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일시 : 2010.04.09 / 설교 장소 서울침례신학교 설교학 10분 설교/로빈28세

 

내게 배우라(마 11:28-30)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1장입니다마태복음 11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 위에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그리하면 너희가 너희 혼을 위한 안식을 찾으리니

30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하시니라.

 

오늘 저는 내게 배우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서론

오늘 우리는 주님의 사역자가 되기 위하여 이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주님의 참된 일꾼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배워야하는 것이 무엇일까요우리는 어떤 사역자의 모습을 마음에 그리면서 준비하고 있습니까?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성경을 그 자리에서 척척 펴서 보여주고 해설해 줄 수 있는 뛰어난 말씀의 사역자가 될 수도 있고또 놀라운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눈물과 감동으로 주님 앞에 이끌어 오는 위대한 설교자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또한 형제자매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동역하는 놀라운 기도의 사역자가 될 수도 있고많은 귀한 찬송을 통해 지체들의 마음을 소생시키는 찬양의 사역자가 될 수도 있으며주옥같은 글들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진리를 보급하는 문서 사역자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모습의 사역자들을 묶어서 한가지로 길을 정해보자면예수님을 닮은예수님 같은 사역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어떠한 인상또는 이미지라는 것이 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볼 때, “저 형제는 참 똑똑하다,저 형제는 참 말을 잘한다.”라고 느끼는 특징들이 있습니다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예수님을 믿는 않는 영혼들이나형제자매들이 우리를 볼 때에, “내가 예수님이 누군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저 사람은 진짜 예수님 같다저 형제는 저런 면은 주님을 닮았어.”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우리에게 그것보다 큰 기쁨과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의 소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니겠습니까물론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는 것이 소원이 아니죠정말 우리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또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바로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합니다우리의 삶에 나만의 독특하고 더러운 냄새가 아니라오직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뿜어져 나올 수만 있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어떠한 사역자가 되기에 앞서서 예수님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생을 드려 가야할 길이 아니겠습니까?

 

 

본론

그렇다면 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특별히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예수님께서는 나는 전능하고 권위가 있으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나는 지혜롭고 명철하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을 닮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바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입니다오늘 주님의 사역자가 되기 원하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길은 바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오늘의 본문 2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여러분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요저 같은 경우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졌을 때곧 마음이 무겁고 피곤할 때 짜증을 잘 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피곤하고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즐거워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다평소에 아무리 예의바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견디기 힘든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며 지친 경우에는 신경이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전에 훈련소에서 야간행군을 했었는데요처음에 출발할 때는 다들 서로를 독려하고 응원을 외치는 분위기였습니다그 중에서 앞부분에 서서 걷는 키 작은 친구가 있었는데, 10분마다 힘내자” 이렇게 외치면 뒤에서 따라가는 동료들이 힘내자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그런데 1시간 정도 걷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그 작은 친구가 또 다시 힘내자라고 외치는데맞장구치는 소리가 점점 없어지더니 나중에는 그 친구에게 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야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입 다물고 그냥 걷자짜증난다.” 함께 파이팅을 외치던 동료들이 무슨 이유로 짜증을 냈을까요,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피곤하고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그러한 사람들은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며신경이 날카롭고 상처 주는 말들을 쉽게 내뱉는 거칠고 부담스러운 사람들입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다 불러주셔서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초청하여 주셨기에 늘 하나님을 배반하고 어리석게 행하는 우리들도 주님 안에서 감히 안식을 누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긴장하지 않습니다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대적하였을 때원수 되었을 때에 조차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셨습니다.

 

제임스 낙스라는 목사님께서는 성령의 열매 중에서 온유에 대해 설명하면서온유를 거대하고 잔잔한 호수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돌을 들어 벽에 던지면 벽은 상처를 입으면서 돌을 튕겨냅니다또한 유리병을 들어 벽에 던지면 벽은 유리병을 산산조각 내버립니다그러나 돌을 들어 호수에 던지면 호수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잔잔하게 흐릅니다온유는 마치 이와 같습니다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비방을 하고 상처를 줄지라도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이처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잔잔한 강같이 모든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늘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서 지적하는 사람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긴장하게 됩니다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다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자연스럽고 안식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안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예수님께서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29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오늘의 본문 2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성경에서 유일하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고 계신 장면입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 원하십니까전천년주의적 종말론교회의 시작간극이론뱁티스트 브라이드, TR이냐 영킹이냐 등등우리에게는 많은 신학적인 이슈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우리가 다른 신학적인 많은 지식들을 배우기에 앞서서또는 다른 지식적인 부분들을 다 배운 후에라도 그 무엇보다 힘써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예수님께서 직접 내게로 와서 내게 배우라.”라고 언급하신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을 배우지 못한다면우리의 바른 지식과 놀라운 재능과 은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정말 많은 지식을 가지고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한 학자들을 봅니다또 정말 설교를 잘하고 사람들을 감화 감동시키는 놀라운 설교자들을 봅니다그러나 그들이 정말 예수님의 마음을 가졌는가그들이 정녕 온유하고 겸손한가를 볼 때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우리는 어떻습니까우리는 어떤 사역자로 준비되기 원합니까우리가 또 한명의 그저 그런 신학자또 한명의 일반적인 목회자가 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우리가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께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쓸모없는 사역자가 될 것입니다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에게 가서 배우려하지 말고내 안에 살아계시는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가지신 마음이 무엇입니까다함께 빌립보서 2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2장 5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교독하겠습니다제가 5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하나님이십니다창조주 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7절에 나온 것처럼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고스스로 종이 되셨습니다이러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도 품기 원합니다누가 참된 사역자인가의 여부는 지식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물론 바른 성경적 지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그러나 바른 지식 그 자체는 우리를 참된 사역자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된 주님의 사역자가 되기 원한다면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않을수록 좋고명성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습니다종이 되면 될수록 좋고사람들이 우리를 아무것도 아닌 자처럼 여기고 무시할수록 좋습니다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그러한 것을 염려하지도 연연하지도 않습니다주님의 사역자가 되기 원하는 모든 형제들은 마음속에 있는 영적 야망을 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넘겨야합니다내가 놀라운 사역을 일으켜서 위대한 사역자가 한번 되어보겠다고 하는 그런 사탄의 교묘한 속임수를 다 십자가로 처리해야합니다침례 요한이 요한복음 3장 30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고백해야 합니다오늘 우리가 가려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쇠하는 길입니다온유와 겸손의 길이며 십자가의 길이며 낮아지는 길입니다무명한 자가 되는 길이며 스스로 종이 되는 길입니다.

 

 

마무리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주님의 마음을 배워야 합니다예수님의 마음은 종의 마음이며 온유와 겸손의 마음입니다이러한 마음은 지식으로 배울 수 없습니다또한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지 않습니다온유는 성령의 열매이며 주님의 성품입니다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있을 때에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우리가 주님과 떨어져서 아무리 노력해도 온유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온유하신 주님께 꼭 붙어 동행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온유를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참된 사역자는 주님과 늘 동행하는 사람입니다온유하려고 노력해서 되지 않고 겸손하려고 노력해서 되지 않습니다우리는 날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모든 수고와 짐을 내려놓고 안식해야 합니다그리고 가벼운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 배워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시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에도 늘 가득하기 원합니다성령께서 우리를 충만히 채우시고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나타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10.01.24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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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 5:1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5장 17절 말씀입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오늘 저는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서론

이제 새해가 밝은지도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새해가 되면서 몇몇의 우리 유치부 아이들 새롭게 초등부로 올라왔고또 중고등부에도 새롭게 올라온 학생들이 있고또 졸업해서 대학에 가는 학생들도 있습니다또 청년부에도 새로 들어온 새내기들이 있습니다이렇게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고 우리 마음도 새롭게 됩니다새해가 되면서 기대가 되는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나를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올 해에는 나에게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시며 어떻게 인도하실까 하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진행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또 내가 보기에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 같아도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가장 귀한 것입니다비록 한 달이 지나가고 있지만올 한해를 새롭게 시작하는 시점에서 주님의 뜻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세 가지 요점으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가나다 순서로 요점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첫 번째 요점은 ”,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이 사실에 모두 아멘하십니까?아멘하나님의 뜻은 우리에게 다소 중요하거나매우 중요하거나굉장히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합니다우리는 모든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잘 살펴야 합니다나의 계획과 일치하는지나에게 유익이 되는지를 계산하기에 앞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가면서 최신형 비행기에 탑승하였습니다기존 비행기보다 2배나 빠르면서도 훨씬 안정적이고 쾌적한 비행기라고 해보겠습니다좌석도 훨씬 넓고 편안해서 내리기 싫을 정도로 좋고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식사와 간식이 너무나 맛있고화장실도 깨끗하고 넓어서 비행기 안에서 살고 싶을 정도입니다가격도 일반 비행기와 별 차이 없는 최고급 최신형 비행기입니다그런데 만약 이 비행기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확인하지 못하고 엉뚱하게 타게 되었다면 어떨까요비행기가 최고급이고 최신형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목적지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지 못할 때 이와 같습니다아무리 좋고 편안한 삶이라 할지라도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지 못하다면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가는 것과 같습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 오늘 우리의 기도는 어떠합니까우리의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시키는 것입니까아니면 아버지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묻고 구하는 것입니까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처럼 아버지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아버지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잠언 19장 21절을 다 함께 보실까요?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 그것만이 서리라.”우리 아이들은 자기 성경에 주의 뜻에 동그라미 해주세요우리의 마음에 수 만 가지 계획이 있을지라도 오직 주의 뜻만이 서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또한 다함께 이사야 55장을 보시겠습니다이사야 55장 8절과 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주가 말하노라.

하늘들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반드시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합니다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길은 다르며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자신의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자신의 길과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게 됩니다주님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내가 생각할 때는 길이 없고 방법이 없는데하나님께는 수많은 길이 있고 방법이 있습니다내가 생각할 때는 이 한 가지 길밖에 없는데하나님의 생각에는 또 다른 길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오 내 아버지여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그러나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마 26:39). 오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크리스챤입니다우리 주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철저히 아버지의 뜻대로 걸어가셨습니다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이제 두 번째 요점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두 번째 요점은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입니다. “는 뭐였죠,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그렇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우리는 먼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에베소서 5장 17절 말씀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주님은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이해시켜주기 원하십니다자신의 뜻을 감춰놓고 메롱 약 오르지하시면서 즐거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다음의 4가지를 뽑고 있습니다.첫 번째는 성경 말씀두 번째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세 번째는 환경의 인도하심네 번째는 마음의 평안입니다. (반복)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으로 꿈과 환상을 말하기도 합니다전에 어떤 중고등부 학생이 저에게 예수님이 꿈에 나와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그게 무슨 의미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너 꿈에 선생님 나온 적 있니?” 그랬더니 너무 감사하게도 이 학생이 평소에 선생님을 생각하기는 했는지제가 꿈속에 나온 적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꿈에서 너에게 뭐라고 말하면 그건 무슨 의미지?”

아무 의미도 없죠.”

 

많은 사람들이 꿈과 환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매우 특별한 체험이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무당들도 환상을 보고힌두교 사제들도 계시를 받습니다그것이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은 결코 아닙니다마귀도 환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충분히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으며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할 수 있습니다다함께 히브리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1장 1절과 2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우리가 성경을 보면 요셉이나 다니엘 같이 꿈과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계시 받은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에 나온 것처럼 지나간 때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환상음성... 다양한 방식으로그러나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신약성경 계시록을 마감으로 완성되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첫 번째 방법은 성경 말씀입니다그래서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다른 사람이 말씀을 풀이한 것을 묵상하기 전에말씀 자체를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성경만이 우리의 생각과 실행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인도받는데 있어서 두 번째 방법으로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이것은 우리가 교만에 빠지거나독단적이거나감정적인 상태로 어떤 일을 잘못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14장 1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가 보기에는 옳고 좋은데 그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겸손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잠언 24장 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니라.”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혼자 성경보고 기도하고 결정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고, “너는 지혜로운 조언으로 전쟁을 할지니라조언자가 많으면 안전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가 듣기에 좋은 조언을 해주는 사람뿐만 아니라듣기에 거슬리는 쓴 소리도 조언으로 받을 때에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데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한 흐름 가운데 기도하며 생각하여 각 형제 자매들의 일들을 조언할 때 그러한 길이 너무나 안전하고 좋은 길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 세 번째 방법으로 환경의 인도하심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모든 상황과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의 손길을 기다려야 합니다많은 경우 우리가 조급할 때에 하나님의 뜻을 그르칩니다밥이 뜸이 들어야 하는데 배고프다고 뚜껑을 열어버리면 밥맛이 이상해집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는 네 번째 방법으로 마음의 평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우리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마음이 불안하거나 염려될 때 우리는 결정을 보류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의 인도를 구하면서 성경 말씀의 기준에 어긋남이 없는지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조언을 통해 검증이 되었는지또한 환경의 인도를 볼 때 주님의 축복이 있는지를 살필 때에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마음의 평안은 내가 주장하고내가 목적하는나의 뜻이 없을 때온전히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겼을 때 가질 수 있습니다나의 뜻이 있을 때에는 항상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고 걱정되지만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세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지금 저희는 계속해서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부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그 중에 우리는 먼저 일반적으로 성경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4가지 방법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 “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 “환경의 인도하심”, “마음의 평안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 말씀 에베소서 5장 17절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한 번 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바로 다음 구절을 보시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이 나오고 있습니다그것은 바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것입니다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첫 번째는 성령 충만입니다.

 

또한 22절을 보시겠습니다우리 자매님들께서 읽어주실까요? (시작)

아내들아너희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것이 바로 자매님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25절 말씀을 형제님들께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

남편들아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이것이 바로 남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을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과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1 자녀들아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것은 약속 있는 첫째 명령이니)

이것은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

아멘이것이 바로 자녀들을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자녀들은 부모님을 공격하지 말고 공경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부모님들께서 4절 말씀을 읽어주실까요? (시작)

또 너희 아버지들아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면서주의 교육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 부모님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5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종들아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된 자들에게 두려워하고 떨며 단일한 마음으로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오늘날 우리가 직장에서나 일터에서 성실하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일이 마음에 들거나고용주가 잘해주기 때문이 아니라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주인들아너희도 그들에게 같은 일들을 행하고 협박하는 일을 삼가라너희 주인도 하늘에 계시나니 그분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지금 우리가 읽은 말씀들은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라고 말씀하신 에베소서 5장 17절로부터 연결된 한 문맥 안에 있는 말씀들입니다하나님의 뜻은 뭔가 심오하고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의 뜻은 너무나 쉽고 단순하며 분명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오늘 나에게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순종해야 합니다그러할 때 나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님의 뜻도 인도받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

이제 마지막 요점으로 가나다” 중에 입니다. “는 다윗의 이야기입니다다윗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인도받고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다 함께 사무엘상 16장을 보시겠습니다이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 사울왕을 세우셨지만사울왕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자신의 뜻대로 행하였기 때문에하나님께서는 사울왕 대신 다윗을 세우기로 결정하시고대언자 사무엘을 다윗의 집으로 보내신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정확하게 누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을지는 알지 못한 채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그리고 사무엘상 16장 5절에 나온 것처럼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가 이르되평화롭게 오느니라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하고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그래서 이제 이새가 자신의 아들 일곱을 데리고 사무엘 앞으로 왔습니다사무엘이 주님께서 기름 부으실 자가 누구인지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그래서 11절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이새에게 이르되네 자식들이 다 여기 있느냐하니 이새가 이르되아직 막내가 남았는데보소서그가 양을 지키나이다하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라그가 여기에 오기 전까지 우리가 앉지 아니하리라하니

 

이 당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재판하는 인도자였습니다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모았을 때 그 아들들에게는 굉장히 큰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막내였던 다윗도 몹시 오고 싶었겠지만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들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형들하고 중요한 모임 다녀올테니까 양 좀 지키고 있어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히 밝혀놓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사무엘은 주님의 말씀에 따라 13절에 기록된 것처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비록 다윗이 여기서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다윗의 생활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습니다. “아 이제 내가 왕이다라고 들고 일어서지 않았고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무엘상 17장에 등장하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연합군을 결성하여 이스라엘을 치러 오고이스라엘의 사울왕도 군사를 모아 진을 칩니다서로 양쪽 산에 진을 쳤고 그들 사이에는 골짜기가 펼쳐져 있습니다이 골짜기는 마치 거대한 경기장처럼 넓게 파인 말 그대로 전쟁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습니다서로 언제 어떻게 공격할 것인지 긴장하며 대치하는 가운데거인 골리앗이 등장합니다골리앗은 큰 소리로 외치면서 크게 전쟁할 것 없이 대표 장수끼리 싸워서 끝내자고 제안합니다일명 일기토라고 하죠대표끼리 일대일로 싸워서 이기는 쪽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입니다.

사무엘상 17장 1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그 블레셋 사람의 그 말들을 듣고는 놀라고 크게 두려워하니라.”

이스라엘은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었습니다골리앗의 제안을 거절하고 전원이 공격을 시작할 수도 있었겠지만,이것은 아무도 골리앗과 싸울 만한 사람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측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12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2 이제 다윗은 베들레헴유다의 그 에브랏 사람 곧 이새라 하는 자의 아들이더니 그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으며 그 사람은 사울 시대에 사람들 가운데 늙은 사람으로 통하였더라.

13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세 아들이 가서 사울을 따라 싸움에 나갔더니 싸움에 나간 그의 세 아들의 이름은 맏아들이 엘리압이요그 다음은 아비나답이요셋째는 삼마이며

14 다윗은 막내더라가장 나이 많은 세 명은 사울을 따라갔으나

15 다윗은 갔다가 사울에게서 돌아와 베들레헴에서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

 

우리 아이들은 15절에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에 밑줄을 쳐주세요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으로서 뭔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이 나에게 기름을 부었어요그게 무슨 의미인줄 아세요?” 그날부터 짐 싸들고 나가서 사무엘만 따라다니면서 이스라엘의 고위 장로들을 만나고 다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그래서 아마도 다윗은 사울에게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어찌됐든 다윗은 다시 조용히 돌아와서 아버지의 양을 먹이는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6절을 보시겠습니다. “그 블레셋 사람이 아침저녁으로 사십 일을 가까이 와서 자기를 보이더라.” 골리앗은 사십 일 동안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도발하고 있었습니다전쟁의 긴장감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점점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17절과 18절을 보시겠습니다.

“17 이새가 자기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이제 네 형들을 위하여 이 볶은 곡식 일 에바와 이 빵 열 개를 가지고 진영으로 달려가서 네 형들에게 주고

18 이 치즈 열 덩이를 가져다가 그들의 천인 대장에게 주며 네 형들이 어떻게 지내는가 살펴보고 그들의 증거물을 가져오라하니라.”

 

다윗은 전쟁터에 나간 형들이 무사한지 알아보기 위해 아버지의 심부름을 떠나게 됩니다다윗과 골리앗의 운명적인 만남은 아버지의 심부름에서 시작됩니다.

15절의 자기 아버지의 양을 먹이더라.”는 말씀과, 16절의 그 블레셋 사람”, 그리고 17절의 이새가 자기 아들 다윗에게 이르되” 이 세 구절의 말씀을 살펴보면 그 블레셋 사람골리앗의 위아래에 샌드위치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아들 다윗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인도하심은 너무나 쉽고 단순하며 이미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보편적인 뜻에 순종하는 한 가운데 나타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번개가 치듯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이미 나에게 드러나고 분명히 밝혀진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인도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에베소서 말씀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

 

지혜 없는 자는 매일의 삶을 무시하면서한순간에 등장하는 특별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만을 구합니다평소에는 하나님과 뜻과 상관없이 살다가 위급한 순간에만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므로 이러한 순간에 도와주시기도 하지만이러한 삶은 지혜 없는 어리석은 삶입니다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나에게 드러나고 알려진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크게 세 가지 요점으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기억하기 좋으시라고 가나다로 만들었는데요, “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나”, 그리고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뜻은 하늘과 땅 차이이므로 우리는 늘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또한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주시고또한 겟세마네에서 본을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 말씀을 통해다른 그리스도인의 조언을 통해환경의 인도하심을 통해마음의 평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또한 에베소서 말씀과 같이 성령 충만한 가운데아내로서남편으로서자녀로서부모로서종으로서주인으로서 이미 분명하게 밝혀진 하나님의 뜻에 하루하루 순종할 때에나를 향한 지극히 개인적인 특별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고 인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다윗이 한 일은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너무나 분명하고 단순한 주님의 말씀에 계속해서 순종했을 뿐인데하나님께서는 그를 골리앗과 만나게 하시고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지는 길을 여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우리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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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11.18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창조의 목적(계 4:11)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4장 11절 말씀입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계시록 4장 11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창조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를 기쁘게 하려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계시록 4장 11절의 말씀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는 모든 이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주는 말씀입니다사람은 무엇을 위해 창조되었고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우리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성경은 분명하게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이곳에 모인 어린 아이들로부터 시작하여청년장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자이며 거짓말쟁이였습니다오늘날 마귀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속임수는 바로 교육과 과학입니다참 과학이란 관찰하고 분석하여 정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어야 합니다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원숭이가 종류대로 번식하고 있고사람이 종류대로 번식하고 있음을 눈으로 관찰하면서도 진화론에 세뇌되어 있습니다원숭이와 사람의 중간 단계를 가진 그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면서도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입니다확인할 수도 없고관찰할 수 없는 수억만 년 전의 과거의 일이라고 세뇌되어지는 거짓을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사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잊혀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저 우연히 탄생된 생명체일 뿐이다갑자기 나타난 단세포 생물에서 수억만 년이 지나 이렇게 고등생명체로 진화된 것이다이제 인간은 계속 진화하고 있고 결국 신들과 같이 될 것이다.”

마치 옛 뱀이 이브를 속였던 것과 같은 결론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습니다. “너희 자신이 곧 하나님이며 신이며 목적이다.”라고 속이는 것입니다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우리가 생활 중에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도 만들어진 목적과 기능이 있습니다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볼펜으로 젓가락질을 하거나 주걱으로 탁구를 칠 수는 없습니다모든 물건이 만들어진 목적대로 사용되어질 때 가장 합당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합당하고 아름다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어떤 물건을 제 기능대로 사용하지 않으면 물건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핸드폰을 가지고 망치질을 하거나 양복으로 걸레질을 할 수는 없습니다우리의 인생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 질 때 망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창조되고 존재하는 목적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우리의 삶의 가장 높은 자리에 하나님이 앉으셔야 합니다우리의 가정에서교회에서직장에서 주님이 가장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가야할 길을 분명하게 제시해주어야 합니다인생의 가치관을 분명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인생은 가장 비참하고 어리석은 것임을 누누이 알려주어야 합니다.

잠언 16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원수와 화목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처세를 잘 배워야 합니까신경전을 지혜롭게 해야 합니까주변 인물들과 상황들을 잘 활용해야 합니까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우리의 삶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그것이 우리의 기능이요 존재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뒷전에 놓은 사람의 인생은 불행합니다무엇인가 자신이 기뻐하는 일을 추구하고 갈망하고 치열하게 달려가지만 남는 것은 공허와 절망뿐입니다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그 쾌락은 잠시 있다 사라질 뿐입니다.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만이 우리의 갈 길이며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주님이 기뻐하시는 세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주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주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주를 기쁘게 하려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아들로서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또 그 동안 선생님으로서많은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접하면서 간접적으로도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내 아이가 무엇을 잘하면 기쁘고못하면 속상한 마음이야 다 있으시겠지만그러나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그렇게 절절하게 아끼고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때로 어떤 아이가 무엇을 잘하지 못해서 쟤는 저런게 문제야.”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부모님은 너무나 안타깝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또 때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때 부끄러운 적이 많았습니다. “바로 저것이 부모의 마음이구나.” 변함없이 신실하게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돌보고 책임지는 마음...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시원한 한 컵의 물이라면하나님의 사랑은 거대한 바다와 같다.” 아이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듯이하나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우리가 죄 많고이기적이며한심하고어리석은 삶을 살아갈 때에조차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따듯한 부모님의 눈과 같이 바라보고 계십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5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16 보라내가 너를 손바닥에 새겼느니라.”

또한 시편 103편 1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유리창을 깬 아들을 대신해서 값을 물어주고 대신 사과하는 아버지같이친구를 때리고 들어온 아들을 대신해서 치료비를 물어주고 대신 사과하는 어머니같이자기 잘못으로 다친 것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며 치료해주는 부모와 같이하나님은 지옥에 떨어져야 할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의 피로써 대신 갚으시고 용서를 이루셨습니다주님께 감사합니다주님께만 영광과 존귀과 권능이 돌려지기 원합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한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십니다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셨습니다이러한 사랑의 주님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도 사랑하기 원하고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주님은 우리 자체를 기뻐하십니다두 번째로주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가 더욱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잘 아시는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지만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믿음은 너무나 중요합니다믿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영원한 천국과 지옥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믿음은 우리가 구원받고 거듭나는 그 순간에 한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매순간 필요합니다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믿음을 가지고 있지 못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이며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우리가 정말 이 세상이 불타 없어질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주님이 지금이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정결하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지옥이 존재하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믿는다면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 땅에 보물을 쌓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나그네요 순례자처럼 살아갈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의 삶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동할 것입니다믿음은 마음에서만 머무는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믿음은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권능입니다.

 

여기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도 그러했습니다믿음으로 노아는 온 세상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하는 가운데 120년 동안 꿋꿋이 방주를 만들며 사람들에게 의와 심판을 선포했습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채 길을 떠났으며믿음으로 모세는 이집트의 보화들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하였습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을 믿었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 믿음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된 믿음은 반드시 살아 역사하게 될 것입니다이 세상이 거대한 홍해바다와 같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믿음은 그 홍해바다 한 가운데에 길을 뚫고 전진하게 만들 것입니다.

 

잘 아시는 로마서 10장 1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어떻게 생겨나고 자라날 수 있습니까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은 생겨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자주 읽고 묵상하며자주 듣는 사람일수록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서 믿음이 자라날 수는 없습니다말씀을 떠나 믿음이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마치 씨를 뿌리지도 않고 열매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우리가 잠시 있을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계속해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늘 말씀의 공급이 필요합니다늘 보이는 것들에 영향을 받는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의 모든 집회 가운데 참석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성령께서는 우리 각자에게도 말씀하시지만특별히 교회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자녀에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에게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재산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부모가 자녀에게 100억을 물려준다 할지라도 그것은 70, 80년이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믿음을 물려준다면 자녀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영원한 영광을 보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자녀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지식과 기술과 처세를 가르치는 것보다주를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우리가 정말 이 세상의 잠시 있을 부귀영화보다 하늘에서의 영원한 영광이 더 소중하다고 믿는다면우리 자녀들에게 더 소중한 것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자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물려줄 수 있습니까먼저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려줌으로써 믿음을 자라게 해주어야 합니다성경은 부모에게 자녀를 주의 법과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고 양육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어떻게든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고 양육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자녀들이 교회의 모든 집회에 참석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주일오전 주일학교중고등부성경공부 시간만이 아니라주일오전예배오후예배수요기도회까지 모든 집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야 합니다그냥 집회만 참석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그 말씀에 대해 자연스럽게 나누고 교제하여 소화할 수 있게 도와야합니다. “아이들이 뭘 알기나 할까하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아이들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아이에게 꼭 맞게 깨닫게 하시고 적용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며 말씀을 나눠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을 물려주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의 삶을 보여주어야 합니다내가 믿지 않는 것을 아이에게 믿으라 할 수 없습니다내가 이 땅의 보물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아이에게 하늘에 마음을 두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내가 세상의 안락한 삶을 더 사랑하면서 아이에게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이 너무나 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우리의 삶은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자녀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실제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올 때 가장 단정하고 멋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교회에 오면서 머리도 감지 않고 슬리퍼를 끌고 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토요일 밤부터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내일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이다.”라고 알려주고 마음에 준비를 시켜주어야 합니다그리고 일찍 자야 합니다주일 아침에 분주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주일에는 아이들이 결혼식이나 중요한 파티에 가는 것 이상으로 단정한 복장을 해야 합니다결혼식 갈 때는 멋있는 옷을 입혀주면서교회에 갈 때는 대충 입힌다면 아이들의 마음에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보다 결혼식이 더 크고 중요하구나.”라고 새겨질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자녀들이 교회에 있어야 할 시간에 다른 장소에 있게 해서는 안됩니다영어도 중요하고수학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중요합니다우리는 자녀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최우선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가르치겠습니까실제 삶으로 가르쳐야 합니다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절대 허용하지 않으면서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크게 혼내면서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당연하게 허용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이에게 하나님보다 썩어질 이 세상이 더 중요하다.”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이 시대는 교육이 우상이 되어버렸습니다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우선되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우상숭배자로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저는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최선을 다해 공부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이 최우선이 되셔야 합니다이 세상 그 무엇도 결코 하나님보다 우선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그 목적을 잃어버리면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내가 공부를 잘하고기술을 잘 배우고좋은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살아가야 함을 알려줘야 합니다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이 세상의 삶은 잠시 스쳐지나갈 뿐이며우리의 정체는 나그네요 순례자입니다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소망 없고 헛된 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지 말고,성경에서 제시하는 영원한 영광을 삶의 가치관으로 비전으로 제시하며함께 걸어가야 합니다우리 교회 자녀들 가운데 많은 선교사와 목회자가 배출되어야 합니다우리의 소중한 자녀들이 모두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로 자라나기 원합니다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잘했다착하고 신실한 종아.”라고 칭찬받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기뻐하시는 하나님

첫 번째로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두 번째로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세 번째로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기뻐하십니다로마서 8장 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또한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아무것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느니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곧 영이요 생명이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육신이란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거듭나기 전에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던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나는 원래 이래나는 그런거 못 참아이게 내 방식이야.”라고 생각되어지는 과거의 모든 것입니다온전히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모든 것이 육신입니다겉으로는 선하고 의롭게 영적으로 포장될지라도 육신에게서는 교만과 이기심과 더러운 욕심과 헛된 영광을 구하는 마음만이 뿜어져 나올 뿐입니다우리 자신의 천연적인 옛 생명을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때우리의 육신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함께 무덤에 묻으셨습니다또한 주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잘 아시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우리가 과거 아담 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옛 창조에 속한 옛 사람이었으나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질 때에 우리는 새 창조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날마다 우리가 생활하는 가운데 우리가 육신 안에 거할 때에는 우리의 옛 본성에 따라 살게 되지만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게 될 때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새 본성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우리의 육신 안에는 아무 소망이 없지만그리스도 안에는성령 안에는 소망이 있습니다내 안에는 사랑이 없지만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내 안에는 온유가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나의 온유가 되십니다내 안에는 선한 것이 거하지 않으나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우리가 주를 기쁘시게 하려면 주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겉모양을 바꾸려 하기 전에 속을 바꿔야 합니다조급하게 무엇을 계획하고 진행하기 전에 주님께서 하시도록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주님께서 나에게 한 가지 말씀하실 때 그 한 가지를 순종하고 나서 그 다음 단계의 일을 추진하지 말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주님의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 자매와 교제할 때에 그들의 육신을 보면 답이 없고 사랑하고 싶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지체들을 대할 때 그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의지해야 합니다내가 겸손과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한다면 아멘하고 한 마음이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또한 우리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주님께 인도할 때에도 그들 안에 계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그들이 정말 구원을 받았고그들 안에 정말 생명이 있다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이야기하게 될 때에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분명 육신으로 분주한 것과는 다르지만역동적이고도 활동적인 삶인 것은 분명합니다.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 중에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이 마을과 저 마을을 끊임없이 다니시면서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사도 바울도 많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했습니다감옥에 갇혀서도 끊임없이 서신을 기록하며 교회들을 돌보고 기도했습니다과거의 수많은 성도들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겼기에 오늘 우리가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우리가 오늘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늘 적극적이고 열정적일 것입니다.

 

 

마무리

마무리 하겠습니다오늘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우리는 주님을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모든 물건이 제 기능과 목적에 따라 사용되어질 때 아름답고 합당하듯이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 때에 가장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자체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어머니가 젖 먹이는 아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손바닥에 새겨두셨습니다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 노래하시며 즐거워하십니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의 믿음을 볼 때에 기뻐하십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생겨나고 자라납니다하나님의 말씀과 단단히 결합된 믿음은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킵니다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받는 사람은 이 땅의 썩어질 것들을 사모하지 않고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금보다 귀한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70, 80년이면 사라져버릴 헛된 것들을 물려주지 말고영원히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그리스도 안에서 걸을 때에 만이 주님의 성품을 살아낼 수 있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옛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습니다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고 주님 안에서 새로운 내가 되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구원받고 거듭난 성도라면 누구나 사모하고 추구해야 할 삶입니다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습니다.

사무엘은 아이였을 때에 아마 에봇을 입고 주 앞에서 섬겼습니다(삼상 2:18).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에 하나님을 모독하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다니엘도 소년이었을 때에 우상숭배에 바쳐진 왕의 음식들을 거절하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모세는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였고갈렙은 팔십오 세가 되었을 때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 산을 내게 주소서.”라고 외치며 전쟁에 앞장섰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이리이다.”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고이방 여인이며 창녀였던 라합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숨겨주었고룻의 남편인 보아스의 어머니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에 어린이들은 나서지 말아야 하고나이든 자는 뒷짐 지고 구경해야 하며여자들은 가만히 있어야한다는 동양적이고유교적이며한국적이고사탄적인 사상을 우리는 배격해야 합니다성경은 우리 모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주님을 섬기고 기쁘시게 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사모해야 합니다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 살아 숨 쉬며 존재하는 한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주님이 주실 보상을 위해 끝까지 힘내어 달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우리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 합니까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합니까오늘 우리는 우리를 군사로 뽑으신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복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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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10.21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갚으시는 하나님(계 2:26)

 

요즘 저는 신학교에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고 있습니다이번에 중간고사를 보게 되었는데마침 중간고사와 함께 요한계시록을 본문으로 한 설교 한 편을 제출하는 것이 숙제입니다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요한계시록 말씀을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2장 26절 말씀입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계시록 2장 26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계 2:26)

 

이 말씀을 가지고 오늘 저는 갚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비록 이 한 구절 말씀을 읽었지만 계시록 1-3장까지의 말씀들을 두루 살펴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갚으시는 분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갚으시는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갚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빌린 것을 되돌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빌린 것이 없으시고 따라서 아무것도 갚으실 필요가 없으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로우심과 긍휼하심을 따라 사람의 믿음과 행위에 대하여 갚아주십니다.오늘 우리가 읽은 계시록 2장 26절 말씀에서도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서 2장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로마서 2장 6절부터 8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참고 꾸준히 잘 행함으로 영광과 존귀와 죽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논쟁하기 좋아하며 진리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로 갚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갚으시는 분이십니다갚으신다는 말을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데그것은 바로 심판과 보상입니다.진리에 순종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영원한 생명의 보상으로 갚으시고불의에 순종한 자들에게는 격노와 진노의 심판으로 갚으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갚으심

갚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은 바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입니다다같이 계시록 1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

 

하반절에 보시면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씻으시고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18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살아 있는 자라전에 죽었으나보라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아멘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인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셨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용서하실 수가 없었습니다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며 반드시 그 대가가 지불되고 갚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신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다 갚아주신 것입니다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죄 값이 다 지불되고 갚아졌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그 누구도 그 죄 값을 완전히 갚을 수 없지만 온 우주에서 의로우신 유일한 한 분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때에 그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받는다 할지라도 다 갚을 수 없는 우리의 더러운 죄의 대가들을 십자가를 통하여 단 한 번에 영원히 깨끗하게 하신 주님의 긍휼과 사랑과 은혜로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이 갚아주신 우리의 죄 값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우리도 이러한 좋으신 주님 긍휼의 주님을 더 알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는 계시록 1-3장에서 주님께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그 중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내가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는 표현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다같이 계시록 2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

또 네가 참고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해 수고하고 낙심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주님은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분별한 점과 낙심하지 아니한 부분들을 언급하시면서 그것들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가 우리가 좋고 훌륭한 일들을 하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우리의 육신은 사람들로부터 오는 헛된 영광을 사랑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칭찬해주고 인정해주기를 바랍니다나의 이름을 알리고 나의 사역과 나의 업적을 드러내기를 원합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애써서 우리의 잘한 것을 사람들 앞에 알릴 필요가 없습니다왜냐하면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한 것을 모두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1,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우리의 잘한 것을 사람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우리의 보상이 클 것입니다장차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예상이 빗나갈 것입니다누가 봐도 많은 보상을 받을 것 같았던 사람이 적게 받을 수도 있고아무도 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주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지를 주의해야 합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십니다.

 

또한 9절에서는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환난과 궁핍을 알며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주님은 우리의 수고와 인내를 아실뿐만 아니라우리가 당하는 환난과 궁핍을 아시며또한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거짓과 악함을 아십니다우리가 환난을 당하고 궁핍을 당할 때 우리가 평안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주님은 오히려 궁핍한 서머나 교회를 향해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그 이유는 서머나 교회에게 외적으로 환난과 궁핍이 닥칠수록 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더 풍성한 은혜와 사랑을 넘치도록 공급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주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어떤 말과 행동에 크게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신뢰하기 원합니다.

 

또한 13절에서도 주님은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알고 또 네가 거하는 곳을 아노니 즉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네가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안디바가 나의 신실한 순교자가 되어 너희 가운데서 곧 사탄이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한 그 때에도 나의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의 안디바가 믿음을 부인하지 아니하고 순교자가 된 것을 기억하시며버가모 성도들의 믿음을 아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19절에서도 두아디라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사랑과 섬김과 믿음과 네 인내와 네 행위를 아노니 마지막 것이 처음 것보다 많도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아실뿐만 아니라 많고 적음을 또한 공정하게 판단하는 분이십니다내가 다른 형제보다 더 많이 섬겼고예전보다 지금 더 많이 섬긴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서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시록 3장 15절에서도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우리 하나님은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우리 주님의 심판과 보상은 너무나 정확하고 공정합니다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이 세상 법적에서는 증거가 없고 목격자가 없어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 발생할 수 있고충분하지 못한 보상이 있을 수 있지만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그럴 수 없습니다누구도 주님 앞에 변명할 수도 없고 보상이 부족하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하나님께서 갚으시는 분임을 생각할 때에 우리에게 한 면으로는 두려운 마음이또 한 면으로는 기대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잠언에서는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라 하였습니다우리가 갚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를 두려워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우리의 수고와 인내와 환난과 궁핍을 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갚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에 갚아주시는 하나님이 깊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행위와 마음의 동기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갚아주실까요성경은 명백하게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아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앞에서 하나님께서 아신다라고 말씀하신 표현들을 살펴볼 때에도 내가 너의 행위를 아노라.”라고 말씀하신 많은 부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특별히 계시록 2장 23절의 마지막 문장에서도 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고어떤 감정을 가졌고어떤 지식을 가졌는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해 뜨겁게 불타올랐다 할지라도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일들에 관한 원대한 계획들이 있다 할지라도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바른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그것을 실제로 살아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또 반대로 주님의 어떤 뜻에 순종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할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자기를 부인하고 돌이켜서 그 일을 순종하고 섬겼는가를 보시고 주님은 보상해주실 것입니다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잠언 26장 16절에는 아주 재미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이유를 댈 수 있는 일곱 사람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자의 특징은 실제로 일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자기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입니다우리는 교회 생활 가운데 앉아서 판단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어떤 일들을 부지런히 섬기는 형제 자매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게 일을 처리하느냐고어떻게 그런 일을 빠뜨릴 수 있느냐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면 가만히 앉아서 스스로 지혜로운 자처럼 판단하는 게으른 자가 되지 말고직접 일어나서 섬겨야 합니다주님은 말과 혀로 사랑하는 것 말고손과 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계시록 2장 23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두 번째 줄부터 다시 읽어보면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는 곧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또 내가 너희 행위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주리라.”

우리 주님은 분명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는 분이시지만또한 사람의 속 중심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실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도 살인으로 보시지만또한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상하실 때에 반드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실 것입니다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귀한 일이지만왜 전하였는가도 중요합니다우리가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교제하고권면하며섬기는 일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왜 하였는가도 중요합니다주님은 우리의 섬김이 순수하고 겸손하며 사랑으로 하였는가를 반드시 살피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10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주는 마음을 살피며 속 중심을 시험하여 각 사람의 길들과 그 사람의 행위의 열매대로 그 사람에게 주느니라.” 주님은 마음과 속 중심을 시험하시고각 사람의 길들과 행위의 열매대로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오늘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였는가 뿐만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졌는가를 주의해야 합니다. “난 비록 저 형제가 마음에 안 들지만저 형제를 위해 기도했고 밝게 인사해줬으니까 됐어난 비록 영혼들을 사랑하진 않았지만 복음 전하는데 참여했으니깐 된거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물론 형제를 위해 기도한 것은 잘한 일이고또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도 잘한 일입니다그러나 주님은 마음을 살피십니다마음 없이 하는 것은 위선이며 주님은 그것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2장 4절에서는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조금 있나니 이는 네가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하라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것의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는 진리가 뛰어난 교회였습니다갈라디아나 골로새 교회 같은 경우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큰 혼란을 겪었고사도 바울은 이에 대하여 정리하는 서신을 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에베소 교회에게는 그러한 필요가 없었습니다에베소 성도들은 진리에 굳게 서있었고누가 거짓 사도인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분별할 만큼 뛰어난 진리의 지식과 영적 분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낙심하지 않음에 대해서 주님께서 칭찬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처음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들의 행위는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그들의 사랑에 문제가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마음만 있어서도 안 되며힘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으로 풍성하고또한 우리의 삶이 주님의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부지런한 섬김으로 채워지기 원합니다.

 

다같이 히브리서 4장을 보시겠습니다히브리서 4장 12절과 13절을 뵈겠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13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피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벌거벗은 것처럼 낱낱이 아시고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였는지를 정확하고 공정하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선한 뜻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어떤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 그가 매인 자든지 자유로운 자든지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 가운에서 일하고 행동할 때에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겉으로눈에 보이게만 잘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는 교회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만 주의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일상 가운데 어떻게 사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과 삶에 따라 보상하실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섬기는 것만 보상하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어떤 사람이 무슨 선한 일을 행하든지...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희생하며 섬길 때에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할 때에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자녀들이 부모님께 순종하고 주님께서 주신 환경 가운데 자신의 일에 마음으로부터 충실할 때 주님은 그것을 보상하실 것입니다우리가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듯이 눈가림을 일하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않을 때 주님은 그대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4장으로 돌아와서 15절과 16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의 갚으심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소망하는 마음을 가진다 할지라도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얄미운 형제 자매를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어렵고나에게 상처주는 말을 한 지체를 용서하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나는 피곤하고 쉬고 싶은데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형제 자매들과 교제하러 모임에 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나는 설렁설렁 대충 일하고 싶은데 사람에게 하듯 하지 않고 주께 하듯 충성되게 일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말씀에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기록한 이후에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에 대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을 때에그분은 우리가 느끼는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다 느끼셨습니다주님도 배가 고프셨고목마르셨고피곤하여 주무셨고슬퍼하여 우셨습니다우리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양날 선 검처럼 분명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마음의 의도들을 분별하실 뿐만 아니라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신 만큼 잘 알고 계십니다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공급하십니다.

 

계시록 4장 10절에서는 스물네 장로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왕관을 다시 주님께 돌려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주님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근거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필요한 때에 시기적절하게 넘치도록 도와주신 주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그 누구도 내가 열심히 공부했더니 진리를 깨달았고내가 굳게 결심을 하고 주님을 섬겼더니 온전하게 섬길 수 있었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오늘 우리가 숨 쉬며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주님의 긍휼이며 은혜입니다내가 주님을 섬길 수 있는 모든 환경과 여건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적게 갚으시고넘치게 갚으시는 하나님

우리는 오늘 갚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마지막으로 적게 갚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넘치게 갚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죄보다 훨씬 더 적게 갚으시는 분이십니다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은 분명한 주님의 원칙입니다이러한 주님의 원칙을 따라서라면 우리는 이미 다 멸망했어야 합니다그러나 주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렇게 살려주신 것은 우리가 악하게 심은 것보다 훨씬 더 적게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시편 103편 10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3절에서는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기뻐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우리의 불법들에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심지어 우리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대적하는 그 순간에 조차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의 긍휼이 크게 넘쳐흘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 근거는 무엇입니까하나님께서 심판하실까봐 두려워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섬김이 아닙니다만약 하나님께서 그러한 섬김을 원하셨다면 이미 이 세상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 굴복되었을 것입니다죄를 생각하는 그 순간에 벼락이 치고범죄하는 순간에 지진이 일어난다면 이 세상 모든 민족이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입니다그러나 우리 주님은 자신의 사랑과 긍휼을 먼저 보여주시고그 사랑에 감격하여 나오는 섬김을 참된 섬김으로 받으십니다오늘 우리가 갚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나의 더럽고 수치스러운 모든 죄들보다 훨씬 더 적게 갚으시고 다루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떠올리기 원합니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긍휼로 가득하여 그것을 동기로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죄보다 적게 갚으시는 분이시며또한 우리의 섬긴 것보다 훨씬 넘치게 갚으시는 분이십니다주님은 열 달란트를 번 종에게 열 도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주님은 평생 섬겨도 길어봐야 70년을 섬길 수 있는 우리의 짧은 인생을 가지고 영원한 통치로 계산하여 보상하는 분이십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하나님은 우리의 행위에 따라 갚으시되우리의 죄에 대하여는 하늘보다 높은 긍휼로 인하여 적게 갚으시고우리가 순종한 아주 미약하고 작은 일에 대하여는 넘치고 감당할 수 없는 영광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자신이 어떻게 고난을 받았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23 내가 수고를 더욱 넘치도록 하고 매도 지나치게 맞고 감옥에도 더 자주 갇히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내가 유대인들로부터 마흔에서 하나 뺀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몽둥이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당하여 한 밤과 한 낮을 깊음 속에 있었으며

26 자주 여행하면서 물들의 위험과 강도들의 위험과 내 동포로 인한 위험과 이교도들로 인한 위험과 도시에서의 위험과 광야에서의 위험과 바다에서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 가운데서의 위험을 당하였고

27 또 지치고 아프고 여러 번 밤을 새우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금식하고 추위를 당하고 헐벗었노라.

 

또한 고린도전서 4장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11 바로 현재 이 시각까지도 우리가 굶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일정한 거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우리 손으로 일하며 욕을 먹으나 축복하고 핍박을 받으나 그것을 참으며

13 비방을 당하나 간절히 권면하니 우리가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

 

이러한 바울이 고린도후서 4장 17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18 우리는 보이는 것들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바라보나니 보이는 것들은 잠깐 있을 뿐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을 영원하니라.

 

바울은 자신이 받은 고난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그렇다면 영광은 어떠합니까?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갚으십니까?가벼운 고난에 무거운 영광입니다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의 영광을 보고 온 사도 바울이 고백할 때에죽도록 고생하고 세상의 오물같고 모든 것의 찌꺼기 같은 자신의 삶이 가벼운 고난이라고 했다면천국의 영광은 얼마나 놀랍고 뛰어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우리는 치열하게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누리면서 살고자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영광이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우리의 수고와 인내와 환난과 궁핍을 다 아시는 하나님이 있습니다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고 아시는 대제사장이 계십니다주님의 목적은 우리를 고생시키는 것이 아니라넘치는 보상을 주시는 것입니다주님께서 보상하실 그날에 우리는 영문을 몰라 주님을 다시 쳐다볼 것입니다. “주님다른 사람 주실 거저한테 잘못 주신 거 같은데요저는 이렇게 많이 받을 만큼 주님을 섬기지 못했는데요.” 내가 왜 더 마음을 다해 온전히 주님만을 사랑하고 섬기지 못했을까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아직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긍휼입니다주님의 긍휼을 힘입어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인 요한계시록 2장 26절을 다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이기고 나의 행위를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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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8.19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교회 안에서(엡 3:19-21)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에베소서 3장입니다에베소서 3장 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에베소서 3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20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오늘 저는 교회 안에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교회의 신비

오늘 저는 교회에 관한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교회는 무엇입니까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신약시대라고 부르기도 하고은혜 시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또한 교회시대라고 부를 만큼 교회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큰 특징입니다.교회는 성경에서 너무나 중요한 주제입니다오늘의 본문 21절 말씀에서도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하나님께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에베소서 3장 11절에서는 교회를 설명하시면서 이것이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에 따른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사도행전 20장 28절에서는 교회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또한 성경은 교회를 가리켜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 속에 들어있던 너무나 귀하고 놀라운 교회에 대해서 저의 짧은 말로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교회를 함께 생각해보면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에베소서 3장 5절과 6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이제 자신의 거룩한 대언자들에게 성령을 통해 이 신비를 계시하신 것같이 다른 시대들에서는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그것을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이 신비는 곧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교회의 신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성경에서 신비란 다른 시대들에서는 알려지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밝히 드러난 진리를 말합니다교회의 신비란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동료 상속자가 되고 같은 몸에 속하게 되며 그분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인 이스라엘뿐만 아니라개처럼 여겨지는 더러운 우리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에 속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놀라운 신비인 것입니다.

 

교회의 신비는 구약에서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에서 드러난 놀라운 진리입니다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가 주 예수님께서 세우신 이 교회는 로마 왕국을 뒤흔들었고이스라엘 백성을 당혹케 하였습니다교회가 비록 구약시대에서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시대에 계시되고 나타내어진 것이지만교회는 결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교회는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이브

다함께 에베소서 5장을 보시겠습니다에베소서 5장 30절부터 32절을 보시겠습니다.

30 우리는 그분의 몸과 그분의 살과 그분의 뼈들에 속한 지체들이니라.

31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것은 큰 신비라그러나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제가 창세기 2장 23절과 24절을 읽어드릴 때에 잘 들으시면서 지금 읽은 에베소서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3 아담이 이르되이것은 내 뼈 중의 뼈요내 살 중의 살이라그녀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부르리라하니라.

24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가운데 있는 교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여기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입니다또한 이브는 교회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아담이 죽음의 잠에 들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드신 것처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옆구리에서 흘리신 물과 피를 통해 교회를 탄생시키셨습니다아담이 이브를 가리켜서 내 뼈 중의 뼈요내 살 중의 살이라라고 말한 것처럼우리 교회는 그리스도의 살과 뼈의 지체가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처음 창조하시는 그 순간부터 교회를 계획하고 계셨고성경 말씀 속에 교회의 그림을 그려놓으셨습니다여기서 아담은 이브의 죄 때문에 죽음의 잠을 잔 것이 아니고이브를 얻기 위해서 죽음의 잠을 통과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는 피 흘림을 통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새언약즉 상속 유언의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습니다또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육신이 함께 못 박혔고 완전히 처리되었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우리 주님은 한 번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너무나 크고 놀라운 많은 역사를 다 이루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요셉의 아내 아스낫

성경에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주는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나무를 등에 지고 산에 오르는 이삭의 모습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갈보리 산에 오르시는 예수님을 미리 보여줍니다또한 요셉의 인생은 예수님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수 천년 전에 예수님의 일생을 예고편처럼 미리 보여주는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거부당하신 것처럼요셉은 형제들에게 거부당하고 미움을 받았습니다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요셉은 노예가 되어 이 세상의 예표인 이집트로 팔려갔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만왕의 왕만주의 주로 오시는 것처럼요셉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요셉이 형제들과 다시 만날 때 형제들에게 받아들여지고 화평할 수 있었습니다요셉의 일생은 예수님의 일정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과도 같습니다그 중에서 우리는 교회에 대한 그림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1장 44절과 45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4 파라오가 요셉에게 이르되나는 파라오라온 이집트 땅에서 네 허락 없이는 손발을 들 자가 없으리라하고

45 또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며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니라요셉이 나가서 온 이집트 땅을 돌아보니라.

 

요셉의 새 이름 사브낫바네아는 세상의 구원자라는 의미입니다요셉은 정확하게 세상의 구원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세상의 구원자가 된 요셉에게는 이집트에서 얻은 이방인 아내 아스낫이 있었습니다아스낫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얻으신 신부인 교회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교회 모세의 아내 십보라

또한 우리는 모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모세의 일생도 예수님을 보여주는 좋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하늘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죄의 종이 된 우리를 구원코자 더럽고 비천한 이 땅에 달려 내려오신 것처럼모세는 이집트의 모든 영광을 다 버리고 노예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달려 내려왔습니다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셨을 때 거부당하신 것처럼모세도 처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자 했을 때 거부당하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모세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스라엘이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모세가 다시 왔을 때 이스라엘은 모세를 받아들였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처럼모세는 구약의 언약을 세웠습니다이 많은 예표들 중에서 우리는 또한 교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바로 모세가 이방인 아내인 십보라를 얻은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을 선택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유대 민족신이 아니냐고 묻습니다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임무를 맡기시고또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예언되고 성취되는 확실한 정통 계보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는 창세기에서부터 계속해서 그림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구약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과 모세의 이야기를 읽을 때에 교회를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그저 유대인으로서 요셉과 모세라는 위대한 통치자들이 이방인 여인과 결혼했다는 점에 대해서 아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유대인들은 이방인과는 서로 인사하거나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성경은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이라든지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 같이 교회에 대한 예표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이러한 모든 말씀은 신비로써 구약시대에는 감추어졌다가 신약시대에 와서 밝히 드러난 교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영광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속에 있는 교회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 319절부터 21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9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

20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21 곧 그분에게 영광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모든 시대에 걸쳐 끝없는 세상까지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광을 받으셔야 마땅한 분이십니다자녀가 마치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하고 영광 돌려야 합니다그러므로 시편148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과 우박과 눈과 수증기와 그분의 말씀을 성취하는 폭풍과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열매 맺는 나무와 모든 백향목과

10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들과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11 땅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통치자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과

12 청년들과 처녀들과 노인들과 아이들

13 곧 그들은 주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그분의 이름은 홀로 뛰어나시며 그분의 영광은 땅과 하늘보다 높도다.

 

또한 시편의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150편 6절에서는 호흡이 있는 모든 것이 주를 찬양할지어다너희는 주를 찬양하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특별히 하나님의 창조물들 가운데 대표이며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그런데 특별히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 각자가 각자 처한 곳에서 드리는 찬양도 너무나 귀하지만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올려지는 영광을 더욱 기뻐하십니다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올려지는 영광은 무엇이겠습니까온 성도가 다 같이 찬송가를 펴서 찬양을 부르는 것도 물론 하나님께 귀한 영광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찬송을 부를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가능한 것입니다우리가 교회 안에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시며우리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도움도 주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이러한 세상의 흐름은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믿는 이들이 혼자서 영적인 도서를 읽고인터넷에서 설교 말씀을 찾아서 듣고혼자 성경을 펴서 묵상하고혼자 기도하고 찬양하고선교단체를 개인적으로 후원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향한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절대 아닙니다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구원하시고 양무리에 넣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주님의 살과 뼈의 지체가 된 우리를 주님은 한 몸 안에 두셨음을 알아야 합니다교회 안에서 주님을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믿음을 올바르게 배울 수 없습니다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도 없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거듭난 생명을 가진 형제 자매들의 모임입니다하나같이 죄 많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주님의 한없는 사랑과 긍휼을 받아 한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예전에 어떤 형제님이 있었는데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완벽한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한 자매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완벽한 교회를 찾게 되시거든 절대 그 교회에 회원이 되지는 마십시오.” 그러자 그 형제님은 왜 그렇습니까나는 완벽한 교회에 가서 상처도 받지 않고온전히 주님께 영광돌리고 싶은데요?” 그러자 그 자매님이 대답했습니다. “완벽한 교회에 당신이 들어가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완벽한 교회가 있을 수 있을까요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없고 모두가 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렇다면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는데 어떻게 문제가 없을 수 있을까요우리는 성경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은 찾을 수 없지만주님께서 그 사람의 모든 문제를 초월하셔서 영광을 나타내신 것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나이 들고 혀가 둔했지만 마른 지팡이 하나로 홍해를 갈랐고기드온은 겁 많은 타작꾼이었지만 오로지 300명의 용사로미디안과 아말렉의 연합군을 하루 밤사이에 물리쳤고다윗은 작고 어린 양치기에 불과했지만 거인 골리앗을 단 한 번의 돌팔매로 무너뜨렸으며베드로는 허풍 많고 무식한 어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또한 필라델피아 교회는 능력이 적은 문제가 있었지만 형제 사랑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켜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교회들로부터 시작하여모든 교회의 역사 가운데 문제가 없는 교회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많은 교회들을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싸매시고 품으셔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위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교회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먼저 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 3장 19절 말씀처럼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어야 합니다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모든 이해와 지식을 뛰어넘는 사랑이었습니다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알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생활이 힘겹고 메마른 이유는 무엇입니까우리가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직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식 밖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말과 행동들,모든 더럽고 역겨운 죄악들을 다 뛰어넘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얻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주님은 그토록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십니다에베소서 5장 25절에서는 남편들아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같이 하라.” 오늘날 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까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교회는 무엇입니까우리 옆에 있는 나와 같이 부족하고 답답하고 문제가 많은 형제 자매들이 바로 교회입니다우리가 서로 긍휼히 여기며 모든 이해와 지식을 뛰어넘어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십니다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며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다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19절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주님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저를 충만하게 하시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다같이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에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능히 행하실 분에게” 우리의 마음이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식하게 될 때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고우리의 마음에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가득가득 넘치게 될 때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이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넘치는 하나님의 권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나는 이렇게 마음이 넓은 사람이 아닌데나는 이럴 때 쉽게 분노하는 사람인데나는 이런 것은 정말 못 참는 사람인데이러한 나는 완전히 주님 안에 잠겨있고 한없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이러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교회 안에서 풍성하게 될 때에 주님은 교회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일하는 권능을 우리는 언제 필요로 하게 됩니까만약 우리가 개인의 영적 유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에게는 사실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스스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모르는 것을 발견하면 책을 찾아보고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또 혼자서 주님을 섬기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그냥 혼자 계획하고 준비해서 일을 차근차근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그러나 교회 안에서 함께 형제 자매들과 부딪히면서 조정하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십자가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우리에게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힘들 것이고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권능이 어떤 것인지도 알기 어려운 것입니다우리에게 교회가 있음으로 해서 성경의 기록된 말씀들이 실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광의 영

마지막으로 다 같이 베드로전서 4장 14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면 행복한 자로다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께서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느니라그분께서는 그들 편에서는 비방을 받으시나 너희 편에서는 영광을 받으시느니라.”

 

이 편지를 처음 받은 수신자들은 당시 큰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교회 생활 가운데서도 적용해보기 원합니다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서로 오해하거나다툼이 있거나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그때에 누가 더 옳고누구의 말이 더 논리적이고누구의 상황이 더 적절한가를 다 내려놓고이 말씀을 묵상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지식을 뛰어넘는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이름을 기억하며나에게 상처주는 형제 자매들을 기꺼이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자 할 때 우리 안에는 영광의 영이 충만할 것입니다나 자신의 자존심을 잃으면 잃을수록 주님의 영광이 풍성할 것이고나의 유익과 정당함을 내려놓으면 내려놓을수록 주님의 위로는 충만할 것입니다주님이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것처럼나의 생명을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꺼이 내려놓게 될 때 우리는 충만한 영광의 영을 누리며 영광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정리

오늘 저는 교회에 대한 말씀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주님은 교회를 정말 사랑하십니다자신의 생명을 교회를 위해 주실 만큼 사랑하십니다교회는 바로 우리들입니다오늘 우리는 모두 죄가 많고 문제가 많아서 주님을 필요로 한 사람들입니다우리 옆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들이 그러합니다우리는 모두 긍휼이 필요하고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우리 모두가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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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5.29 / 설교 장소 서울침례신학교 채플 / 로빈27세

                    2012.09.20 / 설교 장소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 채플 /로빈30세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골 1:26-29)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1장입니다골로새서 1장 26절에서 29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골로새서 1

26 이것은 곧 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 졌으나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난 신비에 관한 것이라.

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28 우리가 그분을 선포하여 각 사람에게 경고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완전한 자로 드리고자 함이니

29 이 일을 위해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

 

오늘 저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것

1700년대사람들이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를 방문하던 때에 한 무리의 유럽 사람들이 한 아프리카 마을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해변 가에서 먼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아이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가지고 공기도 하고 구슬치기도 하면서 놀고 있었습니다유럽 사람들 중에 탐험대장이 있었는데그가 가만히 그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 무엇인가를 보려고 다가가자 아이들이 하얀 피부를 가진 탐험대장을 보고는 겁을 먹었습니다탐험대장은 아이들 앞에서 사탕을 꺼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아이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고 또 침을 삼키면서 먹고 싶어하자탐험대장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었습니다아이들은 저마다 사탕을 입에 물고 너무나 좋아했습니다사탕을 다 먹고 나자 아이들은 사탕을 또 달라고 손을 내밀었습니다탐험대장은 반짝반짝 빛나는 돌을 가리키면서 바꿀 것을 제안했고 아이들은 아낌없이 그 돌을 주었습니다탐험대장이 그 돌을 보는 순간 인생 최대의 희열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돌은 바로 다이아몬드였던 것이었습니다아이들은 사탕을 더 먹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계속해서 주워왔고 나중에는 다이아몬드가 나오는 동굴까지도 알려주었습니다나중에 이 탐험대장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잘 아시는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참 하나님이신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아프리카 아이들은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귀한 보석인지 몰랐기 때문에 구슬치기하는 장난감 정도로 여겼고사탕 한 알과 바꿀 만한 정도의 가치로 여겼습니다몰랐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시면여러 시대와 여러 세대로부터 감추어져왔던 한 신비가 있는데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 오늘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도들인 우리들에게 알리려하시는 너무나 귀한 진리곧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 되시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이 신비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믿음의 차이는 마치 아프리카 아이들과 탐험대장과 같은 엄청난 것입니다.

 

29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바울의 사역은 단순히 열심히 수고한 것이 아니었고단순히 어떤 원칙대로만 수고한 것도 아니었습니다여기서 바울은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강력하게 활동하고 계시며나는 그 분의 활동을 따라가면서 싸우고 수고한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실제 삶 가운데서는 그분께서 어떻게 강력하게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살아갑니다마치 초보 운전자가 차선을 바꾸면서 깜빡이를 켜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실제로 차선 변경을 할 때 깜빡이를 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오늘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못하고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아는 만큼 알 수만 있다면 우리도 바울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 같이 에베소서 1장 16절부터 19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이 귀한 말씀을 제가 읽을 때에 주의해서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16 기도할 때에 너희에 관하여 말하며 너희로 인해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그분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의 지각의 눈을 밝히사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하며

19 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바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너희가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영광의 아버지를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지각의 눈을 밝혀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그래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성도들 안에 있는 그분의 상속 유업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알게 해주시고,그분의 강력한 권능의 활동을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그분의 지극히 큰 권능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지식적으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라면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할 필요가 없이 다만 성경공부를 가르치거나여기 서신서에서 논리적으로 설명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우리 안에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과 강력한 권능의 활동이신 그리스도는 지식으로만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알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영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도 지혜와 계시의 영을 충만히 주시고 우리의 지각의 눈을 밝히셔서 우리 안에 베푸신 영광의 권능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의 원칙

먼저사도 바울이 어떠한 방식으로 믿음의 삶을 살았으며어떠한 방식으로 주님을 섬기고 따르는 삶을 살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 성경 구절을 몇 구절 찾아보겠습니다먼저 갈라디아서 2장을 보시겠습니다갈라디아서 2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드로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사 할례자를 위한 사도직을 주신 바로 그분께서 내 안에서도 강력하게 일하사 이방인들을 향하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기 스스로의 부담이나 원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고내 안에서 강력하게 일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시는 20절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여기서도 바울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바울의 삶의 원리는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였습니다.

 

이제 에베소서로 가보겠습니다에베소서 3장 7절입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따라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 내가 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노라.”

사도 바울이 복음의 사역자가 된 원천은 무엇입니까사도 바울은 그분의 권능이 효력 있게 활동함을 힘입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바울이 복음을 전하고복음의 사역자가 되는데 있어서 바울의 결심이 아닌 바울 안에서 활동하시고 역사하시는 주님이 계셨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2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하나님이십니다우리 안에서 자신이 기뻐하시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우리 안에 살아 계셔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권능이 계십니다그분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영광의 소망이십니다.

 

또한 잘 아시는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어떻게 얄미운 형제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떻게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의 높은 기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고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하나님 자신만이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만족시키고 지킬 수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만족시키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생명으로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내 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내 안에는 지혜도 없고거룩함도 없고능력도 없고 어떠한 선한 것도 거하지 않지만 주님 안에는 모든 것이 있습니다우리가 내 안에 살아 계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삶에 능력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 살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삶에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쳐흐르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사랑이 많아지려고지혜가 많아지려고성령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노력을 안 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주님과 교제하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일하시는가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하나님께서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이전 시대들과 세대들에서는 감추어졌던 놀라운 신비입니다이 신비는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며 영광의 소망이십니다사도 바울과 베드로는 이러한 주님의 강력한 활동하심을 따라 수고하면서 많은 열매를 맺고 권능의 역사를 나타냈습니다그들을 통해 놀라운 사랑이 나타났고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고주님의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왜 나도 구원받았는데나에게는 이런 권능의 활동이 없는 것입니까왜 내 안에서는 주님께서 강력한 활동을 안 하시는 것입니까왜 바울이나 베드로에게만 역사하시고 내 안에서는 안하십니까?”

 

오늘 성경구절을 많이 찾아봤는데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다 같이 빌립보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3장 7절과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이 귀한 말씀을 제가 읽을 때에 주의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왜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는 강력하게 활동하셨는가또 왜 우리에게는 이러한 권능의 역사가 없는가에 대한 대답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손실로 여겼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것이 모든 것을 손실로 여길 만큼 매우 뛰어나기 때문입니다바울이 진정 얻고자 했던 그리스도였습니다하나님께서 성도들 안에 베푸신 지극히 큰 권능은 책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손실로 여긴 만큼 알게 되는 것입니다나의 권리를 포기한 만큼나의 유익을 포기한 만큼나의 정당성을 포기하고 나의 자랑과 야망과 영광을 포기한 만큼그리스도의 권능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영적인 성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입니까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살아낼 수 있습니까우리가 교육을 더 받고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뛰어난 지식들을 깨닫고자기 자신을 잘 통제해서 실수도 좀 덜하고그러면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것입니까영적 성숙은 내면적인 것입니다바깥의 말과 행동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나를 구원하시고 내 안에 살아계신 나의 주 하나님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지 못하고 동행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우리의 삶에 사랑이 없고능력이 없고열매가 없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외에 많은 유익한 것들을 움켜쥐고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숙은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느냐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것을 버렸는가에 있습니다얼마나 많은 것을 받았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것을 내어주었는가에 있습니다바울은 우상들에 대한 성경적이고 올바른 지식이 있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들을 위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영적 성숙은 나의 권리와 유익을 포기하는데 있습니다나의 야망과 장래를 포기하는데 있습니다영적 성숙은 얼마나 성공적인 업적을 이루었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가난해지고 얼마나 무명해 지는가에 있습니다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는가에 있지 않고 얼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가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십니다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왜 우리 속에 오셨습니까? “보라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이것이 욕심이고 버려야 되는 것임을 알아도 우리는 버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알고 용서하기를 원한다 해도 잘 용서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입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지킬 수 없는 약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주님은 우리의 죄만 용서해 놓고 앞으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잘 살아보라고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친히 하나님의 모든 뜻을 완전히 성취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생명이 되어 오셨습니다우리와 교제하시고 동행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권능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영광의 창조주이십니다전능자 하나님이십니다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시면서 자신의 출생 신분을 설정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습니다예수님이 스스로 선택하신 길은 무엇이었습니까가장 낮고 천한 길이었습니다냄새나고 더러운 마굿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예수님은 못사는 가난한 동네인 갈릴리 나사렛에서 일생을 사셨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겠느냐?” 예수님은 가장 힘든 육체노동인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우리 주님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시고침 뱉음을 당하시고수염이 뽑히시고거짓 증거를 당하시고억울한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낮아지셨습니다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하여 팔아 넘겼던 유다를 끝까지 친구여라고 부르셨고자신을 배반한 다른 모든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으며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들을 향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우리 주님과 같이 겸손하고 온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권능으로 사망과 지옥을 이기고 부활하셔서 영광 가운데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리려 하시나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니라.이 일을 위해 나도 내 속에서 강력하게 활동하시는 분의 활동을 따라 싸우며 수고하노라.”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십니다나는 사랑할 수 없지만사랑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고 계십니다나는 승리할 수 없지만사망과 지옥을 이기신 권능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고 계십니다나에게는 소망이 없지만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자신이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십니다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우리는 나의 뜻나의 원함나의 가치관나의 기준나의 방식나의 스타일,나의 계획나의 권리나의 유익나의 장래나의 시간나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 온전히 헌신해야 합니다주님께 완전히 드려져야 합니다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주님께만 온전히 붙들려야 합니다주님이 우리 안에서 권능 있게 역사하시지 않는 이유는 주님께서 우리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아직 다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온전히 우리를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아직도 나의 영역이 있고나의 주장이 있기 때문에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한 선교사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마른 나무토막과 같은 제 인생이 여기에 있습니다제 인생에 불을 붙이셔서 주님을 위해 뜨겁게 불타게 하소서.” 또 어떤 형제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총알 한 발과 같은 제 인생이 있습니다주님이 원하시는 표적을 향해 날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인생은 짧고 오직 한 번뿐입니다주님께 온전히 내어드리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값지고 가치 있는 것입니다.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도록 모두 드리기 원합니다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인생입니다영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지각의 눈을 밝혀주셔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과 소망과 권능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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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4.15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http://robinbox.net

 

사탄을 무너뜨리는 겸손(벧전 5:5-9)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5장입니다베드로전서 5장 5절부터 9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베드로전서 5

젊은 사람들아너희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정신을 차리라깨어 있으라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겪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오늘 저는 사탄을 무너뜨리는 겸손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지난 주 말씀과의 연관성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지난 주 수요일과 이번 주일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먼저 지난 주 수요일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또 마태의 집에 가서 식사를 하신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많은 죄인들과 세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했고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이때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고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는 지난 주 수요일날 어떠한 죄인이라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고이 세상 그 무엇도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는너무나 은혜로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주님께 나아갈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교만이었습니다어떠한 죄인이라도 주님께 나아가서 은혜를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주님께 나아가지 못했습니다주님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하실 수 있지만자신에게는 용서받을 죄가 없다고 말하는 교만한 바리새인들은 용서하실 수 없으셨습니다오늘 함께 읽은 베드로전서 5장 5절 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일날에는 사도 바울이 점치는 사탄의 영에 사로잡힌 한 소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사탄은 사람들은 속이고 미혹해서 주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데이러한 사탄의 역사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구원을 받은 우리에게 더욱 치열하게 다가옵니다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탄을 무너뜨리는 겸손이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제가 오늘 많은 성경 말씀을 읽어드릴텐데 다 찾지 마시고 제가 같이 보시자고 하는 부분만 같이 펴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아

먼저 오늘 우리가 읽은 베드로전서 5장 5절의 말씀은 젊은 사람들아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다 있겠지만젊은 사람들의 특징을 한 가지 뽑아본다면그것은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처럼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자신의 업적을 드높이고자 하는 명예욕이 있습니다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영적인 야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이제는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없어졌을지라도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 안에 영적인 야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시간만 나면 우리 중에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따졌습니다.

 

 

장로에게다 서로에게 복종하라

특별히 오늘의 말씀은 먼저 장로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다 아시다시피 성경에서는 장로라는 말이 나오고감독이라는 말이 나오고또한 목자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구약시대에는 없었던 지역 교회가 신약시대에 새롭게 등장하면서 성도들에게 교회의 질서와 양들을 먹이고 돌보는 목자의 직분에 대해서 설명할 때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익숙한 용어였던 장로와당시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감독이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갈보리침례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구정민 목사님께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 서로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서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가운데 우열을 따지지 말고 다 서로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겸손으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6절에 나온 것처럼우리가 하나님의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겸손에 대한 보상으로 정하신 때에 우리를 높이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우리가 많은 일을 할 때 높아지는 것이 아니고겸손할 때 높아진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또한 7절에 나온 것처럼우리가 겸손하면서 생기는 많은 불이익과 손해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이 세상에서는 겸손한 사람보다는 교만한 사람이 더 권리를 찾고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겸손한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일이 자주 일어날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시며또한 모든 것을 정확하고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이며겸손한 자를 반드시 높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대적 마귀

이제 8절에서는 우리에게 마귀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라깨어 있으라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믿음에 굳게 서서 그를 대적하라.” 여기서 우리는 교만과 겸손그리고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왜 하나님께서는 복종교만겸손에 대해서 설명하시다가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야고보서 4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흐름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한번 같이 보시겠습니다야고보서 4장 6절과 7절을 먼저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시나니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되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느니라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하라마귀를 대적하라그리하면 그가 너희에게서 도망하리라.

 

여기서도 동일하게교만과 겸손과 복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마귀를 대적하라는 경고를 주시고 계십니다. 10절에는 베드로전서와 동일하게주의 눈앞에서 스스로 겸손한 자를 주님께서 직접 높이실 것임을 약속하고 계십니다또한 11절에서는 서로 비방하거나 판단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계시며, 16절에서는 스스로 자랑하는 기쁨에 대해서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탄의 역사 사람을 교만케 함

우리는 여기서 잠시 사탄의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질서정연하게 창조하셨습니다모든 자연 세계에는 질서가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그런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처음으로 무너뜨린 존재가 있었으니그가 바로 사탄이었습니다사탄은 교만으로 인하여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고자 했고그 결과 영원한 지옥의 심판까지 낮아지게 되었습니다사탄의 시작이 교만이었기 때문에사탄의 역사 가운데서 우리는 교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거부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성경에서 부자들이 구원받기 힘들다고 기록하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이 물질로 인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또한 이 세상의 많은 학자들과 박사들은 많은 지식으로 인해 우쭐하고 교만해져서 어리석게 선포되는 복음의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또 많은 종교적 열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종교인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우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필요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그것이 물질이든지식이든자신의 종교적 열심이든사람들은 교만한 마음으로 인해 예수님을 거부하게 되고그 배후에는 사탄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기 41장 34절에서는 그는 모든 높은 것을 바라보는 자요모든 교만한 자녀들을 다스리는 왕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함께 고린도후서 11장을 보시겠습니다고린도후서 11장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

처음에 뱀이 이브를 속일 때에이브의 무엇을 자극하였습니까선악과가 사실은 정말 맛있는 과일이라고 속이면서 입맛을 자극하였나요뱀은 이브에게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열려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되며 신들과 같이 될 것이라고 교만을 부추겼고이브는 선악과가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로 보였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담의 범죄는 어떤 것이었습니까디모데전서 2장 14절에서는 이브는 뱀에게 속았지만 아담은 속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아담은 뱀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었습니다성경은 이 아담의 죄에 대해서 불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로마서 5장 19절에서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같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아담은 속지도 않았고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오해한 것도 아니었고정면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죄는 교만이며 반역이었습니다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고권위에 대항하며불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잠언 16장 18절에서는 멸망에 앞서 교만이 나가며 넘어짐에 앞서 거만한 영이 있느니라.”라고 기록하고또한 잠언18장 12절에서도 멸망에 앞서 사람의 마음의 교만이 있고 명예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는 도둑과 같습니다사탄은 사람을 멸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을 알고 있는데그것은 바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케 만드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사탄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는 스스로 넘어지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사탄이 사람으로부터 가장 먼저 빼앗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겸손한 마음입니다사탄이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겸손한 마음을 빼앗게 된다면그는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교만하게 되어 예수님을 거절하게 될 것이고사탄이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에게서 겸손한 마음을 빼앗게 된다면그들은 더 이상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고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 속임수

그렇다면사탄은 어떻게 우리에게서 겸손을 빼앗고 교만케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다 같이 고린도후서 11장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니 사탄도 자기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느니라.”

만약 사탄이 사람들이 상상하는 흉악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면모든 사람이 즉시 마귀를 대적할 것입니다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대적할 수 없는너무나 친근하고 따스한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사탄은 거짓말의 아비요속임수의 대가입니다사탄이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12장 9절에서도 사탄을 가리켜서 그 큰 용 즉 저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세상을 속이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마치 장기나 체스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와 장기를 많이 뒀는데요아버지가 차포를 떼고 시작해도 매번 졌던 기억이 납니다장기는 일방적으로 공격하거나 수비하는 것이 아니라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상대방의 장기 말을 먹어나가는 것입니다내 말을 하나도 잃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상대방의 장군을 먹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때로는 과감하게 나의 말을 미끼로 내어주면서 하나씩 상대방의 말을 먹어나가야 합니다장기가 재미있는 것은 상대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서로 앉아서 다 보고 있으면서도상대방이 나의 좋은 말을 먹기 위해미끼를 내놓는 그 순간을 뻔히 보면서도알아차리지 못하고 속는다는 사실입니다그래서 물러주기도 하고 봐주기도 하는데요상대방이 실수한 것처럼 보이고 자신의 말을 공짜로 먹도록 내어주는 것처럼 보일 때더 위험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사탄의 속임수도 이와 같습니다우리가 말씀보고기도하고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일하는 가운데서도 속을 수 있습니다마귀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장기판 위에서 우리가 더 이상 주님의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주님과 동행하지 못하고,주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에게 많은 미끼들을 주면서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잠시 사탄이 주는 많은 속임수 가운데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사탄의 역사 속임수: 1) 많은 섬김과 체험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마귀의 첫 번째 무기의 이름은 돈이나 쾌락이 아니고, “많은 섬김과 체험입니다마귀는 우리를 교만의 덫에 걸리게 하기 위하여 많은 섬김과 체험을 줄 수 있습니다우리에게 주님을 넘치게 섬기고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생활 속에서 많은 간증과 체험이 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섬기고넘치게 섬겨야 하며주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영적 체험을 가져야 합니다그러한 섬김과 체험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나게 하고우리를 주님께로 더 가깝게 이끌어 주며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기 때문입니다마귀는 일차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하지만우리가 그러한 방해를 다 이기고 주님을 선택하여 섬기기 시작할 때마귀는 포기하지 않고 작전을 변경하여 우리로 하여금 많은 넘치는 섬김을 갖도록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인베스트셀러 천로역정을 기록한존 번연 목사님께서 하루는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왔습니다예배를 다 마치고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목사님 오늘 말씀이 너무나 은혜롭고 놀라웠습니다.”라고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그때 존 번연 목사님은 그 사람들의 말을 막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여러분 그것을 굳이 내게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됩니다왜냐하면 내가 강대상에서 내려올 때 이미 마귀가 내 옆에서 그렇게 속삭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기 시작할 때 마귀는 우리 옆에서 속삭이면서 우리의 교만을 부추깁니다처음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주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오직 주님 만에 모든 것을 하셨다고 고백하던 우리의 마음이어느새 나 자체가 영적이고 거룩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이때 우리는 마귀 덫에 걸렸음을 인식하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는 많음 섬김과 체험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탄의 역사 속임수: 2) 많은 영적 모양

두 번째로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는 많은 영적 모양입니다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있고그 종교들의 예식을 보면 대단히 엄숙하고 거룩한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마귀는 많은 영적 모양으로 믿는 이들을 속일 수 있습니다주님을 믿고 따르는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속에 있는 믿음이 자라나기 전에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예로, “오늘 제가 성경을 읽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과 오늘 제가 말씀을 보는 가운데 주님의 임재가 너무 가까웠고 주님의 은혜를 깊이 누렸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첫 번째와 두 번째 중에 무엇이 더 영적으로 보입니까저는 지금 두 번째 방식으로 표현하면 이러한 표현자체가 교만한 것이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결코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겉에 드러난 표현이 아니라 속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역사입니다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형제 자매들의 칭찬이 많은 경우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더 많은 경우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은 오히려 우리를 교만케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한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누군가를 망하게 하기 원한다면 그를 끊임없이 칭찬하라.”

 

우리에게 매일 말씀보고 기도하는 생활이 중요하지만더욱 중요한 것은 매번 말씀보고 기도할 때마다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우리가 단순히 형식적으로 말씀보고 기도하는 모양만 가진다면일주일에 세 번 금식하면서 교만했던 바리새인처럼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말씀보고 기도하면서 참으로 주님과 만나고 교제한다면 우리는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던 세리처럼 은혜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함 없이 가지는 모든 영적인 말과 모양은 우리를 교만하고 높아지게 만듭니다과거의 한 청교도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회개의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 순간에조차 교만이 틈타고 있고그러므로 나에게는 매순간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우리가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느낄 때 조심해야 합니다많은 영적 모양을 가지고 교만한 것보다차라리 육신적인 상태에서 겸손히 주님의 긍휼을 바라는 것이 안전합니다주님은 놀라운 말과 영적인 삶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사탄의 역사 속임수: 3) 많은 영적 지식

마귀가 우리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첫 번째 무기는 많은 섬김과 체험이며두 번째 무기는 많은 영적 모양입니다마귀의 세 번째 무기는 바로 많은 영적 지식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에게 진리를 아는 영적 지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마귀는 일차적으로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겠지만우리가 주님을 알기 시작할 때는 작전을 바꿔서 오히려 많은 영적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습니다에스겔서 28장 3절에서는 사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보라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그들이 네게 숨길 수 있는 은밀한 일이 없나니” 사탄은 솔로몬보다다니엘보다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자들보다 많은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마귀는 우리에게 풍성한 영적 지식을 제공해 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많은 영적 지식을 알게 될 때에 마귀의 덫에 걸릴 수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다같이 고린도전서 8장을 보시겠습니다고린도전서 8장 1절부터 3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이제 우상들에게 바친 것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로 아나니 지식은 우쭐대게 하나 사랑은 세워주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할 바를 아직 전혀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께서도 그 사람을 아시느니라.

 

우리에게 지식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지식은 우쭐대게 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아는 것은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아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님을 참되게 알고예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우쭐하거나 교만할 수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생명이신 주님을 떠나 지식으로 나아가게 될 때 우리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의 길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주님은 이 땅에서 점점 낮아지는 길을 가셨습니다예수님은 섬기러 오셨으며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내어주려고 오셨습니다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우리의 길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서나많은 믿는 사람들에게서나 칭찬을 받고인정을 받고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점점 더 낮아지는 길이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길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이 날까지 세상의 오물같이 되고 모든 것의 찌꺼기가 되었노라”(고전 4:13).

또한 침례 요한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흥하여야 하되 나는 반드시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오늘 우리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며 주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우리가 이 땅에서 무명한 자가 되면 될수록낮은 자가 되면 될수록 하늘에서 보상이 클 것입니다주님은 십자가의 순종으로 사탄에게 승리하셨습니다우리도 십자가를 통해 사탄에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사탄이 너는 정말 영적인 그리스도인이야.”라고 교만을 부추길 때우리는 나는 십자가에서 폐기처분되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며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모든 것이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마 18:4).

많은 놀라운 사역을 성취한 사람이 아니라많은 영적 지식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누구든지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가 그 겸손에 대한 보상으로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것입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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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3.18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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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요일 1:1-4)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1장입니다요한일서 1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요한일서 1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2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우리가 그것을 보았고 또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오늘 저는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도 요한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사도 요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사도 요한은 모든 사도들 중에서 가장 장수한 사도로 알려져 있습니다다른 사도들은 모두 순교를 당해서 삶을 마감했지만사도 요한은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 나서 자연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요한일서를 기록할 당시 그는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풍성한 계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여러 사도들이 성경 기록 사역을 감당하고 있던 당시에는 거의 동시대적으로 기록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모든 서신들을 공유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이제 사도 요한은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사도들의 모든 서신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보다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의 삶을 걸어왔기 때문에 더욱 많은 연륜과 깊은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사람의 체험이나 생각으로부터 기록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기록자들의 인간적인 어떠한 특징들을 사용하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일서를 읽으면서 글의 표현 자체는 매우 단순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함께 요한일서 말씀을 살펴보시면서젊은 시절에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직접 보았고들었고자세히 살펴보았으며손으로 예수님을 직접 만졌고한 평생을 주님을 따라 걸어온 노 사도의 진국과 같은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큰 은혜를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처음부터

요한일서 1장 1절의 말씀을 보시면,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한복음 1장 1절도 처음이란 단어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에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태초부터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사도 요한은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많은 역사를 거쳐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과정을 많이 묵상하였던 것 같습니다성경의 주인공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구약의 많은 말씀들은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어떻게 메시야가 오시는가어떻게 주인공이 역사 가운데 등장하는가를 보여주는 계보요 역사이며 예언의 말씀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7장 24절과 25절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잘 들어보십시오.

24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시므로 손으로 만든 전들에 거하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만물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어떠한 섬김이나 도움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완전한 분이십니다모든 면에서 스스로 만족하시고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사람을 만드셨고또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을까요?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말씀에서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3절에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과 교제하기 위하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하나님께 무언가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시고 받아내시려고 만드신 것이 아니라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고 또 부어주고 교제하려고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다른 서신인 요한계시록 4장 1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 주여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하더라.”

사람은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창조되었습니다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 사랑이시고 선하신 분임을 찬양합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을 기뻐하셨다면 사람의 운명은 정말 비참했을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으면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우리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면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의 본문인 요한일서 1장 4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사람이 교제하게 될 때 하나님께도 기쁨이 있고 사람에게도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오늘 우리의 삶이 메마르고지치고힘이 들고고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까환경이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입니까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기 때문입니까?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지 못했고 교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오늘 이 시간 다시 한 번 주님과 만남으로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생명

사도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표현하면서 생명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2절에서는 그 생명이 나타나시매”, 그리고 뒷부분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증언하며 너희에게 보이노라.”라고 기록하면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지옥에 갈 우리의 운명이 천국으로 옮겨진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단순히 80, 100년의 짧은 인생이 끝도 없이 길어졌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영원한 생명이란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행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을 때아담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 동산을 걸으면서 아무런 막힘이 없는 교제를 누렸습니다하나님께서는 동물들을 아담에게로 불러오셨고아담이 이름 짓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선과 악의 분별이 없었던 아담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통치하면서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 의논하고 교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고성경은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에서 사망이란 단어는 교제의 분리를 의미합니다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데그 이유는 그 사람과 분리되어서 더 이상 교제하거나 함께 즐거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사망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하지 못하도록 분리시키고함께 소풍도 가지 못하도록 분리시킵니다이러한 교제의 분리가 슬픔을 가져오게 됩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둘째 사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데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혼이 영영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불과 유황이 타는 호수에서 고통을 받으며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망이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생명은 무엇이겠습니까생명은 바로 교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노라하니 그들이 즐거워하기 시작하더라”(눅 15:24).

 

성경에서 예수님을 생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그것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예수님은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키시고자 친히 화해 헌물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대가를 다 담당하셨습니다요한일서 2장 2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 우리의 죄들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들이 생명을 얻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죄로 인해 분리되었던 하나님과 우리의 교제가 구원받을 때 단 한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매일 매순간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고 또 누리며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서 다 쏟으신 것입니다.

 

이 생명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다 같이 요한복음 17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 17장 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주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원한 생명은 무엇입니까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교제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입니다여기서 아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자들도 많은 공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고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지예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과 친밀한 만큼우리가 주님과 동행한 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품

우리가 성격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느새 친해지고 좋아하게 되듯이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서 교제하게 되면 예수님을 좋아하게 됩니다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어떤 상태에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분께 부담 없이 나아갈 수 있고 교제를 즐길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요즘 그 동안 아무생각 없이 지나쳤던 한 말씀이 자꾸 떠오르고 묵상이 되고 있는데그 말씀은 바로 요한복음 16장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에게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그것들을 감당하지 못하리라.”

 

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우리는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상처주거나 부담스럽게 하거나 괴롭히려고 말하지는 않지만많은 경우 다른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말들을 하게 됩니다그것이 성경의 진리일 수도 있고누구나 동의하는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너무나 정당하고 옳은 주장일 수도 있고대화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주로 말하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지듣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내가 말을 어떻게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생각하지듣는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유익이 되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 우주에서 말할 것이 가장 많은 한 사람을 뽑으라면 우리 주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우리 주님은 말에 아무런 실수도 없으시고그분이 진리 자체이시므로 말씀하시는 것마다 진리이지만여기서 예수님은 말하는 것을 스스로 절제하고 계십니다그 이유는 잘 깨닫지 못하고 감당하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이었습니다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으면 탈이 납니다사랑과 배려가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가 감당하고 따라 올 수 있는 만큼 한 가지씩한 가지씩 자상하게 알려주십니다.

 

또한 누가복음 4장 40절 말씀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이제 해질 무렵에 그들이 다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자들을 그분께 데려오니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안수하사 그들을 고치시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시고 하루 종일 사람들을 방문하시고 말씀을 외치셨습니다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하고 지치는 해질 무렵 갖가지 질병으로 앓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예수님께서는 다시 일어나셔서 그들 모두에게 한 명한 명 일일이 안수하셔서 그들을 고쳐주십니다예수님은 한 번의 말씀선포로 여기에 모인 모두 나음을 입을지어다!” 하실 수도 있지만한 명한 명 안수하시면서 대화하시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지금도 하루 일과로 지친 가운데 수요기도회로 모인 우리들 한 명한 명과 교제하시고 우리를 고쳐주기 원하십니다우리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너무나 자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

이제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의 성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다 같이 요한일서로 돌아와서 요한일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요한일서 3장 14절과 15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4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15 누구든지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너희가 아느니라.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주님과의 교제 가운데 있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향해 오래 참으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향해 오래 참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급하게 바꾸고 변화시키려하지 않으시고 아기에게 이유식을 한 숟갈 한 숟갈 떠 넣어주는 엄마처럼 우리를 자상하게 한 걸음씩 이끌어주셨듯이우리도 형제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고 인내하며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게 된다면 주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을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주님이 우리를 괘씸하게 여기셨다면주님이 우리에게 조건을 요구하셨더라면 우리는 너무나 괴로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생명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아무리 답답하고 이상하고 어려운 형제일지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16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으므로 우리가 이로써 그분의 사랑을 깨닫나니 우리가 형제들을 위해 우리의 생명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나의 어린 자녀들아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교만하고 더럽고 추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온 우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이로써 마음이 둔하고 어리석은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형제들을 사랑해야 합니다우리가 말과 혀로는 사랑한다 말할 수 있지만형제들을 위해 생명을 버리는 십자가가 없이는 형제들이 사랑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사랑은 아픔 없이 할 수 없고손해를 입지 않고는 할 수 없고버리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고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생명을 버리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 거하고빛 가운데 거하며생명 안에 거하고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주님 안에 있는 사람만이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풍성할 때우리는 우리의 시간재물재능,자존심생명까지도 형제들을 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받았고날마다 받고 있기 때문에이러한 참된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그러나 너무나 절망적이게도 저의 눈물과 노력과 결심으로는 결코 어떠한 사랑도 나오지 않습니다그래서 저에게는 주님이 필요합니다주님이 내 안에 풍성하시고내가 주님 안에 거할 때만이 참된 사랑이 흘러나오고우리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와 교제

다시 요한일서 1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

 

사도 요한은 너희가 먼저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개인적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형제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아울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주님 안에 있는 사람과 교제하면 우리는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겉으로는 형제와 교제하고 있지만그 교제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깊은 교제 가운데 있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 안에 부어진 주님의 빛과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우리는 사람들과 교제할 때 무엇인가를 주장하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사람들을 대할 때 무엇인가를 고쳐주려 하기 전에 사랑하려고 해야 합니다우리는 다른 사람과 교제할 때 무엇이 옳은가무슨 말이 필요한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그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많은 일과 의무와 사역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자신과의 교제로 부르십니다주님은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와 만나기 원하시고 매순간 동행하기 원하십니다오늘 이 시간 자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을 만나고 회복되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09.02.18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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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람(살전 2:4)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2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

 

오늘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2장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은?

오늘 누군가가 우리에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까요? “enjoy your life”라는 광고문구처럼 이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 산다고 대답할 것입니다.이 세상의 삶의 방식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입니다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돈도 벌고다이어트도 하고,사람들을 만나고지식을 배우고기술도 익히고경쟁하며투자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면서 바쁘게 살아갑니다.그러나 이 세상은 사람들에게 참된 안식과 기쁨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어려움과 혼란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욥기 5장 7절에서는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나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도서 1장 8절에서는 모든 것이 수고로 가득하여 사람이 그것을 말할 수 없나니 눈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귀는 듣는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쁨과 만족을 얻기 위하여 일생을 수고와 고생으로 가득 채우지만 사람의 마음은 결코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끊임없는 한숨과 후회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고생과 고통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향과 목표는 무엇입니까사도 바울은 오직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고 귀한 삶인 것입니다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우리가 만약 이 세상에서 아무런 소망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 자신만을 기쁘게 하고자 살아간다면 그처럼 비참하고 슬픈 인생이 없을 것입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아무리 애쓴다 할지라도 우리는 기쁘지 못하고 오히려 헛되고 공허한 마음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4절에서는 전쟁을 하는 어떤 사람도 이 세상 삶의 일에 얽매이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그가 자기를 군사로 택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해서 듣게 되면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생각합니다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하나님은 과연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면서 우리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실까요마귀는 계속해서 불화살을 날리면서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의심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이사야 53장을 보시겠습니다이사야 53장은 모두 잘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2절과 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고통을 잘 아는 자라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더럽고 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더럽고 천한 사람들 중에서도 더 낮고 낮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냄새나는 마구간의 더러운 말구유에 누이셨습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며 살아갈 때에 우리 주님은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요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셨습니다.

 

5절부터 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끌려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죄는 우리가 지었고 징벌은 주님이 당하셨습니다불법은 우리가 행했는데 채찍은 주님이 맞으셨습니다우리는 각각 자기 길로자기 자신을 위하고 높이고 주장하는 길로 갔거늘 주님은 버려지고 학대당하며 고난 당하는 길로 가셨습니다우리가 우리의 권리와 명예를 주장하며 소리를 높일 때 주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모든 부당한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사 그에게 고통을 주셨은즉 주께서 그의 혼을 죄로 인한 헌물로 삼으실 때에 그가 자기 씨를 보고 자기 날들을 길게 하며 또 주의 기뻐하시는 일이 그의 손에서 번영하리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것은 무엇입니까하늘로부터 친히 음성을 내셔서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마 3:17)하셨던 그 사랑하는 아들을 상하게 하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매우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분을 상하게 하셨으며또 어떻게 그것을 기뻐하셨습니까?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보잘 것 없고 더러운 우리 자체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볼 때에도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이러한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사랑하는 독생자가 침 뱉음을 당하고수염이 뽑히고벌거벗음을 당하고멸시와 수치를 받으실 때 아버지께서 기뻐하신 이유는 비천하고 가련하고 죄 많은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한 가운데 계시는 주 네 하나님은 능하신 이시니 그분께서 구원을 베푸시고 너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하시고 친히 사랑하시는 중에 안식하시며 너로 인해 노래를 부르고 기뻐하시리라하리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손해를 보는 삶입니까전혀 그렇지 않습니다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에서 가장 비싼 손해를 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며 값진 삶인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체를 기뻐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1 - 부모에게 순종

이제 조금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몇 부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3장 20절에서는 자녀들아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아내가 남편에서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눈가림으로 하지 않고 단일하고 성실하게 일하고주인된 자가 긍휼과 공정함으로 사람을 부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그러나 이 모든 일을 기뻐하시는 것보다 주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이 한가지 있는데그것은 바로 자녀가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뭔가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위치 가운데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좋은 부모님이 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자신의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고자신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긍휼을 주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란 가장 정상적인 삶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2 - 주님을 알아감

또한 에베소서 1장 9절에서는 친히 자신 속에서 작정하신 자신의 크신 기쁨을 따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 21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시각에 예수님께서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음을 감사하나이다과연 그러하옵나이다아버지여그리하심이 아버지 보시기에 좋았나이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어떠함과 자신의 뜻의 신비를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설명하고 가르쳐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한번만 설명하면 금방 알아듣고 따라오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자신은 그렇게 잘 깨닫는 사람이 아닙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계시하여 보여주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많은 일에 분주하기에 앞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고많은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며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하나님께서는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보다 어리석고 우둔한 아기들을 기뻐하십니다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께서는 어리석고 약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신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주기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참으로 우리 자신이 많은 일의 성취보다많은 일의 드러난 결과보다주님을 알고 가까워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 3 - 성령을 따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다같이 로마서 8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로마서 8장 8절과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

 

우리가 많은 선한 일들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육신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많은 옳은 말들과 뛰어난 말들을 한다 할지라도 우리가 육신 안에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오직 십자가를 통해 성령 안에 거할 때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어느 위치에 거하고 있는가를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주의할 것은내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하였는가가 아닙니다우리가 주의할 것은 내가 육신 안에 있는가 성령 안에 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우리가 영적인 것들을 유창하게 말했다 할지라도 육신 안에서 우리 스스로 말미암아 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전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비록 어눌하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여 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본문 설명

이제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말씀으로 되돌아오겠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복음을 위탁받은 대로 말하노니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이 말씀을 보고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허락이 필요합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하나님의 명령이고사도의 사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여기서 조금 이상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서 복음을 말했고위탁받은 대로 말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바울은 아무리 당연하고 옳고 선한 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결정해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매순간 하나님께 묻고 허락을 받는 순종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우리는 매순간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방향이 정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진행하고 내가 주장하려고 합니다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원했고매순간 주님께 순종하는 위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그러므로 매순간지금 복음을 말해도 되는지조차 주님께 묻고 허락을 받아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많은 경우 나 외의 다른 이웃이나 형제 자매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때로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지 못함을 또한 발견합니다바울은 어느 때에나 사람이 아닌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습니다우리가 사람의 이목을 주의하면서 그들을 기쁘게 하고자 할 때 우리는 반드시 넘어지고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주님만을 기쁘게 하고자 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 것입니다.

잠언 16장 7절에서도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시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늘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5절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어떤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욕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느니라.”

우리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세워주는 말도 할 수 있고칭찬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결코 아첨이나 탐욕의 가면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그것은 헛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오직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외적인 말투와 표정과 제스쳐를 보고있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우리는 속에 마음이 없이도 겉으로 드러난 몇 마디 말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지만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은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찬양을 부르고기도를 하고성경을 본다고 해서 기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우리의 입의 말이 아무리 하나님과 가깝다 할지라도마음이 멀다면 하나님께서는 전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습니까우리의 마음 속에는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습니까단 하루를 살더라도 오직 주님만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보여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리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람입니다제가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다윗이 한 일은 아버지와 모든 아들들이 다 사무엘의 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혼자 남아서 아버지께 순종하며 아버지의 양떼를 지킨 것이었습니다다윗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성실하게 일하면서주님을 묵상하였던 시골 소년이었습니다다윗은 사무엘이 이새의 모든 아들을 다 초청했음에도 혼자 들판에 남았던 아들이었습니다그가 하는 일은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그의 가족 안에서의 위치는 가장 낮고 초라했지만그의 마음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진실을 원하시고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럽고 천한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여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이토록 큰사랑을 받은 우리는 이제 아주 조금이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어떤 특별하고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일상 생활 가운데 믿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인 것입니다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언을 가진 에녹과 같이평범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생활 가운데서 늘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을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빌 2:13). 우리가 할 일은 외적인 일들이나 사람들을 주의하지 말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고 그분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고생과 수고로 가득한 우리의 비천하고 짧은 단 한번의 인생이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는 열망으로 가득 넘쳐 나서 가장 값지고 행복한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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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09.01.21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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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합당한 삶(빌 1:27-28)

 

본문 빌립보서 1장 27-28

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28 어떤 일에서도 너희의 대적들로 인해 무서워하지 아니한다 하는 것을 내가 들을 수 있으리라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명백한 증표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표니 곧 하나님의 증표라.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1장 27-28절입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복음에 합당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conversation

오늘 저는 빌립보서 1장 27절과 28절의 두 구절을 본문으로 선택했지만빌립보서 전체의 말씀을 훑어가면서 복음에 합당한 삶이 어떤 것인가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먼저 27절의 앞부분을 보시면,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여기서행실이라는 단어를 영어성경으로 보시면 “conversation”이라고 적혀있습니다이 단어는 한 장 더 넘기셔서 빌립보서 3장 20절에서도 등장하고 있는데여기서는 생활 방식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읽은 빌립보서 1장 27절에 나타난 복음에 합당한 행실이라는 것은 단순한 한 두 번의 행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생활 방식즉 우리의 꾸준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한 생활 방식즉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입니까먼저 우리 교회가 늘 강조하는 것처럼복음에 합당한 삶이란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말합니다빌립보서 1장 21절에서도 내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시요 죽는 것이 이득이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나의 노력과 의지와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온전히 사실 때에만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오늘 저는 특별히 빌립보서에 나타난 많은 귀한 말씀들을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엇인가할 때첫 번째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명한 자가 되는 삶이다두 번째로 형제들과 하나되고 연합하는 삶이다,세 번째로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이다라고 뽑아보았습니다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 복음에 합당한 삶이 어떤 삶인가 살펴보면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무명한 자가 되는 삶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기록한 이후에 과연 어떤 삶이 복음에 합당한 삶인지를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습니다이어지는 빌립보서 2장에서는 그 예가 나타나고 있는데먼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예로 보여주고또 디모데의 삶의 예로 보여주고마지막으로 에바브로디도의 삶을 예로 보여주고 있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첫 번째로 무명한 자가 되는 삶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마음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복음에 합당한 삶은 겉에 나타난 행동을 바꿔서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던 마음을 품는 것에서 시작합니다우리의 변화는 밖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예수님 안에 있던 마음은 무엇입니까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한 분이십니다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습니다스스로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시되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수천 수만의 천사들로부터 장엄한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사람의 모습을 입고 더러운 마구간에서 태어나 말구유에 누이셨다는 소식입니다시간과 공간의 아무런 제약이 없으신 전능자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체를 입고 오셔서 배고프고 피곤하며 머리 둘 곳조차 없는 삶을 살아가셨다는 소식입니다복음이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비천하게 되셨다는 소식이며가장 아름답고 영광이 가득한 분께서 사람들이 흠모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오셔서 멸시와 배척을 받으시고 버림을 받으셨다는 소식입니다복음이란 더럽고 천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영광의 하나님께서 죽으셨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멸망 받기에 합당한 우리들을 위해하나님을 대적하여 교만하고 가증하게 살아가던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과 피의 대가를 지불하시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대가도 묻지 않고 용서하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을 따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려 할 때 그 첫걸음은 주 예수님 안에 있던 이러한 마음을 우리도 품는 것입니다주님은 무명한 자가 되셨습니다주님은 더 낮아지는 길로더 이름 없는 길로 걸어가셨습니다우리도 주님을 따라 걸어가기 원합니다.

 

빌립보서 1장 15절에 보시면, “참으로 어떤 이들은 심지어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선한 뜻으로 하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는 심지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하며 주님을 섬기는 순간에조차 복음에 합당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어떤 이들은 시기와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은 귀하지만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 가운데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시기와 다툼으로 하게 될 것입니다빌립보서 2장 3절에서는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무명한 자가 되는 것이지만그 반대는 시기하고 다투며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더 잃어버리고더 낮아지며더 이름 없는 길로 가는 것이지만그 반대는 더 소유하고더 높아지며더 인정을 받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다같이 빌립보서 2장 19절부터 2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9 그러나 내가 속히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예수님 안에서 바람은 너희 형편을 알게 되어 나도 좋은 위로를 받으려 함이니

20 같은 마음으로 너희 형편을 자발적으로 돌아볼 자가 내게 아무도 없느니라.

21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일을 추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을 추구하지 아니하되

22 오직 디모데의 증거를 너희가 아나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그가 나와 함께 복음 안에서 섬겨 왔느니라.

 

사도 바울은 복음에 합당한 삶의 예로 디모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모든 사람이 자기의 일을 추구하고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사역하며자기 이름을 높이고 알리는 일을 향해 달려갈 때디모데는 오직 같은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온전히 바울에게 순종하며 함께 사역했던 사역자입니다오늘날 주님을 섬기기 원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들을 추구하지 아니하고자기의 일을 추구하면서자기의 유익과 자기의 명성과 자기의 사역을 소유하려하고 나타내려 합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에 가서 자기 자신의 뛰어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디모데는 빌립보 교회를 섬기면서 사람들을 바울에게서 빼앗고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로 만들지 않았습니다디모데는 시기하지 아니하고헛된 영광을 구하지도 아니하고어떠한 다툼이나 분열도 가지지 아니하고오직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바울과 함께 하며종의 형체를 입은 예수님과 같이 순종하며이름 없이 무명한 자가 되어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 18절과 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19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런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십자가의 원수란 예수님을 반대하고 대적하는 사람들만을 말하지 않습니다주님을 섬기기 원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십자가의 원수가 있습니다자신의 먹고사는 문제만을 생각할 때 우리도 언제든지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우리 자신의 헛된 영광을 구할 때 우리도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우리가 땅의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도 십자가의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십자가의 길은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하며 더 이름 없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그 반대로 걸어갈 때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우리는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한번 기도를 잘해서 사람들이 날 새롭게 보게 만들고한번 간증을 잘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한번 말씀을 잘 전해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모든 어리석은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어지는 3장 20절과 21절에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셔서 우리의 몸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키실 때까지 우리는 더 천하고 더 낮아지는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25절부터 2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5 그럼에도 나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는 자요 동료 군사요 또한 너희의 사자로서 내게 부족한 것을 공급한 자인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노라.

26 그가 너희 모두를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었으므로 심히 근심하였느니라.

27 참으로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그에게 뿐 아니라 내게도 긍휼을 베푸사 내가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또 30절을 보시겠습니다.

30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그가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거의 죽기에 이르렀느니라.

 

여기에 형제를 위해 생명을 잃어가는 영광의 길을 걷고 있는 한 형제가 있으니그의 이름은 바로 에바브라디도였습니다디도는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기까지 충성하며 섬겼던 형제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구하며자기 사역을 세우고자기 명성을 알리고자기의 뛰어남을 나타내고자기의 이름을 높이고자기 사람들을 만들고자 할 때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곳에서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는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이러한 디도의 삶이 바로 복음에 합당한 삶입니다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는 것만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우리는 교회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 것만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그리스도의 일은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며 자기를 희생하는 삶입니다더 무명한 자가 되고더 낮아지고더 천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4절부터 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에 있는 의에 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바울은 자기 자신을 높이고 신뢰할 만한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자신의 업적자신의 사역자신의 배경,자신의 지식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나타낼 만한 모든 것을 다 손실로 여겼습니다그 이유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얻고주님의 생명으로 살며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것들에 애착을 가지지 말고 미련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그것은 배설물과 같이 냄새나는 것이며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셨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헛된 영광을 다 버려야 합니다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를 견디셨습니까히브리서 12장 2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는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빌립보서 3장 마지막에 나온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활과 영광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 부활과 영광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견디신 것처럼우리도 부활과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더욱 낮아지고 잃어버리는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형제들과 하나되는 삶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첫 번째로 무명한 자가 되는 삶입니다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더 낮아지는 길을 가는 삶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두 번째로 형제들과 하나되고 연합하며 함께하는 삶입니다우리가 처음에 읽은 빌립보서 1장 27절 말씀을 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할지니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에 속한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한마음으로”, 그리고 함께 싸우며라는 단어들입니다우리가 앞에서 무명한 자가 되는 삶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빌립보서의 여러 말씀들을 읽었는데먼저 그 말씀들을 다시 읽으면서 어떻게 함께라는 단어가 조화를 이루며 들어가 있는가를 발견해 보기 원합니다.

빌립보서 2장 2절에 너희는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일치하여 내 기쁨을 성취하라.”

또한 2장 22절에 오직 디모데의 증거를 너희가 아나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그가 나와 함께 복음 안에서 섬겨 왔느니라.”

또 25절에 그럼에도 나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는 자요 동료 군사요 또한 너희의 사자로서 내게 부족한 것을 공급하는 자인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였노라.”

3장 16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미 도달한 곳에서는 같은 규칙에 따라 걷고 같은 것을 생각할지니라.”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4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유오디아에게 간청하며 순두게에게 간청하노니 이것은 그들이 주 안에서 같은 생각을 품게 하려 함이라.”

 

복음에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형제들과 같은 생각을 품고하나되며한마음을 가지고함께 하는 삶입니다서로 생각이 다른 형제가 어떻게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있습니까십자가를 통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우리는 나의 정당하고 옳은 생각과 요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정당하고 옳은 요구로 대하셨다는 우리는 이미 다 멸망했을 것입니다복음이란 주님께서 합당치 못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셨다는 것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우리도 부족하고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더럽고 천한 우리들 속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홀로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우리들과 함께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이러한 주님을 따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부족하고 연약한 형제와도 연합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분파를 짓고 분열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어떤 일을 결정하든지 중요한 것은 모든 형제가 같은 생각과 한마음으로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나와 생각이 다른 형제가 있다고 해서 미워하고생각이 같은 형제가 있다고 해서 편을 들고 분열해서는 안됩니다나의 생각이 아무리 합당하고 영적이라 할지라도그 생각으로 인하여 다른 형제들을 판단하고 분열하게 된다면 그 자체가 마귀의 속임수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5절에서는 화평의 복음을 선포하며 좋은 일들의 반가운 소식을 가져오는 자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라고 기록하면서 화평의 복음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복음이란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화해 헌물로 제시하시면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화평의 소식입니다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산다면 우리는 화평케 하고 하나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주님이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신 것처럼 우리는 먼저 형제들을 찾아가는 자가 되어야하고먼저 자신을 낮추고 용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

첫 번째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무명한 자가 되는 삶이고두 번째로는 형제들과 하나되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마지막으로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억울하고 부당한 십자가를 지면서도 우리의 옳고 정당함을 주장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부인하면서 더 낮아지고 종이 되는 길로 갈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떻게 연약하고 부족한 형제들의 부족함을 채우면서도 나를 드러내지 않고 겸손할 수 있습니까우리는 어떻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모든 것을 지켜보시며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보상으로 준비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할 때만이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걷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같이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환경을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이 답답하고 초조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 때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그럴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을 지키실 것입니다모든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안식하고 기다려야 합니다우리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맡겼다면 이제 모든 책임은 하나님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의 평강 가운데 안식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 보시면 바울은 어떤 처지에 있든지 그대로 만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바울과 같이 많은 고난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없습니다지금 빌립보서를 기록하는 이 순간에조차 바울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조차 4절에 나온 것처럼 계속해서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사방이 막혀있는 답답하고 제한된 감옥에서조차 바울은 만족하고 있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바울은 13절과 같이 담대하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라 믿었고 자신은 다만 종으로서 순종하는 위치에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내가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우리에게 닥친 모든 환경과 제한은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육신적인 노력으로 벗어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바울은 탈옥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어서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섬겨야 한다고어서 내보내 달라고외치면서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다만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여전히 주님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내가 주인 된 삶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주인 된 삶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을 섬기는 일은 내가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시키고 지시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온전히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순종하신 것처럼,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주님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분주하게 다니면서 열심을 부리는 삶이 아니라주님이 시키신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순종하는 삶인 것입니다.

 

다같이 빌립보서 1장 6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그것을 확신하노라.”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우리 자신이 선한 일을 완성하려고 애쓰는 삶이 아닙니다다만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 주님께서 직접 이루실 것을 믿고 확신하는 삶인 것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내가 보기에 필요한 일들을 분주하게 행하는 삶이 아니라주님이 참으로 원하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것을 순종하며 따라가는 삶입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 4장 19절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 가운데서 자신의 부요하심을 따라 너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리라.”

복음에 합당한 삶이란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채우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영광의 하나님께서 부요하심 가운데 우리에게 모든 필요를 공급하실 것을 믿고 온전히 신뢰하는 삶입니다.

 

 

정리

우리가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고스스로 낮아지고스스로 잃어버리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우리가 우리의 옳고 정당한 주장들을 다 내려놓고 때로는 틀리게 말하고때로는 어리석게 말하는 형제들을 아무 말 없이 사랑하고 용납하며그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생명까지도 잃어가는 영광스러운 복음의 삶을 살아갈 때우리를 책임지시고 공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복음에 합당한 삶은 나 자신이 노력하고 애쓰며 수고하는 삶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장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믿고 신뢰하면서 기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실 뿐만 아니라모든 환경을 다 주관하고 계십니다모든 일들이 그분의 손안에 있으며주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십니다우리의 할 일은 선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주님이 주신 환경 가운데 만족하며주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날마다 이끌어 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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