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8.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6세)

제목 : 내게로 오라 내게 배우라(갈 5:16-26)

본문 :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마태복음 11장 28-30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두 군데입니다. 먼저 우리가 항상 찾아보는 갈라디아서 5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26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18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19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20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21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말하노니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께서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면 또한 성령 안에서 걸을지니

26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시기하지 말지니라.

그리고 또 한 곳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입니다.

28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성령의 열매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8번째 열매인 "온유"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말씀, "내게로 오라 내게 배우라"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내게로 오라 내게 배우라"하고 초청하신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온유와 겸손

오늘은 성령의 열매 중에서 8번째인 온유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저는 전에 성령의 열매 중에서 왜 겸손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온유와 겸손이 아주 밀접하고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복음 11장 29절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하고 함께 사용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 다른 곳에서도 종종 온유와 겸손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골로새서 3장 12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는 온유함이 있을 수 없고, 온유함이 없는 겸손이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온유에 대해서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는 "온유는 마치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그 위에 날카로운 돌을 던지면 그대로 받아들여 흘려보낸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저에게 많은 묵상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귀하고 좋은 물건이 다른 것과 부딪힐 때 상처를 받거나 깨지게 됩니다. 그러나 잔잔하게 흐르는 거대한 강물은 그 어떤 외적인 것으로도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흘려보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저는 목이 마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정말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성령으로 충만하게,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고 싶은데 저는 너무 더럽고 추해서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목이 마릅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성경은 직접 이 생수의 강들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니"

누구든지 목마른 자가 주님께 나아와 마시게 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누구든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올 때, 주님께서는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 생명의 성령의 거대한 강물을 흘려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삶이 메마를 때 우리는 온유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의 작은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아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흐르고 있다면 사람들이 돌을 던질지라도 다 받아내고 흘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에게 뭐라고 말하는가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성령님으로 가득한가 입니다.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우리가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주님은 목마른 자들을 부르셨고 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주님이 주신 안식이 가득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향해 온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목마르고 무거운 짐을 지며 수고할 때에 우리는 결코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이 넘치고 부드럽고 온유할 수 없습니다.

저는 비록 공익출신이지만, 그래도 한 달 동안은 가장 추운 12월 겨울에 26사단 불무리 신병교육소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훈련기간 동안 딱 한번 야간 행군을 했습니다. 모두 완전군장을 하고 행군에 나섰습니다. 무거운 배낭도 매고 총도 들고 열심히 줄을 맞춰 걸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으쌰으쌰 파이팅을 외쳤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제 모두들 점점 지치게 되었을 때 함께 훈련을 받던 한 동료가 "힘내자"하고 외쳤습니다. 그때 모두들 다시 힘을 내며 "힘내자"하고 화답하면서 열심히 걸어갔습니다. 또 시간이 지나고 다들 많이 지쳐갔습니다. 그 친구는 계속해서 한 번씩 "힘내자"하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다른 친구들이 "야, 조용히 좀 해"하고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힘이 빠지고 지쳐있을 때는 힘내자고 외치는 그 소리마저 귀찮고 짜증나게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온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안식을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의 짐을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이 땅에 사는 동안은 우리에게 져야할 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는 많은 짐을 지고 수고할지라도 장차 하늘에 가서는 영광 중에 안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짐을 질뿐만 아니라 연약한 다른 사람의 짐도 함께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서 짐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짐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권능과 안식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님께서 교회를 위해 많이 수고하시고 많은 짐을 지고 계시면서 몸도 마음도 피곤하신데, 주님께서 그 짐을 다 제거해 주셔서 목사직을 내려놓게 하시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안되죠. 우리 형제들이 어서 일어나고 모두 주님께 나아가서 안식을 얻고 힘을 얻어서 함께 교회의 무거운 짐을 지고 함께 동역하며 수고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29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십니다. 주님은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로부터 배울 때 우리는 우리 혼을 위한 안식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나사렛 출신의 가난한 목수를 떠올려 보십시오. 강남 출신도 아니고 나사렛 출신입니다. 당시에 나사렛이란 마을은 아주 볼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란 사람은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느냐?"고 말할 만큼 무시당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실제 탄생은 왕의 마을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의 삶은 나사렛에서 더 길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사렛의 목수들은 자기 목공소를 가질 만큼 생활이 넉넉하지 못했고, 나사렛 주민들도 가구를 구입할 만큼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의 목수들은 망치 하나와 못 통을 들고 "문짝 고치세요. 식탁 고치세요."하고 외치면서 갈릴리 주변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에 대해 말씀하실 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아직 오십 세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볼 때 오십 세가 조금 안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20살이 안 되었을 때 한 대학교 캠퍼스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당시에 캐쥬얼 마이를 입고 성경을 들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한창 전하는 중에 한 학생이 "선배님은 어쩌구저쩌구"하고 저에게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훨씬 더 어린데, 아마도 그분은 신입생이었고, 저를 기독교 동아리를 홍보하는 선배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경우가 심합니다. 예수님은 30세가 되어 사역을 시작하셨고, 33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젊은 예수님을 보고 아직 50세가 못된 사람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날 화가들이 그리는 금발의 꽃미남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2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 비천하고 어리석은, 그리고 더럽고 추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마지막 아담으로서, 인류의 대표로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대신 심판 받고자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러한 주님의 모습은 강하고 거대한 나무가 아니라 연한 초목과 같았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볼품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실 때 자신의 환경을 선택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냄새나고 더러운 말구유에서 태어날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태양에 검게 그을렸고, 사람들이 볼 때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는 모습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면 우리는 온유와 겸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제 안에, 너무나 거칠고 날카로운 제 안에,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시며, 놀라운 신비입니다.

**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한 모세

우리는 구약성경에서도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다는 평가를 받은 모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민수기 12장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민수기 12장 1절부터 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모세가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결혼한 그 이디오피아 여인으로 인하여 모세를 비방하니라.

2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주께서 이 말을 들으시니라.

3 (이제 이 사람 모세는 매주 온유하여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하였더라.)

4 주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오라, 하시니 그 세 사람이 나아가매

구약성경의 기록들이 우리 주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데, 그 중에 모세는 요셉과 함께 정말 놀라운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모세가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절당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거절당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모세가 40년 뒤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받아들였고, 모세는 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이스라엘이 주님을 메시아로 영접할 것이고 주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모세는 이디오피아 여인과 결혼하였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말 놀라운 예표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로 대표되는 교회를 신부 삼으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깊은 의미를 모르는 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비방하는 2절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는 비난은 표면적인 것이고, 사실은 교만함 가운데 자신들을 높이고자 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참으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들의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모세의 누나였던 미리암은 홍해를 건널 때에 여대언자로서 이스라엘을 향해 주의 말씀을 대언하고 또 여인들을 이끌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또한 모세의 형 아론은 말이 느리고 혀가 둔한 모세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분명 율법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 사람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말하는 그 말 자체에는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이 틀렸고, 그들은 반역하고 교만한 영으로 이러한 말을 하였습니다.

잠언 16장 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든 길이 자기 눈에는 깨끗하여도 주는 영들을 다시느니라."

미리암과 아론의 말이 자기들의 눈에는 얼마나 옳고 깨끗하였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영을 달아보셨습니다.

우리는 민수기 12장 2절의 뒷부분에서 놀라운 말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이 말을 들으시니라"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온유함 가운데 대할 수 있는 근거는 주께서 우리가 듣는 모든 말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고,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주께서 그 말을 들으시며 그 모든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온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변호사이신 주 예수님이 계시고, 온 우주에서 가장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민수기 12장 전체를 다 읽어보면 모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13절에서 단 한번 입을 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간청하건대 이제 그녀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직접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고 다만 주님 앞에서 잠잠하였습니다. 모세는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대적하고 비난하였던 미리암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모세는 민수기 12장 3절에 나온 것처럼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며 자신의 아내를 손가락질 할 때 모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이 너무나 밉고 화가 나는데 겨우겨우 참고 있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 순간 모세는 오래 전 미디안 광야에서 보냈던 40년의 기간을 기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거부당하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지내던 40년의 기간은 모세를 겸손케 하고 온유하게 만드는 연단의 시간이었습니다. 왕궁에서 이집트의 왕자로서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누리던 모세는 40년 간 장인의 양들을 돌보는 고된 일을 하였습니다. 냄새나는 양들의 털을 깎고 똥을 치우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양들을 몰고 나가서 풀을 찾아 물을 찾아다니고, 이리가 오면 양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다치고 또 때로는 눈으로 빤히 보면서도 양을 빼앗기고 하면서 그 자신이 얼마나 약하고 무능한 사람인지를 알아갔을 것입니다.

모세가 미리암과 아론의 말에 화를 내지 않은 까닭은 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당신들의 말이 다 맞습니다. 나는 백성을 인도할 자격이 없는 자요, 이방 여인과 결혼한 자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당신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셨고 당신들도 위대한 주의 종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말처럼 정말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말도 느리고 혀도 둔한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부르셨습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에서 모세의 마음속에는 잔잔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내게로 오라 내게 배우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겸손은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약하고 무능한 사람인지를 보여주실 때 저절로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일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책임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무책임한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케 하시기 위하여 많은 일들을 거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주시는 이유와 목적은 우리가 그러한 문제들을 통과하면서 우리 자신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는 수고하게 하시고 또 무거운 짐도 지게 하시는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초청하시기 위함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멍에와 짐도 제대로 지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가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의 짐을 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무겁게 에워싸는 모든 죄와 세상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주님께 헌신하여 주님의 멍에와 주님의 짐을 지고자 할 때 우리는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손을 대는 것마다 다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온유와 겸손은 지식으로 배워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매순간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동행할 때 주님께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될 때 우리는 우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안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온유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내 자신이 옳고 정당한 것을 주장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고,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피곤합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이것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바닥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비방하는 그 어떤 말보다 자기 자신이 더 천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포장할 필요도 없고, 꾸밀 필요도 없었습니다. 다만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선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분수에 넘치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겸손과 온유에 대한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하는 것이 저에게도 계기가 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또 실제로 이러한 겸손과 온유를 배울 수 있도록 가르쳐주시기 원합니다.

** 마무리

온유와 겸손은 사람의 육신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주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매순간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할 때에 우리는 겸손과 온유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목마른 자들을 다 불러주셨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메마른 목을 축이고 우리의 배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을 통해 다른 메마른 이들에게도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우리의 지친 혼에 안식을 얻고 아직도 안식을 얻지 못한 다른 많은 연약한 이들의 짐을 함께 지고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신 길은 더러운 말구유의 길이고, 비천한 나사렛의 길이며,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종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모세가 지나간 길은 이집트의 모든 부귀영화를 버린 광야의 길이요, 비방을 받되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비방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교회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잘 가르치는 사람은 많은데,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온유와 겸손의 모양은 있지만 그 능력은 없습니다. 제가 그러하고 많은 사람들이 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일어나 주님께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의 멍에를 지고 주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배우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복 주시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로빈박스 http://robinbox.net/nt/pauline/48galatians/48galatians051626_10comeuntome_20080618_rob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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