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23.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29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삼하 1:11-12)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하 1장입니다. 사무엘기하 1장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주의 백성과 이스라엘의 집이 칼에 쓰러졌음으로 인하여 그들이 저녁때까지 그들을 위해 애곡하고 슬피 울며 금식하니라.
저는 오늘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다양한 것들에 관심을 가집니다. 저희 호윤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한 결 같이 먹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저희 승연이는 먹는 것에는 통 관심이 없고, 오로지 노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CCA의 어린 학생들은 달팽이에 관심을 가지고, 월드컵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 유명한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저는 최근에 마치 목수이셨던 예수님처럼, 소소하게 가정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작하는 가정용 목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좋은 집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어떤 좋은 물건이나, 좋은 장소나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우리의 가장 큰 관심은 오직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기에 합당하며, 자격이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호윤이가 먹을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승연이는 노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만,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달팽이와 햄스터와 수많은 자연의 신비한 생물들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건강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우리를 위한 대저택을 예비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통제하시고 공급하시고 제한하시며 또 약속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하 1장의 말씀을 통해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사울왕의 관심이 무엇이었고,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아말렉 청년의 관심이 무엇이었고, 그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우리가 따라가야 할 믿음의 모범이 되는 다윗의 관심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쁘고 정신없는 이 세상을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지금 이 시간 다시 우리의 마음을 오직 주님께 모으고, 주님께 관심을 두며, 주님께 집중하기를 원합니다.
** 사울의 관심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사울이 죽은 뒤에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살육하고 돌아와서 이틀 동안 시글락에 머물렀더라.
2 셋째 날에, 보라,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경의를 표하매
3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어디에서 오느냐? 하니 그가 그에게 말하되, 나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피하였나이다,하거늘
사무엘기하의 말씀은 사울왕의 죽음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기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보여주는 한 가지 거스를 수 없는 진리가 있다면, 사람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도 죽었고, 알렉산더도 죽었고, 나폴레옹도 죽었고, 히틀러도 죽었고, 토마스 에디슨도 죽었고, 스티브 잡스도 죽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들을 해내었는지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끝까지 육신 가운데서 주님을 대적하며 살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는 사울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 다윗이 아말렉 족속을 살육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왜 하필이면, 이런 중대한 시점에서 이스라엘을 돕지 못하고, 아말렉과 싸울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울 왕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 관심을 두기보다, 노략물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18,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또 주께서 왕을 보내 이동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인인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이 소멸되기까지 그들과 싸우라, 하셨나이다.
19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노략물에만 날아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울의 관심은 주의 명령에 완전하게 순종하여서,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사울의 관심은 노략물에 있었습니다. 사울이 만약 이때 아말렉 족속을 완전히 진멸하였더라면, 다윗은 아말렉 족속과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아말렉 족속과 싸울 필요가 없었더라면, 어떤 모양으로든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을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웠더라면, 사울 왕은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나중에 가서 그 쓴 열매를 스스로 먹게 되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수 있습니다. 당장에는 그것이 손해인 것 같고, 유익이 부족한 것 같을지라도, 결국에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스스로를 위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신의 유익에 관심을 둔다면, 당장에는 약간의 유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나의 선택에 따라 쓰고도 치명적인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께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 아말렉 청년의 관심
이제 우리 함께 4-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원하노니 너는 내게 고하라, 한즉 그가 대답하되, 백성이 싸움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서 쓰러져 죽은 자도 많았으며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니라.
5 다윗이 자기에게 고한 청년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하니
6 그에게 고한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갔는데, 보소서, 사울이 자기 창에 의지하였고, 보소서, 병거와 기병들은 그를 맹렬히 따르더이다.
7 사울이 자기 뒤로 돌이켜서 나를 보고 부르시기에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
8 그가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에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족속이니이다, 하매
9 그가 다시 내게 이르되, 내 생명이 아직 내게 온전히 남아 있어 고통이 내게 임하였나니 그러므로 원하건대 너는 내 위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에
10 그가 쓰러진 뒤에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확신하고 이에 그 위에 서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던 관과 팔에 있던 팔찌를 벗겨 그것들을 여기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다윗과 아말렉 청년의 대화를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사무엘기상의 마지막 31장에 기록된 사울 왕의 죽음과 여기서 아말렉 청년이 진술하고 있는 사울의 죽음이 다른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아말렉 청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기상 31장에서 사울 왕은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자신을 능욕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그 청년이 아말렉 사람인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였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3절 말씀을 통해서 이 아말렉 청년이 이스라엘의 진영에 있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아말렉 사람이었지만, 아마도 이스라엘의 용병으로 고용이 되었거나, 아니면 긍휼을 얻어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섞여서 사는 여러 이방 민족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제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요나단까지 죽었으니, 다윗이 왕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거의 확실한 일이었습니다. 아말렉 청년은 아마도 다윗에게 이러한 기쁜 소식을 전달하고, 심지어 자신이 사울 왕을 죽인 주인공이라고 소개하여, 많은 재물이나, 높은 지위를 얻을 줄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 왕은 다윗의 원수였고, 이제 다윗은 왕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13-16절을 보시겠습니다.
13 다윗이 자기에게 고한 청년에게 이르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족속으로 타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거늘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네 손을 내밀어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15 청년들 가운데 하나를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덮치라, 하니 그가 그를 치매 그가 죽으니라.
16 다윗이 그에게 말하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니 네 입이 너를 대적하여 증언하며 이르기를, 내가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하였도다, 하더라.
이제 막 아말렉 족속과 전쟁을 하고 돌아온 다윗에게, 한 아말렉 청년이 찾아와서는, 자신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자신의 유익 때문에 눈이 멀어버린 아말렉 청년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여, 자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잠언 1장 19절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도 다 이러하여 그 이익이 그것의 소유자들의 생명을 앗아가느니라.”
아말렉 청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익에 관심을 가졌고, 이익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잠언 말씀과 같이 그 이익이 그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사울 왕은 노략물에 관심을 가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쓴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이 아말렉 청년도 이익을 탐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나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가 나의 유익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나의 즐거움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보다도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 동안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먹는 것도 잘 가리고, 항상 건강에 주의를 하니까 정말 건강해졌습니까? 우리가 정말 돈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니까 그 결과 정말 통장에 돈이 몇 천, 몇 억씩 쌓이고 부자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정말 자녀의 진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열심히 공부시켜서 좋은 대학을 보내면 정말 자녀의 삶이 행복해 집니까?
오늘 우리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관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원한 왕국에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썩어지고 불타 없어질 것들이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는 이 세상의 일시적인 쾌락과 안락한 삶에 있습니까? 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건강이나, 경제적인 문제나, 자녀들에 진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어린 학생들의 공통적인 관심사 중에 하나는 키가 크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관심사인 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우리 함께 누가복음 12장 25,26절을 보시겠습니다.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자기 키에 일 큐빗을 더할 수 있겠느냐?
26 그런즉 너희가 가장 작은 그 일도 능히 행하지 못하거든 어찌하여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하나님께서는 키가 일 큐빗, 즉 40~50cm 정도가 더 크는 것에 대해서 작은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작은 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너무 쉬운 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이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일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고, 하늘의 새들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고, 그것을 믿으라고, 그리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에 관심을 두고, 그것을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울 왕처럼, 아말렉 청년처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욕심과 탐욕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찌르고 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눈이 다시 주님께로 돌이켜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우리의 사모할 만한 분이 오직 주님 한 분이시기를 원합니다.
** 다윗의 관심
이제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다윗의 관심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다윗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아말렉 청년이 와서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을 때, 다윗은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옷을 찢고 애곡하였습니다. 다윗의 반응은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편히 잘 수 있겠다든지, 아주 통쾌하고 시원하다든지, 이제부터 내가 왕이라든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여기서 진심으로 애통하고 애곡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이 칭찬 받을 줄로 알았던 아말렉 청년에게는, 그의 입의 증언대로, 주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친 것에 대하여 심판을 집행하였습니다.
과연 다윗은 어떻게 이렇게 반응할 수가 있었을까요? 다윗의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안전이나, 자신의 안락한 삶이나, 자신의 출세나, 자신의 명예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다윗의 관심은 하나님의 왕국에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하 1장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이 애가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위해 애곡하고
다윗은 이제 바로 이 17절 말씀부터 끝까지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애곡의 시를 지었습니다. 우리 함께 몇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먼저 19,20절을 보시겠습니다.
19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이 너의 높은 곳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어찌 강력한 자들이 쓰러졌는가!
20 그것을 가드에서 고하지 말며 아스글론 거리에서 알리지 말지어다. 블레셋 사람들의 딸들이 기뻐하거나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딸들이 개가를 부를까 염려하노라.
다윗의 주된 관심은 하나님의 왕국 이스라엘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원수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쓰러짐을 보고 웃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23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살아 있을 때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들이더니 그들이 죽을 때에도 나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이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
그는 사울 왕에 대하여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에 대하여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떠한 미움이나 증오심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앞에 있는 자리에서는 좋게 말하다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많은 나쁜 말들을 하는 아주 사악한 입과 거짓된 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당사자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에 대하여 좋게 말하고,진심으로 애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6절도 보시겠습니다.
내 형제 요나단이여, 내가 너로 인하여 괴로워하노라. 네가 내게 큰 기쁨을 주었으며 네가 나를 사랑함이 놀라워서 여인들의 사랑을 능가하였도다.
다윗은 또한 형제사랑을 기억하였습니다. 다윗은 형제를 기쁨으로 여겼고, 또 형제의 비극을 자신의 괴로움으로 여겼습니다.
다윗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는 왕이 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자신의 왕권을 세우는데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께 관심을 두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였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른 마음을 가지고자 하였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순종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할 때 그 결과는 어떠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명예를 높이셨고, 그의 왕권을 세우셨으며, 그의 왕국을 강하게 하셨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왕이 되었습니다. 후에 메시아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바로 다름 아닌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앉으실 왕좌를 다윗의 왕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정리
말씀을 정리하면서, 우리 함께 잠언 16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람의 길들이 주를 기쁘게 하면 그분께서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와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모든 문제의 해답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길을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원수와 어떻게 화목할지 고민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두어야 할 주제는 바로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우리와 화목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각종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하고 염려하며 육신 가운데 방황하는 시간들을 모아다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에 드려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 마치 다윗에게 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함께 히브리서 11장 25,26절을 보시겠습니다.
25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26 또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으로 보답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니라.
모세는 과연 어떻게 이집트의 왕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과감히 포기하고 내어버릴 수가 있었을까요? 과연 그는 어떻게 쾌락을 버리고 고난을 택할 수가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해답을 관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관심이 주님께서 주실 보상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세상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주님께서 주시는 보상보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쾌락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헌신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아직 이 세상에서 관심을 가지고, 붙들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얻을 영원한 영광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고,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 지식 따로, 믿음 따로, 우리의 삶 따로, 구분지어 놓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회로 모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과연 어떤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까?
사울 왕은 노략물에 관심이 있었고, 자기의 왕권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말렉 청년은 자기가 얻게 될 유익과 명예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죽음 이후에 보상은커녕, 이 세상의 삶에서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주님과 주님의 왕국과,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유익과 권리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다듬으시는 과정을 통과한 후에, 그는 왕권과 명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기 원하고, 주님의 왕국과 또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보상에 우리의 관심을 두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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