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5.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로빈32세
사무엘기상하 시리즈 #13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삼상 14:6)
이승선
오늘 함께 살펴보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무엘기상 14장입니다. 사무엘기상 14장 6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 보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혹시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하니
저는 오늘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잠시 말씀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 제약을 주시는 이유 Why God gives us limitation
우리가 오늘 살펴볼 사무엘기상 14장의 상황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이 비치는 것처럼, 모든 것이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놀라운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이 전쟁이 얼마나 불가능하고 절망적이었는지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다. 이날 사울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 사람들과 전쟁을 하기 위하여 서로 진을 치고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은 전혀 전쟁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2절을 보시겠습니다.
사울은 기브아의 맨 끝 지역에서 미그론에 있던 석류나무 밑에 머물렀고 그와 함께한 백성은 육백 명가량이더라.
지금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사울왕과 함께한 백성은 고작 600명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블레셋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3장 5절을 보시겠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함께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 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에서 동쪽으로 믹마스에 진을 치매
지금 사울왕과 함께 한 백성은 고작 600명뿐인데, 블레셋 사람들은 병거만 삼만 대요, 기병이 육천 명이고, 백성은 해변의 모래와 같았습니다. 초조했던 사울왕은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었던 헌물을 직접 드리게 되었고, 나중에 도착한 사무엘로부터 크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사울왕을 책망하고는 베냐민의 기브아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또한 사무엘기상 13장 22절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있던 백성 중 어느 누구의 손에도 칼이나 창이 없었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심지어 사울왕과 함께 한 온 백성 가운데 제대로 된 무기라고는 오직 사울과 요나단에게 있던 칼 두 자루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전쟁을 할 수가 없고, 오직 확실한 패배만이 눈에 보이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군사적인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었고, 심지어 사울왕은 사무엘로부터 버림을 받은, 영적인 상황마저도 너무나 암울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들이 자주 다가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방법도 없고, 길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답답하고 힘든 일들이 날마다 다가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왜 이런 일들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왜 우리에게는 할 수 없는 것도 많고, 제약도 많은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러한 상황을 통하여서만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되고, 만나게 되고, 경험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는 일들만 있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바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경험하게 하시려고, 우리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불가능함과 제약을 넘치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모든 것에 제약을 받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이 상황 속에서, 믿음의 사람인 요나단이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고, 위대한 기적과 승리를 경험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날마다 다가오는 어렵고 힘든 일들 속에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 주님께는 제약이 없다 There is no restraint to the LORD
우리 함께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 보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혹시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하니
우리는 모든 것에 제한을 받고, 제약을 받는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요나단이 과연 무엇을 하였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불가능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나 제한을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요나단에게 가장 현실적인 계산은 군사의 차이가 몇 명인가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에게 가장 실제적인 계산은 얼마나 좋은 무기를 가졌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에게 가장 정확한 계산은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렇게 계산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계산할 때, 우리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바라보고, 통장의 잔고를 바라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계산할 때,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수를 계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계산할 때, 나의 능력의 유무를 고려하고 따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마치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처럼, 하나님을 계산하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인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가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말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머릿속으로 가능한 것을 다 계산해놓고, 그 범위와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나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요나단은 자기와 함께한 병기 드는 청년과 함께 오직 2명이서 싸우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사울왕은 600명밖에 남지 않는 백성을 보면서,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요나단은 제약이 없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오직 2명으로 담대하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의 능력”을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고를 고려하고, 그 범위 안에서만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요나단은 자신이 몇 명까지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의 검술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자기와 함께한 병기 드는 청년이 얼마나 잘 싸울 수 있는지를 전혀 계산하지도 않고, 고려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요나단은 지금 현실적인 감각이 전혀 없는 이상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현실로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성경책이나, 놀라운 믿음의 사람들의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제약을 계산하지 말고, 제약이 없으신 주 하나님을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야 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거나 할 수 없는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합니다.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계산하는 고려하는 내가 없어야 합니다. 오직 모든 것이 가능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실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일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 주님께서 제약을 받으시는 경우 When the LORD has limitations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권능과 능력의 면에서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멘!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성경 속에서 놀랍게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역사하시지 않는 것일까요? 왜 우리들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가 없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감동의 역사가 너무나 가끔씩만 일어나는 것일까요? 우리 함께 시편 78편 41절을 보시겠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뒤로 돌이켜 하나님을 시험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제한하였도다.
시편 78편에서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표현은 바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제한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 자체는 무제한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제한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함께 32절을 보시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죄를 짓고 그분의 놀라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믿지 아니하였으니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놀라운 일들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믿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그분의 역사와 권능을 제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가나안 백성의 거인들을 물리치시고, 후에 길이길이 남을만한 기적적인 승리의 역사들을 풍성히 주시려고 하였지만, 이스라엘의 믿지 아니함을 통해, 제한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려고 했던 놀라운 승리의 역사들은 무려 40년이 지난 뒤에야 새로운 세대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잘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제한을 받으시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에게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이미 계산하고 있고,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있고, 이미 모든 일을 단정 짓고 결론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간적인 한계 안에서 가능한 것들까지만, 범위를 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만 주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제한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아무런 제약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역사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제한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요나단과 함께하신 주님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모든 것에서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요나단과 같이 불가능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우리의 실제 삶 가운데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 함께하는 동료 Fellow-walker
능력의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원칙의 면에서, 그분은 사람과 함께,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믿음 없음으로 인해서 제약을 받으십니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을 하시든지, 혹시 적은 사람으로 구원을 하시든지, 사람의 수에는 제약이 없지만,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믿음의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무엘기상 14장에서 보면, 정말 모든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모든 제약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한 사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무제한의 권능을 나타내시고, 자유롭게 역사하실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사무엘기상 14장 7절도 보시겠습니다.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대로 다 행하시오며 몸을 돌이키소서. 보소서, 당신의 마음에 따라 내가 당신과 함께하나이다, 하니라.
여기에는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 요나단이 있었고, 요나단과 함께하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요나단처럼 말하는 사람 옆에서, 그를 말리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무슨 소리하십니까? 믿음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우리 둘이서 저 많은 사람들과 싸우겠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주님이 도와주셔도 이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 이 청년은 요나단 못지않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요나단의 믿음의 고백을 응원하면서, 격려하면서,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따라 내가 당신과 함께하나이다” 오늘 우리들이 요나단처럼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또한 그와 함께한 바로 이 청년처럼, 형제자매의 믿음의 고백에 마음으로 아멘하고 화답하며, 함께 믿음을 격려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모든 상황을 뛰어넘고 초월하여, 제약이 없이 권능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전진하고자 하는 형제자매들을, 믿음으로 독려하고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더더욱 많이 필요합니다.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시며,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 믿음의 결과 The result of faith
이제 우리 함께 요나단과 병기 드는 청년의 믿음을 통해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믿음의 결과에 대해서 보시겠습니다. 사무엘기상 14장 13-1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3 요나단이 손과 발로 기어 올라갔고 그의 병기를 드는 자도 그를 따랐더라. 그들이 요나단 앞에서 쓰러지매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그를 따라가며 죽이니라.
14 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드는 자가 한 겨리의 소들이 쟁기질 할 수 있는 반 에이커 땅에서 처음으로 살육한 자가 이십 명가량이더라.
15 군대와 들과 온 백성 가운데서 떠는 일이 일어나매 수비대와 노략하는 자들도 떨며 땅도 흔들렸으니 이처럼 그것은 참으로 큰 떨림이었더라.
이제 요나단은 블레셋 사람들이 올라오라고 말하는 그 말을 주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표시로 확인하면서, 믿음으로 전투를 시작하였습니다. 오직 두 사람이 해변의 모래와 같은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으로 쳐들어간 것입니다. 스파이처럼 위장을 하고 몰래 잠입을 한 것도 아니었고, 대놓고 칼을 들고 쳐들어갔습니다. 요나단에게는 어떻게 전쟁을 할지 아무런 계산이 없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올라가서 싸우라는 신호를 주셨기 때문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올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14절에 나온 것처럼, 요나단과 그의 병기를 드는 청년이 쓰러뜨린 자가 이십 명 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나온 것처럼, 그때에 땅이 흔들리며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우리 함께 16절을 보시겠습니다.
베냐민의 기브아에 있던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보니, 보라, 많은 사람이 사라지고 그들이 서로를 내리치더라.
사울의 파수꾼이 멀리서 바라보니, 블레셋 사람들이 서로를 내리치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요나단을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함께 20절도 보시겠습니다.
사울과 그와 함께 있던 온 백성이 모인 뒤 그들이 싸우러 갔는데, 보라, 각 사람의 칼이 자기 동료를 치매 거기에 크게 쳐부수는 일이 있더라.
무서워 떨고 있던 사울과 백성들은 무리 중에서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이 없어진 것을 보았고, 또 블레셋 사람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싸움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함께 21-23절을 보시겠습니다.
21 또한 그 일 전에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들 즉 사방의 지역에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올라와서 진영에 들어온 자들 곧 그들도 돌이켜서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고
22 마찬가지로 에브라임 산에 숨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도 블레셋 사람들이 도망쳤다는 것을 듣고는 싸우면서 그들을 거세게 추격하였더라.
23 이와 같이 주께서 그 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므로 전쟁이 벧아웬으로 넘어갔더라.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드는 청년, 믿음의 두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놀라운 일 중의 첫 번째는 21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하던 히브리 사람들이 사울과 요나단과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물러났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민족과 연합하였던 믿음의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과 연합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놀라운 일 중의 두 번째는 22절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도망갔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다시 담대하게 나와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일은 23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날에 주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놀라운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단 두 사람이 믿음으로 주님께 순종하였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의 믿음을 회복시키시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요나단과 청년은 백성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 함께 싸우자고 권면하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 청년은 두려워서 도망간 백성들을 찾아다니면서, 책망을 하거나 정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전진하였습니다. 우리 가운데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는 형제자매들이 일어나게 될 때, 세상과 연합하였던 형제자매들, 믿음의 길에서 물러나있었던 형제자매들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Closing
이제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찾아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하기가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다가옵니다. 그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기 원하시고, 또 우리에게서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승리의 희망이 전혀 없는 절망의 순간에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만을 믿고 믿음으로 전진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요나단이 주님을 믿은 만큼 역사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이러한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제약이 없으신 하나님,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진실로 믿고, 순종하며, 전진하고자 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요나단처럼, 먼저 나서서 믿음의 말을 하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요나단과 함께하였던 청년처럼, 믿음의 고백과 결단에 대해서 들을 때에, 마음으로부터 함께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직 두 사람의 믿음의 전진을 통하여 온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승리를 거두었던 것처럼, 우리 안에 정말 믿음으로 전진하는 형제자매들이 일어나게 될 때에, 그 한 두 명의 형제자매들만이 믿음의 전진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놀라운 기적과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 말씀, 사무엘기상 14장 6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요나단이 자기의 병기를 드는 청년에게 이르되, 보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의 수비대에게로 건너가자. 혹시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리로다. 많은 사람으로 구원하시든지 혹은 적은 사람으로 하시든지 주께는 제약이 없느니라, 하니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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