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6.17.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 /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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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간청(고전 1:10)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0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잠시 말씀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의 간청”입니다.
고린도 도시와 교회
오늘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주님의 간청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린도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 간청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과거의 고린도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먼저 고린도 도시와 교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과연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 그리고 어떤 심정으로 이 말씀을 이해하였을까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어로 “장식”을 의미하는 고린도는 그리스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로마제국 아가야 지방의 수도였습니다. 동쪽에는 겐그레아 항구가 있었고, 서쪽에는 레카이온 항구가 있어서, 동양과 서양, 남방과 북방이 교차하는 좋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고린도는 도자기 공업, 융단 제조업, 철강업 등이 발달하였고, 직접 화폐를 제조할 정도로 상업과 무역이 매우 번창한 부자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도시였으므로, 다양한 지역에서 다녀가는 외지인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쾌락과 유흥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아가씨”라는 말이 “창녀”라는 의미로 통용될 정도로 고린도는 매우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에는 전쟁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고, 여신을 대표하는 수 백 명의 여사제들이 있어서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심히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방문하여 복음을 전할 즈음에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나사렛 칙령을 내려, 고린도에는 로마에서부터 쫓겨난 유대인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진 과정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다함께 사도행전 18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절부터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이 일들 후에 바울이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본도에서 태어난 아굴라라 하는 어떤 유대인을 만났는데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에게 명령하여 로마를 떠나게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왔더라. 바울이 그들에게로 가서
3 생업이 같으므로 그들과 머물며 일하니라. 그들은 그들의 직업으로 보면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더라.
4 바울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토론하며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하니라.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하던 바울은 이제 고린도로 건너와 천막을 만들어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직업으로 보면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지만, 실제 직업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 18장 말씀을 차근차근 읽어본다면 고린도 교회의 탄생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겠지만, 시간 관계상 몇 가지 중요한 부분만 살펴보겠습니다.
8절에서는 회당의 우두머리 치리자인 그리스보라는 사람이 온 집과 함께 주님을 믿고, 또 많은 고린도 사람들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바울에게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라고 기록된 로마서 5장 20절 말씀처럼, 돈과 쾌락의 도시 고린도에는 주님께 돌아올 많은 영혼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사도행전 18장 11절에서는 바울이 무려 1년 6개월이나 고린도에 머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에는 뛰어난 성경 교사인 아볼로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여 말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24절에서 28절에서는, 뛰어난 성경 교사였던 아볼로가 바울과 함께 다녔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통하여 하나님의 길을 더욱 완전히 알게 되고, 아가야로 건너가, 아가야의 수도였던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으로 구성된 국제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성경 교사와 사역자들이 방문하여 말씀을 전하고 실로 많은 이들의 섬김이 쏟아 부어진 축복받은 교회였습니다.
이제 다시 고린도전서 1장으로 돌아와서 바울이 말하는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보시겠습니다. 4절에서 7절까지 보시겠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5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었으니
6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증언이 너희 안에서 굳게 세워진 바와 같도다.
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바울은 쾌락과 죄악의 도시 고린도의 형제자매들을 떠올릴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되고 감사가 되었습니다. 회당의 치리자였던 형제로부터 시작하여, 죄의 쾌락 속에 방황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기뻐하던 여러 지체들, 한 때 아프로디테의 신전에서 여사제로 일하면서 신 내림을 받고 방언을 하며 우상을 섬겼던 자매들, 못 배우고 연약하여 멸시를 당하던 낮은 계층의 지체들, 심지어 노예로 팔려왔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던 형제자매들에 이르기까지, 바울은 이러한 성도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더 놀랍고 감사한 것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언이 굳게 세워지고 모든 말과 지식에서 풍성하게 되었으며, 주님을 섬기는 다양한 재능과 은사들이 풍성하여 다른 어떤 교회들보다 뒤처지지 않았고,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시는 재림을 소망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아름다고 감사한 교회의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면 얼마나 큰 은혜가 있었을까요?
본문 설명
우리가 처음 읽었던 10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바울은 이렇게 귀하고 감사한 고린도 교회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간청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명령을 하거나, 권고를 하거나,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요청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성도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함께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교회가 분쟁하지 않고 완전히 함께 결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말과 영적인 지식을 배우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은사와 능력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일들을 섬기게 됩니다. 또 재림에 대한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사모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찬양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즐거움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늘 간청하시는 한 가지는 바로 우리가 교회의 지체들과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말과 지식과 은사와 믿음이 충만한 한 명의 사람보다, 어리석고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을지도 완전히 함께 결합된 교회를 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11절부터 1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안사람들 편으로 너희에 관한 일 곧 너희 가운데 다툼이 있음을 내가 밝히 알게 되었노라.
12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13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고린도 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감사하고 은혜로운 교회였지만, 속에서는 서로 다투고 분쟁하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분쟁하는 주제는 누구에게 속하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처음에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었고, 우리 교회를 세운 사람이기 때문에 바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 이후에 아볼로가 와서 성경 말씀을 더 정확하고 또 탁월하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아볼로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처음부터 따랐던 제자이며, 사도들의 대표자인 게바, 베드로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죄하면서, 자신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겉으로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는 말이 정답이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교만과 육신 가운데 다투는 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들도 함께 책망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나이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며, 타고난 성격도 다르고, 과거의 살아온 환경이나 현재 살아가는 모습도 완전히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에게 공통점이라고는 모두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으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았다는 점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다양한 지체들이 완전히 함께 결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육신은 판단과 정죄, 자랑과 교만, 시기와 질투, 분열과 편 가르기를 끊임없이 일으키기 때문에, 우리에게 십자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각자 집에서 혼자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른다면 십자가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 완전히 함께 결합하기 위해서 십자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십자가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완전히 함께 결합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청하면서 십자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우리의 능력은 육신의 지혜나 힘에 있지 않고 오직 십자가에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추구하고 따라야 할 것은 사람의 지혜나 힘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이며, 우리를 위해, 또 우리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23절과 24절도 보시겠습니다.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24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고린도 성도들은 바울의 선교여행의 헌신과 놀라운 계시에 대해서, 아볼로의 힘 있고 유창한 설교와 가르침에 대해서, 베드로의 예수님과 함께 했던 생생한 체험담과 사도로서의 기적과 능력에 대해서, 무엇이 더 대단한가, 누가 더 영적인가, 하나님께서 누구를 더 크게 쓰시는가, 우리는 과연 그들 중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의 말과 지혜는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에게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권능이시며 하나님의 지혜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6-31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기억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서 어떻게 용서를 받고, 일만 달란트를 탕감 받고, 구원을 받았는지를 기억하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은혜와 긍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나같이 더럽고 죄 많은 자를 감당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으로 품어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주님만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떠올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지만, 정작 고린도 성도들은 그렇지 못하였던 것입니다.자신이 어떤 처지에서 부르심을 받았고 긍휼을 얻었는지를 잃어버린 채, 누가 더 크고 대단한 자인지를 가지고 서루 다투며 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주님만 자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뛰어남, 육신의 힘과 지혜가 아니라,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신 주님만을 자랑하기 원하십니다.
내가 약할 때 강함이 되어주시고, 내가 어리석을 때 지혜가 되어주시고, 내가 어둠 가운데 헤맬 때 빛과 길이 되어주시고, 내가 굶주릴 때 생명의 빵이 되어주시고, 내가 목마를 때 생수의 강이 되어주시고, 내가 두려울 때 요새와 방패가 되어주시고, 내가 요동할 때 반석이 되어주시고, 내가 피곤할 때 안식처가 되어주시고, 내가 외로울 때 친구가 되어주시고, 내가 고민할 때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나의 모든 상황에 나의 모든 것이 되어주신 주님만을 자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에서 1-5절을 보시겠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의 진솔한 간증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언을 너희에게 밝히 말할 때에 말이나 지혜의 뛰어난 것을 가지고 나아가지 아니하였나니
2 나는 너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느니라.
3 내가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며
4 또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를 사람의 지혜의 유혹하는 말들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과 권능을 실증함으로 하였으니
5 이것은 너희의 믿음이 사람들의 지혜 안에 서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 안에 서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태어날 때부터 당당한 로마제국 시민으로서 상류층 집안 출신이었고, 어릴 적에는 아무나 제자로 받아주지 않는, 예루살렘을 비롯한 모든 유대인들이 존경하던 가말리엘 박사 밑에서 완전한 바리새인의 방식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바울은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고, 천막을 만드는 실질적인 생존 기술까지 익히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안수하는 자마다 병을 고치게 만드는 사도이자 성경기록자로서의 권능도 부여받았고, 정치적으로나, 지식적으로나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배경과 스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엄마 친구 아들, 엄친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것 가운데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권능이신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께만 서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유혹스러운 점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바울이 전파하는 말 속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든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든지, 사람에 대하여, 육신에 대하여 자랑하거나 과시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말씀 선포가 사람의 지혜나 유혹의 말들로 되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가려주시고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간절히 원하였습니다.
하나님뿐
이번에는 고린도전서 3장 4-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하였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하였다, 하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냐?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를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고 섬기는 고마운 분들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가 사람을 따르는 자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을 보시겠습니다.
21 그러므로 아무도 사람들을 자랑하지 말라.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현재 것들이나 장래 것들이나 다 너희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만 가지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그들 모두를 가지도록 선물로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뛰어난 점이 있고, 또 부족한 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사람을 보고 사람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보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읽었던 고린도전서 1장 10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교회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히 함께 결합하기 위해서 우리는 육신의 자랑, 사람의 말과 지혜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약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을 부르셔서 구원하시고 한 교회의 양떼로 모으신 것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완전히 하나로 함께 결합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에게 자랑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지혜와 힘과 모든 것이 되어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며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혹시 우리들 사이에서 몇 주간 동안 인사 외에는 별로 나눠본 대화가 없는 서먹서먹한 지체들이 있지 않으십니까? 저도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정말 저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았는데요. 어떤 주는 제가 다른 교회에 온 것처럼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는 분들도 많이 계셔서 놀라기도 합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교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또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지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늘어나기를 원하고, 주님께서 간청하신 대로 모두가 완전히 함께 결합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가 인사만 하고 지내거나 다른 사람을 통해 소식만 듣고 지내는 겉으로의 교회 생활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처럼 깊고 친밀하며 끈끈한,완전히 결합된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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