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6.09.20 / 설교 장소 : 밴쿠버 그레이스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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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만난 하나님(행 13:21-22)


(행 13:21-22) 『21 그 뒤에 그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 동안 주셨다가 22 그를 폐하시고 그들을 위해 다윗을 일으켜 세우사 그들의 왕이 되게 하시며 또 그에 대해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찾아내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그가 내 뜻을 다 성취하리라, 하시고』
(삼상 16:5-13) 『5 그가 이르되, 평화롭게 오느니라. 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 하고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6 그들이 오매 그가 엘리압을 보고 이르기를, 주의 기름 부음 받을 자가 참으로 그분 앞에 있도다, 하였으나 7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이에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매 그가 이르되, 이 사람도 주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그 때에 삼마를 지나가게 하매 사무엘이 이르되, 이 사람도 주께서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니라. 10 다시 이새가 자기의 일곱 아들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니라.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들을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고 11 또 이새에게 이르되, 네 자식들이 다 여기 있느냐? 하니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보서서,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 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그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이제 그는 혈색이 좋으며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고 보기에 잘생겼더라. 주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이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하시니라. 13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두 곳입니다. 먼저 사도행전 13장 21-22절을 보시겠습니다. (읽는다.) 이제 사무엘상 16장 5절부터 13까지 보시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다윗이 만난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성경에서 다윗만큼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길고 자세하게 그가 지나간 길과 행적이 기록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갖는 이 짧은 설교시간을 통하여 다윗의 생애를 모두 알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다윗의 생애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을 주목하여 살펴봄으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었는가를 주의하여 살펴보기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
최초의 사람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으로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큰 아들 가인은 그의 동생 아벨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아담의 다음 아들이었던 셋으로부터 인류는 새롭게 이 땅에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5대손인 에녹이 살았을 때부터 이미 세상은 극도로 타락하기 시작했고, 아담의 8대손 노아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호흡하는 생물을 홍수로 심판하셔야 할 만큼 타락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시작하셨지만, 모든 인류가 한 곳에 모여 하나님을 대적하며 바벨탑을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으시고 많은 민족들의 구분과 경계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을 통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증거할 한 민족을 만들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을 통하여 결국 70명이라는 자손이 이집트로 들어갔고, 400년 만에 그들은 모세와 함께 약 200만이라는 엄청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함께 40년을 광야에서 이동하고,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했던 이스라엘은 그들을 완전히 몰아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 민족들에게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재판관들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시고, 또 다시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가나안 민족들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벌하시고, 또 다시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재판관들을 주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여호수아 때로부터 대언자 사무엘 때까지 약 450년 동안 그들에게 재판관을 주셨습니다(행 13:20). 

이제 재판관들의 마지막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대언자 사무엘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도 다른 민족들과 같이 인간왕을 가지게 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다른 민족들과 구분되게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왕국을 거부하고 다른 민족들과 같은 인간왕을 가지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베냐민 지파의 사울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 가운데 가장 키가 크고 잘생기고 능력이 많은 용사를 왕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모든 백성은 한번 사울을 보자마자 국왕 폐하를 외칠 만큼 건장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사람들의 평가와 눈을 더 주의하는 왕이었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은 제사장 외에는 결코 드려서는 안되는 제사를 전쟁이 두려워 떠나가는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스스로 진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두 멸하라 하신 아말렉 민족의 왕과 모든 기름진 양과 소를 남겨두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책망하며 떠나갈 때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그래도 백성들이 보고 있으니 나를 위해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양이라도 내달라고 요청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자신의 경배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지 여부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다윗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상 16장의 말씀이 등장하게 됩니다. 16장 1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 기름을 네 뿔에 채우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해서 사무엘은 베들레헴에 있는 이새의 아들들을 만나러 길을 떠납니다. 주님은 아직 누구라고 정확하게 가르쳐주시지는 않고 다만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들레헴에 들어가니 모든 백성을 인도하던 대언자 사무엘의 방문에 모두들 놀라고 떨며 사무엘을 맞이합니다. 특별히 마을의 장로들이 나와서 사무엘을 맞이합니다. "평화롭게 오시나이까?" 사무엘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릴 준비를 하고 특별히 이새의 아들들을 초청하였습니다. 한번 이 광경을 상상해 보십시오. 

온 민족을 재판하고 이끌던 장로 중의 장로, 대언자 사무엘이 마을에 방문하였습니다. 마치 대통령이 마을을 방문한 것같이 베들레헴에서는 엄청난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의 장로들이 다 나와서 사무엘을 맞이합니다. 사무엘은 특별히 "이새의 가족"을 지명하여 초청하였고 특별히 이새의 아들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아들들 가운데 한 명에게 기름을 부을 것이라 말합니다. 아마도 이 기름 부음을 받을 자가 사울을 대신한 왕이라고 말하면 너무나 큰 파장이 올 것이기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기름을 붓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백성들도 묻는 것을 두려워해서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첫째 아들 엘리압이 사무엘 앞으로 옵니다. 이 엘리압은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이었기 때문에 사울의 용사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사무엘이 그를 보고 "주의 기름 부음 받을 자가 참으로 그분 앞에 있도다" 감탄하면서 기름 부을 준비를 합니다. 주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나 키의 크기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

만약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라."라고 말씀하셨다면 이러한 놀라운 말씀, "주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아니 아니하나니 사람은 겉모습을 보나 주는 마음을 보느니라."와 같은 말씀이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평생토록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섬겨온 사무엘조차 사람인지라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보는 것과 다르게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아들 엘리압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비나답, 삼마 이렇게 일곱 아들들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지만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어떤 말씀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새에게 확인차 묻습니다. "네 자식들이 다 여기 있느냐?"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보소서, 그가 양을 지키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새가 대답한 뉘앙스를 잘 파악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 막내 녀석이 있는데, 그 놈은 양치고 있지요. 막내 녀석은 아직 이런 자리에 참석할 놈이 아니죠. 형들 다 왔으니 양이나 보고 있으라 시켰죠."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사무엘이 왔는데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줘야지, 그것도 특별히 이새의 아들들을 초대한 잔치요 거룩한 자리인데, "너는 가서 양이나 쳐라."하고 부르지도 않았으니 다윗이 가족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안 봐도 뻔할 뻔 자입니다. 막내로서 형들의 수중을 들고 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하고 모든 아들들을 초청한 가족 행사 때에조차 따로 남겨져 양을 돌봐야하는... 아들이면서도 아들 같지 않은 대우를 받았던 다윗을 그려보십시오. 
사무엘이 이새의 가족들을 특별히 초청했지만 아마도 우리는 많은 베들레헴 주민들이 그 자리에 참석하였을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보통 작은 일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축제와도 같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함께 모여 시끌벅적대고 있는 가운데 저 멀리 들판에는 혼자 남겨져 양을 보고 있는 다윗이 있습니다. 

들판에서의 다윗
어찌보면 외롭고 쓸쓸하고 가족들에게서 버림받은 것 같고 소외당하고 왕따를 당한 것 같은 한 소년이 양을 지키며 앉아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곳곳에 나타난 말씀들을 통해 다윗이 어떤 모습으로 양들을 돌봤는지 그려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잠시 들판에 누워서 흘러가는 구름과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내 일어나서는 하프를 타고 주님의 역사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찬송시를 직접 지어서 노래를 붙여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금 양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한 마리 한 마리 어디 있는지 위치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때 어디선가 곰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양들이 흩어지고 다른 양치기 품꾼들은 도망가기 시작합니다. 곰은 어린양 한 마리를 움켜지고 숲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와 돌팔매 기구를 가지고 추격합니다. 작은 양치기 소년과 큰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드는 거대한 몸집의 곰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 저 곰의 발톱과 이빨로부터 나를 지켜주시고 내가 오직 아버지의 양들을 충성되게 지켜낼 수 있도록 긍휼을 베푸소서." 

어린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작은 양치기의 입에는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하심을 노래하는 찬양이 가득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라. 가족들 가운데서도 막내에 불과하고 양치기에 불과한 아무것도 아닌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내가 이렇게 양을 지키는 목자이듯이 주님은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목자시로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나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 외쳤을 것입니다. 
다윗은 날마다 주님을 노래하며 찬양하며 모든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겨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마음이 섭섭하고 허전하고 울적할 때마다 다시 주님께 나아가서 위로를 얻고 힘을 얻고 나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주님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 속에 깊이 잠겨서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다윗을 누군가 부르고 있습니다. 
"이봐, 다윗! 야! 내 말 안들려? 너 출세하겠더라? 지금 빨리 사무엘 대언자께서 너를 불러오라고 하셨어. 너가 오지 않으면 앉지도 않겠다고 서서 기다리신단 말야. 빨리 와봐."
이렇게 해서 다윗은 영문도 모른채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 위에 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
한편 사울 위에 있던 주의 영은 떠나가고 오히려 악한 영이 와서 사울을 괴롭게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신하들 중 한 사람이 다윗을 추천하여서 다윗으로 하여금 사울이 괴로울 때에 하프를 타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이 괴로울 때마다 하프를 타면서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그 소리를 들은 사울은 상쾌하게 되고 낫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크게 사랑한 사울은 다윗을 자신의 병기 드는 자로 삼았습니다. 이제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이 벌어지자 사울은 다윗을 집으로 돌려보냈고 다윗의 큰 형들 중 엘리압, 아비나답, 삼마는 용사로서 전쟁을 하러 나갔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윗은 다시 여전히 아버지의 양을 먹이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에 나간 큰 아들들을 걱정하여서 다윗에게 음식을 주며 형들이 잘 있는지 보고 잘 있는 증거물을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보냅니다. 왕 앞에서 하프를 타고 병기를 드는 역할까지 했던 다윗이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여전히 목동이요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한편 전쟁터에서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키가 약 3미터나 되는 거인 투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가 입은 쇠 그물 옷은 놋 오천 세겔이라 하는데 이것은 대략 196킬로그램이라고 합니다. 골리앗이 들고 있던 창은 베틀 채 같았고 그 창의 촉 무게만 해도 쇠 육백 세겔로 대략 20킬로그램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머리에 놋 투구와 어깨 사이의 놋 방패, 정강이가리개 등의 모든 무장을 합치면 이 골리앗은 수백 킬로그램의 무겁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전쟁에 능한 앨리트 신동 전사로서 블레셋의 영웅 중의 영웅이었습니다. 이 골리앗이 40일 동안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소리치기를 모두가 전쟁할 필요 없이 한 사람만 나와서 자기와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전에 우리 서 목사님과 제가 좋아하던 삼국지 게임을 보면, 일기토라는 전쟁 옵션이 있는데 전쟁 중에 대장인 장수 두 명이 나와서 대표로 싸웁니다. 뒤에 아무리 많은 병사들이 있더라도 대표 장수가 패하면 다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골리앗은 지금 일기토를 해서 전쟁을 끝내자고 도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 가운데 가장 키가 컸던 사울 조차 골리앗 앞에 서서는 작고 약해 보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골리앗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심부름을 온 다윗이 전쟁터에 도착하였습니다. 

"22 다윗이 자기 짐을 짐 지키는 자의 손에 맡기고 군대로 달려가서 자기 형들에게 문안하고 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보라,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에서 가드 출신 블레셋 사람 곧 이름이 골리앗이라 하는 투사가 올라와 똑같은 말들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삼상 17:22,23). 
이 말을 들은 다윗이 흥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그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에게 도전하느냐?"
이 말을 들은 엘리압이 다윗을 향해 분노를 발하며 호통을 칩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광야에 있는 몇 안 되는 그 양들을 네가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무례함을 아나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려고 내려왔도다."
막내 주제에 자기를 대신해서 기름 부음을 받은 것도 못마땅한데 지금 모두가 두려워 떠는 상태에서 담대하게 말하는 다윗을 보고 흥분한 엘리압은 다윗을 향하여 무례하고 교만하다고 호통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향해 열심을 내다보면 사람들에게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가족들 안에서 말입니다. 너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 그렇게 교만할 필요 없다, 너만 왜 유별나게 그러냐, 그러나 우리가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오히려 이러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우리를 격려하는 소리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다윗은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의 내용처럼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윗은 이 때 갑자기 믿음이 생겨서 놀라운 일을 해낸 것이 아니라 평소 사자와 곰의 발톱에서 자신을 구해내신 하나님을 평소 그대로 신뢰하며 동행하였고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45 너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거니와 나는 네가 도전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이 날 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게서 네 머리를 취하고 또 이 날 블레셋 사람들 군대의 사체를 공중의 날짐승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온 땅이 알게 하겠고 47 또 주께서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심을 이 모든 무리가 알게 하리라.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인즉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시리라"(삼상 17:45-47).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는 한가지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만을 사용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만 사용하신다고 오해하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섬길 수가 없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다윗을 보십시오.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로지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과 맞는 것을 보시고 이 다윗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이 없었으면 저기 저 시골에 가족들 중에서도 하찮게 여겨지는 작은 목동을 일으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면서 놀라운 역사와 간증을 일으키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가 좀 모자라고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마음이 아직 주님과 온전히 합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흥분해야 할 때 차분하려고 노력하고, 주님을 위해 잠잠하고 인내해야 할 때 앞서 나가 흥분하여 화를 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입술은 주님을 닮은 듯하여 주님께 가까이 나가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너무도 멀기만 합니다. 주님과 함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능력이 많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둔한 사람일지라도 그 마음이 하나님과 합해진 사람인 것입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바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죄를 지은 다윗
이제 이야기를 많이 뛰어넘어서 다윗이 왕이 된 뒤에 일어난 사건 한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사건도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 못지 않게 너무나 유명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바로 다윗이 간음과 계획 살인이라는 극악무도한 죄악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자신의 충성스러운 장군 헷 족속 우리야의 아내라는 것을 알고서도 동침하였고, 나중에는 자신의 죄가 폭로될 것을 가리기 위하여 헷 족속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의 선봉으로 세워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된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취하였습니다. 이렇게 간음과 계획 살인은 율법에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입니다. 이러한 죄를 위한 번제 헌물은 아예 항목이 없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위하여서는 도피성읍이라도 예비되어 있었지만 계획적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그 생명으로 죄 값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간음하는 자와 살인자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다윗은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주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까요? 
사울 왕은 간음이나 살인이 아니라 다만 제사장이 드려야 하는 제사를 본인이 직접 수행한 것과 모두 멸하라 하신 아말렉 족속 중 좋은 것들을 남겨놓은 죄 때문에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졌습니다.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에 더욱더 중한 죄를 지은 다윗은 어떻게 해서 계속해서 왕의 자리에 앉았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의 보좌가 끊어지지 않으리라는 약속까지 얻게 되었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다윗의 죄로 인하여 다윗의 집에서 간음과 살인과 반역이라는 일들로 다윗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범죄하기 이전과 같은 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다윗은 이렇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까?

대언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한 부자가 있었는데, 가난하여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 없던 그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자기 손님을 대접하기 위하여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윗은 흥분하며 일어나서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하며 반드시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소리쳤습니다. 그것도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힘주어 말했습니다. 나단이 대답합니다. "왕이 그 사람이니이다."
자신의 죄가 발각되었을 때 사울왕은 백성의 눈을 의식하여 겉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였지만, 다윗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내가 주께 죄를 지었노라." 고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1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크신 친절한 긍휼에 따라 내 범죄들을 지워 주소서. 6 보소서, 주께서는 속 부분에 있는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나로 하여금 은밀한 부분에 있는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14 오 하나님이여,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그리하시면 내 혀가 주의 의를 크게 노래하리이다. 16 주께서는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 헌물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 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온 마음을 다하여 나아갔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이러저러한 행위들이나 기름진 번제물들을 가지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직 참되게 돌이키고 깊은 속에서부터 통회하며 다시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완전하게 회복하였습니다. 

호세아 대언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느니라"(호 6:6). 주님은 죄를 지으면 희생물을 가져오고, 기계적으로 자백하고, 번제 헌물을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은 죄에게 정복당하여 종노릇하며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우리들에게 긍휼을 베풀기 원하시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속마음이 하나님과 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
이번 주 중고등부 학생들과도 공부했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과 만날 때에만 참되게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혼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혼자 먹는 것은 맛이 없고,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가 있어도 혼자 극장에 찾아가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아무리 좋은 관광지가 있어도 혼자서 찾아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며 어울리는 데서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사람들 가운데서 시끌벅적하게 지내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외로움과 허전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러한 상실된 마음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만족할 수 있습니다. 
아기들은 엄마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청년들은 친구들과 즐기는 쾌락으로, 장년들은 돈과 명예와 자식들의 성공으로, 노인들은 손주들의 애교와 사람들의 존경으로... 허기지고 오그라든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노력하지만 블랙홀 같이 끊임없이 빨아드리는 요구하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만족되지도 채워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자신으로만 만족될 수 있습니다. "주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웠던 무식하고 불품 없던 한 양치기 소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살아 계시며 인격적이신 하나님, 우리와 같이 마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마음과 마음의 진솔한 교제, 사랑의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이것을 하면 벌하고 저것을 하면 상주는 계산이 빠른 컴퓨터 시스템 같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 계셔서 오늘 나의 마음에 찾아오시고 나와 교제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 우리도 만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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