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12.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5
자기를 존중한 결과(삼상 15:30-31)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5장입니다. 사무엘기상 15장 30절과 3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30 그때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원하건대 이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주께 경배하니라.
저는 오늘 “자기를 존중한 결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서론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기상 15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주신, 어찌 보면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순종의 기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은 그 기회를 놓쳐버렸고, 잘못을 범한 이후에 그 일에 대해 반응하는 모습조차도 너무나 잘못된 것을 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무엘기상 15장을 보게 되면 22절의 말씀을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 함께 2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다는 이 말씀은 너무나 유명한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순종이란 어떤 것인가, 그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가,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 라는 순종의 주제보다는, 사울이 도대체 “왜” 순종을 하지 못하였는가,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하나님의 명령과 사울의 불순종
먼저 우리 함께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허락하여 주신 또 다시 한 번의 기회, 순종의 그 사명에 대해여 살펴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15장 1-3절을 보시겠습니다.
1 사무엘이 또한 사울에게 이르되, 주께서 나를 보내사 왕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의 백성 곧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그런즉 이제 왕은 주의 말씀들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그가 길에서 숨어 그를 기다린 일을 내가 기억하나니
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며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기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 족속을 쳐서 모든 것을 진멸하고 남기지 말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남자와 여자와 어린 아기와 젖먹이와 소와 양과 낙타와 나귀들을 다 죽이라고 목록까지 열거를 하시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은 오해할 만한 소지가 전혀 없는 너무나 분명한 말로 사울에게 정확히 전달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4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이 백성을 함께 모으고 들라임에서 그들의 수를 세니 보병이 이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만 명이더라.
예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할 때, 사울과 함께한 자들이 고작 600명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놀라운 회복의 역사를 이스라엘에게 주셨고, 이제 사울 왕이 군대를 소집하였을 때, 무려 이십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모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함께 7-9절을 보시겠습니다.
7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네가 이집트 맞은편에 있는 수르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족속을 치고
8 아말렉 족속의 왕 아각을 산 채로 잡으며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니라.
9 그러나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또 양과 소와 살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그것들을 진멸하려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나쁘고 가치 없는 것만 다 진멸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수행하지 않고, 제대로 순종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모두 다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과 백성은 아말렉 족속의 왕인 아각을 산채로 사로잡았고, 가축들 중에서 좋은 것들을 모두 남겨두었습니다.
우리 함께 11절을 보시겠습니다.
11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노니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것으로 인해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주께 부르짖으니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부분적인 순종에 대하여, 그가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울 왕이 실수로 어떤 부분을 빠뜨렸다든지, 깜빡하고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1절을 다시 보시면,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표현은 사울이 실수로 몇 사람을 놓쳐서 진멸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아각 왕을 살리고, 모든 좋은 짐승들을 살려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32절에 보면, 사무엘이 아각을 죽이기 위해 끌어오라고 하였을 때, 그가 죽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 기분 좋게 온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각 왕은 사울 왕으로부터 자기가 죽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육신의 관대함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의 육신을 볼 수가 있고, 바로 우리들의 육신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육신의 특징은 “하나님보다 관대한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예전에 사울 왕은 전쟁을 수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맹세하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여서, 정말 이상하게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육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지금 우리는 또한 사울의 엄격한 모습이 아니라, 매우 관대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말렉 족속의 왕인 아각을 살려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라고 하신 것을, 사울 왕이 살려두었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자를, 사울 왕이 용서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 멸하라고 하신 가축들을, 사울 왕이 불쌍히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대한 모습 또한 사울의 육신이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보다 관대하고 넓은 육신의 일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잘못하였을 때 회초리로 징계하라고 말씀하시고, 회초리를 아끼는 자는 자기 자녀를 미워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지만,사람들은 그것이 폭력적이며 사랑이 없는 것이고, 자녀들을 망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실수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악한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죽인 살인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람들은 살인자도 인권이 있고,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 사형을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더 관대하고 인자하고 사랑이 넘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벗어난 일들은 그것이 얼마나 선하고 좋아 보이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의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과 자기의 모습대로 창조하셨을 만큼, 사람을 존귀하게 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만큼 사람을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이 세상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우리 자신을,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들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때에는 그것이 가장 옳은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엄격하든지 또는 관대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기준대로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오늘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너무나 관대한 모습으로 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 사울 왕의 어두움
우리 함께 13-15절을 보시겠습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른즉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내가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나이다, 하매
14 사무엘이 이르되,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들의 울음소리와 또 내게 들리는 소들의 울음소리는 무엇을 뜻하나이까? 하니
15 사울이 이르되, 그들이 그것들을 아말렉 족속에게서 끌어왔나이다. 백성이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양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겼으며 나머지는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하매
13절에 보니까 사울 왕은 자기가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무서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울은 분명히 주의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지만, 자기는 진심으로 주의 명령을 수행하였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주님을 따르는 것에서 돌이켰지만, 자기는 진심으로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14절에서 양들과 소들의 울음소리에 대하여 물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첫 번째로는 백성이 한 것이라고 백성에게 책임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는 좋은 의도였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사울의 마음은 그렇게 사악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기 위하여 남겨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일어난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육신적인 것이며, 악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여 결코 그리할 수 없나이다.”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꾸짖고, 절대로 죽으시면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이 육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라고 로마서 8장 7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육신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이 아무리 선하고 순수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18,19절을 보시겠습니다.
18 또 주께서 왕을 보내 이동하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가서 죄인인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되 그들이 소멸되기까지 그들과 싸우라, 하셨나이다.
19 그런데 어찌하여 왕이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노략물에만 날아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무엘은 더욱 정확한 말로 사울 왕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주님의 명령을 다시 한 번 반복하면서, 그들을 진멸하고 소멸하라는 것이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9절에서는 사울 왕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주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고, 노략물에 탐심을 품었으며, 그것이 바로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행한 것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육신의 또 다른 모습은 바로 욕심입니다. 그것이 돈에 대한 욕심이든, 명예와 인기와 영광에 대한 욕심이든, 힘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든, 쾌락에 대한 욕심이든, 육신의 일들은 명백히 욕심으로 나타납니다.
16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
라고, 갈라디아서 5장 16,17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완료되면 사망을 낳느니라.
라고,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이렇게 사무엘로부터 강한 책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20,21절을 보시겠습니다.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참으로 나는 주의 음성에 순종하여 주께서 나를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길갈에서 주 당신의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려고 노략물 중에서 양과 소와 또 마땅히 진멸시켜야 할 것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취하였나이다, 하매
여기서 사울 왕은 차라리 내가 어리석게 행하였습니다, 어떻게 주님께 용서를 구하고 다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참으로 나는, 참으로 나는, 주의 음성에 순종하였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참으로 나는 순종했지만, 백성들이, 백성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린다는 좋은 의도로 그렇게 남긴 것을 내가 관대하게 허용한 것뿐이라고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사울 왕의 어두움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그의 양심과 마음에 빛을 비춰주셨지만, 사울 왕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 속에서는 상황 논리와 자기 마음의 선하고 좋은 의도만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책망하시는 것인지 듣고자 하지 않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된 요한복음 1장 5절 말씀처럼, 사울 왕은 어둠 가운데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울의 관심
이제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5장 22-25절을 보시겠습니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만큼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크게 기뻐하시나이까? 보소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거역하는 것은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나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고 그들의 음성에 순종한 까닭에 주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들을 어겼나이다.
25 그러므로 이제 원하오니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매
여기서 우리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 바로 순종이 희생 헌물보다 낫다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역하는 것이 마술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불법과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다른 영적인 일들과 섬김으로 헌물을 가져오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렇게 더욱 강력하게 책망하자 사울 왕은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24절에서 사울 왕은 자기가 백성을 두려워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육신의 또 다른 표시입니다. 사람들의 평판과 평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육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을 두려워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며, 주를 두려워하는 것만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 가운데 행하게 될 때, 우리는 사람들을 칭찬과 비난과 평가를 하나님의 평가보다 더욱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얼마 전 요나단을 죽일 번 하였고, 온 백성들이 똘똘 뭉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울 왕을 막아선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아마도 사울 왕을 위축되게 하였고, 백성들의 눈치를 살피게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울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고 육신 가운데 걸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자신이 용서받기를 원하고, 또 주님께 경배하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을 읽어보면, 사울 왕이 진심으로 죄를 돌이키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자기를 방어하고 변명하던 사울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갑자기 죄를 인정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그의 마음에 빛이 임한 것일까요? 바로 23절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한 문장을 보시겠습니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그분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바로 그가 더 이상 왕이 될 수 없다는 이 말 한마디에, 사울 왕은 무작정 잘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심지어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는 순간에 조차, 우리는 육신일 수가 있습니다. 심지어 눈물을 펑펑 흘리며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는 중에도 우리는 간사한 육신 가운데 있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의 관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자기의 왕권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존중히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26-28절을 보시겠습니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주께서 왕을 버려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27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그가 그의 겉옷 자락을 붙잡으매 그것이 찢어지므로
28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 날에 이스라엘 왕국을 왕에게서 찢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사무엘은 사울 왕의 거짓된 자백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마음에 쐐기를 박으며 돌아서고 있습니다. “왕이 주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주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붙잡았고, 옷이 찢어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며 당겼습니다. 사무엘은 옷이 찢어진 것을 보면서, 이 옷이 찢어진 것처럼, 당신의 왕국이 찢어지고, 왕보다 나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 나를 존중히 여기사
이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끝나버린 사울 왕은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바로 우리가 처음 읽은 30,3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30 그때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원하건대 이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31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주께 경배하니라.
사울은 내가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사람들 앞에서는 나를 존중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든 말든, 일단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자기를 존중하는 삶, 자아중심의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온 백성들 앞에서 주님이 받지도 않으시는 경배를, 종교적으로, 위선적으로 보란 듯이 드렸던 것입니다.
사울 왕은 끝까지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은 참되게 자기를 존중하는 길이 아닌데, 그 길은 참되게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길에 아닌데, 그는 너무나 안타깝게도 자기를 파멸시키는 그 육신의 삶이 마치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길인 것처럼 신속히 걸어갔던 것입니다.
사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끝나버렸을 때,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습니다. “아,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구나. 나는 정말 하나님을 대적할 뿐이구나. 주님, 이렇게 비참한 저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마치 모든 머리털을 잃고, 두 눈이 뽑히고, 원수들에게 조롱을 당하던 삼손이, 최후의 순간에 만큼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처럼,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나버린 순간에 조차, 다시 주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2장 25절을 보시겠습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그것을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에 이르도록 그것을 간직하리라.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자는 결국 육신으로 인해 길을 잘못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십자가의 삶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고 부정하며, 내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사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나를 존중히 여겨서, 내가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직 주님만을 존중히 여길 때, 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사랑과 긍휼의 주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존귀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육신의 삶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을 첫째로 구하며, 주님만을 존중히 여기는 십자가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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