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9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삼상 19:4-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9장입니다. 사무엘기상 19장 4-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 요나단이 자기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에 대하여 좋게 말하며 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왕께서는 왕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짓지 마옵소서. 그가 왕께 죄를 짓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들이 매우 선하였나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자기 손에 두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으며 또한 주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께서 그것을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왕께서 이유 없이 다윗을 죽이고 무죄한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 하시나이까? 하니
6 사울이 요나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맹세하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저는 오늘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어느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 속에 들어가시더니 “아, 시원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물이 시원하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물에 첨벙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몸이 미처 물에 다 들어가기도 전에 “아 뜨거워!”하면서 소리를 치고 말았습니다. 바로 그 때 그 초등학생의 머릿속에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네, 이것은 재미있으라고 지어낸 이야기일 것이지만,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그 말 자체는 진리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라는 것인데, 또 다른 말로 하면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사람은 신뢰할 만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9장의 말씀을 통해서 다윗에게 임한 고난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정말 목숨을 잃을 것만 같은 위급한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는지 그 모습을 살펴볼 것입니다. 사무엘기상 19장의 말씀은 이제 본격적으로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면서, 다윗의 도피생활이 시작되는 단계의 모습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정말 신뢰할 분이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요나단과 사울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9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1 사울이 자기 아들 요나단과 자기의 모든 신하에게 그들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2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였으므로 요나단이 다윗에게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원하노니 아침까지 조심하고 은밀한 곳에 거하며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아가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옆에 서서 너에 관하여 내 아버지와 대화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그것을 네게 고하리라, 하더라.
사울 왕은 이미 다윗을 향해 창을 두 번이나 던지면서 그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과 결혼하는 것을 미끼로 삼아 다윗을 블레셋 사람들과의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어 자연스럽게 죽기를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사울 왕은 이제 공개적인 왕의 명령으로, 자기의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들에게 그들이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자 요나단은 다윗을 은밀한 곳에 숨기고 아버지를 설득해 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어지는 말씀이 우리가 가장 먼저 읽었던 본문인 4-6절까지 말씀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 대하여 좋게 말하면서, 다윗을 죽이지 마시라고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6절과 같이 맹세하였습니다.
사울이 요나단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맹세하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요나단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울 왕은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 이로써 요나단은 안심할 수가 있었고, 다윗이 이제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함께 7-8절을 보시겠습니다.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려 주고 다윗을 사울에게 데려가니 그가 전과 마찬가지로 그의 앞에 있었더라.
8 다시 전쟁이 있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살육하매 그들이 그를 떠나 도망하니라.
이제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으로 인하여 다시 사울 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고, 전과 같이 다시 왕의 명령을 받고 전쟁터에 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다윗은 큰 위험에 빠졌었지만, 요나단을 통해 이제 위험을 완전히 벗어나 안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우리 함께 9-10절을 보시겠습니다.
9 사울이 손에 창을 가지고 자기 집에 앉았는데 주에게서 온 악한 영이 사울에게 임하므로 다윗이 손으로 하프를 탈 때에
10 사울이 창으로 다윗을 쳐서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에서 피하여 나가고 사울은 창을 벽에 박으니라.다윗이 그 밤에 도망하여 피하매
사울은 분명히 주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다시 직접 창을 들어 다윗에게 던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약속이나 맹세는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결코 신뢰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기뻐했다가, 점심에 분노하고, 저녁에 또 다시 미안해지는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러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나 자신조차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울은 분명 요나단 앞에서 진실 되게 맹세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요나단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다윗이 죽일 필요가 없는, 오히려 좋은 신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또 다시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진심으로 돕고자 하였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했던 그 시간을, 조금 지연시키고 늦추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상황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을 위로하고 위해주는 따듯한 마음으로 다윗에게 심적으로는 힘이 되어주었지만, 실제적인 다윗의 위험한 상황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이사야 2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숨은 그의 콧구멍에 있나니 어떤 점에서 그를 수에 넣어야 하겠느냐?
성경은 우리에게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도 사람을 수에 넣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한다면, 사람을 숫자에 넣고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기대한다면, 결국 그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릴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사울 왕의 맹세도 아니었고, 요나단이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말이나, 자기 혼같이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도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안전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 미갈
우리는 먼저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요나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또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또 다른 사람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19장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사울이 또한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하므로 다윗의 아내 미갈이 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오늘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니라.
12 이처럼 미갈이 창을 통해 다윗을 밑으로 내리매 그가 나가서 도망하여 피하니라.
다윗은 갑작스럽게 창을 던지는 사울 왕을 피해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다윗의 집 앞에 사람들을 매복시켜서 다윗이 나오면 아침에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내이자 사울의 딸이었던 미갈은 다윗을 창문을 통해 도망가게 하였습니다.
미갈은 한 형상을 취하여 침상 위에 놓고, 마치 다윗이 누운 것처럼 속였습니다. 사울이 보낸 병사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왔을 때, 이불을 덮어놓고 다윗이 병들었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침상 채로 들고 오라고 명령하였고, 사울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려고 다윗의 방에 들어갔다가, 다윗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1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보내어 그가 피하게 하였느냐? 하니 미갈이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내가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내가 너를 죽이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사울 왕은 자신의 딸이 거짓말을 하고 다윗을 몰래 도망가게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화를 내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같이 나를 속이고 내 원수를 보내어 그가 피하게 하였느냐?” 사울은 또 다시 다윗을 자신의 원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미갈은 다윗의 아내였습니다. 사울은 자기 딸에게 화를 내면서, 어찌하여 너는 너의 사랑하는 남편을 무사히 도망가게 하였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로 다윗을 전쟁터로 내몰았다가, 결국에는 자기 딸과 결혼하게 만든 장본인이면서, 이제는 그 딸 앞에서 다윗을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발걸음은 비극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미갈이 한 말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갈은 아버지가 자기에게 화를 내자, 즉시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내가 너를 죽이겠느냐? 하더이다.” 자기의 마음은 아버지를 도와서 다윗을 잡고 싶었지만,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였기 때문에, 목숨을 건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주었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 왕이 너무 살기등등하였기 때문에, 미갈로서는 어쩔 수 없이 대답한 것이라고 보여 지고, 또 미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다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이라도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를 포함하여, 사람들은 누구든지 위기의 순간에는, 최후의 순간에는 등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하였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했던 베드로처럼, 다윗을 너무나 사랑한 아내일지라도, 다윗이 없는 이 마당에서는, 이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하여, 다윗이 마치 스스로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아내까지 죽이려던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미갈을 감히 정죄할 수 없고, 오히려 잘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연약함이고 바로 우리들 자신의 연약함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느 순간에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충만하였더라도,위기의 순간이 오면, 또 우리가 위하던 그 당사자가 당장 그 자리에 있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의 혀를 사용하여, 손쉽게 탈출구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 곳에서는 저렇게 말하면서, 이 사람도 위하고 싶고, 저 사람도 위하고 싶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을 상처주고,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으며, 결국에는 나 자신만을 변호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우리는 비겁하고, 부정직하며, 이기적인 혀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오, 주님께서 우리의 눈을 열어주셔서,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간사하고 거짓된지 보여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자기 자신을 신뢰하면서, 나는 정당하고, 나는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사람들의 말에 영향을 받는 발걸음을 중단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영향을 받는 길을 걷기 원합니다. 우리를 애통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우리를 기뻐하게도 하는 것이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미갈과 같이, 나를 도왔던 바로 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잘못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평소에 나에 대하여 사악한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아니라, 평소에 나를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라, 다만, 연약한 사람이라서 충분히 그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을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였던 미갈 조차도 위기의 순간에 그러했고, 우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똑같은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신뢰하거나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을 향해서는 기대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바로 우리들을 향해 오늘 그렇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배반당할 준비도 하고, 오히려 더 넘치게 사랑하고 용서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사무엘
우리는 먼저 다윗을 돕고자 하였던 요나단을 살펴보았고, 그 다음으로 미갈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사무엘기상 19장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고 있는 한 사람을 간단히 살펴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19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이 도망하여 피하고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 이르러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고하였고 그와사무엘이 가서 나욧에 거하였더라.
이제 다윗은 자기에게 처음으로 기름을 부었던 사람,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적인 사람, 주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인 사무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모든 일을 다 말하였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자기를 죽이려고 했고, 두 번째, 세 번째, 어떻게 자기를 계속해서 죽이려고 하였는지, 사무엘에게 다 일러주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원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나한테 기름을 부었잖아요. 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양치기 소년의 삶이 차라리 더 안전하고 좋았는데, 도대체 왜 나한테 기름을 부은 것입니까? 내가 기름 부음을 받았어도, 당장 왕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나는 죽게 생겼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무엘은 다윗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이 다윗에게 어떤 말씀을 주었다든지, 어떤 길을 보여주었다든지 하는 말씀을 전혀 읽어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사울이 다윗을 잡으라고 보낸 군사들의 무리가,세 번에 걸쳐서, 사무엘과 함께 있던 대언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여 대언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고, 심지어는 나중에 사울 자신이 직접 와서 똑같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어 대언을 하게 되었다는 기록만 읽어볼 수가 있을 뿐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을 돕기를 원했지만, 별로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에게 몇 가지 권면을 해주었을 것입니다. “절대로 권위를 거슬러서 사울 왕을 직접 대적하지 말 것.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거나 모든 일을 완전히 정리하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것.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울 것.” 이러한 어찌 보면 지금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말들만 다윗에게 해 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은 또 다시 사무엘을 떠나 도망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기상 19장에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사울 왕과, 그에 맞서서 다윗을 돕고자 하는 세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요나단과 미갈과 사무엘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어떻게 해서든 다윗을 위하고 돕고자 노력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사용하시며,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며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고, 사람을 신뢰하는 순간, 우리는 믿음의 길에서 실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안식처가 될 수 없고, 사람은 우리의 든든한 반석이 되어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이러한 믿음의 길로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도 믿고, 내 통장의 잔고도 믿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도 믿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든든한 후원자도 믿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 믿을 수밖에 없는 철저하고도 분명한 믿음의 길로 우리를 이끄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아무도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오직 혼자서 믿음으로 감당했던 놀라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더욱 깊은 믿음의 길로 이끄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든, 아니면 다른 좋은 사람들이든, 사람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 있도록 이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목숨이 위태로운 절박한 상황으로 이끄셨습니다. 또한 다윗을 돕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의미 없게 만드셨습니다. 요나단은 그 나라의 왕자였지만,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아버지이며 최고 권위자인 왕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미갈은 그의 아내였고 또한 공주였지만, 역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의 가장 뛰어난 영적 지도자였지만, 그 조차도 다윗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윗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이 있다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이며,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실망을 하고, 상처를 받는 모든 환경들조차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미워하고 정죄하라고 주시는 일들이 아니라, 다만, 사람은 신뢰할 만한 대상이 아니며,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훈련과정인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가 기대하거나 의지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다만 우리가 섬기고 돌보며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가 오늘 믿고 따르며 신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시편 62편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62편 5-8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5 내 혼아, 너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라. 내가 기대하는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분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방벽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나의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나니 곧 내 힘의 반석과 내 피난처가 하나님 안에 있도다.
8 백성들아, 너희는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고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으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피난처시로다. 셀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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