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8.10.15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한 가지 아는 것(롬 8:28-30)


본문 : 로마서 8장 28-30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께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8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오늘은 "한 가지 아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우리가 알거니와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 말씀은 로마서가 반지라면, 로마서 8장은 반지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라고 누군가 말한 것처럼 너무나 귀한 진리가 담겨 있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저의 짧은 입으로 너무나 깊고 풍요로운 진리의 말씀을 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만큼 귀한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 28절 말씀은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아는 것에 근거합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하는 대상을 믿거나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14절과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오늘날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주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이지 모르고, 죄인을 영원한 지옥의 불길 가운데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모르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셔서 큰 구원을 이루셨는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알려야 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분명하게 깨달아 알 수만 있다면 누구나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향한 믿음이 크다면 그만큼 주님을 많이 안다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 크다면 역시 그만큼 주님을 많이 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 자신의 느낌이나 경험이나 감정을 통해서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친히 우리들에게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요 6:39)라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기 위하여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탐구한 만큼 주님에 대한 많은 증언들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만큼 우리의 믿음과 사랑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사람을 교만케 하고 멸망케 하지만, 올바른 지식이 없는 사랑과 열정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지식을 따르지 않은 열정으로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박았고, 사도 바울도 회심하기 전에는 주님을 몰랐기 때문에 열심을 다해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진리의 지식과 사랑이 모두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 말씀인 로마서 8장 28절에서도,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면서 지식과 사랑을 동시에 언급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요한일서 4장 10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어리석고 교만하고 또 이기적이어서 우리에게 유익한 것들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이용하면서 살아왔고 날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 짓기를 숨쉬듯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사랑하고 돈과 쾌락과 안락한 삶을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그분을 대적할 때,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 사랑하셨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십자가에 처형하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러운 죄 가운데 있을 때에 먼저 찾아와 주셨고,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우리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을 때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크게든 작게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아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목적에 따라 부르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되 목적에 따라 부르셨습니다. 저도 전에 삼겹살 집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저를 많이 불렀습니다. "여기요" 그 때 사람들이 저를 부르는 목적은 오직 한가지 주문하고 일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아무 이유 없이 부르신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이 믿음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 세상에서 복 받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천국 가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큰 은혜와 진리를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구원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지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은 새 생명의 시작이고,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 출발입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계획과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오직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부끄럽고 자신 없는 고백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는 것은 심판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두려운 심판을 우리 대신 자신의 몸으로 감당하신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놀랍고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29절과 3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정하사
29절과 30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29 그분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께서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영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우리들을 미리 아시는 가운데 우리가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예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베소서에서는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고,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셨다는 말씀도 등장하고 있습니다(엡 1:4,5).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칼빈주의 예정론"를 믿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미 구원받을 사람을 하나님이 미리 정해놓으셨기 때문에 굳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거나, 어차피 택함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구원을 받고,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도 지옥에 간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예정하심을 말씀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자유의지와 순종을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도록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어떤 것인지 다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5살짜리 아이가 부모님의 마음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아들의 형상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가운데 미리 아신 자들을 예정하셔서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사랑하며 교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죄인인 아담의 형상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사람의 대표가 되어 죽게 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영원히 단번에 감당하시고 완전히 깨끗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요 주님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권능이 주어지고, 또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아담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하게 하신 것입니다. 
다같이 고린도전서 15장을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과 2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1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한 것같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사람을 통해 임하였나니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도 사람이 되셔서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또한 4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5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우리 주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마지막 아담입니다. 이것은 첫 사람을 아담을 통해 들어온 죄와 사망을 사람의 대표로서 완전히 종결시키시고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47절에 나온 것처럼 "둘째 사람"이 되십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주님이 "둘째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아담"이라는 것은 아담에게 속한 죄인의 형상과 사망을 끝내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름이고, "둘째 사람"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과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이제 4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9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우리가 로마서에서 읽은 말씀과 같이 여기서도 우리가 하늘에 속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내적으로는 이미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였지만, 아직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읽은 이 말씀에서도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하고 미래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우리가 완전히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지니게 되는 그 날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5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우리에게는 휴거의 소망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육신 가운데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는 그 날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죄인인 아담의 형상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읽은 말씀대로 표현해 보자면, 아담의 형상을 벗어버린다기 보다는, 오히려 썩어질 아담의 형상이 썩지 아니할 주님의 형상에 의해 삼켜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로마서 8장 23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23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어찌하여 사람이 보는 것을 여전히 바라리요?
25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인내로 그것을 기다리느니라.

너무나 놀라운 것은 로마서나 고린도전서나 우리가 주님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휴거의 소망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21절에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썩음의 속박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세상과 육신과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구원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는지 우리가 알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를 지옥에서 건지시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이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바로 더럽고 추한 우리 죄인들을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멸망 받고 심판 받아 마땅한 우리들이 예수님의 많은 형제들로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장 3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리 아신 자들을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시려고 예정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부르셨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믿음으로 나온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선포하셨습니다. 더럽고 추한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단순히 의롭다고 선언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더 나아가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영광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과 1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7 자녀이면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니 우리가 그분과 함께 고난 당하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영광도 받으려 함이니라.
18 내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들은 앞으로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도다.

하나님께서 미천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시고, 예수님의 형제들로 삼으신 것은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을 상속하여 주기를 원하십니다.

다같이 이사야 42장을 보시겠습니다. 이사야 42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주니 그것이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또한 48장 11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곧 나를 위하여 그것을 행하리니 어찌 내 이름을 더럽히리요?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분명히 자신의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하게 자신을 높여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을 멸망시키고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였을 때 바빌론을 통한 심판을 말씀하셨고, 느부갓네살 왕이 교만하였을 때 7년 동안 짐승과 같이 살아가게 하셨으며, 헤롯이 사람들에게서 신처럼 추앙을 받을 때 즉시 그를 치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감히 피조물이 영광을 구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 8장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영광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분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먼저 더러운 우리들을 의롭다 하시는 것이고, 의롭다 하신 우리들을 영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즉
다같이 로마서 8장 31절과 3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1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또한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31절은 "그런즉"이라고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론과 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것이라곤 죄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과 자신의 영광까지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38절과 39절도 보시겠습니다.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라고 말했던 사도 바울은 여기서 "내가 확신하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알고 확신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벅차고 감동스러운 말씀입니다. 로마서 8장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되고 죄인되었던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로마서를 받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은 피의 네로라고 불리는 네로 황제가 다스리는 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 도시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유대교에 의해 핍박을 받았고, 또 로마 제국에 의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35절부터 37절의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으리요? 환난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이것은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이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아니라. 이 모든 것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을 통해 정복자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니라.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제자들을 핍박하던 사람들보다 더 크고 위대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썩어질 형상을 벗어버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완전하게 입을 휴거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영광을 상속받을 일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로마서 8장 2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휴거의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할 때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환경과 어려움은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 따르면서 저 자신에 대해 절망할 때가 너무 많았습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욕심이 많고 속도 좁고, 한 저 자신을 보면서 늘 낙망했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 24절에서 말할 것처럼 저는 정말 비참한 사람이었고, 계시록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비천하고 눈멀고 헐벗은 자였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문제 많고 구제불능인지 몰랐는데, 하나님은 어쩌다 나 같은 사람을 부르셨을까 하면서 주저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29절의 말씀을 보면서 너무나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리 아신 자들을"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얼마나 무능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 다 아시면서 저를 부르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금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 자신에 대해 실망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미리 아시고 저를 부르셨기 때문에 변함 없이 저를 사랑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날마다 감격하며 주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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