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6.07.05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 로빈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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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누릴 수 없는 선물들(고전 12:1,12-2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그리고 1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모르면 누릴 수 없는 선물들"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는 현재 "교회"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올 준비를 하면서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녀 보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적어놓았습니다. "나가서 외국 친구들을 사귀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가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떤 유학생이 중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등등 여러 나라의 룸메이트들과 함께 생활을 했는데 하루는 다같이 모여서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서로 자기 나라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친구들이 갑자기 가만히 듣고 있던 이 유학생에게 "한국에 대해서도 자랑해 보라"고 물었습니다. 이 유학생은 88올림픽, 2002월드컵 외에는 그다지 할 말이 없는 자기 자신을 보며 부끄러워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누군가가 자기 나라, 자기 민족, 또는 자기 학교, 자기 집안과 같이 자기 자신이 속해있는 단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면 그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를 모르고, 우리가 어떤 교회의 모습을 이루려하는지 나아갈 방향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너무나 부끄러운 일일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크고 중요한 주제들이 많이 있는데, 이 "교회"라는 주제 또한 너무나 크고 방대해서 한 두 번의 설교로는 다 설명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대표해서 "교회시대"라고 부를 만큼, 이 교회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나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님, 교회는 언제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죽기 전까지 또는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면 좀 그러니까 그냥 모아 놓으신거죠?"라고 묻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에베소서를 보여주시며 "내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계획하였느니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여 이 세상에 비춰주는 교회의 모습을 저 우주의 태양 빛을 반사하여 지구 위에 비추는 달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창조세계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에베소서를 잘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획하신 교회에 대한 놀라운 말씀들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얻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그림을, 저 오래 전에 아담이 이브를 얻기 위해 죽음의 잠을 통과했던 것으로서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죄를 지어 타락하기 이전의 아담은 이브의 죄를 씻거나, 이브를 구원하기 위해서 잠든 것이 아니라 오직 이브를 얻기 위해서 죽음의 잠을 통과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면으로 우리의 죄를 감당하시고 우리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짊어지시려고 죽으셨지만, 그 뿐만 아니라 아담이 이브를 얻기 위해 죽음의 잠을 통과한 것처럼,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교회를 얻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사도 바울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당신은 빨리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당신을 구원하신 주 예수님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 세상에 너무 재밌는게 많아서 빨리 가기는 아쉽지요?"라고 묻는다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장을 보여주며 "내가 이 죄 많은 세상에서 고통받으며 사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자살을 하여서라도 주님께 가는 것이 훨씬 좋지만, 나는 지금 교회를 위해 이 땅에 남아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다시 누군가가 사도 바울에게 "원래 주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당신을 부르셨는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야 되니까 교회를 세워서 사람들을 모은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다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여주며 "아닙니다. 나는 나 스스로 천막을 만들어 생활을 유지하며, 그렇게 번 돈을 교회를 위해 다 소비할지라도 나는 교회를 세워야만 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회를 알려주시기 위하여 아주 많은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목자를 따르는 양떼와 같고, 상관에게 절대 복종하는 군대와 같으며, 신랑을 기다리는 순결한 신부 같고, 태양 빛을 받아 비추는 달과 같으며,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과 같고, 진리를 지탱하고 떠받치는 기둥과 같고, 약하고 병든 자들이 치유 받는 병원과 같으며,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이 일깨움을 받고 배우는 학교와 같고, 부모 없는 고아같이 방황하며 헤매는 자들을 돌보는 아버지 집과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인터뷰에 대답하신 것처럼, 이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만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또 사도 바울이 인터뷰에 대답한 것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큼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자기가 이 땅에 살아남아 있는 목적이라고 말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교회에 대하여 잘 모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음식과 바꾸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는 교회를 알지 못한다면 당장 눈앞에 직면한 나의 정당성과 나의 만족을 얻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다 희생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12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마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용서하셨지만 각 사람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알고 믿음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영적 선물들을 주셨지만 우리는 그 영적 선물들에 과하여 듣고 알고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만이 그것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영적 선물들"이란 바로 "은사들"을 말합니다. 4절부터 11절까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이 말씀에서는 아주 여러 가지의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선물들, 기적들, 대언함, 영들 분별함, 여러 종류의 타언어들, 타언들 통역함 등등 많은 종류의 선물들, 은사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러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영적 선물들에 관해 모르면 안된다고 했어"하면서 이 은사들의 항목에 대해서 집중하여 공부하려고 했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선물들... 이렇게 세어보니 항목들이 모두 9개구나. 로마서 12장에는 또 다른 항목들이 나왔는데 겹치는게 뭐뭐 있고 다른 것이 뭐뭐 있나 한번 찾아보자. 일단 여기에 나온 지혜의 말씀을 풀이해 보자면 영적으로 말씀을 잘 적용하여 지혜와 훈계에 이르도록 가르치는 은사가 아닐까, 지식의 말씀이란 진리의 지식을 교리적으로 말씀을 잘 나누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믿음이란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본적으로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서 주님을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그런 은사가 아닐까, 병 고치는 은사들은 초기 사도들 시대에는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진 은사이고... 등등등" 하면서 이 은사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암기하고 나면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공부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선물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를 향해서 "영적 은사들"에 관하여 알아야 한다고 말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4절부터 7절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읽는다) 그리고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읽는다)
먼저 우리가 영적 선물들에 관해서 첫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영적 선물들의 종류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러한 다양한 선물을 주신 성령님, 주님, 하나님은 하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7절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각 사람에게 다양한 선물들을 주신 이유는 바로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11절을 보면 성령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선물들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을 보면 이렇게 다양한 선물들을 가진 우리 한 명 한 명의 각 지체들이 모여서 한 몸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는 한 몸으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우리 각 개인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같이 2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개별적으로 지체니라." 우리가 각각 떨어졌을 때는 한 지체이지만 다같이 모였을 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이시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것입니다. 
지금 이 서신을 직접 받아서 읽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아주 뛰어난 지체들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한 명 한 명 살펴볼 때 너무나 훌륭했습니다. 성경 지식이 아주 뛰어났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아주 열정적이었으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몹시 사모하였고, 여러 가지 필요한 일들을 능력 있게 처리하며 주님을 섬길 만한 은사와 재능을 가진 지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시기하고 다투고 경쟁하며 자기를 높이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들이 주님이 주신 영적 선물들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제 우리가 읽은 12장에 이르러서는 영적 선물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한 몸에 속한 지체들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지체는 눈의 역할을 하여 잘 볼 수 있고, 어떤 지체는 손의 기능을 하여 일들을 잘 처리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자매님은 귀의 역할을 하여 다른 이들의 고민을 잘 들어 줄 수도 있고, 또 어떤 형제님은 입의 역할을 하여 필요한 때에 적절한 말을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기능들을 선물로 주신 목적이 바로 전체 몸 안에 속해 있는 지체들 모두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가령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잘 설명하는 형제님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형제님에게 그러한 은사, 그러한 재능을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형제님에게 그러한 기능을 주신 목적은 스스로를 높이고 우쭐하며 잘 설명하지 못하는 지체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체들을 섬기고 돕기 위한 것입니다. 
또 우리 가운데 찬송을 아주 아름답게 부르는 자매님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매님에게 그러한 목소리와 재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다른 지체들 가운데는 음치도 있고 목소리가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매님에게 그러한 기능을 주신 목적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선물로 받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뽐내고 자랑하며 노래 못하는 지체들을 경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러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할 때 다른 지체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유익을 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형제님은 꼼꼼하고 세심하여서 다른 지체들이 실수로 간과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담대하여서 모두가 걱정하고 주저할 때 앞장서서 전진해 나가는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자매님은 다른 지체들이 생각하고 말하는 동안 직접 가서 일을 처리하는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표현과 나타남이 어떤 형태일 지라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러한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발의 기능을 주셨다면 나는 그 기능으로 인해 감사하면서 교회에서 열심히 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눈의 기능을 받은 지체를 정죄하면서 "너는 맨날 눈만 꿈뻑꿈뻑 거리고 쳐다보기만 하면서 직접 걷는 법을 전혀 못 배웠구나!"라고 호통을 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눈의 기능을 하는 지체는 "자기는 맨날 엉뚱한 방향으로 쓸데없이 걸어다니면서, 제대로 볼 줄이나 아느냐!?"하고 반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는 한 지체에 불과하며, 우리는 이미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나를 높이고 다른 지체들을 업신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또 다른 지체의 장점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부러워하고 주눅들 필요도 없습니다. 몸 안의 모든 지체가 눈일 필요가 없고, 모든 지체가 손일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기능들을 선물로 주신 것은 그것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지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주님을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없는 다른 기능들을 다른 지체에게 선물로 주신 것은 그 지체로 하여금 나를 돕고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면에서 나는 섬김을 받고 그 선물들로 인하여 감사하며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는 기능은 몸을 위한 것이고, 다른 지체에게 있는 기능이 또한 교회를 위한 것이므로 우리 모두는 각자 지체로서 받은 선물들을 가지고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갑자기 그 동안 하던 일을 다 청산하고 하루 종일 성경공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 밀림 속에 들어가서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일이 주님의 일이 될 수 있지만 꼭 그렇게 크고 놀라운 일들 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속하게 하신 지역교회 안에서 한 명의 지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입의 기능을 주셨다면 나는 입의 기능을 받은 그대로 역할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셨으면서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른 지체들을 유익하게 하고 섬길 수 있도록 선물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공급받고 채움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지체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전에 저는 공익근무를 하면서 시청 사회복지과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때 사무실에서 작은 커피자판기를 새것으로 바꾸면서 그 전에 쓰던 커피자판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 갈보리교회에서 커피자판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달라고 해서 공짜로 얻어온 적이 있습니다. 한 형제님께서 시청까지 오셔서 자판기를 받아 가셨고 깨끗이 씻고 작동이 잘 되는지 테스트를 해서 예배당에 잘 배치해 두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그런 일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제 토요일날 모임을 가졌는데, 들어오는 성도님들마다 커피자판기를 보면서 어디서 났느냐고 궁금해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또 다른 형제님이 서 계십니다. 그 형제님은 엔지니어이신데, 무엇을 설명하고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일을 아주 좋아하십니다. 그 형제님은 아예 커피자판기 옆에 서서 들어오는 성도님들이 궁금해 할 때마다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하면서 전혀 짜증을 내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아주 즐겁게 모든 지체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아, 이거요, 승선형제가 시청에서 얻어온 거에요. 사무실에서 커피자판기를 새걸로 바꾸는데 이걸 어디에 처리할지 고민하는 걸 얻어왔다고 하더라구요. 커피 한번 드셔보세요. 여기 옆에 설탕이랑 프림 따로 있는데 더 넣어드세요." 

주님을 섬기는 일은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상하실 섬김이란 뭔가 특별하고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속한 교회 안에서, 내가 오늘 속한 몸 안에서, 하나의 지체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해내며 다른 지체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며 보상하실 섬김인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이며, 내가 지체라면 나는 이미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그 선물은 한 면에서 내가 하나의 지체로서 다른 지체들을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기능이고, 또 한 면에서는 다른 지체들이 가진 다양한 기능들이 또한 내가 받은 선물입니다. 각자가 받은 선물을 조금씩 가지고 다 모였을 때 우리는 한 몸으로서 모든 기능을 다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눈 혼자서는 보는 것만 할 수 있지만, 눈이 몸에 붙어있기 때문에 눈은 들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고, 먹을 수도 있고, 달릴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있는 모든 지체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데 한가지씩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허락하여 주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선물들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것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선물들을 보며 서로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사하고 누리며 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정말 기뻐하시는 교회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형제사랑과 하나됨(고전 1:4-10)/로빈


2001.12.19.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19세)

제목 : 형제사랑과 하나됨

본문 : 고린도전서 1장 4-10절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5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었으니

6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증언이 너희 안에서 굳게 세워진 바와 같도다.

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8 그분께서 또한 너희를 끝까지 견고하게 하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너희가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

10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오늘 저는 “형제사랑과 하나됨”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할 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대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마치 우리 교회가 고린도 교회이며 우리 각자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인 것처럼 말씀을 대하기 원합니다. 


** 바울의 감사

바울은 먼저 고린도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하나님께 고린도 교회를 향한 감사를 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나의 하나님께 항상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감사의 내용이 4절부터 7절까지 나옵니다.


4절부터 7절까지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항상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5 너희가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되었으니

6 이것은 곧 그리스도의 증언이 너희 안에서 굳게 세워진 바와 같도다.

7 이로써 너희가 어떤 선물에서도 뒤쳐지지 아니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나니

고린도 교회로 인한 감사의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든 일, 곧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요해져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고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교회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기까지 보았을 때 고린도 교회는 정말 놀라운 교회입니다.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고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경 지식에 있어서 매우 부요하였기 때문에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확고하였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굳게 붙잡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갈라디아의 교회들과 달리 다른 복음과 거짓 형제들의 미혹하는 말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각자 각자가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요해서 그리스도의 증거를 확고히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음으로 인하여 감사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정말 재능 있고 각각의 은사를 가진 형제자매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곳곳에 필요가 있을 때마다 그 일에 적합한 은사들을 가진 지체들이 많이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주님을 섬기기에 참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던 교회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모든 지식과 은사에만 부요하였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이 땅에 정착하지 아니하며, 타국인이요 순례자로써 살았던 교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볼 때에 어떠한 마음을 가지십니까? 우리 교회도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겠습니까?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요하며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고 하늘로부터 다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교회! 우리는 이러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 바울의 한 가지 권면 - 온전히 함께 연합하라

만약 여러분이 사도 바울이라면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게 어떠한 권면을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편지를 쓰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게 무엇을 더 적으시겠습니까? 

“뭐 잘 하고 있네.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있나? 뭐 지식도 부요하고, 아무 은사에도 부족하지 않고 거기다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까지... 뭐 완벽하구만.”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10절에서 바울의 권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바울은 10절에서 “하나 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분열이 없게 하고 같은 생각과 같은 의견으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개개인이 뛰어났던 교회였습니다. 각자 각자가 성경 지식으로 무장되어 있었으며 각자 각자가 은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각자 각자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참으로 놀라운 것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형제사랑과 하나됨”이라는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해 육신적이라고 말합니다. 

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


사도 바울은 모든 말과 모든 지식에 부요한 한 교회를 가리켜 육신적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는 한 교회를 향해 어린 아기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한 교회를 가리켜 너희가 너무 육신적이어서 도저히 영적인 사람을 대하듯 말 할 수가 없다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 안에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영적인 그리스도인의 표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경 지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어떤 은사를 가졌는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가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면서 주님을 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지식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주님을 사랑한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은사 또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고 교회 안에서 자신의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은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는 주님을 어떻게 섬겨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은사란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에 관해서는 너무도 중요해서 어떻게 강조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주님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그에게는 어떠한 위로도 소망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은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형제사랑과 하나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육신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의 표식은 무엇입니까? 단지 그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는가 입니까? 단지 얼마나 많은 은사들을 가졌는가 입니까? 단지 얼마나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가 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의 표식은 “형제사랑과 하나됨”인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 교회와의 비교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서 세 안식일에 걸쳐, 그러니까 삼 주간에 걸쳐 말씀을 전한 결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형제들에 의해서 베레아로 보내지게 됩니다. 이 데살로니가 교회는 삼 주간의 말씀 전파로 세워진 아주 어린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낸 것처럼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데살로니가 교회는 모든 지식에 부요하다는 칭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3주 만에 세워진 교회인지라 많은 지식을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은사 면에서도 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성도들로 모여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서 믿는 모든 자들에게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 1:7)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주 어린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칭찬을 들은 것입니다. 삼 주간의 말씀전파로 갑작스럽게 세워진 교회가 그 지역에서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이 어리고 어린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지방에서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될 수 있었습니까?


직접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데살로니가전서 4장 9절을 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형제의 사랑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서로 사랑할 것을 너희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다른 면에서도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겠지만 바울은 특별히 “형제사랑”에 대한 부분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형제사랑이란 주제에 관해서는 쓸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하나님께 몸소 배워 서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고린도 교회와 대조됩니까? 고린도 교회는 모든 말과 지식에 부요하며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육신적이라고 책망을 받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3주 만에 세워진 아주 어리고 미약한 교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대조적으로 만든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형제사랑”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었고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사랑”에 관하여 바울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서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적인 교회와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된 교회의 명백한 차이점인 것입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열” 그리고 “형제사랑과 하나됨” 이 두 가지가 육신적인 교회와 본이 되는 교회는 나눈 것입니다. 


** 진리의 지식, 은사, 주님의 다시 오심의 목적 - 교회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정말 알아야 할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지식적으로는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형제사랑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소중함이었습니다. 


** 진리의 지식

진리의 지식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의 지식을 자랑하기 위함입니까? 나의 잘난 것을 드러내기 위함입니까? 하나님의 종들을 판단하기 위함입니까? 나보다 무식한 자들과 분리하기 위함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지체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실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이 귀중한 복음을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진리의 지식을 얻었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귀중한 진리의 지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진리의 지식은 주님의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서 주님을 섬기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섬기는 것이며 지체들을 돌아보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이 귀하고 귀한 진리의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합니다. 


** 은사

고린도 교회는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정작 그 은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은사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의 재능을 자랑하기 위한 것입니까? 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까? 나보다 무능력한 사람들과 분리하기 위함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은사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한 지체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전체는 은사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가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그 은사가 왜 주어진 것인지를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읽지는 않겠습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시간을 내실 수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은사의 목적을 알았다면 그들은 시기하고 다투고 분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은사를 가진 것은 내 옆의 지체를 세우기 위함이며 내 옆의 지체가 나에게 없는 은사를 가진 것은 나를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온전히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큰 최상의 은사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전체는 그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도 시간을 내셔서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할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옆의 지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 주님의 다시 오심

고린도 교회는 각 성도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가지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신랑은 누구이며 신부는 누구입니까? 신랑은 우리 주님이며 신부는 교회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진실로 기다린다면 그는 자신을 정결케 할 뿐만 아니라 교회를 돌아볼 것입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지체들의 마음도 돌아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주님의 다시 오심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히 10:25). 주님의 다시 오시는 그날이 가까워 오는 것을 볼수록 모이는 것을 저버리지 말고 서로 권면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리의 지식과 은사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목적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새기기 원합니다. 


** “형제사랑과 하나됨”이란?

그렇다면 형제사랑과 하나됨이란 무엇입니까? 오늘의 본문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이제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다 같은 것을 말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판단 안에서 완전히 함께 결합하라.


형제사랑은 무엇입니까? 단지 나의 생각을 접는 것입니까? 단지 입으로만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단지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입을 다무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것을 말하고 분열이 없으려면 생각이 같아져야 합니다. 마음과 의견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됨인 것입니다. 


** 어떻게 하면 형제사랑에 이를 수 있는가? - “그리스도”

우리는 하나됨을 어떻게 이룰 수 있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면 됩니까? 무조건 내 생각을 버리고 형제들의 생각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사랑과 하나됨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사도 바울은 온전히 함께 연합하라고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뉘시느냐고 말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질책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전파하는 것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보십니까? 갑자기 바울이 편지의 흐름을 바꿔서 복음을 전하는 문제에 대해서 적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에게 하나 되는 비결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찾고 헬라인들은 뭔가 심오하고 깊은 듯한 지식을 찾지만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전파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마치 유대인들처럼 눈에 보이는 능력있는 은사들을 찾고 마치 헬라인들처럼 뭔가 심오하고 깊은 듯한 성경 진리를 알고자 하지만 정작 십자가에 처형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마치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이 지혜를 찾는 것처럼, 진리의 지식과 능력 있는 은사들을 갈망하였고 부족함이 없이 가졌다는 칭찬을 받았으나 그 근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능력과 지혜의 근원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4절을 보시겠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 진리의 지식을 깨달았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 능력 있는 은사들을 받았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나의 지식, 나의 은사가 모두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의 입에서는 주님을 자랑하는 말들이 나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29-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31 이것은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를 자랑할지니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형제사랑이 없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형제사랑이 없고 하나 되지 못하는 것입니까? 서로 높아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지식과 은사를 자랑하며 자신을 높이려 하기 때문에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며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주님께로부터 나왔음을 우리가 인식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을 멈출 때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입을 열어 주님을 자랑하고 주님을 찬양한다면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교회에 형제사랑이 넘치며 모든 지체들이 하나 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마무리

저는 오늘 고린도전서 1장 전체에 걸쳐서 형제사랑과 하나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모든 말과 지식에 부요하며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아주 귀한 교회였지만 형제사랑이 없고 시기와 다툼과 분열로 인해서 육신적이며 어린아이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삼주 만에 세워진 어린 교회였지만 형제사랑으로 인하여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서 믿는 모든 자들의 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두 교회를 비교해 봄으로써 형제사랑과 하나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살펴보았습니다. 성경 지식과 은사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의 초점이 교회인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사랑과 하나됨에 반드시 이르러야 한다는 것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형제사랑과 하나됨을 온전히 이루려면 우리는 우리의 주장과 자랑을 내려놓고 주님을 자랑하고 높여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다른 교회의 목사님들과 선교사님들로부터 여러 가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 칭찬은 각 성도들이 성경 지식에 뛰어난 교회, 역량 있고 젊은 일꾼들이 모인 교회, 복음에 열정적인 교회라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우리교회가 주님 앞에서 참된 형제사랑으로 하나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교회가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이 믿는 자들의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을 계기로 형제사랑과 하나됨의 중요성을 더욱더 인식하고 그것을 위해 주님 앞에 기도하며 진력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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