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8.09.17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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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헌신(롬 12:1-2)


본문 : 로마서 12장 1-2절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2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오늘은 "온전한 헌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그러므로 형제들아
오늘의 본문 말씀은 "그러므로 형제들아"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형제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비록 "자매들아"라는 말은 없지만 자매들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형제"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주 예수님과 같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죽어서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더럽고 천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교만하고 탐욕적이며 이기적인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긍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요한복음 20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15절에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 부르지 않고 친구라 부르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나아가서 형제라고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다같이 히브리서 2장 10절부터 1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0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며 또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데려가시는 일에서 그들의 구원의 대장을 고난들을 통해 완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으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밝히 보이고 교회의 한가운데서 노래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하시며

10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자신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부족함이 없으신 완전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존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오늘 존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 더러운 우리들을 거룩히 구별하시고 교회로 모이게 하셨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때에 주님을 부끄러워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함에도 불구하고,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더럽고 미천한 우리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떠한 죄인이라도 누구든지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 되셔서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에서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로마서 12장 말씀은 "그러므로 형제들아"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히 구별되고 용서받은,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긍휼을 얻은 모든 사람을 향해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모든 것을 자신을 위해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헌신에 대해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는 바로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정당성이나 권리를 가지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긍휼을 힘입어 간청"하고 계십니다. 이 긍휼에 대해서는 "그러므로"라는 말과 함께 로마서 12장의 앞부분에 있는 말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교회는 원래 유대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성경 기록상으로는 로마 교회가 언제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는지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순절 날 로마에서부터 예루살렘으로 명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들이 베드로와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였고, 명절이 끝난 뒤에 그들이 돌아가서 로마 교회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교회가 처음에는 유대인 중심의 교회였습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제자들이 처음에는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이었던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또한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해서 본격적으로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1장 13절에서도 바울이 직접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방인들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들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존귀히 여기나니"

아무튼 초기의 로마 교회는 유대인 중심의 교회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방인 성도들이 더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AD 49년에 로마의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 로마 추방령을 내리게 됩니다. 이 사건은 사도행전 18장 2절에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칙령으로 인하여 이탈리아 로마에 살고 있던 아굴라와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가 로마에서 추방을 당하고 떠나와서 고린도의 본도라는 곳에서 사도 바울과 만나게 됩니다. 이제 로마 교회는 유대인들이 모두 추방을 당했기 때문에 이방인 중심의 교회로 자리를 잡았고, AD 54 년에 네로 황제가 집권하면서 이 추방령은 해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로마 교회의 상황은 이방인들이 중심이 된 상황에서, 원래 중심을 이루었던 유대인들이 돌아오면서 갈등과 마찰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고자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자 로마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로마서 11장은, 9장, 10장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한 자세한 언급을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원래 우리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복음에 불순종하고 그들의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1장 3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32 하나님께서 그들 모두를 믿지 아니하는데 가두어 두신 것은 친히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고자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세상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잠시 제쳐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 또 다시 이방인들로 인해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긍휼에 대하여 기록하다가 성령의 감동을 견딜 수가 없어서 찬양을 터뜨렸습니다. 
33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생각을 알았느냐?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느냐?
35 누가 그분께 먼저 드려서 다시 보답을 받겠느냐?
36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이 없었던 우리들에게까지 그 놀라운 긍휼과 사랑이 전달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교만함과 더러움과 어리석음 가운데 방황하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의 생명과 놀라운 긍휼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온 것이며 그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생명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긍휼로 베풀어 주셨습니다.


너희 몸을
로마서 12장 1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몸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손과 발과 눈과 귀와 입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어떤 추상적인 개념 아니라 실제로 나의 몸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드리는 것입니다.

다같이 고린도전서 6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3절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음식은 배를 위해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해 있다 하거니와 하나님께서는 그것과 저것을 다 멸하시리라. 이제 몸은 음행을 위해 있지 아니하고 주를 위해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해 계시느니라."

우리의 몸은 음행을 위해 있지 아니하고, 음식을 위해 있지도 않으며 오직 주를 위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이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려지기를 원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인상적인 표현은 주님께서도 우리의 몸을 위해 계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적인 부분만을 위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몸을 위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취하여 창녀의 지체로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지체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기서 우리의 영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지 않고,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의 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이제 19절과 2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9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
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그 피를 값으로 치르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인 우리의 몸과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한 희생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이 왜 담배나 술이나 마약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왜 문신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가진 이 몸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몸이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해도 문제가 없지만,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되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모습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거룩히 구별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희생물 만을 받으십니다. 다함께 말라기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말라기 1장 6절부터 8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6 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만군의 주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자기 주인을 공경하나니 그런즉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빵을 내 제단 위에 드리고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상은 업신여겨도 된다, 하는 점에서 그리하였느니라. 
8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눈 먼 것을 희생물로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드리면 그것이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네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또한 10절 뒷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에서 헌물도 받지 아니하리라."

말라기에 나오는 타락한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거룩하지도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지도 않은 더러운 빵과 희생물을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거듭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영적 제사장입니다. 특별한 직분을 가진 사람만이 제사장이 아니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믿는 자들이 다 제사장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려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곧 제사장이며, 또한 우리 자신이 곧 희생물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를 위한 화해헌물로 드리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사장으로서 우리 자신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바로 다음 구절인 로마서 12장 2절에 나온 것처럼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상에 동화되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치면 안되고 뭐든지 적당히 해야 좋다는 우리의 생각이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헌신을 원하십니다. 세상도 조금 하나님도 조금 사랑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만 사랑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오늘 저와 이곳에 모인 우리 형제 자매님들 모두가 하나님의 긍휼의 힘입어 생각의 변화를 받아 오직 우리 자신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우리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


살아 있는 희생물
주 예수님께서는 죄와 허물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의 축복과는 멀리 떨어져있던 사람들이었으나 말로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으로 인하여 긍휼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그러한 놀라운 긍휼을 힘입어 우리에게 간청하고 있습니다.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우리는 실제로 희생물을 드려본 적은 없지만, 구약성경을 통해 희생물이 어떠한 모습인지 알 수 있습니다. 희생물이라는 것은 희생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듯이 반드시 죽음을 수반합니다. 제단 위에 올려진 희생물은 생명과 피를 다 바치고 불 가운데서 태워져야 합니다. 다같이 레위기 3장에 나타난 화평 헌물의 희생물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만일 그의 봉헌물이 화평 헌물의 희생물이며 그가 그것을 소 떼에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주 앞에 드릴지니
2 그가 자기 헌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중의 성막 문에서 그것을 잡을 것이요,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의 주위에 뿌릴 것이며
3 그는 또 그 화평 헌물의 희생물 중에서 주께 불로 예비하는 헌물을 드릴지니 곧 그는 내장을 덮은 기름과 내장 위의 모든 기름과
4 두 콩팥과 그것들 위의 기름 곧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 위의 꺼풀을 콩팥들과 함께 취할 것이요,
5 아론의 아들들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태우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의 태우는 희생물 위에서 태울지니 그것은 불로 예비하여 주께 향기로운 냄새를 내는 헌물이니라.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희생물로 드려진 소의 피는 제단의 주위에 뿌려집니다. 그리고 속에 있는 모든 내장들을 다 가져다가 제단 위에 있는 희생물 위에서 불태우게 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다 태울 것이 분명한데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내장을 일일이 다 언급하시면서 따로 분리하여 희생물 위에 올려놓고 태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희생물로 드려질 때에 우리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꺼내놓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속에 있는 야망과 욕심과 권리와 의견을 다 불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두 콩팥과 간 위의 꺼풀과 모든 기름을 다 하나님 앞에 꺼내놓고 태워야 합니다.

우리는 침례성도입니다. 우리는 모두 침례를 받을 때 한번 나의 옛 생명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묻혀서 끝나버렸음을 간증했습니다. 우리가 다시 물속에서 나온 것은 더 이상 우리의 옛 생명이 아닌 주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새 생명임을 간증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린다는 것은 다시 한번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 나의 계획, 나의 목적, 나의 길이 다 사라지고 불타 없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선하고, 필수적이고, 정당한 일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콩팥과 간과 내장은 다 주님 앞에서 꺼내어지고 불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콩팥 위의 기름과 간 위의 꺼풀과 같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속에 끼어들어오는 탐욕과 높아지려는 야망과 명예심을 다 불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나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희생물이란 이와 같습니다. 살아 있으나 제단 위에서 불타고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을 받은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합당한 섬김인 것입니다. 우리는 제단 위에서 우리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태우고 죽음에 넘겨지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게 될 것입니다.


정리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쉽고 분명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형제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초청입니다. 
우리의 본래 위치는 이방인들이며, 또 죄로 가득한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본래 운명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절규하며 통곡하며 고통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다 긍휼을 입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아오면서 많은 경우 하나님과 주 예수님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이요 비천한 우리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자신의 긍휼을 힘입어 우리에게 초청하고 계십니다.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나 결심만을 원하지 않으시고 실제적인 우리 몸의 드려짐을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므로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예비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고 초청하셨습니다. 제단 위에 올려진 희생물은 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꺼내놓고 불태워집니다. 우리는 우리 몸 안에 숨겨진 모든 의도와 동기들을 다 꺼내놓고 주님 앞에 불태워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제단 위에서 불타는 희생물로서 온전히 죽은 자가 될 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저 자신을 이렇게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세상과 동화되거나 타협하지 아니하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 원합니다. 저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오직 제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그분의 긍휼만을 의지하여 그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온전한 헌신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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