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일시 : 2011.09.25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작은 불꽃(약 3:5)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고보서 3장입니다야고보서 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일들을 자랑하는도다보라작은 불이 얼마나 큰 물체를 태우는가!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작은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이미 잘 아시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미국의 한 고등학생이50명의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하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이 글은 미국의 한 고등학교 과학전시회에서 1등을 수상하기도 하였는데요여러분도 지금 서명을 하신다고 생각하시고 글의 내용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제목은다이하이드로젠 모녹사이드(Dihydrogen monoxide)의 사용 금지를 촉구합니다라고 합니다글의 내용은이 물질은 산성비의 주요 성분입니다이 물질은 기체 상태에서 사람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힐 수가 있습니다이 물질을 마시다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이 물질은 각종 물질을 부식시킵니다또 이 물질은 말기 암환자의 종양에서도 발견됩니다이 물질은 지형을 침식시킵니다이 물질은 전기 합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물질은 다음과 같은 용도로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공업용 용매와 냉각제로원자력 발전소에서살충제의 살포 시에심지어 우리가 먹는 식품에도 첨가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물질의 사용 금지에 찬성하십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이와 같은 서명에 50명 중 43명이 찬성을 하였다고 합니다. 6명은 잘 모르겠다고 기권을 하였고, 1명은 반대를 하였다고 합니다그 한 명이 반대를 한 이유는 바로 다이하이드로젠 모녹사이드가 바로 물이라는 알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과학이 얼마나 놀라운 속임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물은 당연히 산성비의 주요 성분입니다또 뜨거운 수증기는 사람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힐 수도 있구요물에 빠진 사람은 계속 물을 마시다가 죽기도 합니다또 물은 각종 물질을 녹슬게 하고 부식시키기도 합니다또 암환자의 종양에서도 물을 발견할 수 있지요물은 또한 전기 합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생명과도 같은 물질입니다.

 

갑자기 왜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 이야기를 해드리는가 하면우선 졸린 점심시간이니 잠을 깨시라는 의미가 있구요.또 물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면서동시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그렇다면 불은 어떨까요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있는 설교의 제목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작은 불꽃이라고 하였습니다우리가 다시 한 번 오늘의 본문인 야고보서 3장 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일들을 자랑하는도다보라작은 불이 얼마나 큰 물체를 태우는가!

 

우리는 거의 매일 매순간 불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오늘 점심도 가스불이 있었기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또 자동차도 끊임없이 작은 불꽃들이 엔진을 움직이기 때문에 그 힘으로 달려갈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금속 제품들이 불을 통과해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또 우리는 추울 때 따듯한 불이 필요합니다이처럼 우리에게 불은 없어서는 안되는 매우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의 소중한 재산건강가족심지어 생명까지도 잃을 수 있는 무서운 재앙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우리의 혀를 가리켜서 작은 지체이며 작은 불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우리의 혀를 잘 사용하게 될 때 우리는 외로움과 고통의 추위 속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따듯한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고,또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음식과 만족도 줄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혀를 잘못 사용하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뜨거운 화상을 입히거나사람들의 마음을 불태워 열이 받게 할 수도 있고또 마음을 잿더미같이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작은 불꽃의 에너지가 우리 모두의 입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저는 오늘 작은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우리의 말과 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말에 실수하는 우리들

다함께 야고보서 3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다 많은 것에서 실족하나니 만일 어떤 사람이 말에서 실족하지 아니하면 그는 곧 완전한 사람이요 능히 온 몸도 제어하는 사람이라.

 

성경은 우리가 다 실수하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또 우리가 가장 쉽게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말하는 부분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만약 누군가가 말에서 실수하지 않는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며능히 온 몸까지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많은 것에서 실족하는 사람들입니다또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실수는 말을 잘못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말에 대해 실수할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어떻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할까라고 생각하면서 또 다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에베소서 6장에서는 영적 전쟁에 대해 기록하면서우리가 믿음의 방패로 사악한 마귀의 불화살을 막아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귀는 바로 우리가 서로를 향해 실수하여 잘못 말한 그러한 말들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어떠한 말을 들었을 때우리가 다 말에 대해 실수하는 사람인 것을 기억하면서 서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실수에 대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동시에우리 자신이 말로 다른 사람에게 어려움을 주거나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성경에 우리가 다 말 실수한다고 했으나 말실수해도 괜찮겠지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우리 자신이 마귀의 도구가 되어 사람들에게 불화살을 날리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늘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혀의 위력

야고보서 3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말들이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것들의 온 몸을 돌리느니라.

과거에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갔던 군사들은 말을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도록 제어하기 위해 말의 입에 재갈을 물렸습니다말의 큰 몸집에 비해 재갈은 매우 작은 것이었지만재갈을 통해 말은 달리기도 하고멈추기도 하며좌우로 방향을 돌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4절도 보시겠습니다.

또한 배들을 보라그것들이 그렇게 커도 사나운 바람에 밀려가되 사공이 매우 작은 키 하나로 자기가 가고자 하는 대로 그것들을 돌리느니라.

과거에 사람들이 타던 돛단배도 작은 키를 통해 방향을 돌렸습니다현대식으로 바꿔본다면 바퀴가 어른 키만 한 거대한 트럭이나 탱크도 운전사의 핸들을 통해 조종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혀는 우리의 몸에서 매우 작은 부분에 속하지만 그 위력은 우리의 인생의 길과 방향까지도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혀의 위력은 우리 자신의 길뿐 아니라 심지어 다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어마어마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면접시험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심지어 학원에 다니며 준비하기도 합니다면접시험에서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향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또 오늘날 어떤 연예인들은 인터넷에 기록된 자신에 대한 나쁜 글을 보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지어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역사 속에 있었던 많은 훌륭한 인물들은 친구나스승이나 누군가의 한마디 말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잠언 18장 21절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망과 생명이 혀의 권능 안에 있나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것의 열매를 먹으리라.

이렇게 우리의 혀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사망과 생명의 권능을 가진 우리의 혀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정직한 말

오늘날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들을 보면 대화의 기술과 관련된 제목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비즈니스 협상을 할 때 어떤 식을 말해야 하는지직장 상사를 대할 때또 부하직원을 대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잠언 22장 11절을 보시겠습니다잠언에는 말에 대한 수많은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우리가 그것을 다 찾아본다면 아마 오늘 밤까지 봐도 다 못 볼 것 같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중요한 몇 구절의 말씀을 살펴보기 원합니다잠언 22장 11절입니다.

마음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입술의 은혜로 인하여 왕이 그의 친구가 되리로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따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친구가 되실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순수하게 말해야 합니다우리는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우리가 자주 무엇인가를 계산하면서 말하거나이익을 탐내면서 말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바로잡히기 원합니다우리의 입이 순수하고우리의 말이 정직하려면 우리는 마음에서부터 바로잡혀야 합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듣는 대상에 따라 다르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비겁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애매하게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과장해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나의 이익을 계산해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순수하고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의 순수함을 사랑하는 가운데 입을 열어야 합니다순수함을 사랑한다는 말을 뒤집어보면 거짓되거나 더러운 것을 미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우리는 마음의 순수함을 뜨겁게 사랑하는 가운데 입을 열어야 합니다그러할 때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마음이 순수한 사람과 대화할 때 우리의 마음은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우리와 대화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가 전달되기를 원합니다.

 

 

직접 대화하라

잠언 25장 9절을 보시겠습니다.

네 사정에 대하여 네 이웃과 직접 변론하고 은밀한 일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라.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우리가 어떤 사람과 오해가 생기거나 어려운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그러한 일을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소문을 내지 말고 당사자와 직접 대화해야 합니다그러나 이 말씀은 화가 난 상태에서 당사자에게 직접 가서 싸우고 화풀이를 하라는 말씀이 결코 아닙니다또 너무 마음이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할 때도 목사님과 상담하지 말고 당사자하고만 말해야 한다는 뜻도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일이나 사정에 대하여 상관이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왜냐하면 그 말들은 또 다른 말을 낳고또 다른 말을 낳아서 더 크고 안 좋은 소문이 되어 당사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또한 10절도 보시겠습니다.

그것을 듣는 자가 너를 모욕하므로 너에 대한 악평이 떠나지 아니할까 염려하노라.

 

성경은 우리가 우리의 어떤 사정과 억울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저도 어떤 억울한 상황이나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 흥분한 가운데 가족들에게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그것이 잘하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제가 연약함 가운데 그렇게 할 때가 있습니다그나마 가족들이라 다행이지만어쨌든 제가 이러한 사정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 비난하고 나쁘게 이야기할 때 가족들이 제 편을 들어주면서 공감을 해준 적은 거의 없습니다때로 공감을 해주더라도 제가 너무 흥분을 하고 불쌍하니까 위로 차원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지 정말 마음에서부터 저와 똑같이 그 사람이 나쁘다고 받아들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정말 이 잠언 말씀이 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우리가 어떤 사정에 대해 다른 사람을 비난하게 될 때 그 비난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우리가 어떤 일을 겪게 될 때 우리는 소문을 내기보다는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여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또한 잠언 26장 20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불이 꺼지는 것 같이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없는 곳에서는 다툼이 그치느니라.

성경은 계속해서 말하는 문제를 불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우리는 많은 때에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듣게 됩니다그것이 농담처럼 우스갯소리로 전달될 때도 있고정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심각한 소식으로 전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말을 들을 때 더 이상 불이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찬물을 끼얹질 필요가 있습니다찬물을 끼얹는다는 것은 내가 어떤 소문을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또한 그렇게 소문을 내는 사람에게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말 것을 사랑 안에서 부드럽게 권면하는 것입니다또 더 나아가 당사자에게 직접 이야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우리는 계속해서 불을 퍼뜨리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나는 마치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인 것처럼나는 마치 연약한 모습이 전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누가 그랬다더라 하면서 소문을 내는 것은 정말 잘못하는 것입니다우리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래에 이어지는 21절부터 23절까지의 말씀도 읽어보겠습니다.

21 타는 숯불에 숯을 더하는 것과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이 논쟁하기 좋아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22 소문을 퍼뜨리는 자의 말들은 상처들과 같아서 배 속의 가장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23 불타는 입술과 사악한 마음은 은 찌꺼기를 입힌 질그릇 조각 같으니라.

 

저는 잠언 말씀을 통해서 순수하게 말해야 한다는 점과 문제가 생겼을 때 소문을 내지 말고 당사자와 직접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그리고 소문을 들었을 때 소문을 멈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우리는 잠언에서 말에 대한 수많은 말씀을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은 시간관계상 더 이상 찾지는 못하고앞으로 넘어가서 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과 말

마태복음 12장 34절과 37절을 보시겠습니다.

34 오 독사들의 세대야너희가 악하니 어찌 선한 것들을 말할 수 있겠느냐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3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보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보고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오직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리라.

37 네 말로 네가 의롭게 되며 네 말로 네가 정죄 받으리라하시니라.

 

성경은 말에 대해서 매우 강조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사람이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그것에 대하여 회계 보고를 하며 하나님과 계산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그 이유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마음에 가득하여 나오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육신 안에 거한다면 육신의 말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만약 우리가 육신 안에 있다면 우리는 차라리 잠잠히 입을 다물어야 합니다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다함께 누가복음 9장을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9장 51절부터 56절까지의 말씀을 교독하시겠습니다.

51 그분께서 위로 올려져서 영접 받으실 때가 이르매 친히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얼굴을 고정하시고

52 사자들을 자기 얼굴 앞에 보내시니 그들이 가서 그분을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니라.

53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듯한 얼굴이므로 그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매

54 그분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이르되엘리야가 행한 것 같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저들을 멸하도록 우리가 명령하기를 원하시나이까하거늘

55 그분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르시되너희가 어떤 영에 속해 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56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멸하러 오지 아니하고 구원하러 왔느니라하시니라그들이 다른 마을로 가니라.

 

지금 읽으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하셨습니다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에게 오신 것이 아니라다만 자기들을 통과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주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엘리야처럼 이 사람들 다 불태워버릴까요?” 정말 그들은 작은 불같은 혀를 가지고 지금 불을 뿜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말한 것처럼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불태운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엘리야의 마음은 야고보와 요한과 같지는 않았습니다우리는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할 때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잘 할 수 있고또 잘 못할 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외적인 어떤 일이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요나처럼 미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도 니느웨 모든 백성이 회개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스데반처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설교를 해도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한 채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어떠한 외적인 현상이나 결과물은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야고보와 요한은 엘리야도 그렇게 했었다고 말을 하면서 불을 뿜고 있습니다그러나 주님께서는 55절에서 그들을 꾸짖고 계십니다예수님께서 이들을 꾸짖으신 내용은 말을 함부로 하는구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예수님께서 꾸짖으신 포인트는 바로 그들이 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사랑과 긍휼의 영이 아니라 교만과 정죄와 판단의 영이 잘못되었다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말해야 합니다우리는 사랑과 온유와 오래 참음의 영으로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말해야 합니다우리가 단순히 외적으로 말하는 말투나 행동만 고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색하고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영과 마음을 다해 주님께 다가선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말도 고쳐질 것입니다.

 

 

정리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4장을 보시겠습니다베드로전서 4장 11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이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 같이 그 일을 하라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아멘.

 

우리는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이 말해야 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분명하고 정확하며 순수하고 깨끗하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따듯하고 사랑이 가득하며 용기를 주고 믿음을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우리는 애매하고 거짓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비방하고 소문을 퍼뜨리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무엇인가 문제가 있다면 사랑 가운데 당사자와 직접 대화하고 서로 자백하고 용서하며 더 뜨겁게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 우리의 모든 말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우리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기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나를 높이는 말나를 방어하는 말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이러한 말들은 창조의 목적에 맞지 않는 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수한 마음을 사랑하기 원하시며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하게 될 때 우리의 말도 사랑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겸손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또 우리의 입술을 붙드시기 간절히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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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1.06.19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완전한 사랑(골 3:12-14)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골로새서 3장입니다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14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완전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드라마나 영화나 세상의 많은 노래들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또 수많은 종교단체들도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마태복음 24장 12절에서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사랑은 점점 식어지고 있습니다이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돈을 사랑하고쾌락을 사랑하고죄를 사랑하는 이상한 형태의 사랑으로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성경이 말씀하시는 완전한 사랑에 대하여 함께 살펴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하나님께서 오직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 마음을 강하게 일으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랑

먼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에 대하여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성경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을까요먼저 로마서 13장 8절부터 10절까지 보시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너는 간음하지 말라너는 살인하지 말라너는 도둑질하지 말라너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너는 탐내지 말라한 것과 그 외에 어떤 다른 명령이 있을지라도 그것은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이 말씀 안에 간략하게 들어 있느니라.

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경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사랑은 율법의 성취이며율법의 완성입니다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모든 계명을 간략하게 요약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입니다성경에서 가르치시는 사랑은 교육의 목표이며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목표입니다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우리가 순종하며 따라야 할 하나님의 완전한 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교육할 때 간음하지 말라살인하지 말라도둑질하지 말라거짓 증언하지 말라탐내지 말라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비록 실제로 살인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 남을 미워한다면 성경은 그것을 살인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가르쳐야 합니다사랑하지 않는 것이 살인과 같은 죄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도둑질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나의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랑을 실천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함께 성경을 펴지는 않겠지만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사랑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은 놀라운 지식과 뛰어난 능력과 위대한 헌신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그러나 반대로 지식이나 능력이나 섬김이 부족할지라도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완전한 것입니다믿음,소망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믿음은 우리가 주님을 눈으로 보며 만나는 순간부터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고소망도 장차 주님을 만나는 날 모두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없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가르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십시오아마도 대부분 원수를 사랑하라가 아니겠느냐고 대답할 것입니다사랑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최종적인 가르침입니다심지어 요한일서 4장 8절에서는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의 표시는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람

다함께 마태복음 5장을 한번 보실까요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8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3 그들이 말한바너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한 것을 너희가 들었느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45 그리하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되리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해를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떠오르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 위에 내려 주시느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보상을 받겠느냐세리들도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행하는 것이 무엇이냐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기준의 사랑이 아니라하나님 기준의 사랑성경적 기준의 사랑완전한 사랑을 명령하고 계십니다인간적 기준의 사랑은 나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인간적 기준의 사랑은 나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악의를 품고 미워하는 원수들에게 똑같이 미워하고 더 크게 복수하는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 기준의 사랑은 원수들을 사랑하는 것이며우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며악의를 품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악한 자와 선한 자 위에 햇빛과 비를 공평히 주시는 완전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만 사랑하면 아무 보상이 없을 것입니다세상 사람들도 심지어 강도들도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은 사랑합니다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는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에게 사랑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읽은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여기에서 완전한 것은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하나님처럼 지혜롭거나능력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성품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있을까요인간적인 기준에서 완전한 사람은 키도 크고 잘생기고 똑똑하고 능력 있고 절대 실수하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그러나 여기 이 성경말씀의 기준에서 완전한 사람은 키가 작을지라도못생겼을지라도조금 어벙하더라도잘하는 일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사랑의 영으로 가득한 사람인 것입니다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하다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완전한 교회

마찬가지로 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교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사랑을 가진 교회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를 칭찬하실 것입니다실제로 계시록 2장과 3장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가운데 형제사랑이라는 의미를 가진 필라델피아 교회는 아무런 책망도 받지 않고 오직 적은 능력으로 내 말을 지켰다는 주님의 칭찬을 받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교회를 찾아 방황하는 것을 불 수 있습니다아무런 문제가 없고모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하며성경 지식에서도 뛰어나고누가 봐도 멋지고 완벽한 교회그런 교회를 꿈꾸며 찾아다닙니다전에 제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 완전한 교회를 찾으신다면 여러분은 절대 그 교회에 들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여러분이 그 교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 교회는 더 이상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의인을 부르지 않으셨고건강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셨습니다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죄 많고어리석고연약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이렇게 문제가 많고 부족한 우리들이 모인 이 모임이 바로 주님의 교회입니다우리는 어떻게 완전한 교회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3장 14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을 때 우리는 완전할 수 있습니다.

 

제가 깜짝 퀴즈를 하나 내보겠습니다여러분교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쉬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문제가 없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다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요그것은 바로 문제가 많은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입니다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단순히 나와 다른 스타일로 말하고 행동하는 형제자매를 보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나와 다른 형제자매와 친절하게 대화하는 것도 어렵고때로는 나에게 잘못한 형제자매에 대해 참는 것도 힘든데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약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입니다사랑은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헐뜯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려 그 부족함을 채우고 공급하는 것입니다사랑은 다른 사람의 문제와 허물을 흉보고 헐뜯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덮어주고 가려주는 것입니다사랑은 나 자신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나의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있습니까아니면 비판하고 있습니까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연약한 지체가 아니라 비판하는 지체입니다우리 모두가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받는 자로서

오늘 본문 말씀인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을 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저는 오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성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사랑이라는 점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완전함이 사랑이라는 점그리고 완전한 교회가 되는 길도 사랑이라는 점을 말씀드렸습니다이제 저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가 사랑을 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처럼 긍휼히 여기는 심정친절겸손한 마음온유함오래 참음서로 참고 용서하는 마음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어떻게 이러한 사랑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저는 먼저 12절에 등장하는 사랑받는 자로서라는 말에 주목해보기 원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하기를 명령하시는 근거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한계를 정하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무한하고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우리가 어떠한 죄인인지를 전혀 계산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고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욥기 15장 16절에서는 사람이 불법을 물마시듯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사랑을 받은 이유는 우리가 더럽고 추악한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교만하고 가증스러운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해 긍휼히 여기는 심정을 가지셨고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먼저 겸손과 온유함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고지금도 늘 주님을 거역하는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시며 용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롭고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나 같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가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는 교만할 수 없으며감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거나 비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1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신 것입니다원래 우리는 모두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더럽고 추한 죄인입니다그러나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 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예수님의 용서는 나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사랑이었으며생명까지 기꺼이 주신 사랑이었습니다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다함께 잠시 누가복음 7장을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7장 36절부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한 바리새인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음식 앞에 앉으셨을 때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자기 눈물과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바리새인은 속으로 여자를 정죄하면서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41절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해주고 계십니다.

41 그분께서 이르시되빚을 준 어떤 사람에게 빚진 사람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는데

42 그들이 전혀 갚을 것이 없으므로 빚 준 사람이 두 사람 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었나니 그런즉 내게 말해 보아라그들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하시거늘

43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내 생각에는 그가 많이 용서해 준 사람이니이다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이르시되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하시고

또한 4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이 여자는 많은 죄를 용서받았느니라이는 그녀가 많이 사랑하였기 때문이니라그러나 적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하느니라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 시몬에게 용서와 사랑의 비례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많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하게 되며적은 것을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다시 한 번 깜짝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여러분은 적게 용서받으셨습니까 아니면 많이 용서받으셨습니까우리는 우리가 용서받은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그 용서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합니다우리가 만약 나는 솔직히 적게 용서받은 것 같다라고 느낀다면그것은 우리 죄가 정말 적기 때문이 아니라우리가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면서 죄인들에게 침 뱉음 당하시고수염이 뜯기시고모욕과 수치를 당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시기까지 모든 사람을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 같은 죄인들까지도 사랑하여 주셨습니다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나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결코 할 수 없습니다.우리가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하나님을 기억할 때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로 인한 감격과 감동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을 입으라

우리가 처음 읽은 골로새서 3장 14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성경은 사랑을 입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왜 사랑을 입으라고 표현하셨을까요그것은 이 사랑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위에 임할 때우리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사랑을 입지 않으면 마치 벌거벗은 것처럼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자로서그리스도께 놀랍게 용서받은 자로서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다면 그것처럼 수치스러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닙니다사랑은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이며하나님의 뜻의 완성입니다.

 

완전한 사랑은 조건을 걸지 않습니다완전한 사랑은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완전한 사랑은 상대방의 모습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완전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는 것입니다완전한 사랑은 우리 자신의 결심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완전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어지고 공급되며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하나님을 따르는 가장 분명한 표시는 오직 사랑입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11.03.13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주님 오실 날(약 5:8)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야고보서 5장입니다야고보서 5장 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주님 오실 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여러분 며칠 전 일본에 일어났던 지진과 해일에 대해서 들으셨을 것입니다이번 지진은 강도 8.9의 강진으로 사상 최대의 지진이었던 아이티 지진보다 수백 배 더 강력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지진이 시작된 지 24시간 이내에 160회의 여진이 일어났고 그 중 141회가 진도 5.0이상이라고 합니다심지어 일본 열도의 땅 덩어리 전체가 2.4미터 정도 밀려 이동된 것이 위성 GPS로 확인된다고 합니다.

이번 지진 전에도 2010년 1월 12일에는 강도 7.0의 아이티 지진이 있었고그로부터 한 달 후 2월 27일에는 강도 8.8의 지진이 칠레에서 있었습니다그리고 같은 해 10월 25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강도 7.7의 지진과 쓰나미가 있었습니다. 2008년에는 중국 쓰촨성 대지진도 있었습니다이렇게 우리는 많은 지진의 소식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심지어 성경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세상의 끝이 가까이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성경을 믿는 우리는 더욱 주님의 다시 오심을 떠올리게 됩니다저는 오늘 주님 오실 날이라는 제목으로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세상 끝의 표적

야고보서 말씀에 끈이나 펜을 꽂아놓으시고 다 함께 마태복음 24장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24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

그분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은밀히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하니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께 세상 끝에 있을 표적을 여쭙고 있습니다여기서 표적은 영어 단어로 싸인(sign)인데마치 교통신호등에서 빨간불이 들어오기 전에 노란불 같은 신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4, 5절 말씀과 같이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하나님과 거짓 목사와 거짓 사역자들이 등장할 것임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또 6절 말씀처럼 많은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7절과 8절의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7절과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고통의 시작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고통의 시작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그것은 많은 전쟁의 소문과 기근과 역병과 지진입니다이러한 모든 일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신호와도 같습니다우리는 오늘날 수많은 역병의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조류독감돼지독감신종플루광우병구제역과 같은 끊임없는 역병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또 우리는 자주 지진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도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21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또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적들이 있고 땅에는 민족들의 고난과 혼란이 있으며 바다와 파도가 울부짖으리로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많은 민족들의 고난과 혼란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또 우리는 해일쓰나미 같은 바다와 파도의 울부짖음을 듣게 됩니다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도 세상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하고심지어 영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또 성경을 믿지 않는 세상 예언가들이나사이비 이단 단체들도 혜성충돌이니천지개벽이니외계인 UFO이니 하면서 세상의 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자연환경을 연구하는 과학자들도 이제는 자연이 사람을 공격할 차례라고 경고하면서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을 걱정합니다.

 

다시 오늘의 본문인 야고보서 5장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야고보서 5장 8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돈을 사랑함

저는 오늘 주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나누기 원합니다저는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와 우리가 사랑해야 할 한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가 주님 오실 날을 바라보면서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돈입니다우리는 오늘 물질만능주의에 살고 있습니다돈이면 뭐든지 다 통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처럼 돈이 없으면 죄가 있고돈만 있으면 죄가 없는 거짓되고 사악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이 세상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복권주식재테크대출이자연봉과 같은 단어들은 오늘날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제 단어들이라고 할 만큼 이 세상은 돈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이 세상에서의 부와 번영을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예전에 기독교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한 책이 있는데그 책의 제목은 바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만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부자가 되는데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지 못한다는 주제의 책이었습니다사탄은 이렇게 강력하게 돈이라는 강력한 족쇄로 온 세상을 노예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절부터 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제너희 부자들아너희에게 임할 너희의 비참한 일들로 인하여 슬피 울며 울부짖으라.

너희의 재물은 썩었고 너희의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의 금과 은은 부식되었으니 그것들의 녹이 너희를 대적하는 증인이 되고 불과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너희가 마지막 날들을 위해 재물을 함께 모아 쌓았도다.

보라너희 밭에서 곡식을 거둔 품꾼들의 품삯 곧 너희가 사기 쳐서 숨겨 둔 품삯이 소리를 지르며 곡식을 거둔 자들의 울부짖음이 만군의 주의 귀에 들어갔느니라.

 

이 말씀은 돈 자체가 사악하다거나 부유하게 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돈을 버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도 결코 아닙니다이 말씀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직하지 못하게 거짓된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향해 주님께서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왜 이러한 경고를 주고 계실까요주님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주님 앞에 다시 서게 될 사람으로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돈은 우리의 믿음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시험입니다여러분은 주님과 돈 사이에 섰을 때 무엇을 선택하십니까우리는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다 함께 디모데전서 6장 7절부터 10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아니하였은즉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이 확실하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느니라.

10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우리의 삶의 목적과 방향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우리의 방향은 결코 부유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우리가 정직한 방식으로든부정직한 방식으로든 부유하게 되고자 할 때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욕심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는 돈이 아니고 하늘의 아버지이십니다우리의 주인은 돈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우리의 짧은 한 번뿐인 인생을 돈을 위해 낭비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값진 시간을 쌀 몇 톤과 고기 몇 근을 위해 허비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오늘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자녀로 양육하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부자로 키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모두 드릴 수 있는 주님의 종으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밀려오는 돈의 유혹을 우리가 주님께 내려놓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도와주시기 원합니다오늘 우리가 야고보서 말씀을 읽은 것처럼 우리가 인내하고 마음을 굳건히 하기를 원합니다.

 

 

쾌락을 사랑함

다시 야고보서 5장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 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로 저는 돈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이제 두 번째로 쾌락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다 함께 5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땅에서 쾌락 가운데 살며 방탕함에 빠져 살육하는 날에서와 같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오늘 주님께서는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경고하신 이후에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오늘날 이 세상은 쾌락을 추구합니다사람들이 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돈으로 즐거움과 쾌락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 함께 디모데후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5절을 보시겠습니다.

또한 이것을 알라즉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고집이 세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이 말씀은 세상의 끝이 아주 위험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이 위험은 전염병이나 지진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이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상과 가치관 같이 우리의 생각 속에 침투하는 위험입니다특별히 저는 4절 말씀을 주목해서 보기 원합니다중간부터 보시면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마지막 날들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하나님보다 쾌락들을 더 사랑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겉모양으로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 능력은 없는 믿는 사람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즐거움 앞에 서있습니다영화게임인터넷드라마명품전자제품여가생활과 같은 수만 가지 종류의 쾌락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우리는 하나님과 잠자는 것 중에 무엇을 더 사랑합니까우리는 하나님과 컴퓨터 중에 무엇을 더 사랑합니까우리의 시간은 어느 쪽에 더 쓰여 지고 있습니까?

 

다시 야고보서 5장으로 돌아오시겠습니다야고보서 5장 7절과 8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께서 오실 때까지 인내하라보라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받을 때까지 오랫동안 그것을 위해 인내하느니라.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오늘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돈 앞에서쾌락 앞에서 주님만 바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며 땀 흘리며 수고하듯이우리에게는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땀과 섬김이 필요합니다주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 주님만을 바라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언젠가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으십니까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며 돈도 버리고세상의 즐거움도 버리고 믿음으로 전진하던 때가 있으십니까다시 그러한 믿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주님과 너무나 가깝고 친밀했던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주님 외에 나의 마음에 들어찬 것들이 있다면 다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주님이 오시면 쓸모없는 것들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들영원하지 않은 것들 다 쏟아버리시기 바랍니다주님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주님이 하늘에서 이리 올라오라.” 부르실 때 부끄러운 모습으로 화들짝 놀라서 주님 앞에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조금만 인내하면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함

9절을 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서로 불평하지 말라그리하여야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아니하리라보라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시느니라.

저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돈과 쾌락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이제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드리기 원합니다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5장 말씀은 돈과 쾌락에 대해 경고하시고우리가 인내해야 할 것을 권면하시면서형제들이 서로 불평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형제들이 서로 불평하는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우리는 오직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주님께서 자신에게 침 뱉고수염을 뽑고뺨을 치는 자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것처럼우리같이 더럽고 교만하며 거짓된 자들을 대신하여 기꺼이 죽으신 것처럼우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섬기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우리가 오늘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으로서 이 땅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따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10절과 11절을 보시겠습니다.

10 내 형제들아의 이름으로 말한 대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하다 하나니 너희가 의 인내를 들었고 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께서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니라.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인물들은 우리의 고난과 인내의 모범이 됩니다그 중 오늘 말씀은 욥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욥은 이유를 모르는 갑작스러운 고난을 당했습니다욥은 일곱 아들과 세 딸을 잃었고모든 재산을 잃었으며건강마저 잃었습니다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며 인내하였고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두 배의 복을 주셨습니다욥은 다시 일곱 아들과 세 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성경은 구체적은 욥이 처음 있었던 자녀들을 부활로 돌려받은 것인지새로 그때부터 다시 10명의 자녀를 낳은 것인지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성경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처음 잃어버렸던 자녀들을 부활을 통해 돌려주셨다고 생각됩니다나중에 주님이 오시면 욥을 만나서 직접 한 번 물어보면 제일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보통 욥의 인내라고 할 때 우리는 욥이 당한 고난에 대한 인내를 떠올리게 됩니다그러나 오늘 저는 특별히 욥이 친구들에 대해 어떻게 인내하였는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난당하게 되었을 때 욥을 하나님을 대적한 죄인으로 몰아세우면서 정죄하였습니다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심판을 받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판단하였습니다.

 

11절 말씀을 잘 보시면 먼저 참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씀하고 계시고욥의 인내와 주님의 결말에 대해서 언급하시면서주님이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라고 기록하고 계십니다욥의 인내와 주님의 결말이 과연 어떠한 것이었는지 직접 욥기에서 살펴보시겠습니다욥기 42장입니다욥기 42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자기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께서 의 포로 된 것을 돌이키시고 또 께서 에게 그가 전에 소유했던 것의 두 배를 주시므로” 우리는 이 말씀에서 욥의 인내와 주의 결말이 무엇이었는지 보게 됩니다주님께서 욥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신 시점은 언제입니까바로 욥이 괘씸하고 못된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바로 그 때였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기에 욥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친구들을 향해 인내하며 용서하며 사랑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욥의 인내의 완성은 자기를 향해 함부로 말하고 상처 주었던 친구들을 온전히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까지였습니다욥이 그렇게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놀라운 인내와 믿음의 승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두 배의 복이라는 놀라운 결말을 주셨습니다.

 

다시 야고보서 5장으로 돌아와 보시겠습니다. 11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참는 자들을 우리가 행복하다 하나니 너희가 의 인내를 들었고 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께서는 지극히 동정심이 많으시며 친절한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가 형제들을 향해 인내하고 동정하며 친절한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가운데서로 잘못들을 고백하고 용서하며서로의 약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주님께서는 욥이 자신을 정죄하고 판단하며 상처 주었던 친구들을 위해 기도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정리

마지막으로 8절 말씀을 읽고 정리하겠습니다.

너희도 인내하고 너희 마음을 굳건히 하라주의 오심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느니라.

 

저는 오늘 주님 오실 날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모습이었든지 상관없이 오늘 다시 일어나기 원합니다돈이나 쾌락은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돈이나 쾌락은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우리의 삶의 목적은 오직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이주님을 향한 사랑이 다시 일어나게 되기를 원합니다또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에게 형제들을 향해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 같은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풍성히 부어주시기 원합니다우리가 서로를 용서하며 서로를 위해 뜨겁게 기도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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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1.01.26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로빈29세

http://robinbox.net

 

인생의 의미(고후 5:15-17)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후서 5장입니다고린도후서 5장 15-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5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우리가 아무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니 참으로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분을 더 이상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인생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오늘의 말씀은 제가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을 때 본문으로 삼았던 말씀입니다그 동안 잊고 지내다가 요즘 다시 이 구절을 떠올리게 되면서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6월이 되면 아빠가 됩니다아직 아들인지 딸인지 잘 모르지만아빠가 되면 제 개인적인 좌우명이자 제 아이의 좌우명그리고 우리 가족의 가훈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바로 고린도후서 5장 15절입니다제 아이가 아빠 저는 왜 태어났어요저는 어떻게 살아야 해요?”라고 묻는다면 저는 여지없이 이 말씀을 보여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은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이분은 바로 온 세상의 창조주이시며주인이시며생명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 죽음이 들어온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로마서 5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또한 로마서 6장 23절에서도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처럼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예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다함께 고린도후서 5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경은 죄를 알지 못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시기에 죽음을 당할 아무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이 죄가 되시고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목적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의 대가인 생명을 지불하시면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모두 지불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셔서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또 부활하셨습니다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또 다른 이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다시 한 번 이 귀한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를 주시기 위해 죽으셨습니다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영광과 자신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면서 자신의 온 일생을 죄악으로 가득 채웠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면서 다시 창조의 목적과 인생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우리가 오늘 살아 있는 이유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우리가 스스로 자기를 위하는 인생을 살 때에그것이 당장 행복하고 즐거운 인생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함께 찾지는 않겠지만 잠언 16장 25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옳으나 그것의 끝은 사망의 길들이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 때에는 사망의 길들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하여 살 때에는 생명과 화평과 기쁨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 살아 있는 자들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창세전에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람들만을 위하여 제한되게 죽으신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다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의 대속과 용서와 구원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죄와 지옥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구원받은 모든 사람의 육신을 십자가에 함께 못 박으시고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십자가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내가 하려는 시도와 노력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내어드릴 때에 우리의 삶에는 안식과 평안이 있습니다이러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오늘날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일을 진행하고책임지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의 육신을 십자가에서 함께 못 박으시고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더 이상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활짝 열려있습니다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해 살지는 않습니다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만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하며 감사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위하여 고생하고 근심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그 자격은 무엇일까요바로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이 말씀은 결코 신학교를 졸업한 자들”, “특별히 믿음이 좋은 자들”, “성경을 많이 아는 자들”, “구원 받은 지 10년 이상 된 자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자들과 같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성경은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지금 숨을 쉬고 계십니까같이 한 번 숨을 크게 쉬어 보실까요모두 살아 계시군요그렇다면 오늘의 이 말씀을 함께 읽을 때에,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말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한 번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저 같은 경우는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이렇게 되겠죠그럼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시작.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승선이가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우리는 다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고 이미 죽었어야 하는 목숨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죽으면 사라져버릴 돈과 명예를 이 땅에 더 쌓기 위한 것일까요죽기 전까지 조금 더 좋은 음식을 먹고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한 것일까요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의미는 오직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그 이상 그 이하의 모든 인생의 목표는 다 부질없고 허망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언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까요어떤 사람들은 50살부터라고 말합니다어떤 사람들은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라고 말합니다어떤 사람들은 결혼한 다음부터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오늘의 귀한 본문 말씀에서는 이제부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제부터지금부터 나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나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우리는 5분 뒤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아직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우리가 숨을 쉬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교육할 때 장차 커서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우리는 지금부터오늘부터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10살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11살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자기를 위해 살고 대학교 때부터 주님을 위해 살라고 가르칠 수 없습니다우리는 언제나 지금오늘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그렇다면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복음을 전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고교회 청소를 하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이며외국에 선교사로 나가는 것도 주님을 위한 일입니다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 함께 골로새서 3장을 보시겠습니다먼저 골로새서 3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내들아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 남편이라는 호칭이 남편이 내 편은 안 들어주고 남편만 든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아내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무엇인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이전에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또한 19절을 보시겠습니다. “남편들아너희 아내를 사랑하며 모질게 대하지 말라.” 남편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남의 편만 들지 말고 아내 편도 좀 들어주면서 아내를 사랑하고 부드럽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입니다주님이 우리 교회의 연약함을 담당하셨듯이 남편은 아내의 약함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20절을 보시겠습니다저와 우리 어린이들이 함께 큰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시작. “자녀들아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 아직 어린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주님을 위하여 살고어떻게 주를 매우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성경은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게 될 때에 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 자녀들이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은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21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버지들아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그들이 낙담할까 염려하노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녀들이 모든 일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고 계시지만동시에 부모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위를 잘 사용해야 함을 명령하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녀는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각 자녀들을 향한 특별한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우리는 자녀들을 향한 우리 자신의 모든 뜻과 계획과 욕심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우리 자녀들의 주인은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우리는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어야 합니다.

 

훌륭한 부모는 자녀에게 영원한 영광을 얻도록 훈련하는 부모이지세상의 돈과 명예와 영광을 위하여 훈련하는 부모가 결코 아닙니다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이제부터지금부터오늘부터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도록 가르치며 훈련해야 합니다.

 

이제, 22절부터 24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2 종들아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가 직장에서 일하게 될 때에 우리는 그것이 세상일이라고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눈가림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님께 하듯이 그렇게 일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그렇게 하면 주님께서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왜냐하면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며 하는 모든 일들이 곧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주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하고 특별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모든 일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나의 위치에 따라 주님께 신실한 것입니다또한 주님을 섬기는 삶은 교회 중심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교회를 삶의 중심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모이는 일에 힘쓰는 삶입니다혼자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교회로 함께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것은 더욱 큰 힘이 됩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교회 중심의 삶으로 훈련하여야 합니다교회의 모임에 임하는 준비된 마음가짐과 자세를 교육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나 학원에는 절대 지각하지 않으면서 교회의 모임 시간에는 지각한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보다 학교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결혼식에는 가장 깔끔하고 멋진 옷을 입고 가면서 주일날 교회에는 아무렇게나 입고 온다면 우리의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교회의 모임보다 결혼식이 더 크고 중요한 행사라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우리의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돈입니까아니면 스포츠입니까우리의 삶의 중심이 그리스도시라면우리는 교회 중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중심의 삶이라는 것은 나의 유익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내가 인도한 사람나랑 잘 맞는 사람나랑 가까운 사람나랑 잘 통하는 사람나와 함께 섬기는 사람나와 같은 소속의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세상의 방식입니다우리는 나 중심적인 사랑분파적인 사랑편을 가르는 사랑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형제자매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을 만났을 때 반갑게 맞아주고인사하고관심을 가지고 안부를 묻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형제자매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하고형제자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또 때로는 형제자매를 기다려주며 침묵 가운데 기도해 주는 것도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나와 평소에 대화를 많이 하지 않은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먼저 다가서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이 주님을 위한 삶입니다.

 

다함께 마태복음 25장을 보시겠습니다마태복음 25장 34-4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34 그때에 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오라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너희는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하니

37 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하리라.

40 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하고

성경은 형제자매들을 먹이고 입히고 받아주고 찾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창조물

오늘의 본문인 고린도후서 5장 15절 말씀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를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제부터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17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옛 것들은 지나갔으니보라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성경은 누구든지 구원받은 성도라면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그는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나의 선호도나의 스타일나의 장단점나의 원래 모습모든 것이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 만한 지혜가 있고 능력이 있어서가 결코 아닙니다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지만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는 주님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주님을 섬기는 조건은 오직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가 이제부터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우리가 생활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하여 하던 일들은 무엇입니까이제부터 그만두기를 원합니다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면 다 내려놓고다 버리고다 포기하기 원합니다우리가 이제부터 오직 주님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주님을 위하여 살 수 없지만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힘입어 그렇게 살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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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0.11.2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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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요일 5:14-15)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일서 5장입니다요한일서 5장 14절과 15절을 읽어보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오늘날의 문제점

오늘 우리는 수요기도회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그래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그런데 특별히 오늘 저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는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 자신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들어갔는지 한 번 세어보십시오기도라는 것 자체도 매우 중요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가 정말 중요합니다제가 14절과 15절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라는 말이 몇 번이나 있는지 한 번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14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5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안즉 또한 우리가 그분께 구하여 청원한 것들을 얻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기도하면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우리가 안다...라고 계속해서 우리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는데요그래서 오늘 저는 기도하는 사람인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조금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을 정말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성경을 대단히 많이 아는 사람도 많고성경말씀을 너무나 훌륭하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많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세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어제도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되었는데요우리나라의 큰 교회 목사님들이 모여서 수조원에 이르는 헌금을 자본으로 기독교 은행을 만들자고 결의한 소식을 보았습니다분명히 성경에서는 이자놀음을 하지 말라고 하셨고오히려 빌리고자 하는 자에게는 되돌려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주라는 말씀까지도 하셨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 목사님들이 성도들의 헌금을 가지고말하자면 돈놀이를 해보자고 공개적으로 결의하는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타락하고 세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데요그 이유는 무엇일까요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성경을 모르고 바른 진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그것도 정말 정확한 지적일 수 있고 또 정답일 수 있습니다그렇다면 바른 성경과 바른 진리를 알고가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과연 성경을 많이 알게 된 만큼,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게 된 만큼 정말 참되게정말 겸손하게 주님만을 섬기고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아들에게 주는 유언과도 같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마지막 때의 사람들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오늘날 우리는 거룩하고 영적인 모양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말과 행동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부드럽고 온유하고 거룩한 겉모양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지금 막 구원받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성도라 할지라도중고등부 학생들이나 심지어 초등학생 어린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말의 표현과 모양은 금새 흉내낼 수가 있습니다심지어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도 다 따라할 수가 있습니다성경은 심지어 사탄도 빛의 천사로 자신을 나타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어떠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이 아닌진정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려면 우리에게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주님과 참되게 만나고 교제하는 기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기도 자체를 하느냐 안하느냐몇 분,몇 시간 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참되게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느냐 입니다.

 

 

겸손

저는 오늘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두 가지 좋은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데요먼저 오늘의 본문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14절과 15에서 모두 동일하게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 말을 들으시는 줄 우리가 알고 확신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그대로 응답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우리의 기도는 왜 잘 응답이 되지 않는 것일까요? 14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가 가진 확신이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무엇이든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말을 들으신다는 것이라.” 14절 말씀을 다시 보니 우리가 무엇이든 구하긴 구하는데 누구의 뜻대로 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바로 그분의 뜻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뜻을 주장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정한수를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지극정성으로 나의 뜻과 나의 원함을 끊임없이 고집하는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기도는 나의 뜻과 나의 원함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나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만이 나에게 가장 선하고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나의 눈에 가장 선하고 좋은 것은 오히려 위험하거나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아이들의 눈에는 사탕과 아이스크림이 가장 선하고 좋은 것으로 보이겠지만부모님의 눈에는 해롭게 보여서 금지할 수도 있습니다이처럼 우리의 눈은 정확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뜻이 부당하고 나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가장 선하고 좋은 것임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겸손한 사람입니다언제든지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따라갈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어떤 사람이 기도를 하면서도 여전히 교만하고 자신의 뜻을 내려놓을 줄 모른다면 위선적이고 종교적인 기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우리는 성경에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볼 수 있습니다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감사를 하면서도 여전히 위선적이고 교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반면에 세리는 자신의 온 마음을 쏟아놓고 참되게 기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도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닙니다우리의 기도가 참되고 정말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라면우리는 반드시 겸손해지고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만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겸손하신 한 분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그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다함께 빌립보서 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2장 먼저 3절을 보시겠습니다. “어떤 일도 다툼이나 헛된 영광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라고 말씀합니다여기서 오직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또한 5절부터 8절까지 말씀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읽어보겠습니다제가 먼저 5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우리 주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그러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셨고종의 형체를 취하셨고자기를 낮추셔서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온 우주에서 하나님 자신보다 나은 분이 없지만겸손하신 주님께서는 자신보다 우리를 더 낫게 여기셔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으셨습니다.

이러한 겸손하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러한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마태복음 26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볼 수가 있는데요이렇게 기도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 내 아버지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39). “오 내 아버지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42).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보여주신 기도는 나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우리가 정말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도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게 될 것입니다왜냐하면 나의 뜻은 문제가 많지만하나님의 뜻은 완전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에게 주실 것을 알고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평강

이처럼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우리는 먼저 겸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또한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된다면 바로 이것을 가질 수가 있는데요다함께 빌립보서 4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는 종종 버스를 기다리면서 기도원 셔틀버스를 보게 됩니다기도원에 가려고 버스를 타시는 분도 있고이제 집에 가려고 내리는 분도 계십니다그런데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하나같이 어둡고 수심이 가득했습니다기도하러 가는 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기도를 마치고 와서는 표정이 밝고 평강을 누리는 모습이 느껴져야 할텐데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이 인상에 많이 남았습니다왜 기도를 했는데도 그럴까요?

 

우리가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이 될 때에 가지게 되는 것은 바로 평강입니다이 평강은 앞서 말씀드린 겸손과 연결되기도 합니다내가 원하고 주장하는 나의 뜻이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겸손히 바라고 인정할 때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평강입니다내가 이루고자 하는 뜻이나 목적이 따로 있는 사람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염려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우리가 지금 읽은 빌립보서 4장 6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는 무엇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까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또 우리는 어떤 일들을 기도해야 합니까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요청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빌립보서 4장 7절을 보시면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데요. “그리하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일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요성경은 결코 모두 들어주시리라.”라든지, “웬만큼 상황이 해결되리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오히려 아직도 문제는 거대하고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을지라도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임하여 우리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의 특징은 그래서 바로 평강이라 할 수 있습니다외적으로 보았을 때 기도를 하는 사람이든하지 않는 사람이든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기도를 하든 안하든 날씨가 요즘같이 갑자기 추워질 때는 감기에 들 수가 있구요기도를 하든 안하든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기도를 한다고 해서 만사가 형통하고기도를 안한다고 해서 만사가 꼬이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기도하는 사람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겉모습에 있지 않습니다.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심지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흉내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 모든 상황과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만 누릴 수가 있습니다.나의 모든 계획과 주장과 뜻을 다 내려놓고온전히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며 모든 것을 맡길 때에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사람 다윗

마지막으로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을 한 명만 생각해 보겠습니다기도의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십니까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손을 높이 들고 기도했던 모세를 생각할 수도 있구요또 기도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졌던 다니엘도 생각할 수 있겠구요삼년 반 동안의 기근을 위해서그리고 또 다시 비를 주시도록 기도했던 엘리야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성경에는 많은 기도의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저는 특별히 다윗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다윗이 기도의 사람이라고?”하면서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겠습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에서 딱히 다윗이 기도를 통해 무슨 일을 하였다든지무슨 응답을 받았다든지 하는 특별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다윗이란 이름을 들으면 주로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가 생각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에서 다윗처럼 자세하게 여러 상황들 속에서 그가 어떻게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인도받았는지를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보면 거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다윗도 처음부터 기도하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시골에서 아버지의 양을 돌보던 소년이었는데요가족의 큰 행사가 있어서 형들이 다 참석하는 날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양을 돌보며 일을 했던 막내아들이었습니다그런데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대언자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게 됩니다기름부음을 받은 뒤에도 그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또 다시 아버지의 양을 치는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전쟁에 나간 형들이 잘 있는지 소식을 가져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갔다가,하나님을 조롱하는 골리앗의 외침을 듣게 되고골리앗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얼떨결에 왕의 신하가 되고최고의 장군이 되고온 민족적인 영웅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와 전성기를 맞이한 것 같았던 다윗은 이내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돌볼 때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이고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기도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더 깊은 믿음으로더 진정한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끄시기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다윗은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가장 비극적인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습니다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국왕이었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다윗은 도망다니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인생의 큰 시련 앞에 매우 당황했던 다윗은 먼저 놉이라는 지역의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내가 지금 사울왕의 임무를 비밀리에 또 급하게 진행하느라 먹을 것도 없고 무기도 없는데 좀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그때 다윗은 제사장들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거룩한 빵을 먹게 되구요또한 자신이 쓰러뜨렸던 골리앗의 칼을 받아서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과 당당하게 동행하며 사용했던 돌팔매는 어디로 가고 골리앗의 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다윗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다윗은 계속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이내 이스라엘의 국경을 벗어나 가드 지역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그때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인 다윗을 알아보고는 자신들의 왕에게로 데려가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또 다시 원수의 땅에서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척을 하여서 아기스를 속이고 무사히 쫓겨나게 됩니다.

 

이처럼 다윗이 처음 인생의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매우 당황하고 상황이 닥치는 대로 조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골리앗과 일대일로 붙어서 한 방에 쓰러뜨렸던 믿음의 용사는 어디로 갔는지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척을 하는 굴욕적인 다윗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사무엘상 22장을 보시겠습니다지금 제가 말씀드린 다윗의 이야기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고 또 아기스 왕과 만났던 이야기는 2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일들을 겪었던 다윗은 사무엘상 22장에서 아둘람 굴로 피한 것을 보게 됩니다사무엘상 22장 1절과 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거기서 떠나 아둘람 굴로 피하매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이 그 일을 듣고는 그들이 거기로 내려가 그에게 이르렀더라.

고난 중에 있던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불만이 있던 모든 자가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을 다스리는 대장이 되었더라거기에는 그와 함께한 사백 명가량의 사람이 있더라.

 

자신을 사랑하고 잘 대해주었던 사울 왕이 어느 날 급변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일이 처음 발생하였을 때 너무나 당황했던 다윗은 자신의 지혜와 힘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고 했습니다그러나 이제 아둘람 굴에서 가족들도 만나고자신을 지지하며 따르는 자들도 만나면서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경험한 다윗은 이제 본격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바로 이 시점부터 다윗이 주님께 여쭙고 그 응답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바로 다음 장인 사무엘상 23장 2절에 보시면 우리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인 그러므로 다윗이 께 여쭈어 이르되라는 말씀이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 함께 시편 142편으로 가보시겠습니다시편 142편은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드린 기도라고 보여지는데요시편142편을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제가 1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내 목소리로 께 부르짖으며 내 목소리로 께 간구하였도다.

내가 나의 원통함을 그분 앞에 쏟아 놓으며 나의 고난을 그분 앞에 보였도다.

내 영이 내 속에서 짓눌릴 그때에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내가 다니는 길에 몰래 올무를 놓았나이다.

내가 나의 오른쪽을 바라보고 살펴보았으나 나를 알려 하는 자가 없었나이다내게는 피난처가 없으며 내 혼을 돌보는 자도 없었나이다.

오 내가 주께 부르짖으며 말하기를주는 나의 피난처시요산 자들의 땅에서 나의 몫이니이다하였나이다.

내가 심히 비천하게 되었사오니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를 기울이소서나를 핍박하는 자들이 나보다 강하오니 그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혼을 감옥에서 데리고 나오사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소서주께서 나를 후대하시리니 의로운 자들이 나를 에워싸리이다.

 

또한 시편 57편도 다윗이 아둘람 굴에서 지은 시편이라고 보이는데요시간 관계상 찾아보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신다면 시편 57편도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갔던 다윗은 이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며 순종하고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 있을지라도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이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기도하는 사람이었던 다윗은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살아갔고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행동하지 않았고,또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다니는 사울 왕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이것은 다윗이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거나 힘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참되게 기도하는 사람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정리

오늘 저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기도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기도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을 가진 사람입니다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내려놓았기 때문에상황에 따라 요동하지 않고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평강을 허락하셔서여전히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의 예로 다윗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다윗이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는 고난이 올 때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면서 거짓말도 하고골리앗의 무기도 의지하고또 침을 흘리며 미친 척을 하는 비참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다윗이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는 여전히 고난 중에 있었고사울에게 쫓기는 가운데서도모든 상황과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 속에서 안식하는 사람이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사망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만족하며 기뻐하는 목자의 양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겸손과 안식과 평강을 다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또한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이 아니라 참된 십자가의 권능을 나타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10.09.26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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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신 하나님(히 3:1)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3장입니다히브리서 3장 1한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오늘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늘의 부르심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분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죄와 불법 속에서 허망하게 살다가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썩어지고 불타 없어져버릴 돈과 세상의 자랑과 쾌락을 쫓아 살다가 멸망 가운데 들어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죄인들이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남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기에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우리를 부르셨을까요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기준이나 자격은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선하고 의롭기 때문에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누가복음 5장 32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또한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너희는 내게로 오라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가 더러운 죄인들이었기 때문이고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씻어주시려고또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또한 다함께 고린도전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고린도전서 1장 26절부터 29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6 형제들아너희를 부르신 것을 보라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고귀한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당황하게 하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있는 것들을 쓸모없게 하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시고 참으로 없는 것들을 택하셨나니

29 이것은 어떤 육체도 자신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의롭고지혜롭고강하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지 않았습니다우리가 더럽고어리석고약하고쓸모없고천하고멸시받고가진 것이 없는 그러한 낮고 비참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떠한 수준을 보시고 우리를 차별적으로 부르셨다면 아마 이 자리가 오늘 텅 비어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우리의 모든 죄를 흰 눈과 같이 씻으시며우리를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하여주신 긍휼과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기 원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손가락을 끼시고다함께 디모데후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디모데후서 1장 9절과 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이라이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나

10 이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분명히 드러났으니 그분께서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을 통해 생명과 죽지 아니함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고오직 하나님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이 은혜는 창세전부터 예비 되어진 것으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명히 나타내어졌습니다우리는 특별히 여기서 목적과 은혜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은혜라는 것은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는데그렇다면 목적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부르심의 목적 교제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으로 2가지를 간략하게 나눠보고자 합니다첫 번째는 우리가 방금 전에 보았던 고린도전서 1장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다시 고린도전서 1장으로 돌아오셔서 9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도다.” 하나님께서는 더럽고 비참한 우리들을 부르셔서 하나님 아버지 자신과또 자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과도 같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시고사람의 친구가 되셔서 교제하기를 원하셨습니다사람이 죄를 짓게 되었을 때이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지만이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죄의 문제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해결하시고다시 그 교제를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와 교제하시고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훌륭하고 좋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한번 만나보고 싶고 대화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예를 들어우리가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다 알고 있지만만약 다윗을 직접 만나서직접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어떨까요훨씬 더 생동감 있고재미도 있고감동도 있지 않을까요그렇다면 기드온을 직접 만나서 300명의 용사로 해변의 모레같이 많은 미디안 족속과 싸운 이야기를 직접 듣는다면 어떨까요또는 베드로를 직접 만나서 예수님을 처음 만난 순간이라든지예수님을 따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라든지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에 대하여 듣게 된다면 어떨까요아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교제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과 직접 만나게 된다면 어떨까요우리가 가장 죄를 많이 짓고가장 주님을 대적하고가장 더럽고 추했던그 모든 순간을 다 아시면서도우리를 미워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으시고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셨던 사랑과 긍휼의 예수님을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우리는 얼마나 푸근한 안식과 함께얼마나 뜨거운 감격과 함께주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누리겠습니까우리가 장차 하늘에 가게 될 때 그러한 교제를 영원히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장차 하늘에서처럼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보고 교제할 수 없겠지만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할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다주인의 모든 일을 맡아서 관리하는 아끼는 청지기와 주인의 관계다사랑하는 친구이다스승과 제자의 관계다선한 목자와 양의 관계이다신랑과 신부의 관계이다형제자매 관계다이렇게 수많은 친밀하고 사랑하는 관계들을 예로 들어서 하나님과 우리가 그러한 관계임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마음이 답답할 때 가장 먼저 누구를 찾습니까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때 가장 먼저 누구를 찾습니까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쁘거나 슬프거나어렵고 힘든 무거운 짐을 지거나언제나 함께하고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모든 사람이 우리를 오해하고우리에게 말도 걸지 않고우리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고우리를 알아주지 않을 때우리가 비참하고 연약하고 어려울 때항상 우리와 동행하고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좋으신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늘 주님과 동행하고 교제하기 원합니다.

 

 

부르심의 목적 찬양과 섬김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또 우리가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베드로전서 2장 말씀을 통해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베드로전서 2장 9절과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지나간 때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었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우리가 과거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긍휼을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지만이제는 긍휼을 얻었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 모두는 이제 선정된 세대요왕가의 제사장이요거룩한 민족이요특별한 백성이 되었습니다믿는 사람들 중에 뛰어난 어떤 사람들만 특별한 백성이 아니라믿는 우리 모두가 특별한 백성이 되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우리를 부르시고왕가의 제사장으로서 주님을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첫째로 교제이고둘째로 찬양과 섬김입니다사실 이것은 첫째둘째로 나누기가 애매한 것들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주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당연히 주님을 찬양하고자연스럽게 주님을 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주님과 교제는 하는데 찬양하지 않는 사람주님과 교제는 하는데 주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우리가 정말 주님과 교제를 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을 찬양하게 되고주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있을 때우리는 주님께서 하기 원하시는 일들을 알게 됩니다그리고 우리도 그러한 주님의 일들을 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그래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들을 하게 될 때에 우리는 주님을 섬기게 되고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우리 자신도 너무나 기쁘게 됩니다주님을 섬기는 것은 무엇인가 거창한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형제에게 찬 물 한 잔을 주는 것도 주님이 기뻐하시고 기억하시는 섬김입니다교회 예배당에 떨어진 종이 한 조각을 줍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섬김입니다새로운 지체들에게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작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오늘 하루 힘내시자고 문자 한통 보내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크고 거창한 일들이 아닐지라도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한 가지씩 섬기게 될 때에 우리의 입에서는 늘 찬양이 흘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마무리

이제 히브리서 3장으로 돌아오셔서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의로운 자를 부르러 오지 아니하시고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 오신 긍휼의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를 부르셔서거룩한 형제들로 삼아주셨습니다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한 우리 죄인들을거룩하신 주님의 형제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참여한 부르심은 이 땅의 부르심이 아니라 바로 하늘의 부르심입니다우리의 고향은 이제 이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우리의 시민권생활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우리의 보물우리의 비전우리가 목표우리의 나아갈 길은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습니다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썩어지고 불타버릴 이 땅의 허망한 것들로부터 우리를 부르셔서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하늘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십니다사도란 보냄을 받았다는 뜻인데우리 주님은 하늘의 모든 영광으로부터 이 땅의 말구유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가난하고 비천한 곳으로 보냄을 받아오신 사도이십니다또한 대제사장이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자신의 피로 대속하시고지금도 여전히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에서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우리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우리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시고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셔서 우리를 잘 아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이러한 좋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고또한 찬양과 섬김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이러한 좋으신 주님을 오해하고 잘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는데우리가 그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좋으신 하나님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또한 이제 장차 주님이 우리를 하늘로 부르실 때 우리는 모두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주님을 만나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그 날을 그리며 오늘도 힘을 내어 전진하기 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아멘!

설교 일시 : 2010.08.29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 6:32-33)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6장입니다저는 오늘 함께 마태복음 6장의 전체적인 말씀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우선은 마태복음 6장 32절과 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오늘 저는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 하늘 아버지의 모습을 함께 찾아보고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오늘 말씀의 제목은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1-4구제 은밀히 보시고 보상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전에 어떤 책을 보게 되었는데요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한 자매님이 어떻게 코란과 성경을 비교하며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또 많은 시련과 생명의 위협 속에서 어떻게 믿음의 생활을 하였는지 등의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내가 감히 절대자인 신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는 표현이었습니다온 우주의 창조주이신 절대자 하나님을 우리가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사실인지 모릅니다홍길동은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고 하는데우리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이 거룩하시고 위대하신 절대자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얼마나 놀랍고 복된 사실인지 모릅니다.

 

먼저 마태복음 6장 1절부터 4절까지 한번 보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구제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보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구제할 때에 위선자들이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처럼 네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구제할 때에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구제하는 일이 은밀한 중에 있게 하라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은밀한 중에 우리의 모든 구제와 섬김을 보고 계시며나중에 드러나게 갚으시고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고또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거나 누릴 자격이 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또한 우리는 어떠한 보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고오히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통해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늘 보고 계시며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또 우리의 모든 작은 섬김에도 보상을 주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너무나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예수님 당시에도 형편이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는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크게 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주목시키고 그 뒤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구제를 하였습니다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아마도 박수를 치며 구제를 한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주었을 것입니다오늘날에도 뉴스에서 불우이웃돕기나 자연재해성금모금을 하면 카메라에 더 오래그리고 잘 잡히려고 천천히 걸어 나와서봉투도 천천히 집어넣고사회자와 악수도 하고카메라를 향해서 얼굴도 돌려주는 그런 많은 부자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말씀하시고또 이미 보상을 받은 것이므로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고 계십니다물론 우리가 누군가를 돕고 섬기고자 할 때 무슨 007 첩보 작전을 하듯이 정말 아무도 모르게완전히 비밀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가까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고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1절에 나온 것처럼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의도를 가지고사람들 앞에서 하지 아니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왜냐하면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은밀한 중에 보시고 드러나게 갚아 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받고 싶고인정을 받고 싶고영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너무나 칭찬받는 것을 좋아합니다전에 우리 허재준 어린이가 이런 적이 있습니다오전예배를 마치고 나서였던 것 같은데요재준이가 와서 엄마를 붙잡고 엄마엄마 저 이거 먹을거 있었는데 동생한테 양보했어요.잘했죠?”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러자 최경아 자매님께서 그래 잘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그러자 재준이는 아싸칭찬받았다~!” 이렇게 환호를 하였습니다이렇게 사람은 어릴 적부터 누구나 칭찬받기를 간절히 사모합니다그래서 우리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많은 순간 칭찬을 끊임없이 해주어야 합니다잘한 것이 있을 때그 즉시노력과 과정을 중심으로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아이들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 - 바로 우리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시고인정해주시고칭찬해주시고격려해주시고보상해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배워야 하는데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부모님과 선생님이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과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서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우리의 삶과 성품을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에게도 성장해 가는 가운데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참되게 영원한 칭찬과 인정과 영광으로 갚아주실 분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점차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함을 길러주어야 합니다우리 어른들 또한 우리의 참된 보상이 되시는 분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우리는 이 땅에서의 싸구려 칭찬과 인정과 영광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있어야겠습니다오직 하늘 아버지께서 주실 칭찬과 보상만이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하기 원합니다.

 

 

5-8기도 들으시고필요를 아시며거룩하시고용서하시는 아버지

이제 5절부터 8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또 너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과 같이 되지 말라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들은 자기 보상을 받았느니라.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그리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교도들과 같이 되지 말라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또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들을 아시며우리의 은밀한 기도에 드러나게 갚아주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알 수 있습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꼭 들으시거나응답하셔야 할 아무 이유가 없으십니다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필요를 공급하여 주시는 그 자체가 은혜이며 긍휼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매우 영적인 일이며또 우리 주님께 너무나 합당하고 선하고 귀한 일이지만우리가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의도로나 자신을 높이고 드러내려는 의도로 하게 될 때에그것은 전혀 주님께 합당하지도 않고선하지도 않고귀하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리게 됩니다기도를 하느냐 안하느냐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왜 하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사람들 앞에서 유창하고 뜨겁게 기도를 잘하고 나서 교만해지는 것보다더듬거리고 버벅대면서 기도를 잘 못하고 나서 겸손해 지고, “아 진짜 기도생활을 좀 해야겠구나라고 느끼는 것이 차라리 더 낫습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모든 필요를 다 아십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께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왜냐하면 살아계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되고 의미 없는 말들을 주문처럼 외우거나또한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기도문을 읽는 것처럼 반복해서 되풀이지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유창하고 멋진 말의 기도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진실되고 온 마음이 쏟아지는 그러한 참된 기도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얼마나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정성을 보이는가를 가지고 판단하시거나얼마나 큰 목소리로 기도하는가와 같이 겉모습을 보고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나와서 온 마음을 터놓고 모든 것을 맡기고 내려놓으면서 아버지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9절부터 나오는 주기도문” 역시 이 기도문을 그대로 다 같이 모여서 외우고 반복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골방으로 들어가서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한 예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고 영광을 얻도록하나님의 왕국과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또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과 생활의 부분들을 늘 공급하여 주시도록또 날마다 넘어지고 실패하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도록또 우리를 인도하여 주셔서 악에서 구해 주시도록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예를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리고 우리가 늘 다른 이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셔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먼저 보여주신 것같이우리도 다른 이들을 향해 따듯한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16-18금식 은밀히 보시고 갚아주시는 아버지

이제 16절에서 18절까지는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신데역시 앞에서 살펴본 말씀들과 같이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고 오직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보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전에 어떤 목사님께서 금식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있다고킹제임스성경과 개역성경을 비교해보면 킹제임스성경에 금식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많이 나오고개역성경에는 금식이라는 말이 많이 빠져있는데정작 이 흠정역 성경을 보는 사람들은 금식을 잘 안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 주님을 섬기는 많은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금식이란 내가 섬기고 나를 통제하는 하나님이 나의 배와 음식물이 아니라오직 하늘의 아버지이심을 인정하고또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 금식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가연지 자매와의 결혼을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금식해본 적이 한번 있습니다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응답을 받았는데 자매가 자꾸 아니라고 거절을 해서제가 정말 교만했었고헌신되지 못했고잘못했다고 돌이키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금식해본 적이 있습니다밥을 아예 안 먹은 것은 아니고요신학교 다니는 얼마 기간 동안 점심과 저녁또는 저녁만 부분적으로 금식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어쨌든 주님께서 저를 긍휼히 여기시고사랑스럽게 보셔서기도에 응답하여 주시고이렇게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정말 선하십니다아멘.

 

 

19-21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이제 19절부터 21절까지 보시겠습니다.

19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거기서는 좀이 먹고 녹이 슬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고 훔치느니라.

20 오직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거기서는 좀이 먹지도 녹이 슬지도 않으며 거기서는 도둑이 뚫지도 훔치지도 못하느니라.

21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그리스도인의 집에 도둑이 들 수가 있을까요없을까요좀이 먹고 녹이 스는 것처럼 당연히 도둑도 들 수가 있습니다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오직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절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아버지께서 은밀한 중에 우리를 보고 계시며 우리에게 보상할 것을 말씀하신 뒤에이렇게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보물이 하늘에 있는가 없는가는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가 없느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기를 원합니다.

 

 

22-24한 주인만 섬길 수 있다 단일한 눈

이제 22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2 몸의 등불은 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단일하면 네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되

23 네 눈이 악하면 네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리라그런즉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둡게 되면 그 어둠이 얼마나 크겠느냐!

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이 주인을 미워하고 저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이 주인을 떠받들고 저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의 하나님은 하늘의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우리의 눈이 단일하게 하늘의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섬길 때에 우리의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여밝고 따듯하고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그러나 우리의 눈이 악하면 우리의 온 몸이 어둠으로 가득하여어둡고 차갑고 불행할 것입니다우리의 눈이 하나님 조금 맘몬 조금 바라보게 될 때에우리의 사랑이 하나님 조금 맘몬 조금우리의 섬김이 하나님 조금 맘몬 조금 이렇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어둠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기면 힘들다고 말씀한 것이 아니고그럴 수가 없다고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사람들로부터도 조금 영광을 받고하늘의 아버지로부터도 조금 보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들 속에서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그때마다 우리가 우리의 주인이 아닌 맘몬을 과감하게 거절하고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며 참된 주인이신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25-30염려 우리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

이제, 25절부터 2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너희 생명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너희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날짐승들을 보라그것들은 씨 뿌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시나니 너희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씨 뿌리지도 아니하고거두지도 아니하며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는 공중의 날짐승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먹이시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러한 날짐승들보다 우리를 훨씬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우리는 늘 많은 일에 염려하고 특히 먹고 살 문제로 염려하지만 우리의 염려는 아무런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이 세상에 아무도 염려함으로 키를 크게 할 수가 없습니다저도 연지 자매가 높은 구두를 신고 옆에 서게 되면 저보다 커지는데사실은 맨발로 서게 되면 제가 조금 더 크지만아무튼 키가 좀 더 컸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그러나 제가 소망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저는 키를 5cm도 키울 수가 없습니다한 5cm만 더 컸으면 좋겠는데할 수가 없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뭘 먹고 살까 걱정하고 염려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해결되지가 없습니다그러므로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책임지실테니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말씀은 미래에 대해서 아예 계획하지 말라거나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메뉴를 고르지도 말라거나또는 씨 뿌리거나 거두는 일도 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부여해 주신 일을 신실하게 충성을 다해 수행하고나에게 주신 음식을 감사함으로 골고루 먹고또 생활하는 가운데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우리를 돌보시는 하늘의 아버지를 신뢰하면서 늘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이제 28절부터 30절까지 보시겠습니다.

28 또 너희가 어찌 옷을 위해 염려하느냐들의 백합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깊이 생각해 보라그것들은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자기의 모든 영광 중에 있던 솔로몬도 이것들 중 하나와 같이 차려입지 못하였느니라.

30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든오 너희 믿음이 적은 자들아,하물며 너희는 더 잘 입히지 아니하시겠느냐?

 

아멘오늘 이 자리에도 벌거벗은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하늘의 아버지께서 우리를 잘 입혀주셨기 때문입니다아담과 이브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셨던 하나님께서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입히신 하나님께서오늘 우리도 너무나 잘 입혀주고 계십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늘 우리를 돌보시고 계십니다.

 

 

31-34가장 좋은 것과 더해지는 것

이제 31절부터 34절까지 저와 여러분이 번갈아서 읽어보겠습니다제가 먼저 31절을 읽겠습니다.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우리가 무엇을 먹을까우리가 무엇을 마실까우리가 무엇을 입을까하지 말라.

32 (이 모든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나니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3 오직 너희는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내일이 자기 것들을 염려할 것이요그 날의 악은 그 날에 족하니라.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십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셨습니다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그 자체가 하늘 아버지의 긍휼이요사랑이며돌보심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그러한 구제와 섬김의 일들을 다 아십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히 보시는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모두 아십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금식하며 신음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모두 아십니다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외면하고오해할지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시편 103편 13절과 14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주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여러분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며우리의 모든 은밀한 구제와 섬김과 기도와 금식을 다 아신다는 것을 믿으십니까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며우리의 모든 감추어진 섬김을 하나도 빠짐없이 드러나게 보상하시고 갚아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정말 이러한 하늘 아버지를 믿고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리고 여기 33절에 말씀하신 것처럼오직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오직 첫째로 구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10절에서도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하늘의 아버지께서 정말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왕국입니다우리가 왜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의를 구해야 합니까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내 집 장만을 위해 노력하지만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집에는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많은 저택들이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금은보화를 위해 노력하지만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왕국에는 길 자체가 금으로 되어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문제를 고민하지만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왕국에는 달마다 새로운 과일이 열리고어린양의 보좌에서 생명수가 흐르고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웰빙이다유기농이다 고민하고 노력하지만우리 하늘 아버지가 계신 곳에는 슬픔도 아픔도 질병도 늙음도 없을 것입니다이제 아버지의 왕국에 임하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날이 속히 임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생도 잠시이고이 땅에서의 영광도 잠시입니다이 땅에서의 재산은 좀이 먹고녹이 슬며 도둑도 들 수 있지만하늘의 보물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우리의 인생이 끝마쳐지는 날 우리는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그 때에 우리 인생의 짧은 순간들이 꿈처럼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고민하고염려하고걱정하고,속상하고잠도 설치고 했던 이 땅의 모든 문제들어려움들이 한 순간에 다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그 때 우리는 아마도 내가 왜 그렇게 살았을까 하고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다시 살 수 있다면 이렇게 살텐데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을텐데... 오늘 우리가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정말 주고자 하시는 것우리가 첫째로 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또 우리 자신이 정말 얻고자 하는 것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이 땅에서 썩어지고 없어져버릴 잠깐의 것입니까아니면 하늘의 영원한 것입니까?

우리가 오직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의 그분의 의를 구하기 원합니다아버지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복주시기를 원합니다.

설교 일시 : 2010.08.04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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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이신 예수님(계 5:9-14)

 

안녕하세요제가 돌발질문을 한 번 해보겠습니다혹시 예수님을 떠올리면 어떤 동물이 생각나십니까어떤 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로서 왕이신 예수님을 생각하실 수도 있고또 어떤 분은 소처럼 일하시는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고또 어떤 분은 독수리처럼 하늘에 속한 권능의 하나님을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저 개인적으로는 어린양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요그래서 오늘 저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계시록 5장입니다오늘 저는 특별히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여 전진하고 있는 어린양의 발걸음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해서 나누기 원하는데요특별히 대표적인 구절로 요한계시록 5장 말씀을 먼저 읽어보려고 합니다요한계시록 5장 9절부터 14절까지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시며

10 또 우리 하나님을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셨으니 우리가 땅에서 통치하리이다하더라.

11 또 내가 보고 왕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으니 그들의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더라.

12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하더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바다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르되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하니

14 네 짐승이 이르되아멘하고 스물 네 장로가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그분께 경배하더라.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영원히 경배받기에 합당하신 나의 어린양우리 각자의 어린양이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고영원히 멸망받기에 합당한 우리를 완전히 용서해 주신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오늘 불결한 입술을 가진 부정하고 자격이 없는 자가 주님의 말씀을 들고 섰습니다오직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께서 이 시간을 주관하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성경의 주인공 예수님

여러분성경 속의 주인공을 딱 한 명 뽑아본다면 누구를 뽑게 될까요성경에 뛰어난 여러 믿음의 영웅들이 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예수님께서도 친히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우리가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면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이때에 예수님께서 가리키신 성경 기록들이란 신약을 말할까요구약을 말할까요너무 쉽고 당연한 질문을 계속 드리는 것 같은데요바로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신약성경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구약성경을 가리키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이란 글자도 없는데요?” 비록 구약성경에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너무나 분명하게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옛날 만화 주인공이 등장할 때처음부터 주인공의 모든 모습이 등장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꼭 위기의 상황에서 주인공이 등장할 때 먼저 흘러나오는 배경음악이 있습니다그리고 주인공의 등장을 암시하는 다양한 힌트가 등장합니다말이 힘차게 달려와서 멈추는 소리라든지멀리서부터 날아오는 표창이나 화살이라든지또는 뚜벅뚜벅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아니면 주인공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이 주인공을 보면서 반가워하거나 겁에 질리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기도 합니다그리고 나서 주인공의 모습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의 모습들을 미리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어린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모습들을 함께 발견해 보기 원합니다오늘 우리가 구약과 신약을 통과해 가면서 어린양의 행진과 같은 힘찬 발걸음과 흐름을 발견하게 될 때우리가 정말 성경이 살아있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책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또한 우리를 위하여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님을 향해 더욱 뜨겁고 깊은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가죽옷

그러면 가장 먼저 어린양이 등장하는 에덴동산으로 가보겠습니다창세기 3장입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고사람과 교제를 주고받기 위하여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그리고 아담과 이브에게 그들이 먹고 마시고 누릴 수 있는 모든 풍성한 것을 값없이 제공하여 주셨습니다또한 아담과 이브에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이지만은혜로 주어진 것임을 보여주고또한 하나님의 권위를 보여주는 선악과를 동산의 중앙에 두셨습니다그러나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따먹고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죄를 이 세상에 가져오게 되었습니다그 결과 아담과 이브는 영적으로 죽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또한 아담과 이브의 영뿐만 아니라사실은 육체적으로도 죽임을 당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아담과 이브의 생명을 구출하여 살려내시고 다만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 같이 창세기 3장 21절을 보시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또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이라는 단어를 잘 주목하시면서 제가 읽어드리는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첫째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그 사망이 최초로 임하였던 대상은 누구일까요바로 아담도 이브도 아닌 어린양이었습니다.아담과 이브에게 입혀졌던 어린양의 가죽은 바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피 흘려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아담과 이브가 입었던 어린양의 가죽옷은 바로 죄악된 우리를 덮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전에 발생된 문자라고 알려져 있는 한자도 이러한 진리를 잘 담고 있습니다여러분 의로울 의()”자 아십니까한자 의로울 의자를 보시면 양을 의미하는 양양()”자 아래에 나 자신을 의미하는 나아()”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양 아래 내가 있는 것이 바로 의이다.” 또한 나아자를 잘 보시면손을 의미하는 손수()”자에 전쟁할 때 사용하는 찌르는 창을 의미하는 창과()”자가 들어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의로울 의라는 한자를 보면 손에 창을 잡고 어린양을 찌른 내가 바로 어린양 아래에 위치해 있는 그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지금이 비록 한자 시간은 아니지만이렇게 창세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한자의 한 글자를 통하여서도 우리는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누가 의인입니까어린양의 피 아래 있는 사람이 바로 의인입니다.

 

 

아벨의 헌물

이제 우리는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헌물을 보게 됩니다아벨은 양을 치는 자로서양 떼의 첫 새끼들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렸고가인은 땅의 열매 중에서 헌물을 드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상징하는 어린양의 피는 받으셨지만종교를 상징하는 땀과 노력의 곡식과 열매는 받지 않으셨습니다구원이 사람의 노력에 달려있지 않고오직 어린양의 피에 달려있다는 진리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어떤 분들은 아벨은 정성이 지극했고 가인은 부족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는 인정하시고 받으시지만,사람의 종교적 행위는 인정하지 않으시고 받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이 모든 말씀들은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삭을 대신한 어린양

이제 창세기 2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번제 헌물로 드리기 위해 갈보리 산에 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갈보리 산은 모리아 땅의 산들 중 하나인데바로 여기서 이삭이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우리는 신약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님을 화해 헌물로 드리시기 위하여 갈보리 산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함께 창세기 22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삭이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내 아버지여하니 그가 이르되내 아들아내가 여기 있노라하매 이삭이 이르되불과 나무를 보시거니와 번제 헌물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하니 아브라함이 이르되내 아들아번제 헌물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예비하시리라하고 이처럼 그 두 사람이 함께 가서

여기서 아브라함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어린양을 예비하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다 함께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보라뿔이 덤불에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자기 뒤에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 헌물로 드렸더라.아브라함이 그곳의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이 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의 산에서 그것을 보리라하더라.” “여호와이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예비하신다는 의미입니다바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삭을 대신하여 양을 헌물로 예비하신 것처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할 화해 헌물이 되실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죽옷으로부터 시작된 어린양의 발걸음이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 주 예수님의 모습이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이제 함께 출애굽기 12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우리는 출애굽기 12장에서 유월절 어린양을 발견하게 됩니다익히 아시는 것처럼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있었던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입니다바로 모든 생명의 첫 태생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의 한 밤이 있었던 것입니다이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얻는 길은 오직 어린양의 피를 자신의 집 문과 양 옆 기둥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오직 어린양의 피를 뿌린 자만이 살 수가 있었고심판을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다함께 출애굽기 12장 21절부터 23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1 그때에 모세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에 따라 어린양을 취하여 그 유월절 어린양을 죽이고

22 우슬초 한 묶음을 가져다가 대야에 담은 피에 그것을 적셔서 대야에 있는 피를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에 뿌리고 아침까지 너희 중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지니라.

23 께서 두루 지나가시며 이집트 사람들을 치실 때에 문의 인방과 양 옆 기둥의 피를 보시면 께서 그 문을 넘어 가시고 파멸시키는 자가 너희 집에 들어가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시리라.

 

바로 이 유월절 어린양은 우리 주 예수님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그림이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한 어린양의 피는 바로 우리를 지옥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또한 유월절 어린양은 결코 뼈가 꺾이지 않는데 이것 역시 예수님의 죽으심을 미리 보여주는 한 그림이 됩니다그러므로 고린도전서 5장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누룩 없는 자들인즉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우리의 유월절 어린양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물이 되셨느니라.

 

우리가 처음 살펴본 어린양은 의를 상징하는 가죽옷으로 우리를 덮으시는 그림을 보여주었고아벨의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노력이 아닌 어린양의 피를 받으신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그리고 이삭을 대신하여 죽임당한 어린양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보여주었고유월절 어린양은 피를 통하여 심판을 면하게 해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마치 퍼즐의 조각들처럼 각각의 어린양의 모습들이 나타나면서 예수님의 모습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잠잠한 어린양

이제 이사야 53장으로 가보시겠습니다이사야 53장에 나타난 어린양의 모습을 3가지로 표현해 보자면못난 어린양,억울한 어린양그리고 잠잠한 어린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먼서 이사야 53장 2절과 3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고통을 잘 아는 자라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여기서 못난 어린양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실제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양의 모습을 볼 때 얼마나 어리석고 볼품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반드시 멸종되었어야 하는 생물 중 하나가 양일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나타내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양을 창조하셨습니다.

전에 양을 치는 농장에 살았던 한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요어릴 적에 양을 장난으로 뒤집어 놓고 밥을 먹으러 갔다고 합니다그런데 그 양은 발라당 누워서 발만 움직일 뿐 몸을 옆으로 틀어서 일어나질 못했다고 합니다나중에 밥을 다 먹고 왔는데도계속 누워서 발만 움직이고 있었다고 합니다또 양고기는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다른 멋있고 뛰어난 동물들을 다 제쳐두고 어린양의 모습을 취하신 것은 겸손하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기서 억울한 어린양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고통과 담당하신 슬픔은 바로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 맞으신 매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은 바로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이 받으신 징벌과 예수님이 맞으신 채찍도 우리의 것이었습니다우리는 여기에서 억울한 어린양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우리 주 예수님께서 받으신 고난과 슬픔에는 정당한 것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모든 것이 부당하고 모욕적이며 옳지 않은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오직 영광과 존귀 가운데 계셔야 하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친히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어린양이 되셔서 이 땅에 내려오시고,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슬픔과 수치와 모욕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잠잠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가 학대를 당하고 고난을 당하였어도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끌려가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는도다.” 저는 조금만 불합리한 상황이 오면 바로 입이 열어지고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들을 쏟아내게 됩니다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모든 억울하고 부당한 상황 속에서도 도살장으로 향하는 어린양같이 잠잠하셨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고도살장의 어린양같이 도살하려고 하는 자들조차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대항하거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잠잠히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더럽고 비천한 우리를 사랑하신 놀랍고 신기한 주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날마다매순간 가득 넘쳐나길 원하고우리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어린양을 보라

이제 신약으로 와보겠습니다다함께 요한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 1장 29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음 날 요한이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르되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이 분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피로 우리를 덮으셔서하나님의 심판을 넘어가게 하시고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하신성경 속의 주인공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베드로전서 1장 18절과 19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전통으로 물려받은 너희의 헛된 행실에서 너희가 구속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썩을 것들로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오직 흠도 없고 점도 없으신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보배로운 피를 흘리셔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바로 이 어린양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며소망이며사랑이 되십니다우리가 늘 예수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침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외쳤습니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는아무런 담대함도 없고소망도 없지만예수님을 볼 때 사랑을 얻고은혜를 얻고긍휼을 얻고,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답답한 상황 가운데 있을지라도 우리가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에 우리의 모든 문제는 감사와 평안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오늘 이 시간 우리가 세상의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면눈을 돌이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기 원합니다.

 

 

계시록의 어린양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요한계시록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이름이 무엇일까요바로 어린양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만 어린양이 아니시고하늘에서도 여전히 어린양이심을 볼 수가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처음 읽은 요한계시록 5장 13절에서도 왕좌에 앉으신 어린양께 장엄한 찬양이 드려지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 19장 7절에서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신부인 교회의 혼인 잔치가 보여지고 있습니다이 혼인 잔치의 이름은 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입니다.

또한 계시록 21장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계시록 21장 22절과 2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2 또 내가 그 안에서 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전능자와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전이시기 때문이라.

23 그 도시는 해와 달이 안에서 빛을 비출 필요가 없었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시를 밝혀 주고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광체이시기 때문이더라.

새 예루살렘에서 우리의 성전은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또 새 예루살렘에는 해도 달도 없지만 너무나 영광스럽게 빛이 나게 될 것인데그 빛은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한 계시록 22장 1절에서는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가 하나님어린양의 왕좌로부터 흘러나오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정결한 강을 내게 보여 주니라.

 

우리가 영원히 찬송할 제목이 있다면 바로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부활의 공로일 것입니다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우리의 몸은 다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더 이상 질병이나 고통이나 늙음이 없는 하늘에 속한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몸을 우리가 다 입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 때에 영원히 상한 몸을 가지고 계신 한 분이 계실 것입니다그분의 손과 발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을 것이고그분의 옆구리에는 여전히 창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고통과 수치의 자국을 여전히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왜냐하면 바로 그러한 표시들이 어린양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영원히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짧게나마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펼쳐져 있는 어린양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았습니다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찬양과 존귀와 영광과 헌신과 생명과 우리의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더럽고 죄 많은 우리를 부르셔서 자신의 피로 씻으시고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들을 섬길 수 있는 놀라운 긍휼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장차 고생과 수고로 가득한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갈 것입니다우리가 하늘을 소망하는 이유는 단순히 천국에 황금길이 있고더 이상 고통이 없고 안식이 있어서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어린양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영원히 사모하며 사랑하며 찬양할 유일한 대상이 되십니다우리의 어린양이 되신 주 예수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한 걸음씩 어린양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가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복주시기를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사람과 교제하시려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사람의 배신과 죄악을 친히 자신의 몸을 담당하셔서 사랑의 교제를 회복하시고비참하고 가련한 죄 가운데 뒹굴던 우리를 먼저 찾아주셔서 구원하여 주신 한이 없고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합니다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주신 어린양의 발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우리를 위해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을 잠잠히 담당하시고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의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다이기적이고 사악한 우리들일지라도 이러한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주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시고 인도하시기를 원합니다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나 다른 환경이나 상황을 보지 않고오직 우리의 어린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장차 우리를 하늘로 불러주실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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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시 : 2010.05.23 / 설교 장소 의정부 임마누엘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http://robinbox.net

 

참 용기(눅 12:6-7)

 

안녕하세요저는 갈보리침례교회에서 온 이승선 형제라고 합니다현재 서울침례신학교에 공부하면서특별히 이번에 학생들이 각 지역교회를 방문해서 설교하는 일정을 가지게 되어서 저는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이곳에 설 수 있도록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신학생이니까 설교 어떻게 잘하나 보자.” 이렇게 듣지 마시고오직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은혜와 진리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12장입니다누가복음 12장 6절과 7절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참새 다섯 마리가 이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히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오늘 저는 참 용기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들어가는 말

여러분 점심식사도 하시고 이렇게 오후예배에 앉으시면 정말 피곤하시죠잠시 다 같이 기지개를 좀 피시고목도 좀 돌리시고어깨도 돌려주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기 원합니다잠이 좀 깨셨습니까?

 

 

문맥 이해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서 먼저 잠시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2장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우리가 함께 읽은 7절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4절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또 11절 뒷부분을 보시면 염려하지 말라.”, 22절에서도 염려하지 말라.”, 29절에서는 마음에 의심하지도 말라.” 또한 32절에서는 적은 양 무리여두려워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기서 제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닥친 두려움은 가장 먼저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들이었던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그리고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한 장 앞으로 가셔서 누가복음 11장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을 맹렬히 책망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11장 44절에 보시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위선자들아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그리고 46절 보시면 율법사들아너희에게도 화가 있을지어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온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지도자요스승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율법사들을 향해 폭탄발언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예수님과 함께 있던 제자들은 아멘옳소!”라고 함께 외치기보다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지금 예수님이 왜 자꾸 이러시지이 사람들 건드려서 좋을게 하나도 없는데...”라고 초조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53절과 54절을 보시면 당시에 분위기를 잘 볼 수 있습니다. “53 그분께서 이것들을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분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하여 그분이 많은 것을 말씀하시게 하고 54 또 그분을 기다리며 그분을 고소하려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어떤 것을 붙잡으려 하더라.

 

이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어떤 말실수가 나오기만 하면 고소하려고 주의 깊게 들으면서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제자들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끝내고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1,2,3절에서 계속해서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대해 말씀하시고이제4절과 5절의 말씀을 주십니다한번 저와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시작)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이르노니몸을 죽이고 그 뒤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너희가 두려워할 분을 내가 미리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곧 죽인 뒤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능이 있으신 그분을 두려워하라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그분을 두려워하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몸을 죽이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지옥에 던져 넣는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앞으로 이어지는 말씀들은 이렇게 가장 강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시는데 무엇이 두렵겠느냐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참새도 돌보시는 창조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로 두려움이 임합니다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시선의 두려움또 먹고살 걱정으로 인한 경제적인 두려움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또 건강이 좋지 못하여 생기는 두려움 등 수많은 종류의 염려와 두려움이 우리에게 닥쳐옵니다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6절과 7절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이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히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아버지께서 너희 머리털까지도 다 세셨나니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중하니라.

 

혹시 이중에 참새고기 드셔보신 분이 계십니까저는 아직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요저희 아버지께 여쭤봤더니 드셔보셨다고 합니다치킨보다 훨씬 맛있다고 합니다지금 여기 보면 참새 다섯 마리가 2앗사리온에 팔린다고 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참새를 사고팔았는데애완용으로 기르려고 사고판 것이 아니라식용으로 먹기 위해 사고팔았겠죠.

 

일꾼 한 사람이 포도원에 나가서 일당을 받으면 1데나리온을 받습니다그리고 1데나리온을 잔돈으로 바꾸면 16앗사리온입니다이제 이 중에 2앗사리온을 주고 참새 다섯 마리를 사는 것입니다.

성경이 정말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사복음서를 비교해서 볼 때 정말 재미있습니다다함께 누가복음 말씀을 손가락으로 끼시고마태복음 10장을 보시겠습니다지금부터 참새의 가격비교를 해보겠습니다마태복음 10장 29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일 앗사리온에 팔리지 아니하느냐?” 여기서는 참새가 두 마리에 1앗사리온입니다.누가복음에서는 얼마였죠참새 다섯 마리가 2앗사리온입니다참새가 2마리 묶어서 한 세트입니다참새 2마리 묶어서 1앗사리온그러면 4마리 묶으면 2앗사리온이 되겠죠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5마리에 2앗사리온입니다원래는4마리에 2앗사리온인데그럼 한 마리는 뭘까요?

 

저희 신학교 앞에서 겨울철이 되면 붕어빵을 파는데요, 3개에 천원입니다그런데 2천원어치를 사면 원래 6개인데 7개를 줍니다그리고 또 신학교에서 밤에 공부하기 때문에 제과점에서 빵을 사는데 15,000원어치를 사면 빵을 두어개 더 넣어줍니다왜 그럴까요바로 덤으로 줍니다보너스지요.

 

그런데 이 참새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모릅니다제가 참새의 하소연을 상상해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나는 독수리처럼 강하지도 못합니다공작처럼 화려한 날개도 없습니다타조처럼 크거나 잘 달리지도 못하구요.닭처럼 큰 소리로 외치지도 못합니다앵무새처럼 사람의 말을 따라하는 재주도 없습니다부엉이처럼 밤에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나는 참새입니다색은 볼품없는 똥색이고작고 힘도 없습니다그런데 더 서러운 것은 사람들이 나를 팔 때 제 가격도 치지 않고 보너스로 그냥 준다는 것입니다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일까요?”

 

때로는 우리의 인생이 누가복음 본문에 나온 다섯 번째 참새와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은 서러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다른 사람들은 독수리같이 강하고공작처럼 화려하고타조처럼 잘 달리고앵무새처럼 재주가 좋고부엉이처럼 밤에도 잘보고하다못해 닭처럼 큰 소리를 내기까지 하는데 나는 뭔가같은 참새들 중에서도 나만 가격을 안쳐주고 덤으로 넘기는 것 같은 외로움과 서러움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들 중의 하나도 잊히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덤으로 팔려나가는 작은 참새 한 마리라 할지라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새들을 다 창조하셨고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독수리공작타조앵무새부엉이치킨참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다 만드셨습니다하나님께서 참새를 돌보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참새가 뭘 잘하고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돌보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습니까모든 창조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가장 특별한 작품입니다사람들이 다 나를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절대 잊지 않으십니다우리가 무엇을 잘하고 뛰어나서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돌보시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내가 잘하면 돌보시고 못하면 버리지 않으십니다하나님의 돌보심은 나의 어떠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신의 신실하심에 달려있습니다여러분 오 신실하신 주” 찬송 좋아하십니까내가 잘해서 돌보시는게 아닙니다우리가 참새보다 더 귀한 창조물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용서의 피 값을 주신 참 친구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참새도 돌보시고 또 우리도 돌보십니다우리가 무엇을 잘한 것에 근거해서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을 근거해서 우리를 귀하게 여기십니다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조물 이상의 관계로서 우리를 귀하게 보십니다누가복음 12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뭐라고 부르고 계십니까, “친구라 부르고 계십니다하나님께서는 참새도 돌보시는 창조주로서만 우리를 돌보시는 것이 아닙니다창조주 이상의 가까운 친구로서 우리를 돌보시고 인도하십니다지금 우리에게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는 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정체가 무엇입니까바로 온 우주 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하나님께서 사람의 친구가 되시고자 친히 사람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지금 이 교회의 이름이 임마누엘침례교회 아닙니까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입니까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구약시대에 항상 불평하고 반역하던 그 이스라엘 백성들 한 가운데 거하시려고 성막을 지으라고 하신 하나님께서,이제는 더럽고 천한 우리 같은 죄인들과 함께 거하시고 친구가 되시려고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할 때는 하나님이 매우 두렵고 멀 수가 있습니다그분은 전능자이시고나는 작은 창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자 친히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우리는 태어날 때내가 태어날 국가나 집안장소 등을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가 있었습니다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는 어디였을까요바로 더럽고 냄새나는 마굿간이었습니다소들와 나귀들이 침을 질질 흘리며 여물을 먹는 그 냄새나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더럽고 못사는 동네인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사람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겠느냐고 말할 정도로 볼품없는 동네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까지 예수님의 직업은 목수 보조였습니다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나무를 자르고,대패질을 하고망치와 못을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문짝 고치세요식탁 고치세요!” 외치는 일명 3D 업종 근로자였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니가 50세도 못되었으면서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라고 물을 정도로 30세 초반이었던 예수님의 겉모습은 거칠고 볼품이 없었습니다이사야 대언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가 그분 앞에서 연한 초목같이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같이 자랄 터이니 그에게는 모양도 없고 우아함도 없으며 우리가 그를 볼 때에 그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없도다. 3 그는 사람들에게서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고통을 잘 아는 자라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2,3).

 

예수님은 나약하고 비천한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자 친히 사람이 되셔서배고픔과 피곤함과 연약함의 모든 감정을 몸소 체험하셨습니다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 15절 말씀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눅 7:34)라고 비난하였습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려고 오셨는데바로 그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면죄 많고 더러운 구제불능의 죄인들이었던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의롭고 선했기 때문에감히 하나님과 친구가 될 만했기 때문에친구가 되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더럽고 냄새나는 사람에게는 친구는 커녕 가까이 가려고 하지도 없습니다성격이 못되고 자주 거짓말하는 사람과는 친구는 커녕 가깝게 지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어떻습니까더럽고 냄새나는 우리들에게매일 거짓말하고 죄를 물처럼 마시는 우리들에게 먼저 친구가 되고자 다가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다함께 요한복음 15장을 한번 보시겠습니다요한복음15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이 자기 친구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온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친구가 되시고자사람이 되어 오셔서 보여주신 큰 사랑이 무엇입니까바로 십자가의 죽으심입니다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어떤 우정보다 놀라운 우정을 보여주셨습니다더럽고 냄새나고 죄가 많은 우리들에게 먼저 다가오셨구요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십자가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의 모든 피를 남김없이 흘리시고우리의 죄 값이 완전히 지불하셨습니다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좋으신 친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 때문인 것입니다주님께 감사합니다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기쁨으로 왕국을 주시는 아버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누가복음 12장의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주로서 참새도 돌보시고,우리도 돌보신다는 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우리가 잘나고 의로워서 돌보시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의 신실하심으로 우리를 돌보신다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그리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죄인인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시고또 구원하여 주신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부분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늘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다시 누가복음 12장으로 한번 돌아와 보겠습니다누가복음 12장 30절부터 32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민족들이 구하나니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1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양 무리여두려워하지 말라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사람의 몸을 죽인 뒤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능을 가지신 두려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심이 되고 감사한 사실인지 모릅니다우리는 다 죄와 허물로 죽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지만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와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고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감히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십니까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줄을 아시는 분이십니다또한 우리의 필요를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를 가장 잘 아십니다때로는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착각하기도 하고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혹시 이중에 자기 머리카락이 모두 몇 개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없으시죠하나님은 다 세어놓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우리 자신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잘 아십니다우리를 잘 아시는 아버지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실까요다함께 시편 103편으로 가보시겠습니다시편 103편 8절부터 15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께서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니

그분은 항상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자신의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그분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그분의 긍휼이 크시도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그분께서 우리의 범죄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기 자식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같이 께서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

15 사람으로 말하건대 그의 날들은 풀과 같으며 그가 번영하는 것은 들의 꽃과 같도다.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머리카락 개수까지도 다 아시는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히 여기십니다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이 독수리처럼 강하다고 생각하고공작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하며앵무새처럼 재주가 많다고 생각하며자신만만하게 살아가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의 구조를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십니다그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만약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들에 따라 우리를 다루시고 불법들을 따라 우리에게 갚으셨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하늘만큼 땅만큼 높고 큰 아버지의 긍휼이 우리에게 매일 매순간 풍성하였기에 오늘 우리가 맛있는 점심도 먹고편안한 잠도 자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해변의 들판이나 언덕에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가도남쪽에서부터 열풍이 불어오면 하룻밤 사이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꽃이 다 시들어버린다고 합니다사람이 이 세상에서 잘나가고 번영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열풍이 한 번 불어보면 한순간에 다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잘 아시며 불쌍히 여기시고또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열풍이 불어버리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그런 잠시 잠깐의 것이 아니라영원한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다시 오늘의 본문인 누가복음 12장을 보시겠습니다누가복음 12장 30절부터 32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민족들이 구하나니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31 오히려 너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라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양 무리여두려워하지 말라너희 아버지께서 그 왕국을 너희에게 주시는 것을 참으로 기뻐하시느니라.

 

우리 자녀들이 장난감과 초코렛과 사탕을 달라고 구할 때 부모님은 아이들이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사주기도 합니다그러나 아이들이 계속 그런 것만 구하면 부모님은 마음이 기쁘지 않습니다그러나 아이들이 공부하게 책을 사주세요.” 한다면 부모님은 아주 기쁘게 그것을 사줄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책과 함께 장난감이나 맛있는 것을 같이 사줄 것입니다오늘 여기 있는 자녀들이 지혜롭게 잘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도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고건강이 필요하고좋은 직장이 필요한 줄을 아십니다그러나 우리가 맨날 그것만 구하면 그것을 주시면서도 별로 기쁘지가 않으십니다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을 구하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모든 것을 함께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아버지께서 주실 영원한 왕국의 영광입니까아니면 이 땅에서 잠시 누리다가 썩어지고 불타버릴 이 세상의 것입니까우리를 돌보시는 하늘 아버지께서 정말 기쁘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하나님의 왕국은 하루하루 살면서 우리의 마음에 가득 차 있어야 할 한 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에 세상의 영광과 사람들의 칭찬이 가득하다면 다 비워버리기 원합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에 돈과 명예가 들어있다면 다 비워버리기 원합니다오늘 우리의 마음에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이 있다면 다 비워버리기 원합니다오직 주님과 하나님의 왕국만을 바라보며 용기를 가지고 전진하기 원합니다.

 

 

참 용기

오늘 말씀의 제목이 뭐였죠, “참 용기입니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용감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솔직한 말로 저는 저 자신을 볼 때 절망적입니다아무 용기도 나지 않고 의욕도 나지 않습니다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결심하고 넘어지고또 결심하고 넘어집니다그러나 우리가 용감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우리의 하나님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참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근거로 세 가지 요점을 말씀드렸습니다이 세 가지 요점은 오늘의 제목 세 글자로 각각 시작됩니다.

참 용기의 에서 우리는 참새도 돌보시는 창조주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용기의 에서 우리는 용서의 피 값을 주신 참 친구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용기의 에서 우리는 기쁨으로 왕국을 주시는 아버지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참새를 돌보시는 이유는 참새가 뛰어나고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작품이기 때문입니다.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이유도 우리가 선하고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작품 중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돌보심의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창조주 하나님께 있습니다하나님은 참새도 돌보시는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오늘 우리가 믿고 따르는 주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창조주 하나님께서 사람의 친구가 되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고우리가 당하는 피곤함과 배고픔과 연약함의 모든 감정을 우리와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예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수 있는 참 친구입니다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과 피를 모두 쏟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으며영원한 지옥 불 속에서 절규하며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주님은 바로 용서의 피 값을 주신 참 친구이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기쁨으로 왕국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우리의 구조와 체질을 아시며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두신 아버지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잘 아십니다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긍휼과 사랑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정말 기쁘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그것은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이 세상에는 참 두려워할 것도 많고 염려할 것도 많습니다그러나 오늘 우리가 참새도 돌보시는 창조주”, “용서의 피 값을 주신 참 친구”, 그리고 기쁨으로 왕국을 주시는 아버지를 기억하며 용기를 내기 원합니다참 용기는 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오직 주님만 바라봄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리기 원합니다기도하시겠습니다.

설교 일시 : 2010.04.25 / 설교 장소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예배/로빈28세

 

우리는 소금이다(마 5:13)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5장입니다마태복음 5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쓸모없으므로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오늘 저는 우리는 소금이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서론

오늘 저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너무나 친근하고 자주 이용되는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나눠보고자 합니다또한 우리 자신이 소금이라는 사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어떤 극단적인 세대주의자들은 여기서 땅의 소금이 유대인을 가리키며지금 유대인이 제 맛을 잃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밟히는 신세가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하고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소금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교리적으로 과연 그것이 그러한가 성경을 깊이 공부해볼 필요가 있겠지만오늘 우리가 영적으로 이 말씀을 받아서 우리 자신을 소금으로 적용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여기서 제자들을 향하여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제자입니다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자의 조건을 두 가지 뽑아보자면첫째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눅 14: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또 두 번째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하시니라.

제가 다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저같이 어리고 문제도 많고 아무런 자격이 없는 한 청년이 앞에 나와서 감히 설교를 한다고 했을 때이렇게 앉아서 들어주시고 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으시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을 볼 때저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이 정말 주님의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또 저를 너무나 사랑해주셔서 이렇게 들어주시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너희는 땅의 소금이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땅의 소금이 되도록 노력하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그냥 단순하게 너희는 땅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의 정체는 무엇입니까우리는 땅의 소금입니다한번 저를 따라서 오늘의 제목을 말해보실까요? “우리는 소금이다.” 우리는 소금입니다우리 자신이 소금이 되려고 선택하거나 결단하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이 우리는 이미 땅의 소금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나눠보겠습니다.

 

 

생명에 반드시 필요한 소금

잘 아시는 레위기 17장 14절 말씀에서는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이니 육체의 피는 육체의 생명을 위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그래서 우리의 몸에 있는 피는 우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피는 0.9%가 염분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1%도 아니고 0.9%의 아주 적은 소금 성분인데이 소금 성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눈물을 흘리거나 땀을 흘리면 짠 맛이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이 피 속의 소금 성분이 사람의 몸속에서 신진대사를 촉진시키고소화를 돕고 위장 기능을 강화시키고심장과 신장 기능까지도 강화시킨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가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살지 않습니까그 어머니 뱃속에 있는 양수가 바닷물과 아주 흡사하다고 합니다말하자면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10개월 동안 소금물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금이란 사람에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우리가 태어날 때 어머니 뱃속에 소금이 있었고또한 우리의 피 속에도 지금 소금이 흐르고 있습니다소금은 우리의 생명과도 같습니다소금은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를 가리켜 소금이라 하셨습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우리는 이 땅에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고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입니다우리 자신의 잘나고 뛰어나서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땅의 소금입니다우리는 모두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과 역할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은 이 땅에서 소금으로써의 삶입니다소금은 사람이 탄생할 때 어머니 양수 속에서그리고 생명을 유지할 때 사람의 피 속에서 생명의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사람의 피 속의 소금 성분은 0.9%의 아주 적은 양이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갑니다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은 세상에서 볼 때내가 속한 어떤 직장이나단체에서 볼 때 1%도 안 되는 0.9% 같은 아주 미약하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그 역할은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시키는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이 어디든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곳에 넣으신 목적이 있습니다우리는 그 자리에서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우리는 소금입니다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생명의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생명이 없는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는 통로가 될 수도 있고또한 이미 예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형제 자매들 속에서 더욱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우리의 역할은 1%도 안 되는 작은 것 같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기억하기 원합니다그러므로 나의 역할이 작다고 위축되거나 낙심하지 말고, “나 하나쯤 뭐 없어도 그만 아니겠어?”라고 생각하지 말고우리의 위치에서 나에게 주어진 작은 역할을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패를 막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금

또한 소금은 부패를 막아줍니다여러분 사과 좋아하시죠저는 초록색 사과를 정말 좋아하는데요우리 귀한 자매님께서 종종 지체들을 위해 맛있는 사과를 깎아주시고 어떤 예배나 모임순서가 끝난 뒤에 꺼내주시는데요보통 사과는 깎아놓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누렇게 변합니다그런데 우리 자매님들께서 주신 그 사과를 보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도 누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조금 더 오래 버팁니다자매님들 그 비법이 뭐죠바로 소금물에 담갔다가 꺼내는 것입니다특별히 전기나 냉장고가 없었던 옛날에는 소금이 음식물의 부패를 막기 위해 필수적이었다고 합니다또한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바로 바닷물 속에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세상의 온갖 더러운 물들이 다 바다로 흘러가지만 바로 소금 때문에 바다는 썩지 않습니다.

 

소금은 부패를 방지하는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레위기 2장에서는 음식헌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요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음식헌물에 대하여 명령을 주시면서 반드시 소금을 빠지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레위기 2장 13절 말씀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첫 열매의 봉헌물에 소금을 칠 것이니라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 네 음식 헌물에서 빠지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헌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또한 이 소금과 함께 드린 음식 헌물에 대하여 레위기 2장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음식 헌물의 남은 것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것이 될지니 그것은 불로 예비하는 의 헌물 중에서 지극히 거룩한 것이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여러 헌물 중에 가장 거룩한 것은 바로 소금과 함께 드리는 음식 헌물입니다여기서 지극히라는 표현은 영어로 “most”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은 최상급으로 가장 높은 것을 의미합니다. “more"하면 비교급으로 조금 더 높은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최상급이 사용되고 있습니다소금의 하얀색은 또한 정결함을 의미하고부패를 방지하는 성분 또한 거룩함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땅의 소금입니다우리는 이 땅에서 악을 억제하고 순수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장차 휴거가 일어나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게 될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정말 말 그대로 대환란이 시작될 것입니다우리 자신이 대단하고 거룩해서가 아니라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이 땅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우리의 삶이 주님을 의지함으로 말미암아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조금 더 깨끗해지고어제보다 조금 더 정결해지고조금 더 순수해지고주님을 닮은 거룩함 가운데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맛을 내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금

또한 소금은 맛을 내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저는 어쩌다 한 번씩 김을 그냥 먹는데요참기름 맛도 나지만 주로 소금 맛으로 먹습니다아마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도 그런 것 같은데점심시간에 보면 밥이랑 김만 가져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그러다가 저한테 걸리면 이제 억지로 다른 반찬도 조금씩 가져가기도 하는데요아무튼 소금은 맛있습니다.

우리 이재용 집사님께서 호두과자를 아주 맛있게 잘 만드시는데제가 한번 여쭤봤더니 호두과자에도 소금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합니다또한 어떤 빵이든지 밀가루 반죽에 소금이 반드시 들어간다고 합니다.

욥기에도 보시면 소금이야기가 나옵니다바로 욥기 6장 6절인데요, “맛없는 것을 소금도 없이 먹을 수 있겠느냐달걀의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라고 말합니다욥이 계란 후라이를 좋아했는지삶은 계란을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계란 흰자를 먹을 때 소금을 찍어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금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맛있습니다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맛을 느낍니다그 맛이 무슨 맛일까요?

마가복음 9장 50절에서도 예수님께서 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짠맛을 잃으면 너희가 무엇으로 그것의 맛을 내리요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소금의 맛은 말하자면화목의 맛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4장 말씀은 한번 같이 보시겠습니다골로새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말을 소금으로 간 맞추어 항상 은혜가 있게 하라그리하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바를 알게 되리라.”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소금의 맛은 무엇일까요말하자면 은혜의 맛입니다.

보통 세상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위협하거나 경고할 때 이런 말을 씁니다. “너 맛 좀 볼래?” 또는 니가 인생의 쓴 맛을 좀 봐야 알겠지?” 이런 표현들을 사용합니다이런 맛들은 다 육신으로부터 나오는 쓴 맛들입니다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우리에게서 나오는 말과 행동의 맛은 바로 화목의 맛그리고 은혜의 맛인 것입니다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화목을 느낄 수 있고 은혜를 느낄 수 있을 때우리는 맛을 잃지 않은 소금으로써의 제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방에서는 사해 부근의 암염이라고 하는 원석들로부터 소금을 얻었다고 합니다이 암염을 물에 넣었다 빼는 것을 반복하면서 원석에 들어있는 소금을 다 녹여서 빼낸다고 합니다나중에는 이 암염 원석에서 소금기가 다 빠져나가고 흙이나 석회석 성분만 남는다고 합니다이것이 바로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또한 이스라엘 지방은 날씨가 무덥기 때문에 가축들이 일사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소금을 먹이는데가축들이 풀을 뜯는 곳에 이 암염 덩어리들을 뿌려놓는다고 합니다그러면 가축들이 암염을 핥아먹으면서 소금을 섭취하는데이렇게 소금기가 다 빠져나간 원석들은 구멍이 뻥뻥 뚫린 돌뼈다귀 같은 모양이 된다고 합니다그래서 더 이상 쓸모가 없어서 사람들과 짐승들의 발에 밟히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소금으로써 가져야 하는 맛이 무엇일까요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져야할 맛으로 화목의 맛과 은혜의 맛을 말씀하십니다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화목을 느끼고 은혜를 느낀다면 우리는 소금의 맛을 충실하게 나타낸 것입니다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대할 때 경직되거나 부담을 느낀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 자신의 쓴 맛을 나타낸 것입니다우리가 날마다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서 오직 우리의 맛이 아닌 주님의 선하심을 사람들이 맛보아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소금은 갈증을 일으킨다

또한 소금의 한 가지 특징은 갈증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음식을 짜게 먹으면 계속 물이 먹힙니다제가 얼마 전에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요. “세상의 이런 일이의 기자가 우리 반에 이상한 아이가 있어요.”라는 제보를 받고 한 초등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대여섯 명의 어린 아이들이 기자를 반갑게 맞았는데기자가 도대체 어떤 아이가 어떻게 이상하니?”라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다 같이 떡볶이를 사달라고 하였습니다그래서 이제 같이 가서 떡볶이와 오뎅을 맛있는 먹는 중에 다시 기자가 물었습니다. “혹시 이 중에 그 이상한 친구가 있느냐” 물었더니 아이들이 한 친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얘 좀 보세요.”하는 것이었습니다그 아이는 삶은 계란을 까서 먹고 있었는데계란을 까서 소금이 담긴 접시에 굴려가면서마치 인절미에 콩가루 바르듯이 소금을 발라서 먹는 것이었습니다.그 아이는 짠맛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간장도 그냥 마시고새우젓도 큰 뭉치로 집어서 꿀꺽꿀꺽 삼켰습니다.그러면 소금의 맛을 느끼지 못하면서 도대체 왜 계란에 소금을 그렇게 발라서 먹느냐는 질문에 그 아이는 사람들이 놀란 모습으로 쳐다보는게 재미있고또 바삭바삭 소금이 씹히는 질감이 좋아서 그렇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제 나중에 그 아이의 집에 가서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을 인상 깊게 들었는데요바로 그 아이가 하루에 물을 1.5리터 병으로 두세 병씩을 마신다 것이었습니다비록 혀로는 짠 맛을 느끼지 못했지만 몸은 갈증을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소금은 갈증을 일으킵니다우리는 소금입니다우리가 주님과 밀착하여 주님을 따르는 성령 충만 가운데 있다면사람들은 우리를 대할 때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마치 사마리아 여인이 느꼈던 갈증과 같이,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고 싶은 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부담이나 짐을 주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보통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먹지 않으려고 할 때어른들은 그 아이 앞에서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그러면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 음식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한번 먹어보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앞에 나와서 큰 소리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라고 외칠 때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할 것입니다. “맞아하나님을 사랑해야지다른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그런데 어떤 사람이 앞에 나와서 아주 떨리는 작은 목소리로 저는 결코 사랑받을 만하지 못한 너무나 더럽고 추하고 이기적인 사람인데이러한 저를 하나님이 사랑해 주셨습니다저도 너무나 부끄럽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주님 외에 정말 모든 것이 아무 가치가 없음을 주님이 알려주시기 원합니라이 어리석은 저를 일깨워주시고이 무능한 저를 붙잡아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긍휼히 여겨주시기 원합니다.”라고 마음으로 고백할 때우리는 마음에서부터 나도 저 형제처럼저 자매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소금은 갈증을 일으킵니다우리는 소금입니다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우리가 맛을 잃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우리 자신이 먼저 늘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주님과 가까이 동행하게 될 때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나 자신의 모습이 아닌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사람들이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될 때에 주님을 향한 사모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소금은 녹아 없어진다.

또한 소금의 한 가지 특징은 녹아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소금이 음식물에 들어가게 될 때 소금은 자기 형체를 잃어버리고 녹아서 음식물 속에 완전히 스며들게 됩니다소금의 형체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소금의 맛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영혼들을 섬길 때또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때에 우리는 소금과 같이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나의 판단과 나의 스타일과 나의 선호도와 나의 모든 것이 다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우리가 없어지고 완전히 음식물에 스며들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는 화목의 맛은혜의 맛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한 알을 밀알이 되셔서 죽으셨을 때에 많은 밀알을 열매로 거두게 된 것같이우리 자신의 육신도 완전히 십자가에 넘겨질 때에 비로소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영혼들과 형제 자매들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너희는 (복수땅의 소금이로되

마지막으로 한 부분만 더 보시겠습니다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예수님께서는 여기 모인 제자들 모두를 묶어서 복수로 너희는 소금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우리 각자가 소금이 아니라 우리가 모여서 소금인 것입니다내가 소금이 아니고 우리가 소금입니다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각자는 너무나 연약하고 부족합니다우리 각자는 너무나 자주 넘어지고 실패합니다그러나 우리가 교회 함께 모일 때에 우리는 힘차고 온전합니다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고 힘을 얻습니다우리는 소금입니다우리가 주님의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고 서로 뜨겁게 사랑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소금의 제 맛을 낼 수 있습니다.

 

오늘 소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0.9%의 아주 미약한 소금 성분과도 같습니다비록 적은 양의 소금이라도 할지라도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마찬가지로 우리의 역할이 작고 보잘 것 없다할지라도 우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필요한 곳에 두셨습니다그러므로 우리는 안일하고 나태하게 있지 말고 힘차게 일어나서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우리의 작은 일에 신실해야 합니다.

 

또한 소금은 주님의 거룩함을 보여줍니다우리가 주님과 겸손히 동행하게 될 때에 우리의 삶은 더욱 정결하고 거룩해 질 것입니다.

 

또한 소금은 화목의 맛과 은혜의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영혼들과 형제 자매들 가운데 화목하고 은혜가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소금은 갈증을 일으킵니다우리는 이러한 소금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갈망을 가지도록 자극하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우리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정말 주님을 따라가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소금은 녹아 없어집니다자기의 형체를 다 버리고 오직 음식물 속에 스며들어 하나가 됩니다이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의 선하심만을 드러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형제들과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예수님께서는 복수로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우리 각자가 소금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모여서 소금입니다주님이 주신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우리가 더욱 알게 되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주신 형제 자매님들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기 원합니다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축복해주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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