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4.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22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삼상 23:1-5)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23장입니다. 사무엘기상 23장 1-5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 그때에 그들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와 싸우고 타작마당들을 강탈하나이다, 하니
2 그러므로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하매 주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3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유다에서도 두려운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친다면 얼마나 더 많이 두려우리이까? 하니라.
4 그때에 다윗이 주께 여전히 다시 여쭈니 주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므로
5 이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의 가축을 끌어오고 그들을 쳐서 크게 살육하니라. 이와 같이 다윗이 그일라 거주민들을 구원하니라.
저는 오늘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여러분, 우리가 만약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국에 여행을 가게 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쉽고, 빠르고, 편안한 여행이 되겠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서 그 지역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든지, 전문적인 관광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것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전문가의 안내를 받게 될 때, 우리는 안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시간과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여행을 즐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길을 찾아야 할 때 가장 안전하고, 쉽고, 빠른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오늘의 말씀에 등장하고 있는 다윗과 같이 주님께 여쭤보는 것입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전문가이시며, 완벽한 인생의 가이드가 되시는 하나님께 하나하나 여쭤보면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 동안 다윗은 위험한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의 지혜와 방법으로 그 모든 것을 극복해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때로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할 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고, 자기 자신을 더욱 위험하고 비참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의 절망 가운데 처하게 되었던 다윗은 비로소 아둘람 굴에서 완전히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23장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이 새롭게 되어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새롭게 가게 된 것을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외적인 환경을 볼 때, 다윗의 삶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사울 왕은 여전히 그의 생명을 찾아다녔고, 다윗은 여전히 죽음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달라진 점은 바로 다윗이 주님께 여쭙고 길을 가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눈이 더 이상 사울 왕이나, 자기 자신이나, 위험한 환경을 바라보지 않았고, 주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있었던 그러한 작은 삶의 방식의 변화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이야기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도 다윗과 같이 달라지기를 원합니다. 외적으로 실제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가 달라진 것이 없다 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이 주변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이나, 환경을 바라보는 것에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바뀌기를 원하고,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 가장 안전하고, 쉽고, 빠른 길을 우리도 걸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그일라에서의 승리
우리는 사무엘기상 23장 1절 말씀에서, 그일라에 대한 소식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유다에 속한 그일라를 침략하고 타작마당을 강탈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잠시 함께 여호수아기 15장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유다 자손의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얻은 상속 재산은 이러하니라.
네, 여기서 바로 유다 지파가 얻은 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4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일라와 악십과 마레사니 곧 아홉 도시와 그것들의 마을들이며
네, 여기 보면 바로 그일라라는 도시가 바로 여호수아의 시대에 유다 지파에게 주어졌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아둘람 굴에 있었는데, 그일라는 바로 아둘람의 남쪽 가까이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또한 그일라는 남서쪽으로 블레셋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어서 이스라엘에게는 최전방과 같은 지역이었습니다. 그일라는 약 450미터 정도로 솟아 있는 고지대에 있는 도시였고, 문빗장을 굳게 걸어 잠글 수 있는 큰 요새였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바로 이 그일라를 공격하였고, 그들의 타작마당을 강탈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조차도 좇기는 신세였지만, 이스라엘 유다 형제들의 아픔을 모른척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이 정말 아둘람 굴에서 새롭게 시작하였음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은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만의 안전을 위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가족들을 돌볼 여유도 생겼고, 자신을 찾아왔던 4백여 명의 사람들을 인도하고 돌볼 힘도 생겼고, 심지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그일라를 돕고자 하는 넓은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기상 23장 2절에서 다윗의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다시 한 번 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하매 주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이제 다윗은 더 이상 자기 생각과 판단과 지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걷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극심한 고난과 어려움이 다윗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가르쳐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무엇을 하든지, 어떤 길을 가든지 주님께 여쭈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옳고 선하고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다윗은 주님께 먼저 묻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상황을 본다면, 그는 지금 누군가를 도울 만한 처지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가서 그일라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위하여 싸워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완전히 만족한 상태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 자신이 부족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우리가 형제자매들을, 그리고 영혼들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이 누군가를 돕기에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섬기기 원하시는가에 대하여 주님께 여쭙는다면, 주님께서는 의외로 우리에게, 가서 섬기고 도우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를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일단 먼저 주님께 여쭈었던 다윗과 같은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3절에 보면 다윗은 분명히 응답을 받았고, 그일라를 구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백 명의 사람들이 다윗을 막아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다시 한 번 3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유다에서도 두려운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친다면 얼마나 더 많이 두려우리이까? 하니라.
다윗의 사람들이 말한 것은 아주 논리적이고, 타당하며, 합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분석하여 말한, 아주 현실적인 제안이었습니다. 지금 유다에서도 두려운데,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친다면, 그것은 얼마나 더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주님의 응답을 받아서, 어떤 일들을 섬기고자 할 때, 영적 싸움을 싸우고자 할 때, 우리에게는 언제든지 이러한 반대 의견이 있을 수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4절에서 다윗의 놀라운 행동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다윗이 그들을 설득하고자 하였다든지, 또는 그들의 말을 듣고 계획을 변경하였다든지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 다시 여쭈어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4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다윗이 주께 여전히 다시 여쭈니 주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겨주리라, 하시므로
다윗은 주님께 다시 여쭈어보았고, 주님께서는 더욱 분명한 말씀으로, 일어나 그일라고 내려갈 것을 말씀하셨고, 또한 승리의 약속까지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두려움 가운데 떨었던 다윗, 고난 중에 있던 다윗, 인생의 절망과 마지막 순간에 치달았던 다윗을 사용하셔서,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빚지고 고난 중에 있던 다윗의 사람들을 통하여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사용하셔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자라면, 우리가 아무 자격도 없는 자라면,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사람들인 것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 사울 왕의 추격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우리 함께 7-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7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이가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께서 그를 내 손에 넘겨주셨도다. 그가 문과 문빗장이 있는 고을에 들어감으로 갇혔도다, 하고
8 사울이 싸우려고 온 백성을 함께 소집하여 그일라로 내려가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려 하였더라.
사울 왕은 그일라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강탈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군대를 소집하지도 않았고, 블레셋과 싸우기 위하여 출전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이 그일라에 있다는 소식을 듣자, 온 백성을 함께 소집하여 다윗을 잡으려고 하였습니다.
또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자기 손에 넘겨주셨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울 왕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육신의 관점으로, 육신 안에서 걷는 사람이 얼마나 엉뚱하게 생각하고,판단하고, 행동하게 되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진정 하나님의 원수이며, 자기의 원수가 되는 블레셋 사람들과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다윗과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지 않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원수인, 마귀와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육신과 죄에 대하여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귀한 형제자매들과 대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깨어서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여쭙고 길을 가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10-1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0 그때에 이르되,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사울이 나로 인해 그일라로 내려와 도시를 멸하려 한다는 것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11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겨주리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오리이까? 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간청하건대 주의 종에게 알려 주옵소서, 하매 주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시니
다윗은 사울 왕이 그일라로 내려와 다윗을 잡으려 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다윗은 본능적으로 도망을 가고자 하였지만, 이번에도 역시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내려올 것이라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그때에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겨주리이까? 하매 주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겨주리라, 하시니라.
13 이에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를 떠나 피한 것을 어떤 이가 사울에게 고하매 그가 가기를 그치니라.
이제 다윗은 사울 왕이 내려올 때에 자신이 구원하였던 그일라의 백성들이 자신을 사울 왕에게 넘겨주겠느냐고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배신하고 다윗을 잡아서 넘겨줄 것이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일라를 떠나서 도망을 다니기 시작하였고 사울 왕은 그 소식을 듣고는 그일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3가지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언제든지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가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일라는 지금 다윗을 통하여 구출을 받은, 마땅히 다윗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일라를 구원한 것은 그들을 다스린다고 하는 사울 왕이 아니었고, 오히려 다윗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울 왕에게 충성을 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다윗을 배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일라 사람들이 다윗을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에 상처를 받거나 괘씸해하지 않고, 다만 일어나서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따르고 섬기는 길을 갈 때에, 우리는 언제든지 배신당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시고, 배반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면, 우리는 우리가 섬겼던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는 일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있었고, 또 다윗에게도 있었던,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바로 성경이 운명론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지하신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모든 미래가 다 결정되어 있고,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결정되어진 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운명론의 결론은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든지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인데, 결과적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다윗의 이야기를 보면, 다윗의 행동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 미래가 바뀌게 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 말씀에 의하면, 사울 왕은 그일라로 내려오게 될 것이었고,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넘겨줄 것이었고,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주님의 응답을 토대로 그일라를 떠나 도망가게 되자, 사울 왕은 그일라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결코 칼빈주의의 예정론이나 운명론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어느새 400명에서 600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세력을 늘리기 위하여 노력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거나, 인기를 얻으려고 사람들을 모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사울 왕은 그를 죽이고자 하였고, 또 그일라 사람들도 그를 배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사람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다윗에게 한 면으로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극심한 고난 중에 있을 때에라도, 우리가 주님께 여쭙는 길을 가고자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내주실 것입니다.
** 하나님의 돌보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23장의 나머지 말씀들을 빠르게 훑어보시겠습니다. 14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강한 요새에 머물렀고 또 십 광야에 있는 산에 거하였으므로 사울이 날마다 그를 찾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은 광야에 거하였고, 또 산에 거하면서 이곳저곳을 도망쳐 다녔습니다. 사울은 날마다 그를 찾았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도망을 잘 치고, 잘 숨어서 살아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날마다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마침 반가운 손님인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을 위로하고 돌아간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함께 16-17절을 보시겠습니다.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숲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강하게 하였으며
17 또 그가 그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너를 찾지 못하리라. 너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되리니 그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아시느니라,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을 얼마나 사랑하였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직접 다윗을 찾아와서 얼굴을 보고,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다윗과 요나단처럼, 형제자매들을 참되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 함께 다윗에게 임하였던 오늘의 마지막 위험과 하나님의 건지신 손길에 대하여 보시겠습니다. 19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여시몬 남쪽에 있는 하길라 산 숲의 요새에 숨지 아니하나이까?
또한 26-28절을 보시겠습니다.
26 사울이 산 이편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편으로 갔더라.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사방에서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그들을 잡으려 하였기 때문이더라.
27 그러나 사자가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은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략하였나이다, 하니
28 그러므로 사울이 다윗 추격하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가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그곳을 셀라하마르곳이라 하였더라.
십이라는 지방의 사람들은 사울을 적극적으로 돕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은신해 있는 곳을 알아내서 사울 왕에게 직접 고발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다윗이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그 이유는 사울 왕이 정말 다윗의 아주 가까이까지 와서 사방에서 포위하며 추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에 블레셋 사람들을 통하여 다윗을 구출하셨습니다. 한동안 두려움 없이 담대하였던, 다윗은 26절 말씀처럼, 다시 한 번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순간에 다윗을 구출해 주셨습니다.
다윗은 그곳을 “셀라하마르곳”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바로 “분리의 바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어떠한 거대한 바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울을 맞이할 번 하였을 것입니다. 사울이 바로 그 바위만 지나면 다윗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사울에게 급하게 사자가 찾아왔고, 블레셋 사람들이 침략하였으니 빨리 가셔야 한다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시편 54편을 보시겠습니다. 먼저 시편 54편의 머리말을 보시겠습니다.
느기놋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마스길, 다윗의 시,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와 함께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였을 때에 지은 시
바로 이 시는 다윗이 셀라하마르곳에서 지은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함께 4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를 돕는 분이시니 주는 내 혼을 떠받쳐 주는 자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시로다.
또한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분께서 모든 고난에서 나를 건지셨으며 그분의 소원이 내 원수들 위에서 이루어짐을 내 눈이 보았도다.
다윗은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도와주시고,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방법과 지혜로 인해서 더 많은 위험과 어려움을 자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가장 안전하고 쉽고 빠른 길을 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잘 경험하지 못할 때, 그 이유는 우리가 주님께 여쭙지 않고, 내 경험대로, 내 지혜대로, 내 방법대로 길을 걸어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더 긴밀히, 그리고 더 자주, 더 구체적으로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걷는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한 상태와 상관없이, 그일라 사람들처럼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을 돕고 섬기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이 방해할 수도 있고, 부정적이거나 반대하는 말도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걷는다면, 주님께서 모든 일들을 평강 가운데 인도하실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배신이나 배반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더 큰 위기 가운데 들어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다윗과 함께하던 자들이 더 많아지고, 또한 요나단이 찾아와서 다윗을 격려해주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여쭙고 가는 길을 통하여, 우리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건지시는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고 누리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구약 > [09]사무엘기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육신과 성령과 나(삼상 25:32-35) (0) | 2017.07.25 |
---|---|
[#23] 주께서 판단하시게 하자(삼상 24:15) (0) | 2017.07.25 |
[#21] 새로운 시작(삼상 22:1,2) (0) | 2017.07.25 |
[#20] 두려워하지 말라(삼상 21:10-15) (0) | 2017.07.25 |
[#19]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삼상 19:4-6) (0) | 2017.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