압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었고아마사는 다윗의 누이이며스루야의 동생인 아비가일의 아들이었습니다전쟁 경험으로 보나전투 수행 능력으로 보나그 동안 쌓아온 공로를 보나요압이 아마사보다 월등히 나았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윗은 반역자의 무리에 가담했던 아마사를 요압 대신 장군으로 세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그 이유는 그가 아브넬을 죽였고또 압살롬을 죽임으로써결정적인 순간에 다윗 왕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찌되었든요압의 입장에서는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다윗 왕을 위해 그 동안 열심히 싸운 결과 외면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단지 왕의 가장 좋은 신하로 인정을 받고자 하였던그의 뜻은 꺾여지고 말았습니다사람의 능력이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 할지라도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세워지며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 마무리

오늘 우리는 총 네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아히도벨과 압살롬과 다윗과 요압이었습니다그들은 각각 자기의 뜻을 가지고 있었지만한 사람도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그들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더라면그들의 뜻을 이룰 수 있었겠지만하나님과 다른 뜻을 가졌기에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히도벨은 사람의 지혜와 계획이 아무리 좋아도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압살롬은 사람의 외모가 아무리 뛰어나고준비가 철저하여도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고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을 가질지라도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요압은 사람의 공로와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도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결국 꺾이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잠언 19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의 뜻그것만이 서리라.

아멘다른 모든 것은 무너지고오직 주의 뜻그것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아무것도 계획할 필요가 없다거나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오히려 우리가 주의 뜻에 맞게 계획하고주의 뜻에 맞게 순종하며주님과 함께 동행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있습니다우리가 아무리 좋은 계획과 철저한 준비와 누구나 공감할 만한 마음과 그 동안 쌓아온 좋은 과거의 업적을 가졌을지라도결국에는 하나님의 뜻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순종하는 길로 걷기를 원합니다주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고주님의 뜻이 나의 뜻이 되고주님의 길이 나의 길이 되어서우리가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로서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는 자로서그렇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복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2.14.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3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낸다(삼하 16:10-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6장입니다사무엘기하 16장 10-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0 왕이 이르되너희 스루야의 아들들아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께서 그에게다윗을 저주하라하셨으니 그가 저주하게 하라그런즉 누가 이르기를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하겠느냐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보라내 배 속에서 난 내 아들이 내 생명을 찾거늘 이제 이베냐민 족속은 얼마나 더 그리하랴께서 그에게 명하셨으니 그를 내버려두고 그가 저주하게 하라.

12 혹시 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하니라.

저는 오늘 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낸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모든 사람이 고난을 받는다

오늘 우리는 극심한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다윗은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을 당하고생명을 건지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고 있는 신세입니다그 와중에 사울의 집에 속하였던 시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다윗을 따라오면서 흙먼지를 뿌리고저주를 퍼붓는 수모까지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다선한 사람악한 사람의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고난을 주십니다그 고난이 우리의 죄 때문에 온 것이든죄와 상관없이 우리의 믿음의 단련이나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온 것이든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주십니다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고난을 주시는 목적은그것이 유익하기 때문입니다우리 함께 시편 119편 6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길을 잃었사오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나이다.

 

시편의 기록자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길을 잃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제 고난을 통과한 후에는 길을 찾았으며주의 말씀을 지키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이처럼 고난은 하나님의 사람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며세상의 무겁고 복잡한 것들을 가볍게 만들어 주며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자신의 자녀들을 다루시는 방향과 목표는 물질적 번영이나외적인 행복이 아니라고난을 통한 성숙이며영원한 왕국을 위한 준비입니다.

때로 우리는 파라오 왕과 같이 극심한 고난 중에 더욱 힘을 내어 주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책망의 목적은 바로잡는 것인데바로잡히기를 거절하고 더욱 완고하게 고집을 피우는 것입니다그러므로 같은 고난을 당하더라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들었는지에 따라 고난의 결과는 달라질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고난으로 인해서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될 것이고또 어떤 사람은 그 고난으로 인해서 주님을 더욱 대적하게 될 것입니다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련의 과정입니다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면우리가 붙잡고 있는 주님 외의 것들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며주님만 붙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또 우리가 고집하던 생각들을 내려놓고주님의 말씀에만 온전히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또 우리가 고난을 통하여 성숙할 때믿음이 자라나며장차 주님의 왕국에서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면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우리 자신에게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내며무엇을 버려야할지무엇을 갖춰야할지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자녀 교육의 목표를 자녀의 행복으로 잡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어찌 보면 그다지 성경적인 교육 방향이 아닙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향과 같이자녀의 행복이 아니라자녀의 성숙을 교육 목표로 잡아야 합니다자녀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질 때고난이 오고자녀가 행복하지 못한 모습을 볼 때마냥 함께 속상해 하거나분노할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다루시는 손을 발견하고자녀가 성숙할 수 있도록 조언하고책망하고격려하고이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보다오히려 자신의 자녀에게 더 많은 고난을 주십니다야곱의 열 한 아들보다유독 요셉에게 더 극심한 고난을 주셨고욥의 친구들이 아니라 욥에게 더 견디기 힘든 고난을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사랑하고 아끼는 자녀일수록더욱 성숙하게 단련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시고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믿음의 불같은 시련은 어떤 이상한 일이 아니라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에게나 오는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이 있다면감사하기 원합니다비록 고난 자체는 기쁘지 아니하지만그래도 감사하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셔서나를 성숙케 하시며나에게 반드시 가르쳐주실 것이 있으시기에가장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고난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음을 믿으면서감사하기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고난 중에 함께했던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다윗에게 있었던 고난이 다윗 자신뿐만 아니라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진실을 밝히 드러낸 것을 살펴볼 것입니다또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있는 여러 가지 고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주님과 동행해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 다윗에게 임한 고난의 목적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3,14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사자가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을 따르나이다하므로

14 다윗이 자기와 함께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신하에게 이르되일어나 우리가 도망하자그렇지 아니하면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빨리 떠나가자그가 갑자기 우리를 따라잡고 우리에게 해를 가져오며 칼날로 도시를 칠까 염려하노라하니

여기서 우리는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는 다윗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 상황은 다윗이 젊은 시절에 사울 왕을 피해 도망을 다녔던 것보다훨씬 더 어려운 고난이었습니다그때는 신체적으로도 훨씬 더 젊고 건강했으며위치적으로도 왕에게 쫓기는 신하의 모습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는 훨씬 더 나이가 들었으며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져서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고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에게 쫓기는 아버지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고난이 임한 이유는 바로 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그가 간음하며 살인했기 때문이고또한 자신의 자녀들 사이에서 일어난 간음과 살인의 문제를 정의롭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이제 이러한 고난은 다윗의 마음 속 진실이 어떠한가를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뿐만 아니라 다윗의 주변에 있던 많은 신하들과 동료들이 다윗을 향해 어떠한 마음을 가졌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고난은 마음 속 진실을 드러냅니다.

 

 

** 잇대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8-23절을 보시겠습니다.

18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옆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족속과 모든 블렛 족속과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육백 명의가드 사람들이 왕 앞으로 지나가니라.

19 그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너는 타국인이요추방당한 자니 네 처소로 돌아가서 왕과 함께 머무르라.

20 너는 단지 어제 왔거늘 어찌 내가 이 날 너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올라가고 내려가게 하리요내가 정처 없이 가나니 그러므로 돌아가고 또 네 형제들도 데려가라긍휼과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하매

21 잇대가 왕에게 응답하여 이르되께서 살아 계심과 또 내 주 왕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참으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죽으나 사나 왕의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하매

22 다윗 잇대에게 이르되가서 건너가라하니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사람들과 그와 함께한 어린것들이 다 건너가니라.

23 온 땅이 큰 소리로 울며 온 백성이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고 온 백성이 건너서 광야 길로 향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잇대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육백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다윗 왕의 피난길에 합류하였습니다그는 가드 사람으로 타국인이었으며이방인이었습니다또한 그는 19절에서추방자라고 불리고 있는데이것은 그가 다윗을 따랐다는 이유로 가드 땅에서바로 자신의 고향 땅에서 추방당하였음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또한 20절에서다윗이 단지 어제라고 표현한 것처럼잇대는 다윗과 아주 오랜 친분을 가진 신하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정처 없이 가므로고생길이 훤하고또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으니형제들을 데리고 새로운 왕인 압살롬에게 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긍휼과 진리로 잇대를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잇대는 주께서 살아계심과 다윗의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면서죽으나사나 언제 어디나 왕과 함께 있겠다고 말하면서단호한 충성을 보여주었습니다그러자 다윗은 잇대를 허락하고 그와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 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 중에 나타난두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먼저 다윗의 마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지금 다윗으로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자신의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압살롬의 추격을 받게 되거나전투가 벌어질 경우자신을 경호해 줄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있지 않습니다오히려 자신을 따라 나서는 잇대를 위하고 있습니다그의 처지가 어떠한지를 먼저 생각하고그가 어떻게 하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한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잇대가 자신을 떠나 압살롬과 함께한다 할지라도긍휼과 진리로 축복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다윗의 마음은 처음에 주님만 붙들었던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사울 왕에게 쫓기던 바로 그 시절,주님만 온전히 바라던 그 때의 그 믿음으로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고난은 다윗의 마음 속 진실을 온전히 드러내었습니다고난은 다윗 안에서 그 동안 잠들어 있던 믿음을 다시 불러 일으켰습니다고난은 다윗 안에서 꺼져가던 믿음의 불꽃을 되살려 놓았습니다.

 

우리는 또한 여기에서 잇대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그는 이방인이었고다윗 왕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그는 어차피 자기 민족을 한 번 버린 경험이 있으며고향 땅인 가드에서도 추방당한 자였고이제 예루살렘 도성이 그의 새로운 고향이었습니다그가 계산적으로 생각했다면다윗을 한 번 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오히려 압살롬에게 가담하고자신의 새로운 고향인 예루살렘 도성에 머무는 편이 훨씬 더 안정된 미래를 보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심지어 다윗 왕이 축복하면서까지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못이기는 척 하면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죽으나사나다윗을 따르겠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다윗은 피할 길도 없이 고난을 당한다고 하나잇대는 고난을 피할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기꺼이 다윗과 함께하는 고난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23절 말씀에서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 장면은 마치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을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우리 함께 요한복음 18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셔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있던 동산으로 들어가시니라.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시던 바로 그 날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마치 다윗 왕이 자신의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배반을 당하여 기드론 시내를 건넌 것처럼예수님께서 그렇게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넜던 다윗처럼또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셨던 예수님처럼오늘날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거절당하시고멸시와 천대를 당하십니다오늘 우리는 어쩌면 잇대처럼 선택적으로 고난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오늘 우리가 다윗을 따랐던 잇대와 같이 죽으나사나 주님과 동행하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를 위해 살고 죽어도 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가 의 것이로다.

바로 이 로마서 14장 7절 말씀처럼그리고 잇대의 고백처럼죽으나사나 주님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사독과 아비아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24-29절을 보시겠습니다.

24 보라또한 사독과 그와 함께하며 하나님의 언약 궤를 멘 모든 레위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았더라아비아달이 올라오고 마침내 온 백성이 도시에서 나와 지나가더라.

25 왕이 사독에게 이르되하나님의 궤를 도시로 도로 가지고 가라만일 내가 의 눈에 호의를 입으면 그분께서 다시 나를 데려오사 내게 그 궤와 자신의 처소를 보이시리라.

26 그러나 그분께서 이같이 이르시되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하시면보라내가 여기 있으니 그분께서 보시기에 선한 대로 내게 행하실지로다.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네가 선견자가 아니냐너희와 함께한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도시로 돌아가라.

28 보라너희로부터 내게 알리는 말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의 평야에서 머무르리라하니

29 그러므로 사독과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거기에 머무니라.

가드 사람 잇대에 이어서두 번째로 다윗을 따라나선 사람들은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멘 레위 사람들과 함께 다윗 왕을 따라나섰습니다.

 

어쩌면 다윗은 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궤를 차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상징이었기 때문에다윗은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그것을 붙들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다윗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자신의 아들이 성전을 짓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 또한 기억하였을 것입니다다윗은주님께서 나에게 호의를 베푸신다면내가 돌아와서 하나님의 궤를 다시 볼 수가 있을 것이고주님께서 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주님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날 처분하실 터이니하나님의 궤를 가지고가지 않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자기에 대한 자기 뜻이 하나도 없었고주의 뜻만 있었습니다.

 

사독은 자신의 아들 아히마아스를아비아달은 자신의 아들인 요나단을 데리고하나님의 궤를 도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의 광야에 머무는 다윗에게 소식을 전달할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30,31절을 보시겠습니다.

30 다윗이 올리벳 산의 오르막길로 올라갈 때에 올라가면서 울고 머리를 덮고 맨발로 가며 그와 함께한 온 백성도 각각 자기 머리를 덮고 올라가되 울며 올라가니라.

31 어떤 이가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압살롬과 함께한 음모자들 가운데 아히도벨이 있나이다하니 다윗이 이르되,오 원하건대 아히도벨의 조언이 어리석음이 되게 하옵소서하니라.

이제 다윗은 주님 앞에 철저히 통회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맨발로 올리벳 산을 올랐습니다주님께서 주시는 이 고난의 기간을 부디 잘 통과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올라갔을 것입니다그리고 압살롬과 함께한 아히도벨에 대하여 들었을 때그 또한 주님께 맡겨드렸습니다다윗은 어떠한 상황들에 대해서 일일이 반응하거나 연연하지 않았습니다다만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였고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렸습니다.

 

 

** 후새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32-37절을 보시겠습니다.

32 다윗이 산의 꼭대기 곧 그가 하나님께 경배하던 곳에 이를 때에보라아렉 사람 후새가 자기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오므로

3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네가 만일 나와 함께 나아가면 내게 짐이 되리라.

34 그러나 네가 만일 도시로 돌아가서 압살롬에게 이르기를오 왕이여내가 왕의 종이 되리이다지금까지 내가 왕의 아버지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이제는 또한 왕의 종이 되리이다하면 네가 나를 위하여 아히도벨의 조언을 꺾으리라.

35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이 너와 함께 거기 있지 아니하냐그러므로 네가 왕의 집에서 무슨 일을 듣든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그것을 고할지니라.

36 보라그들의 두 아들 곧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그들과 함께 거기 있나니 너희는 너희가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들 편으로 내게 보낼지니라하매

37 이에 다윗의 친구 후새가 도시로 들어가고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더라.

여기서 우리는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의 친구인 아렉 사람 후새를 볼 수가 있습니다후새는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윗을 맞으러 나왔습니다그는 어느 편에도 설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지만기꺼이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그리고 그는 자신의 뜻과 방식대로 다윗과 함께할 수도 있었으나다윗이 요청하는 그대로 행하여다윗을 위한 스파이 첩자가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후새가 어떻게 다윗을 섬겼는가를 생각해보기 원합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고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자기 방법대로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자기가 보기에 옳은 것을 말하고자기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합니다정말 형제자매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지 않고단지 자기 생각에 올바른 것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아렉 사람 후새는 어떠하였습니까그는 다윗을 위하여 왔고다윗을 위하여 갔으며다윗이 지정한 바로 그 방식대로 다윗을 도왔습니다. “아니나는 다윗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나도 저 가드 사람 잇대처럼죽으나,사나언제나 당신 옆에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의 신하이면서친구였고자기 방식이 아닌왕의 방식대로 왕을 섬겼습니다우리가 오늘 주님의 종이며,또한 주님의 친구라면우리는 우리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에게는 먼저 주님의 뜻이 무엇이며,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오늘날 수많은 종류의 하나님의 일이 있는데그 중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나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먼저 묻고 아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하나님의 방법대로 섬기게 될 때그것이 진정으로 형제자매들을 위하는 섬김이 될 것이며진정으로 교회를 세우고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섬김이 될 것입니다우리가 주님이 받으시는 그러한 섬김을 하기 원합니다.

 

 

** 시므이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6장 7,8절을 보시겠습니다.

시므이가 저주하며 이같이 말하니라너 피를 흘리는 자여너 벨리알의 사람이여가거라가거라.

께서 사울의 집의 모든 피를 네게로 되돌리셨도다그를 대신하여 네가 통치하였으나 께서 왕국을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도다보라너는 피를 흘리는 자이므로 네 재난 속에 네가 빠졌느니라하니라.

다윗을 따라나선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을 벨리알의 사람이라고 부르면서사탄의 아들이라고 부르면서 저주하고 있는 시므이를 볼 수 있습니다그는 다윗이 왕으로 통치하고 있던 기간 동안에는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다윗 왕을 감히 대적할 엄두도 못 내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이제 그는 담대하게 다윗 왕을 저주하고 있습니다다윗은 사울의 집을 대적한 적이 없었지만시므이는 잘못된 사실을 가지고 다윗을 비난하였고,일방적으로 저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장군이었던 아비새가 분노에 차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다윗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우리 함께 12절을 보시겠습니다.

혹시 께서 내 고통을 보시리니 이 날 그의 저주로 인해 께서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시리라하니라.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것은 다윗의 눈이 오직 주님께 고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다윗의 관심은 결코 시끄럽게 떠들며 저주를 퍼붓고 있는 시므이에게로 돌려지지 않았습니다그는 다만 주님께서 내 고통을 보시고주님께서 그 모든 근거 없는 비난의 말들을 들으시고주님께서 오히려 나의 억울함을 보시고오히려 긍휼로선으로 갚아주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고난당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모범답안처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다윗은 시므이에게 사실이 무엇인지 해명하거나잘잘못을 따지거나그 무엇으로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다만 모든 것을정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습니다그리고 주님께서는 나중에 다윗의 기대대로 그에게 선을 베푸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어떤 여인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15-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이에 후새가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들에게 이르되아히도벨이 압살롬과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이러이러하게 조언하였고 나도 이러이러하게 조언하였으니

16 그러므로 이제 빨리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기를이 밤에 광야의 평원에서 머무르지 마시고 빨리 건너가소서하라왕과 그분과 함께 있는 온 백성이 삼켜질까 염려하노라하니라.

17 이제 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엔로겔 옆에 머물렀으므로 어떤 하녀가 가서 그들에게 고하고 그들은 가서 다윗 왕에게 고하니라.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아이가 그들을 보고 압살롬에게 고하였으나 그 두 사람이 빨리 도망하여 바후림에 있던 어떤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 그의 뜰에 있던 우물 속으로 내려가니

19 여인이 뚜껑을 가져다가 우물 아귀를 덮고 찧은 곡식을 그 위에 펴 놓으매 그 일이 알려지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고난 중에 있는 다윗을 도왔던 어떤 하녀와 바후림에 있던 어떤 여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들은 이름도 없이명성도 없이빛도 없이 다윗을 도왔던 숨은 손길들이었습니다어떤 하녀가 없었더라면다윗은 큰 위기에 처했을 것이며어떤 여인이 없었더라면요나단과 아히마아스는 고문을 당하고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우리는 오늘 그들을 알 수 없지만장차 하늘에서 그들이 누구였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이처럼 오늘도 이름 없이빛도 없이 주님을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그러나 주님 앞에 신실했던주님의 일꾼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주님께서 영광 중에 오실 그날 모든 것을 드러나게 갚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 외부 사람들

이제 우리 함께 오늘의 마지막 주인공들을 사무엘기하 17장 27-29절을 보시겠습니다.

27 다윗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자손에게 속한 랍바 출신의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드발 출신의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28 침상들과 대야들과 질그릇들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콩과

29 꿀과 버터와 양과 암소의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및 그와 함께한 백성이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백성이 광야에서 배고프고 피곤하고 목마르다하였기 때문이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세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암몬 자손에 속한 랍바 출신의 나하스의 아들 소비가 첫 번째 이고로드발 출신의 암미엘의 아들 마길이 두 번째이고로글림 출신의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세 번째입니다소비마길바르실래이 세 사람은 암몬 자손에게 속한 지역요르단 저편의 외곽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특별히 로드발 출신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므비보셋을 다윗이 예루살렘 성으로 데려가기까지 모시고 있었던 사람입니다이 세 사람은 다윗 왕의 무리에게 필요한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였습니다이러한 일은 미래를 전망하며 투자한 것이 아니라모든 것이 절망적인 가운데다윗 왕과 함께 죽고함께 살겠다는 마음에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무엇인가를 계산해서 이익이라는 결론으로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모든 것이 손해이지만심지어 압살롬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베풀어진 호의였고섬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길 때이 땅에서 결산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이 땅에서 보상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주님을 섬기는 일은 이 땅에서 수익을 거두는 투자가 아닙니다주님을 섬기는 일은 값진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어버리는 일과 같습니다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말할 수 있고차라리 다른 쪽으로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주님께 드리는 헌신과 섬김은 결코 그런 세상적인 방식으로 계산되거나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오늘 우리가 하늘에서 결산하고하늘에서 보상 받을오직 그 날을 바라보며주님을 섬기고 따르기를 원합니다.

 

 

** 결론

오늘 우리는 다윗에게 임한 고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 진실이 드러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다윗 자신이 결정적인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는지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누가 다윗의 진정한 친구였는지,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고난은 마음속 진실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 다가오는 수많은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난은 우리가 결국 무엇을 바라보는지무엇을 선택하는지를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방법입니다.

 

우리에게 왜 고난이 오는 것입니까먼저는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잘못한 것에 대하여 돌이키며 바로잡히는 징계와 배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또한 우리 자신이 더욱 성숙하여지고주님 앞에 불분명한 믿음의 태도가 더욱 분명하고 철저하게 단련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단지 고난을 끝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어떻게 통과하고어떻게 끝내느냐가 중요합니다.경제적인 문제로 고난이 임할 때우리가 돈을 더 사랑하고 돈을 더 붙드는지아니면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붙드는지우리의 마음 속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자녀의 문제로 고난이 임할 때우리가 자녀를 우상으로 섬기고 있는지아니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자녀를 온전히 드릴 것인지마음 속 진실이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참된 믿음의 실제를 원하십니다고난은 우리의 마음 속 원함을 실제 믿음으로 삶 속에서 입증하도록 단련시켜주는 하나님의 회초리이며용광로입니다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주님의 뜻을 따르고 있었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믿음의 큰 기회입니다우리가 오늘 고난 중에 있다면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반드시 배우기 원합니다다윗이 처음 믿음으로 돌아가 주님을 따랐던 것처럼우리도 오늘 새롭게 주님을 바라보고주님을 따르게 되길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2.03.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2

빛난 왕관을 받기까지(삼하 15:10)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5장입니다사무엘기하 15장 10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정탐꾼들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에게 두루 보내어 이르되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압살롬이 헤브론에서 통치한다하라하니라.

저는 오늘 빛난 왕관을 받기까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부귀영화를 원하는 마음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 왕에게 반역하고자신의 통치권을 외치는 압살롬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실 생각해보면 압살롬만 그런 것이 아니라정도의 차이는 다르더라도사람은 누구나 부귀영화를 원합니다남들이 좋은 집에 사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집에 살고 싶고남들이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나도 먹고 싶고남들이 좋은 옷을 입은 것을 보면 나도 입고 싶고남들이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을 보면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비록 그것이 십계명의 마지막 항목인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 할지라도비록 그것이 탐욕은 곧 우상숭배라는 말씀에 걸리는 것일지라도우리는 보는 대로듣는 대로원하고부러워하고동경하는 우리들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 면에서 우리는 꼭 남들을 부러워하기 때문이 아니더라도꼭 남의 것을 탐내기 때문이 아니더라도더 좋은 것더 많은 것더 높은 영광을 소유하기를 원합니다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사람은 누구나 부와 재산그리고 안락한 삶을 원합니다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칭찬받기를 원하고높아지기를 원하고영광을 얻기를 원합니다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누구나 원하고 있는 부귀영화를 왕관이라는 단어로 표현해 본다면사람은 누구나 빛나는 왕관을 원합니다여기 혹시나는 아니라고나는 더 가난해지고 싶고더 못살고 싶고,더 고생하고 싶다고 말씀하실 분이 계십니까아마 없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압살롬의 왕관을 향한 갈망은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상한 것이 아니라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어쩌면 이미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동일하게 존재하고 있는 마음인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함께 압살롬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빛난 왕관을 얻기까지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왕관을 받는 것이다.

이제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4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제 배부르고 이제 부유하며 우리 없이 왕처럼 군림하였도다너희가 군림하는 것을 내가 하나님께 바라노니 이것은 우리도 너희와 함께 군림하려 함이라.

여기서 우리는 배부르고 부유하며 왕처럼 군림하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바울은 그들에게 서신을 쓰면서그들이 지금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장차 다가올 왕국에서 군림하게 될 것을 하나님께 바란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또한 이 서신을 기록하고 있는 바울 자신 또한 주님과 함께성도들과 함께 군림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성경은 군림하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그것이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군림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언제 군림할 것인가그 시점에 대하여는 지금이 아니라장차 임할 주님의 왕국에서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로마서 8장 17,18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라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18 내가 생각하건대 이 현 시대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하나님의 상속자로서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서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은 우리가 영광을 받는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거나그것이 악하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오히려 성경은 우리가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왕관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우리가 영광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우리가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황금 길을 밟으며찬란한 새 예루살렘 도성에서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 시대에오늘날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그것은 바로 고난입니다또한 십자가의 완전한 죽음으로 넘겨지는 삶입니다내가 완전히 부인되며내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며오직 내가 아니요그리스도께서만이 사시며 드러나시는 삶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완전히 연합하며주님과 함께 고난을 당한다면장차 임할 주님의 왕국에서 영원한 영광을 주님과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진정한 영광을 원하며영원한 부귀영화를 원한다면우리는 기꺼이 값을 지불해야 합니다. “no cross, no crown”이라는 말처럼십자가 없는 왕관은 없습니다. “no pain, no gain”이라는 말처럼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습니다낮아짐 없는 높아짐이 없으며어두운 밤이 없는 찬란한 아침이 없으며죽음 없는 부활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데이 땅에서 70, 80년 동안 누리는 잠시 잠깐의 싸구려 부요함이 아니라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원한 부요함을 원합니다이 땅에서 정직하고 올바른 방법으로는 달성하기 힘들고오히려 거짓되게 남을 속이거나또는 남을 짓누르고 피해를 주면서 달성해야하는 저질적인 부요함 말고정직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고품격의 영원한 부요함을 원합니다.

저는 또 영광을 원합니다사람들 앞에서 눈치를 잘보고이 사람 저 사람의 비위를 잘 맞춰서 겨우 가질 수 있고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느 새 사라져버릴 그런 천박한 일시적인 영광이 아니라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영광을 원합니다.영원하신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과 또 성경 속에 기록되었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과 교회사 가운데 앞서간 놀라운 믿음의 성도들 앞에서 받을 수 있는그리고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놀랍고 놀라운 영광을 원합니다저는 이러한 영원한 부귀영화를 얻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

 

저는 성경을 믿습니다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신실하게 따라갈 때반드시 우리에게 보상하실 것을 믿습니다이러한 주님의 약속을 믿기에우리는 오늘 기꺼이 고난을 받을 수 있고모든 오해와 비방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저는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영광과 보상을 사모합니다영원한 영광을 위해서라면 오늘 우리가 받는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며오히려 너무 부족해서 걱정입니다저는 정말 영원한 영광을 얻기 원합니다.

또한 저는 저의 자녀들이 이러한 영광을 얻기를 원하며반드시 그 길로 저의 자녀들을 교육하고 훈련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제가 가르치는 우리교회의 모든 믿음의 학생들과 자녀들이 이러한 영광을 얻기를 원합니다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고이 땅에서의 보물과 하늘에서의 보물을 동시에 소유할 수 없기에한 가지를 포기하고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면주저하지 않고영원한 영광을 선택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오늘까지 무엇을 바라보고 살았든지,이 시간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새롭게 열어주셔서우리가 마땅히 사모해야 하며갈망해야 하는 영광이 어떠한 것인지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의 말씀을 통해서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에하나님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방법대로주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왕관을 차지하려 한 압살롬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아버지인 다윗 왕이 자신을 외면하고 멀리하는 기간 동안철저히 하나님 앞에 낮아지며자신의 죄를 돌이키며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가운데 거하면서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시고세워주시고높여주시고자연스럽게 왕좌를 이어받게 될 시간까지 기다렸어야 했습니다그러나 그는 그러한 시간을 견디지 못하였고오히려 반역을 일으키면서 자신의 힘으로 왕관을 차지하려 하였습니다.

 

 

** 압살롬의 반역의 시작

그러면 지금부터 압살롬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4장 25-27절을 보시겠습니다.

25 그러나 온 이스라엘 안에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인해 그렇게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더라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더라.

26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그가 머리털을 깎되 해마다 연말에 깎았더라.) 그가 머리를 깎을 때에 그의 머리털을 달아 보니 왕의 무게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27 압살롬에게 아들 셋과 딸 하나가 태어났는데 그 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그녀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안에서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을 받는 자였습니다성경은 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었다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요즘말로 말하면 꽃미남이었고훈남이었습니다그의 머릿결이 또 어떠했는지 모르지만헤어스타일 또한 아주 멋있었던 것 같습니다그는 일 년에 한 번씩 약 2.2kg정도 나가는 머리털을 이발하였습니다.압살롬에게는 아들 셋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딸의 이름을 자신의 누이동생의 이름과 똑같이 다말이라고 지었습니다.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딸을 볼 때마다자신의 누이동생 다말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압살롬의 딸 다말 역시 아빠를 닮아 얼굴이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압살롬은 외모에 대하여는 흠이 없을 정도로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잘생겨서 교만해지느니 차라리 못생겨서 겸손한 것이 낫습니다물론 잘생겼는데 겸손하기까지 하다면 더 좋을 것이지만흠이 없어서 거만해지느니 차라리 흠이 많아서 낮아지고 주님께 언제나 겸손히 무릎을 꿇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6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일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자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압살롬이 일찍 일어나 성문 길 옆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분쟁거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너는 어느 도시 출신이냐하여 그가 말하기를주의 종은 이스라엘 지파들 중의 하나에 속하나이다하면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보라네 일들이 선하고 바르다마는 네 말을 들을 사람을 왕께서 임명하지 아니하셨다,하고

압살롬이 이르기를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어 청원이나 사정이 있는 모든 사람이 내게로 올 때에 내가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그에게 가까이 와서 경의를 표하려 하면 그가 자기 손을 내밀어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라.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온 이스라엘에게 압살롬이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니라.

지금 압살롬의 마음에는 무엇이 들었을까요먼저 다윗 왕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심이었을 것입니다왕이 만약 자신의 여동생을 위하여 암논을 정의롭게 처벌하여주었더라면압살롬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는 2년 동안 암논을 죽이기 위해 계획을 세웠지만한 편에서는 자신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 정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린 기간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4절 뒷부분에서 압살롬은 내가 그에게 정의를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면서다윗 왕이 실행하지 않았던 정의를 자기가 실행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압살롬의 마음에는 자신이 후계자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컸을 것입니다다윗 왕이 자신을 예루살렘으로 불러놓고는 2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그리고 요압 장군을 통해 겨우 왕의 얼굴을 보았지만그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그는 자신이 후계자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제 자신의 힘으로 야망을 이룰 수 있는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단순한지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도 없이 멋진 외모를 가진 왕의 아들이 자신의 사정에 대하여 편을 들어주고또 5절 말씀처럼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려고 할 때얼른 손을 내밀어 그를 붙들면서 입을 맞추는 아주 친절하고도 따듯한 겉모양을 보면서자신의 마음을 내어주는 것입니다그는 진정으로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고오직 자신의 야망을 위하고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마음은 다윗에게서 떠나고,압살롬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라는 고린도후서 11장 14절 말씀처럼우리는 언제든지 속임을 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압살롬이 자신을 정의로운 재판관으로 나타낸 것처럼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나타내는 것입니다압살롬은 정의로운 말과 따듯한 사랑과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였습니다.

그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살인자이며백성들을 사랑하기보다 자신의 야망을 사랑하는 자이며결코 겸손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한 반역자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의 흠 잡을 곳 없는 용모와 빼어난 말재주와 뛰어난 연기력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정의로운 말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주님 앞에 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가 때로 따듯한 사랑의 권면을 한다고 해서또 때로는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자들을 잡아 일으키며 입을 맞춘 압살롬처럼 겸손한 태도를 가진다고 해서주님과 바른 관계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니라 속마음입니다우리는 가짜가 되지 말고진짜가 되어야 합니다.

 

압살롬이 진짜 정의로운 사람이었다면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가지고 애통하였을 것입니다압살롬이 진짜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면암논을 용서하고 다윗도 용서하였을 것입니다압살롬이 진짜 겸손한 사람이었다면왕이 외면하는 기간 동안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반성의 시간을 묵묵히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정체는 결국 속이는 자였으며교만한 반역자였고자신의 유익과 영광과 야망을 추구하는 자에 불과하였습니다이러한 모습은 어떤 이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며우리 자신이 육신 가운데 있을 때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모습입니다.

 

 

** 사십 년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7-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십 년 뒤에 압살롬이 왕께 이르되내가 께 서원한 것이 있사오니 내가 가서 헤브론에서 내 서원을 갚게 하소서.

왕의 종이 시리아의 그술에 머물렀을 때에 서원하여 말하기를만일 께서 참으로 나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데려가시면 내가 를 섬기리이다하였나이다하매

왕이 그에게 이르되평안히 가라하니 이에 그가 일어나 헤브론으로 가니라.

10 그러나 압살롬이 정탐꾼들을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들에게 두루 보내어 이르되너희는 나팔 소리를 듣거든 곧 말하기를압살롬이 헤브론에서 통치한다하라하니라.

압살롬은 이제 반역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기 위하여 헤브론에 거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그는 이 일을 위해서 주님의 이름을 거짓으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마치 그가 하나님과 서원을 하였고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긍휼에 응답하고자 하는 것처럼 믿음의 모양을 가진 것이었습니다사탄도 빛의 천사의 모습을 가질 수 있고육신도 성령의 모습을 흉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고백이나믿음의 삶을 흉내 내는 연기자 같은 삶을 원하지 않습니다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서 실제로 버리고 포기하며참되게 돌이키고드리고 섬기면서 진실하게 믿음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7절 말씀에서 사십 년 뒤에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보셨습니까잠시 이 표현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우리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치한 전 기간이 30세부터 70세까지 총 40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 잠시 사무엘기하 5장 4,5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삼십 세에 통치하기 시작하여 사십 년 동안 통치하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통치하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통치하였더라.

다윗이 이스라엘 통치한 기간이 총 40년입니다그러므로 사무엘기하 15장 7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십 년 뒤에라는 기간은 압살롬이 반역을 준비한 기간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압살롬이 40년간 반역을 준비해 버리면다윗의 통치는 이미 끝나고도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성경에 문제가 있고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 NIV성경역본과 한글개역성경의 편집자들은 히브리어 맛소라 원어성경에 기록된 40년을제멋대로 4년이라고 고쳐놓았습니다그래서 마치 압살롬이 반역을 4년 동안 준비한 것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한 성경을 기록하여주셨고또 보존하셨습니다사람이 하나님을 도와 성경의 오류를 제거할 필요가 없이성경은 그 자체로 오류가 없고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우리가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우리의 믿음은 아무 근거가 없는 미신에 불과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시험이나심판이나검증이나재판이나통치의 기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우리는 먼저 노아의 홍수 때에 사십 일 밤낮으로 비가 내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모세는 하나님께 율법을 받으면서 사십일 동안 시내 산에 머물렀고엘리야는 밤낮 사십일을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사십일을 금식하셨고또 부활하신 이후에 사십일을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셨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에 가나안 땅을 탐지한 기간이 사십일이었고믿음이 없음으로 인해 광야를 돌았던 기간이 사십년이었습니다.

 

사무엘기상을 열었던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재판한 기간이 사십 년이었습니다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을 조롱하며 모독하였던 기간이 사십 일이었습니다또한 사울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기간도 사십 년이었습니다그리고 지금 압살롬은 사십 년 뒤에 반역을 시도하고자 하고 있는데여기서의 사십 년은 바로 소년 다윗이 처음 사무엘로부터 기름을 받은 후를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이스라엘의 마음이 사울 왕보다는 믿음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전쟁 영웅새롭게 기름부음을 받았던 다윗을 더 따르게 된 그 해로부터 사십년이 지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숫자와 년도는 반역을 하고자 하는 압살롬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정의를 저버린 다윗 왕을 버리시고새로운 왕을 세우실 때가 되었다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 아히도벨

우리는 또한 이 모든 일에서 압살롬을 도왔던 한 무서운 인물을 볼 수 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5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희생물을 드릴 때에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조언자인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의 도시 곧 길로에서 청하여 오니라압살롬과 함께하는 백성이 계속해서 불어났으므로 그 음모가 커졌더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조언자였던 아히도벨이라고 하는 사람이 압살롬의 반역 음모에 가담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과연 이 아히도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6장 2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당시에 아히도벨이 베푼 조언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여쭙는 것과 같았으니 아히도벨의 모든 조언이 다윗에게나 압살롬에게나 이와 같았더라.

여기서 우리는 아히도벨의 조언과 계략에 대한 평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그의 조언은 마치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여쭙고 응답을 받는 것과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얼마나 지혜롭고 뛰어났는가를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삼국지로 말하자면 제갈공명보다 높은 수준의 지략가라고 할 수가 있는데바로 이러한 사람이 다윗을 떠나 압살롬에게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7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또 아히도벨 압살롬에게 이르되이제 내가 만 이천 명을 택하게 하소서이 밤에 내가 일어나 다윗을 추격하며

그가 피곤하고 손이 약할 때에 그를 습격하여 그를 무섭게 하리니 그리하면 그와 함께 있는 온 백성이 도망하리이다내가 다윗 왕만 치고

온 백성을 왕에게 다시 데려오리니 왕이 찾는 그 사람을 붙잡으면 모두가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니이다그리하면 온 백성이 평안하리이다하매

여기서 아히도벨은 자신이 직접 만 이천 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여다윗 왕만 기습으로 치고 빠지겠다고 압살롬에게 제안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다윗 왕의 모든 전력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는 최상의 작전이었습니다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아히도벨 자신이 직접 특공대를 이끌고 갈 정도로 적극적으로 다윗 왕을 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최고의 지략가답게 조언을 내고작전을 짜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일텐데직접 가서 다윗 왕을 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23장 34절을 보시겠습니다.

마아가 사람의 손자요아하스배의 아들인 엘리블렛과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 엘리암

우리는 여기에서 아히도벨의 아들의 이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그 아들의 이름은 바로 엘리암입니다이 이름,엘리암을 기억하시면서 사무엘기하 11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에 관해 물어보게 하였더니 한 사람이 이르되이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니니이까하니라.

이제 우리는 아히도벨이 무슨 이유로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하였으며더 나아가 자신이 직접 특공대를 구성하여 다윗 왕을 치려하고 하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바로 다윗이 간음하였던 여인인 밧세바가 아히도벨의 손녀였던 것입니다다윗이 죽였던 헷 족속 우리야가 바로 아히도벨의 손주 사위였던 것입니다아히도벨은 자신의 집안과 가문에 이러한 비극을 가져온 다윗 왕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아히도벨의 계획대로 이루어졌더라면다윗은 정말 큰 위험에 빠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친구이면서스파이 첩자로 압살롬의 편에 붙었던 후새를 통하여 아히도벨의 계략을 막으셨습니다후새는 지금 다윗 왕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전사들이며심지어 지금은 새끼를 빼앗긴 곰들처럼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만 이천 명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말하였습니다차라리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를 모아새로운 왕이신 압살롬 왕께서 직접 지휘하실 때더욱 완전한 승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시간을 지연시켰고다윗 왕에게 소식을 보내어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 압살롬의 죽음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압살롬이 다윗의 신하들과 마주치니라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의 무성한 가지들 밑으로 지나갈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하늘과 땅 사이에 들리고 그 밑에 있던 노새는 가버렸으므로

여기에서 우리는 압살롬의 최후를 보게 됩니다그의 자랑 중 하나였던 수려한 머리털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그의 큰 키와 수려한 머리털은 그를 돋보이게 하는 자랑거리였지만결국 그것이 그를 죽음의 길로 내몰았습니다상수리나무에 꼼짝없이 매달리게 된 그는 요압 장군의 창을 맞고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자랑과 교만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잠언 16장 18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멸망에 앞서 교만이 나가며 넘어짐에 앞서 거만한 영이 있느니라.

또한 잠언 18장 12절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멸망에 앞서 사람의 마음의 거만이 있고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

 

정의사회구현과 사랑의 통치를 외쳤던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이 없이 잘생기고 매력 있던친절하고 따듯해 보였던 청년 압살롬은 여기서 이렇게 비참하고 허무하게 인생을 끝마치고 말았습니다.

차라리 그가 정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자기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며오직 겸손하게 주님이 긍휼을 구하였더라면자연스럽게 왕의 후계자로서차기 왕으로 세워지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 결론 겸손과 높이심

오늘 우리는 빛난 왕관을 받기까지라는 제목으로 압살롬의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압살롬은 왕관을 원했지만 결국 얻지 못하였습니다그에게 왕관은 어쩌면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그의 외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잡을 곳이 없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였고그가 반역을 위하여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였던 모든 모습은 그가 얼마나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그러나 그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지도 않았으며거짓되고 교만하게 반역을 통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자 하였습니다그 결과 그는 비참하고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베드로전서 5장 6,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우리는 지금 당장 높아지기를 원하지만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낮추시고영원히 높여주기를 원하십니다마치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신 이후에제자들에게 버림을 당하시고자신의 백성에게 배척을 당하시고삼일 밤낮으로 차가운 돌무덤에 머물러 계신 이후에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처럼승천하신 이후에 모든 만물의 머리가 되시고모든 무릎이 꿇려지고모든 혀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시라고 시인하게 될 그 영광의 왕좌에 앉으신 것처럼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낮추시되철저히 낮추시기를 원하십니다십자가의 죽음에까지내가 아니요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서 나타날 때까지 우리를 낮추시고더 낮추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자신의 강한 손으로 누르시는 목적은우리를 말할 수 없는비교할 수 없는 영광으로 높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마치 요셉이 하루아침에 감옥 밑바닥에서온 이집트 제국의 통치자가 된 것처럼그렇게 우리를 단숨에 높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누르시고 낮추실 때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겨야 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여전히 돌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눈동자처럼 지켜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언제까지입니까제가 언제까지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우리가 이렇게 외친다면주님께서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대답해 주실 것입니다. “빛난 왕관을 받기까지”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며우리를 위로하실 하나님 앞에서우리가 빛난 왕관을 받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끝까지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1.19.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1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삼하 14:1-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4장입니다사무엘기하 14장 1-3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제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드고아로 사람을 보내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녀에게 이르되원하건대 너는 애곡하는 자처럼 변장하여 이제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며 죽은 자를 위해 오랫동안 애곡한 여인같이 하고

왕에게 들어가 그분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라하며 이처럼 말들을 그녀의 입에 넣어 주니라.

저는 오늘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마음을 따라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는 바쁘고 복잡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의 마음을 따라가라.”라고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개인용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면서 인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스티브 잡스도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 연설을 하면서 “Follow your heart. 너의 마음을 따르라.”라고 말했습니다오늘날 많은 미디어 매체들과 책들에서도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롭고 추천할 만한 방법으로 이와 같은 사고방식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있습니다생각할 것이 많고 복잡할 때는생각을 멈추고바로 자신의 마음에서뜨거운 가슴에서 말하는 것을 따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사람들이 뭐라 하든내 마음에서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누가 뭐라 하든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확신하면서 전진하면 성공한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보는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러한 사상을 주입하고 있습니다얼마 전에 저희 승연이가 보던 겨울왕국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 한국말로 더빙된 “let it go”라는 노래의 가사를 듣는데, “이젠 내 맘대로 살 거야.”라고 하는 가사가 있었습니다승연이는 의미도 모르고 그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저는 그것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그리고는 승연아내 맘대로 살면 절대 안 돼큰일 나는 거야우리는 오직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거야.”라고 말해주면서그 노래를 금지시켰습니다.

호기심에 영어 가사를 찾아보니 더욱 무서운 말들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No right, no wrong, no rules for me, I'm free!”, “나를 위한 옳은 것도틀린 것도규칙도 없다나는 자유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이러한 애니메이션을 보고노래를 듣고 또 따라 부르면서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기 마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 세상의 신,사탄의 가치관을 주입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얼핏 들으면 매우 멋있는 말이고또 우리의 마음에 자유를 주는 것 같고마음을 뜨겁게 하여 열정을 불어넣어주고젊은이들에게 새롭게 인생의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 한 번도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시거나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이 하라고 하신 말씀은 있지만자기 마음을 따르라고 하시는 말씀은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우리 잠시 성경에서 사람의 마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몇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시겠습니다먼저 예레미야 17장 9절 말씀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우리나라 속담에도 열길 우물 속은 알아도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성경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다고 말씀하시면서누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오직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거짓되냐하면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아 넘어갑니다.

 

분명히 악한 의도로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한 순간에 돌변하여 자신이 너무나 순수하고 좋은 의도로 어떤 일을 했는데그것이 마치 의도와 다르게 실수가 되고오해가 된 것처럼눈물로 나 자신을 변호하는 모습까지도 보게 되는 것입니다아침에는 기분이 좋았다가점심에는 갑자기 최악으로 치달았다가또 저녁에 금새 풀리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이렇게 거짓되고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우리는 과연 신뢰할 수 있고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이제우리 함께 창세기 6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또한 창세기 8장 21절도 보시겠습니다.

께서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시고 께서 마음속으로 이르시되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이 마음에서 상상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라내가 다시는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또 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입으로 먹어서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온갖 더러운 생각과 죄악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사무엘기하 14장 1절에서는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모든 비극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우리의 삶은 결코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다윗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였어야 했습니다하나님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의 마음이 어느새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다른 누군가에게로 향하게 되었을 때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4장부터 시작되어 19장까지 이어지는 비극을 살펴보면서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 드고아의 여인의 거짓 호소

우리 다시 한 번 사무엘기하 14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이제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 줄 알고

다윗의 측근이었던 요압 장군은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다윗은 지금 왕으로서그리고 아버지로서 큰 고민과 갈등 가운데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온 이스라엘을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는 왕으로서는 압살롬의 속임수와 살인 행위에 대하여 마땅히 심판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반면에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어떤 죄를 지었든지 용서하고 덮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다윗은 이러한 두 가지 마음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하고 있었습니다가장 쉬운 길은 고민할 것이 아니라마음 가는대로 할 것이 아니라하나님께 여쭙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제 아들 압살롬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하나님의 법에 따른다면 그를 심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그러나 저 자신 또한 더 크게 죄를 지었다가주님의 크신 긍휼로 용서를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저의 사랑하는 아들압살롬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고 싶습니다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주님의 뜻대로 하기를 원하나이다.”

 

차라리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고 교제하였더라면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다윗에 보여주셨을 것입니다아니면 하나님의 대언자인 나단과 의논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나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긴 상태도 아니었고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상태도 아니었습니다다만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분명히 정하지 않은 채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수동적인 상태육신적인 상태로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요압에게는 이러한 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압은 다윗을 위해서그리고 다윗의 마음이 계속 이러하다면 장차 왕의 후계자가 될 압살롬을 위해서그리고 무엇보다 결국 자기 자신의 미래의 지위를 위해서한 가지 일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그것은 바로 드고아라는 한 지역에서 지혜로운 여인을 불러다가 다윗에게 청원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4장 4-7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드고아의 여인이 왕에게 말할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 경의를 표하며 이르되오 왕이여도와주소서하니

왕이 그녀에게 이르되무엇이 너를 괴롭게 하느냐하매 그녀가 대답하되나는 참으로 과부 여인이니이다내 남편은 죽었고

왕의 여종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그들 둘이 들에서 서로 싸웠으나 그들을 떼어 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므로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쳐서 죽였나이다.

그런데 보소서온 가족이 일어나 왕의 여종을 대적하여 말하기를자기 형제를 친 자를 넘겨주라그가 죽인 그의 형제의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그를 죽이고 또 그 상속자도 멸하리라하오니 이처럼 그들이 남아 있는 내 숯불을 꺼서 내 남편을 위하여 이름이나 남은 자를 땅 위에 남겨 두지 아니하려 하나이다하매

여기서 우리는 드고아의 여인으로부터 매우 딱하고 어려운 사정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남편이 죽고혼자서 두 아들을 키워온 과부 여인인데두 아들이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입니다그것도 슬픈데문제는 온 가족이 일어나서 그 살인자를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이제 이 여인에게 모든 희망의 불씨가 사라지고겨우 숯불 하나가 남았을 뿐인데그것마저 꺼뜨려서우리 가족의 대가 끊어질 지경이라고 호소했던 것입니다드고아의 여인은 다윗의 마음이 연민을 느끼고불쌍한 감정을 느끼도록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재판관으로서 정의를 실행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또한 동시에 그는 이 안타까운 처지의 여인을 외면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이때 다윗이 이 일을 가장 지혜롭게 판결하는 길은 무엇이었을까요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이 문제에 대하여 여쭙는 것이었습니다하나님께 여쭈었다면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해 주셨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어떻게 하였습니까하나님께 여쭙지도 않았고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었는지 찾아보지도 아니하였습니다그는 다만 8절 말씀처럼 대답하였습니다함께 8절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여인에게 이르되네 집으로 가라내가 너에 관하여 명을 내리리라하니라.

이것은 다윗이 이 여인의 호소를 받아들여그 아들이 죽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입니다그런데 이 여인은 감사하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9절을 보시겠습니다.

드고아의 여인이 왕께 이르되오 내 주 왕이여그 불법은 나와 내 아버지 집에 임할 터인즉 왕과 왕의 왕위는 무죄하리이다하매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비록 이 일 자체가 불법이기는 하지만그 책임은 나와 내 아버지 집에 있고다윗 왕과 왕위는 무죄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비록 이 살인자를 살려두는 것은 불법이지만왕은 무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과연 불법인데 무죄일 수가 있을까요?

 

이제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이르되누구든지 네게 조금이라도 말하면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그가 다시는 너를 건드리지 못하리라하니라.

다윗은 어쨌든지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기면 나에게 데려오라고 말하면서끝까지 이 여인을 위해주고 있습니다지금 다윗은 8절에서 한 번그리고 10절에서 또 한 번 이 여인의 편을 들어주고 있습니다그리고 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그녀가 이르되원하건대 왕은 주 왕의 하나님을 기억하사 피를 복수하는 자들이 다시는 멸하지 못하게 하옵소서그들이 내 아들을 죽일까 염려하나이다하매 왕이 이르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하니라.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에게 두 번이나 정확한 보호의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이제 하나님의 이름까지 언급하면서또 다시 한 번 확실한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세 번째로 주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심지어 그 아들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이러한 판결은 과연 진리의 말씀에 따른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분별이며올바른 결론이었을까요다윗이 정말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를 원했더라면먼저 하나님께 여쭈었어야 할 것입니다그리고 그 아들을 데리고 와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직접 그 아들을 대면하여 보고그가 과연 주님 앞에서 상한 영으로 겸손히 엎드렸는가를 보고자 했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여기서 단지 인간적인 감정에 이끌려서눈물로 호소하는 모정에 이끌려서그가 무사할 것이라고 판결을 내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 드고아의 여인의 본래 의도

다윗의 확실한 판결을 들은 드고아의 여인은 이제 본래 가졌던 의도를 밝히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우리 함께 12-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2 이에 여인이 이르되원하건대 왕의 여종이 한 말씀만 내 주 왕께 말하게 하소서하거늘 그가 이르되말하라하니

13 여인이 이르되그러면 어찌하여 왕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그런 일을 생각하셨나이까왕께서는 자신의 내쫓은 자를 다시 집으로 불러오지 아니하심으로써 허물 있는 사람같이 이 일을 말씀하시나이다.

14 우리는 반드시 죽으며 땅에 쏟아진 물 즉 다시 모으지 못하는 물과 같으나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방법을 고안하사 자신의 내쫓은 자가 자기에게서 아주 쫓겨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

15 그러므로 이제 내가 와서 내 주 왕께 이 일을 말씀드리는 것은 백성들이 나를 두렵게 하였기 때문이니이다왕의 여종이 말하기를이제 내가 왕께 말하리니 그리하면 혹시 왕께서 자기 여종의 요청하는 것을 시행하시리라.

16 왕께서 들으시고 나와 내 아들을 하나님의 상속 재산에서 끄집어내어 함께 멸하려 하는 사람의 손에서부터 왕의 여종을 건져 내리라하였나이다.

17 이에 왕의 여종이 말하기를내 주 왕의 말씀이 이제 위로가 되리로다하였사오니 이는 내 주 왕께서 하나님의 천사와 같으사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하시기 때문이니이다그러므로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기 원하나이다하니라.

드고아의 여인은 다윗 왕이 살인자인 아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판결한 내용을 붙들고역으로 다윗 왕의 상황에 적용하였습니다이것은 요압 장군이 대언자 나단이 다윗을 책망하였을 때 사용했던 방법을 흉내낸 것입니다육신으로도 충분히 성령님의 모습을 흉내낼 수 있고모방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성품의 능력은 부인하지만모양은 흉내낼 수 있습니다.

드고아의 여인은 하나님의 이름까지 사용해가면서 다윗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진리의 말씀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13절에서 내쫓은 자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다윗 왕은 압살롬을 내쫓은 적이 없습니다.압살롬 스스로가 죄를 짓고 도망간 것입니다.

 

또한 14절에서 드고아의 여인은 우리가 다 반드시 죽는다고 말하면서땅에 쏟아진 물과 같이 다시 모으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것은 우리는 어차피 다 죽게 되는 것이므로먼저 죽었던 후계자인 암논에 대해서는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으므로 그만 잊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여기서 이미 죽은 암논을 잊으라는 말은 곧 압살롬의 죄를 눈감아 주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드고아의 여인은 뜬금없이 하나님께서 외모를 중시하지 아니하신다고 말하면서하나님께서는 압살롬의 어떠한 잘못을 개의치 아니하시고압살롬이 아주 쫓겨나지 않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은 진리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외모를 중시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은 드고아 여인이 말한 것처럼죄를 용납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의를 집행하지 않으시거나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드고아의 여인은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16절에서 드고아의 여인은 왕께서 살인자인 자신의 아들을 건져 내리라는 약속을 하였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압살롬도 딱 그와 같이 건져 내셔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굳이 따져보자면이 여인에게는 남은 아들이 오직 하나뿐이었지만다윗에게는 압살롬 말고도 다른 후계자들이 충분히 있었습니다다윗의 경우는 이 여인의 경우와 전혀 다릅니다.

계속해서 17절에서 이 여인은 다윗 왕이 하나님의 천사와 같다고 아첨하고 있으며다윗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한다고 아첨하고 있으며하나님께서 왕과 함께 계시기를 원한다고 아첨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 다윗은 하나님의 천사와 같지 않으며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간하지도 못하고 있고어쩌면 분간을 하더라도 실행하지 않고 있으며,또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드고아의 여인이 말한 것은 우리가 잠깐만 생각을 해보아도 전혀 진리가 아니고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말이 다윗에게는 매우 설득력이 있었습니다왜 그럴까요다윗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무엇인가를 붙들게 되면우리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 속에서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내 마음에서 원하는 것이 옳고 좋다는 정당성을 발견하게 됩니다내 마음이 원하는 것이 진리이고하나님의 뜻이고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선하고좋은 일이라는 이유와 근거를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누군가라도 반대를 하거나 의문을 품게 되었을 때수만 가지 이유로 방어하고 설명할 준비를 갖추면서,요새를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 다윗의 이상한 결정

이제 우리 함께 18-20절을 보시겠습니다.

18 그때에 왕이 그 여인에게 응답하여 이르되원하노니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내게 숨기지 말라하거늘 여인이 이르되내 주 왕은 이제 말씀하옵소서하매

19 왕이 이르되이 모든 일에서 요압의 손이 너와 함께하지 아니하였느냐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내 주 왕의 혼이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건대 아무도 내 주 왕께서 말씀하신 것을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옮기지 못하리이다.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으니

20 왕의 종 요압이 이런 식으로 말을 돌려서 하게 하려고 이 일을 행하였나이다내 주께서는 지혜롭되 하나님의 천사의 지혜에 따라 지혜로우사 땅에 있는 모든 일을 아시나이다하니라.

다윗은 이 모든 일이 요압에게서 나왔는가를 확인하였습니다드고아의 여인은 혹여나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까 걱정하며온갖 아첨을 다 떨면서그렇다는 아주 짧고 쉬운 대답을길고 어렵게 늘어놓았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1-24절을 보시겠습니다.

21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이제 보라내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러므로 가서 청년 압살롬을 다시 데려오라하매

22 요압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며 왕께 감사를 드리고 이르되오 내 주 왕이여왕의 종이 요청한 것을 왕께서 이행하셨사오니 오늘 왕의 종이 왕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은 줄을 아나이다하고

23 이에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라.

24 왕이 이르되그가 자기 집으로 가게 하고 내 얼굴을 보지 말게 하라하매 이에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다윗은 요압의 요청에 못이기는 척하면서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도록 명하였습니다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압살롬이 왕 앞에 나아와 얼굴을 대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압살롬에 대해서 아주 이상한 처신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다윗은 압살롬을 심판하거나 징계하지도 않았고그렇다고 용서하고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차라리 다윗은 그를 불러서 그의 여동생 다말이 험한 일을 당한 것에 대하여얼마나 마음이 아팠느냐고 위로하고또 암논을 제대로 징계하지 못했던 점을 사과했어야 할 것입니다차라리 다윗은 압살롬을 불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 스스로가 그렇게 복수하고 살인을 한 것을 잘못한 것이었다고 꾸짖었어야 할 것입니다압살롬의 마음을 상한 영으로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통회하는 영으로 바꾸어 놓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무엇을 하였습니까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그는 왕으로서도아버지로서도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그의 마음은 압살롬을 향했는데아무것도 하지 않고방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집에서 일어날 때에든지앉을 때에든지누웠을 때에든지또 길을 갈 때이든지 끊임없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에게 아직 소망이 있을 때어릴 때에 회초리로 징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일찍이 마땅히 가야 할 길로 훈련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부모가 자녀를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부지런하고 신실하게 부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주님께 맡긴다는 것은주님이 알아서 가르치시겠지생각하면서 방관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자녀를 주님께 맡기고스스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고 금지하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녀를 주님께 맡긴다는 것은성경에 기록된 부모의 역할에 순종하면서신실하게 그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부모에게 명령하신 역할에 순종하는 가운데믿음으로 자녀를 주님께 맡기는 것이지방관하고 가만히 있는 것은 주님께 맡기는 믿음이 아닙니다여기서 다윗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다만 아버지로서인간적인 감정으로서오로지 마음만 그 아들을 향하였고연민과 애착과 사랑으로 가득하였습니다.

 

 

** 압살롬의 결과

다윗이 압살롬을 방관한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우리 먼저 사무엘기하 14장 28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처럼 압살롬이 만 이 년 동안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압살롬은 왕의 부름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다윗 왕으로부터 어떤 개인적인 부름도 받지 못하였습니다.차라리 불러서 책망을 하시던지무섭게 화를 내시고징계를 하시든지뭔가 소통이 있어야 하는데, 2년 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것입니다이제 우리 함께 32-3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2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보라내가 네게로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여기로 오라하였나니 이것은 내가 너를 왕에게 보내어 말하게 하기를어찌하여 나를 그술에서 오게 하였나이까여전히 거기 있는 것이 내게 좋았으리이다하려 함이로다그러므로 이제 내가 왕의 얼굴을 보게 하라내게 무슨 불법이 있거든 왕이 나를 죽이게 하라하니라.

33 이에 요압이 왕께 나아가 왕께 고하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

 

압살롬은 2년 동안 마음이 겸손해지고하나님 앞에 바르게 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그의 마음은 답답함과 분노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그는 자신의 죄를 깨닫지도 못하였고오히려 내게 무슨 불법이 있거든 왕이 나를 죽이게 하라고 말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결국 다윗은 또 다시 요압 장군의 말을 듣고압살롬을 불러 표면적인 화해와 소통을 이루었지만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었습니다.

 

결국은 압살롬은 어떻게 됩니까우리가 다음번에는 압살롬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서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지만이러한 다윗의 올바르지 못한 처신으로 인하여 압살롬은 비극을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압살롬은 정면으로 다윗 왕에게 반역을 일으키게 되고결국 다윗 왕은 예루살렘 성을 버리고 도피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나를 위해 청년 곧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하매 왕이 압살롬에 관하여 모든 대장에게 명을 내릴 때에 온 백성이 들으니라.

다윗 왕은 정신없는 도피의 길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도 압살롬을 향한 애착의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온 백성이 듣는 가운데나를 위해 청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8장 14,15절을 보시겠습니다.

14 그때에 요압이 이르되내가 이처럼 너와 함께 늑장을 부릴 수 없다하고 손에 작은 창 세 개를 가지고 가서 압살롬이 아직 상수리나무 한가운데서 살아 있을 때에 그것들로 그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병기를 나르던 청년 열 명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서 그를 죽이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압살롬의 최후를 볼 수 있습니다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압살롬을 향한 결과,바로 압살롬이 죽게 되었습니다나를 위해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해 달라는 왕의 부탁과 명령에도 불구하고압살롬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사람은그 동안 압살롬을 위하여 일하는 것 같았던다윗의 최측근이었던 다름 아닌 요압 장군이었습니다요압 장군은 압살롬이 만일 여기서 살아나 왕의 후계자가 된다면자기 자신의 자리가 위태로울 것을 정확히 계산했기 때문에주저 없이 압살롬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이 모든 비극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지 아니하고압살롬을 향했던 결과였습니다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붙들지 아니하고 사람을 붙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육신의 아들을 사랑하고 애착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우리 함께 말씀을 정리하면서마지막으로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우리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2절에 나타난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육신에 속한 애착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또한 빛이시며 진리이십니다다윗의 마음이 진리를 향하고빛을 따랐더라면그의 마음이 육신적인 애정과 섞여타협하지 않았더라면오히려 그가 사랑하던 압살롬이 어떻게 해서든 긍휼을 얻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압살롬의 이름은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브라는 단어와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이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평화의 아버지를 의미하고 있습니다만약 다윗이 압살롬을 사랑하기 때문에그에게 하나님의 징계와 정의와 공의를 주저 없이 실행했더라면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님께 함께 나아가 상하고 겸손한 영으로 긍휼을 구하는 법을 가르쳤더라면아마도 압살롬은 다윗의 후계자로서이스라엘을 잘 다스리는 평화의 아버지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누구를 향해 있습니까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남편과 아내와 부모님과 형제자매들과 친구들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우리의 온 마음이 하나님께 향해 있기를 원합니다.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하나님께 향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르고주님과 동행하며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습니다주님께서 우리를 복주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1.05.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40

가짜 사랑의 결과(삼하 13: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3장입니다사무엘기하 13장 1,2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 일 뒤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그녀가 처녀이므로 자기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함이 어려운 줄로 생각하고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심히 괴로워서 병이 드니라.

저는 오늘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거짓된 사랑의 시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면서도 그 의미가 왜곡된 한 단어가 있다면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입니다오늘날 많은 영화드라마만화애니메이션게임유행가그리고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너무나 자주 접할 수가 있습니다심지어 우리는 얼굴도 한 번 본적이 없는 전화 상담원에게 전화를 받으면서 사랑합니다고객님하고 사랑을 고백 받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육식을 해서도 안 되고가죽옷을 입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범죄자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형제도가 없어져야 하고범죄자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매를 가리켜 반드시 사라져야 할 폭력이라 말합니다간음과 불륜을 다루는 저질스러운 드라마들은더러운 죄악을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그려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마비시키고어린 세대의 가치관을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이 사랑인지또 사랑이 아닌지 알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마태복음 24장 10-1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그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 서로 배반하여 넘겨주며 서로 미워하고

11 많은 거짓 대언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이며

12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실족하고서로 배반하며서로 미워하고많은 거짓 대언자가 일어나 많은 사람을 속이며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오늘날 세상은 사랑을 외치면서카톨릭과 불교와 이슬람과 기독교가 다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민족과 인종과 종교와 이성과 동성의 모든 벽을 허물고 다 하나 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이 세상은 점점 더 사랑이 많아지는 것 같지만예수님께서는 결국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고배반하며미워하고속이며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5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성경은 마지막 날들에 대하여 묘사하면서그 첫 번째 특징으로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러한 특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을 사랑하기는 하되쾌락들 다음으로 사랑하는 자들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을 통하여 한 가지 큰 계명을 우리에게 주고 계시는데그것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혼을 다하고힘을 다하고생각을 다하여우리의 생명과 온 존재를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요구하시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고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관점과 실행은 모두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우리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진리대로 참된 사랑을 해야 합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동행해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인 사무엘기하 13장 말씀에서 우리는 사랑인 것 같지만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랑을 보게 됩니다저는 그것이 참된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가짜 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오늘 우리는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설교의 제목과 같이육신으로부터 나오는 나름대로의 사랑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면서주님께서 말씀하신 참된 사랑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 암논의 사랑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3장을 통해서 네 사람의 가짜 사랑에 대하여 살펴볼 것입니다첫 번째는 자신의 아름다운 누이를 사랑했던 암논의 사랑입니다두 번째는 사랑으로 병이 든 암논을 사랑했던 친구인 요나답의 사랑입니다그리고 세 번째는 비참한 일을 당했던 다말의 오빠 압살롬의 사랑입니다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이러한 자녀들의 분쟁을 지켜보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다윗의 사랑입니다이들의 사랑은 사건의 현장에서그 순간만큼은 스스로 느끼기에 진실한 사랑이었을지 모르지만하나님의 관점에서진리의 기준에서 바라볼 때는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는 가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함께 1,2절 말씀부터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제가 1,2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 일 뒤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그녀가 처녀이므로 자기가 그녀에게 무슨 일을 함이 어려운 줄로 생각하고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로 인하여 심히 괴로워서 병이 드니라.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의 아들 암논은 모든 아들들 중의 첫째 아들이었습니다그는 아무 일이 없다면 장차 왕위를 이어받게 될 왕자 중의 첫째였습니다그런데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이자아름다운 누이인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던 이유는 그 누이의 외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당시 처녀였던 다말에게는 삼엄한 경비와 보호가 따라다녔기 때문에암논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러므로 암논은 사랑으로 인해서 병이 났습니다.

 

그러나 암논과 같이 아름다운 외모를 사모하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우리 함께 잠언 31장 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호의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를 두려워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호의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다고 말씀하십니다우리는 헛된 것을 사랑하지 말고참된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칭찬하시며사랑하시는 것은헛된 아름다움이 아니라참된 믿음이며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오늘 우리가 외모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우리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사랑하는가짜 사랑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그것은 전적으로 육신의 정욕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외모 지상주의 사상으로 세상을 이끄는 사탄의 거대한 흐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올바른 관점으로 서기를 원합니다특별히 지금 이 자리에 미래의 결혼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우리 학생들이 오직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관점으로 무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는 아름다운 것이 헛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 학생들이 키 크고 멋지고아름답고 예쁜 외모를 추구하는 가짜 사랑이 아니라주를 두려워하는 믿음의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요나답의 사랑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3장으로 돌아오셔서 3-5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심히 간교한 자더라.

그가 그에게 이르되왕의 아들인 네가 어찌하여 날마다 여위어 가느냐너는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냐하니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내가 내 동생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하노라하매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너는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그에게 말하기를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음식을 주게 하고 내 눈앞에서 음식을 차리게 하여 내가 그것을 보며 그녀의 손에서 먹게 하옵소서하라하니라.

여기에 등장하고 있는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었습니다그는 암논의 사촌이었으며또한 친구였습니다요나답은 암논의 친구로서 그가 병이 든 것을 보고 관심을 가져주었으며암논을 위한 아주 그럴싸한 계획을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였습니다요나답은 당장 그 상황에서는 암논을 위하는 것 같았고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그러나 요나답이 암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위했더라면그를 위한 기발한 범죄 계획을 제시할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을 말했을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고린도전서 13장 6절에서는 사랑이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요나답이 진실로 암논이 잘 되기를 바랬더라면과감하게 다말은 너의 누이이니 깨끗하게 마음을 정리하라고 책망을 하였든지아니면 그래도 배다른 누이이니 차라리 왕께 한번 말씀드려보고정식으로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방법을 찾아보라고 조언해주었을 것입니다.

 

친구가 주는 상처는 믿음직하나 원수의 입맞춤은 속임수가 가득하니라.

바로 이 잠언 27장 6절 말씀처럼요나답이 진정한 친구였다면 당장 상처를 줄지라도 진리를 말해주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친구가 아니었고 원수였습니다그는 믿음직한 상처를 주며진정으로 친구를 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단지 달콤한 입맞춤으로 비위를 맞추는 원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원하는 형제자매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친구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나의 계획을 듣고무조건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입니까아니면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보인다고 상처를 주는 사람입니까물론 우리가 일부러 상처를 주고받을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상처를 안주고 안 받는 것이 모든 교제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대언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와서직접적으로 왕이 그 사람이라고 하면서 책망하지 않았다면다윗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왕께서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말했더라면그는 대언자가 아니라 사기꾼이 되었을 것입니다저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정말 칭찬만 해주고 싶고격려만 해주고 싶고늘 함께 웃고 싶기만 하지만때로는 큰 소리도 내고잔소리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그때마다 저 자신을 부인하고십자가를 지지 않으면듣기 싫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그러나 우리가 형제자매를친구들을자녀들을또 부모님을 사랑한다면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밉고 못마땅해서 상처를 주고 속 시원하게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다만 사랑하기 때문에 진리를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 암논의 범죄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3장 6-9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에 암논이 누워서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왕께 이르되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 눈앞에서 납작한 빵 두 개를 만들게 하사 내가 그녀의 손에서 먹게 하옵소서하니

그때에 다윗이 사람을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이제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하므로

이에 다말이 자기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워 있더라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의 눈앞에서 납작한 빵을 만들어 그 빵을 굽고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았으나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며 이르되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하니 그들이 각각 그를 떠나 나가니라.

암논은 요나답이 일러준 계획대로거짓으로 병든 체하였습니다그리고 아버지 다윗이 병문안을 왔을 때에그의 누이 다말로 하여금 직접 빵을 구워주게 해주시면병이 나을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였던 것입니다그리고 다윗은 사랑하는 아들의 요청을 그대로 이행하였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0-14절을 보시겠습니다.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음식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납작한 빵을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자기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그것을 먹이려고 가지고 갈 때에 그가 그녀를 붙잡고 그녀에게 이르되내 누이야와서 나와 함께 눕자하매

12 그녀가 응답하되아니니이다내 오라버니여나를 강제로 욕보이지 마소서이스라엘 안에서 이런 일을 해서는 아니 되오니 오라버니는 이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마소서.

13 나 곧 내가 내 수치를 어디로 가게 하겠나이까오라버니로 말하건대 오라버니는 이스라엘 안에서 어리석은 자들 가운데 하나같이 되리이다그러므로 이제 원하건대 왕께 말하소서그분께서 나를 오라버니에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이다하되

14 그가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그녀를 강제로 욕보여 그녀와 함께 누우니라.

이것이 암논의 사랑이었습니다암논은 다말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다말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고위하지도 않았습니다여기서 암논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이며바로 육신의 정욕이었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다말이야말로 암논을 참되게 위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그는 오라버니를 위해서 과자를 구웠고또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안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차라리 왕께 말씀드려서 정식 혼인 절차를 밟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왕께서 허락하신다면자기 자신도 기꺼이 오라버니와 혼인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암논의 사랑은 육신의 정욕이었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오늘날 우리는 많은 부모님들이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자녀들에게 많은 것들을 강제로 시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많은 경우 그것이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부모님 안에 있는 육신의 정욕인 것을 보게 됩니다자신이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했던 일을 자녀에게 시키면서 대리 만족을 얻는 부모님도 있으며자녀의 원함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원함을 강요하는 부모님도 있습니다.이것은 사랑이 아니고육신의 정욕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그것이 진리를 정면으로 대적하고주님을 떠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면자녀들은 부모님의 뜻이 육신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말고먼저 순종하기를 배워야 합니다혹시 이 말씀을 듣는 우리 학생들 가운데 나의 부모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뜻이 과연 육신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없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에게 주신 뜻은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그리하면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 암논의 미움

이제 우리 함께 15-17절을 보시겠습니다.

15 그리하고는 암논이 그녀를 심히 미워하였으니 이처럼 그가 그녀를 미워한 그 미움이 전에 그가 그녀를 사랑하던 그 사랑보다 더 컸더라암논이 그녀에게 이르되일어나 가라하매

16 그녀가 그에게 이르되이유가 없나이다나를 쫓아 보내는 이 악은 아까 내게 행한 다른 악보다 더 크나이다하되 그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17 그때에 자기를 섬기던 종을 불러 이르되이제 이 여자를 내게서 내보내고 그녀를 보낸 뒤에 문을 빗장으로 잠그라하니라.

암논은 다말을 처음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 큰 미움으로 미워했습니다어떻게 이렇게 한순간에 돌변할 수가 있을까요이것이 바로 육신의 사랑이며가짜 사랑인 것입니다한순간에 사랑했다가 미워지는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랑이 육신의 사랑입니다엄밀히 말해서암논은 다말을 사랑한 적이 없었습니다그는 다만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따랐을 뿐이었습니다암논은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전혀 책임을 지려하지 않았고다말을 위하여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다만 다말을 쫓아내었습니다.

 

 

** 압살롬의 사랑

이제 우리 함께 20-22절을 보시겠습니다.

20 그녀의 오라비 압살롬이 그녀에게 이르되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그러나 내 누이야그는 네 오라비니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하매 이에 다말이 자기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니라.

21 그러나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2 자기 형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였으므로 압살롬이 암논을 미워하여 좋다 나쁘다 그에게 말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과 압살롬을 볼 수가 있습니다압살롬은 자신의 누이 다말을 사랑했고자신의 형 암논을 미워하였습니다반면에 다윗은 자기 딸인 다말도 사랑했고자기 아들인 암논도 사랑했습니다그런데 21절 말씀을 보니,다윗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뒤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한 면에서는 암논이 저지른 일이 바로 자신이 밧세바를 범한 죄와 비슷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만약 그가 암논을 불러 책망한다면암논이 아버지도 그랬잖습니까라고 반문할 때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단지 분노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떠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습니다암논을 합당히 징계했어야 할 것이고또 차라리 다말과 정식으로 혼인하도록 이끌었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단지 분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다윗이 암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그 사랑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온 진리의 사랑이 아니었습니다다만 육신적인 아버지로서 가지는 육신의 사랑이었습니다그 결과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주 비참하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압살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그는 다말을 사랑하였습니다그러나 여기서 압살롬은 다말을 참되게 위하고 있지 않습니다그는 다만그는 너의 오라비니 잠잠히 있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말하였습니다이것은 다말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다말은 처량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무엘기하를 더 살펴보면 나올 것이지만압살롬은 왕권에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다윗의 첫째 아들이었던 암논은 거의 확정적인 후계자였기 때문에압살롬으로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 1호였을 것입니다압살롬이 정말 다말을 위했더라면차라리 정식으로 암논과 혼인할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그러나 압살롬은 다만 암논을 제거하여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복수뿐만 아니라자신의 야망을 단번에 이룰 수 있는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 압살롬의 복수

이제 우리 함께 23-27절을 보시겠습니다.

23 만 이 년 뒤에 에브라임 옆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으니라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24 왕에게 나아와 이르되이제 보소서주의 종이 양털 깎는 자들을 모았사오니 청하건대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시고 주의 종과 함께 가사이다하매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아니라내 아들아이제 우리가 다 갈 필요가 없나니 네게 누를 끼칠까 염려하노라하니라그가 그에게 간청하였으나 그가 가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그에게 복을 빌므로

26 이에 압살롬이 이르되그리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원하건대 내 형 암논이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하매 왕이 그에게 이르되그가 너와 함께 갈 이유가 무엇이냐하되

27 압살롬이 간청하므로 그가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그와 함께 가게 하니라.

만 이 년이 지난 뒤에 압살롬의 복수의 날이 이르렀습니다그는 양털을 깎는 잔칫날에 먼저 아버지 다윗을 초대하였습니다그러나 다윗은 왕과 신하들이 다 가게 되면 잔치에 부담이 될 것을 걱정하여 다만 복을 빌어주었습니다그 모든 상황을 예상했던 압살롬은 장자인 암논을 대신해서 보내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28-29절을 보시겠습니다.

28 이제 압살롬이 이미 자기 종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이제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포도주로 인해 즐거워할 때를 잘 보았다가 내가 너희에게암논을 치라하거든 그를 죽이라두려워하지 말라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지 아니하였느냐용기를 내고 용맹스럽게 행하라하였으므로

29 압살롬의 종들이 압살롬이 명령한 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서 각각 자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압살롬은 2년 동안 계획했던 복수를 집행하였습니다드디어 누이 다말의 원수이며또 자신의 미래의 왕권을 가로막았던 암논을 제거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입니다이 일이 과연 다말을 위한 것인지다말이 과연 암논의 죽음을 통해 마음에 위로를 얻고기쁨을 얻었을 것인지 알 수 없으나한 가지 분명한 것은 후계자인 암논의 죽음을 통해압살롬은 자신의 야망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비극이 다윗의 손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처음에 다말을 암논의 집에 보낸 것도 다윗이었으며이번에 암논을 압살롬의 양털 깎는 잔치에 보낸 것도 다윗이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의도한 일이 아니었지만하나님께서 다윗의 간음과 살인으로 인하여 허락하신 일종의 형벌이며 심판이었습니다.

 

 

** 요나답의 증언

이제 우리 함께 32-33절을 보시겠습니다.

32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응답하여 이르되내 주께서는 그들이 그 청년들 곧 왕의 아들들을 다 죽인 것으로 생각하지 마옵소서오직 암논만 죽었나이다그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강제로 욕보인 날부터 압살롬의 작정에 의해 이 일이 결정되었나이다.

33 그러하온즉 이제 내 주 왕께서는 그 일을 마음에 두지 마옵시고 왕의 모든 아들이 죽은 줄로 생각하지 마옵소서.오직 암논만 죽었나이다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암논의 친구였으며그에게 어떻게 하면 완벽범죄를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했던 자였습니다그런데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그는 암논으로 인하여 애곡하고 있지 않습니다자신의 친구가 죽은 것에 대하여 슬퍼하고 있지도 않습니다다만 왕 앞에서 그가 왜 죽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처음부터 요나답은 암논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사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그는 다윗을 위로한답시고모든 아들이 죽은 것이 아니라암논만 죽었으니 안심하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압살롬의 도주와 다윗의 반응

이제 우리 함께 37-39절을 보시겠습니다.

37 그러나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암미훗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자기 아들로 인해 애곡하니라.

38 이같이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서 삼 년 동안 거하니라.

39 다윗 왕의 혼이 압살롬에게로 나가기를 열망하였으니 이는 암논이 이미 죽었으므로 그에 관하여 왕이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더라.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외할아버지의 땅으로 도망을 갔고삼 년 동안을 머물렀습니다그리고 사무엘기하 13장의 마지막 구절은 다윗이 어느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다시 보기를 열망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속임수와 살인에 대하여 징계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하나님의 관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다만 아버지로서의 육신의 천연적인 사랑만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3장의 긴 구절들을 통해서 가짜 사랑의 결과라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암논은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요나답은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압살롬은 자신의 여동생을 사랑하는 오빠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었습니다이 모든 마음이 각각 애절하고간절하고선하고좋았을지 모릅니다그러나 그 모든 사랑이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않고육신으로부터 나오게 되었을 때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나 그 사랑은 결코 육신으로부터 나와서는 안 됩니다우리의 사랑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여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통해서만 흘러나오는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았습니다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논의 사랑은 외적인 아름다움을 사모하면서육신의 정욕에서부터 나온 가짜 사랑이었습니다요나답의 사랑은 진리를 말하지 않는 달콤한 속임수였습니다압살롬의 사랑은 자신의 야망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다윗의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단지 분노하거나 애곡하면서 바라만 보게 만드는 무능하고 쓸모없고 능력 없는 장식품과 같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이 참되고권능이 있으며진리의 말씀대로 되기 위해서우리는 오직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야만 합니다가짜 사랑의 결과는 비참하고 참혹할 뿐입니다우리가 오늘 나의 형제자매나의 남편나의 아내나의 자녀나의 부모님을 육신으로부터 사랑하고 있다면그것은 결국 사랑하는 이들을 해치게 될 뿐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고자 하는 사랑은성령의 열매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하고 있는성령님의 열매로서의 사랑입니다.우리의 사랑이 오직 진리의 기준대로성경대로 세워지기를 원합니다또한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를 통해 나타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2014.10.26.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9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삼하 12:13,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2장입니다사무엘기하 12장 13,1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저는 오늘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의 주인공인 다윗의 이름은 사랑받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오늘의 말씀에서그가 왜 그의 이름처럼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가 되었는지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합당하게 반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먼저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였고간음과 살인이라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나단을 보내셔서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그리고 다윗은 오늘 말씀을 함께 보신 것처럼말씀에 대한 첫마디 반응으로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범죄한 다윗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살펴볼 것입니다또한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였고어떻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오늘 말씀을 통해서우리가 주님 앞에 범죄하고넘어지고실패한 이후에 어떻게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며주님과의 동행의 삶을 회복하여 걸어가게 되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 나단의 책망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2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한 도시에 두 사람이 있었는데 한 사람은 부유하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였나이다.

그 부유한 자는 양 떼와 소 떼가 심히 많았으나

그 가난한 자에게는 자기가 사서 기른 작은 어린 암양 한 마리 외에 아무것도 없었고 그 어린 암양은 그와 그의 자녀들과 함께 있어 같이 자라고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에서 마시고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마치 딸과 같았나이다.

그런데 어떤 나그네가 그 부자에게 오매 그가 자기 양 떼와 소 떼를 아껴 자기에게 온 여행자를 위해 거기서 잡아 차리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어린양을 빼앗아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해 차렸나이다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대언자인 나단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나단이 다윗을 찾아온 목적은어떤 좋은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다윗 왕의 죄를 책망하고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함이었습니다그가 이 순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요과거에 다윗 왕이 어떤 사람이었든지최근의 다윗 왕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하여충성스러운 신하를 죽게 만든 사람이었습니다대언자 나단 역시 여차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입장이었습니다어쩌면 대언자 나단은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두려워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그는 오히려 주님의 지혜를 의지하면서더욱 담대하게그리고 신실하게 준비된 말씀으로 다윗 왕을 찾아왔던 것입니다그는 먼저 일반적인 사건에 대하여 청원을 하는 것처럼다윗 왕에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그 이야기는 바로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자기의 손님을 대접한 한 부자의 이야기였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5,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의 분노가 그 사람을 향해 크게 타오르매 그가 나단에게 이르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반드시 죽을지니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 어린양을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하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바로 남의 잘못에 대하여 판단하고정죄하고분노하는 것입니다그러한 일은 정작 자기 자신에게 더 심각한 죄가 있더라도 할 수가 있습니다충성스러운 신하의 목숨을 빼앗고그의 아내를 빼앗은 다윗도 이렇게 의로운 분노를 일으키면서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은 부자를 정죄할 수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정의로운 왕으로서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의로운 분노를 불태우면서그 부자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사형을 선언하였습니다또한 그 어린양을 네 배로 갚아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이제 우리 함께7-12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왕이 그 사람이니이다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나이다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건져 냈으며

또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아내들을 네 품에 주며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을 네게 주었느니라만일 그것이 너무 조금이었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어찌하여 네가 의 명령을 업신여기고 그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였느냐네가 칼로 헷 족속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으며 암몬 자손의 칼로 그를 죽였느니라.

10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이제 그런 까닭에 칼이 네 집에서 결코 떠나지 아니하리라.

11 가 이같이 말하노라보라내가 네 집에서 너를 대적하는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아내들을 네 눈앞에서 가져다가 네 이웃에게 주리니 이 해가 보는 데서 그가 네 아내들과 함께 누우리라.

12 너는 그 일을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이스라엘 앞에서 해 앞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하매

다윗 왕이 분노하여 말하기가 무섭게대언자 나단은 왕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응답하였습니다어쩌면 대언자 나단은 다윗 왕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마음이 찔리고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그러나 다윗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서더욱더 분명하게바로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나단은 아마도 성경 안에서청중 한 사람을 놓고대놓고 표적설교를 선포했던유일한 설교자일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의 다윗처럼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듣고배우고묵상하는 중에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이 말씀은 다른 누가 꼭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정작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다윗도 그러했습니다그러나 담대한 설교자였던 나단은다른 사람이 아니라바로 왕이 그 사람이라고 직접적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나단의 메시지 중에는 축복이나 위로의 말이 전혀 없었습니다너무나 맹렬한 책망과 재앙에 대한 경고만이 있었습니다나단은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만을 담대히 선언하였습니다이후에 다윗은 이러한 나단 대언자를 얼마나 좋아했든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짓기도 하였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나단의 계보를 통해 이 땅에 태어나시게 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요셉은 솔로몬의 후손이었고마리아는 나단의 후손으로모두 다윗 왕의 후손이었습니다다윗은 자신에게 표적설교와 같이 날카로운 말씀을 선포한 대언자를 미워하지 않았고,오히려 사랑하며 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우리도 우리에게 진리의 책망과 권면의 말씀을 전해주는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귀하게 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대언자 나단과 같은 주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온전하게 선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두렵고 떨리는 순종이라 할지라도주님의 지혜를 의지하며주저함 없이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헌신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 중에서장차 우리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 가운데서또 초등부또 유치부 학생들 가운데서 이러한 멋진 주님의 말씀 선포자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다윗의 돌이킴

이제 우리 함께 13,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맹렬한 책망과 재앙의 말씀을 다 듣고 난 후다윗의 반응은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는 한 마디의 고백이었습니다우리는 매일 매순간 늘 죄를 짓지만책망의 말씀이나 권면을 들을 때주로 이렇게 다윗처럼 반응하지 못합니다우리는그런 뜻이 아니었다든지그렇게까지 한 적은 없다든지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든지상대방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언정내가 주께 죄를 지었다고 말하기는 매우 힘들어 합니다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정당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되기를 원하지만주님 앞에 무릎 꿇고 인정하며 긍휼을 구하고용서받기를 원하는 모습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다윗도 충분히 나단의 태도나 말투에 꼬투리를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처음부터 왕이시여왕의 죄에 대한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지무슨 부자의 비유를 들어서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어 놓고왕이 그 사람이라고,기분 나쁘게그런 식으로돌려서 말하느냐고화를 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귀담아 들었고,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진실하고도 겸손하게 인정하며 고백하였습니다과거에 사울 왕은 대언자 사무엘의 말끝마다 변명을 하였습니다죄의 경중으로 따지자면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아서노략물을 취하고아말렉의 왕을 산채로 잡았던 사울 왕의 죄보다간음하고 살인한 다윗의 죄가 훨씬 더 무거울 것입니다그러나 사울 왕은 끝내 용서받지 못하였고다윗은 용서를 받았습니다그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정 중에 누구든지 넘어질 수 있고언제라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요한일서에서는 심지어,우리가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며자기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실패한 이후에주님 앞에서 참되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고다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체면을 살려줄 것을 구하였습니다백성들이 보고 있으니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나로 하여금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해 달라고 사무엘에게 요청하였던 것입니다사울 왕에게는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즉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다윗은 주님의 책망이 떨어질 때에주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 하나님께서 이러한 다윗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그것들을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라고 하신 잠언 28장 13절 말씀처럼다윗은 자신의 죄를 즉시 자백하고 버림으로써주님의 긍휼을 얻게 되었습니다.

본래율법에서 간음과 살인은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입니다다윗은 죽어야 마땅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사무엘기하 12장 13절을 보면다윗이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라고 고백하였을 때대언자 나단은 주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다윗은 여기서 율법을 뛰어넘고 초월하는 놀라운 긍휼과 용서를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 시편 51

우리 함께 시편 51편을 보시겠습니다먼저 1절 위에 있는 설명을 보시면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그가 밧세바에게로 들어간 뒤에 대언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에 지은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오 하나님이여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크신 친절한 긍휼에 따라 내 범법들을 지워 주소서.

내 불법에서 나를 철저히 씻기시며 내 죄에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내 범법들을 시인하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다윗은 대언자 나단의 책망을 받았을 때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긍휼을 구하였습니다자신의 범법들을 정직하게 시인하였고용서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10-14절도 보시겠습니다.

10 오 하나님이여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올바른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의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기쁨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주의 자유로운 영으로 나를 떠받쳐 주소서.

13 그리하시면 내가 범죄자들에게 주의 길들을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로 회심하리이다.

14 오 하나님이여내 구원의 하나님이여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그리하시면 내 혀가 주의 의를 크게 노래하리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책망하셨던 이유는 그가 돌이키고 회복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책망의 목적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도록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다시 일어나 회복하여주님과 동행하도록 이끄는 것에 있습니다다윗은 주님께 책망을 받은 자로서합당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그는 자신의 죄를 시인하였고긍휼을 구하였고용서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주님 앞에 올바른 영이 새롭게 되기를 원하였습니다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하였고주님과 새롭게 동행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과거에 엘리 제사장은 반복된 책망을 받고서도 자신의 길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사울 왕 역시 많은 책망의 말씀을 받았지만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다윗은 단 한 번의 말씀을 듣고 철저히 돌이키며,주님 앞에 회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우리 함께 16,17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16 주께서는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주께서는 번제 헌물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오 하나님이여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율법에서 자신을 위한 희생물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간음과 살인죄는 소나 양의 피로 덮을 수가 없었고온 백성이 돌로 쳐서 사형을 해야 하는 죄였습니다다윗은 범죄하고 나서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이만큼 죄를 지었으니그 대신 이만큼 희생물을 드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우리는 때로 죄를 짓고 나서그 대신 사죄하는 마음으로영적인 일들을 한다든지봉사를 함으로써 그것을 무마해보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육신적인 일 이것저것을 한 대신교회에서 이렇게 섬겼으니 마치 정당한 보상을 한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죄를 가지고 거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윗은 다만 진실한 마음으로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상한 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을 받으셨고용서해 주셨으며다시 다윗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 아이의 죽음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하 12장으로 돌아오셔서 함께 13,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내가 께 죄를 지었노라하거늘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으므로 왕이 죽지 아니하리이다.

14 그러나 이 행동으로 인하여 왕이 의 원수들에게 신성 모독의 큰 기회를 주었으니 왕에게 태어난 아이 또한 반드시 죽으리이다하니라.

다윗 왕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왕의 죄를 치우셨고그가 죽지 않도록용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그러나 우리가 14절 말씀을 보게 되면다윗 왕이 간음을 통하여 가지게 된 아이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리고 우리는 18절 말씀의 앞부분에서 일곱째 날에 그 아이가 죽으니라.라고 기록된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첫 번째로 이 아이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그것은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메시아 그리스도의 계보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다윗은 메시아 그리스도의 계보를 약속받은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을 영원히 세우리라고 약속하셨고그의 왕좌가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오심을 끊임없이 방해하고자 하였는데아브라함에게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통해서이삭에게는 야곱을 죽이려 하였던 에서를 통해서그리고 이집트에서는 모든 사내아이를 죽게 한 파라오를 통해서 그렇게 방해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께서 헷 족속 우리야의 후손이 아니라정확히 다윗의 후손임을 명확히 밝히시기 위하여간음 중에 태어난 밧세바의 아이를 죽게 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여기서 죽임을 당한 이 아이는 한 면에서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며또한 무죄함 가운데 죽임을 당하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표가 되고 있습니다여기서 죽게 된 이 아이는 다윗의 후손으로서자기 죄 때문이 아니라마땅히 죽었어야 하는 다윗을 대신하여 죽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아이의 죽음은 아기들이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아담의 본성인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갓난아기일 때 죽으면 지옥에 가는가천국에 가는가의 문제는 많은 성도들에게 궁금하면서도염려스러운 주제였습니다그가 죄의 본성을 가졌기에 지옥에 가는 것인가아니면 아직 실제로 죄를 짓지 아니하였기에천국에 가는가하는 주제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이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2장 22,23절을 보시겠습니다.

22 그가 이르되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내가 말하기를혹시 하나님께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리요하였기 때문이거니와

23 지금은 그가 죽었으니 어찌 내가 금식하리요내가 그를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나는 그에게로 가려니와 그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하니라.

다윗은 아이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는그가 죽지 않기를 구하면서금식하고 울면서 기도하였지만, 20절에 나타난 것처럼아이가 죽은 뒤에는 오히려 일어나서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주의 집에 들어가 경배하고 돌아와서 빵을 먹었습니다.

23절에서 다윗은 핵심적인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그가 아이에게 갈 수는 있어도아이가 다시 살아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구원을 받은 다윗이 아이에게 갈 수가 있다는 것은아이가 바로 거지 나사로가 갔던 아브라함의 품,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강도에게 말씀하셨던 낙원에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에서는 율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무죄상태임을 말씀하십니다아직 양심의 기능이 작용하지 않고선과 악의 개념을 자각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됩니다그러므로 다윗의 아이는 억울하게 죽어서 지옥으로 간 것이 아니라구원을 받은 다윗이 죽게 된다면그에게로 가서 만날 수 있는 낙원에 가게 된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죽은 가족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죽은 가족들이 지옥에서연옥으로 옮겨지고또 연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성경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사람의 구원의 여부는 살아 있는 때 가졌던믿음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지죽은 자들을 위하여 살아 있는 가족들이 기도하는 것으로 변경될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다윗도 아이가 죽기 전까지 기도하였지죽은 아이를 위하여서는 기도하지 않았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 형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시고주님과의 교제를 회복하여 주셨으며다시 주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다윗이 육신으로 걸었던 길에 대하여서는 감당해야 할 형벌이 있었고거두어야 할 열매가 있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가 만약 주님의 인도하심을 거슬러 육신 안에서진로를 선택하거나사업을 벌이거나결혼을 하거나어떤 문제들을 발생시켰을 때우리가 주님께 돌이키고 자백하여주님과 교제를 다시 회복하고다시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걷게 된다할지라도이미 벌어진 일들에 대하여서는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에게 심는 자는 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바로이 갈라디아서 6장 8절의 말씀과 같이또 다윗의 삶과 같이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입니다다윗은 주님께 용서를 받았지만자신의 아이가 죽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그가 금식하고 울며 기도하였지만아이의 죽음은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외쳤던 것처럼그의 가족들 중에서 네 사람이 끔찍하게 죽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첫 번째는바로 우리가 지금 살펴본 밧세바의 첫 번째 아이였고두 번째는 암논세 번째는 압살롬네 번째는 아도니야로모두 다윗의 아들들이었습니다또한 다윗의 딸과 그의 첩들이 비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두 번이나 반역을 당하여야 했고예루살렘 성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였으며또 다시 목숨을 잃을 번한 위험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성령 안에서 걸으며철저히 주님과 동행해야 하는 이유는나 자신이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온전히주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살며 행복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육신으로 걸어간 그 걸음들에 대하여는비록 우리가 주님께 용서받고주님과 관계를 회복한 그 이후라 할지라도감당해야 할 열매들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함께 시편 103편 8-14절을 보시겠습니다.

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그분은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우리를 언제나 풍성한 긍휼로 대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특별히 10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우리가 육신에게 심었던 것들을 거두게 될 때에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땅히 거두어야 하는 쓰디쓴 열매보다훨씬 더 적게 거두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불법들과 죄악들과 상관없이 은혜와 긍휼 가운데 너무나 감사한 삶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오늘도 우리에게 이러한 사랑과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을 우리가 찬양하기 원합니다.

 

 

** 솔로몬여디디야

이제 우리 다시 마지막으로 사무엘기하 12장으로 돌아오셔서 24,25절을 보시겠습니다.

24 다윗이 자기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누우니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께서 그를 사랑하사

25 대언자 나단의 손으로 보내시매 그가 로 인하여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밧세바를 통하여 새로운 아들을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고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셨으며새로운 복을 주셨습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슬픔을 경험한 밧세바를 위로하시고차기 왕이 될 지혜로운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 아들은 바로 평화를 의미하는 솔로몬이었습니다성경은 주께서 그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또한 대언자 나단을 통하여 솔로몬에게 또 다른 이름을 주셨는데그것은 여디디야”,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이름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에게는 자신의 육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감당하게 될 문제들과 거두어야 할 쓴 열매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다시 만나주시고다윗과의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여 주셨습니다그에게 평화를 주셨고사랑을 주셨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제목으로 사무엘기하 12장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자를 의미하는 다윗에게,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의미하는 여디디야를 아들로 주셨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습니까한 마디로 말해 자격이 없는 자였습니다죄 많고 더러운 자였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그가 죄를 짓고 넘어진 이후에책망의 말씀을 듣게 되었을 때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찾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상태 가운데 있었든지다윗과 같이 온 마음으로 주님을 찾고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에그것이 귀에서 듣기에 좋은 말씀이든지마음 아픈 책망의 말씀이든지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합당한 반응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복주시기를 원합니다.

2014.10.2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38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삼하 11: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1장입니다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더라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더라.

저는 오늘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성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과 인생을 가리켜서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잠언 말씀에서 어떤 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사야서에서는 우리가 모두 어리석은 양들처럼 목자를 버리고 자기 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고사악한 자는 자기 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좁은 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셨고사도 바울은 자신의 달려갈을 다 달렸다고 간증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처럼 오늘도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길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그것은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다라는 것입니다믿음의 길에서는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면정지가 아니라 후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창조물 가운데연어를 보게 되면물론 먹을 때 맛도 좋지만연어가 살아있을 때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인 것을 느끼게 됩니다연어는 자신의 본향을 향해서 거친 물살을 헤치고 거슬러 올라갑니다바다에서는 상어를강에서는 곰을 만나기도 하지만여전히 포기하지 않고폭포를 뛰어넘고거친 물살을 헤치면서 나아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연어는 자신의 본향에 도착할 때까지,쉴 새 없이 지느러미를 힘차게 휘저으며 전진합니다이러한 연어의 여정 속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연어가 지느러미를 멈추고 정지하는 순간거센 물살에 휩쓸려 아래로아래로밀려 내려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걷고 있는 믿음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우리는 세상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서많은 유혹과 고난을 통과하면서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폭포를 뛰어넘는 과정에서 바위에 몸이 긁히기도 하고상처를 입고 아파하기도 하지만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하늘의 본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멈추고믿음의 전진을 주저하는 순간우리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 아래로 밀려 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믿음의 길에 대하여 간증하면서 내가 뒤에 있는 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빌 3:13,14). 오늘도 우리에게 세상의 거센 물살이 다가오며유혹과 고난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연어들처럼사도 바울처럼,멈추거나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고이 모든 것을 밀고 나아가며전진하기를 원합니다.

 

 

** 다윗은 머물렀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에서 믿음의 싸움을 멈추고 자신의 집에 머물러 있는 다윗을 보게 됩니다그리고 우리는 사무엘기하 11장 전체의 말씀에서다윗이 믿음의 길에서 단순히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뒤로 물러서고 밀려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우리 다시 한 번 사무엘기하 11장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해가 지나고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더라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더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철이나비가 많이 와서 땅이 질퍽해지는 겨울철에는 전쟁을 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여기서 왕들이 싸움에 나갈 때가 되었다는 것은이제 겨울철이 지나고봄이 되어서 다시 전쟁을 하기에 좋은 기후가 되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암몬 자손은 작년에바로 사무엘기하 10장에서 결판내지 못했던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다시 싸움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세우신 전쟁의 사람이었던 다윗은 오직 요압과 자기 신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보내고 나서정작 자기는 예루살렘의 백향목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이 전쟁은 다윗이 마땅히 몰아냈어야 할 암몬 족속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시도하다가 벌어진 것이었습니다우리는 1절에서 그러나 다윗은이라는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마땅히 전쟁에 나가서 싸움을 진두지휘했어야 할 다윗이이상하게도가장 앞장 서서 나갔어야 하는데그러나 다윗은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르비딤에서아말렉과 싸웠던 여호수아를 위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였던 모세처럼,기도를 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머무른 것이 아니었습니다다윗은 영적 나태함 가운데 빠져버렸습니다장차 자신의 아들이 건축하게 될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모든 재료를 예비하고자 하던 불타는 열정이 어느새 식어버렸습니다죽음과 한 걸음 밖에 떨어져 있지 않던 위기의 상황들 속에서그리고 예루살렘에 막 입성하면서 가졌던처음 사랑과 주님과의 동행하는 삶이 어느새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백성들이믿음의 형제들이 목숨을 걸고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나갔는데그는 여전히 예루살렘 성에 머무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 육신 안에 머무른 결과

그렇다면 이렇게 주님과의 동행을 멈추고믿음의 길에서 정지하여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던 다윗에게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요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1장 2-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녁때에 다윗이 자기 침상에서 일어나 왕의 집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지붕에서 보았는데 그 여인이 보기에 매우 아름다우므로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에 관해 물어보게 하였더니 한 사람이 이르되이 여인은 엘리암의 딸이요 족속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가 아니니이까하니라.

다윗이 사자들을 보내어 그녀를 데려오게 하니 그녀가 그에게로 오니라그녀가 그녀의 부정함에서 정결하게 되었으므로 그가 그녀와 함께 누웠고 그녀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성경은 참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성경이 만약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유대 민족의 우수성과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민족 신화였다면이 부분은 절대로 기록되지 말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단군신화를 가지고 있는데우리는 단군이 무슨 죄를 지었고어떤 중대한 잘못을 범하였는지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명량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 대한 기록들을 볼 수 있지만그들이 어떤 더럽고 추한 죄를 지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습니까놀랍고도 위대한 다윗 왕의 가장 더럽고추하고수치스러운 죄악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성경 기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시는데그것은 유대 민족이 우수하다는 것이 아니라바로 사람이라는 존재는 모두 전혀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오직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고 의지하며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시편 39편 5절 말씀에서는 모든 사람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전적으로 헛될 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다윗도 예외가 아니었고마찬가지였습니다그가 더 이상 주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그가 더 이상 주님과 동행하지 않았을 때,그가 더 이상 믿음의 길에서 전진하고 있지 않았을 때그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인 골리앗은 다윗을 쓰러뜨리지 못하였지만한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단숨에 쓰러뜨렸습니다끈질긴 생명의 위험과 사울 왕의 추격이 있었던 기나긴 날들은 그를 넘어뜨리지 못하였지만단 하루의 나태한 삶이 그를 넘어뜨렸습니다블레셋과 아말렉과 수많은 이방 민족들의 칼과 창과 화살은 다윗을 상하게 하지 못하였지만한순간의 육신의 정욕이 그를 비참하고 처절하게 무너뜨렸던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게 되면다윗은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얼마나 나태한 하루를 보내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그는 자신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치열한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낮잠을 늘어지게 자고저녁때가 되어서야 침상에서 일어난 것입니다그리고 그는 집 지붕 위에서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지붕 위에서보기에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사탄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고마침내 하나님의 사람에게 결정타를 명중시켰습니다이처럼 사탄은 언제나 틈을 노리면서육신의 정욕을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다윗이 여기서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다면믿음의 길에서 정지상태에 머무르지 않고전진하고 있었다면,그는 그 유혹의 불화살을 믿음의 방패로 능히 막아내었을 것입니다그는 옷을 벗어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갔던 요셉처럼지붕에서부터 얼른 집 안으로 들어와 주님의 이름을 불렀을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육신의 정욕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그는 믿음의 길에서 단지 정지했던 것이 아니라정욕의 거센 물살에 휩쓸려 타락의 길로 밀려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마귀의 유혹에 대하여 설명하면서새가 나의 머리 위에서 날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새가 나의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이처럼공중의 권세 잡은 자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본향에 가서 주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마귀의 모든 유혹과 공격 그 자체를 차단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승리할 수는 있습니다성령 안에서 걷는 삶을 통해서십자가의 삶을 통해서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통해서주님과의 완전한 연합을 통해서최소한마귀의 유혹을 대적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멈추면서육신의 길로 걷게 되었습니다.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라고 말씀하신 갈라디아서 5장 19절 말씀처럼다윗은 육신 가운데 걸으면서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와 간음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야는 지금 치열한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습니다다윗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 물었고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음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날마다매순간여러 가지 모양으로 죄의 유혹들이 다가옵니다우리의 힘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고이겨낼 수 없고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우리의 결심과 의지와 눈물도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오직 우리 안에 권능으로 살아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참된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우리가 오늘 나의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붙들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1)

이제 우리 함께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여인이 수태하매 사람을 보내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내가 아이를 가졌나이다하니라.

다윗은 자신의 타락과 범죄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아무도 모르게 덮여지기를 원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밧세바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으므로이제 다윗의 죄악이 만천하에 공개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보라너희가 께 죄를 지었으니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을 분명히 알지니라.” 바로 이 민수기 32장 23절의 말씀처럼다윗의 죄는 결코 숨겨지지 않았고마치 살아있는 추적자처럼끝내 다윗을 찾아내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다윗은 단지 아주 잠깐 동안믿음의 싸움을 멈추고 집에 머물렀을 뿐이었습니다.그는 단지 조금 낮잠을 자고신선한 바람을 쐬기 위해 지붕 위를 거닐었을 뿐이었습니다그는 단지 주님을 향해 처음 마음처럼 뜨겁지 않았을 뿐이었고아주 조금 식어진 것뿐이었으며결코 주님을 대적하여 범죄를 하고자 결심하지는 않았었습니다그러나 그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멈추었을 때육신 가운데 머물러 있었을 때이제 거센 유혹의 물살에 걷잡을 수 없이 밀려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걸을 때에는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지만육신 안에서 걸을 때에는 명백한 육신의 행위들이 나타나게 됩니다우리가 육신 가운데 걷다가육신의 열매들을 보게 된다면우리는 즉시 주님 안으로 돌이켜야 합니다즉시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육신의 열매로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는어떠한 행동들을 수정하거나문제들을 해결하거나수습하기에 앞서서가장 먼저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명예와 평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그는 하나님 앞에 즉시 엎드리고회개하며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기보다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지혜와 방법을 통해 일을 수습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1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헷 족속 우리야를 내게로 보내라하매 요압이 우리야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우리야가 그에게 이르매 다윗이 그에게 요압이 어떻게 행하는지백성은 어떻게 행하는지 그리고 싸움은 잘 되어 가는지 다그쳐 묻고

다윗이 또 우리야에게 이르되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하니 우리야가 왕의 집에서 떠나매 왕에게서 온 음식물이 그의 뒤를 따르니라.

 

이제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하여 속히 사람을 보내어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소환하였습니다그리고는 요압이 어떻게 행하는지백성은 어떻게 행하는지싸움은 잘 되어 가는지 다그쳐 물었습니다그렇게 싸움이 궁금하다면 직접 전쟁터에 나갔으면 될 일이었습니다또 단지 이러한 소식을 묻기 위해서였다면굳이 우리야를 소환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다만 사람을 보내어 상황을 잘 파악해서 돌아오게 하였어도 될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다윗은 다소 의아하고 당황한 표정의 우리야와 어색하고도 초조한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어쩌면 더욱 당당하고 위엄 있게 다그쳐 물으면서 행동하였을지도 모릅니다다윗은 사실 안중에도 없고관심에도 없는 전쟁이야기를 속히 마무리 짓고이제 어서 집으로 돌아가서 쉬라고 말하면서왕의 풍성한 음식물로 하여금 그를 뒤따르게 하였습니다어쩌면 다윗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이제 오늘밤만 지나면모든 것이 깨끗하게 덮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함께 9-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왕의 집 문에서 자기 주의 모든 종들과 함께 자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으므로

10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하니 다윗이 우리야에게 이르되네가 여행에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냐그런데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하매

11 우리야가 다윗에게 이르되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서 머물고 또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빈 들에서 진을 치고 있거늘 내가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함께 누우리이까왕께서 살아 계심과 내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니

다윗은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아침부터 심장이 벌렁거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우리야가 집으로 가지 않고왕의 집 문에서 다른 신하들과 함께 머물렀다는 것이었습니다다윗은 우리야를 불러서는 최대한 점잖게그리고 그렇게 큰 관심은 없는 척흘려 지나가는 투로, “아니 여행에서 돌아와서 많이 피곤할 텐데어찌 집에서 좀 쉬지 않았어?”하고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정말 충신 중의 충신이었습니다그리고 그는 여행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는 관광여행이나해외여행이나견학체험학습을 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그는 생사의 갈림길에서치열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잠시 왕의 소환을 받고 돌아온 것이었습니다여기서 우리야는 너무나 충성스러운 대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에서 머물고 또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종들이 빈 들에서 진을 치고 있거늘 내가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아내와 함께 누우리이까왕께서 살아 계심과 내 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평소 같았으면다윗이 너무나 기뻐하며주님을 찬양하고우리야를 크게 칭찬했을 법한 고백입니다또 다윗이 조금이라도 주님 앞에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면우리야의 고백 한 마디한 마디에 깊은 책망과 찔림을 받았을 것입니다우리야가 지금 왕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한 이 일을 지금 행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바로 그 살아 있는 왕다윗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2)

자신의 죄를 감추어보려던 다윗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다윗은 너무나 절박해졌습니다이제 우리 함께 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다윗이 우리야에게 이르되오늘도 여기에서 머무르라내일은 내가 너를 떠나가게 하리라하매 이에 우리야가 그 날과 그 다음 날에 예루살렘에서 머무니라.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하여금 자기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때에 그가 나가서 자기 주의 신하들과 함께 침상에 눕고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다윗은 그날 우리야를 불러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였습니다다윗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두 번째 시도로 술을 사용하였습니다우리야가 술에 취하면 집으로 돌아가서 쉴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야의 충성은 술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그는 그 날도 역시 왕의 집 문에서 다른 신하들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충성스러운 훌륭한 신하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어디에서 이렇게 귀하고 충성된 사람을 또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그러나 주님과의 동행을 멈추고믿음의 전진을 멈춘 다윗에게오히려 육신의 거센 흐름 가운데 뒤로 물러나버린 다윗에게이러한 충성된 신하는 제거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마치 사울 왕이 다윗에게 하였던 것처럼다윗이 우리야에게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시도(3) - 계획적 살인

이제 우리 함께 14-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보내니라.

15 그가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너희는 우리야를 맹렬한 싸움의 최전방에 두고 그로부터 물러가서 그가 맞아 죽게 하라하였더라.

16 요압이 도시를 살피고는 자기가 알기에 용맹한 자들이 있던 장소에 우리야를 배치하니

17 그 도시의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싸울 때에 다윗의 신하 백성 중에서 몇 사람이 쓰러지고 헷 족속 우리야도 죽으니라.

우리는 다윗의 생애 가운데 가장 가증하고비열하며더럽고잔인하고추악한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다윗의 충성된 신하였던 우리야는 다름 아닌바로 자기 자신의 살인 청부서를 들고 요압에게 보내어졌던 것입니다다윗은 자신의 너무나 충성스러운 신하의 무죄한 피를 흘리게 만들었던 것입니다마땅히 자신이 가서 싸웠어야 하는 바로 그 싸움에서목숨을 걸고 자기 대신 싸웠던 충성스러운 신하를 고의적으로 죽게 하였던 것이었습니다그의 계획은 성공하였고마침내 몇몇의 다른 백성들과 함께 우리야가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다윗은 단지 아주 잠깐 동안 집에 머물렀을 뿐이었습니다그는 처음부터 간음을 하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었고자신의 충성스럽고 무죄한 신하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습니다그는 그저 잠시 믿음의 싸움을 멈추었을 뿐이었습니다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육신에게 아주 작은 틈을 허용한 것이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 사건의 결말과 하나님의 평가

이제 우리 함께 23-27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3 사자가 다윗에게 이르되확실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해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덮쳐서 성문 입구에까지 이르렀더니

24 활 쏘는 자들이 성벽에서 왕의 신하들을 향하여 쏘므로 왕의 신하들 중에서 몇 사람이 죽었고 왕의 종 헷 족속 우리야도 죽었나이다하니라.

25 그때에 다윗이 사자에게 이르되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너는 이 일을 불쾌히 여기지 말라칼은 이 사람도 삼키고 저 사람도 삼키나니 그 도시를 향해 더욱 힘써 싸워 그것을 정복하라하고 너는 그의 용기를 북돋우라하니라.

26 우리야의 아내가 자기 남편 우리야가 죽었다는 것을 듣고 자기 남편으로 인하여 애곡하니라.

27 애곡하는 일을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니 그녀가 그의 아내가 되어 아들을 낳으니라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을 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죽음을 알리는 사자를 맞이하면서너무도 태연하게 원래 전쟁이 그런 것이라고 말하였고용기를 북돋아주고그 도시를 정복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이 모습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양심이 마비된 사람의 모습입니다이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하나님의 대적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원수였던 사울 왕조차도 끝까지 살려주었던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여기서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을 하고 있는 무죄한 신하를 죽음을 내몰았습니다그리고 다윗은 결국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완벽하게 감추는데 성공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비록 힘든 시간들이었지만이제는 다 지나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그러나 사무엘기하 11장의 모든 말씀을 마치면서오직 침묵 가운데 다윗을 지켜보시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짧은 한 문장으로 평가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행한 그 일을 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니라.

 

그 동안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다윗의 파란만장했던 삶은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면서 평화와 안식의 삶으로 바뀌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방에서 안식을 주셨고평화를 주셨습니다그러나 이제 이 모든 평화가 끝나게 되었습니다다윗은 믿음의 길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고정지하였으며오히려 뒤로 물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범죄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이제 우리는 이후로 이어지는 많은 말씀들을 통해서다윗이 육신의 길을 선택하였던 결과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일들로 나타나게 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정리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이 모든 비극은 다윗이 마땅히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 하는 시점에 집에서 여유를 부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그 시작점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고별로 문제될 것이 없어보였고지극히 작은 선택이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아니었기에믿음의 길에서 더 이상 전진하는 것이 아니었기에,육신 안에 머무르는 것이었기에 너무나 치명적인 문제였습니다.

믿음의 길에 정지상태란 없습니다우리가 오늘 전진하지 않으면우리는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오늘 전진하지 않으면우리는 결국 형제자매들을 대적하게 될 것이고해를 가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믿음으로 전진하지 않으면주님께서 주신 놀라운 복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이비록 좁고 고단하고 힘들지라도포기하지 않기를 원합니다물러서지 않고주저하지 않고전진하기를 원합니다연어들이 자신들의 고향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지느러미를 세차게 휘젓는 것처럼,우리도 오늘 비록 미약한 발걸음이라 할지라도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전진하고조금 더 주님과 가깝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격려하여 주시고믿음의 발걸음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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