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5. 갈보리침례교회 주일오후설교/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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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상하 시리즈 #07
마음을 다해 돌아오라(삼상 7:3)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7장입니다. 사무엘기상 7장 3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온 집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게 하며 그분만 섬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하니
오늘 말씀의 제목은 “마음을 다해 돌아오라.”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이 준비됨
우리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 사무엘기상 7장 3절 말씀에서 너무나 기쁘고 희망찬 말씀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때 “이가봇”의 이름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변화가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모아졌고,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7장 1,2절 말씀을 먼저 보시겠습니다.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주의 궤를 가져다가 산에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 놓고 그의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주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라.
2 그 궤가 기럇여아림에 거하되 그 기간이 길어 이십 년이 되었으므로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통곡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은 자랑스럽게 주님의 언약궤를 빼앗아 갔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궤를 제자리로 돌려놓으셨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다곤의 형상을 베어 자신의 궤 앞에 쓰러뜨리셨고, 온갖 재앙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암소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셔서 이스라엘 땅인 벧세메스로 들어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벧세메스 사람들은 무지함으로 인하여 주의 언약궤를 함부로 다루었고,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재앙으로 그들을 징계하고 심판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1절 말씀처럼, 이제 주의 궤는 벧세메스에서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히 구별하여 주의 궤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엘르아살이 어떤 방식으로 주의 궤를 지켰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20년 동안 아무 재앙 없이 궤를 지켜냈습니다. 우리가 2절의 말씀을 보시면, 그 기간이 20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통곡하였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의 궤가 본래 있던 장소는 실로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사무엘의 부모님인 엘가나와 한나도 해마다 실로에 계신 만군의 주께 경배하러 왔다고, 기록한 것을 우리는 사무엘기상 1장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 경배하기 위하여 실로를 방문할 때마다 그들은 주의 궤가 없다는 사실을 보며 슬퍼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특별히 지금 읽은 사무엘기상 7장 2절 말씀에서,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통곡하였다는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온 집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반적인 마음 안에서 공통적인 한 흐름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요?
사무엘의 사역
우리는 엘리 제사장이 사역하던 때와 달리, 이스라엘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15,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5 사무엘이 자기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더라.
16 그가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며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여기서 보면 우리는 사무엘이 그의 전 생애 동안 이스라엘의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이스라엘을 가르치고 재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처럼, 실로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을 책망하거나 위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시면서 영혼들을 만나신 예수님과 같이, 이스라엘의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를 구하며 통곡하게 된 것은 이러한 사무엘의 섬김과 사역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사역은 순회하며 말씀을 전한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함께 5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리라, 하매
바로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역을 신실하게 감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사무엘기상12장 23절도 보시겠습니다.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의 사역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결코 쉬지 않았고, 또 선하고 의로운 주님의 길을 끊임없이 가르쳤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무엘의 섬김의 결과로 이스라엘 온 집의 마음이 차츰차츰 20년 만에 주께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주의 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긴 뒤에, 주의 궤는 일곱 달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머물렀고, 그 다음 20년은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사무엘은 바로 그 20년 7개월의 기간 동안 온 이스라엘의 마음을 주께로 돌이켰습니다. 그것은 정말 외롭고도 길며 힘든 믿음의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사무엘의 온 일생을 바친 하나의 사역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무엘의 섬김은 20년 만에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주님을 섬기면서 당장 열매를 거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우리 갈보리크리스천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섬기면서 그런 급한 마음을 가질 때가 많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보게 된 것은, 바로 사무엘과 같이 주님을 직접 만나고, 주의 말씀을 듣고, 또 늘 기도로 사역한 사무엘이라 할지라도 열매를 맺는 데에는 무려 20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사역한 영혼들 가운데 십 대들이 있었다면, 어느새 삼십 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무엘의 열매는 비로소 20년이 지나서 거두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 가지 모양으로 주님을 섬기고 계신, 우리 믿음의 부모님들, 그리고 주일학교, 중고등부 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CCA 선생님들 모두 이 말씀으로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섬긴다면, 주님께서 자신의 때에 열매를 거두실 것입니다. 사무엘은 1년 사역하고 포기하지 않았고, 10년을 섬기면서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이 마음이 주님 앞에 돌이켜질 때까지 신실하고 묵묵하게 기도와 말씀으로 사역하였고, 마침내, 20년 만에 이스라엘의 온 집이 주님을 구하며 통곡하는 일까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 돌아오려거든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온 집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게 하며 그분만 섬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시리라, 하니
이제 사무엘은 주를 구하며 통곡하는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마음을 다해 주께 돌아오려는 것이라면, 이방 신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며 그분만 섬기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구하는 일이 너무나 반갑고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냥 돌아오기만 하라고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20년에 걸친 사역의 열매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그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오히려 더욱더 엄격하고 단호하게 그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정말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라면,버릴 것을 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여기서 사무엘이 주님께 돌아오는 과정으로 언급한 세 가지 내용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말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세 가지 내용을 언급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마음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분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사실을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사무엘이 권고한 것은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가운데서 제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버리는 일이 따릅니다. 누군가가 주님을 따르면서 버리는 것이 없다면, 그는 주님을 따르는 모양을 가지는 것이지, 정말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면서 많은 것을 버렸고,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을 버렸고, 요셉은 복수심을 버렸으며, 모세는 이집트의 쾌락들을 버렸습니다.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렸고,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따르려거든, 주님 외의 것들, 우상 신들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면서 무엇을 버렸습니까? 어떤 사람은 학교를 버리고, 직장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꿈을 버리고, 야망을 버립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라면, 우리에게는 반드시 버리는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날마다 육신의 욕심이 올라오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버려야 합니다. 어제 우리는 무엇을 버렸으며,또 오늘 우리는 무엇을 버렸습니까? 버리는 것이 없다면, 주님을 따르는 상태가 아닙니다. 어떤 선하고 좋은 일들을 한다고 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사무엘이 두 번째로 권고한 것은 마음을 예비하여 주께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해서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겉으로 보이는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한다할지라도 그것으로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겉에 보이는 우상들을 제거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겉으로 헌신하고, 겉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진실을 원하십니다. 교회에서 신실한 겉모습을 가지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영적인 어떤 일들을 행하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예비되기를 원하시고, 주께로 향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로 모여서 함께 찬양을 부를 때,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주님,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기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예비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다만 찬양을 부르는 시간이, 잠시 옆 사람과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만 여겨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그 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비하면서 그렇게 나아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만 설교자의 말투나 예화를 평가하거나, 단지 몇 가지 지식과 정보를 얻어가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마음은, 지금 우리의 마음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 앞에 설 예비가 되어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예비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향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생활 중에서 자주 넘어지고, 때로는 나 자신을 향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하고, 또 세상을 향하였다할지라도, 최소한 교회로 함께 모인 시간만큼은,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시간만큼은, 오직 하나님께만 모아지기 원합니다.
사무엘이 세 번째로 권고한 것은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주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게 오직 주님만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누구를 섬기고 있습니까?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오늘 주님을 섬기는 것이 곧 사람들을 섬기는 것,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주님을 섬기는 일은 단지 니느웨에서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 아니었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함께 품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일은 단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니었고, 주님께서 베드로 자신을 사랑하신 것처럼, 양들을 사랑하고 먹이며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주님의 일은 단지 교회를 세우고 편지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들을 위해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영혼들을 섬기는 일입니다.
교회의 어떤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진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섬기며, 참여하고, 또 방문하는 모든 형제자매들과 영혼들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많고, 부족하고,답답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형제자매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돌보고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태복음 25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5-40절을 보시겠습니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내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받아들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너희가 내게 옷을 입혔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너희가 나를 찾아 왔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너희가 내게 왔느니라, 하니
37 이에 그 의로운 자들이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시게 하였나이까?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나이까?
38 어느 때에 우리가 주께서 나그네가 되신 것을 보고 받아들였나이까? 헐벗으신 것을 보고 주께 옷을 입혔나이까?
39 혹은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주께 갔나이까? 하리라.
40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영혼들에게 섬긴 것을, 하나님 자신을 섬긴 것으로 계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갚아주시려고, 우리 옆에 우리의 섬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을 할 때, 학생들만을 섬김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함께하는 선생님들은 요구의 대상, 정죄의 대상으로 규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학생들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그 학생들의 부모님들까지 모두 섬김의 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내가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주님께 묻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들의 부족함을 채우고 돕는 것임을 우리가 기억하기 원합니다.
이스라엘의 반응
이제 우리 다시 사무엘기상 7장으로 돌아오셔서, 4-6절을 보시겠습니다.
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주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함께 모여 물을 길어 주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며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주께 죄를 지었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재판하니라.
사무엘의 권고를 받은 이스라엘은 정말 그 말씀대로 우상을 제거하고 주만 섬겼습니다. 사무엘은 이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았고, 그곳에서 대 부흥집회를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은 금식하면서 주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 또한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블레셋의 공격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함께 모였다는 것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오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그것을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해 돌아가고자 할 때, 반드시 법칙처럼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공격입니다. 죄와 세상과 사탄, 그리고 우리의 육신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할 때, 절대 가만히 있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가지 못하도록 방해할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온 이스라엘이 미스바에 모였다는 것을 듣고, 즉시 군대를 모아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내가 이제부터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잘 해보려고 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서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3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터이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는 정말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주의로부터 목숨까지 내놓는 극심한 핍박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그러한 방식의 핍박은 없다할지라도, 영적인 공격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합니다. 내가 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고 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 바로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려고 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공격에 위축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믿음의 승리
우리 함께 다시 사무엘기상 7장 8,9절을 보시겠습니다.
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해 주 우리 하나님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그분께서 우리를 블레셋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소서, 하더라.
9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양을 취해 전체를 번제 헌물로 주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더라.
이스라엘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주의 궤를 빼앗겼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무엘의 대처법은 엘리의 방법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사무엘은 군사를 모으거나, 무기를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원래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성경은 주께서 그의 말을 들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번제 헌물을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왔으나 그 날에 주께서 큰 천둥으로블레셋 사람들에게 천둥소리를 내사 그들을 무찌르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므로
여기서 우리는 정확한 상황을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기세를 몰아서 블레셋을 완전히 몰아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13-14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경 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사무엘의 모든 날에 주의 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매
14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도시들이 에그론에서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었고 이스라엘이 그 도시들의 주변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 내었으며 이스라엘과 아모리 족속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여 자신 앞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번의 승리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지경 내에 얼씬도 하지 못했고, 블레셋 사람들이 빼앗았던, 에그론에서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의 도시들이 회복되었습니다.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주의 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사무엘이 기도로 이루어냈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평화가 없고, 우리가 사람들과 갈등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져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어찌 보면 많은 내용의 말씀들을 살펴보았지만,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마음을 다해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한 말씀만은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서 55장 7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진 중에 있었다면, 그분과 가깝지 않았다면,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해 돌아오고,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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