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9.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28
육신의 결과(삼상 31: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31장입니다. 사무엘기상 31장 6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저는 오늘 “육신의 결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의 마지막 장인 31장에서 아주 비극적이고 슬픈 이야기를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의 뼈아픈 패배이며, 육신의 삶을 살았던 사울 왕의 최후인 것입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악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믿음의 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다만 죄를 안 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더욱 주님을 따르게 되면서, 우리는 다만 올바른 것을 말하고 좋은 일을 행하는 것보다, 육신을 부인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육신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육신의 결과는 비참하고 비극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주 육신 가운데 걷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 면으로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고, 또 한 면으로 육신의 길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사울의 삶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육신의 결과를 살펴보고,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길로 더욱 전진하여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사울의 죽음
그러면,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31장의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먼저 사무엘기상 31장 1-3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웠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해 쓰러지니라.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맹렬히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멜기수아를 죽이고
3 싸움이 사울에게 심히 불리하게 되어 활 쏘는 자들이 그를 맞추매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들로 인하여 크게 다치니라.
우리는 1절 말씀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였는데, 이스라엘이 패배하였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전쟁은 바로 다윗이 가드 왕 아기스의 신하로 참가할 번 하였던, 바로 그 전쟁이었습니다. 바로 그 전쟁에서 극적으로 다윗은 제외되었는데, 또 바로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무참히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먼저 사울 왕의 아들들인 요나단, 아비나답, 멜기수아를 추격하여 쓰러뜨렸습니다. 또한 사울 왕도 활에 맞아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4-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4 이에 사울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능욕할까 염려하노라, 하였으나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하려 하지 아니하므로 사울이 칼을 취해 그 위에 쓰러지매
5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사울이 죽은 것을 보고 자기도 마찬가지로 자기 칼 위에 쓰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활에 맞아 부상을 당했던 사울은 자신의 병기 드는 청년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두려워하자 사울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병기를 드는 청년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울 왕과 함께 스스로 죽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병기를 드는 청년까지 모두 그날에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함께 7-10절까지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골짜기 저편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과 요르단 저편에 있던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죽은 것을 보고 도시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그 도시들에 거하니라.
8 그 다음 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 쓰러진 것을 보고는
9 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을 벗긴 뒤 블레셋 사람들의 땅 사방에 보내어 자기들의 우상들의 집과 백성 가운데서 그것을 알리게 하며
10 그의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몸은 벧산 성벽에 묶어 두니라.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완전히 패하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죽은 자들을 약탈하러 길보아 산까지 올라왔다가 사울 왕이 쓰러진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베고, 그의 갑옷은 자기들의 신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몸은 벧산 성벽에 묶어 놓았습니다. 이제 나머지 이야기도 마저 보시겠습니다. 11-13절입니다.
11 야베스길르앗 거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 모든 용맹한 자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의 몸과 그의 아들들의 몸을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야베스로 돌아와 거기서 그 몸들을 불태우고
13 그들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에 있는 나무 밑에 묻고 이레 동안 금식하였더라.
이제 사울의 고향 사람들이었던 야베스길르앗의 용맹한 자들은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의 아들들의 몸을 가져다가 장사를 지내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는 사무엘기상의 가장 마지막 31장의 비극적인 장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 함께 육신의 결과가 어떻게 비참한 것인가를 한 가지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볼 육신의 모습은 바로 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8장 19,20절을 보시겠습니다.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이 사무엘의 목소리에 순종하기를 거부하여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우리에게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리니
20 그리하여야 우리도 모든 민족들과 같이 되어 우리 왕이 우리를 재판하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우리이다,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에게 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언자 사무엘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히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들은 육신의 뜻에 따라 왕을 구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세상의 모든 민족들과 같이 되기를 원하였고, 하나님이 아닌 인간 왕이 자기들을 재판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의 참패였고, 비참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되는 사무엘기상 31장의 비극은 사울 왕만의 잘못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적인 잘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그 누구도 사울 왕에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비난할 것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 비극을 만들어낸 장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고,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았습니다.대언자가 경고하였지만, 듣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육신의 결과는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 다윗의 선택
그 다음 우리가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다윗의 선택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더 이상 쫓기는 것이 싫어서 가드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나 인도하심이 아니었고, 다윗의 육신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27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다윗이 마음속으로 이르되, 이제 내가 언젠가는 사울의 손에 멸망하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빨리 도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내게 없도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지경에서 나를 더 찾다가 나로 인해 절망하리니 내가 이와 같이 그의 손에서 도피하리라, 하고
2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육백 명과 함께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만약 다윗이 주님 앞에서 인내하는 가운데 조금 더 이스라엘 땅에 머물렀더라면 어떠했을까요? 1년 4개월만 더 버티면서, 이스라엘 땅에 머무르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더라면 어떠했을까요? 그랬더라면 다윗은 아마 사울 왕의 생명을 건지고, 다시 한 번 이스라엘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이날 이스라엘의 패배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그가 사랑하던 친구 요나단의 목숨을 구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참패하여 쓰러지고 있었던 바로 그날에, 육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본거지였던 시글락이 불타고,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돌로 맞을 번하고, 아말렉을 다시 추격하는 그 과정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하고 있었더라면, 그는 여기에서 이스라엘을 대단하게 구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그 누구보다도 주님과 동행했어야 할 사람인 다윗이 육신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그가 마땅히 있었어야 하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백성이 원수들에 의해 쓰러지게 되었고, 모욕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육신 가운데 있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도울 수 있고, 섬길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이 여기는 이들을 붙잡아주고 돕기 위해서 주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 사울의 선택
이제 우리 함께 사울 왕의 육신의 길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겠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는 주님의 영으로 충만했으며, 겸손하였고, 비방하는 자들을 향해 온유하였고, 하나님의 권능과 두려움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사울 왕을 보면서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가 처음에는, 한때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사악하거나 육신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젊은 사역자인 디모데에게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게 되었고, 결국 많은 고통으로 자기 자신을 찔렀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이 세상의 명예와 자랑과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 자기를 사랑하는 자기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가 하면, 한때는 뜨거운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을 믿음에서 떠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도 이와 같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결국 믿음에서 떠나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제사장 외에는 드려서는 안 되는 번제 헌물을 하나님께 드려서 범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참되게 하나님 앞에서 돌이키기보다는 백성들 앞에서 자기를 존중히 여겨달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하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셔서 아말렉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고 아무것도 취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노략물에 대한 욕심을 품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15장 1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노략물에만 날아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였나이까?하니
그는 여기서 재물을 탐내는 마음 때문에 믿음에서 떠났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으며, 자기를 찔러 꿰뚫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계속해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 함께 역대기상 10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역대기상 10장 13,14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이같이 사울은 그가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더라.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으며 또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14 주께 여쭙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를 죽이시고 왕국을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기셨더라.
여기서 우리는 사울 왕이 죽게 된 최종적인 이유에 대해서 읽어볼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사울이 주께 범한 범죄로 인해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주의 말씀을 거역하여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 그 영에게 묻고, 주님께 여쭙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고 최종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울 왕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가 감히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다윗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그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여전히 기회를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 왕의 최종적인 잘못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에조차 주님께 묻지 않고 부리는 영을 지닌 자에게 조언을 구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28장에서 그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28장 3-6절을 보시겠습니다.
3 이제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위해 애곡하며 그를 라마에 곧 그의 도시에 묻었더라. 전에 사울이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마술사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 블레셋 사람들이 함께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고 그들이 길보아에 진을 치니라.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는 두려워하였고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리므로
6 사울이 주께 여쭈었으나 주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대언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라.
사울 왕은 사무엘이 죽기 전에 부리는 영들을 지닌 점쟁이들과 마술사들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사울 왕이 다윗을 추격하는 동안 사무엘은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울은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서 주님께 여쭙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진정으로 구한 것은 주님과의 동행이 아니라, 단지 전쟁의 승리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다급한 부르짖음에 침묵하시고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시면서 기쁨을 얻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참되게 하나님 앞으로 돌이켜, 주님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사울 왕이 최종적으로 무엇을 선택하였는가 보게 됩니다. 우리 함께 7-10절을 보시겠습니다.
7 이에 사울이 자기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해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녀에게로 가서 그녀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이 있나이다, 하니라.
8 사울이 변장하고 다른 옷을 입은 채 두 사람과 함께 가서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니라. 사울이 이르되, 원하노니 나를 위해 부리는 영으로 점을 쳐서 내가 네게 지명하는 사람을 나를 위해 위로 데려오라, 하매
9 그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보라, 네가 사울이 행한 일 곧 그가 부리는 영들을 지닌 자들과 마술사들을 이 땅에서 끊어 버린 것을 아나니 그런즉 네가 어찌하여 내 생명에 올무를 놓아 나를 죽게 하려느냐? 하매
10 사울이 주를 두고 그녀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네가 이 일로는 벌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니
사울 왕은 주님과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쫓아내었던 부리는 영을 지닌 여인을 찾아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으니까, 마귀들에게 물으러 간 것입니다. 그는 차라리 밤새도록 주님과 씨름하며 매달렸던 야곱처럼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두 번 주님께 묻고 응답이 없자, 마귀들에게서 길을 묻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변장을 하였고, 점치는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울 왕이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점치는 여인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신도 주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고, 육신도 얼마든지 거룩한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육신도 얼마든지 종교적일 수 있고, 육신도 충분히 영적인 모양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겉모양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아니라, 참되게 성령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진실한 믿음의 길을 추구하기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11-14절을 보시겠습니다.
11 그때에 여인이 이르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위로 데려오랴? 하거늘 사울이 이르되, 사무엘을 나를 위해 위로 데려오라, 하니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는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은사울이시니이다, 하매
13 왕이 그녀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하니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들이 땅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하매
14 사울이 그녀에게 이르되, 그의 모양이 어떠하냐? 하니 그녀가 이르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하니라.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자기 얼굴을 숙여 땅에 대고 절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매우 난해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과연 점치는 여인이 죽은 사람의 영을 불러내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정말 사무엘이 올라온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마치 대언자 발람의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하신 사건처럼, 이 사건이 아주 특별한 단회적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으로 점치는 여인의 능력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시는 특별한 장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15-19절을 보시겠습니다.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위로 데려가려고 나를 요동시키느냐? 하니 사울이 대답하되, 내가 심히 곤궁하나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를 치려고 싸움을 일으켰고 하나님은 내게서 떠나사 다시는 대언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행할 일을 당신이 내게 알려 주도록 하기 위해 내가 당신을 불렀나이다, 하니라.
16 이에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너를 떠나 네 원수가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주께서 나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그에게 행하셨으니 주께서 왕국을 네 손에서 찢으사 네 이웃에게 곧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분의 맹렬한 진노를 아말렉에게 집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또한 주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주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찌하여 사울 왕에게 이토록 가혹한 심판의 말씀들을 주실지언정 직접 그를 치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마지막까지 사울 왕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라도 사울이 온 마음으로 진실하게 주님 앞에 돌이키기를 원하시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함께 에스겔 18장 23절을 보시겠습니다.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조금이라도 기뻐하겠느냐? 그가 돌이켜서 자기 길들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또 32절도 보시겠습니다.
죽는 자의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그런즉 너희 자신을 돌이켜서 살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우리 에스겔 33장 11절 말씀도 보시겠습니다. 우리 다 함께 읽으시겠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돌이켜 자기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돌이켜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라. 어찌하여 너희가 죽고자 하느냐? 하라.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너무나 가혹하고 또 확정적인 것 같은 심판의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돌이켜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한 평생을 자기 뜻대로 살다가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붙들었을 때, 그 때에라도 주님께서는 그와 함께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맹세하며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라 할지라도, 그가 다시 애통하며 돌이켰을 때, 먼저 찾아와주시고 그를 용서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떠한 상태 가운데 있었다 할지라도, 그대로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고, 돌이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죽게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길보아 산에서 사울은 비록 활을 맞아 부상을 당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스스로 삶을 단념하고 목숨을 끊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기회를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최후의 순간에 마치 가룟 유다와 같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그러한 육신의 길의 결과, 그는 자멸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하는 유망한 젊은 청년 역시도 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 정리
오늘 우리는 사울 왕의 마지막 발자취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육신의 길을 걸었고, 육신의 결과는 비참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sad 엔딩의 슬픈 이야기를 우리로 하여금 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믿음을 배우고, 육신의 결과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육신의 선택을 하였을 때, 그들은 그 선택으로 블레셋으로부터 승리하기를 원하였지만, 결국 패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육신의 선택을 하였을 때, 그는 스스로 위험에 빠졌을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을 돕지 못했고,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육신의 선택을 하였을 때, 자기 자신을 비극으로 몰아갔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 아들들과 병기를 드는 청년까지 많은 젊은이들의 미래를 가로막아버렸습니다.
우리도 자주 넘어지며, 가끔, 성령 안에서 걷다가도 금세, 또 다시 육신 안에서 걷게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래 참아주시며, 긍휼을 베푸시고, 만나주시려고 기다리시며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있다면,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못난 모습 그대로, 어리석은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이사야 55장 6,7절 말씀을 함께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6 너희는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7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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