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0.22.수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 / 이승선(21세)
제목 : 성경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ible(요 5:39,40)
본문 : 요한복음 5장 39-40절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5장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40절 두 구절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9 ¶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40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성경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ible)”입니다. 어리고 아무것도 아닌 자가 앞에 섰지만 저의 어떠함을 보지 마시고, 오직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유익을 얻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에 기름 부어 주시고 저를 붙들어 주시라고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 생명의 검색엔진
오늘의 본문 39절은 “성경을 탐구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탐구하라”는 말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Search”인데, 이것은 성경을 찾고 뒤지고 수색하고 추구하며 유심히 살펴보고 탐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어두컴컴한 밤에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비추어 구석구석을 살피듯이 우리는 성경을 향해 우리의 서치라이트를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아주 발달되어서 백과사전이나 책을 많이 뒤지지 않아도 웬만한 자료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자료와 정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이트를 보통 “서치엔진”, “검색엔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검색엔진”을 통하여 많은 전문지식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이 목사님의 통풍에 관해서 잘 정리한 사이트를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와, 요즘에는 의사들이 보는 두꺼운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쉽게 이런 정보들을 구할 수 있구나.”하고 생각하였습니다. 성경은 바로 주 예수님과 생명을 제공하는 검색엔진입니다. 우리는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의 검색엔진을 이용하듯이, 매일 생명을 얻기 위하여 성경의 검색엔진을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해 주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 성경은 바로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주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며, 주 예수님을 만나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 생명이신 주 예수님
주 예수님께서는 양들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 10:10). 주 예수님은 생명을 주러 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 자신이 바로 생명이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로다”(요 6:48). 

오늘날 누구든지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주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죄인이 새 생명을 얻고 거듭나기 위해서도 생명이신 주 예수님께 나아와야 하며, 이미 생명을 얻어 그분의 양무리가 된 교회도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기 위하여 생명이신 주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주 예수님 없이는 생명의 탄생도, 생명의 자라남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생명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야 합니다. 


** 오늘날 우리의 문제
주 예수님은 분명 우리의 생명을 풍성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 생명을 풍성히 누리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안타깝게도 주님의 생명을 풍성히 얻고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은 생명을 풍성케 하려고 오셨지만 우리는 정작 그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 안에 생명으로 거하시지만 우리는 그 생명을 충만히 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생명을 얻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상태의 그리스도인이라면 주 예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기를 원하고 사모할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풍성히 얻어 주 예수님처럼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는 이 때문에 애통하고 눈물도 흘리며 매번 새롭게 결심합니다. “오늘은 반드시 이 생명으로 살리라!” 
우리의 문제는 주님의 생명을 풍성히 얻기 위해 주님 자신에게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를 원하지만 우리의 실생활 가운데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너무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오늘 생명을 풍성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주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우리는 생명을 풍성히 얻기 위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주님께 나아가는 것 - 성경을 탐구함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께 나아가는 것”의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오늘날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께 나아가야 하는데 주님은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셋째 하늘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까? 진지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도 있고, 교회의 집회 가운데 나아와 주님의 임재를 찾을 수도 있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주목하려고 주의를 기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본문 안에서 “내게로 오라”는 말씀이 곧 “성경을 탐구하라”는 말씀과 하나임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가운데에는 말씀에 기록된 약속을 붙잡는 믿음이 있어야 하며, 교회의 집회 가운데는 기록된 말씀의 선포가 있어야 하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데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성경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 예수님께 생명이 있고, 성경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경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의 자라남은 말씀에 달려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에서는 순수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자라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찾고 샅샅이 탐색하고 공부할 때 생명을 풍성히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풍성히 얻기 위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생명의 기초요 믿음의 기초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의 사상과 말들로부터 벗어나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상고하지 않으면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탐구하지 않으면 결코 생명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하루 10분 성경을 찾으면 그 만큼 성장하는 것이고, 하루 1시간 성경을 상고하면 그 만큼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되찾으라.”하셨고 “심는 대로 거둔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고 생명의 말씀에 시간을 투자할 때 우리는 그 만큼 생명을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넘어지고 무능하고 실패하는데 있지 않고 주님과 멀어진 데에 있습니다. 주님과 멀어진 원인은 우리가 죄를 지은 것에 있지 않고,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말씀 앞에서 풀어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다만 성경을 읽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다만 “성경을 읽으라.”고 하지 않으셨고, “성경을 탐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탐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편 77편 6절에서는 “밤에 부른 나의 노래를 기억하고 내 마음과 이야기하며 내 영이 부지런히 살펴 이르기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펴”라는 말씀의 영어 단어가 오늘 본문에서 “탐구하라”는 단어와 같은 “Search”입니다. 탐구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성경을 탐구하라는 것은 다만 쭉쭉 읽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머물러서 깊이 기억하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또 사도행전 17장에서는 성경을 상고하는 한 무리, 베레아 사람들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11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
12 그들 중의 많은 사람이 믿고 또 그리스 사람인 귀부인들과 남자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이 그리하더라. (행 17:11,12). 
베레아 사람들은 다만 말씀을 전심으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 말들이 그런가 하여 매일 성경을 탐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단어가 오늘 본문과 같은 단어입니다. 베레아 사람들은 매일 성경을 탐구하고 그러한가 살폈습니다. 그 결과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을 매일 읽어나갈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기억하고 회상하며 묵상하고 찾아서 살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지속되는 추구가 있을 때 그 결과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생명 = 빛
요한복음 1장 4절
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생명이 자라난다는 것은 곧 믿음이 자라난다는 것이고 믿음이 자라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아는 인식이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탐구할 때 빛과 계시와 인식을 얻게 됩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단순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 119:13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취는 빛이 바로 우리의 생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우리가 빛을 얻을 때 생명을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는 것에 근거합니다. 모르는 사실을 믿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께 온전히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결단력과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을 온전히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모든 문제가 말씀에서 빛을 얻는 것과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이 자라는 문제는 오직 빛과 계시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빛과 계시는 내 안을 들여다보고 나를 살피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을 탐구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찾고 탐구하는 사람에게 주님은 빛과 계시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이 빛과 계시를 얻을 때 생명을 풍성히 얻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로마카톨릭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던 시대, 수많은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와 죽임을 당하던 시대를 가리켜 “암흑시대”라고 부릅니다.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시대를 우리는 “암흑시대”, “빛이 없는 시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카톨릭은 일반인들에게는 성경을 금서로 정하였고, 오직 성직자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으며, 오직 로마교회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고자 하여도 당시에는 성경에 라틴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배우지 못한 사람들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는 먼저 성경을 탐구하였습니다. 그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탐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가 가지는 참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마틴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의 중심적인 역사는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95개조 반박문을 드높이고 그의 용기를 칭송할지 모르겠지만 마틴 루터가 이룩한 가장 큰 업적이 있다면 성경을 번역하여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보급한 것이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국의 모든 사람들이 빛과 계시를 얻을 수 있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루터 성경입니다. 암흑시대를 종결하는 찬란한 빛 가운데로 인류를 인도한 위대한 역사는 마틴 루터가 이룩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이룩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중심에는 마틴 루터가 아닌 성경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또 다른 암흑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생명의 면에서 보자면 황폐하고 메마른 시대라고 말할 수 있고, 빛의 면에서 보자면 암흑과 같은 시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마귀는 사람들의 손에서 성경을 강제로 빼앗고 성경을 읽고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원수는 그보다 더 교묘하게 우리에게서 성경을 빼앗고 있습니다. 세상의 분주한 소식들과 생활 속의 시끄러운 환경들로 우리를 혼란케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사투를 벌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완전한 흑암 가운데로 빠질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풍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메마른 이유는 우리가 빛 가운데로 나아가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빛 가운데서, 즉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일에 너무나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시간을 생명으로 여기고 사수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생명은 풍성해 질 수도 자라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야위고 약해지고 황폐해져 갈 것입니다. 마틴 루터가 어두컴컴한 흑암의 시대를 뚫고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찬란하게 비춰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사명을 짊어져야 합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요 5:39).
우리를 무겁게 하고 분주하게 만드는 모든 것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 우리에게 주신 복 - 진리의 말씀, 진리의 영, 진리의 기둥과 터전
우리는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이 생명을 풍성히 얻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얻고자 하는 원함보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원함이 더 크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성경을 탐구하여 빛과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가까이 다가서셔서 우리에게 풍성히 주고자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빛과 계시를 풍성히 얻지 못하는 이유는 주시지 않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간절히 사모하여 성경으로 돌아가지 않는 우리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생명을 풍성히 주시고자 주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바로 주 예수님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 말씀을 펼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넘치는 복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성경의 저자이신 진리의 영을 내주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들 말하는 “저자 직강”을 들을 수 있는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여기서도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진리의 기둥과 터전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리를 얻고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안배해 주셨습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진리를 얻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히 기뻐하시며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생명 얻기를 사모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히 복 주시며 풍성히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나는 부요하다”, “배부르다”하는 생활 태도입니다. 오, 주께서 우리에게 가난한 영을 허락하시고 갈급함을 허락하시기 원합니다. 


** 실제적인 변화
우리가 생명을 풍성히 얻고 믿음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실제적인 시간표가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잠자는 시간이 바뀌어야하고, 우리의 일어나는 시간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게으르고 태만한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성경을 상고하기 위해 모든 시간과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혼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가 영혼들을 향한 사랑이며 형제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둘째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인용한 말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 5절 말씀에 이어지는 6,7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6 이 날 내가 네게 명령하는 이 말씀들을 네 마음속에 두고
7 너는 그것들을 네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네가 네 집에 앉을 때에든지, 길을 걸을 때에든지, 누울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그것들을 말할 것이며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하는 실제는 말씀을 마음속에 두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것에 관해 말하고,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날 때 그 말씀들에 관해 말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상고하기 위하여 시간을 따로 때어놓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바로 우리의 실제 생활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의 시간동안 성경을 상고하고 있습니까? 하루에 얼마나 자주 성경 말씀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모였을 때 대화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어떠했을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성경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갈 때 길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만이 길을 얻고 생명을 얻고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오늘 성경으로 돌아갈 때 주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의 생활에 실제적인 변화가 있기를 원합니다. 


** 결론 - 성경으로 돌아가라
우리는 우리의 믿음 생활이 완전히 성경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실패의 원인은 오직 성경에서 멀어진 데에 있습니다. 죄를 짓고 실패를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과 멀어진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생명을 추구한다는 말은 생명의 말씀을 상고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을 추구한다는 말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을 내 안에 충만히 거하게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기초는 성경이며, 우리의 생명의 기초도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내가 사랑하나니 일찍 나를 찾는 자들이 나를 만나리라.”(잠 8:17). 
주께서 우리 모두에게 복 주시기 원합니다.


*이 글은 아래 주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랜섬웨어 2번 당하니 백업이 철저해지네요! ^^
로빈박스 http://robinbox.net/nt/gospels/43john/43john053940_backtothebible_20031022_rob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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