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6.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예배/로빈3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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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1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삼상 12:22-24)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2장 22-24절입니다.
22 주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24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입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서론
우리는 오늘 젖을 떼면서부터 하나님 앞에 드려져서 주님을 섬기기 시작하여, 머리가 회색빛이 되기까지 주님을 섬겼던 한 사람의 마지막 말씀 선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말씀 선포 이후로 사무엘은 사울 왕을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세웠기 때문에, 더 이상 온 이스라엘을 이끄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사무엘기상 12장 말씀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어머니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탄생되고, 또 어릴 적부터 한 평생 주님을 흔들 없이 섬겨온 한 사람, 바로 사무엘의 인생의 마지막 선포와도 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점은 사울이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이후에 처음으로 치른 전쟁 승리 직후였습니다. 사울 왕은 사사기 시대에 정말 주님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어서 거의 모든 지파가 멸족이 될 뻔 했던 베냐민의 후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가장 수가 적고 약해진 베냐민 지파 가운데서, 가장 겸손한 한 청년을 일으켜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말 사울이 왕이 될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으로 하여금 암몬 족속 나하스를 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온 백성 가운데 정말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선포한 이후에, 이제 전쟁을 통하여 공식적으로 증명된 왕을 다시 한 번 확정지으면서,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온 이스라엘 앞에서의 말씀 선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무엘의 이 마지막 말씀을 통하여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가 무엇인가 한 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사역을 돌아봄
먼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2장 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사무엘이 온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가 내게 말한 모든 것에서 내가 너희 음성에 귀를 기울였고 너희를 다스릴 한 왕을 세웠나니
2 이제, 보라, 그 왕이 너희 앞에서 걷느니라. 나는 늙어 머리가 세었고, 보라, 내 아들들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내가 어려서부터 이 날까지 너희 앞에서 걸었노라.
3 보라, 내가 여기 있나니 주 앞과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나를 대적하여 증언하라. 내가 누구의 소를 취하였느냐? 누구의 나귀를 취하였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학대하였느냐? 내 눈을 어둡게 하는 뇌물을 누구의 손에서 받았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그것을 너희에게 갚으리라, 하니
4 그들이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학대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어떤 사람의 손에서 조금도 취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5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손에서 아무것도 찾지 못한 것에 관하여 주께서 너희에게 증인이시며 또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도 이 날 증인이니라, 하니 그들이 응답하되, 그분께서 증인이시니이다, 하니라.
먼저 사무엘은 이제 온 이스라엘 앞에서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을 늙고 머리가 세었으며, 이스라엘을 다스릴 새로운 지도자가 세워졌습니다. 사무엘은 온 주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앞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모두 정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물질을 부당하게 취하였다면, 누구를 속였다면, 누구를 학대하였다면 다 갚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이 자신들을 속이지도, 학대하지도 않았으며, 어떤 사람의 손에서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사무엘과 같이 간증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평생을 함께 해온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증언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정말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였다할지라도, 우리의 마음만큼은 온전히 주님을 따랐다고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인도하신 하나님
이제 우리 함께 6-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6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분은 주시니
7 그런즉 이제 가만히 서 있으라. 주께서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행하신바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주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
8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에 너희 조상들이 주께 부르짖으매 그때에 주께서 모세와 아론을 보내시니 그들이 너희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와 이곳에 거하게 하였느니라.
사무엘은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이스라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노예생활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7절 말씀의 뒷부분을 보시면, “그분의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내가 주 앞에서 너희와 변론하리라.”라고 된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변론한다는 말의 영어 표현을 보시면 “reason”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에는 “이유”, “까닭”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무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마지막 말씀을 하면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의로우신 행적에 관하여, 그 이유를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를 제시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시고 인도하시는 기준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내가 주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당당할 때가 있고, 때로는 내가 넘어지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나를 외면하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집트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사람들과 같이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들에게는 율법도 없고, 제사장도 없고, 성막도 없었고, 오로지 이집트의 생활 방식만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원수가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어주셨습니다. 탕자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이유와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 근거는 절대로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근거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신실하신 성품에 그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회로 모여서 이렇게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늘 하루 동안 주님 앞에 합당했기 때문일까요? 결코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십 번 넘어지고, 마음으로 생각으로 주님을 대적하기도 하고, 불평을 하며 멀리멀리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과 주님, 육신과 성령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힘겹게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다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모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사기 시대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2장 9-13절을 보시겠습니다.
9 그들이 주 자기들의 하나님을 잊었을 때에 그분께서 그들을 하솔의 군대 대장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사람들의 손과 모압 왕의 손에 팔아넘기셨더니 그들이 그들과 싸우매
10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이르되, 우리가 주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죄를 지었나이다. 그러하오나 이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11 주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사 너희를 사방에 있던 너희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셨으므로 너희가 안전히 거하였느니라.
출애굽 이후 지금 사무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역사를 요약해 보자면, 반역과 타락, 심판과 징계, 그리고 돌이킴과 회복의 역사였다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신 것은 오직 한 가지, 바로 그들이 자기들의 주 하나님을 잊지 않고, 모든 생활 속에서 그분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수많은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고, 그들은 돌이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돌이킬 때마다 여룹바알 기드온과 입다와 사무엘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건져내시고, 안전히 거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의 모습도 이와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한 가지는, 우리가 매순간 주님을 잊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주님을 잊어버리고, 육신의 원함대로,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가다가,우리 스스로 모든 일들을 망치고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다시 주님 앞으로 돌아오고,주님께서는 우리를 건지시고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자주 반역하고 주님을 떠나는 이스라엘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시고, 징계하셔서 바로 잡으시고, 또 그들이 돌이키면 다시 건져내시는 이런 일들을 반복하셨던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차라리 또 다른 충성스러운 민족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사랑으로 돌보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와 근거는 결코 이스라엘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 자신께만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오늘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사무엘기상 12장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는 이유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 자신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어떠한 모습과 상관없이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하나님은 약속을 취소하는 분이 아니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여전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근거도 하나님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선하고 의로운 모습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약속과 신실하심과 사랑 때문에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긍휼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왕을 구한 이스라엘
우리 함께 12-13절을 보시겠습니다.
12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온 것을 너희가 보고는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왕이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말하기를, 아니니이다. 왕이 우리를 통치하여야 하리이다, 하였도다.
13 그러므로 이제 너희가 택하고 너희가 바라던 왕을 보라! 보라, 주께서 너희를 다스릴 왕을 세우셨느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암몬 자손이 공격해 올 때,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 왕을 구하였습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사울 왕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요청에 따라, 그리고 주님의 명령에 따라, 사울 왕에게 기름을 붓고, 이스라엘의 왕을 세웠지만, 그것이 결코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 아니었고,다만 허락하신 뜻이었음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16-19절을 보시겠습니다.
16 그러므로 이제 서서 주께서 너희 눈앞에서 행하시는 이 큰일을 보라.
17 오늘은 밀을 수확하는 때가 아니냐? 내가 주를 부르리니 그분께서 천둥과 비를 보내사 너희가 너희를 위해 왕을 구하면서 주의 눈앞에서 행한 너희의 그 사악한 일이 큰일임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하시리라, 하고
18 이에 사무엘이 주를 부르매 주께서 그 날에 천둥과 비를 보내시니 온 백성이 주와 사무엘을 크게 두려워하니라.
19 온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을 위해 주 당신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우리가 죽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다 우리를 위해 왕을 구하는 이 악을 더하였나이다, 하니라.
이스라엘의 기후는 5월부터 10월이 건기이기 때문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특히 밀을 수확하는 때인 5월 하순에서 6월은 전혀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잠언 26장 1절 말씀을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명예가 어울리지 아니하니 그것은 마치 여름의 눈 같고 수확 때의 비 같으니라.
밀을 수확하는 때에 천둥과 비가 있다는 것은 한 여름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전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밀을 수확하는 바로 이 때에 하나님께서 천둥과 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정말 잘못하였다는 것을 표적으로 보여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이 왕을 구하면서,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같이 되기를 원한 것이, 얼마나 주님을 대적한 것인지, 주님 앞에서 악하게 행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보여주기를 원하였습니다.
또한 이 표적은 바알을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알 신은 이슬과 비를 주관하는 신으로 알려졌고, 농사를 주관하는 풍요의 신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바알이 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그들에게 모든 풍요를 허락하시는 분이심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 많은 돈이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이스라엘은 밀 수확 때에 천둥과 비가 오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비로소 자신들이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구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절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함께 20절을 보시겠습니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가 이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으나 주를 따르는 데서 돌이키지 말고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주를 섬기라.
사무엘은 이제 다시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비록 이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은 너희가 이대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다시 주님을 새롭게 섬기는 것이니, 마음을 다해서 주를 따르고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머물렀다 할지라도, 주님을 떠나 있었다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주님 앞에 새롭게 되어 주님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이 훌륭하고 신실하게 주님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님을 따르고 섬길 수 있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에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모든 사악한 일을 행한 우리들이, 매일 불법을 물처럼 마시는 우리들이,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고,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의 어떠한 모습에 있지 않고, 오직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정리
이제 우리가 처음 읽었던 본문 말씀 22-24절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22 주께서 너희를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주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23 또한 나로 말하건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쉼으로 내가 결단코 주께 죄를 짓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터인즉
24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얼마나 큰일들을 행하셨는지 깊이 생각하여 오직 그분을 두려워하며 너희 마음을 다해 진리 안에서 그분을 섬기라.
한 평생 주님만을 섬겨온 사무엘은 오늘 이스라엘 앞에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스라엘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돌보시며, 여전히 선하게 인도하시는 그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께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을 삼으시기로 결정하시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며, 자신의 크신 이름 때문에,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마지막으로 시편 23편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23편 3절을 보시겠습니다.
내 혼을 회복시키시며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도하신 이유를 볼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양들을 인도하시는 근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네, 바로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엇인가를 한다면, 그는 최선을 다해 그것을 할 것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건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우리를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6절도 보시겠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긍휼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의 실패와 넘어짐과 수많은 육신의 발자국 뒤에 따라오는 것은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선하심과 긍휼이 내 평생에 나를 따라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너뜨린 것을 회복시켜주시고, 우리가 망쳐 놓은 것을 다시 고쳐주시면서, 선하심과 긍휼로 우리의 못난 발걸음을 덮어주시면서,우리를 앞에서 인도하시고, 뒤에서 따라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많은 실패와 넘어짐 가운데서도 다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어떠한 소망이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근거로 한다면, 우리 자신을 이유로 한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도 여전히 다시 주님 앞에 나아오고, 우리의 기도 제목들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이유는,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그분의 이름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면서, 그렇게 주님을 붙들 것입니다.
자신의 크신 이름으로 인하여, 오늘도 우리를 돌보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주님을 우리가 함께 찬양하고, 감사하며,힘차게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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