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14.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창 22:15-18)

본문 : 창세기 22장 15-18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22장 15절에서 18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제가 한국에서 이곳으로 오기 직전에 간증과 함께 전했던 말씀인데, 먼저 저에게 너무나 큰 은혜가 되었고 또 한국에 갈보리 형제자매님들도 인상 깊게 들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여기 와서도 이 말씀을 나누고 싶었었는데 오늘 그런 기회를 가지게 된 것 같아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창세기 22장 15절부터 18절까지,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15 ¶ 주의 천사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였노라. 곧 네가 이 일을 행하여 네 아들 즉 네 유일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므로

17 내가 네게 복을 주고 복을 주며 또 네 씨를 하늘의 별들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니 네 씨가 자기 원수들의 문을 소유하리라.

18 또 네 씨 안에서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내 음성에 순종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니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이라고 잡아봤습니다. 아브라함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기 원합니다. 잠시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 서론

저는 한국의 갈보리침례교회에 있었을 때 약 5년가량, 어린이 주일학교에서 말씀을 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말씀을 준비할 때는 가능하면 재미있게 해야 하기 때문에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준비하게 되고 또 성경을 읽을 때 더 깊이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보려고 시도하곤 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자료들과 또 지혜를 주셔서 그렇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은 이 부분만을 다루지 않고 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면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하던 것처럼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성경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기 원합니다. 재밌게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아브라함의 부족함

아브라함은 원래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라는 곳에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 중에 하나였고 매우 번화한 도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온 가족이 모여 사는 큰 가족 공동체 안에 있었고, 나름대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많은 가족들과 함께 즐겁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라는 큰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성품을 조금 엿보자면, 그는 매우 착하고 인정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과거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하면 아내를 버리거나 다른 아내를 얻어서 자손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한 평생 자기 아내인 사라만을 사랑하고 아끼는 강직하고 자상하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알고 지내던 모든 사람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봐, 저 양반 정말 좋은 사람인데 아들이 없는게 흠이야. 아들만 있으면 딱일텐데." 아브라함도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금 저희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캐나다에 보내놓고 아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저도 부모님만큼 그리워하진 못할지라도 부모님이 그립고, 또 가끔씩 갈보리교회에서 올려주는 찬양과 간증 mp3를 들으면 성도님들 얼굴이 아른아른 떠오르면서 그리운 마음이 커지곤 합니다. 우리는 정들고 사랑했던 누군가와 멀어지면 이렇게 아픈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읽다보면 우리의 마음에는 누구와 떨어지고 그리워하기 이전부터, 원래 가지고 있는 허전함, 외로움, 상실감, 상처, 버림받은 마음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이별하고 잃어버린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지게 된 허전함과 외로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무엇이든 이뤄보려고 몰두하고 집착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실된 마음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또 대가족 가운데서 시끌벅적하게 살았지만, 그 마음에 허전함이란 것을 채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생각하기를 "나에게 아들만 있다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텐데. 내 인생이 더 이상 허전하지 않을텐데."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이러한 허전함을 허락하십니다.

 

전도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비록 사람이 백 명의 자식을 낳고 또 여러 해를 살아 그의 햇수의 날들이 많을지라도 그의 혼이 좋은 것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또 그가 묻히지도 못하면 내가 말하건대 유산된 자가 그보다 나으니라.”(전 6:3).

아브라함이 겉으로 백 명의 아들을 가진다 해도 그의 내면에 있는 그의 혼이 좋은 것으로 채워지지 못하면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유산된 아기보다 못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속에는 계속해서 이러한 갈증이 있습니다. "내가 아들만 가진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정말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을 참되게 만족시킬 수 있는 하나님 자기 자신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십니다. "내가 너에게 아들을 주고, 너의 자손에게 줄 땅이 있으니, 너의 씨에게 복을 줄 테니 너는 먼저 너가 정을 붙이고 사랑하며 관계하고 붙잡고 집착하던 모든 것, 너의 고향과 친족을 다 떠나서 나오라."

 

지금 아브라함은 현재의 상태에서 아들만 있으면 모든 것이 행복하고 만족할 상황인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아들을 줄테니 우선 그 만족하던 모든 상황을 떠나서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정이 많은 아브라함은 쉽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많은 친구들과 정을 떼는 데는 성공을 했지만 가족들과는 정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와 형제가 죽기까지 머뭇머뭇하며 떠나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죽은 형제인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나옵니다. 롯은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으니 여차하면 조카인 롯을 자기 아들로 삼기 위해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나안 땅에 도착했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자,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는 제 고향과 친족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나와 정들었던 사람들을 떠나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결심이었어요. 얼마나 섭섭하고 서운하던지... 그렇지만 저에게 아들만 있다면 행복해 질거라 생각해서 꾹 참고 나왔습니다. 하나님! 이제 아들을 주세요!"

 

 

** 위기와 은혜

이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만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때 바로 아들을 주셨다면 창세기는 10장 이상이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기는커녕 그 땅에 기근이 들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고 뭐고 일단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물도 많고 곡식도 많았던 이집트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집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브라함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아는 사람도 많고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도 많았는데, 이제 새로운 문명지 이집트에 들어가려니 막상 무서운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의 인생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꾸미고 한평생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고 지켜온 아내 사라를 파라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아무래도 파라오가 아름다운 사라를 보고 자기를 죽일 것이고 빼앗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사라졌고 아브라함은 두려워하면서 스스로 살길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서 파라오에게 팔아먹고 말았습니다.

 

아들 하나 얻으려고 그 먼 길을 떠나왔고, 이제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데, 한평생 지조 있게 지켜온 아내마저 빼앗기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한탄스러운 신세입니까? 신이난 파라오는 사라로 인해서 아브라함에게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들과 종들을 주고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이 많은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차라리 아들 없이 그냥 고향에서 살 걸. 롯을 그냥 아들로 삼고 메소포타미아에 있을걸. 한평생을 정직하고 강직하게 살아온 내가 무서운 거짓말로 아내를 팔아 넘기고 내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어. 이제 내 인생은 끝이야... 아,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무엇이든 하실 수 있거든 어떻게 좀 해주세요. 아들을 주신다던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러길래 누가 너 롯을 데리고 나오래? 내가 고향과 친족을 다 떠나라고 했지? 왜 롯을 데리고 나왔어? 롯도 친족이야, 아니야?"하면서 다그쳐 묻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너를 가나안 땅에 있으라고 했지 언제 이집트에 내려가라고 했어! 기근이 든거는 시험이야, 시험, 그 정도도 통과할 믿음이 없느냐? 너가 다 망쳐놓았으니 이제 너가 알아서 살아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안되지! 그리고 아내를 팔아 넘기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으니 넌 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어! 죄 값을 치르고 멸망하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창세기 12장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창세기 12장 17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주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로 인하여 파라오와 그의 집에 큰 재앙들로 재앙을 내리시매

거짓말은 누가 했습니까? 큰 재앙은 누가 받았습니까? 네,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상해 오던 하나님은 아주 엄격하고 철저하고 강력하고 무서운 분이어서 한 가지 실수만 하더라도 책잡고 심판하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아주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되 조건 없이 한없이 사랑하시며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자신의 약속대로 우리를 신실하게 선하게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허전함과 버림받은 마음을 그러한 하나님 자신으로 채워주기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파라오는 아브라함 때문에 큰 재앙을 당했지만 아브라함을 감옥에 넣거나 해치지 않고 오히려 무사히 그를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이상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다 망쳐놓은 인생을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잘못은 아브라함이 다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 아브라함은 여태까지 자기가 아들처럼 데리고 온 롯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롯과 분리

창세기 13장 9절을 보십시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원하노니 너는 내게서 갈라서라. 네가 왼쪽을 취하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떠나면 나는 왼쪽으로 가리라, 하니라.

이상한 하나님을 만난 아브라함은 지금 이상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의 목자들이 싸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아브라함이었다면 어떤 경우에도 롯을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허전함과 상실감을 채워줄 수 있는 아들과 같은 유일한 존재인데 어떻게 나가라고 하겠습니까? 자기가 양을 더 줬으면 줬지, 손해를 봤으면 봤지, 어떻게 아들 같은 조카를 떠나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한 아브라함은 이제 롯이 없어도 그렇게 허전하지 않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 롯이 하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원하노니 내게서 갈라서라. 나는 너가 나에게서 떠나기를 원한다!"

 

이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좋은 것을 버리라고 강요하시고 빼앗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풀리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만족한 만큼 우리의 허전함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다른 것들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올 때부터 줄곧 끼고 다녔던 롯을 떠나보냅니다. 아브라함이 얻은 하나님, 아브라함이 경험한 하나님 우리도 경험하기 원합니다.

 

 

** 방패이신 하나님

다 같이 창세기 15장을 보시겠습니다.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 이 일들 뒤에 주의 말씀이 환상 속에서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네가 받을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시니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가 없이 지내오며 내 집의 청지기는 다마스쿠스에서 온 이 엘리에셀이니이다, 하고

이 말씀은 아브람이 롯을 떠나보낸 뒤에, 롯이 거하던 소돔 땅에 전쟁이 나서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아브람이 롯을 구출해 온 뒤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전쟁은 가나안의 네 왕국과 소돔을 포함한 다섯 왕국이 벌인 것인데, 네 왕국 연합이 소돔을 포함한 다섯 왕국의 연합을 이겼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기의 훈련받은 종 318명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치고 롯을 구출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도와주셨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그들이 복수하러 오지 않을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완전히 동문서답을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아, 내가 너의 방패고 내가 너의 지극히 큰 보상이란다. 내가 너에게 정말 주려는게 있는데 그건 바로 나야."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주 하나님이여, 무엇을 내게 주려고 하시나이까? 나는 아이가 없사오며" 아브라함의 관심은 변함 없이 온통 아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꾸짖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시며 약속하시고 또 짐승을 쪼갠 가운데를 혼자서 가로질러 가심으로 피의 언약까지 맺어주셨습니다.

 

 

** 또 실패

75세 때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은 10년 간 아들을 기다렸어도 얻지를 못했습니다. 답답해하던 아내 사라가 여종인 하갈을 아내로 주어서 86세 때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 99세 때 다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름을 바꿔주시고 할례의 언약을 주시면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웃으면서 "이스마엘이나 잘 되게 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하나님께서는 너의 아들의 이름을 "웃음"이라 하는 "이삭"이라 지으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중에 한 번 더 하나님이 오셔서 말씀하실 때에는 사라도 장막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웃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으면 "웃기고 있네."라고 말하는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심정도 이랬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10년 동안 기다렸다가 기다려도 안되니까 이스마엘을 낳고 지금 또 이스마엘이 13살이 되었는데 아직도 아들 소리하십니까? 그냥 이스마엘이나 잘되게 해주세요." 이 말은 이미 이스마엘이 다 컸다는 소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13살이 되면 성인식을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웃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정말 아들을 주시기 위해서 마지막 시험을 하나 주십니다. 창세기 20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파라오가 아비멜렉으로 바뀐 것 말고는 창세기 12장에 나왔던 내용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번에도 사라를 자기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속이고서 아비멜렉에게 넘겨줍니다. 사실 이 상황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아들을 주시기 위해서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75세 때 가나안 학교에 입학했을 때 하나님께서 입학시험으로 주셨던 것인데, 이제 졸업할 때가 되어서 졸업시험으로 어려운거 안하시고 1학년 때 봤던 시험 그대로 내셨습니다. 그런데 99세가 된 아브라함은 75세 때 써냈던 답안지 그대로 적었습니다. 24년 동안 아브라함이 변했습니까? 믿음이 충만하고 굳세어지고 승리를 해야 될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1학년 때 봤던 시험문제를 아직까지 못 푸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하면 총 12년이고, 대학교 4년 석사 박사를 6년 잡아서 다 더해도 22년입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24년이란 세월을 보냈으니 믿음에 관한한 이제 박사학위를 딸만한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봤던 아주 기초적인 시험을 또 틀리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전에는 "그래도 하나님 제가 하나님 말씀대로 고향도 떠나왔고 롯도 내보내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할 말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런 생각이 스쳤을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도 아들을 주실래야 주실 수가 없겠구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엎드려서 웃기나 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도 않은 이스마엘이나 낳더니만 이제는 가장 초보적인 시험에서 또 넘어지고 말았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포기하실거야. 이 멍청이, 구제불능, 난 정말 가망이 없는 사람이구나. 나이만 먹었지 믿음이 하나도 안 자랐어. 이제는 사라도 완전히 잃어버린거야."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아브라함이 아닌 아비멜렉에게 재앙을 내리십니다.

그리고 다 같이 창세기 21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주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찾아오셨고 또 주께서 친히 이르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 사라가 수태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그 정한 때에 늙은 나이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나 무능하고 하나님 앞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인지 우리의 실패를 통해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항상 오해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올바르고 흠이 없는 사람만 사랑하셔,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실패도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지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으실거야."하면서 오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그러한 오해를 풀어주기 원하십니다.

 

로마서 4장 22-24절 말씀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2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느니라.

23 그것을 그에게 의로 인정하셨다고 기록된 것은 이제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24 우리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을 믿을진대 그것을 의로 인정받을 우리도 위한 것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조건이나 요구를 하지 않으시고 한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 그래도 내가 믿음이 좋았으니까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거야. 아 내가 얼마나 큰 결단으로 하나님을 따랐던지 하나님은 나에게 아들을 주셨어야 마땅하지, 암." 아브라함은 이삭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는 이삭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으면 그 일에 대하여 자랑할 것이 그에게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롬 4:2).

 

 

** 믿음의 시험

이제 우리는 우리가 처음 읽었던 창세기 22장에 이르렀습니다. 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이르시되, 이제 네 아들 곧 네가 사랑하는 네 유일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 줄 산들 중의 하나에서 그를 번제 헌물로 드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에게 정말 충격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사랑한 것도 아시고, 그가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것도 아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잔인하게 보일 정도로 이상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번제 헌물이란 것은 그를 칼로 찌르고 조각조각 잘라서 하나님 앞에 불태우라는 말입니다. 세상의 어떤 우상 신들도 그렇게 무서운 요구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마치 소풍을 떠나는 아이들처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모든 것들을 준비합니다. 아침 일찍 월드컵을 보려고 일어난 젊은이들처럼 일찍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준비물을 챙겨 모리아 땅으로 출발합니다. 얼마 전가지만 해도 초등학교 1학년 때 봤던 시험마저 틀렸던 아브라함이 이제는 100점 만점을 맞았습니다. 사람들은 이걸보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위해 놀라운 희생을 하고 헌신을 했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옆에 아브라함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기 원합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잠자리에 누운 아브라함은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시 밖에 나가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 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끌벅적하게 정든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살았지만 너무나 허전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기근이 든 가나안 땅을 떠나 이집트에 갔다가 자기 스스로 인생을 망칠 뻔한 무시무시한 거짓말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히 나오게 해주신 이상한 하나님을 떠올려 봅니다.

 

롯을 떠나보내고, 이스마엘을 낳고, 아비멜렉 앞에서 다시 한 번 사라를 빼앗길 뻔한 모든 순간들이 눈앞에 생생하게 지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아브라함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어서 허전한 줄만 알았던 자신의 마음이 어느새 하나님으로 가득 차고 만족하게 된 것을 발견합니다.

 

이삭을 하나님께서 번제 헌물로 드릴지라도 여태까지 나에게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고자 다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귓가에는 "내가 너의 지극히 큰 보상이니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이 어느새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너무나 행복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큰 결단과 희생을 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한없이 조건 없이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만족했고 믿었기 때문에 너무나 기쁘게 이삭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제 16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을 걸고 맹세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하나님의 맹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을 얻기 위해 길을 떠났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을 얻고 완전히 만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친구라 부르실 정도로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우리의 만족

오늘 우리의 마음이 허전하고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분주하게 세상의 여러 가지를 찾고 주목하고 집착하고 붙잡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으로 만족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찬사를 받아도, 우리가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다 짊어져도, 또는 아브라함의 소원이었던 것처럼 백 명의 자식을 가질지라도, 우리의 마음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 우리의 힘을 다 허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참되게 채우실 수 있는 하나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서 55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오호 목마른 모든 자들아,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와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며 포도즙과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라. 또 너희는 좋은 것을 먹고 너희 혼으로 하여금 스스로 기름진 것을 기뻐하게 할지어다.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베푼 확실한 긍휼이니라.

우리는 긍휼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한번 만나지 말고 매순간 만나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으로 완전히 만족될 때까지 그분을 찾고 구해야 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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