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22.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설교 /로빈30세
http://robinbox.net
나를 고치소서(렘 17: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17장 14절입니다.
오 주여, 주는 나의 찬양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를 고치소서”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찬양은 믿음의 노래이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17장 14절 말씀은 주는 나의 찬양이시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주님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아가는 의미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찬양이란 단순히 찬송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바로 찬양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 영화배우들을 찬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찬양이란 진실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높이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우리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나는 그렇지 못하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를 돌이켜서 하루 중 단 한 순간만이라도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 17장 14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오 주여, 주는 나의 찬양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누가 찬양을 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존재하고 있지만, 실제로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조차 많은 경우 진지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기보다 형식적으로, 겉모습만으로 그렇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참되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오늘 읽은 말씀과 같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자가 주님을 참되게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시면
오늘 예레미야는 주님께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예레미야는 이미 고쳐졌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으로부터 구출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나를 고쳐주시고, 나를 건져달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고치시면 고쳐질 것이고, 주님께서 구원하시면 구원을 받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여기서 말하는 구원이란 지옥에서 건져지는 구원이 아니라 우리가 날마다 살아가는 삶 속의 어려움들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예레미야가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이미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고쳐주실 것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들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오늘 당하는 많은 어려움 가운데 100% 완벽하게 억울한 어려움은 거의 없습니다. 내가 말을 잘못했다든지,잘못된 표정을 지었다든지, 잘못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결심을 하고, 잘 해보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그것이 우리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 자신에 대해 실망하고 낙심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나는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문제가 많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나는 변화될 수 없고, 고쳐질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우리의 문제는 “아무도 나를 고칠 수 없고, 심지어 하나님도 나를 고치실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이나 사탄이 주는 생각을 붙잡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생각, 믿음의 생각을 품게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생각입니다.하나님께서 문제가 많은 나를 고치실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주님을 신뢰하라
다함께 예레미야 17장 5절과 6절을 보시겠습니다.
5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을 신뢰하며 육체를 자기 무기로 삼고 마음이 주에게서 떠난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라.
6 그는 사막의 히스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때를 보지 못하며 다만 광야와 소금 땅과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메마른 곳에 거하리라.
성경은 사람을 신뢰하고, 육체를 신뢰하며,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과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로움을 믿는 사람이 지옥의 저주에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신뢰하게 된다면 우리는 메마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장 7절과 8절을 보시겠습니다.
7 주를 신뢰하며 주를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 곧 뿌리를 강가로 뻗은 나무 같아서 더위가 오는 때를 보지 아니하며 잎이 푸르고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으며 열매 맺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리라.
성경은 계속해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아무런 소망이 없지만,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실패하고 넘어졌던 우리가 다시 웃으면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소망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우리가 생각하거나 마음 먹은 대로 모두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수시로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요즘 살을 빼고 몸짱이 되려고 마음을 먹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간식도 먹지 않고, 식사도 천천히 적게 하려고 마음을 먹고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언제나 제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를 보면 마음 먹었던 것을 못 이기고 먹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믿는다면 우리는 속임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우리 자신의 마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
예레미야 17장 9장과 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10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성경은 사람의 마음이 거짓되고 사악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리의 마음이 순수하고 진실한 것 같지만, 성경은 우리의 마음이 거짓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우리가 유리하고 유익한대로 카멜레온처럼 변화되고, 상황에 맞게 나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자신이 잘못하고서도 뭔가 억울한 일을 당한 것처럼 느끼도록 우리 자신을 속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10절의 말씀처럼 마음을 살피시고 속 중심을 시험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어떠한 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거울처럼 맑고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마음을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고치시기 위해서 나의 속 중심을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내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인지,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을 충성스럽게 해 내는 사람인지 우리 자신을 보고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많은 시험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겉모습을 고치시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고 친절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지 않으면서도 순종할 수 있고 심부름을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거짓되고 사악한 마음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과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말실수를 하고, 또 여러 가지 행동 가운데서 문제를 일으키는 모든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작은 시험지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학교에서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주님을 닮지 않은 우리의 성품을 고치시기를 원하시고, 또 우리의 믿음이 없음을 고쳐주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게으름과 자존심과 교만과 어리석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첫째로 필요한 것은 수학이나 영어나 과학 성적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려고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로 잡고자 하실 때, 주님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따지거나, 마치 나에게는 고칠 점이 없는 것처럼, 나는 옳고 정당한 것처럼,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러한 자세부터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당할 때 진지하고 신중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기보다 억울해하고 남의 잘못을 먼저 지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러한 자세를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로잡고자 하실 때, 우리의 속 중심을 시험하시려고 어려운 상황들을 허락하실 때, 우리가 겉으로 나타난 일들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기 원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렵게 할 때,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든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이러한 일들 가운데 나를 고치시고 가르치시도록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예레미야 17장 14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오 주여, 주는 나의 찬양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고쳐지리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받으리이다.
'구약 > [24]예레미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과 행실(렘 17:10) (0) | 2017.07.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