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06.수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4세)

 

 

제목 :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요 21:15-17)

본문 : 요한복음 21장 15-17절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21장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15 ¶ 이처럼 그들이 먹은 뒤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어린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6 다시 두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매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하시고

17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베드로를 찾아오신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 요한복음 21장

이번 주일에는 중고등부 학생들과 진화론에 대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진화론 공부를 마치면서 잠시 성경에 대하여 기초적으로 알아야할 상식을 공부하였습니다.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은 무엇이냐? 바로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다. 그렇다면 신약의 처음 네 권은 무엇이냐? 바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성경의 순서와 찾는 법을 알려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복음서를 읽어보면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이 사복음서 모든 곳에서 기록하고 있는 사건이 있는가 하면 탕자의 비유와 같이 누가복음에서만 기록하고 있는 말씀도 있습니다.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절정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일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영광스럽게 기록하며 끝맺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다는 말씀과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모습을 기록하며 끝맺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여주시고 또 제자들을 축복하시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기록하며 끝맺고 있습니다. 요한복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고 믿는 자가 될 것을 말씀하시며 요한복음이 기록된 목적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씀과 함께 끝나는 듯하더니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다 같이 요한복음 20장 31절을 보시겠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사복음서의 맥락대로라면 이쯤에서 "아멘." 한마디만 더 나오고 끝맺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뒤에 이어지는 21장에서 "이 일들 후에"라고 시작되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만약 요한복음마저 이렇게 끝났다면 우리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했던 베드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을 때 예수님과 눈이 마주치고,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비통하게 울었던 베드로, 이 베드로는 어떻게 되었는가?

오늘 우리는 잠시 사복음서에 나타난 베드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서 베드로에게 찾아오신 주님, 베드로가 만난 주님을 우리도 만나보기 원합니다.

 

 

 

** 첫 번째 만남

베드로와 예수님의 첫 번째 만남은 요한복음 1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침례자 요한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옆에 서 있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라가서 하루를 함께 머무르며 좋은 교제를 가졌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은 바로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41,42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41 그가 먼저 자기 형제 시몬을 찾아내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니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그가 그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오매 예수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나의 아들 시몬인즉 게바라 불리리라, 하셨는데 게바는 번역하면 돌이라.

저에게는 공식적인, 법적인 이름, legal name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부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어로는 로빈이라고 부릅니다.

 

 

아마도 베드로 역시 이러한 식으로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어릴 적부터 집에서 부르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새로 붙여주신 게바란 이름은 아람어, 수리아어로 돌이란 의미이고, 이것을 그리스말, 헬라말로 번역한 것이 베드로입니다.

어쨌든 베드로는 자기 형제 안드레를 통하여 처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처음 만나자마자 "너가 요나의 아들 시몬이로구나. 이제는 너를 게바라 부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돌이라 부르신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메튜헨리는 성질이 급하고 난폭했던 베드로에게 돌 같고 반석같이 굳건하고 차분한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라는 의미에서 돌이라고 붙여주신 것이 아닌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 사도행전 4장 13절 말씀을 읽으면서 무식하고 못 배웠다는 의미에서 "돌"이라고 부르셨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습니다. “이제 저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그들이 학문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줄로 알았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또 그들에 대해 즉 그들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것을 알게 되고” 아하, 머리가 돌 같은 베드로도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비상한 사람이 되는구나.

 

 

또 다른 한 심리학을 전공한 성경교사는 여러 가지 심리학적인 구분을 따라 베드로를 볼 때 베드로는 때로는 행동파이면서도 잘 바뀌지 않는 고집 세고 굳건한 사람이므로 그 특징을 살려 돌이라고 불렀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로 부르실 때도 세 번, 부인할 때도 세 번, 다시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도 세 번, 사도행전에서 환상을 보여줄 때도 세 번, 이렇게 세 번씩은 해줘야 변하는 돌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볼 때 베드로는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출신이었고, 뱃사람이었던 만큼 때론 아주 거칠고 아주 적극적인 행동파이면서도 때론 쉽게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지 않는 강직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는 침례자 요한의 제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찾아가서 하루 밤을 지내며 대화를 나눌 만큼 진리에 갈급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아니면 확신이 가지 않았는지 이렇게 예수님을 만난 뒤에도 다시 고기잡는 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 두 번째 만남

이제 예수님과 베드로의 두 번째 만남은 마가복음 1장(16절부터)과 마태복음 4장(18절부터)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6-1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이제 그분께서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다가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더라.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즉시 그들이 자기들의 그물들을 버려두고 그분을 따르니라.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을 한번 만나기를 했지만 아직 계속해서 어부로서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을 초청하십니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안드레는 요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메시아 곧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확신하였지만, 베드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하시니 일단 하던 일을 멈추고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조금 더 가시다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그들 역시 배 안에서 그물을 깁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아버지와 품꾼들을 배 안에 남겨두고 즉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모든 사람이 그 말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습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왕과 같이 권위 있는 분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부정한 영이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시니이다!" 소리칠 때에 그 부정한 영이 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회당에서 나오셔서는 안드레와 시몬의 집을 방문하셔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초청하셔서 자신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자신의 권능을 보여주시고, 또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기까지 베드로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어떠한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을까요? 처음에 자기 형제 안드레가 오더니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해서 한번 가보았습니다. 베드로가 상상했던 메시아의 모습은 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서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는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생 바다 위에서 태양과 파도와 싸워온 자기 못지않게 햇 빛에 그을린 예수님을 볼 때 베드로는 실망을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사 53:2).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나자마자, "너를 돌이라 부르겠다."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안드레에게 "메시아 맞아?"하고 반문하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과 이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장모와 가족들을 부양할 책임을 가지고 다만 열심히 고기잡이를 할 뿐이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 사람을 그물로 낚을 수도 없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베드로는 일단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놀라고, 부정한 영이 예수님을 가르켜 하나님의 거룩한 이시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며 놀라고, 예수님의 한 말씀에 부정한 영이 나가는 것을 보며 놀란 베드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베드로의 집에 방문하셔서 장모의 열병도 고쳐주셨습니다. "도대체 이분은 누구인가? 또 이분은 도대체 왜 무식한 어부에 불과하고 죄 많은 나에게 이렇게 찾아오시는가?"

 

 

 

** 세 번째 만남

이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을 두 번씩이나 만났지만 여전히 어부였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세 번째 만남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들으려는 백성들을 갈릴리 바닷가로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씻고 있던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타시고 바다로 조금 나아가도록 청하셔서 바닷가에 서있는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베드로의 성격상 한 마리라도 잡혀야 직성이 풀릴텐데 끝내 못 잡았으니 상당히 피곤하고 기분이 나쁜 상태였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배 안에서 그물을 씻고 있었고 건성건성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신다기 보다 왠지 모르게 베드로에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말씀의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은 일부로 베드로의 배에 올라가셨고 시몬 베드로를 배에 태운 채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저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보자"하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시몬이 응답하여 그분께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밤새도록 수고하였어도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눅 5:5)

아마도 안드레가 같이 배 안에 있었고 저기 멀리에는 친구였던 야고보와 요한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물을 한번 던져서 끌어당기는데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소리칩니다. "이봐! 야고보! 요한! 좀 도와줘!" 야고보와 요한이 능숙하고 신속하게 배를 몰고 와서 함께 물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어쩌면 야고보와 요한도 베드로와 함께 밤새 물고기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물을 끌어올려 양쪽 배에 물고기를 가득 채우니 얼마나 무거웠던지 배가 가라앉으려 할 정도였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갑자기 무릎을 꿇습니다. "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생님"이라고 불렀던 베드로가 이제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나는 죄 많은 사람이니까 떠나세요! 나는 주님을 대면하여 대화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하고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 사람 잘못보신거 아닙니까? 전 배우지 못한 무식한 어부일 뿐 아니라 뱃사람이라 거칠고 죄 많은 사람이에요!"

주님이 뭐라고 응답하셨을까요? "알아, 너 죄인인거 다 알아. 그래서 내가 너를 찾아온거야. 용서해주고 고쳐주려고. 이제부터 너는 나와 함께 사람을 낚아 구원하는 어부가 되는거야."

 

 

우리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고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너무나 오해하기 때문에 주님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가 얼마나 죄 많은 사람인지 다 아시면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고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 다 아시면서 사랑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모르는 두 가지를 알려주기 원하시는데, 한 가지는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우리가 얼마나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하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교만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얼마나 거칠고 이기적이고 탐욕적이며 악하고 어리석고 둔한 사람인지 모를 때에만 교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빛과 계시를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려주기 원하시고, 그러한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알려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크게 감사하며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진리의 빛 가운데 더 가까이 나아가서 자신이 얼마나 합당치 못한 사람인지를 본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크게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죄 많은 자인지를 깨달은 사람일 것입니다.

어쨌든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므로 주님께 합당치 못한 사람이라 생각했던 베드로는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자신을 찾아주시고 제자로 불러주신 의아하신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 제자 중의 제자 베드로

우리말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듯이 돌이란 이름을 가진 베드로는 뭐든지 아주 분명하게 알고서야 넘어가는 훌륭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말씀하실 때에는 꼭 나중에 따로 찾아와서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질문하는 제자가 베드로였습니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줘야 하느냐고 질문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건너 제자들에게 올 때에 정말 주님이시라면 자신을 바다 위를 건너오도록 불러달라고 요청한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을 때 다음날 나무가 말라버린 것을 보고 주님이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고 언급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실 때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장막을 셋을 짓겠다고 말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우리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질문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빵에 대한 설교를 하신 후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해 떠나가고 예수님께서 "너희도 가려느냐?" 질문하셨을 때 "주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대답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 "엘리야다, 침례자 요한이 부활한 것이다, 예레미야다" 말할 때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확신에 차서 고백했던 제자도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는 언제나 수업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서 집중하여 듣고 집에 가서는 예습복습을 철저히 하는 훌륭한 제자였던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확신하였고 이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시고 왕이 되실 때에 자기도 열두 보좌 중 한자리를 맡아서 통치할 영광을 그리며 모든 힘과 열심을 다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예수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기 시작하십니다. "이제 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에 다시 일으켜 세워질 것이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모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고 꾸짖기까지 하면서 소리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호통을 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후로도 계속해서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넘겨지실 것과 죽임을 당하고 셋째 날 일으켜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큰 소리로 예수님을 만류할 수 없게 된 베드로는 근심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베드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주님이 하시려는 일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배반당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나만은 결코 예수님을 배반하지도 실족하지도 않으리라. 주님이 죽으셔야 한다면 나도 같이 죽으리라." 아주 비장하게 결심하였습니다.

 

 

이러한 결심을 들은 주님은 베드로를 사랑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

"주여,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 날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안다는 것을 세 번 부인하리라."

 

 

 

** 베드로의 실패

이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가셨고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가서 집회장 한가운데 불을 피우고 사람들이 앉은 곳에 함께 앉았습니다. 어떤 하녀가 베드로를 유심히 쳐다보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헛기침을 하며 "새벽날씨가 쌀쌀하지요?" 한마디 건넵니다. 하녀는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에이 이 여자가, 나는 그 사람 누군지도 몰라." 말하며 자리를 일어납니다.

 

 

자리를 떠나 현관 안으로 들어왔는데 또 다른 사람이 "너도 그들과 한패지."라고 묻습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난 아니야." 이제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되실지 궁금하고 걱정되던 베드로, 또 두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 충격을 받은 베드로, 지금 베드로의 마음은 너무나 복잡하고 초조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아주 자신 있게 단언하면서 말합니다. "너 갈릴리 사람이고 또 말투도 들어보니까 딱 예수님과 한패 맞잖아!" "아 진짜 내가 맹세한다 맹세해! 내 말이 틀리면 내가 저주받는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 "꼬끼오"

 

 

누가복음 22장 말씀 60-62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60 베드로가 이르되, 사람아,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그가 아직 말할 때에 즉시 수탉이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키사 베드로를 바라보시니 베드로가 그분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수탉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62 나가서 비통하게 우니라.

이때 주님은 어떠한 눈빛으로 베드로를 바라보셨을까요? "너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해?"하면서 째려보셨을까요? "거봐 내 말이 맞았지? 역시 넌 안돼."하면서 비웃는 눈빛으로 보셨을까요? "그래도 널 가장 믿었는데, 실망이야 베드로"하는 실망의 눈빛이었을까요?

 

 

베드로와 마주친 주님의 눈빛은 여느 때와 똑같이 베드로를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온유한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고, 베드로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돌이킨 뒤에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과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죄 많고 자격이 없던 나를 불러주셨던 주님인데, 내가 이렇게 저주하며 맹세하며 예수님을 배반하다니! 나는 정말 더럽고 가증한 사람이로구나.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죄인이로구나. 이 세상 그 누가 나만큼 죄인일 수 있을까! 이제 주님을 다시 볼 수 없을거야. 난 더 이상 제자가 될 자격이 없어." 주님이 알고 계셨던 베드로의 모습을 베드로는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 부활하신 주님

이제 예수님께 향품을 바르려고 준비했던 여인들은 천사로부터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으니 갈릴리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더 이상 자기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 베드로를 위하여 특별히 "제자들과 베드로에게"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불러주셨습니다. 이제 이 소식을 들은 요한과 베드로는 가장 먼저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와 빈 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처음 나타나셨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평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셔서 특별히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던 도마의 믿음을 회복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특별히 무대를 설정하고 계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 만나기는 했으나 예수님이 안 계신 지금 딱히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가기로 결정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너도나도 덩달아 고기를 잡으러 갑니다. 너무 오랜만에 그물을 던진 것인지 밤새도록 잡아도 물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었고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이보시오, 물고기 좀 잡았소이까?" "못 잡았는데요?!" "배 오른편에 던져보시오!"

 

 

주님이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이 주님인 것을 알아보고 "주님이시다!" 외치자 그물을 끌어올리던 베드로는 어부의 덧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듭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물을 배 위로 끌어올리기를 포기하고 배와 그물을 함께 바닷가로 끌고 옵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았다가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은 상황은 베드로가 주님 앞에 죄 많은 사람임을 고백하며 엎드릴 때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세 번째 만났을 때 벌어진 일인데, 지금 이 일 역시 부활하신 주님과 세 번째로 만나는 상황입니다. 이번에도 주님은 똑같은 무대를 설정하셨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같이 추운 새벽바다에 흠뻑 젖은 베드로는 물고기와 빵이 놓여있는 숯불과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숯불을 바라보는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밤에 앉아서 불을 쬐던 모습이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고기를 잡느라 고생한 제자들과 함께 빵과 생선을 구워 배불리 먹여주십니다.

 

 

이제 주님이 말문을 여십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예수님께서 처음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 부르셨던 그 이름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가 만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주님은 나의 부끄러운 모습, 나의 부족함, 나의 문제, 나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다가도 누군가에게 실망을 하게 되면 관계가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어떻게 넘어질지 어떻게 실패할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을 참되게 만나게 된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무엇이 죄냐 아니냐, 큰 죄냐, 어디까지 지켜야하는 의무이냐를 따지고 계산하는 차원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하면 나의 사랑하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계속해서 베드로를 먼저 찾아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매순간 방문하십니다. 베드로의 마음이 배가 가라앉을 정도의 많은 물고기로 채워질 수 없듯이 오늘의 우리의 삶도 주님 외에 그 무엇으로도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사랑하신 주님, 실패하고 넘어져도 여전히 변함없이 찾아와 주시는 주님을 더 많이 만나기 원하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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