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 일시 : 2008.08.20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26세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마 20:28)
본문 : 마태복음 20장 28절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20장 28절 한 구절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뒷부분을 보시면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어리석고 탐욕적인 죄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대속물로, 즉 몸값으로 주시려고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자기 생명을 우리를 위한 대속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하여 사망과 지옥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만 주 예수님의 몸값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믿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을 때의 목적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듯이,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사시는 목적 또한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며 사람들을 죄와 지옥으로부터 건져내야 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생명을 몸값으로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의 손과 발과 입술과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앞부분을 보시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에, 비록 육체적으로 이 땅에 살고 계시지는 않지만 믿는 우리들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실 때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도 오늘의 본문과 같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우리가 만약 참으로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린다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교회와 잃어버린 많은 영혼들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한가지는 바로 섬기고자 하는 자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
다함께 누가복음 10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42절까지 기록되어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38절부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38 이제 그들이 갈 때에 그분께서 어떤 마을로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하는 어떤 여자가 그분을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니라.
39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더니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나
40 마르다는 섬기는 일이 많아 괴로워하더라. 그녀가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섬기게 내버려 두는 것을 주께서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런즉 그녀에게 명하사 그녀가 나를 돕게 하소서, 하거늘
41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하나
42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마리아는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김봉중 집사님께서 여름수련회 기간에 이 말씀으로 귀한 은혜를 나누셨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비록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mp3를 들으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분주하게 섬기는 것보다 조용히 십자가 앞에 머물러서 주님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느끼고 배우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가 바로 섬김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이 마르다와 마리아 말씀을 함께 살펴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분들이 이 말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잘못 적용하기 때문에 주님을 섬기면서 마음을 어려워하거나, 주님을 섬기지 않으면서 자신을 정당화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 김봉중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 각자의 마음이 많은 일로 분주하기보다 십자가 앞에 머물러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우리의 내적이고 영적인 삶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결코 주님을 섬기는 것이 덜 영적이고, 가만히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이 더욱더 영적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 육신적인 것이라면 가장 많이 수고하고 날마다 교회를 위하여 염려한 사도 바울, 많은 일로 수고하고 염려한 사도 바울은 가장 육신적인 그리스도인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적용한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주님의 말씀을 펴고 주님과 교제할 것이고, 그 뒤에 여전히 주님과 동행하면서 많은 주님의 일들을 넘치게 섬기며 하루를 살아갈 것입니다. 이 말씀을 바르게 적용한 사람은 바쁘고 분주한 시간에도 역시 마음 속에서 주님과 동행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 교회 모든 자매님들이 마리아처럼 되겠다고 식사당번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우리 교회 모든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주일 오전성경공부 시간이나 수련회 때에 마리아처럼 되겠다고 아이들을 내팽개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42절에 나온 것처럼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오직 말씀 듣는 한 가지만 필요하니까 난 마르다처럼 분주하지 않을거야."라고 하면서 아무도 섬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사용하면서 우리의 영적인 이기심을 변호해서는 안됩니다. 섬김에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고 나 자신의 유익을 내려놓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인데, 그것은 주님이 있으라 하신 그곳에서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수련회에 가서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형제 자매들의 간증도 못 듣고, 교제도 못하고, 말씀도 못 듣지만 주님이 있으라 하신 그 자리에 있을 때 주님은 그곳에서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전에 아기 돌보기에 들어온 한 자매님을 본 적이 있습니다. 캠코더를 연결해서 TV로 집회를 틀어주었는데, 그 자매님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내팽개치고 오히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면서 말씀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당시에 아이들이 있던 장소는 마음껏 소리를 질러도 집회에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는 곳이었지만 그 자매님의 영적 열망으로 인해 아이들은 계속 혼나고 힘들어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전혀 마리아답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은 자신이 아기 돌보기 하는 시간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온 마음을 다해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마르다의 문제는 아기 돌보기도 하면서 말씀도 들으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많은 일에 관하여 염려하고 근심한 것이고, 마리아의 문제는 한 가지를 선택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고 주님이 있으라 하신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함과 유익을 계산하지 말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선택하고 그 한 가지를 온전한 마음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실제 삶 - 가정
"이와 같이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아니하고 도리어 섬기며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느니라."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라는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섬기러 오시고 자기 자신을 주려고 오신 것처럼,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을 섬기며 우리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노력을 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심지어 형제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추구하고 있는데 잘 안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어떤 삶일까 그 실제적인 모습들을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갑자기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나타났을 때 순종하는 마음으로 전하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고, 또 멀어졌던 형제 자매와 화해하고 새롭게 다가서는 것도 그 열매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 나타나야 할 가장 중요한 장소는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으시면서 가정이라는 주제를 초점으로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요즘 그런 방식으로 성경을 새롭게 보고 있는데 참 재밌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에서부터 아담과 이브를 통하여 시작된 최초의 가정을 볼 수 있고, 가인과 아벨의 형제간의 시기와 살인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하는 남편 아브라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순종하는 아내 사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남편에게 하갈을 통해 자식을 얻게 하고는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다시 남편에게 불평하는 아내 사라를 볼 수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헌신하는 아버지 아브라함과 생명을 포기하며 순종하는 아들 이삭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과 리브가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야곱을 축복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에서를 축복하려는 남편 이삭과 너무나 영적이어서 스스로 꾀를 부려 야곱을 축복하려고 작전을 꾸미는 아내 리브가를 볼 수 있습니다. 또 축복을 얻으려고 시기하고 다투는 쌍둥이 형제를 볼 수 있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자식을 편애함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가정의 분열을 볼 수 있습니다. 다 언급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곧 섬기는 삶인데, 바로 우리의 각 가정을 섬기는 삶입니다.
다함께 누가복음 1장을 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침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말씀입니다.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야, 두려워하지 말라. 주께서 네 기도를 들으셨느니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그리고 16절과 17절은 침례 요한의 사역에 관한 말씀을 하고 계신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6 이스라엘 자손 중의 많은 이들을 주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
여기서 보면 침례 요한의 사역 중 인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이 주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과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는 것과 같은 말씀입니다. 침례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돌아온 아버지들의 마음은 자녀들에게로, 각 가정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과 회복된 사람들의 마음이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침례 요한의 사역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또 한 면에서는 가정회복 사역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가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주 그리스도를 어떻게 섬기는가?
다함께 골로새서 3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과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3 또 너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께로부터 받을 줄 아나니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삶은 어떤 특정한 일을 하는 삶이라기 보다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삶은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전하는 일도 물론 포함되지만, 그것만이 주님을 섬기는 삶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는 모든 우리의 생활 속의 일들이 주님을 섬기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들에 관하여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일들이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18절로 올라가서 22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8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주 안에서 합당하니라.
19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며 모질게 대하지 말라.
20 자녀들아, 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
21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지니 그들이 낙담할까 염려하노라.
22 종들아, 육체를 따라 너희의 주인 된 자들에게 모든 일에서 순종하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자들같이 눈으로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단일한 마음으로 하라.
우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우리는 꼭 교회에 나와서 무슨 일을 섬기거나 캄보디아, 아프리카에 가서만 주님을 섬길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골로새서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서 주님을 가장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우리의 삶 자체가 주님을 섬기는 온전한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삶이란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나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이란 나의 선호도와 나의 주장이 모두 못 박혀 죽어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원함만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나온 것처럼, 아내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은 무엇입니까? 남편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남편을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것입니다. 남편이 하는 말을 목사님이나 영적인 다른 형제가 하는 말보다 더 중요하게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그렇게 순종하며 따르듯이 그렇게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의 부족함으로 인해 남편을 무시하지 말고 여전히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결코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지 말고, 권위를 거슬러 의견을 주장하지 말고, 질서 가운데 순종하고 남편을 지혜롭게 돕는 자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입니다.
19절에 나온 것처럼, 남편에게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무엇입니까? 아내에게 무조건 입다물고 순종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교회에서 형제 자매들에게 상냥하고 젠틀하게 대하는 것 이상으로 아내에게 자상하게 대해주어야 합니다. 왕처럼 군림하려고 하지말고 대접받고 섬김을 받으려 하지말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아내는 주님을 섬기는데 조수처럼 따라다니면서 뒷바라지하는 종이 아니고 남편이 섬기고 양육해야 할 사역의 대상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한국적이고 유교적인 남편상을 버려야 합니다. 원래 남편은 이런거라고 생각하는 관념을 다 없애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남편상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고 돌보시는가를 배우면서 아내를 아끼고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며, 주님을 섬기는 실제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내를 조언자요 돕는 자로 주셨기 때문에 아내가 조언할 때 겸손하게 듣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하는 말을 무조건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기면서 물리치지 말고 잘 들어주고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또한 20절에 나온 것처럼, 자녀들에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은 무엇입니까? 교회에 와서 많은 일들을 감당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가정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저도 자녀된 자로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지만, 주님께 긍휼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원합니다. 자녀들은 일어나서 이불을 개고, 방 정리를 하고, 일찍 자고,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쁘다고 방에 들어가서 자기 할 일만 하지말고 거실에 나와서 부모님과 대화하며 하루에 있었던 일들과 소식들을 나누고 교제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21절에 나온 것처럼, 아버지에게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그것으로 그들을 먹이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또 피곤하고 귀찮을 때에라도 자기를 부인하고 아이들과 대화하며 함께 놀아주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함께 동화책을 봐주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성경보고 기도하는 것만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귀찮다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게 바로잡고, 또 잘했을 때 온 마음으로 칭찬해주고 함께 기뻐해 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적인 아버지상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적이고 유교적인 아버지관을 다 버려야 합니다. 원래 아버지는 이런거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관념을 다 버리고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서 아이들을 섬세하게 사랑하고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말고 인격적으로 존중하면서 합당하게 아버지의 권위를 행사해야 합니다. 저는 주일학교, 중고등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부모님에 대해 노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많이 듣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자녀들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 이끌어주어야 할 귀한 영혼임을 기억하고 기도하며 양육해야 합니다.
또한, 어머니에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삶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어려운 지체를 찾아가서 위로하고 교제하는 것도 귀한 섬김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있어서 가장 큰 섬김은 쉬운 말로 밥하고 빨래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할 때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한다면 주님은 그러한 일상 속의 섬김을 하나도 잊지 않고 다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어떤 맛있는 음식을 해줄까, 어떤 영향식을 해줄까 찾고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 올 때에 아이들에게 가장 깨끗한 옷을 입혀주고 하나님이 얼마나 귀한 분인지, 우리 가족이 오늘 얼마나 귀한 분을 만나러 가는지 알려 주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제모임을 한다고 아이들을 귀찮아하고 방치해 두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이 엄마를 빼앗아 갔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주님을 경배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주님을 인식하고 경배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엄마의 칭찬과 관심에 항상 굶주려 있습니다. 엄마가 어떻게 훈련시키고 만드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완전히 변화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세상적인 지식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알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안 간다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기면서 교회 안 간다고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두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으면서 주님께 잘 이끌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를 구하면서 아이들을 양육해야 합니다.
또한 22절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처한 위치에는 항상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령을 피우고 빈둥거리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려고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일해야 하며, 그러할 때 주님께서는 그것을 가리켜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며 보상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무리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이란 주님을 섬기는 삶이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주님이 주신 위치 가운데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는 것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자녀로서, 또 직장에서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각자가 맡은 일에 사람에게 하듯이 눈치를 보면서 눈가림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신실하고 충성되게 섬겨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가리켜 너희가 주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말씀하고 계시고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의 열매가 풍성하게 나타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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