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7.02.21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5세

http://robinbox.net


요셉이 만난 하나님(창 50:15-21)


15 요셉의 형제들이 자기 아버지가 죽은 것을 보고 이르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반드시 갚으리라, 하고
16 요셉에게 사자를 보내어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말씀하시기를,
17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말하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은즉 이제 원하건대 네 형들의 범법 곧 그들의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이제 원하건대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범법을 용서하소서, 하매 그들이 그에게 말할 때에 요셉이 울었더라.
18 또한 그의 형들이 가서 요셉의 얼굴 앞에 엎드려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이 선이 되도록 계획하사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구원하게 하셨나니
21 그러므로 이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어린것들을 부양하리이다, 하고 그들을 위로하며 그들에게 친절히 말하였더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50장입니다. 창세기 50장 15절부터 2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요셉이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는 이번 주일날 "불평없이 사는게 가능한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오늘 설교의 또 다른 제목을 잡아보자면, "불평없이 살아간 요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37장부터 펼쳐지고 있는 요셉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면서 요셉이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예표인 요셉
여러분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수님의 예표를 하나만 뽑으라면 무엇을 뽑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친히 구약성경의 기록들이 예수님 자신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다른 구약성경들을 보기 전에 창세기만 살펴본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주 많은 예수님의 예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창세기를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을 고린도후서 4장의 말씀과 비교해보면 여기에 나타난 빛이 예수님의 예표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느니라"(고후 4:6).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고후 4:4).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도록 값없이 주어진 생명나무, 아담과 이브를 대신해 피흘려 죽은 어린양, 그리고 사람의 의를 예표하는 무화과나뭇잎 대신 하나님께서 입혀주신 가죽옷 등을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 특별히 사람들의 인생을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합니다. 그 중 이 요셉이라는 인물은 성경 전체를 통틀어 아마도 가장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인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으며, 목자였고, 형제들에게 시기를 받고 미움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로부터 형제들에게 보냄을 받았으나 형제들에게 거절당하여 팔렸습니다. 요셉을 팔아 넘긴 형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유다였고, 예수님을 판 제자의 이름도 유다였습니다. 요셉은 예수님과 같이 옷 벗김을 당했습니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긴 것처럼, 보디발의 집에서 모든 것을 맡은 종이 되었고, 예수님께서 거짓 고소를 당하신 것과 같이 보디발의 아내에게 거짓 고소를 당했습니다. 요셉은 털 깎는 자들 앞의 어린양처럼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으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두 강도와 못박힌 것처럼, 요셉은 두 명의 죄인과 함께 갇혔습니다. 예수님의 옆의 강도들 중 한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한 사람은 그렇지 못했듯이 요셉과 함께 갇힌 한 죄수는 용서를 받고 한 죄수는 사형을 당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왕이 되실 것처럼 요셉은 파라오의 부름을 입어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는 것같이, 파라오는 요셉이 없이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방인으로 예표되는 교회를 신부로 삼으신 것같이 요셉은 이방인 아내를 얻었습니다. 요셉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온 땅에서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곡식과 생명을 주었습니다. 
이제 요셉이 두 번째 형제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받아들여졌고, 기근과 궁핍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예수님의 앞길을 미리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펼쳐진 것을 볼 때 우리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요셉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자세히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봄으로 요셉이 만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알아보기 원합니다. 


요셉의 어린 시절 
요셉은 위로 10명의 배다른 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막내인 베냐민 만이 친형제 가운데 친형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이 원래부터 사랑했던 아내가 라헬이었기 때문에, 또한 라헬이 너무나 간절히 기도한 끝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아들들이었기 때문에, 뿐만 아니라 야곱이 노년에 얻은 손자와 같은 아주 귀여운 아들이었기 때문에, 요셉과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큰사랑을 받았습니다. 더구나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요셉에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는 특별히 채색 옷을 만들어서 입혀주었습니다. 당시 염색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옷감에 색을 하려하게 집어넣는 일은 상당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먼저 창세기 37장 4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의 형제들은 자기 아버지가 그의 모든 형제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화목하게 말도 하지 못하였더라"(창 37:4). 
가뜩이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요셉이 너무나 건방진 꿈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꿈과 환상이라는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하여 자신의 사람들을 인도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먼 훗날 요셉이 어떻게 높아지리라는 것을 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5절부터 11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읽는다.)

이러한 꿈, 이러한 비전,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는 앞으로 요셉이 당할 고난과 역경을 소망으로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말 요셉에게 이러한 통치자의 위치를 주시고자 반드시 필요한 고난과 시련을 먼저 주셔서 요셉이 그 위치에 맞는 사람이 되도록 다루시고 훈련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꿈을 주셨습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매"(계 11:15).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 하더라"(계 5:10). 


노예로 팔려간 요셉
이러한 꿈과 비전, 소망과 목적이 요셉에게 주어진 이후로 요셉의 인생은 이러한 영광을 위한 훈련 코스에 들어가게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형들이 양을 잘 돌보고 있는지 보고 오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숨어 기다리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계획하였습니다. "보라, 이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런즉 이제 오라. 우리가 그를 죽여 어떤 구덩이에 던지고 말하기를, 어떤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들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보리라."
그러자 장남이었던 르우벤이 그래도 우리의 형제이니 직접 죽이지는 말고 구덩이를 파서 던져놓고 굶겨 죽이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르우벤이 나중에 꺼내서 구해줄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르우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르우벤의 계획을 모르는 유다가 요셉을 살리려는 목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숨긴들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오라, 우리가 그를 이스마엘 족속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살붙이니라." 이렇게 되어 요셉은 팔리고 팔려서 이집트의 노예가 됩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호위대장이었던 보디발에게 팔려갔고, 요셉을 발견하지 못한 르우벤과 소식을 들은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죽은 것으로 인하여 큰 슬픔에 잠기게 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직접 한번 요셉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가 요셉이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억울함, 분노, 슬픔, 낙담, 자포자기, 불평과 같은 아주 복합적인 여러 가지 생각들이 요셉의 마음을 어지럽혔을 것입니다. 집에서 귀하게 사랑 받던 아들이 남의 집에, 고용되어 일하는 것도 아니고, 노예로 팔려서 부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요셉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을 터뜨린다면 아주 정당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제가 어릴 때 어머니를 데려가시더니 이젠 아버지와 가족들을 다 빼앗아 가시다니요! 하나님 도대체 제가 잘못한게 뭡니까? 하나님이 주신 꿈을 형들에게 말했더니 미움만 받고 이젠 낯선 땅에 팔려와서 이렇게 모욕을 당하며 고생하다니요! 차라리 죽는게 낫겠습니다!"하며 따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과 함께하신 하나님
그러나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 요셉은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요셉은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억울한 상황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통제하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선하시며,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영과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 39장 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6절까지 읽는다.)
요셉은 종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22,23절에서는 "종들아,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말씀을 몰랐겠지만 요셉은 이 말씀에 기록된 그대로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적당히 일한 것이 아니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셉과 동행하여 주셨고 요셉이 하는 모든 일마다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어리고 가장 낮은 위치의 종에 불과했던 요셉은 어느덧 자기 주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동안의 고통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 코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잠시의 휴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요셉을 한 단계 더 높이 이끌고자 하십니다. 


감옥에 갇힌 요셉
17세에 노예로 팔려와 현재 몇 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요셉은 이제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아버지 야곱보다는 아름다웠던 어머니 라헬을 더 닮았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요셉은 매우 잘생겼다고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 청년 요셉에게 너무나 달콤한 죄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다같이 7절을 보시겠습니다. (7절부터 9절까지 읽는다.)
요셉은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었고 결코 자신의 죄에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하는 말에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죄로부터 철저하게 분리시켰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시겠습니다. (11절부터 20절까지 읽는다.)

요셉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다시 한번 요셉은 하나님 앞에 강력하게 항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합당하고 적절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오 하나님 차라리 내가 범죄하였더라면 감옥에 갇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어찌 하나님을 따르고도 이렇게 비참해 질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 저를 인도하고 계시긴 합니까? 하나님 저와 동행하고 계시는거 맞습니까? 하나님 왜 나한테만 이렇게 악하게 대하십니까?" 요셉은 자기 연민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에서도 죄수들을 맡아 관리하는 최고 관리자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두 죄수가 요셉과 함께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 명은 파라오의 빵 굽는 자들의 우두머리요, 또 한 명은 파라오의 잔을 맡은 자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꿈을 꾸었는데 잔 맡은 사람은 포도나무 가지 세 개가 있고 포도송이가 열리기에 거기서 포도들을 따고 포도를 짜서 파라오의 손에 잔을 드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빵 맡은 사람은 온갖 구운 음식을 담은 빵 바구니 세 개를 머리에 이고 가는데 새들이 와서 먹는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그 꿈을 해석하여 주었는데, 요셉의 해석대로, 파라오의 잔을 맡은 사람은 삼일 뒤에 직책이 회복되었고, 빵을 굽는 자는 삼일 뒤에 그를 나무 위에 매달아 공중의 새들이 먹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잔 맡은 자에게 직책이 회복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잔 맡은 자는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 요셉
어느덧 2년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나는 슬프게도 어릴 때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엄마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정말 억울하게 나의 형들로부터 노예로 팔렸지요. 내가 얼마나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형들은 날 구덩이에 던지더니 옷을 다 벗기고는 지나가던 노예상인들에게 팔아 넘겼어요. 원수도 아닌 형들에게 팔린 그 기분을 아시나요? 그 배신감과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또 노예가 되고 나서는 정말 모든 일을 남이 보던 안 보던 성실하게 일했어요. 노예가 될 이유가 전혀 없었던 내가 노예가 된 게 너무나 억울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일했지요. 그래서 결국엔 최고 관리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그 못된 여자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고 말았지 뭡니까... 하나님이요? 하나님은 나를 잊어버리셨나봐요." 요셉은 충분히 불평으로 가득한 사람이 될 만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소망을 가지고 여전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파라오가 꿈을 꾸었습니다. 잘생기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데 갑자기 야위고 흉한 일곱 마리 암소가 나타나서 살진 암소들을 다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꿈이었습니다. 파라오는 놀라서 잠이 깼다가 다시 잠이 듭니다. 한 나무 줄기가 있는데 통통하고 좋은 이삭 일곱 개가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늘고 동풍에 바싹 말라버린 다른 이삭 일곱 개가 솟아 나오더니 통통하고 꽉 찬 이삭을 다 삼켜버렸습니다. 파라오가 두 번이나 비슷한 꿈을 꾸고 나서 너무나 불안한 나머지 이집트의 모든 마술사와 점술가들과 지혜로운 자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러나 그 중 누구도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지 못했습니다. 이 때 파라오의 잔을 맡은 자가 요셉을 기억하고 파라오에게 요셉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요셉은 파라오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창세기 41장 25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25절부터 45절까지). 이집트 이름 사브낫바네아의 의미는 바로 "세상의 구원자"입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고 대단한 출세요 인생역전이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꿈으로 약속하신 요셉의 본 위치였고, 그 전에 있었던 많은 고난과 역경은 다만 이 위치에서 올바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시는 하나님의 훈련 코스였을 뿐인 것입니다. 


가족들을 만난 요셉
이제 하나님께서 파라오와 요셉에게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와 주변의 온 땅에 7년 간 큰 풍년을 주셨고 또 그 이후 7년 간의 큰 기근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집트 백성들뿐만 아니라 온 땅의 다른 많은 민족들조차 곡식이 없으므로 곡식을 많이 저장해둔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오게됩니다. 저기 멀리 있었던 야곱과 그의 아들들 역시 곡식을 사러 이집트로 오게 됩니다. 여기서 요셉과 형제들이 만나는 이야기는 자세히 한다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생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집에 가시면 꼭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에게 자신이 노예로 팔려갔던 요셉임을 밝히고 아버지의 온 가족을 이집트로 불러들입니다. 다같이 창세기 45장을 보시겠습니다. 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절부터 11절까지 읽는다.)

하나님을 뜻을 완전히 이해한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로 팔아 넘긴 형들을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지도 않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요셉은 불평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요셉의 눈은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향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감사한 요셉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인 50장 15절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이제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이 온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들어온 지 17년이 지났을 때 야곱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형들은 이제 아버지가 죽은 것으로 인하여 요셉이 돌변할 것이라 걱정하고 있습니다. 15절부터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15절부터 21절까지). 

요셉은 어떻게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고,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증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요셉은 자신의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고, 보디발이나 그의 아내에게 복수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손길로 보았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기울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만들고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자포자기하며 우울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려운 상황만을 바라보며 낙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요셉과 같이 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셨던 것처럼, 우리를 모두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 만드셨고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과 역경은 우리를 낮추신 만큼, 아니 낮추신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이시고 영광스럽게 하시고자 허락하시는 영광의 훈련 코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요셉과 같이 불평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때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은 하나님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가 요셉과 같이 늘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넘치는 감사 속에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축복해 주시기 원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