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4.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설교/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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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2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삼상 13:13-1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3장 13-14절입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고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너무나 슬프고도 충격적인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불과 몇 구절 전에, 온 이스라엘 앞에 공식적인 왕으로 세워졌던 사울 왕이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의 마지막 부분을 보시면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위에 사울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고 하셨는데, 이제 그것이 취소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 중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라는 말이 있고,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거나, “한 번 줄을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은 오늘의 작은 어떤 일을 통해서 미래의 큰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서도 이러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4장 1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성경은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고난, 한 평생 고난만 받는다 하더라도, 80년 동안 받는 고난이 영원한 영광을 이룬다고 할 때, 그것은 정말 작은 것으로 큰 것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 왕이 어찌 보면 작은 것 같은 한 번의 잘못으로, 영원히 보장될 번하였던 왕국을 잃어버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사울은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였기에, 바로 얼마 전 왕이 되었는데, 이렇게 버림을 받게 되었던 것일까요?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으로 돌아가셔서 살펴보시겠습니다.
배경이야기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 1-2절을 보시겠습니다.
1 사울이 일 년을 통치하니라. 사울이 이 년 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한 뒤에
2 이스라엘 사람 삼천 명을 택하여 그 중의 이천 명은 자기와 함께 믹마스와 벧엘 산에 있게 하고 천 명은 요나단과 함께 베냐민의 기브아에 있게 하며 남은 백성은 각 사람의 장막으로 보내니라.
이 때는 사울 왕이 1년, 그리고 2년을 통치한 뒤였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3,000명을 군사로 뽑아, 2,000명은 자기와 함께 있게 하고, 나머지 1,000명은 자기 아들인 요나단의 통솔을 받게 하였습니다. 암몬 족속 나하스를 치고 큰 승리를 거둔 이후에, 이스라엘 땅은 적어도 2년간은 평화로웠습니다.
3-4절을 보시겠습니다.
3 요나단이 게바에 있던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치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 일을 들으니라. 사울이 온 땅에 두루 나팔을 불어 이르되, 히브리 사람들은 들으라, 하니
4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수비대를 친 것과 또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에게 가증히 여겨진 것을 온 이스라엘이 듣고 백성이 부름을 받아 길갈로 함께 모여 사울을 따르니라.
요나단은 아주 용맹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요나단은 블레셋 수비대와 무력 충돌을 가지게 되었고, 이 일을 통해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5절을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함께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에서 동쪽으로 믹마스에 진을 치매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아가지고 진을 쳤는데, 그 병력을 보니 상당히 막강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말 두 마리가 앞에서 몰고, 뒤에서는 군사들이 타고가면서 활을 쏘거나, 창으로 공격을 할 수 있는 병거가 삼만 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요, 또 걸어서 공격을 하는 보병, 일반 군사가 해변의 모래와 같이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군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요? 우리 함께 19-22절을 보시겠습니다.
19 이제 이스라엘 온 땅에는 대장장이가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기 때문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이 각각 자기의 보습이나 날이나 도끼나 곡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더라.
21 그들은 줄이 있어서 곡괭이와 날과 쇠스랑과 도끼와 가시 채를 벼렸더라.
22 그러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창이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블레셋 군대가 매우 막강했던 것과 달리 이스라엘 군대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수만 명이 모였다 할지라도, 온 이스라엘 군대에 있는 칼이라고는 단 두 자루뿐이었습니다. 나머지 백성들은 도끼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나 생활 도구를 가지고 전쟁에 임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가 대대적으로 몰려와 진을 친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워하였습니다.
6-7절을 보시겠습니다.
6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들이 위험에 빠진 것을 보고 백성이 굴과 덤불과 바위와 높은 곳과 구덩이에 숨으니라. (백성이 곤란을 당하였더라.)
7 어떤 히브리 사람들은 요르단을 건너서 갓과 길르앗 땅으로 갔으나 사울로 말하건대 그는 아직 길갈에 있었고 그를 따르던 온 백성은 벌벌 떨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 군대가 모여든 것을 보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굴과 덤불과 높은 곳과 구덩이 등에 숨어들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요르단 강을 건너서 멀리 도망가기도 하였고, 심지어 아직 사울과 함께 남아있던 사람들조차 용감하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사울이 왕이 된 이후에 만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을 것이고, 어찌 보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이 시점에서 믿음이 필요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이 때 어떻게 행동하였을까요?
사울의 실수
우리 함께 8-9절을 보시겠습니다.
8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때를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9 사울이 이르되,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이리로 내게로 가져오라, 하고 그가 번제 헌물을 드렸더라.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이레 동안, 즉 일주일 동안 기다리라고 소식을 전한 뒤에, 사울 왕을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레 동안을 기다렸지만, 아직 사무엘은 오지 않았고, 백성이 계속해서 자기를 떠나 도망가는 것을 보고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이렇게 번제 헌물을 드리는 일은 율법에서 금지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레위 사람 제사장을 통하여 헌물을 드리도록 정하셨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왕이었다 할지라도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레위 사람도 아닌,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으므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이 스스로 번제 헌물을 드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를 떠나 흩어지는 백성들을 붙잡아두고 싶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혹시라도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을 보면, 사무엘이 온 것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면서, 더 이상 흩어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필요한 시점에, 믿음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붙들지 못하였고, 믿음과 비슷한 번제 헌물 예식이라는 겉모양을 붙들었고, 자기들과 함께한 백성들을 붙들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10저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번제 헌물 드리기를 끝마치매 즉시 사무엘이 오므로 사울이 나아가 그를 맞으며 그에게 문안하니라.
사울 왕이 번제 헌물을 드리기를 끝마치자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아직도 제단 위에서는 헌물이 불타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조금 반갑기도 하였겠지만, 안 올 것 같았던 사무엘이 갑자기 온 것에 대하여 매우 당황하면서 그를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변명할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11-12절을 보시겠습니다.
11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12 내가 말하기를,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주께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 하니
사무엘은 사울 왕이 번제 헌물을 드린 것을 알고, 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느냐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사울 왕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사무엘이 이 모든 일을 몰라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사울 왕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시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울 왕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바빴습니다.
사울은 백성들이 흩어지고, 사무엘은 정한 날이 오지 않았고, 또 블레셋 사람들은 모였기 때문에 자기가 번제 헌물을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전쟁을 해야 하는데, 주님께 간구하지 못하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제 헌물을 드렸다고,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드렸다고 말했습니다. 사울의 이러한 어설프고, 어정쩡한 변명 이후에, 우리가 처음 읽었던 말씀인13-14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3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어리석게 행하였나이다. 왕이 주 왕의 하나님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그분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이제 주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왕국을 영원히 세우려 하셨으나
14 이제 왕의 왕국이 지속되지 못하리이다. 주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시고 주께서 그에게 명령하사 자신의 백성의 대장이 되게 하셨나이다, 하고
바로 이 일 때문에 사울은 왕의 자리에서 거절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의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있던 백성의 수를 세니 육백 명가량이더라.
사무엘은 이렇게 사울 왕을 찾아와서는 저주스러운 말만 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사울 왕은 그나마 자기 곁에 남아있는 백성의 수를 세어보았더니 육백 명가량만 남아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병거가 3만이요, 기병이 6천인데, 사울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칼이나 창 같이 제대로 된 무기하나 들지 못한 사람들이 고작 6백 명이 남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함께 사울의 이러한 실패와 관련해서,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이란 관연 무엇인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울 왕은 영원한 왕국을 보장 받을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였지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그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주님의 영원한 왕국을 상속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오늘 어떠한 믿음으로 이 영원한 왕국을 받을 수 있는지, 사울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 볼 첫 번째 요점은 8절에 있습니다.
그가 사무엘이 정해 준 때를 따라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자기를 떠나 흩어지므로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다리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렸지만, 자기가 정한 한계점까지만 기다렸습니다. 사울은 끝까지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사울이 기다리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바로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끈기 있게 인내하고 기다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기다리기는 기다렸지만, 끝까지 기다리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로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기다리다가, 결국 우리 자신이 나서서 일들을 더욱 망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께 맡겼다면,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우리는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두 번째 요점은 11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행하였나이까?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이 나를 떠나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며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함께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사울은 백성들을 바라보았고, 오지 않는 사무엘을 바라보았고, 블레셋 사람들이 모인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사람들을 믿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후서 5장 7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은 믿음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보는 것으로 걷는 것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걷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상황, 내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고, 그것들을 의존하지 않고, 그것들을 향해 나의 믿음을 주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함께 히브리서 11장 27절을 보시겠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를 버렸으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느니라.
모세는 파라오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를 버렸습니다. 모세는 믿음으로 그러한 일을 하였는데, 성경은 그 믿음에 대하여, 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 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왕국을 위해 필요한 오늘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상황을 바라보고, 돈을 바라보고,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점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13장으로 돌아오셔서, 12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이제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주께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그런 까닭에 내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번제 헌물을 드렸나이다, 하니
영원한 왕국을 위한 오늘의 믿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사울 왕과 같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진리를 위해서, 주님께 순종해서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어쩔 수 없이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명령은 사무엘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지만, 그는 여기서 기다리지 않고, 결국 자기 스스로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사장이 아닌 자가 번제 헌물을 드리는 것은 주의 법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진리대로 행하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귀한 믿음의 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함께 요한복음 5장 30절을 보시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나는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내가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구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 아무것도 스스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뜻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만을 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내가 스스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우리는 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옳고 필요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육신의 일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정리
오늘 사울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영원한 왕국을 박탈당하였습니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고자 하십니다. 그 믿음은 바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믿음이며, 주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이며, 또 내 뜻대로,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사울 왕이 맞이한 것과 같은 위기의 순간들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나를 도와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나를 떠나가는 것 같고, 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기다리지만 오지 않는 것 같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은 점점 더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러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믿음이 필요한데, 우리는 과연 그때에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사울 왕과 같이 믿음이 없는 가운데 걷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어떤 일들을 온전히 맡겨드렸다면,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기다리기 원합니다. 조금 기다라다가 나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하실 때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기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상황들과 환경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주만 바라보기 원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나를 돌보시는 주님,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 나를 위해 생명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을 멈추기 원합니다. 상황에 이끌려서 어떠한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스스로 자기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하루하루의 믿음의 걸음을 신실하게 걸어가기 원하고, 영원한 왕국에서 주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귀한 주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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