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17.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설교 / 로빈3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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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오늘(히 3:1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3장 13절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가운데 아무도 죄의 속임수를 통해 강퍅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오직 오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오직 오늘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분이시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과거와 미래의 감추어진 모든 일들을 가장 정확히 아시는 분이시며, 자기 뜻대로 모든 일들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제도 살았고, 또 내일도 살게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시간의 문제에 대해서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오늘 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속한 시간이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오직 오늘인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처음 읽은 히브리서 3장 13절을 다시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다.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너희 가운데 아무도 죄의 속임수를 통해 강퍅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성경은 우리가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서로 날마다 권면하고 교제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죄의 속임수를 통해 마음이 딱딱해지고 굳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는 언제나 속임수를 통해 교묘히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죄 속에 빠져들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벌써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교만의 속임수에 빠져들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경우에라도 형제자매들을 미워하는 마음은 죄악입니다. 그것은 살인죄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어떤 형제자매에 대하여, 그는 정말 나쁜 사람이고 또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미워하는 마음이 정당한 것인 것처럼 우리를 속이기도 합니다. 또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는 우리가 돈을 많이 벌어서 주님의 사역을 지원할 수가 있고, 어려운 지체들도 도울 수가 있고, 또 나 자신은 돈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속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오직 오늘 서로 날마다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빠져 마음이 딱딱해지고 강퍅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서로의 죄나 잘못을 지적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이 늘 주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있어서 부드럽고 온유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 주님의 은혜를 나누고, 간증을 나누고, 또 교제하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오늘이라 부르는 때에 그렇게 매일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일
우리는 과거의 일들에 얽매이는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과거의 일들에 얽매여서 오늘을 잘 살아가지 못하게 늘 공격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아픈 상처나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의 마음을 통해서 공격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실패나 어려움을 통해서, 또 때로는 과거의 영광이나 자랑을 통해서 오늘의 삶을 바르게 살지 못하도록 막아서기도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신실하고 놀라운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그렇지 못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놀라운 지혜로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의 뜻대로 다스렸던 솔로몬 왕은 그의 노년에 우상숭배자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주님을 사랑하여서 사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러 다녔던 데마는 나중에 이 세상을 사랑하여서 사도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 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놀라운 헌신이나 믿음의 업적은 오직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죄의 속임수는 날마다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믿음의 행로들은 주님께서 잊지 않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과거에 머무르거나 연연하지 말고 오직 오늘을 신실하게 믿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과거에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다윗도 오늘을 깨어있지 않았을 때, 간음하고 살인하는 자가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과거에 담대하게 갈멜 산에서 홀로 바알의 대언자들 450명과 겨루어 승리하였던 엘리야는 오늘을 깨어있지 않았을 때,이세벨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과거의 용기는 오늘을 붙들어주지 않고, 과거의 믿음은 오늘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이라 불리는 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과거의 실패에도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승리가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과거의 패배도 오늘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오직 오늘을 산다는 말씀은 한 면에서 우리에게 경고가 되고 일깨움이 되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또 한 면에서는 우리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과거에,어제까지, 또는 방금 전까지 어떤 상태에 있었든지 우리는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 옛 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성경은 분명하게 옛 것들은 모두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원래 이것을 못하고,나는 원래 이렇고 저렇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는 오직 오늘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을 어제와는 완전히 다르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옛 것들은 모두 지나갔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나는 원래 이렇고 원래 저렇다는 과거의 것들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매순간, 오직 오늘을 주님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잠언 24장 16절에서는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로부터 자유롭기를 바라시고, 방금 전까지 실패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과거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오늘을 사는 것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미래의 일
이번에는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에 대해 계획하고 상상하면서 기대를 하기도 하고 걱정이나 염려를 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미래에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고 오직 오늘을 신실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이제 곧, 가까운 미래에 주님이 오실 것이기 때문에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하지 않거든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미래에 주님이 오실 것을 진정 기다린다면 오늘 최선을 다해 일하고 신실하게 살라고 명령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함께 야고보서 4장 13-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자, 이제 너희가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한 해 동안 거기 머물며 사고팔고 하여 이득을 얻으리라, 하거니와
14 내일 있을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그것은 곧 잠시 나타났다가 그 뒤에 사라져 버리는 수증기니라.
15 그런 까닭에 너희가 마땅히 말하기를, 주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며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하여야 하나
우리는 미래의 일들을 계획하고 준비할 수 있지만, 그 모든 일들이 오직 주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나 저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있을 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나중에 주님께 잘 순종하고 주님을 잘 따르겠다고 결심합니다. 내일부터, 또는 다음 달부터, 또는 2년 뒤부터 주님께 완전히 헌신하겠다고 결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을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미래에 주님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작은 것을 포기하지 않고, 오늘 작은 것을 믿음으로 내려놓지 않는데, 어떻게 미래에 큰 것을 버리고 큰 것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도 오직 오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몇 구절 펴보시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입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받아 주는 때에 내가 네 말을 들었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구조하였노라, 하시나니, 보라, 지금이 받아 주시는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날이로다.)
바로 오늘,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9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사 위를 보시고 그를 보며 그에게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오늘 내가 반드시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노라, 하시니
주님께서는 삭개오를 구원하실 때 내일 너희 집에 가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내가 반드시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 내려놓지 않은 어떤 부분이 있다면, 계속해서 나중으로 미루고 있는 어떤 부분들이 있다면, 오늘 반드시 내려놓기 원합니다. 오늘 반드시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밤 주님이 오실 수도 있는 것이고, 오늘밤 주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가 잠들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또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누가복음 23장 43절에서는 주님께서 십자가 옆의 강도에게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오늘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번에는 출애굽기로 한 번 가보시겠습니다. 출애굽기 8장 9-10절입니다.
9 모세가 파라오에게 이르되, 나보다 먼저 영광을 취하소서. 내가 왕과 왕의 신하들과 왕의 백성을 위해 어느 때에 간구하여 왕과 왕의 집에서 이 개구리들을 멸하고 그것들이 강에만 있게 하리이까? 하거늘
10 그가 이르되, 내일이니라, 하매 모세가 이르되, 왕의 말씀대로 될지니 이로써 왕께서 주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없음을 아시리이다.
이 장면은 이집트에서의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의 모습입니다. 파라오가 개구리들을 치워주면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겠다고 말하자 모세가 어느 때에 그렇게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파라오는 어리석게도 “내일이니라”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했어야 할 것 같은데 파라오는 다시 하룻밤을 개구리들과 보낼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문제를 가리키시면서 우리가 즉시 버리기를 원하시고,즉시 포기하기를 원하시고, 즉시 꺾기를 원하시고, 즉시 내려놓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내일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합니다. 우리가 어리석은 파라오와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고, 오직 오늘이 있음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다함께 마태복음 6장 33-34절을 보시겠습니다.
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 그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들을 염려하면서 오늘을 낭비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첫째로 구하기를 원하십니다. 내일을 약속하고 미래를 약속하는 것 말고, 오늘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찾으라
성경은 우리가 오직 오늘을 사는 동안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 권면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어있지 않습니다. 옛 것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미래에 매어있지도 않습니다. 내일은 우리에게 속한 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내일을 살 수 있고, 활동할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과거의 믿음의 승리를 떠올리며 오늘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미래에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하지 말고 오늘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다함께 에베소서 5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16절을 보시겠습니다.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간에 대해 명령하고 계십니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되찾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되찾는다는 단어를 영어로 보게 되면 “redeeming”이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값을 치르고 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오직 한번 뿐이며 세상의 날들은 너무나 악하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 귀한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시간들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 중 몇 시간을 주님과 보내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 중 몇 분이나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 중 몇 분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 중 몇 분이나 형제자매들과 사랑을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리석은 욕심 가운데 낭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대가를 치르고 시간을 얻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 대가는 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대가는 때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즉 돈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대가는 육신의 욕심을 채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대가는 학교 성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두뇌 회전이 가장 빠른 청소년기에, 정서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청소년기에 주님을 배우고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은 그러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5장 17절과 1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7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의 뜻을 이해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의 뜻은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어제까지 어떠했든지 오직 오늘 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고, 마음이 딱딱하거나 강퍅하지 않고,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래의 일들을 염려하다가 오늘 하루를 낭비하지 않고, 오직 오늘 주님을 향해 뜨겁게 불타오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육신 안에서 하루를 내버리지 않고, 오직 성령을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주님과 만났습니까? 우리는 오늘 주님과 동행하였습니까? 우리는 하루의 각 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간표에서 사라져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우리의 시간표에서 추가되어야 할 것들은 없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오직 오늘이라 부르는 날들 속에서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고 하나님께 시간을 드리는지 카운트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드림과 섬김과 봉사와 헌신의 시간을 단 1분 1초도 놓치지 않고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오늘 하나님을 선택하고 하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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